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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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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르릉..."

골목 구석에서, 납작 엎드려 있던 삼색고양이가 소리를 냈다. 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화차를 보고.

"어머. 이게 뭐야. 수컷 삼색고양이라니.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기 왜 있을까?"

화차. 카엔뵤 린. 그녀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삼색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야옹!"

삼색고양이는 다 죽어가는 몸을 세우며 경계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털이 곤두설 정도의 고양이 느낌. 어떤 고양이라도 그녀를 편안하게 보지 않는다.

"어머. 사람이... 아니, 내가 이렇게 정중하게 물어보잖니. 이야기를 들어볼까?"

삼색고양이가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빨려들어가는 듯 했다.







불운의 상징이라 불리었던 검은 고양이.

그 고양이는 바람 잘 날 없었다. 어떤 마을을 떠돌든 돌팔매질 당하기 일수였고, 꼬리가 두 개여서 고양이 무리에서도 소외되었다.

고양이는 매일 쉴 곳을 찾아서 헤메야 했고, 하루를 꼬박 굶는 것 쯤은 우스운 일이였다.

지옥같은 하루하루 속에서 고양이는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르고, 형제도 없으며, 짝도 없다. 이런 삶을 더 살아가야 할 지. 물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움직일 힘도 없었다. 눈을 감고 모든 걸 포기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고양이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이런 곳에서 꼬리 두 개 달린 괭이가 쓰러져있다니. 안 돼지. 우리 집으로 가자."

남자는 죽기 직전이였던 그 고양이를 살리고야 말았다. 고양이는 어리둥절했다. 그 누구도 나를 환영해주는 이가 없었는데.

고양이는 생명을 살려준 그 남자와 금방 친해졌다. 그 남자는 어째서인지 산 속에서 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목줄도 감아주었다. 검은 리본으로 만든. 방울이 달린 목줄.

고양이에게 남자는 은인이였다.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아껴주는 유일한 사람.

고양이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녀가 인간이였다면, 오래 살 수 있다면, 평생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고양이였다. 남자는 베필을 찾았고, 산을 내려갔다. 그는 고양이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꼬리 두 개인 검은 고양이라고? 절대 안 돼!"

또 고양이는 현실에 부딪혔다. 계속 자신에게 따라붙는 그 말. '꼬리 두 개인 검은 고양이'.

고양이는 세상을 잃은 듯 했다. 또 도망가듯이 떠났다. 그를 사랑했는데, 유일한 사랑이였는데.

삼일을 굶었지만 배가 아니라 마음이 쓰렸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쓰려왔다.

그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이라도.

그의 집 앞에 찾아왔다. 몸 여러곳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기뻐 날뛸 듯 했다.

그러나 문 앞에 나온 것은 그의 부인이였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원수. 원수였다.

꼬리를 세우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눈 앞이 빨개졌다. 머리에 돌을 맞았다.

돌을 던진 건 그 남자였다. 사랑했었던. 정말로 사랑했었던.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살려주었던 그가. 나를 죽이려 하다니.

그 자리에 쓰러져 흥건해진 피웅덩이를 보고만 있었다. 캄캄해졌다. 내 몸 색깔처럼. 검게 물들었다.



"고양이야. 꼬리 두 개 달린 고양이야. 내가 보이니?"

이상한 소녀. 감긴 눈을 들고 다니는 소녀. 나는 눈을 깜빡여 대신 대답했다.

"너는 죽음을 원하고 있네~ 나는 언니랑 다르게 눈은 감겨 있는데~ 그래도 보여."

"하지만 나는 착한 아이니까~! 누가 죽어가는 건 싫어. 넌 꼬리가 두개~! 신기하다니까. 언니도 널 좋아할거야~"

지금의 주인아씨가 날 살려 주었다. 예전처럼 고양이의 형태는 아니지만.

"..."

"미야옹."

주인님. 사토리님은 내가 화차가 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사람은 날 해쳤지만, 나는 그들처럼 남을 해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지령전의 사람이 된 후에 내가 맡은 일은 지상에서 시체를 가져오는 것이였다. 귀찮은 일이지만, 나는 누구의 미움 사는 일 없이 지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러던 중 소식이 들려왔다. 마을의 학자가, 역적이 되어 삼대가 죽었다고.

시체를 가져가기 정말 좋은 소식이였다. 머리는 없지만. 태우는 덴 별 차이가 없으니까.

강가에 떠밀려온 시체가 보였다.

그 여자의 시체였다.

나는 너무 기뻐서 웃었다. 주변의 새들이 놀라서 도망갔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으며 시체를 수레에 싣는 도중 순간 흠칫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왜 그 여자의 시체가 떠내려왔지?

그 여자가 중요한 게 아니였다. 나는 수레도 놓은 채 강가를 거슬러 달렸다. 발바닥이 찢어져서 피가 흘렀다. 마치 그 때 처럼.

또 다른 시체가 밀려 들어왔다. 그 남자다. 그 남자의 시체다. 머리가 없지만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팔에 리본과 방울이 감겨 있었다.

물에 퉁퉁 불어버린 시체를 껴안았다. 마음이 끓어올랐다. 옛날 생각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그가 돌을 던진 것도. 그가 나를 살려주었던 과거도, 목줄을 감아주던 순간도.



그가 던진 돌에 맞았던 순간도.

발밑을 쳐다봤다.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돌을 머리에 맞았던 그 때 처럼.

털이 바짝 섰다. 눈물이 흘렀다. 입이 찢어졌다. 기쁨의 눈물이 피웅덩이에 떨어졌다.

시체의 팔에서 리본을 뜯어내고 그 리본으로 머리를 묶었다.

다시는 인간 따위에게 정을 바라지 않겠노라고.



시체를 싣고 지령전에 들어오는 도중 사토리님과 마주쳤다.

"...부디 원망하는 그 마음도 태워 버리렴. 나처럼 마음을 닫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버린단다..."



그 둘의 시체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컷 삼색고양이. 행운의 상징. 정말 희귀해 만 마리 중 한 마리 꼴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한 졸부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 졸부는 행운의 상징이라는 말에 혹해서 그 고양이를 비싼 값에 치르고 데리고 온 것이다.

그 삼색고양이를 신경써 준 것은 그 집의 젊은 남자 하인이였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하인으로 일해서 키울 수 없던 터라, 고양이가 들어온 날부터 성심성의껏 돌봐주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도 가지 않았다.

삼색고양이가 들어온 지 한달 반 되던 날, 졸부가 불법적으로 돈을 벌어들인 것이 들통나 한순간에 엄청난 돈을 압류당한 것이다.

졸부는 단단히 화가 났다. 재수없는 삼색고양이. 비싼 돈을 데리고 들여왔건만.

화난 졸부는 고양이를 마구 쳤다. 고양이의 뼈가 죄다 부러졌다.

하인은 깜짝 놀랐다. 고양이를 안고 울었다. 졸부는 소리질렀다. 그 고양이를 당장 내 버리라고.

하인은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고양이보단 자기 자신이 더 중요했다.

고양이는 애처로운 눈으로 하인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시선을 피할 뿐이였다.

그렇게 버려진 것이다. 불쌍한 삼색고양이는.







"인간은 늘 그렇기 마련이라니까. 결국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야."

오린이 냉소를 띠며 말했다.

"너는 오래 못 살 것 같은데, 내가 말동무라도 해 줄게."

오린은 삼색고양이를 수레에 태워 주었다. 시체를 찾는 길을 함께 하려고.

마을을 거닐던 도중 여자 여럿이 모여 수군거리는 꼴을 보았다. 삼색고양이의 주인이였던 졸부가 목이 달아난다는 소식이였다.

"어머. 너를 그렇게 챙겨주던 사람도 해코지당하는거 아니야?"

오린이 불길하게 웃었다.

삼색고양이는 계속 울어 댔다. 간절한 마음이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일부러 찾아주고 있잖아. 고마운 줄이나 알아."

얼마나 걸었을까. 오린의 눈에도 익숙한 그 장소. 큰 물줄기가 흐르는 강.

강 반대편에는 형이 집행되고 있는 듯 했다.

"삼색 고양이 씨. 저기 봐. 저기 저 젊은 남자. 그 사람 아니야? 똑똑히 보라고."

그 사람이였다. 그 손으로 자신을 버린. 내친. 그 남자.

단단히 밧줄에 묶여서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은 이미 죽은 사람이였다.

삼색고양이는 스러져가는 몸을 일으켜 있는 힘껏 소리를 냈다. 도저히 들릴 리 없었다.

계속 외쳐댔다. 그가 삼색고양이를 봐 주기를 소망하면서.

"다음!"

반대편에서 높으신 분이 외쳤다. 삼색고양이를 사들인 졸부의 시체가 떠내려왔다.

"어이구, 많이도 쳐 드신 모양이구만."

오린은 시체를 수레에 실었다. 그 육중한 살덩이에서 핏물이 줄줄 새나왔다.

삼색고양이는 아직도 악을 쓰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바보같으니. 저 놈은 이미 포기해버린 것 같은데."

바로 그 때였다. 그 남자가 고양이 쪽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고양이가 살아있을 리 없는데. 이제 나타났을 리가 없는데.

오린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죽음에 대한 마지막 배려의 표시로.

하지만 이내 그 남자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삼색고양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을 앞두고 모든 걸 포기해버린 심정인지.

삼색고양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제발 다시 봐달라고. 제발.



그 순간 차가운 검 소리가 강줄기를 갈랐다.

남자는 강에 머리를 박고 흘러갔다.

붉은 흐름을 남기며 하류로 흘러갔다.

삼색고양이의 울음도 멈췄다. 수레에 실어놓은 핏덩이가 남긴 피웅덩이로 떨어졌다.

"바보 같으니."

오린은 다시 한 번 시체를 수레에 실었다. 피범벅이 된 고양이도 수레 위로 다시금 올려 주었다.

삐걱삐걱 굴러가는 수레는 붉은 흔적을 남겼다. 강물과 피냄새가 뒤섞여 말로는 못 할 끔찍한 냄새가 풍겼다.



지령전의 입구에서, 오린은 그 날 처럼 다시 사토리를 마주쳤다.

"...오린.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이백 년도 더 지난 일인데..."

"..."



오린은 지옥불 속에 시체들을 넣었다.

불. 아름다운 화염의 무늬.

고기 익는 냄새와 뼈 타는 냄새.

"...유난히 잘 타는구나. 마치 그 날 처럼..."

계속 중얼댔다. 불을 보며 넋이 나가서.

오린은 다시 무심코 발밑을 보았다.

까진 발바닥에서 흐르는 피가 피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그 날과는 다른 눈물이, 피웅덩이로 계속해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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