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이계 퇴마사ㅡ염라의 현신.





서초패왕(西楚霸王). (3)


태화와 유와는 황궁 밖으로 나섰다.

 주 왕국의 자유로움을 닮아 황궁의 갑갑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유와는 평소에도 자주 변복을 하고 함경성 거리를 돌아다녔다. 위사대도 그걸 알기에 지금 황궁 남문을 나서는 이들을 막지 않았다.

 유와는 태화와 시녀 몇과 호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장옷을 입고 함경성의 시장 거리를 돌아다녔다.

 “와! 이거 맛있겠다.”
 태화가 거리에서 파는 군만두를 보며 말했다.

 “이거 두 봉지만 주시게.”
 유와가 은화 2장을 꺼내 점주에게 주며 말했다.
 
 “예에. 감사합니다!”
 점주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군만두를 수북이 담은 봉지를 건네주었다. 군만두 봉지를 건네받은 두 사람은 시녀들과 호위에게도 만두를 나눠주며 시장을 걸었다.

 태화는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함경성의 시장은 주 왕국의 시장과는 또 다른 소란스러움과 활기가 있었다. 생선을 파는 소리, 장신구를 파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음식을 내오는 소리 등 주 왕국에서도 듣지만 주 왕국과는 또 다른 소리를 들으며 태화는 유와보다 한 발 앞서 걸었다. 유와는 그런 태화를 보며 귀여운 듯,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어?”

 태화가 볼을 부풀리고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와가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태화도 그걸 보고 함께 웃었다. 소란스런 시장에 두 소녀의 웃음소리가 나타났다 소란스러움에 묻혀 이내 사라졌다.

 두 사람은 계속 거리를 거닐었다. 군만두뿐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먹고 장신구도 사며 시간을 보냈다.

 함경성은 넓었고 그만큼 시장도 컸다. 주 왕국과 달리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았다. 대륙의 패권국 중 하나로서 천 제국의 수도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음식과 장신구, 동물들이 들어왔다. 오감이 즐거운 시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 돌아가야 할 때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어.”
 “응.”

 두 사람은 지고 있는 해를 보며 말했다. 그 반대편에 황궁은 노을빛을 받아 주홍빛으로 빛났다. 두 사람은 돌아가기 위해 황궁을 향해 걸었다.

 함경성 시장은 또 다른 묘미인 야시장은 지금부터 시작되기에 인파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다음에는 야시장에 구경 가자.”
 유와가 말했다. 시무룩한 태화의 얼굴을 보고 위로한 것이다.

 다양한 국가와 교역하는 천 제국은 상업과 시장이 발달해 야시장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주 왕국은 농경국가로써 농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주 왕국에서 야시장은 통행금지 시간대에 걸려 불법이었다. 주 왕국의 공주에게 야시장은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이었다.

 유와가 태화를 위로할 때, 두 사람은 사람들이 갑자기 좌우로 갈라선 것을 알아챘다.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호위들이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시 후, 좌우로 갈라진 사람들 사이에서 검은 소년과 작은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의 모든 어둠을 빨아들인 것만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소년과 자기 몸만 한 검을 껴안듯이 들고 있는 유목민 소년이었다.

 “빨리 지나가자. 뭔가 불길해.”
 ​“​·​·​·​·​·​·​응​.​”​

 황제의 탄신일이라는 축제날에 흉함과 죽음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온 소년이나 제국에서 한창 유목민 토벌을 하고 있는 와중에 검을 들고 찾아온 유목민이나 꺼림칙한 조합이었다.

 유와와 태화는 장옷을 두르고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을 지나쳤다. 두 사람을 지나치며 유와는 옆을 힐끗 바라보다가 서둘러 장옷을 더 깊이 두르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한순간이지만 유와는 검은 소년의 검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한없이 어둡고, 한없이 차갑고, 한없이 슬픈, 그런 눈동자였다.

 ‘하. 괜히 찝찝하네.’
 유와는 신경질적으로 부채를 쥐며 생각했다.

 한편, 유와 공주와 눈을 마주친 신아는 방금 전 본 광경을 다시 떠올렸다. 그가 본 것은 살육의 현장이었다.

 불타는 화려한 장소, 무너지고 있는 금룡이 장식된 붉은 기둥, 연분홍색 옷을 입고 잔혹하게 살해당한 여인들, 그들을 죽인 새하얀 안광의 병사들, 마지막으로 배에 칼을 맞아 죽어가고 있던 아름다운 공주, 유와.

 신아가 본 것은 운명이었다. 바로 죽음의 운명.

 신아는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염라대왕의 현신답게 인간의 운명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초월적 존재들의 모든 일에는 제약이 존재하듯이 이 또한 모든 운명을 아무렇게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신아가 볼 수 있는 운명의 조건은 두 가지. 죽음과 관련된 미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날 미래, 이 두 가지였다. 오직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만 인간의 운명이, 정확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인간의 운명이 보였다.

 방금 본 운명에서 천 제국의 황녀, 유와 공주는 죽는다. 그것도 곧 황궁에서. 일반적이었다면 그냥 그려러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악령 항우의 둥지가 되어 버린 황궁에서 일어난 학살극.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절대 아니지.’

 항우는 황궁에 있다. 황궁에서 군사들이 황족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바는 하나.

 반란.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다. 차지한 몸으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항우의 무력이면 가능한 일이지.’
 지구에서도 천하제일이라고 손꼽히는 초패왕 항우.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70여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군신(軍神)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항우의 반란. 아무래도 이번 황제 탄신일은 지옥의 축제가 되어 버릴 같았다.

***

 유와 공주와 헤어진 주 왕국의 사절단 대표, 태화 공주는 황궁에 마련된 주 왕국의 사절단을 위한 숙소에 도착했다.

 주 왕국은 천 제국의 최대의 제후국이자 우방국으로 천 제국 내에서 서방이나 남방, 북방의 제국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 국토의 크기만 작다 뿐이지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천 제국과 비교했을 때, 절대 뒤지지 않는 강국이자 소국, 동방의 2인자가 바로 주 왕국이었다. 그런 주 왕국 사절을 위한 숙소는 외국 사신 숙소 중 두 번째로 크고 화려했다.

 “아휴.”
 태화 공주는 숙소에 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하며 고단함을 표했다.

 함경성의 시장은 너무 거대했다. 자유분방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근육을 키워왔던 태화조차도 지치게 만들었을 정도로 거대했다.

 시녀 하나가 다가와 그녀에게 붉은 음료를 건넸다. 최근 태화가 즐겨 마시고 있는, 외국에서 수입해온 음료였다. 태화 공주는 음료를 받아들고 한 번에 들이켜 마셨다.
 태화는 음료를 마시며 숙소를 천천히 둘러봤다. 황제를 알현하고 시장을 구경하고 이제 처음 보는 제국의 숙소였다.

 금과 은과 아름다운 보석들, 옥과 산호들로 이뤄진 보석들, 값비싸고 부드러운 비단과 윤이 나는 붉은 기둥들까지. 여러모로 주 왕국과는 다른 화려함이었다. 천 제국은 강렬한 화려함이라면 주 왕국은 소소한 화려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물건이라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그냥 ​장​물​(​長​物​)​이​었​다​.​

 태화는 아름다운 숙소를 물건들을 한 번씩 만져보고 우습다는 듯이 피식 하고 웃었다. 공주답지 않게 차갑고 소름 끼치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모든 것의 위에 서서 이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절대자를 보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 시장은 작은 장신구 하나에도 놀라며 신기해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공주 마마, 손님이 ​찾​아​오​셨​사​옵​니​다​.​”​
 그때 밖에서 시녀 하나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주 왕국이 천 제국에서 차지하는 제후국으로서의 입지가 크다고 해도 방문 첫날부터 손님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천 제국과 주 왕국 사이에 거리가 있기 때문에 고단함을 풀라는 의미에서 관례상 첫날에는 황제 알현 외에 별다른 행사나 손님 방문이 없었다.

 하지만 태화 공주는 손님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느긋하게 말했다.

 “들여보내어라.”

 허락이 떨어지자 장지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섰다. 한 사람은 왕을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연 율 황자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상장군을 상징하는 황색 갑주를 입고 있었다.

 “처음 뵙겠사옵니다, 공주 마마. 대천 제국의 상장군, 이곽승이라 하옵니다. 이리 만남을 청한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상장군 이곽승이 자신을 소개했다. 붉은 옷을 입은 연 율 황자는 아무 말도 없이 태화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인 일이신지요?”
 그녀에 질문에 답한 것은 연 율 황자였다.

 소름끼치면서도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그는 말했다.
 “우리, 서로 할 애기가 있는 것 같소만?”

 태화 공주도 웃음으로 답했다. 일전의 미소는 거짓이었다는 듯이 차갑고 비정한, 노련한 권력자와 같은 미소였다.
 “아무렴요.”

 ***

 함경성은 더더욱 달아올랐다. 밤에도 불이 꺼질 줄 모르는 불야성을 이루었고 소란스러움도 한층 더해갔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까마득히 높은 허공에 신아가 서있었다. 마치 공중에 발판이라도 있는 것 같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로 서있었다. 그런 신아의 발아래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황궁이 보였다.

 신아는 황궁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발판이 사라진 듯 신아의 몸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중력은 자신을 거스르려는 것들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신아의 몸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황궁으로 떨어졌다.

 천 제국의 황궁에는 주술사들이 만들고 설치한 방어 결계가 존재한다. 결계는 반군과 같이 황제의 신상에 위협이 되는 모든 것들을 배제했다.
 
 신아는 죽음의 현신. 노령인 황제에게는 죽음만큼 위협적인 것도 없었다.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죽음의 기운이 실체화된 신아는 결계에 의해 배제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항우의 둥지가 황궁의 대부분을 장악한 상황에서 결계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군이 들어오기 딱 좋겠네.’

 황궁의 결계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천 제국 황실과 역사를 함께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술사들의 결계를 개량하고 덧붙이기를 반복해 신아조차도 풀기 난해한, 그리고 가까이 하기 꺼려지는 형태가 되었다.

 악령의 둥지라도 그런 결계를 망가뜨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항우는 그걸 해냈다. 단시간에.

 ‘이거······ 위험하네.’
 도술로 몸을 숨기고 황궁을 조사하던 신아는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발견했다.

 간혹 가다 그가 있는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내관이거나 궁녀들이었다. 신아는 그들에게서 죽음이 풍기는 향기를 느꼈으나 죽음의 운명을 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죽으나 죽는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뜻이었다.

 이 모순은 인과율이 개입할 수 없는 존재, 운명이 없는 존재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항우.’
 신아는 변수였다. 이계에서 찾아온 초월적 존재는 운명이 없으니 이 세계의 인과율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위험분자였다.

 그리고 변수는 악령도 마찬가지였다.

 악령은 운명이 없다. 본래 억겁의 형벌을 받았어야 할 존재들이니 딱히 운명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악령이 일으키는 일들도 변수에 의한 인과였다.

 다만, 신아와 차이가 있다면 신아는 세계 전체에 변수를 일으킨다면 악령은 둥지 내에서만 변수를 만든 다는 것이었다.

 악령의 둥지는 한 공간을 악령만의 세계로 만든다. 그 공간은 세계에 속해 있으나 세계의 것이 아닌, 단절된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본래 존재하던 인과율은 악령의 둥지에 개입하지 못한다. 그때부터는 둥지에는 오직 단 하나의 법칙, 악령에 의해 모든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신아가 만난 황궁 사람들이 가진 죽음의 향기와 보이지 않던 죽음의 운명은 악령의 둥지에서 만들어진 모순이었다.

 악령의 둥지가 완성되어 모습을 드러낼 때, 죽을 이들. 하지만 인과율이 개입하지 못하니 운명이 사라진 이들.

 ‘그럼 항우는 대체 누구려나?’

 신아가 그 자리에서 벗어나 황족들의 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십이 악령들은 대부분이 살아생전에 왕, 황제 같은 국가원수나 원수(元帥), 대장 같은 군의 요직에서 활동한, 한 마디로 권력자들이었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이제 와서 권력을 포기할 리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악령이었다. 이성은 존재하나 그 이성은 죄업에 근거해서 움직이니 오직 생전의 죄만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에게는 권력이 필요했다.
 말 한 마디면 수십 수백만 군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중세와 절대 왕정이 뒤섞인 이 세계는 그들에게 안성맞춤인 세계였다.

 어차피 현 황제는 나이가 있기에 얼마 못가 죽는다. 이건 인과율이 개입하고 말 것도 없이 이미 확정된 결과였다. 악령이나 신아라 해도 황제를 더 일찍 죽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항우는 황족들에게, 특히 젊은 몸에 있을 것이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