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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달빠의 고달픈 역행


원작 |

1회


지구에선 이제 막 겨울로 진입할 시기의 2035년 초겨울의 어느날. 대기권 저궤도에선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여러 우주개발 사업과 화성으로의 실험적 이민 등을 좀 더 값싸고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시작된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도중 원인불명의 폭발이 발생해서였다.

“여기는 스타1이다. 휴스턴, 응답하라. 현재 상정한 시나리오대로 화재를 진압하는 중이다. 이후 필요한 조치를 지시해주기 바란다.”

-여기는 휴스턴, 귀측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사고 초기부터 수습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D블록을 반드시 해체해 러시아측이 무인 상태로 준비해둔 시베리아의 처리 지역으로 저속 낙하시켜야 한다. 이는 궤도 엘리베이터는 물론 인류 문명의 존망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휴스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D블록 제거에 있어 필수적인 원격조작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자원자를 통한 수동 조작뿐이다.”

-귀측의 곤란함을 이해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이젠 전무하다. 괴롭겠지만 결단해야 한다.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 현장의 최일선 지휘관이라 할 ‘버나드 스턴’은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가 힘없이 응답했다.

“알겠다. 자원자를 찾겠다.”

 

“다들 무리하지마! 이제 거의 끝나가!”

날고 기는 엘리트라 해도 오기 힘들다는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 현장의 일원으로 살아온 최유성은 자기 뒤에서 덜덜 떨어가며 화재 진압용 특수 소화재를 쏘아대는 어린 후배들을 쓰디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53세인, 별로 볼 것도 없는 중년의 미혼이기도 한 그가 여기 오게 된 건 순탄치 않은 가정과 인생사의 복합적 작용 때문이었다. 원래 그의 집안은 지역사회에서 나름 큰 편인 사업을 했었지만 반복된 불합리한 정책들로 인한 국가적 재난은 그의 집안도 몰락시킬 정도의 피해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은행 빚을 갚아가며 유지해오던 자산들은 희생양을 원하는 정치가들의 선동과 입법에 의한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포기해야했고 그 결과 가족들은 맨바닥에 주저앉은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부지런한 형이 다시 일어서보겠다며 나섰고 그 이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필요 없다는 등 그냥 인생을 대충 사는거나 다름없던 최유성은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님을 깨닫고 자기 혼자만이라도 제대로 건사하면서 모든 걸 잃어 실의에 빠진 부모님에게 용돈이라도 드려야겠다며 몸으로 때운다는 표현이 딱인 위험하고 고된 각종 단기 노동 현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제법 돈을 만질 수 있게 됐고 다시 사업을 일으킨 형에게 조금이나마 보태주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작은아들이 위험천만한 일들을 하는 대가로 집안이 일어서게 되자 그의 부모는 이따금 집에 찾아오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진수성찬을 차려주며 못난 자신들 때문에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런 부모의 행동에 되려 마음이 아팠던 그는 더 큰 돈을 벌어보겠다며 위험하거나 현장이 오지라서 기피되는 일들을 더 찾아 다녔었다. 그런 인생의 과정에서 알게 된 국내외 인사들이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현장들을 소개해줬고 그런 일의 반복 끝에 그는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 현장의 계약직 근로자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인재들이 주도하는 사업이라 해도 결국 단순 노동 등을 해줄 하급자들은 여전히 필요했던 것이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지상 기반 시설 건설 작업 때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연장자라는 이유 등으로 한국계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선임반장의 역할도 맡으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이때부터 소위 높으신 엘리트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았지만 급여도 제법 늘고 이제야 돈 이외의 그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던 그였지만 작업 현장의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그만큼 사고 수당도 늘면서 희생자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연이은 경제 정책의 파탄으로 인해 반쯤 거지가 되었다는 조롱을 받는 한국 정부 산하 우주개발국의 안전교육이나 장비 지원은 있으나마나였고 그것을 벌충하기 위해 사비를 쓰기엔 한국인 근로자들로선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결국 이는 희생의 정례화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최유성 자신도 몇 차례 위기의 순간을 넘겨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이 다시 일어서게 해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자신의 일에 매진했고 결국 여기서의 일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 사고가 나고 말았던 것이다.

-상황실로부터 긴급 공지입니다. 응급 상황 대응중인 경우를 제외한 모든 선임반장들은 즉시 소장실로 집합해주십시오. 반복합니다.

 

비상사태 와중에 느닷없는 호출이 있은 후 소장실로 집합한 선임반장들 속에 끼어 있는 최유성은 현장 책임자인 버나드 스턴이 무척 고민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자 무언가를 직감하고 반쯤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진행중인 범인류적 재앙을 해결할 수단이 아무리 못해도 1개 이상은 있겠지만 필시 피의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빗나가지 않았다.

“여러분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귀환 불가를 각오한 자원자가 필요합니다.”

“몇 명이 필요한 일입니까?”

“단 한 명이면 됩니다.”

스턴의 대답에 반장들 사이에선 술렁거림이 일었고 다기능 통역기로 그 대화 내용을 이해한 최유성 또한 심정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높으신 분들로는 곤란하니 단순직 노동자들 중 한 명을 제물로 삼겠다는 식의 분위기가 느껴져서였다. 물론 스턴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적어도 모두에게 공정한 사람이었고 지금 이 말도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꺼냈다는 건 안 봐도 훤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뇌리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는지 최유성은 한쪽 손을 들고 나서면서 말했다.

“그 일 제가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상층부에선 희생하기로 나선 사람한테 뭘 해주겠다고 확약해준게 있습니까?”

 

-반장님, 안녕히가세요.

-반장님, 죄송합니다.

“야 이 녀석들아, 왜 이리 쑥스럽게 굴어?”

후배들과 눈물어린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최유성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우주복 차림으로 에어록에서 대기하다가 작업용 포드에 올라타고는 우주공간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대기권의 보호를 받는 푸른 대지가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그는 포드를 전진시키면서 문제의 D블록으로 향했다. 급한대로 화재 진압 등이 끝난 궤도 엘리베이터는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사고 발생의 근원이었던 D블록을 방치할 경우 구조물들이 연쇄적으로 붕괴할 상황이었고 이는 궤도 엘리베이터 자체의 소멸을 넘어 그 구조물들이 낙하한다면 지표면은 괴멸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원래대로면 이러한 사고들을 대비해 원격조작을 통한 국소적 대응도 가능하게 만들어졌건만 화재 사고로 인해 이미 그 기능은 마비되었고 결국 최유성이 생환 불가를 전제로 한 작업에 나서야만 했던 것이다.

어느새 포드는 D 블록 외부의 도킹 장치와 결합하는데 성공했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 최유성은 작업자 이동용 난간을 따라 이동한 끝에 출입문 앞에 이르렀다. 보안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주변을 살핀 끝에 문제의 제어용 컴퓨터를 확인 후 무전기로 휴스턴을 호출했다.

“휴스턴, 여기는 스타1 D블록 관제소다. 문제의 제어용 컴퓨터를 확인했다. 다음 지시를 요청한다.”

-여기는 휴스턴, 이쪽의 관리용 채널엔 녹색 신호가 뜨고 있지만 상황을 확신할 수 없다. 혹시 약간이라도 물리적 피해가 있는가?

“다행히도 전무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좋다 그러면 바로 본작업으로 들어간다. 영상 통신을 켜는게 가능한가?

“문제없다. 회선이 살아있다.”

-좋다. 그러면 이쪽의 엔지니어와 연결해주겠다. 그녀의 지시에 따르도록.

“알겠다.”

얼마 후 허공에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투영되면서 당장 보면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작업용 모자와 멜빵 치마를 입은 듯한 여자 엔지니어가 나타났다. 잠시 흠칫한 그는 그녀의 눈동자를 잠시 주의깊게 본 후 2년 전부터 실용화가 시작된 하이브리드봇임을 알아차렸다. 그런 그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치프 최, 저간의 사정은 들었습니다. 감사를 표하며 곧장 시작하겠습니다. 컴퓨터는 켜져 있습니까?

“네.”

-배경 화면에 안전모와 공구가 겹쳐진 아이콘이 보일 겁니다. 그걸 누르세요.

유성은 지시대로 해당 아이콘을 누른 후 다음 지시를 요청했다.

“눌렀습니다.”

-뭐가 뜨고 있나요?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빨강, 노랑, 녹색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변동되어 있고 그 아래에 각각 수치가 있습니다. 이것도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어요.”

-좋습니다. 이제부터 그 그래프가 각각 가리키는 장비들을 수작업으로 전환해 조정하세요. 방법은…….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작업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최유성은 지나가는 식으로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답할 수 있는 선에서라면 얼마든지요.

“이름이 있습니까?”

-NASA에선 제게 따로 이름을 주지 않았어요.

“당신만한 외모면 딱 맞는 이름이 있을텐데…….”

-뭔지 궁금하네요.

“에우로페.”

그 말에 처음엔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좀 쑥스럽네요. 한 세대 전 만화 시리즈에서 파생된 미모의 캐릭터를 연상하시다니…….

“악의는 없어요. 당신의 외모가 우연치고는 딱 거기에 맞았으니까.”

-나중에 윗분들에게 그 이름을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기는 할게요.

그리 말한 후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이제 그러한 분위기는 종말을 고할거라는걸. 마지막 설정이 끝나자 곧 D블록 내부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서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D블록의 강제 해제를 시작한다. 근무자들은 전원 대피하라. 반복한다. 근무자들은 전원 대피하라.

“어차피 도망은 못 가지.”

그리 말한 후 최유성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화면 속의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제가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방도는 있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라면 딱 1개가 있습니다. D블록 내에 냉동수면 기능을 겸한 피난용 생존포드가 있어요. 사용법은 포드의 자체 컴퓨터가 음성 안내를 해줄 겁니다.

“그러면 좋습니다. 꼭 살아서 만납시다!”

-부디 죽지마세요.

“아, 그리고 하나 부탁할게 있어요.”

-뭐지요?

“제가 큰 마음먹고 주문한게 하나 있어요. 가족들한테 절대 버리지 말고 포장을 뜯어 작동시키더라도 잘 유지 보수하고 필요하면 개량도 해달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신을 끝낸 후 실시간으로 위치 정보가 전송된 생존포드로 달려간 최유성은 육안으로 확인이 끝나자 외부에 붙은 패널의 덮개를 열어 녹색으로 칠해진 START 버튼을 눌렀다. 곧 생존포드의 용도에 맞게 음성 안내가 시작됐다.

-포드의 방호 덮개를 개방합니다. 사용자분은 착용한 의복을 모두 벗고 관장을 한 후 내부에 누워서 LOCK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행운을 빕니다.

곧 내부에서 관장약으로 여겨지는 알약 1개와 포장된 물티슈가 나왔고 최유성은 곧장 그걸 먹은 후 속이 부글거리는걸 참으며 좀 떨어진 장소에서 소화기관에 쌓여 있던 걸 다 배출해버렸다. 물티슈로 거길 닦은 후 앞뒤 재지 않고 곧장 포드 안에 드러누운 그는 처음 우려와 달리 내부의 쿠션이 좋다는걸 느끼자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을 가능성이 99퍼센트 이상이라지만 이 정도면 관으로서는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지시대로 포드 내부에서 LOCK 버튼을 누르고 그는 눈을 감았다. 살아서 돌아간다면 좋고, 죽는다면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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