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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은 일곱 빛깔로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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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인연 6화 사소한 비밀들(5-2)


혀를 차며 마리사를 쳐다보자 자기 배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울상이 된 듯도 하고 뻔뻔히 철판을 깐 듯도 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묘한 얼굴이 결국 입을 열게 만든다.

"뻔뻔한 건 몰라도 배고픈 건 아는구나?"

"...미안, 밥좀 주라"

"하아-"

정말이지 끝까지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나도 참 물렀다고 생각하며 식탁에 놓아두고 온 보따리를 떠올렸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그녀는 심통이 났는지 볼을 부풀리며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가끔 정말 애 같다니까.

"밤 쪄 줄게.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어"

"...고마워"

"고마운 줄 알면 행실을 고쳐"

내려와 보따리를 끄르자, 성긴 종이에 알밤들과 잣, 개암 따위가 각각 싸여 있다. 뿐만 아니라 약식에 약과도 있다. 이건 정말 너무 많이 받았는데.

상해를 데리고 부엌으로 내려가 화덕에 불을 지폈다. 특제 고압력 찜통에 알밤들을 재 놓고, 접시에 약식 약간과 작은 우유 단지와 올려 식탁에 내놓자 마리사가 허겁지겁 손을 뻗기에 탁 쳐냈다.

"이거라도 들고 있어. 아니, 그 전에 손부터 씻고 와"

"깐깐하기는"

"당연한 거야"

간절하기 그지없이 눈을 빛내는 그녀에게서 접시를 사수해내자, 그녀는 툴툴거리며 화장실로 사라졌다. 미마 씨가 마법만 가르칠 게 아니라 다른 기본적인 것들도 좀 가르쳤어야 했는데... 음, 아니다. 어쩌면 저게 가장 마리사다운 걸지도.

그럼, 나다운 건 어떤 걸까?

턱을 괴고 본격적으로 성찰에 잠긴다. 지금까진 한 번도 이런 걸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어쩐지 다소 막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다. 하지만 별로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정말로 손만 씻고 나온 마리사의 발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옷에 대충 물기를 슥슥 닦으며 자리에 앉는 그녀를 보자 또다시 한숨이 나올 뻔 했지만 목구멍 안으로 넘기며 핀잔을 주듯 물었다.

"그렇게 배고파?"

"당연하지. 어제 저녁부터 굶었다구"

"대체 뭘 했길래 밥도 안 먹었어?"

"어제 너 걱정되서 와봤더니 없길래 여기서 기다리다가..."

"머플러는 겸사겸사 챙겼고?"

"아하하"

허겁지겁 약식을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는 그녀에게 우유 한 잔을 따라주고는, 나도 포크로 조금 떼어 입에 가져갔다.

"목 메이겠다"

"움음, 고아어"

"다 먹고 말해"

가만히 씹으며 맛을 보자 고소한 맛이 잘 스며들었으며서도 탄력을 잃지 않은 밥알은 쫄깃하고 사이사이에 들어간 견과류는 눅눅해지지 않아 오물거릴 때마다 오독거린다. 과연 케이네 씨도 레이무만큼이나 음식솜씨가 좋다. 다시금 포크를 가져가려고 보니, 마리사가 정말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집어먹고 있기에 내 몫을 조금 떼어네고 아예 접시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았다.

"우음, 미아해"

"알면 됐어"

내 잔에도 우유를 따라 목을 축이고 있으니 어느새 접시를 깨끗이 비운 마리사가 우유를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더 줄까?"

"후아, 밤 찌는 거 기다리기엔 충분해. 그나저나 정말 맛있네. 역시 앨리스 솜씨야"

"시장기 덕분이겠지. 그보다도 내 솜씨가 아니라 카미시라사와 씨 솜씨인걸"

"케이네? 케이네 만났어?"

"응, 히에다가에 방문하는 길에 들렀어"

"아큐네는 네가 또 왠일이야? 신기하네"

"네가 아는 게 더 신기해. 너 마을 방문은 뜸한 거 아니었어? 아큐는 또 어떻게 알아?"

"아무리 뜸해도 너보단 자주 간다... 그리고 환상향연기 편찬을 도와준게 난데 당연하지. 인터뷰를 주선해줄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냐구"

"레이무...가 할 리가 없구나"

"레이무는 워낙 귀찮아해서 결국 내가 히에다가로 잡아다 줬을 정도니까"

마리사는 그 때를 떠올리는지 배를 잡고 킥킥거렸다. 마리사에게 잡혀가는 레이무라... 반대는 떠올리기 쉬운데. 상상하며 피식피식 웃고 있는데 문득 제법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그래. 마리사, 머플러 짜 줄 테니 재미있는 거 하나 해보지 않을래?"

"재밌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무슨 일인데?"

생각한 걸 목소리를 낮춰 속닥이자 마리사는 입술을 묘하게 씰룩이더니 씩 웃으며 딴지로 답했다.

"괜찮네. 꽤 재밌겠어. 그런데 너답지 않은걸?"

"...뭐가 또 나답지 않다는 거야"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마리사의 딴지를 받아치려는데, 언제 와 있었는지 상해가 가만히 옷깃을 잡아당기길래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하이-"

"응, 상해? 아아.. 기다려. 밤 가지고 올게"

"설탕이나 꿀도!"

"알았으니 얌전히 기다려"
집주인이 있으면 억지, 집이 비었으면 도둑질.

이것이야말로 도둑의 양심...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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