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트는 인연 1화 서장
"으..음"
눈을 가늘게 뜨자, 따끈한 햇살이 눈을 간질였다. 눈을 비빈 후 흘러내려간 이불을 다시 끌어올리자 채 가시지 않은 잠기운이 쏟아진다. 다시금 잠의 늪에 잠겨들려는 찰나, 자그마한 손이 맨 어깨를 흔들어댄다.
"응...상해, 조금만 더 잘게. 조금만.."
몸을 뒤척이며 등으로 상해를 밀어냈지만, 꾸준히 흔들어대는 바지런함에 결국 두 손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하게 기지개를 펴고는,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흘러내린 잠옷을 정돈하자 상해가 밝게 웃으며 품에 안은 물잔을 내밀었다.
"샹-하이-"
차가운 물이 목을 넘어가자,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어제 너무 과하게 마신 모양이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으로 어지럼을 가라앉히고 있자니, 상해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샹-하이?"
"살짝 어지러운 것 뿐이야"
현기증이 가라앉고 고개를 들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해의 뒤로 왠 얄팍한 두루마리가 보인다. 협탁에 잔을 내려놓고 받아들자, 돌돌 말린 새하얀 화선지가 고풍스런 봉인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뭘까 고민하며 봉인을 확인하자 절로 눈살에 힘이 들어간다. 그도 그럴 것이-
"히에다 가...?"
정말 의외로, 두루마리의 봉인에는 히에다가(家)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히에다가, 대대로 환생하며 구문사기를 편찬하는 아레의 후예들. 가문의 근원이라 할 환생의 술법에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만났던 일이라고는 축제와 연회에서 몇 번 나눈 의례적인 인사 정도 뿐이다. 대체 나에게 무슨 용건일까 싶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
'안녕하신가요, 선선해지는 계절입니다.' 라는 평이한 인삿말로 시작하는 두루마리의 내용은 당황스럽게도 인형제작 의뢰였다. 오더 페이퍼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운 몇 줄 안 되는 의뢰 내용이었지만,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몇 번씩 다시 읽어내려갔다. 이윽고 고개를 들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흘깃흘깃 훔쳐보려는 상해가 보였다. 두루마리를 다시금 말고는 상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외출준비를 해야 하니 식사 부탁할게"
"샹~하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아쉬운 듯 머뭇거리는 상해를 내려보내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그스레 물든 잎사귀들 사이로, 늦은 아침 햇살이 오싹할 정도로 파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창에 부딪어 산산이 스러지는 햇살 사이로 어렴풋이 비치는 자화상을 보자 왜인지 몸이 으스스 떨려와, 맨살을 쓰다듬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이렇게 오싹한 걸, 대체 왜?"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물음을 입에 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어느 늦여름의 늦은 아침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