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행걸(行乞)과 도사의 신점(神占)
천사가 “상제를 찾자면 먼저 독일무이(獨一無二),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상제를 잘 찾던 구미(歐美) 각국으로 가 보리라”하고 런던이니, 빠리니, 로마니, 베를린이니, 뉴욕이니……하는 유명한 도시를 다 지나 보았다.
그러나 신부나 목사 등물만 눈에 뜨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곧 황제대왕이니, 대통령이니, 국무총리니……하는 명사(名詞)도 들을 수 없고, 은행이니, 회사니, 트러스트니……하는 건물도 볼 수 없고, 풍속이나 풍관(風慣)이 하나도 옛날 것대로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천사는 상제를 찾기에 다른 것을 알은 체하지 못하고, 모두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지날 뿐인 고로 그 상황은 알지 못하였다. 예루살렘을 지나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 “바울은 독신(篤信)한 상제의 신도니 상제의 계신 곳을 알으리라”하여
“바울아, 상제가 어디 계시냐?”
고 묻다가 바울이
“이놈, 미친놈! 지금에도 상제를 찾는 미친놈아!”
하고 천사의 뺨을 쥐어 찌르는 통에 천사가 뺨이 퉁퉁 부어 달아났었다.
중국 북경에를 들어와 정양문(正陽門) 밖 십리허(十里許) 잣나무밭 속 천단(天壇)을 지나니, 면류관에 곤룡포(袞龍袍) 잡수신 대청국(大淸國) 대황제가 천제(天祭)를 올린다고 구경꾼이 모여든다.
“허허, 그래도 중국이 거룩한 나라여, 복벽(復辟:퇴위한 천자가 다시 즉위함)이 또 되어 제천례(祭天禮)를 회복하였구나.”
하고 천사가 달려들어 상제를 찾더니, 웬 사람이 손바닥을 보기 좋게 쫙 펴들고
“이놈아, 꿈꾸지 말아라. 이것은 민중 경축절의 연극이다. 상제가 무슨 똥쌀 상제냐.“
하고 또 천사의 뺨을 내갈긴다. 아, 상제의 충신 노릇 하느라고 천사의 뺨에 부기가 내릴 날이 없다.
천사가 아픈 뺨을 만지며 천교(天橋) 천단(天壇) 서(西)를 향하여 나오니 길가에 머리를 쫒고 도건(道巾)을 쓰신 노도사(老道士)가 점상(占床)을 받쳐 놓고 상위에는 유문필답예금십매(有問必答禮金十枚, 물음에 반드시 답하며 사례금은 동전 열 잎입니다)의 여덟 개 대한자(大漢字)를 써 붙인 것을 보고
“하, 저 노도사(老道士) 참 희귀한 노인이다. 오늘까지 머리도 깍지 않고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를 신봉하는구나. 예금십매(禮金十枚)라니 불과 동전 열 잎이면 상제 계신 곳을 물어 보겠다”하고 주머니를 뒤져본다. 하나 ‘동전 열 잎은 그만두고 귀 떨어진 엽전 한 푼도 없다’고 주머니가 방귀를 픽 뀐다. 이 지경에는 천사도 눈물을 안 흘릴 수 없다.
“드래곤이 오기 전 내가 상제의 좌우에서 시종할 때에는 내 손이 한 번 주머니에 들어가기만 하면 금강석도, 홍보석(紅寶石)도, 백금도, 황금도, 미국의 달라도, 불란서의 프랑도, 원세개(袁世凱)의 대가리도 나오라는 대로 나오더니, 오늘에는 동전 열 잎에 주머니의 퇴박을 만났구나……”
그러나 천사가 점쳐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미소를 띠고 노도사 앞에 허리를 굽히며
“여보 도사님, 점 한 괘 쳐 주시오. 내가 지금에 돈이 없습니다마는 일후에 돈이 생기거든 사례금 십매는 말 말고 천매, 만매라도 바치지요.”
“그러시오. 오늘은 돈이 쓸 데 없는 세상이지만 나는 애전(愛錢)의 구습(舊習)을 잊지 못하여 장난으로 하는 것이올시다. 하니 사례금이 무슨 관계 있으리까. 점을 쳐드리리다. 대관절 점은 무슨 점입니까?”
천사가 ‘상제를 들추다가는 또 뺨이나 맞을까’싶어 한참 머뭇머뭇 하다가
“예 다른 점이 아니라 상전을 찾는 점이올시다. 우리 상전이 어디 가신지 몰라서요…….”
“허허 요새 세상에도 상전을 찾아다니는 이가 있단 말이오. 당신은 참 충노(忠奴)올시다.”
하고 점통(占筩)을 흔드니 건지둔괘(乾之遯卦)가 나온다. 도사가 대경(大驚)하여
“아―어―건(乾)은 천(天)이니 곧 상제요, 둔(遯)은 도망이니 당신은 상전을 찾는 노자(奴子)가 아니라 도망한 상제를 찾는 천사인가 봅니다.”
천사가 이 말에 놀래지 안할 수 없다. 그래서 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상제의 계신 곳을 가르쳐 달라.”
하니, 도사가 풀어 가로되
“건괘초효(乾卦初爻)의 〈자(子)〉가 둔괘초효(遯卦初爻)의 〈진(辰)〉으로 변하고 〈진(辰)〉이 회두(回頭)하여 〈자(子)〉를 극(克)하였습니다. 진(辰)은 용(龍)이요 자(子)는 쥐니, 상제가 용(드래곤)의 난에 도망하여 쥐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어(古語)에 〈천개어자(天開於子)〉라 하더니 오늘은 〈천폐어자(天閉於子)〉올시다. 쥐구멍에 가서 상제를 찾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