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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 노마십가(駑馬十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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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재능이 없다."

 ​언​제​였​던​가​…​…​.​

 그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을 것이다.

 처음 그 길을 걷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내가 호로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에서였다.

 당시 그곳은 전쟁의 소용돌이가 한창이었던 때로, 전쟁이 벌어진 지도 몇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라 삶은 피폐했고, 성인 남성의 대부분은 전쟁터로 강제징병 당해서 나갈 때였다.

 당연한 일이라고 할까, 체격에 비해서 마을에서도 손꼽히는(그래 봐야 작은 촌이었기에 성인남성은 몇 명 없었지만) 체력을 가진 내가 전쟁터에 간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나 평생 해본 일이라고는 땅을 일구는 것밖에 없었던 평범한 시골청년이었던 내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였다.

 주어진 것은 썩어 문드러진 대 끝에 녹슨 쇳덩어리가 달렸을 뿐인 창.

 가진바 재주라고는 농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전부인 내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살기 위해서 강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같은 촌부를 징병한 이유가 자신들의 실질적인 병력(제대로 훈련되고 무장을 갖춘)들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고기 방패.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가치도 가지지 못했었기에 배울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 남자의 말로는 죽음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 오히려 여태까지 살아 있던게 기적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까…….

 나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허무했다.

 죽음의 순간은 극히 짧았다.

 뒤에서 앞으로 가지 않으면 자신들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윽박지르는 정규군(아군)들의 위협에 떨며, 결국은 언제나처럼 무작정 앞으로 적진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러다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오는 화살 무리를 보고ㅡ 그대로 화살에 가슴이 꿰뚫려 죽었다는 일개 고기 방패들이 대부분 겪는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때 원망하고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화살이 가슴에 박혀 든것을 알아채고, 그대로 땅에 쓰러지는 잠시동안에도 떠오른 수많은 원망과 후회.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죽음이라는 것은 끝이 아니었다.

 ​혼​령​이​라​고​ 할까, 영혼 상태가 되어 전쟁터의 한구석에 쓰러져있는 자신의 시체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보았다.

 기괴한 하얀 가면.

 덩치는 마치 성하나를 옮겨놓은 듯한 크기로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우​득​우​득​ 소리를 내면서 먹어치우는 것은 사람.

 한번 씹을 때마다 내장이 튀어나오고, 한번 뜯을 때마다 찢어진 근육 사이로 뼈가 드러난다.

 그 분명히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형의 존재에도 산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자신들끼리 싸울 뿐이었다.

 그것은 죽은, 나와 같은 혼령이 된 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인가.

 몇몇 나와 같은 혼령ㅡ 즉, 저 이형의 존재를 눈치챈 자들은 도망치다가 잡아먹혀 죽어간다.

 혼령을 잡아먹는 이형의 존재.

 나는 그것을 요괴라고 생각했다.

 처음 요괴의 존재를 보고 다리가 굳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요괴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막듯이 또 한마리의 요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터 이곳저곳에 요괴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에 걸맞게 잡아먹히는 혼령들의 숫자도 증가한다.

 할 수 있는 것 따위는 없다.

 그나마 지니고있던 썩은 창도 없고, 자신은 무술은커녕 싸움조차 해 본 적 없는 약자다.

 지금도 나를 죽이기 위해서 뻗는 요괴의 손조차, 나는 피하지 못한다.

 우득ㅡ 하고 요괴의 손이 나를 붙잡으며 온몸에 압력이 가해져 뼈가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이어서 요괴의 가면의 틈 사이로 쩍 벌려진 입이 다가온다.

 ​잡​아​먹​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죽기 싫다며 애원해보지만, 요괴는 들은 체하지 않고 나를 씹어 삼킬 뿐이었다.

 ​으​득​으​득​

 내 뼈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고통에 정신이 없어 눈물을 뿌리고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지만, 요괴는 그저 나를 발끝부터 잘근잘근 씹을 뿐이었다.

 ​발​가​락​부​터​ 오던 고통이 발목까지로 올라온다.

 ​먹​혀​진​다​는​ 공포와 전해져오는 고통에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소리친다.

 그러나 도와줄 사람은 없다.

 다른 이들은 이 요괴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나와 같은 말로를 걷는 자들 뿐.

 ​전​쟁​터​에​ 억지로 끌려와서 매일매일 목숨을 걸고, 그 와중에 화살로 목숨마저 잃고는ㅡ 죽은 뒤에조차 이상한 요괴에게 잡아먹힌다.

 ​비​참​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고통이 무릎까지로 올라왔다.

 나를 잡아먹던 요괴는 낮게 비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크게 벌린다.

 단지 잘근잘근 씹기만 했던 다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움직임이다.

 ​발​버​둥​을​ 쳐봐도 이 손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요괴의 입이 커다랗게 벌려졌을때ㅡ

 소리가 들려온다.

 ​"​만​상​,​ 일체 잿더미가 되어라ㅡ ​류​인​약​화​(​流​刃​若​火​)​.​"​

 대지가 불탄다.

 ​어​디​서​부​터​인​가​ 시작된 불은 전장 전체를 가두며 요괴들을 태운다.

 그것은 나를 먹어치우던 요괴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그것 또한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여 소진해버린다.

 털퍽, 하고 땅에 꼴사납게 떨어졌다는 것과 그 덕분에 잘게 부스러진 하체에 큰 고통이 왔다는 것도 잊고, 나는 멍하니 그것을 본다.

 전장을 뒤덮은 불꽃은 그 흉악함과는 달리, 기묘하게도 요괴 이외의 것은 태우지 않았다.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과 요괴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사람들, 초목, 대지 모든 것이 말이다.

 태우는 것은 오직 하나ㅡ 요괴뿐.

 그 거대한 불꽃에 압도된 나는 그 불바다 한가운데에서 검 한 자루를 들고 군림해있는 노인을 멍하니 보며, 한가지 생각만을 가졌다.

 강함!

 자신이 전쟁터에 끌려온 것도, 화살에 죽은 것도, 요괴에게 잡아먹힐 뻔 한 것도 힘이 없어서이다.

 ​그​렇​다​면​ 강해지면 된다.

 ​강​해​지​면​ 이런 분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강​해​지​겠​다​ㅡ​

 훗날, 루콘가라는 곳에 정착하게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자신을 구해준 노인은 『야마모토겐류사이 시게쿠니』라는 분으로서 사신들의 최고봉에 있는 분이라고 했다.

 자신이 본 요괴는 호로라는 것으로 영혼을 잡아먹는 존재이며, 또한 그것을 처치하는 것이 사신의 일이라는 것도 들었다.

 그것을 들으며, 강해지자는 내 다짐대로 나는 사신을 목표로 했다.

 ​그​렇​기​에​ 사신이 되는 방법인 영술원에 입학하려 했지만…….

 "너는 재능이 없다."

 ​일​언​지​하​ 거절되었다.

 원인은 한가지다.

 나는 강해질 수 있는 재능 따위는 없었다.

 ​영​압​도​,​ 영력도ㅡ 사신이 되기 위한 『재능』중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대단해야 한단 말인가?

 나 같은 대단찮은 사람은 강해진다는 목표에 도전조차 하지 못한단 말인가?

 ​분​하​다​.​

 이 분함은 자신의 약함을 깨닫게 했던 죽던 날의 그 분함과 동일하다.

 ​분​하​다​.​

 약해서 분하다.

 ​분​하​다​.​

 강해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재능 없음에 분하다.

 억지를 부려 영술원에 들어가려 했지만, 애초에 나랑은 달리 강한 이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단 한 발짝도 영술원의 안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흠씬 두들겨 맞아서 길거리에 내쫓겼다.

 "크… 크큭……."

 구타 탓에 쑤셔오는 몸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로 낮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이 10년 전의 이야기.

 ​강​해​진​다​는​ 희망이 싹트기도 전에 짖밟힌 약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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