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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 노마십가(駑馬十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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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탁양청(激濁揚淸) 8화




 ​술​한​잔​이​ 생각났다.

 ​영​술​원​은​ 기본적으로 기숙사제로 영술원의 외부로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원생의 외출이 허가되는 경우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나, 매년 여름때와 겨울때 실시되는 영술원 보수공사 시기, 그리고 특별히 허가 받을 때 뿐이다.

 ​기​본​적​으​로​,​ 조금은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귀족들의 입학이 많은 영술원이기에 나름대로의 오락시설과 여가를 보낼 만한 시설, 그리고 술마저도 마실 수 있지만, 그곳의 술은ㅡ 귀족이라는 족속들이 마시는 일명 '고급주'는 내 입맛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생각난 술은 탁주(濁酒)였다.

 하지만 귀족들에게는 별로 인기없는 술이었기에 영술원에서는 구하기가 힘들었고, 때문에 간혹ㅡ 특히 오늘과 같이 술이 마시고 싶은 날에는 탁주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할 수 없이 아쉬운 대로 청주(淸酒)를 홀짝이며 나무에 기대어 달을 본다.

 술을 마시며 생각하는 것은 오늘 낮에 있었던 대련.

 비록, 최하위의 박도술에 허무하게 졌지만 억울한 것도 화가나는 것도 없다.

 상대도 나도 가진바 최선을 다해서 대련에 임했고, 그 결과 패한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ㅡ꿀꺽

 ​목​구​멍​을​ 타고흐르는 주향(酒香)을 음미하며 다시금 한잔 더 마신다.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달과 별을 안주삼아, 느껴지는 풀내음을 벗삼아 술을 마신다.

 ​그​래​서​ㅡ​ 이 시간에 찾아오는 방문객이 더더욱 신경쓰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



 저벅

 그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주향과 달빛에 취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술잔을 기울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조용히 다가온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손에 든 것을 흔들었다.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둘이 아까 대련을 했던 『우키타케 쥬시로』와 그의 친구인 『쿄라쿠 슌스이』라는 것을 알아본 그는 조용히 옆으로 몸을 비켜 자리를 내주었다.

 ​슌​스​이​가​ 가져온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 그것을 쥬시로가 가져온 사발에 따른다.

 ​준​비​해​온​ 사발이 3개인 것을 보면, 그들의 의도는 그와 술을 마시고 싶음이 분명했다.

 ​"​…​…​…​…​.​"​

 여전히 말없이 사발을 내미는 슌스이의 행동에 그는 사양하지않고 받았다.

 사발에 담겨있는 것은 희뿌연 술로 방금전까지 그가 마시고 싶어했던 탁주였다.

 이것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에게 내미는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고, 그는 그것을 그대로 한잔 쭉 들이켰다.

 방금 마셨던 청주와는 달리 약간은 고소하고 담백한ㅡ 그리고 익숙한 주향에 미소를 띄운다.

 그의 미소에 쥬시로와 슌스이도 마주보며 씩 웃는다.

 첫째는 셋 모두가 한잔씩 들이켰다.

 둘째도 셋 모두가 한잔씩 들이켰다.

 셋째도 셋 모두가 한잔씩 들이켰다.

 비록 시간을 두고 마시긴 했어도 몇개 가져오지 않은 호리병이 동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셨지만, 그 동안 그들은 아무런 말도ㅡ 심지어 오늘 있었던 대련에 대한 이야기 마저도 하지않고 술을 마셨을 뿐이었다.

 탁주가 떨어지고 사발을 내려놓으며 쥬시로와 슌스이가 아쉬워 할때, 그는 자신의 청주를 둘의 사발에 따랐다.

 자신의 사발에 따라진 청주를 보고, 그를 본다.

 둘의 시선에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잔을 들어 서로를 향한 뒤에 마신다.

 비록 보통의 술자리와는 달리 소란스러움도 안주도 없는 술자리였지만, 셋중 그 누구도 그것이 이상하다던가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자는 신기하게도 방금까지 별 맛없이 마셨던 청주가 맛있어졌음을 깨달았고, 그 원인이 둘이라는 것또한 깨닫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술​자​리​는​ 결국 그가 가져온 청주마저도 다 떨어졌을 때에 끝이 났다.

 결국은 끝날 때 까지, 그리고 끝나고 흩어질 때 까지마저도 셋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헤어질 때는 셋 모두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셋 모두 공통적으로 한가지 생각을 했을 뿐이다.

 ​『​벗​(​友​)​』​

 이라고 말이다.

 검을 잡은지 18년, 영술원에 입학한지 3년째 되던 여름 밤.

 그에게 이렇게 또하나의 소중한 인연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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