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탁양청(激濁揚淸) 10화
그렇기 때문에 무시된다.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서 재능이 있다면 루콘가 출신의 평민들도 들어올수 있게된 영술원이라지만, 영적인 질이 루콘가의 출신자들보다도 우월한 귀족들이 실력이나 여건이나 영술원에 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영술원에서도 최상급인 이곳은 영적인 질에 있어서 최고봉인 5대 귀족은 물론, 고위급 귀족들와 몇몇의 중위나 하위의 귀족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그런 상위 계층만이 들어올 자격을 간신히 갖춘다는 이곳에 루콘가 출신의 사내가ㅡ 그것도 복장은 영술원의 정규 복장이 아닌 자신의 개인복장을 갖추고 있었으며, 외팔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영력이나 영압 등의 실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ㅡ 오히려 하위급 영술원의 문턱조차도 넘어서질 못할 남자가 이 곳에서 당할 취급이란 뻔하다.
통상, 그를 오물 보듯이 경멸해마지않는 이들은 물론이고, 그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괴롭히거나 심할 경우에는 죽일 생각조차 하고있는 학생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던 것은 그남자가 『우노하나 레츠』의 추천을 받고 들어온 『그녀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현재, 13번대의 대장들 중에서도 가장 인망있으며, 경력또한 낮지않고, 권한마저 강한ㅡ그녀의 담당 중에는 『치료』또한 포함이 되었기에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이 많은 고위급 간부들과의 친분이 두텁다ㅡ 그녀가 직접 추천했고, 후원자로 있는 그를 어찌 할 녀석은 없었다.
심지어, 그의 복장과 낮은 실력으로 입학 허가를 했던 것 또한 그녀 때문이었으니, 그러한 강력한 후원자를 가진 그는 신경을 거슬리게하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으나 시비는 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남자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ㅡ무시
그가 말을 걸어온다고해도.
그와 검을 섞는다 해도.
학생들은 물론, 선생들 마저도 그를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해온 것이 3년이었다.
3학년 말.
총대장님의 명령하에 벌어진 대련에서 알게된 두명의 친구.
여자에게 약하고 행동거지는 경박하지만, 사려가 깊고 누구보다 진실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뛰어난 『쿄라쿠 슌스이』.
몸은 약하지만 도량이 넓고 인망이 두터워 늘 모두의 중심에 서 있던 『우키타케 쥬시로』
이 둘은 그의 영술원 생활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식사를 할 때는 물론, 기타 검을 휘두를 때나 다른 행동을 할 때에도 언제나 혼자였던 그의 곁에 두사람이 함께하게 된 것.
그것은 그의 정신을 안정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비록 검밖에 모르는 그였지만,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고독이라는 것은 그를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독이 풀리기 시작했으니, 명경지수를 근간으로 하는 정적의 검을 휘두르는 그에게 있어서 실력의 향상이란 필연이었다.
거기에 선배, 후배, 동기를 다 합쳐서 평가한다 하더라도 순위권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 두명과는 벗이 된 이후로 자주 대련을 하곤 했으니 더 말할것도 없는 것이다.
또한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선배들에게는 인정할만한 후배, 후배들에게는 동경하는 선배, 그리고 동기들에게는 믿을 만한 존재인 두명과 벗이된 그는 곧바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 대한 소문등은 확실히 크게 다른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해서 조금은 일그러지고 변화된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
귀족 출신의 학생들은 그의 단편적인 모습만 가지고 그를 무시하고 혐오 했었기에 『그』에 대해서 잘 알고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라 슌스이와 쥬시로 두명마저도 천타를 구하기 위해서 묘지숲에 가던 와중에 그를 보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러한 학생 무리중에 한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우연이라고는 하나 『그』의 진가를 보았다.
편견이나 소문에 의한 『그』가 아닌,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그』를 알았기에 주저없이 벗이 된 것이다.
거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면서 알게모르게 그의 장점과 단점을 알아차렸고, 개중에 몇은 그를 더욱 싫어하게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몇은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영술원에서도 빛나보이는 두명의 친구.
그 명함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결국 그는 자신의 매력으로 다른 이들을 조금씩 감화 시켰다.
그것은 빠르고 짧게 진행된 것이 아닌, 3학년 말 부터 시작해서 5학년에 이르는 1년 반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차분히 일어났다.
본래 쥬시로나 슌스이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은 물론, 이후 그의 진면목을 깨닫고는 조금씩 호감을 가지게 된 이들이 점점 그들의 주위에 몰리면서, 어느새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 무리를 천박한 자와 같이 어울린다며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와 친구가 된 자들은 그러한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귀족들과는 달리 말투는 고풍스럽지 못하며, 현생에서도 죽은 뒤에도 하층민이기에 배운바가 적다. 재능은 최하에 실력도 없고 그런 주제에 영술원에 입학했다.
그러나ㅡ
◆
"큭!"
다시한번 다리가 꺽일뻔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칠 뿐인 단순한 동작을 한 호로의 손이었지만, 뒤의 후배들을 구하려고 제대로 자세도 잡지 못한채로 정면으로 막아낸 것이 화근이었다.
수년간의 수련으로 왼팔의 근력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외팔이라는 한계와 본디 일반적인 령보다 강한 호로의 일격은 그것을 압도한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검을 비켜들어 힘을 약간이나마 흘리지 못했다면, 막아낼수 없었을 것이다.
ㅡ퍽!
아직도 멍하니 있는 후배를 오른쪽 어깨로 밀쳐내며 나 또한 뒤로 물러난다.
갑자기 끼어든 나를 경계함인지, 호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뜯어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인지 마비상태로 조금씩 떨고있는 팔을 진정시킨다.
이대로 공격을 당한다면 회피 외에는 선택수단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회피해버리면 뒤의 후배들이 공격에 휩쓸릴게 뻔하므로 문제.
하지만 걱정은 없다.
"이봐, 그렇게 한눈팔아도 되는건가?"
나에게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푹! 하고 검에 호로의 몸이 꿰뚫리는 소리는 총 둘.
"괜찮냐?"
어느새 다가온 슌스이와 쥬시로가 호로를 꿰뚫은 것이다.
이 같은 도움을 받으면 언제나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친구의 소중함을 말이다.
언제나 검밖에 몰랐던 내가 여유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고립되었던 나의 등 뒤에 서준 것도 친구였다.
자신의 등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이 이다지도 든든한 것이었나 라고 생각하면, 여태까지 스스로만 강해지겠다고 노력이라는 자기학대에 빠져있었던 자신이 조금은 변화 했음을 느낀다.
"나참, 졸업시험이 전쟁터라니."
"상황은 나빠. 졸업 시험에 참가한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들 전부 합쳐봐야 20명 안팍. 거기에 졸업 시험이 아닌 실습으로 참가한 후배들이 30이니, 우리의 전력은 50명 이하다."
"호로는 대충 물경 100을 해아리는 것 같지만 말이지."
50이라고는 하지만, 첫실습에 임한 후배들은 전력으로 칠 수 없기에 결국 20명 정도가 전력이다.
점점 다가오는 호로들에게서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서 셋이 삼방(三方)의 꼭지점에 서서 후배를 중앙에 놓고 방어진을 펼친다.
그런 그들을 보고 다른 이들이 조금씩 합류해, 전쟁터는 후배를 중심으로 둘러싼 졸업시험생과 그들을 포위한 호로들로 메워졌다.
현세의 전쟁은 이미 끝있었던 데다가 영혼장례마저 끝난 상태였었기에 더이상 영혼이 추가되지는 않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생들조차도 나타나지 않은 상황.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후배들은 생각했다.
그때 슌스이가 말했다.
"어이 친구, 이 상황을 뭐라고 생각해?"
우려와 장난끼가 조금 섞여있는 미소.
그런 그를 보며 쥬시로가 말을 받는다.
"글쎄, 상황 분석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더 확실히 해야겠지?"
쥬시로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본다.
그런 둘의 미소는 물론이고, 알고지내던 몇몇 졸업시험생들과 처음 대면하는 졸업시험생들ㅡ 그리고 후배들을 보면서 그는 나직히 한마디 뱉었다.
"이긴다."
그와 동시에 호로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
이후, 싸움의 양상은 전적으로 영술원생들이 밀렸다.
그러나 "이긴다."라는 외팔의 사내의 말에 사기가 충전한 그들의 분전은 실로 대단했다.
본래, 평범한 하급호로 조차도 벨 수 없을 실력인 자가 호로를 베어넘기는가 하면, 자신의 몸을 사리기보다는 동료와 주위 사람을 위해서 협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여태까지의 사신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라고, 싸움을 함께한 모두는 물론,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나타나 도와준 선생들마저도 그리 생각했다.
슌스이와 쥬시로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평가하기를 무리의 중심에 서있다, 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저 남자의 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카리스마도, 힘도, 영향력도 없다.
그러나 투박하지만 진실된 한마디와 그 말을 번복하지 않고 행하는 곧은 심지는 사람을 끌어들이며 함께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는 전형적인 하층민의 남자였다.
귀족들과는 달리 말투는 고풍스럽지 못하며, 현생에서도 죽은 뒤에도 하층민이기에 배운바가 적다. 재능은 최하에 실력도 없고 그런 주제에 영술원에 입학했다.
그러나ㅡ
말투는 고풍스럽지 못하지만 상대를 배려할 줄 알며, 배운바가 적지만 신의를 안다. 재능도 실력도 최하지만 노력은 최고이고, 영술원에 입학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겸손하며 노력한다.
그것은 일찍이 그를 제자로 들이면서 우노하나가 원했던 것.
부패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범적인 존재 그자체.
그와 인연을 만드는 자들은 변한다.
일찍이 루콘가 출신이라고 하찮게 여겼던 인물을 새롭게 보게되고 사상이 변화한다.
일찍이 재능이 없는 약자라고 무시했던 인물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상이 변화한다.
일찍이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태만했던 자들도 노력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변화한다.
당장, 그와 함께한 이들 중에 실습으로 나온 후배들만 하더라도, 그의 태도에 감화하여 앞으로 영술원에서의 활동은 물론 사신이 되고나서도 곧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현재는 비록 그의 주변의 인물에 한정되겠지만 앞으로 그가 새로운 인연을 맺고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점점 많은 수의 사신과 사신 지망생들이 변화할 것이다.
그래ㅡ 사신은 서서히 변화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제자ㅡ 『그』가 있을 것이다.
"후훗, 정말이지 훌륭한 제자로군요."
웃음기를 띄며 자신의 제자가 건네준 종이를 흐뭇하게 살펴보던 우노하나가 기분좋게 일어섰다.
그녀가 책상에 놓고간 종이.
그곳에는 달필로 단 한마디의 말이 적혀있었다.
『 합 격 』
검을 잡은지 20년이 지난 해.
그는 훌륭히 영술원을 졸업하고 사신이 되었다.
- 2화 격탁양청(激濁揚淸)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