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진비래(興盡悲來) 3화
강해지고 싶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호로들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현세에서의 죽음때부터 추구해왔던 소망이다.
그러나 그것또한 재능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쓰려져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힘을 얻어 이를 악물고 기어서라도 천천히ㅡ 천천히ㅡ 전진해왔다.
그 끝에 있는 것은 강해진 자신.
하지만ㅡ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매일같이 시간이 날때마다 검을 휘둘러왔다.
영력쪽의 재능은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내가 강해질 수단은 기교(검술)뿐.
하지만ㅡ 검술이라는 것은 갈고 닦아도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는 없다.
단지, 처음 우노하나 선생님께 배웠던대로, 베고 찌른다ㅡ 라는 기본 동작을 갈고 닦을 뿐이었기에 이것은 검을 효율적으로 다룰수 있게 될 뿐으로 '강해졌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반면, 나의 친우인 쥬시로와 슌스이는 검술이라는 측면의 강함은 물론, 사신으로서의 강함의 척도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영력의 강함또한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비록, 내 영력이 낮아 그들의 영압을 느낄수는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이미 중급사신과 동급의 힘을 가졌다고 한다.
10년 전, 영술원 졸업시험 때에도 둘은 나를 기다린다며 시험을 치룰수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치루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중급사신이 되는 '입대시험'에도 적용되어 그 둘은 통상의 하급사신이 하급사신이 된 후 4~8년 뒤에 치루는 입대시험마저도 나 때문에 미뤄왔음을 쉽사리 눈치챌수 있다.
그것에 화가 난다.
처음에는 나를 동정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그 둘이 그럴 친구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있기에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에게 화가난다.
그리고 쥬시로와 슌스이의 발목을 붙잡을 뿐인 자신에게 화가난다.
영술원을 졸업해 하급사신이 된지도 10년.
후배였던 영술원생들도 대다수가 중급사신이 되어버리곤 하는 실정이라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뒤쳐졌다.
나는 이 모든것을 감당해야할 이유가 있고 의지가 있고 책임이 있었지만, 나의 친우들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와 같이 뒤쳐져야 하는가!
때문에 언젠가 둘과 같이 술을 마실때 얘기를 꺼낸적이 있었다.
"너희들 먼저 '입대시험'을 봐라. 나때문에 너희들이 낙오되는 것을 난 참지 못하겠다."
조금 술에 취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위와 같은 말 비슷하게 둘에게 꺼냈고ㅡ 슌스이에게 있는 힘껏 얻어맞았다.
불시에 맞은 탓도 있고, 슌스이의 주먹질이 매서웠던 것도 있어서 그대로 얻어맞아 나가 떨어져 바닥에 널부러진 나를 슌스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숨을 거칠게 쉬며 소리쳤다.
"웃기지마 이자식!"
평소 느긋하고 나른한 행동과 표정을 짓곤하던 슌스이였기에 저런 화난 모습은 실로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 놀란 것은 평소라면 이와같은 상황이라면 슌스이를 말렸을 쥬시로마저도 화가난 표정으로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흥분한채로 슌스이가 말했다.
"『낙오』라고? 웃기지마! 누가 뭐라고해도 자네는 낙오자가 아니야! 있는 힘껏 노력하고 노력해오고 있잖아! 낙오라는 것은 그조차 못하는 놈들에게나 써야지!"
처음 그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얼빠지게도 무엇에 화내는지 못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내, 그 둘이 내가 나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표현한것에 화나있음을 깨달았따.
자기혐오.
몇번이고 사건을 격어 그때마다 정신적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해왔던 자신이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라고 맹세했던 그 검은 앙금은 정신적 성장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내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음을 깨닫는다.
스스로 기어서라도 강해지고 말겠다고 맹세했던 그 감정이, 단지 영력이라는 확연히 보이는 강해진 척도가 아닌 기교라는 눈치채지 못하는 미미한 척도에 스스로 불신을 해버려 마모되었다는 것도ㅡ
주변의 친한, 그리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이가 있기에 비교를 하며 자신을 폄하했다는 것도 깨닫는다.
얼얼한 뺨을 만지며 씩씩거리는 둘을 본다.
자신과는 다른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그렇기에 비교가 되고, 질투해버리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게 된다면 어느새인가 나도모르게 둘을 피하고 꺼려해버릴 것이다.
실제로, 영술원을 졸업하고 하급사신이 된 지난 10년간, 해를 거듭할 수록 둘과 만나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서로 맡은바 임무가 다르다는 핑계로, 거기에 자신은 오폐수를 처리하는 것이기에 냄새가 난다는 핑계로, 그 외에도 가지각색의 핑계로 말이다.
그 모든것이 결국 자신의 작은 그릇에 절망하고 둘을 꺼려하게 되어서임을 깨닫는다.
오폐수를 처리하는 임무는 그야말로 하급사신중에도 최하위의 이들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낙오되었다고 여기고 생활하으로, 그것에 나 또한 감화하고 물들어버린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위기에 물들었다라고 자기좋을대로 해석하기보다는ㅡ 나 스스로가 평소 자신을 알게모르게 낙오자로 취급해왔던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왠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서 화내주는 둘이ㅡ 그리고 간혹 휴가를 받아 집에 돌아가면 힘내라고 말해주는 가족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맙다……."
둘에게 붉어진 눈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린다.
"고맙다……."
다시한번 되뇌인다.
고맙습니다.
나를 이렇게 위해주는 친우가 둘이나 있음이.
고맙습니다.
나에게 힘내라고 말해주는 가족이 있음이.
고맙습니다.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고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심이.
그 사건 이후로, 그는 다시는 자신을 낙오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
그곳은 단지 호롱불의 자그마한 불빛이 일렁이는 곳이었다.
그 조그마한 빛에 간신히 윤곽만을 추측할수 있는 두명의 인물.
한명은 자글자글한 주름이 간혹 비추는 것을 보면 노인임이 분명했고, 다른 한명은 피부가 푸른빛을 띄고 있는 젊은 사람이었다.
"앞으로 몇년 안남았네."
노인이 말한다.
그에 젊은이는 작고 낮은음성으로 대답한다.
"지금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물론, 그것은 잘알고 있네만ㅡ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지않은가."
젊은이의 무덤덤하지만 자신감이 배어있는 말에 노인은 껄껄 웃으며 그를 달랜다.
"나는 여태까지 수많은 인간을 보았지만, 그대같은 인간은 실로 처음이다."
"그동안 자네가 봐온 이들과 나를 비교하면 어떠한가?"
노인의 물음에 젊은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탐욕. 그리고 그 탐욕이 가득차도 절대로 표현되지 않는 거대한 그릇을 가졌다."
"껄껄, 그것참 듣기 껄끄러운 말이구려."
남자의 직설적인 표현에 껄끄럽다고 대답한 노인이었으나, 노인에게서는 전혀 그런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몇년 후, 다시 찾아오겠다. 그렇다면 그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물론일세, 자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준비해 놓겠네."
"실로 탐욕스럽군.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앙숙인 우리들 『에스파다』에게 거래를 청해오다니."
나직히 말하는 남자.
호롱빛에 비춘 그의 뺨, 그곳에는 『Diez(10)』라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