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師表) 7화
▷월 초순
[내용 없음]
◆
- 일지가 비어있는 날의 이야기 -
쿄라쿠 슌스이와 우키타케 쥬시로는 대장이다.
호정 13대의 대장이라는 직책은 그저 듣기만 할 경우에는 단순히 높은 직위를 연상하기 쉬울 뿐이지만, 그것은 『만인의 평등하다』는 사상이 대중적인 『현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왕이 있고, 영주가 있으며, 신분사회가 있고, 차별이 심화된 시기인 과거에는 대장이란 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막연한 상상으로서 신분사회라는 것을 조금 순화되거나 거의 느끼지 못하는 대다수의 현재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신분사회가 당연하고 또 현실적이었으며,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콘가 출신의 사람이란 본디 평범한 농민ㅡ 혹은 농노나 화전민에 지나지 않는 사회의 하위 계층이다.
그리고 정령정 내부의 귀족들은 상위 계층이며, 그런 그들마저도 경외하는 것이 바로 사신 중에서도 석관 급이다.
그런 석관급의 정점에 서있는 것이 바로 대장.
과장을 보태자면 공국의 왕이라고 할 수조차 있는 위치며, 조선시대로 치면 영의정급, 서양식으로 치면 공왕 혹은 공작이라 할 수 있는 위치이다.
그런 신분의 격차다.
그와 그의 친구들의 격차는.
영술원 동기생이라는 허울은 그들의 차이가 단순히 귀족과 하층민의 경우일때나 아슬아슬하게 통과였다.
그정도의 신분격차는 셋에게는 그리 큰 격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셋중 위의 신분을 지닌 슌스이나 쥬시로의 경우는 자신들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의 경우는 하층민이면서도 상위계층의 둘에게 아무런 꺼리낌이 없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단지, 그가 비록 방계라고는 하지만 5대귀족이었던 시바 가문의ㅡ 그것도 대장출신의 노인과 가족으로 지내왔었기 때문이며, 또한 현 대장이라는 높은 직급의 여인의 '비공식' 제자라는 점에서 신분의 격차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한순간이었다.
동기라는 같은 선상에 서있던 경우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문제이지만, 그 차이가 석관과 하급사신으로, 그리고 석관과 죄수(구더기 소굴)로, 마지막으로 대장과 하급사신의 자격마저 박탈당한 자ㅡ 라는 차이로 벌어지면,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슌스이와 쥬시로는 여타 귀족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신분격차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며, 친우를 친우로서만 보는 남자들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하층민이라는 신분적 한계.
재능이라는 능력적 한계.
그 모든것이 그를 알게모르게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후, 기적과도 같은 상위 계층과의 끈끈한 가족관계.
기적과도 같은 대장의 비공식적 제자라는 직함.
그리고ㅡ 구더기 소굴에서 깨달은 바와 같이 수많은 사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신분이라는 벽을 넘게 해왔지만, 결국ㅡ
ㅡ재능이라는 능력의 한계는 그의 발목을 붙잡고야 말았다.
친구라는 것은 본디 고하가 없는 법이다.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
비록, 그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으로 친구 사이에 완전한 평등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는 그 동등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한다.
선천적인 측면인 신분도, 후천적인 측면인 능력도 어느것도 동등하지 않다.
그것은 즉, 둘이 아무리 그에게 평등한 대우를 하더라도 그 스스로는 자격지심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대범하지 못하다.
속 좁다.
어리석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친구들은 저리도 자신을 생각해주고 위해주는데, 정작 자신은 스스로 혐오감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으니.
그러나, 신분차별이라는 것의 뿌리는 깊다.
너무 깊고 깊어서ㅡ 차가운 땅속마냥 축축하고 어둡다.
◆
대장님 발언이 있은 후, 몇 일도 되지않아 쿄라쿠 대장과 우키타케 대장이 그를 찾았다.
사실, 몇 일간 이라는 시간도 무척 오래 걸린 것이었으나, 그만큼 슌스이와 쥬시로에게 그의 발언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하급사신에서 번대로 가는 시험을 치루기 전, 그는 자신을 비관했었다.
사실, 쥬시로나 슌스이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저러는 것이 머리로는 '알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ㅡ태어날때부터 위에 서있는 자들의 눈과 아래에 있던 자의 눈은 같지 않다.
그들은 그 총명한 머리로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국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비관이 어떠한 이유인지 알았기에 대응책으로 한방 먹여준 다음 진심을 전했던 것이다.
만약, 이해했었다면ㅡ 그렇다면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않았었을까?
ㅡ진심이라는 것은 전해진다면 확실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면 무용한 것이니까.
그것은 한편으로 쥬시로나 슌스이가 아직은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한번 지껄여봐."
"……업무가 바쁘실텐데 수고스럽게 찾아오실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쿄라쿠 대장님, 우키타케 대장님."
비록, 대장이라는 높은 직함을 가졌고, 태어날때부터 동기나 또래와는 달리 성숙한 면을 지닌 둘이었으나, 그들은 대장이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또래나 동기보다 성숙할 뿐 결국 햇병아리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알고있지만, 아직 미숙하며, 타인을 알고있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이다.
친구의 고민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 것인지 모르고, 진심을 전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ㅡ 그리고 전례에서 성공적으로 사이를 복원시켰던 때와는 현재 상황이 여실하게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기에ㅡ
ㅡ결국 둘은 한치 어긋난 대응을 해버렸다.
마치, 거리를 두는 타인과도 같은 자신의 친우의 태도에 흥분했기 때문도 있다.
최근 업무에 대한 압박과 보람, 그리고 자신감 때문도 있다.
대장이라는 정점에 올랐기에 오만해졌던 점도 있다.
과거, 한방 먹이고 진심을 보였던 적이 있었으며, 그때에 자신의 친우가 확실히 자신들의 의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도 있다.
우키타케 대장님.
쿄라쿠 대장님.
이 말은 둘을 극히 화나게 할 만한 이야기였다.
이는 분명 친구사이이기에 당연히 화를 내는 것.
다만ㅡ
ㅡ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자신의 친우와 자신들의 차이를 '실감(이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타인처럼 대하는 친우의 행동에 화가치밀어 오른 슌스이가 영압을 방출한다.
그것은 화가난 사신이 무의식 중에 발하는 영압.
하지만ㅡ 상대는 영술원생 수준도 간신히 달하는 자다.
강한 압박.
분노에 의해서 무심코 흘리는 영압만으로도 죽음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대장급과 그의 힘의 차이.
처음에는 자존심으로 버텼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오는 순간ㅡ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없었다.
그것에 좌절하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다, 결국 기적과도 같은 만남 덕분에 일어섰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검을 향한 열정과 의지.
그것이ㅡ, 그의 자존심.
때문에 꺽이기 싫었다.
꺽일수 없었다.
단순히 무의식 중에 뿜어질 뿐인 영압에ㅡ 그것도 '친구'라는 존재에게 무릅을 꿇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진바 영력을 모두 사용해서 버텼다.
그러나 영력은 무한할지라도 영압은 수준이 낮아, 단순히 버티는 시간을 끌어줄 뿐으로 압박은 계속된다.
내장이 상했는가? 울컥하고 피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을 억지로 삼키며 태연한척 가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헛수고다.
견디기 위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영력을 돌려 막는 그의 모습도 슌스이에게는 그저 침묵을 할 뿐인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과 친우의 힘의 차이를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으며, 또한 처음의 만남때 자신이 느낀 강렬한 의지만을 친우의 모습으로 여겼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슌스이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그의 악다물어진 입가로 피가 새어나왔다.
넘어오는 토혈을 다 수습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 핏줄기를 보며 깨달은 쥬시로가 그의 앞에 서며 슌스이의 영압을 차단했으나, 그것은 마지막 남은 그의 자존심을 깨버리는 행위였었다.
"…………흐흐."
무의식에 발한 영압에 눌려 죽음에 이르를 뻔했다.
그리고 그 영압은 결국 다른 친우가 나서서 '자신을 보호하며' 막아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여화침입 날의 밤.
시해를 사용하며 여화를 베재하던 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 자신이 눈물을 흘렸던 것은ㅡ 어쩌면 오늘을 예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신분차, 힘의 차.
능력차, 재능차.
어떤 말을 붙여도 좋다.
확실한 것은 자신은 더이상 저들과 친우사이가 될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것 뿐이다.
"흐흐… 흐흐흐흐흐……."
그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자신을 지탱해주던 것들이 모두 환상임을 알게된 남자의 웃음은 섬뜩했다.
허리에 차고있던 천타를 뽑아 바닥에 선을 긋는다.
그것은 벽을 의미.
"흐흐흐… 울컥."
토혈을 한다.
바닥에 질퍽하게 퍼지는 핏물과 혈향.
그가 눈을 감는다.
그것을 우키타케 대장과 쿄라쿠 대장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이미, 셋의 사이는ㅡ 더이상 벌어질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쿄라쿠 대장님, 우키타케 대장님."
비틀비틀.
그가 넘어질 듯한 걸음거리로 숙소로 돌아간다.
그 뒷모습을 아연히 보던 둘이 손을 뻗어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하였으나, 이내 그 손은 힘없이 내려갔다.
그래, 이제야 비로소 둘은 '이해한 것'이다.
◆
실험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의도한대로 셋의 사이는 급격히 틀어진 것이다.
완전최면을 이용한 상황에 대한 환상과 인식.
단순히, 무의식 중의 영압이 매우 거대하게 느끼게 한 것 만으로도. 그의 정신은 무너졌다.
아무리 대장급이라지만 무의식 중에 새어나오는 영압으로는 사신을 상하게 할 수없다.
영압만으로 상하게 하려면 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집중했을 때 뿐인 것이다.
그것을 자신은 이 "경화수월"로 매우 굉장한 압력으로 느끼게하여 힘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반대로, 대장 둘에게는 다른 종류의 최면을 사용하여 그의 태도가 얼마나 단호하며 이 이상 셋의 사이는 붙을수 없음을 은연중에 시사하도록 하였다.
결과는 성공적.
셋의 사이는 확실히 깨졌다.
정확히는 둘과 한명이겠지만.
이로서 시험의 첫단계는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시험을 행해볼까?
『정신력이 강한 사람의 정신이 무너지는데 걸리는 시간과 요소들』에 대한 시험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