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창파(萬頃蒼波) 1화
꿈을 꾼다.
지나가는 것은 환상.
과거의 이야기.
스쳐가는 것은 인연.
현재의 이야기.
노래하는 것은 운명
미래의 이야기.
◆
그녀, 우노하나 레츠는 어렵풋하게나마 눈치채고 있었다.
무언가, 알게모르게 어떠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그녀의 제자에 대한 중앙46실의 판결은 명백히 이상했다.
멀쩡히 있던 자를 사신의 자리에서 내쫒은걸로도 모자라, 특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판결이라니.
이미 내려진 판결이었기에 번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상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사신들ㅡ 그것도 대장과 부대장급의 사신들이 호로화한 사건.
이 사건의 원흉을 우리하라 키스케라 지목되었다지만, 우노하나의 눈으로 봤을 때에는 중앙46실 쪽이 훨씬 더 의심스러웠다.
어째서 그들은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정확히 그의 행동반경을 제한 해놓았던 것일까?
단순한 우연?
어째서 그들은 호로화라는 큰 문제를 이리도 속전속결로 빠르게 처리했나?
우리하라 키스케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명백했기에?
이상했다.
무언가, 거대한 무언가가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녀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호로화가 진행된 전 대장 부대장들은 추살명령이 내려져 도주했다.
그 속에는 심장 부근에 상처가 나있어서 빈사 상태였던 시바 시즈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그 지역에 산책중이던 그가 호로화한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는데, 과연 그럴수 있었을까?
그를 깍아내리는 발언이겠지만, 그는 시즈카를 찌를 실력이 안된다.
거기에 호로가 그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그가 찔렀을까?
석연치 않다.
무언가가 걸린다.
때문에, 『시바 시즈카를 죽이고자 검을 찔러넣었으나, 호로의 힘으로 회복한 시바 시즈카 전 부대장에게 살해당한』그의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그를 찾았다.
루콘가 어느 한 호수의 구석에 몸을 쭈그리고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비록 흙먼지와 점액등으로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으나 그녀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괜찮아요?"
"으흐헤?"
자신의 물음에 대답해오는 그.
그 대답과 태도를 본 순간 미쳐버렸음을 깨닫는다.
4번대에 있으며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고, 그 중에는 정신적 질환을 앓는 환자도 있었다.
그의 증세는 바로 그 중 미친 환자의 반응이었다.
실성한 듯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
그런 그가 원하는 것이 검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인근 마을과 땅을 수색하여 그의 검을 찾아냈다.
검을 돌려받으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조사한 뒤, 자신이 검의 주인이라 말한 남자와 그 마을 사람들에게 살기를 내뿜고 온 그녀는 마을에서와는 천지 차이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검을 돌려받은 그가 웃었다.
그것은 미친사람의 미소와 같이 얼빠지고 실없는 미소였지만, 그 안에서도 그의 과거 웃음을 눈치챈 우노하나 또한 빙그래 웃었다.
◆
"……살아 있었습니까?"
그가 살아있어요.
우노하나의 말에 카이엔이 물었다.
"예, 살아있어요. 단지 그가 살아있음이 알려지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루콘가의 한 지역에 잘 숨겨두고 있지요."
"지금 당장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죠.
빙그레 웃으며 우노하나가 대답했다.
그녀는 기뻤다.
자신의 제자가 비록 미쳐있다고는 하더라도 살아있다는 것이ㅡ
그리고 그런 제자의 생존을 이토록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ㅡ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것이ㅡ
너무나도 기뻤다.
조금더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노하나는 나직히 말했다.
"쿄라쿠 대장님과 우키타케 대장님도 같이 가심이 어떤지요?"
그녀의 말에 밖에서 몰래 엿듣던 둘이 잠시 침묵했다 대답한다.
"……우리가 가도 되겠습니까?"
"안될건 뭐가 있지요?"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없습니다. 지금 당장 그를 만나러 가죠."
그녀의 말에 휘둘리며 둘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에게 향했다.
시바 가문의 아이들과 두 대장, 그리고 우노하나 레츠.
그들은 그렇게 그가 숨겨진 한 모옥을 방문했다.
"으헤헤헤헤헤?"
그를 처음 본 순간, 선머슴같다고 자주 불리던 루콘가의 "누님"인 시바 쿠우가쿠가 눈물을 흘렸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카이엔은 격분을 하며 흉흉한 기세를 뿜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간쥬는 시즈카를 떠올렸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쿄라쿠와 우키타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치광이.
정신병자.
어느것도 친구와는 형과는 오빠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모진 시련 끝에 마음이 부서져버렸던 것이다.
쿄라쿠를 비롯한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래도 말했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미치광이여도.
마음이 무너졌어도.
네가 살아있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