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黑) 2화
바라간의 성, 라스 노체스는 금방 발견했다.
자신이 왕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바라간의 성격대로, 그 성은 웨코문드의 한가운데에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라스 노체스의 주변에는 아쥬카스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좀 더 강한 존재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 존재를 느낀 우르키오라가 터벅터벅 라스 노체스 안으로 들어가려했으나, 당연하게도 문지기의 역할을 하고 있던 아쥬카스들의 제지를 받는다.
"너는 누구냐?"
보통이라면, 험한 욕설과 함께 제지했을 아쥬카스 들이다.
그러나 이 불청객은 아란칼이다.
비록 바스트로데 급의 호로는 아닌것 같았지만, 최소한 아쥬카스 급의 호로가 아란칼화 한 것이 틀림없다.
그 증거로 불청객의 외형은 비록 완전한 인간의 형태는 아니었으나, 인간형에 가까웠다.
그 이야기는 최소한 이 불청객은 일반 아쥬카스보다 조금 더 강하다는 이야기다.
숫자는 문지기들 쪽이 더 우세하기에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 경우 제일 가까이에 있는 말을 꺼낸 자신이 죽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평소랑은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문지기 아쥬카스들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볍게 올라간 우르키오라의 팔.
그리고 그 손에서 딱 하고 소리가 난다 싶은 순간, 십수명의 아쥬카스들의 머리가 일제히 폭발한 것이다.
◆
침입자가 나타났다.
바라간이 이만한 힘과 권력을 얻은 뒤로 수십년 만에 듣는 내용이었다.
라스 노체스가 완성되기 전, 바라간이 이만큼의 확고한 지위를 가지기까지, 그는 수많은 호로들의 도전을 받았고 죽여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라스 노체스를 완성하고 이 지위에 오르며, 더이상 그를 적대하는 무리는 존재치 않게 되었다.
있다면 다른 바스트로데 들이나 에스파다 일원들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 였기에 바라간에게 쳐들어온다던가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라간에게 침입 사실이 알려지는 최소한의 조건은 입구에 존재하는 십수명의 아쥬카스들이 뚫리고 나서 부터이다.
즉, 라스 노체스 내부에 진입하고 나서부터.
비록 쓰레기지만 자신의 수하인 문지기들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을리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침입했다는 것은 그들이 모조리 몰살 당했다는 이야기며, 그것은 어설픈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과연ㅡ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침입자는 제지하는 수하들의 비명을 배경삼아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 바라간의 옥좌가 있는 알현실에 들이닥쳤다.
"……귀찮군."
수십년 만의 침입자를 맞이했으나, 우르키오라에 대한 바라간의 감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란칼이라는 점은 확실히 괜찮게 쳐줄만 하지만, 바라간의 수하 중에는 수백의 아란칼과 심지어 에스파다 마저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쥬카스 출신의 아란칼은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 귀찮다는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바라간의 수하들에게 있어서는 우르키오라를 처리하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졌다.
난폭한 울음소리를 내며 알현실에 존재하던 아쥬카스 들과 아란칼들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달려들던 호로들은 물론, 바라간마저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알현실에는 아쥬카스 출신의 아란칼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침입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무척이나 고요하여 별로 강한 느낌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운이 좋아봐야 몇 초, 그것이 그들이 예상한 침입자의 생존 시간이었다.
하지만ㅡ
"……쓸데없군."
들어진 침입자의 손은 그 예상을 손쉽게 뒤엎었다.
바라간을 향하듯 전방으로 내밀어진 손의 손가락이 가볍게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쉽게 말해서 손가락 튕기기라는 동장을 사용한 순간이었다.
퍽! 퍽!
별로 큰 소리도 아니었다.
단지 가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고 여긴 그 순간, 우르키오라를 공격하려던 호로들의 머리가 일제히 터져나간 것이다.
아란칼화한 강한 호로들은 큰 타격을 입었는지 비틀거리며 물러났을 뿐이지만, 아란칼화 하지 못한 일반 아쥬카스들은 즉사.
그러나 그 수법이 너무도 은밀해서 무엇인지 살아남은 아란칼들은 깨닫지 못했다.
눈치를 챈 것은 오로지 바라간 뿐.
나가떨어진 호로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바라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바라(虛彈 Bala)인가."
바라, 아란칼화한 메노스들이 사용하는 영압을 담은 공격용 섬광이다.
메노스 들이 사용하는 세로(虛閃 Cero)에 비하여 그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속도는 약 20배에 달하는 『견제용 기술』이다.
그 특성상 분명하게 복수의 탄환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비록 견제용이라 위력은 적고 속도가 빠르다지만 그렇다고 약한 공격은 아니다.
하지만, 침입자(우르키오라)가 쓰는 바라는 어떠한가!
단 한번의 손동작이었다.
그런데 그 단 한번의 동작의 결과는 수십발의 바라가 되었고, 그 위력은 평범한 바라와는 달리 『아쥬카스』들의 머리를 일격에 깨부수는 정도인 것이다.
이는 그들의 『상식』에서는 이해하지 못 할 현상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바라나 세로나 모두 영압을 압축하여 사용하는 기술이다.
즉, 영압의 양에 따라서 그 위력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디에즈를 비롯한 수많은 아란칼들과 사신 대장들을 먹었던 우르키오라의 영압은?
미처 다 흡수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도 그 영력만은 『웨코문드 내의 어떠한 호로보다도 배는 높다』라는 것이다.
그의 바라는 다른 메노스의 세로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그의 견제용 공격은 결국 다른 메노스들의 필살 일격에 준한다는 이야기.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은 여전히 데미지를 간신히 삭히고있는 아란칼들이 아닌 바라간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고 처음의 『귀찮다』라는 생각을 철회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조금 성가시군."
그렇게 천천히, 바라간은 그 옥체를 옥좌에서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