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黑) 8화
"어째서 내가 도주해야하는가?"
라스노체스 궁의 천정을 뚫고 도주한 우르키오라는 담담하게 물었다.
실로 무감각.
담담하다 못해 무감정하기 까지한 우르키오라는 자신이 도주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이나 분노따위를 느끼기 보다는 순수한 의미로 그 답을 요구했다.
그런 우르키오라의 질문에 자신을 하야나기라 소개한 남자가 대답했다.
"당연히 승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승산이 없었다?"
"이제 막 아란칼로 각성한 당신은 이미 수백년을 아란칼로 존재해온 바라간을 이길수 없습니다. 만약 한다면 그에게 치명상을 주고 죽는게 전부겠지요."
하야나기의 말에 우르키오라는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우르키오라의 강함은 진짜다.
수명의 대장급 사신을 먹어치우고, 이후 계속해서 영력을 키워오며, 이제는 압도적이기까지 한 영력을 지니게된 우르키오라.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영력 뿐이다.
그의 원래 몸은 영력을 제외한 나머지만 있었을 뿐이고, 지금의 우르키오라는 오로지 영력 외에는 없다.
이 아이러니에 하야나기는 무심코 웃어버렸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우르키오라가 강해지는 것이이게 말을 이었다.
"영력이라는 것은 다른 모든 힘을 누를만한 거대한 폭력이긴 하지만, 우르키오라 당신의 영력 운용 방식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입니다. 같은 양의 영력을 때려박는다면 패배하는 것은 당신이고, 타인의 배가 되는 영력을 운용하더라도 질 가능성은 생깁니다."
"그렇군."
그 담담한 진실에 우르키오라는 담담하게 수긍했다.
그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바라간과의 전투에서 자신이 배나되는 영력을 사용했음에도 동수였다는 점을 말이다.
그것이 영력 운용의 비효율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납득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르키오라, 당신이 지금 해야할 일은 영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하야나기 카이쥰의 지식이 남아 있다면 그 효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원래의 몸인 하야나기 카이쥰은 부족한 영력을 효율성으로 메웠었다.
100의 힘과 부딪힐때도 하야나기 카이쥰은 10의 힘으로 그것을 막았으며, 반대로 상대를 10의 힘으로 100의 힘을 뚫고 베기도 했었다.
그것은 영력을 극도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기도하며, 그 신체를 극도로 효육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영력이나 신체의 뛰어남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건 중에 하나일 뿐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신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이다.
이러한 하야나기의 설명에 우르키오라는 완전하게 납득했다.
우르키오라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도 자존심도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젠 소스케가 명령한 웨코문드의 점령.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이용하고 받아들인다.
때문에 우르키오라는 바라간에게서 도주했다는 것도 하야나기라는 정체 불명의 인격에 대한것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하야나기라는 인격에게 효율성에 대한 방법을 배워 바라간을 배제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럼,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그러한 우르키오라의 태도에 하야나기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우르키오라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가지.
신체의 원본인 하야나기 카이쥰 처럼 영력등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이었다.
무르씨엘라고를 얻음에 따라 신체와 영력의 질이나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우르키오라였고, 한계강도라는 것이 깨진 아란칼이었기에 성장하는 속도는 가히 천재라는 수준을 넘어섰다.
영력을 다루는 법은 처음에는 신체에 영력을 씌우는 것부터 시작해, 바라나 세로 같은 영력방출에 대한 훈련을 행했으며, 신체를 다루는 법은 일반 상태와 레스렉시온 해방상태 이렇게 둘로 나눠 단련했다.
신체의 강도를 강화하는 근력 운동등은 우르키오라에게 무의미 했기에 순수하게 신체를 다루는 법과 영력을 다루는 법을 중점적으로 했으며, 그에 따른 전략이나 전술을 익히고 일부러 호로들을 찾아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르키오라의 능력이 너무 강한 탓에 왠만한 호로들은 단순한 바라만으로도 죽어버리는 탓에 최대한 안죽이는 방향ㅡ 이른바 힘을 조절하는 법에 대해서 경험을 쌓았다.
그 행위가 수년.
현재로서도 바라간과 붙어볼만하다고 여기는 우르키오라와 하야나기였으나, 목표로 했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계속되는 수련만이 그들의 일과였다.
그런 우르키오라에게 하야나기가 말했다.
"어차피 웨코문드를 점령하는 것이 목표라면, 세력을 가져보시는게 어떻습니까?"
그 제안에 우르키오라는 잠시 생각을 한 뒤, 동의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르키오라는 웨코문드 전역을 떠돌며 재능이 있는 호로를 수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