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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층의 창문에서 쏱아지는 햇살에 먼지가 반짝였다. 마치 필름영화로 촬영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모름지기 이런 분위기의 도서관에 들어가면 심신이 치유되는 기분을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오는 도서관의 모습은 공포영화 세트장가 다를바 없었다. 그가 도서관에 오는 것은 거의 5년 만인것 같았다. 어쩌면 6년일 지도 모른다. 명색이 글쟁이라지만, 그는 그리 책과 친하지 않았다.
그가 읽은 대부분의 책은 고등학교 시절 특히 3학년 시절에 읽은 것들이었다. 그의 서적 데이터베이스는 고3에서 멈춘것이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고, 그 뒤로 그는 의도적으로 책을 멀리했다.
그랬던 그가 몸소 도서관에 찾아온 것이다. 도서관 책꽃이의 나무 냄새가 그의 가슴을 죄어왔다. 도서관 깊숙히 들어서자 거대한 책꽃이가 그를 덮칠듯 둘러쌌다 .
거봐 나를 떠나가더니, 꼴좋다.
네가 날 버리고 잘 될 줄 알았니?
책등이 보이도록 가지런하게 꽃혀진 책들이 그를 비웃었다. 비웃음은 점점심해져 이제 욕지꺼리까지 하며 그를 위협하기 까지 했다. 고3때 이후 갖게된 '책 공포증'의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목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당장 도서관에서 뛰쳐나가 싶었지만 겨우 충동을 억눌렀다. 그만큼 지금 그의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서관에 오기전 아침에 원고를 안고 회사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마감을 앞두고 편집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건물 3층에 있는 사무실은 엘레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올라가야했다. 벌써 이 계단을 수십번도 더 올라갔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눈에는 시커먼 가죽으로 된 사장님 의자의 등받이가 보였다. 뒤돌아 앉아있어 편집장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의자위로 올라오는 담배연기가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뒤돌아 앉은 편집장은 창문 밖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닌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는 안개가 잔뜩껴서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저 의자 등밭이 너머의 편집장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편집장님 저 왔습니다.
으음, 하는 가슴깊숙히 나오는 신음과 함께 의자가 천천히 돌아갔다.
-오늘따라 쓸데없이 일찍도 왔구만.
훤한 이마에 주름이 잡힌 자국이 있었다. 아마 뒤돌아 있을때 골똘히 생각에 잠겼었던 것 같다.
-어제 좀 일찍 작업이 끝났거든요. 원고 여기 있습니다.
그는 품속에 안고 있던 서류 봉투를 편집장에게 건냈다.
편집장은 아무말없이 그의 눈을 몇초간 바라보고서 천천히 봉투를 받았다.
-이제 다음 권이면 완결이 날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오늘은 다음 제 신작에 대해 좀 말씀드리려구요.
-이봐 3류. 완결이니 신작이니 하는 말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입에 담는건가?
3류는 편집장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편집장의 독설에는 이미 이골이 난 그였다. 넉살 좋게 웃으며
-제가 건방졌습니다. 신작이야기는 제가 주제 넘었지요. 이번 작품만 봐주세요.
-이봐, 자네 작품은 지난번 걸로 끝이라네.
- 편집장님 미천한 저를 위해 충격요법을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3류가 되겠습니다.
-난 자네에게 농담한게 아니야. 자네 소설의 완결까지 같이 가지 못해주어서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하네. 하지만 어쩌겠나. 인기가 없는걸.
자신의 소설이 인기가 없다는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 지금껏 인기가 꾸준히 없었지만, 편집장은 계속 그의 소설을 출판 시켜주었다. 그 내막에는 출판사의 부실한 발매리스트를 채우기 위한 편집장의 고뇌가 있었다. 이 작은 출판사에서 발매하는 작품은 3류의 작품을 포함해 3작품 이었다. 3류의 책을 제외한 2개의 작품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꽤나 컬트적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2작품 모두 작가의 잠수로 연재중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편집장은 2작품이 연재중지로 묻히는 걸 막기위해 급히 새작가를 모집했고, 그것이 3류였다. 출판사는 3류의 소설을 연재중지된 두 작품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책 마지막장에 수려한 표지 일러스트와 함께 그 밑에 '출시임박' '작가귀환' 같은 말로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떡밥을 던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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