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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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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철 2화 사냥 준비


느릿느릿 서울 시내를 기어온 연두색의 폭스바겐 뉴 비틀은 작은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커다란 오컬트 까페 앞에서 멈춰섰다. 앨리스가 새카만 콜벳 쿠페 옆에 비틀을 세우자, 이언은 안전벨트를 풀고 시트를 바로 세우며 혀를 내둘렀다.

"아니, 교통이 뭐 이리 혼잡해? 뉴욕 저리가라인데 이건"

"땅은 좁고 인구밀도는 높으니 당연하잖아. 짐은 안에서 확인할 거지?"

"그래야겠지... 이게 협회 한국 지부야?"

"쉿, 여긴 일반영업도 한다고"

앨리스는 입술에 살짝 검지를 대며 주의를 주더니, 이언이 눕혀놓은 자석을 젖히고는 길쭉한 악기함을 꺼내 이언에게 건네주었다. 이언은 매우 익숙한 것을 받아들듯 능숙하게 함을 둘러매고는 까페를 훑어보았다. 앞에 전시된 커다란 황동 피라밋 등 상당히 마니악한 오컬트 풍으로 꾸며진 까페는 고풍스럽게 쓰여진 '아르쥬나' 라는 간판 아래 영업중이었다.

"한국 에이전트, 꽤 센스있는 사람인가보네"

"그런 편이지... 들어가자"

까페 내부는 오컬틱한 소품들 때문인지 다소 우중층했지만, 아무래도 일반 영업을 겸하고 있어서인지 그런 동시에 이국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살짝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까페 안에는 아직도 몇몇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앨리스는 자주 와본 듯 무신경하게 테이블과 의자들 사이를 빠져나가 카운터로 다가갔다. 그녀는 이언이 걸어가며 슈트케이스와 악기함으로 의자들을 툭툭 건들어대는 소음에 눈썹을 찌푸렸지만, 그 소리에 커피를 내리던 오너가 뒤돌아보았기에 핀잔을 줄 새를 놓쳐버렸다.

"어서 와. 어머, 네가 남자를 데리고 오다니 별일이네"

"...친구에요"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윤기가 흐르는 새카만 머릿결과 까만 눈동자, 그리고 이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인상적인 오너는 앨리스와 꽤 친분이 있는 듯 싱긋 웃으며 농을 붙였다. 두 아가씨들의 만담을 듣던 이언은 목청을 가다듬더니, 냅다 쏘아붙이려는 앨리스를 비집고 나서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크흠, 반갑습니다. 이언 틸러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김성희라고 부르세요 틸러 씨"

"이언이라고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

"그래요? 그럼 난 성희 누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할까?"

"..예?"

"농담이에요. 그럼 앨리스, 이언. 올라갈까? 진혜야! 잠시 카운터좀 부탁할게"

밝게 웃으며 이언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김성희는 퇴근 채비를 하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카운터를 맡기고는 둘을 2층으로 안내했다. 김성희가 주거하는 곳인 듯한 2층은 카페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세련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아무래도 응접실 같은 곳의 탁자에 앉으며, 이언은 한층 진지해진 얼굴로 다시금 인사를 건넸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리죠, 그랑 메이거스 김성희. 이언 틸러입니다. 한국에 머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만나서 반가워요 ​리​터​너​(​R​e​t​u​r​n​e​r​)​ 이언 틸러. 요즘 일손이 많이 부족하니 당신 정도의 헌터라면 대환영이죠. 아, 편하게 부르라고 했던가?"

"편하게 부르세요 언니. 그렇잖으면 제가 불편해요"

앨리스의 장난스런 너스레에, 김성희도 잠깐 이언의 눈치를 살피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게. 이언, 한국에서 쓸 아지트는 주문한 대로 브로커에게 의뢰했어. 여기 명함이랑 견적서"

"흠, 이 정도 시설이면 활동하기엔 충분하군요"

"앨리스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문제 없을 거야"

이언은 김성희가 건네주는 명함과 서류를 받아들었다.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던 그는 명함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네스 양? 그가 한국에 들어왔습니까?"

"응. 잠깐 들어온 게 아니라 아예 자리잡으려는 것 같아"

앨리스의 설명에 이언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서류를 접어 슈트케이스에 집어넣었다.

"그가 브로커라면 믿을 수 있겠군요. 대금은 확실히 지불했으니까"

"잘 아는 모양이네..?"

"잘 알지. 싱가폴에 있을 때 고정 거래처였으니까"

"어쩐지, 선선히 좋은 조건에 내 주더라니"

"자자, 딜러는 앨리스가 소개해 줄 거니? 그럼... 남은 건 비약과 탄환이지?"

"예. 통상탄이라면 몰라도 은탄환이나 셀룰러는 평범한 브로커들에게선 못 구하죠. 나토 표준으로 각각 최소 천 발씩은 필요합니다"

"비약은 상관없지만... 탄종은 여분이 없어. 어쩌지? 성공회 쪽에 지금 주문한다 해도 적어도 한 달은 걸릴 텐데..."

끼익-

이언의 탄약 주문에 김성희는 난색을 띄우며 말끝을 흐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언이 고심하며 턱을 긁적이고 있을 때, 나무문이 삐걱대는 소리에 모두가 돌아보았다. 2층 한켠의 열린 방문에서 나온 사람은 방금 잠에서 깬 것인지 헝클어진 은발을 정리하며 썩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는 눈으로 스누피 잠옷을 정돈하며 말했다.

"내 여유분을 좀 나눠줄 테니 급한 대로 가져다 써라, 애송이"

"....허, 신부님? 콜벳이 있길래 혹시나 했더니... 들어와 있었어요? 거기다 거점이 여기?"

"친한 척 굴지 마라. 짜증나니까"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작살내기 전에 다물어라. 질긴 놈"

"실비, 당신도 나가기 전에 한 잔 할래요?"

"...실비라고 부르는 건 그만둬주지 않겠나"

김성희의 애칭에 은발의 파문신부, 실베스테르가 머쓱하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자 이언은 혀를 짧게 빼물며 말을 삼켰고, 앨리스는 숨죽여 쿡쿡거렸고, 김성희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포트로 다가갔다. 잠시 후, 그들 사이에 커피향이 퍼지자 불만스러워 보이던 실베스테르 신부의 분위기도 다소 누그러졌다.

"그래, 또 뭘 줏어먹으려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왔냐"

"아일랜드 아스테이트가 본거지에서 기어나왔으니 썰어 줘야죠. 운 좋으면 뒷발로 거목 하나 찍을지도 모르고"

"꿈 꾸다 흡혈귀가 되면 확실히 죽여주지. 네놈같이 질긴 놈이 흡혈귀가 되면 귀찮아"

"될 생각 없으니 꿈 깨십쇼"

이언은 들으면 자못 살벌한 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으며 악기함을 열었다. 끽끽거리는 지퍼 소리와 함께 평범한 싸구려 기타 케이스처럼 생긴 함을 열자, 안에는 척 봐도 수제라는 걸 알 수 있는 간결하고 괴상한 총 비슷한 무언가와 기하학적인 도식이 덕지덕지 붙은 검집에 얌전히 납도된 검이 뉘여 있었다. 이언은 가만히 힐트를 쥐었다. 검의 기능적인 철빛 손잡이에는 덫칠해 그린 듯한 듯한 도식이 덮여 있어 그 단순한 미학을 해치고 있었다. 그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살며시 칼날을 약간 드러내 확인하고는 다시금 갈무리했다. 살벌하게 으르렁대던 대화의 맥이 끊기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앨리스가 운을 떼었다.

"아 참. 이언, 조수 한 명 필요하지 않아? 아니, 조수 한 명 맡길게"

"조수?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데..."

"아아, 그 이야기니? 그거 조수보다는 견습이 맞지 않아?"

김성희가 미리 들은 말이라도 있었는지 빙긋 웃으며 자기 견해를 입에 올리자, 그녀의 의견을 들은 이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떫은 표정으로 앨리스에게 투덜거렸다.

"..야. 나 바빠"

"짐덩이 떠맡기는 건 아냐. 아크메이지 밑에서 기초 견습 과정은 전부 이수한 마법사라면 제법 도움될 걸?"

"흠? 아니 그건 그렇지만. 내가 아니라 전업 마법사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텐데?"

"그야... 마법사로써의 수업이 필요한 게 아니라 헌터로써의 수업이 필요하니까"

"..그거라면 나 말고도 맡길 사람은 많잖아?"

"그 쪽 적성도 살리면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아. 그리고...그런 것보다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니 고맙긴 한데 그래도 좀..."

"내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야"

이언은 내키지 않는 듯 몸을 뒤로 빼며 짧게 혀를 찼다. 김성희는 그런 이언의 눈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앨리스의 어깨를 짚고 끌어당기더니 이언에게 제안했다.

"확실히 도움은 될 거야. 그리고, 만약 수락한다면 VIP로 대우해 줄게. 어떻게 할래?"

"손해야 아닌 것 같지만 왜들 그리.."

"나와도 관계없는 일은 아니니까"

김성희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언은 여전히 탐탁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입가를 찡그렸지만 결국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쩝. 뭐- 맡도록 하죠. 그럼, 아지트도 봐야 하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럼 저도.. 커피 잘 마셨어요 언니"

불만스런 얼굴로 아르쥬나를 나선 이언은 뉴 비틀의 조수석에 몸을 던지며 투덜거렸지만 이내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주제를 옮겼다. 앨리스는 운전대를 잡고서도 그에 일일히 답해주며 어둑어둑한 도시 속으로 비틀을 몰아갔다...
서울에서 끌고다닐만한 숏바디 지프차는 뭐가 있을까요?

차가 말썽이네요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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