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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의 철직(綴織)


3화. 뫼비우스의 매듭2 - 실타래를 감은 자


부우웅...

달리는 차량 속에서 하바네는 포박이 풀린 손목을 매만지며 운전석의 남자를 쏘아보았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건가?」

「설마. 나는 그저 추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이런 초과학적인 물건 같은 예지력은 없어. 물론 내 동물적인 감각은 종종 그걸 뛰어넘을 정도지만.」

​「​어​.​.​.​그​러​냐​.​.​.​하​지​만​ 라케시스에 손을 댔기 때문에 안도장이 습격을 받은 것 아닌가? 그리고 안도 씨는...」

「그런 거라면 라케시스를 유용하기 시작한 그놈들에게 잘못을 돌려야겠지. 아니, 그 이전에...」

후우...

신라는 중간에 말을 끊고는 한숨을 쉬더니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능숙하게 한손으로 불을 붙였다.

「이런 정신 나간 무.기.를 뿌려댄 녀석부터가 잘못이라고 생각해야지.」

「...」

「어쨌든 우리는 유에를 찾아내서 이 동네를 벗어난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끼이이...

대로변과 안도장 사이의 작은 사거리 중간에서, 신라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좌석 아래쪽에서 검은색의 투박한 가방을 집어 들고, 소설 속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가 쓰는 예의 탐정 모자를 눌러쓰고는 「이래 뵈도 이거 메이커다. 멋지지 않냐?」 라는 뜬금없는 멘트를 날리고는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한 채로 차에서 내렸다.

...역시 이 녀석은 중2병이다, 라고 하바네는 결론지었다.

「라케시스로 유에가 오는 방향을 추적할 거야?」

「아니, 자꾸 그랬다간 놈들한테 덜미를 잡히지. 아직 녀석들은 라케시스의 소지자가 누구인지도 아마 잘못 판단하고 있을 테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하바네는 신라를 돌아보았다. 이제까지의 라케시스에 나타난 기록은 전부 보안부가 자신들을 공격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녀석들은 멤버들이 라케시스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

「예를 들어서 내 경우에는 사무실에 요원이 침입해서 수색작업 및 신병 구속을 벌인다고 되어 있었어. 아마 하바네로, 네 녀석도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별 차이는 없겠지. 하지만 중간에 모든 구속관련 정보가 사라지고 나타난 안도장 습격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특수병력을 동원해서 제거를 시도하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라케시스가 외부로 유출된 경우에 보안부에서 내리는 조치는 연행이 아니라 즉결처분이랑 호적말소다. 그러니까 네가 하던 짓은 어떻게 보면 제 무덤을 열심히 파고 있었던 거라고.」

「......」

「그러니까 네가 안도장에서 그걸 사용한 게 보안부에 인지된 시점에서부터 녀석들은 우리가 그걸 빼냈다는 생각은 없어. 단순히 라케시스가 자신들 이외의 누군가에게 사용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장소가 안도장이라는 것만 확인했기 때문에 짚이는 사람을 습격한 것뿐이지...그 외에도 이 상황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고 ​있​지​만​.​」 ​

짚이는 사람이란 안도 씨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보안부는 안도 씨가 라케시스의 사용자라고 결론을 지은 걸까.

「정부, 정확히는 썩을 윗대가리들은 라케시스를 어딘가에 유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정확한 용도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찾아낼 거야. 선대 탐정이 그랬듯이.」

선대 탐정, 이라는 말을 꺼낼 때의 신라는 약간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그러나 하바네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그 미소에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느낌 또한 들었다.

「증거라는 건 예의 기밀서류인가.」

「어어. 아마 카즈키 씨가 해석해서 어떤 방법으로든 전달해주겠지만, 아직 연락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전달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 ​모​양​이​다​.​.​.​잠​깐​.​」​

신라가 제지하여 하바네는 잠시 골목길에서 멈춰 섰다. 안도장 3층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도로. 그리고 그 위에서 뭔가 번쩍이는 빛이 비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걸렸는지 ​모​르​겠​는​데​.​.​.​그​보​다​ 어이, 우리는 지금 대외비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라고. 아무리 저들이 범인을 오해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 다른 사람이 수상한 복장을 하고 접근하면 어떻게 할 것 같냐?」

그걸 알면 그 괴상망칙한 복장을 어떻게 해라, 라고 말하려다 하바네는 꾹 눌러 참았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행인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는 게 슬슬 참기 힘들다고.

「하여튼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유에가 올 거다. 그러니까...」

슥.

「넌 저쪽에 가서 유에랑 습격조 눈에 안 띄도록 숨어있어.」

「...?」

습격조의 눈에 띄지 말라는 이야기는 납득할 수 있는데, 유에 눈에도 띄지 말라니 이건 무슨 소리지, 하고 하바네는 생각했으나, 어차피 대안도 없는데다 여차하면 뛰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집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다가가 몸을 넣었다.

그리고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신라가 하는 행태를 지켜보았다.

「음.」

골목길 앞쪽에서 한 여자애가 나타났다. 아침에 외출한 복장 그대로의 유에가 맞다. 그런데 신라는 어째서인지 골목길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유에가 지나갈 때까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다. 그리고 유에는 그것이 자기 지인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는지 그냥 슥 지나쳤다.

‘어이.’

이대로면 유에가 골목을 지나서 안도장으로 향하게 된다. 이거 문자라도 보내서 따져야 되나, 하고 하바네가 패드에 신경을 향한 순간,

「꺄아아아악!」

퍽퍽퍽!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골목에서 고개를 내민 하바네 앞에 나타난 것은,

​「​@​%​!&​@​$​^​!&​@​#​^​」​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발버둥치는 유에를 차 쪽으로 끌어당기는─예의 괴상한 차림의─신라였다. 저 미친 놈 이번엔 또 무슨 짓을 벌이는 거야?! 몰래 조심해서 행동하라더니 저건 사람들 이목을 너무 끌잖아! 게다가 그렇게 길 중앙으로 가면 안도장에서도 다 내려다보인다고!

「읍! 이거 놔! 이 빌어먹을 자식아!」

우와. 유에 저 녀석 누가 노는 녀석 아니랄까봐 입 한번 험하네. 눈앞에서 괴상한 차림의 여자를 남자가 끌고 가는데도, 지나가던 행인 둘은 오히려 피하듯이 골목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아무래도 배정되는 스케줄링을 위반하는 사람이라면 경찰 측에서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요새는 험한 일에 휘말리기보다는 이렇게 피하는 게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어​버​렸​으​니​.​.​.​하​지​만​ 문제는 보안부 녀석들인데...

삐리링─

하바네의 주머니 속에서 패드의 문자 발신음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신라가 그 와중에 쓴 건지 아니면 미리 준비해둔 건지 알기 힘든 문자가 와 있었다.

『목표물 포획 완료. 일단 차로.』

...

「......」

뒷좌석에서 매섭게 노려보는 유에의 눈을 신라는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니 그보다 사람을 데려오는 방법이 뭐 이리 난폭한 거야. 이 중2병 녀석은.

「...미안하다. 설마 저런 식으로 행동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중2병이니까 저런 돌발행동을 벌이는 건 이상할 거 없어요. 물론 덕분에 지금 아주 열 받았지만.」

‘평소에도 이런 놈이냐.’

「야, 니가 그러면 내가 무슨 미친놈이 되어버리잖아. 이쪽은 현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사지를 벗어난 거라고.」

‘아니, 댁은 미친놈 맞다고 봅니다만.’

「애초에 하바네로와 유에는 지금 정부에서 지정해준 스케줄링의 움직임을 벗어나고 있다고 지금. 하바네로는 병가니까 둘째로 치더라도 유에는 오늘도 학교 빼먹었지?」

「...」

「아무리 보안부가 대외비로 엔도장을 습격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의 사람들의 소재는 확실하게 파악하려고 들 수밖에 없어. 그리고 유에의 얼굴은 이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 꽤 되는 편이니까, 방금 일로 난리가 난 시점에서 납치 신고가 들어오겠지. 그리고 그렇게 눈에 띈 시점에서 저 녀석들도 저격 같은 걸로 도로상의 살인사건 + 총기사건으로 번지도록 행동할 리도 없겠지.」

「경찰의 추적은 신경 안 쓰냐.」

「나랑 이 녀석은 일단 지인이니까, 장난친 걸로 충분히 묻어버릴 수 있지. 스케줄링 위반이야 내가 원인 제공자니 이쪽에서 벌금 한번 물어주면 되는 일이고.」

이 녀석, 정말 똑똑한 건지 미친 건지 판단이 안 선다.

「저기 말인데. 지금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시죠? 이번엔 이유 없이 미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대로 확 문 열고 나가서 신변보호 요청해버리는 수가 있어.」

하바네와 신라를 번갈아 노려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에가 슬슬 한계에 도달했는지 은근한 협박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어...일단 출발하자. 가면서 설명할게.」

브레이크를 풀고 액셀을 천천히 밟으면서 신라가 말했다. 차량이 동네 도로를 따라 대로변으로 쭉 나오던 중에, 갑자기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 이런 썩을...!」

피쉬쉬, 하는 소리가 바퀴에서 들리는 것과 동시에, 신라는 급하게 엑셀을 밟아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유에와 하바네도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으나 누가 쫓아오거나 하는 기색은 없고, 차체만이 불안하게 기우뚱한 상태로 도로 위를 ​달​려​간​다​, ​

부우우우우웅

대로변으로 나온 직후, 신라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유에. 안도장이 놈들에게 습격당했다.」

「...?! 어째서? 파악될 만한 증거는 남긴 적이 없는데...」

「녀석들이 생각보다 안도 마사키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있지 않았던 게 원인이겠지. 그리고 아직 우리가 덜미를 잡힌 건 아니다. 방금 전의 타이어 펑크도 우리가 관계자라는 걸 알고 쏜 게 아니라 단순 경찰에 대한 협조 차원에서 우발적으로 벌인 짓일 테고.」

「...그래서 아버지는?」

설명을 듣던 유에의 아버지를 걱정하는 질문에 신라는 잠시 이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는 이미 없어.」

「...그래.」

유에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심적으로 충격을 받아 그런 거겠지. 당장 울음을 터뜨리거나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어이. 하바네로.」

「왜.」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갈 지는 아냐.」

「피난처가 있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가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가진 은신처 중에 하나. 소라하의 친척이 소유하고 있는 호텔에 있는 개인실이다. 오늘 밤에는 거기서 있으라고.」

「...너 진짜 대체 뭐하는 놈이냐.」

「탐정이라니까. 이런 상황도 있을까 싶어서 소라하에게 미리 부탁했던 것뿐이라고.」

대학생이 탐정놀이를 위해서 초등학생에게 호텔 VIP룸을 빌려달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문제가 있다고 하바네는 생각하며, 다른 화제로 질문을 돌렸다.

「그런데 그럼 어디까지 달려가야 하는 거야. 일단 타이어에 총 맞았다고 하지 않았냐.」

「그 정도는 일단 타이어를 교체하면 되니까 상관없어. 그리고 가는 곳은 조금만 있으면 도착할 아키하바라 역 근방인...데 실례되는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 나나 그 호텔이나 그런 쪽이랑 전혀 관계없으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도로를 달리는 중에 차체는 계속 삐꺽대고, 아무래도 편하게 가긴 글렀구먼.

...

「안녕하세요?」

자신의 앞에서 방긋 웃는 여자아이와 호텔 VIP룸의 규모를 번갈아보면서 하바네는 저번 카페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을 잃었다.

「어, 언제 ​오​셨​.​.​.​왔​니​.​.​.​?​ ​실​례​하​겠​습​니​다​.​.​.​」​

「...이런 속물.」

유에가 뭔가 지금 상황을 정곡으로 찌르는 말을 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잖아. 본의는 아니겠지만 확실히 매번 볼 때마다 재벌가의 영애라는 걸 티내고 있다고, 이 녀석.

「여어, 소라하. 번번이 미안하다. 아무래도 나는 사건 추론만 해낼 줄 알지 이런 건 불가능하니까.」

「아니요. 저도 이런 것 밖에 도움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부탁하신 건 이쪽에서 확인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후우, 하고 유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러고 보면 이 녀석 벌써 충격에서 회복한 건가. 아무리 평소에도 기가 센 녀석이라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이렇게 침착한 걸 보면 신라가 말한 대로 녀석이랑 안도 씨 사이는 뭔가 복잡한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아​니​면​ 단순히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라던가.

「그래도 타카하시 남매가 없으니 약간 허전하구만.」

「카즈키 씨는 아무래도 바쁘니 어쩔 수 없고, 」

「아무래도 그분들은 아직도 말씀하신 그 일에 집착하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이미 꼬리는 잡았다고. 게다가 이번 일로 확신한 거지만, 역시 원본 라케시스를 사용하고 있는 건 그 본인들뿐이야. 아니면 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 문서에 과연 명단이 제대로 나와 있을까. 그래도 개개인들 간의 대외비인데.」

「그건 카즈키 씨가 해독결과를 보내왔을 때 생각하자고.」

「아, 그 건에 대해서인데...」

이야기를 듣던 소라하가 비스듬히 메고 있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부팅시켰다.

「사실은 오늘 아침에 메일이 도착했답니다.」

「으아니 역시 위키릭스 출신! 기밀문건을 하룻밤 새서 풀어냈다고!」

신라가 괴상한 말을 떠벌리면서 방 한구석에 달려가서 USB 접속형 고속 프린터를 들고 뛰어오고, 소라하가 프린터를 연결하여 문건을 출력하자 뭔가 알 수 없는 서약서 같은 것이 첫 번째 페이지에 인쇄된 데 이어 빽빽하게 이어진 누군가의 프로필로 생각되는 사진과 자료들이 계속 뽑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바네는 그 중 첫 번째 페이지의 서약서에 적힌 이름을 보고 깨달았다.

확실히 이 문건은 현재의 내각 그 자체에 치명적인 독이 되는 물건이라는 걸.

「지금 일어나는 사태의 공모자들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저 녀석들이 라케시스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가에 대한 거라고.」

그리고 서약서에 적힌 이름 중에 그 이름도 있다.

안도 마사키. 유에의 아버지 이름이.

유에의 아버지 또한 초기에 여기에 관여했던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서약서의 그룹에서 제명되었고, 이후 쭉 경계를 받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제거당한 것이다. 확실히 안도장에서 라케시스를 사용한 것이 독이 된다는 것은 이 명단의 사람들이 안도 씨가 정계에서 물러난 후에도 계속 그를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겠지.

그리고 그 다음의 약 10여장의 페이지들.

이게 뭔가. <​S​o​o​t​h​s​a​y​i​n​g​ ​G​u​i​d​e>​의​ 답변에서 보이는 표의 형태를 한 어떤 자료가 있고, 거기에는 앞의 서약서에 서명한 사람 중 한 명의 일대기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 분명히 올해는 2031년일 텐데 어째서 2064년도의 상황까지 적혀 있는 거지. 게다가 이 이력서의 마지막 년도는 2100년도에서 끊어져 있었다.

이건 마치...이 사람이 2100년도까지 살 것을 예측하는 내용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야​.​.​.​뭐​야​.​.​.​이​건​.​.​.​」​

「말했잖아. 라케시스는 유용되고 있다고.」

그 뒷 페이지부터 이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간략한 프로필과 함께 하루 생활상이나 사망년도 등과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들이었다. 서약서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간간히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 리스트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그​럼​.​.​.​지​금​까​지​ 라케시스 열람을 금지하고, 그걸 기반으로 국민을 통제해 온 이유가 고작 이 사람들의 수명연장을 ​위​해​서​였​다​고​.​.​.​?​」​

「아 물론 국익에도 쓰이긴 했지. 자신들의 신변에 영향이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말이지. 하지만,」

털썩, 하고 서류뭉치를 책상 위에 던지며 신라가 말했다.

「아직도 눈치 못 챈 모양인데, 이 녀석들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권익은 거기 적혀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녀석들은 자신들의 부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는 거지. 이 물건을.」

얼마 전만 하더라도 라케시스의 존재 자체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졌다. 미래,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우리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얼마든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미래라고 믿으면서 노력해왔다. 때문에 당장 라케시스가 손에 들어오고, 그것을 확인하면서도 이것이 정말로 운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물건인지 ​의​심​했​다​. ​

하지만 그 진위를 인정하게 된 지금, 하바네는 이것을 보면서 뚜렷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타인에 의하여 정해지는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지루하게 공부해서 관료직 내지는 공무원이 되어 느긋하게 일하는 맥 빠지는 인생을 목표로 삼고 있어도 그는 자기 인생에 누가 모범답안을 내놓고 그 길을 강요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그것이 남의 꿈을 짓밟고 지나가는 길이라면 더더욱.

이 서약서의 주인공들과 같은 식으로 타인을 보이지 않는 꼭대기에서부터 잡아당기는 실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드는 것은 그저 힘있는 자의 폭거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고대에서부터 사람들이 힘에 따른 계급을 나누고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력을 독점하고 권력을 휘두르던, 인권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과오를 저들은 라케시스라는 힘을 통하여 되풀이하고 있다.

이것은, 옳지 않다.

─운명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이 실타래는, 결국 인간을 자신의 손익에 집착하여 타인의 희망을 억누르고 자신의 희망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생물로 만들었다.

─역시 Lachesis, 이 존재할 리 없는 물건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미친 무기를 배포한 녀석조차 최소한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을 돌려드립니다」라는 광고와 함께 뿌렸었는데 말이지. 이 녀석들은 이미 타인을 같은 인간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기반을 지탱하는 도구 정도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선대가 말하길, 과거에 라케시스가 일반인에게까지 공개되어 있던 시절에는 서로 이걸 이용해서 상대를 ​사​고​사​(​事​故​死​)​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더군. 허나 상대도 라케시스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걸 읽고 또 피하고 하는 상황이 허다했고.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 하나를 위장살해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아버지...랑 선대 탐정이 말한 자료는 손에 넣었으니까, 언론이랑 인터넷 같은 걸 이용해서 폭로할거야?」

유에의 말을 들은 신라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런다고 먹힐 리가 있나. 유에는 쓰지 않으니까 모르겠지만, 하바네로나 소라하는 알 거 아냐? 이 어플리가 어떤 물건인지.」

하바네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No였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장악할 수 있는 흉악한 힘을 지닌 이들이, 고작 자신들이 벌인 짓이 공개된다고 해서 타격을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개된 사실을 중상모략으로 몰아세워 빠져나가려고 하겠지.

「차라리 아예 라케시스도 덧붙여서 뿌려버리는 건 어떨까. 그러면 진실을 알게 되는 건 둘째치고 지금처럼 마음대로는 못하지 않겠어?」

「라케시스가 배포되던 시절의 ​아​나​키​(​무​정​부​상​태​)​를​ 생각하면 그것도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럼 이번엔 내가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

이윽고 하바네는 결심했다.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녀석들이 가진 라케시스를 회수해서 없애고, 라케시스가 없던 시절로 되돌린다.」

「...?! 야 임마 그게 말이 되냐? 라케시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대응한 남아공이나 중국 같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러니까 다 되돌리자고.」

...!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하바네가 하는 말은, 16년 전 이 세계를 바꿔버린, 이제는 누구나 그것의 값어치를 인정하는 물건의 존재가치를 혼자서 부정하는 것이었기에.

「이 세계에서, 라케시스를 없애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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