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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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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리치왕의 분노의 스토리중 전환점에 해당하는 분노의 관문 연계 퀘스트와 지금은 사라진 관련 단편을 참고로 하여 썼던 단편입니다. 사실 관련 단편에서 시점만 다르다는 맹점이...

(23) 분노의 종말


0.

 ​“​아​서​스​ 왕자님?”

 “빛의 자비가 있길... 내 대신에.”

 그 말이 내가 살아있을 적에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분노의 종말

1.

 내가 데스넬의 공동묘지에서 깨어난지도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스트라솔룸의 악몽에서부터라면 8년이 지났을까. 스트라솔룸에서 기거하던 은빛 성기사단의 일원이었던 나는 로데론의 희망이자 로데론을 파멸시킨 배덕의 왕자. 아서스 메네실에 희생된 최초의 일원중 하나였다.

 그 사이엔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포세이큰으로서 되살아났을 때의 혼란. 하지만 나에게 성스러운 빛의 가호는 떠나있었고 주의의 말을 빌리자면 그저 ‘넋나간 시체’에 불과할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오직 스컬지의 처단. 아서스의 졸개들을 해치우기 위해 이미 썩어서 검게 변한 분노의 피를 토하면서 돌진하는 광전사였다고.

 ​처​음​에​는​ 죽음의 경비대에 들어가 있었지만 나는 곧 아제로스 곳곳을 찾아다니며 복수를 위해 일했다. 그리고 칼림도어로 흘러가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 기거하는 우리들의 멍청한 협력자 - 호드와 만났다. 그들에 대한 내 인식은 다른 포세이큰 동지와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생전, 우리의 가장 증오스러웠던 적이며 갈 곳 잃은 우리가 -마지못해- 최후로 선택한 곳. 하지만 그곳에서의 모험은 내 인식을 단숨에 바꿔버리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모험의 끝을 지나 지금은 안퀴라지 공방전이라 부르는 그 대전투를 끝으로 나는 칼림도어 연합군에 있었을 때의 무공을 인정받아 포세이큰으로써는 최초로 대족장의 친위대 - 코르크론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그 뒤 나는 호드를 위해 일해왔으며, 우리의 오랜 동지 -물론 살아있을때 부터!- 쿠엘탈라스가 호드에 합류했을때 가장 기뻐했던 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여군주의 리아드린의 혈기사단의 존재를 알고 나는 드디어 성스러운 빛을 다시 ‘지배’할수 있었다.

 2년간 벌어진 아웃랜드의 기나긴 항전이 끝나고 태양삼 고원의 장대한 싸움이 끝나고 -이는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주도가 아니었기에 모험가가 아닌 호드 정예병이었던 나는 이 싸움에 참가하지 못했다.- 노스렌드로 가는 항로가 생기자 마자, 나는 코르크론의 일원으로써 노스렌드 공략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앙그나타르. 무시무시한 검은 물결이 벽을 타고 꿈틀거리는 끔찍한 관문 앞에 서있다.

1.

 ​“​.​.​.​그​리​고​ 용의 여왕께서는 호드와 얼라이언스에게 승리가 있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우리가 고대하던 그 순간이 왔다. 지금쯤 얼라이언스에게도 저 전갈이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 코르크론들은 분주했다. 자신의 무기와 갑옷을 최종 점검하고 있고 탈것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한다. 물론 나의 경우엔 이 뼈만 남은 군마였지만 분주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내 옆에 서있던 오크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으로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의 경우는 이미 전에 쓰던 검이 사망신고를 받고 새로 지급받은 무기를 숫돌로 갈고 있었다.

 굳이 말은 걸지 않았다. 그가 포세이큰과 얼라이언스를 끔찍이도 싫어한다는건 지난 3년간의 세월로 충분히 인식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전투 앞에 굳이 분탕질을 칠 필요는 없잖는가?

 ​코​르​크​론​들​이​ 정비를 끝마칠 무렵에 이미 얼라이언스 선봉대는 분노의 관문 앞에서 스컬지와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그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뭐? 대영주 폴드라곤이라고? 나는 문득 그 소리에 놀라 분노의 관문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엔 정말로 볼바르 폴드라곤 경이 있었다. 스톰윈드의 옛 섭정이 직접 전투에 참가한단 말인가? 당연히 얼라이언스의 사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내심 인정은 했다. 이 전투의 호드 사령관은 무척 용맹하고 강인한 자이지만 폴드라곤 정도 되는 인물과 같은 격은 아니다. 그가 아무리 그 위대한 브룩시가르의 형제인 강맹한 사울팽 대영주의 아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그가 브룩시가르의 용맹에 버금간다는건 인정을 한다. 문제는 우리가 얼라이언스보다는 ​늦​었​다​. ​

 나는 이 영광된 전투에 한시라도 빨리 참여하고 싶어 몸을 떨었다.

 그러고 있는 찰나에 우리는 와이번 기수들이 전하는 소집명령을 들었다.

 우리 모두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령관 앞에 정렬했다.

 갈색 사령관이 말했다. "너희 중 누군가는 아졸네룹의 썩어가는 거미 녀석들에게 우리 힘을 보여주고 여기까지 나와 함께 달려왔다. 그 장관을 놓친 이들에게 알려주자면, 우리는 놈들의 소중한 왕국 안에 밀고 들어가 용의 안식처로 통하는 네루비안 통로를 막아 ​버​렸​다​.​” ​

 그간의 노고를 기억한다. 코르크론들은 이를 회상하면서 사령관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

 ​"​아​서​스​는​ 오늘부터 네루비안 지원군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서 우렁찬 함성이 울려퍼진다. 트롤이건 오크건 심지어 엘프건 포세이큰이건 간에 말이다. 사울팽의 아들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내가 얼라이언스보다 늦었다고 생각한 조바심을 날려버렸다. 그래, 우릴 이기겠다는 욕심에 서둘러 먼저 뛰어 들었겠지. 볼바르와 그의 군대는 선전하고 있지만 이어서 관문에서 쏟아져나오는 브리쿨 정예병들에 의해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썩어버린 내 피가 끓어 오르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투쟁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싶다. 내 망치로 스컬지들의 머리통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

 드디어 기다렸던 말이 울려퍼졌다. “일어나라 호드의 전사여!” 사령관이 우리를 돌아보며 투쟁심이 가득한 두 눈을 부릅뜬다. “피와 영광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래, 피와 영광이 우리를 기다린다. 덧붙여 우리의 분노와 복수심을 충족시켜줄 사냥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체없이 자신의 탈것에 올라탄다. 늑대 울음소리와 뼈소리가 울려퍼진다.

 ​“​록​타​르​ 오가르! 호드를 위하여!”

 누가 먼저라고도 할거 없이 우리는 동시에 돌진했다. 그리고 외쳤다. “호드를 위하여!” 그리고 여왕폐화를 위하여! 스컬지의 종말을 위하여!

 나는 달려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구울 하나를 맨손으로 잡고 들어올렸다. 발버둥치는 구울에게서 느껴지는 손맛이 나를 충족시킨다. 나는 그 보답으로 구울의 머리를 깨진 달걀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사이에 우리 사령관은 누구보다 먼저 브리쿨들에게 달려가 도끼질을 시작한다. 호드와 얼라이언스가 섞여서 스컬지를 상대한다. 오, 이런. 이 멍청한 인간. 언데드라고 다 스컬지는 아니라는 걸 아직도 모른단 말야? 난 놀라서 총을 겨누는 인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뒤에 서 있던 살덩이골렘을 배었다. 성스러운 빛이 나와 함께하는지 두어번의 고기다짐이 그것의 뱃덩이에는 내장밖에 차있지 않음을 증명해줬다. 그래 오늘은 승리의 날이다. 나는 확신했다.

 ​달​려​오​는​ 브리쿨들은 군마에 매달려 있던 방패를 던져 가슴에 시원한 구멍을 만들어준다. 곧이어 내손에서 뿜어져 나온 성스러운 빛에 의해 브리쿨은 녹아내렸으나 그의 발밑에 깔려 있던 타우렌의 상처는 치유되었다. 나는 그의 감사를 받을 여유는 없었고 그도 감사할 여유는 없었다. 뒤에서 가고일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 나는 이런 전투를 원했다. 자, 와라. 스컬지. 내 증오가 너희 모두를 잡아먹을 것이다.

2.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호드와 얼라이언스는 승전보를 만끽하기도 전에 빠르게 정렬한다. 볼바르가 외쳤다. 저주를 담아 아서스의 이름을.

 ​칼​날​같​기​도​ 송곳니같기도한 관문이 열리고, 세상 모두에게 물어도 씹어죽일 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리치왕 아서스 메네실. 배신자 왕. 그는 일리단처럼 온전히 죽을순 없을 것이다.

 그래 볼바르의 말이 맞다. 너는 네가 앗은 목숨 앞에 무릎꿇고 빌게 될것이다. 바로 내 앞에서!

 ​리​치​왕​은​ 푸른 원령을 덮은체 우리 앞에서 서리한을 들었다.

 - 정의를 원한다고 했느냐? 내 몸소 보여주지. 저승의 정의를. -

 그는 진정한 공포를 보여준다고 했다. 하지만 너야 말로 보게되리라. 나라는, 포세이큰이라는 지독한 공포를! 하지만 나보다 우리 사령관이 먼저 뛰어 들었다. 그래 리치왕은 말이 많았고 나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대장은 훌륭하게도 둘 모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우리들 중 가장 강력한 전사였던 그는 리치왕의 일검에 쓰러졌다.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위대한 도끼마저도! 마치 거짓말 같았다. 우리는 숨죽여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서리한이 그 저주받은 검이 우리 영웅의 혼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나는 턱이 빠질정도로 소리 없는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움직일수 없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공포가 우릴 지배했다. 나는 이 현상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왜지? 왜 나는 또 그의 앞에서 움직일수가 없는거지?

 ​성​스​러​운​ 빛이 도왔다. 그래. 그가 스트라솔룸에서 말했던 대로 그 대신에 성스러운 빛은 나에게 자비를 배풀었다. 신의 가호가 나와 함께할지니. 나는 내 망치. 메네실의 힘을 들고 신성한 문장의 힘을 깃들게 했다. 그리고 달렸다. 리치왕은 홀로 뛰어오는 이 포세이큰 성기사가 신기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그가 들고 오는 망치에 옛 향수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멀뚱 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 재미있구나. 하지만 발버둥 쳐봤자 너희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

 ​리​치​왕​이​ 손을 뻗자 나는 정말 거짓말 같은 일과 맞딱드렸다. 리치왕의 손아귀에서 나온 붉은 빛줄기는 마치 먹이를 조이는 뱀처럼, 나무를 휘감는 덩굴처럼 나를 단숨에 그의 앞으로 끌고 와버렸다. 일순간 바뀐 이 거리에 나는 당혹해 하며 망치를 들어올렸지만 리치왕은 망치를 잡았다. 성스러운 빛을 머금은 망치는 그의 손에 옴짝 달싹도 하지 못한체 정지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당혹해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가 - 분명히 즐거워 하고 있었을것이 분명하다! 이 간악한 놈. - 망치 채로 나를 들어 분노의 관문 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마치 내 등이 사라진듯한 느낌이 전신을 강타했다. 난 눈을 뜰 생각도 하지못한채 내 무기를 찾았다. 아, 여기 있군. 하지만 내 생각은 반만 맞았다. 망치의 반-자루 부분은 여기 있었지만 나머지는 내 머리 위에 박혀 있었다. 성스러운 빛은 사그러 들고 리치왕의 손자국만 남았다. 푸른 악의가 넘실거린다.

  ​대​영​주​ 볼바르가 리치왕에게 외쳤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뭔지 들을수 없었다. 내 시야의 절반은 이미 어둠이 삼켜버렸다. 폭발음이 들린다. 스컬지/연합군 모두 당황해 한다. 마치 리치왕의 그것처럼 악의 서린 웃음 소리가 관문 한켠의 절벽끝에서 들려온다. 나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었지만 귀는 아직 ​살​아​있​었​다​. ​

 ​"​우​리​가​.​.​.​ 너를 잊었다고 생각했느냐?"

 그가 소리쳤다. 나도 따라 생각한다. 우리는 절대 잊지 못한다.

 ​"​우​리​가​,​ 너를 용서했다고 생각했느냐?"

 그가 소리쳤다. 나도 따라 생각한다.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이제 지켜보아라. 포세이큰의 무시무시한 복수를! 스컬지에게 죽음을! 산 자에게 죽음을

 그가 소리쳤다. 나도 따라 생각했다. 그래 그들에게 복수를. 스컬지에게 파멸을! 하지만 그 의 뒷말은 뭐지?

 ​투​석​기​들​이​ 수없이 탄환을 분노의 관문 협곡에 던져 넣는다. 비명소리만이 들려온다. 이건 스컬지의 비명소리가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지​? ​

 시야 전부가 녹색 빛으로 물들어 간다. 녹색 어둠으로 물들어간다. 내 뺨으로 진득한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 너머로 리치왕이 분노의 관문 너머 - 내 옆으로 지나가는것이 보인다. 그는 힘겨워 보였다. 우리의 분노가 그에게 닿은 것인가?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게 우리의 비명소리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사실을 최후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내 뺨에 흐르고 있는 건 내 눈물이 아닌 내 눈이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사태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알수 없다.

 단지 이해할수 있었던건. 우리의 분노가, 그리고 영광마저도 끝을 맺었다.

 내가, 실바나스가, 포세이큰이, 그리고 스트라솔룸이 원했던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끝났어. 여긴 이제 아무것도 없어.”

 심지어 빛의 자비조차도 ​없​었​다​. ​

 그게 내가 맞은 두번째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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