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출도 1년째 봄, 처음으로 그녀와 만났다.
무림출도 1년째 여름, 동정호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무림출도 1년째 가을, 숭산 인근에서 그녀와 만나 다퉜다.
무림출도 1년째 겨울, 겨울산에서 겨울꽃을 함께 보았다.
무림출도 2년째 봄, 그녀의 사정을 들었다.
무림출도 2년째 여름, 그녀를 돕기 위해 잠시 헤어졌다.
무림출도 2년째 가을, 그녀에게 무공을 전했다.
무림출도 2년째 겨울, 그녀와 함께 무학을 논했다.
무림출도 3년째 봄, 그녀와 함께 수련을 했다.
무림출도 3년째 여름, 그녀와 함께 사람들을 구했다.
무림출도 3년째 가을, 그녀와 의견이 엇갈렸다.
무림출도 3년째 겨울...
사시사철 눈으로 뒤덮인 설산 봉우리 한자락, 너무나도 추운 탓인지 눈보라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딱 한군데 눈이 내리지 않는 장소가 있었다. 자연적인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곳도 다른곳 만큼이나 눈이 쌓여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그저 두사람이 서 있는것 뿐, 그것만으로 그곳의 기후가 영향을 받을 만큼 두사람이 발하고 있는 기세는 대단했다.
"정말... 함께하지 않을 생각?"
"내키지 않아, 물론 네가 말하고자하는건 알고 있지만서도.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청년의 말에 여인은 섬섬옥수를 치켜들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보보마다 강렬한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섬섬옥수를 내밀자 무형의 압력이 청년의 전신을 압박했다.
지금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상고의 마학魔學인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와 파황수破荒手. 두개의 무학이 청년를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는 그 압박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발걸음을 옮기며 여인의 눈 앞에 섰다.
"다시 한번 부탁할게. 날 도와줘-"
"미안, 그것만큼은 안돼."
"그래... 그럼 힘으로라도 데려갈거야"
"할 수 있다면."
여인의 손이 청년를 향해 뻗어졌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리지도 않은, 상당한 거력을 담은 수공. 닿는 모든것을 으스러뜨릴듯한 손은 청년의 몸에 채 닿기도전에 그의 손에 잡혔다.
"그런 기습이 통하지 않는건 알고 있을텐데!"
손을 잡은 청년는 그대로 몸을 돌리며 여인의 멱살을 잡고 강하게 들어올렸다. 상대를 머리부터 내던지는 던지기의 수법- 워낙에 빠르고 신속하게 행해지는 던지기라 보통사람은 반응하지 못한채 머리가 깨져 박살날 것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보통의 무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평하길 종사宗師는 될 수 없을지언정 종주宗主는 될 수 있을 재능을 타고난 여인이니 평범할리가 없었다. 여인은 재빨리 발을 먼저 땅에 닿게 해 어기충소의 수법으로 땅을 박차고 그 반동을 이용해 청년의 머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무림의 여인들은 조신하지 못하다고 잘 쓰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인이 쓰면 배로 무서운 기술이 바로 각법이었다. 하지만 원래 권각은 청년의 특기- 아무리 기습적이고 무서운 기술이라 해도 청년의 임장에서 보자면 불의의 기습조차도 못되는, 어떤 의미로는 재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권각으로 나에게 닿을 수 없음은 알텐데?"
"그건 그렇네!"
잡힌 발을 축으로 반대발을 백회를 향해 내려꽂는 여인, 그런 여인의 공격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청년는 그대로 반대손을 뻗어 곧장 내려꽂히는 발을 막아내며 축이 된 발을 두고 다른발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무게중심을 옮겨 쓸어내린 발을 축삼아 청년는 여인의 다리를 잡고 맹렬히 회전했다. 약 두바퀴 반, 단지 그 짧은 순간에도 여인이 겪은 타격은 상당했다.
그리고 두바퀴 반이 지나 세바퀴에 들어서자 청년는 근처에 있는 바위를 향해 맹렬히 집어던졌다. 일말의 사정없는 손속-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너무하다 말하겠지만 여인은 무척이나 가볍게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착지했다.
"역시 권각으로는 무리인가..."
어느샌가 칠흑과도 같은 검을 꺼내든 여은은 마치 불처럼 타오르는 기운을 일으키며 청년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갈거야."
"와!"
"천마삼검天魔三劍 일검一劍 단공斷空"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지자 그 순간 불어내리던 눈보라가, 눈보라를 내리게 하는 두터운 천산의 먹구름이 갈라졌다. 물론 눈에 바로 뛸 만큼 갈라진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순간, 보통 사람은 그런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의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일순간이 가져온 결과물은 무시무시했다.
그려진 검로는 100장 밖의 바위조차 두동강으로 만들고 거기까지 가느다란 선을 바닥에 새겨놨으니까 말이다.
"역시 천마검... 검공의 위력이 틀려졌군"
"그런것치고는 통하지 않은듯하다만."
어느새 청년의 손에 들려있는 묵빛의 창, 아니 봉이라고 해야할법한 검은 철제 장대는 어느새 여인의 검이 갈라놓은 흔적에 또다른 흔적을 새겨놓고 있었다.
"역시 신창... 천마삼검의 일검을 그리 상쇄하다니."
청년이 여인의 참격을 상쇄한 방법은 간단했다. 동질의 참격으로 상쇄시켜버린것- 그것이 청년이 단공을 상쇄시킨 방법이었다. 그리고 여인이 거기에 놀라고 있을때 청년의 왼손이 반개한 상태로 여인의 얼굴이 있는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공파폭심추空波爆沈錐"
청년의 손에 머물고 있던 경력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여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손짓으로 인해 방향정도는 있으나 무음무형의 속도도 알 수 없는 경력을 막기란 여간 고된일이 아니었다.
물론 보통 장력이라면 기감으로 막으면 될 일이나 이것은 기가 실리지 않은 순수한 경력勁力. 감각도 즉 청경으로 감지하지 않는 이상 피하기 지극히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파황수의 경력이 발해진 좌수는 그대로 허공을 내리찍으며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일그러진 대기에 의해 공파폭심추의 경력은 그대로 와해되었고 그 사이 천마군림보를 통해 순식간에 뒤를 점한 여인은 백회를 향해 칼을 내리그었다.
청년은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그어지는 칼날을 창을 들어올려 가볍게 막아내며 빗겨냈다. 그리고 곧장 발을 내딛으며 어깨를 들이미는 청년, 그런 청년을 보며 칼을 놓고 그대로 청년과 같이 어깨를 마주하는 여인, 두 사람의 어깨가 부딪히는 순간 무지막지한 경력이 쌓여있는 주위의 눈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앙천금강공仰天金剛攻"
"탄유비선격彈柳泌腺擊"
천마조사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금철마신의 비전 고공拷功인 앙천금강공과 무박자에서 발해지는 위력적인 고공인 탄유비선격. 둘다 집채만한 바위를 단번에 가루로 만들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둘이 격돌한 순간 발해진 충격은 너무나도 엄청나서 설산 곳곳에서 눈사태가 일어났다.
물론 그 여파는 두사람이 싸우고 있는 봉우리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두사람의 고공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설산 봉우리 정상의 만년설이 부서져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두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청년의 매서운 권각과 현란한 창술이 여인을 향해 휘몰아쳤고 여인의 검술과 수공장타가 퍼부어졌다.
눈사태는 두사람이 발하는 공격속에서 두사람을 휩쓸지 못한채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지?"
"세상을 바꾸는건 힘이 아니야. 시간과 사람들의 변화지"
"하지만 우리가 인도하지 않으면 바뀌는건 늦어!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중원에 살고 있는 한족들이 아니었다. 멀고먼 대막을 건너서 천축을 지나 서역에서부터 이곳 중원까지온 이민족들, 중원에서는 각기 녹인綠人과 소인小人으로 불리는 서역의 엘프와 드워프들.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이민자들-
원나라 시절때는 그래도 원나라 황실이 나름 개방적이었던 탓에 중원에 자리 잡을 수 있었으나 명이 들어서고 한漢족의 황실이 들어서자 극단적인 이민족 배척주의자 때문에 녹인과 소인들은 배척받고 탄압받으며 심지어는 노예화 되기 시작했다.
그나자 녹인의 경우 녹림과 연계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소인의 경우 여러가지로 학대 당하며 관을 중심으로 노예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걸 보다못한 여인과 청년은 그들을 구하러 나선것이었고.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두사람의 의견이 갈라졌다. 마교라는 거대세력의 차기 수장인 여인은 자신들이 나서서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인전승문파 출신인 청년은 이 흐름을 일개 세력이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말하며 여인을 말렸다.
결국 두사람의 의견차이는 이런 무시무시한 싸움으로 바뀌게 되었고 두사람은 자신의 생사를 걸고 서로를 향해 창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세상은 고작 한개의 세력이 바꿀 수 있는게 아니야!"
"바꿀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겠어!"
"이 바보가!"
"누가 할 소릴!"
서로 고집불통,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게 된 두사람은 지금까지의 손대중을 그만두고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신화시대의 최고의 마공인 천마신공天魔神功의 기운이 여인의 전신에서 발하고 청년은 창을 버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근육을 일깨웠다.
그리고 서로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서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대기가 울렸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권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법한 권격이 허공을 가르며 여인을 향해 뻗어졌고 여인은 천마강기를 펼쳐 강막으로 권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청년은 호신강막에 막힌 자신의 주먹을 보면서도 한점의 아쉬움이나 실망도 없이 진각을 밟았다.
그리고 한번더 주먹에 힘을 준 순간, 강막이 일렁이며 충격이 여인을 향해 쏘아졌다. 여인은 강막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무형의 경력에 놀라며 강막을 풀었고 그 즉시 사내의 발길질이 그녀의 무릎을 향해 쏘아졌다.
바위도 가볍게 부숴버리는 발차기. 여인은 그것을 알면서도 발을 빼기 보다도 다리에 경포공硬布功을 발하며 발을 내밀어 발차기를 막았다. 사내의 실력상 물러서면 더한 공격이 들어올것은 당연지사였으니까.
발차기가 막히자 사내는 그대로 차던발에 반동을 주며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다. 예상치 못한 방식의 공격- 그 궤도의 끝에는 여인의 머리, 정확히는 관자놀이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쐐액-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머리카락이 일부 잘려나갔다. 다행이도 피하는것이 늦지 않았기에 머리카락정도만 희생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보통 여인이라면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그 순간 신경이 그쪽으로 쏠릴터이나 여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듯 검을 놓고 양손을 검게 물들이며 권격을 뻗었다.
"현강폭마권玄剛爆魔拳!"
수많은 고수가 넘치는 천마신교 내에서도 현재 권마의 자리를 꿰고 있는 노마의 절기로 묵빛 강기로 주먹을 덮어씌우고 폭발적인 위력의 권격을 장대비처럼 쏟아붓는 절기였다. 지근거리인 이 상황에서는 미완성의 천마신공보다도 더 효율적이고 또 위력적일 것이었다.
노도처럼 쏟아지는 권격.
하지만 그 권격을 청년은 아무런 충격도 발생시키지 않으며 받아 넘기고 있었다. 강권의 달인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화경마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아니지 생각을 못한게 잘못이었다.
그는 권拳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존재니까.
"현강폭마권이라. 난격으로선 제법이지만 그래봤자 고작 1대로 완성된 무공. 깊이가 부족해!"
"권마아저씨가 들으면 대노할 말이군."
"화내도 상관없어. 틀림없는 진실이니까"
난격의 끝은 상당히 빨리 왔다. 통하지 않는 무공을 잡고 있을 여인이 아니었기에 여인은 마지막 권격에 여남은 힘을 모조리 터트리고 천마군림보를 밟으며 청년의 뒤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앞에는 현강폭마권의 강기, 뒤에는 여인의 파황수. 어느쪽도 위험한 공격. 하지만 청년은 재빨리 양손을 뻗어 두 공격을 모조리 파훼했다. 중첩폭뢰의 권격이 현강폭마권의 강기를 박살냈고 유파격류장의 전사轉絲가 파황수를 빗겨내며 여인의 팔을 강타했다.
"큿!!"
유파격류장에 격중당한 여인은 자신의 팔을 타고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전사에 인상을 찌푸리며 천마신공을 운용해 전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기를 이용한 것이 아닌 순수한 '회전력'이었기에 여타의 전사보다 풀어내기 힘들었다.
"역시 무문武門이란건가. 천마天魔와 함께 신마무구종神魔武九宗의 일좌인...!"
"신마무구종이라... 그리운 이름이네."
신마무구종. 보통 사람들은 무학의 시작을 달마사조와 육조혜능대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선인들이 아직 지상에 있었을 시기... 청룡이며 주작이라 불리는 신수며 환수들이 이야기로만 존재하는것이 아닌 아닌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을때 그들에게서 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인간의 소망과 욕망이 힘을 갖추게 된것이 바로 신마무구종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9개의 무학중 하나가 바로 천마와 무문이었고-
"이번 공격으로 끝내자. 더 이상의 힘겨루기는 무의미 하니까..."
"그렇네..."
여인은 어느샌가 땅에 버려두었던 천마검을 줍고서 아까와 같은 타오르는 듯한 기운을 일으켰다. 천마삼검이 다시한번 지금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청년은 봉을 버리고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오른발 발바닥에서 시작된 전사는 청년의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타고오르며 이윽고 전신의 전사를 증폭시키며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무문팔극권 합기合技-"
"천마삼검 이검二劍-"
"격류폭축용격퇴激流暴縮龍擊槌!"
"천파天破"
전신으로 증폭된 전사가 청년의 발끝에서 모여 무지막지한 용권풍이 발해지고 여인의 검이 공간을 후려치자 막대한 경력이 공간을 때려부수며 대기를 울렸다.
공간을 울리는 경력, 대기를 뒤트는 전사.
어느쪽이든 무학의 상식을 초월한 공격이었다.
두 기술의 격돌은 산위를 덮고 있던 구름까지 갈라버렸고 두사람이 있던 봉우리에 있던 눈 대부분을 흩날려버렸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눈에 시야가 가려진 순간. 두사람은 땅을 박차며 서로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천마검 일검 단공!"
"무문팔극권武門八極拳 비의秘意 팔극八極!"
대기를 자르는 검격 단공, 공진하는 여덟개의 권경 팔극.
여인의 단공이 청년의 가슴을 갈랐고 그 순간 청년의 권격이 여인의 가슴을 강타했다. 다행이랄까 여인의 단공은 청년의 가슴을 채 가르지 못했고 청년의 팔극은 경력이 불완전하게 들어가 여덟번의 권격이 작렬한 수준에 그쳤다.
"어째서... 이만한 힘이 있으면서..."
여인은 눈물과 함께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단공이 얕았던 탓에 가슴에 상흔이 남는 것에 그친 청년은 자신의 옷을 찢어 상처를 감쌌다.
"역시 천마검은 굉장하군..."
갑작스럽게 흐르는 입가의 죽은 피
어느샌가 침입한 천마검의 경력은 청년의 내부를 진탕시켰고 내상을 입혔다. 내상을 좀처럼 입지 않는 무문의 특성상 그만큼 천마검의 경력이 대단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대충의 처치를 마친 청년은 쓰러져있는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련을 가지게 해버린건가... 그녀는 순수하니까"
무림에 나와 처음으로 만나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처음으로 꿈을 꾸게 한 여인. 청년은 지금 눈앞의 이 여인에게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네가 이 무림을 바꾸고 싶은 이유는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힘으로 해서는 안될 일이야...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줘"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여인의 등에 손을 갖다대었다. 불완전했다고는 하나 여인의 몸안에 들어간 팔극워 경력은 여러모로 위험한 수준. 즉사는 아니라고하나 이대로 두면 여인의 경맥을 모조리 망가뜨릴 것이 분명했다.
"심의백타審醫百打"
청년의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력이 없는 청년의 특성상 결국 여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팔을 바쁘게 놀릴 수밖에 없었다. 타격으로 여인의 몸을 살피고 타격으로 여인의 몸안에 잔류안 경력을 해소한다. 그 작업은 부상중입에도 반시진가량 꼬박 계속되었다.
"으음..."
여인이 깨었을때 본것은 설산의 어두운 구름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집의 천장. 여인은 어느새 치료된 자신의 가슴과 경맥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운기해서 내상을 살피려 했던 그녀는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주위를 살폈다. 자신의 내상을 고칠만한 실력을 지닌이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 근방에 있는 이들중에서는 청년이 유일했다.
다시한번 청년과 대화하려했던 여인은 문득 침상 옆에 있는 탁자 위의 서찰를 볼 수 있었다. 서찰을 펼쳐든 여인이 본것은 청년이 쓴 자신을 설득하는 말과 이별을 고하는 말-
그 서찰을 본 여인은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알고 있지만... 알고 있었지만..."
2개월 전, 서역에서 온 이민족들을 구했을때 청년이 말했었다. 세상은 힘만으로 바꿀 수 없다고 바꾸고자하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그때 여인은 자신있게 말했다. 자신의 힘이면... 앞으로 자신이 얻을 힘이라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때부터였다. 청년과 여인이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결국 이민족에 대한 의견이 충돌하고 충돌해 싸움에 이르게 되었다.
"시현..."
여인의 이름은 묵현영, 천마신교에 단하나뿐인 소교주이자 천마신공의 전통 전승자였다. 그리고... 청년, 이시현이 좋아했던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지금쯤이면 일어났으려나..."
설산을 떠나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시현은 문득 설산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지난 2년간의 추억이 담긴 장소...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장소.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힘드려나"
이렇게 대판으로 싸움까지 벌인 상황.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확고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경험속에서 얻은 확고한 신념이며 경험이었으니까.
"우선은.. 그곳으로 돌아가볼까. 형님이 계시는 이검장李劍場으로"
설산에서 동쪽, 요동에 있는 자신의 고종사촌이 주인으로있는 장원, 시현은 그곳으로 가기 위해 다시한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시현은 물론 현영도 모르고 있었다, 서로 헤어진 10년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들어갈지...
청년의 이름은 이시현, 신마무구종의 한곳인 무문팔극권의 유일한 전승자이자 무림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무림출두 3년째 겨울, 두사람은 헤어졌다.
무림출도 1년째 여름, 동정호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무림출도 1년째 가을, 숭산 인근에서 그녀와 만나 다퉜다.
무림출도 1년째 겨울, 겨울산에서 겨울꽃을 함께 보았다.
무림출도 2년째 봄, 그녀의 사정을 들었다.
무림출도 2년째 여름, 그녀를 돕기 위해 잠시 헤어졌다.
무림출도 2년째 가을, 그녀에게 무공을 전했다.
무림출도 2년째 겨울, 그녀와 함께 무학을 논했다.
무림출도 3년째 봄, 그녀와 함께 수련을 했다.
무림출도 3년째 여름, 그녀와 함께 사람들을 구했다.
무림출도 3년째 가을, 그녀와 의견이 엇갈렸다.
무림출도 3년째 겨울...
0화 무림출도 3년째 겨울...
사시사철 눈으로 뒤덮인 설산 봉우리 한자락, 너무나도 추운 탓인지 눈보라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딱 한군데 눈이 내리지 않는 장소가 있었다. 자연적인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곳도 다른곳 만큼이나 눈이 쌓여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그저 두사람이 서 있는것 뿐, 그것만으로 그곳의 기후가 영향을 받을 만큼 두사람이 발하고 있는 기세는 대단했다.
"정말... 함께하지 않을 생각?"
"내키지 않아, 물론 네가 말하고자하는건 알고 있지만서도.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청년의 말에 여인은 섬섬옥수를 치켜들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보보마다 강렬한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섬섬옥수를 내밀자 무형의 압력이 청년의 전신을 압박했다.
지금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상고의 마학魔學인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와 파황수破荒手. 두개의 무학이 청년를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는 그 압박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발걸음을 옮기며 여인의 눈 앞에 섰다.
"다시 한번 부탁할게. 날 도와줘-"
"미안, 그것만큼은 안돼."
"그래... 그럼 힘으로라도 데려갈거야"
"할 수 있다면."
여인의 손이 청년를 향해 뻗어졌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리지도 않은, 상당한 거력을 담은 수공. 닿는 모든것을 으스러뜨릴듯한 손은 청년의 몸에 채 닿기도전에 그의 손에 잡혔다.
"그런 기습이 통하지 않는건 알고 있을텐데!"
손을 잡은 청년는 그대로 몸을 돌리며 여인의 멱살을 잡고 강하게 들어올렸다. 상대를 머리부터 내던지는 던지기의 수법- 워낙에 빠르고 신속하게 행해지는 던지기라 보통사람은 반응하지 못한채 머리가 깨져 박살날 것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보통의 무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평하길 종사宗師는 될 수 없을지언정 종주宗主는 될 수 있을 재능을 타고난 여인이니 평범할리가 없었다. 여인은 재빨리 발을 먼저 땅에 닿게 해 어기충소의 수법으로 땅을 박차고 그 반동을 이용해 청년의 머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무림의 여인들은 조신하지 못하다고 잘 쓰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인이 쓰면 배로 무서운 기술이 바로 각법이었다. 하지만 원래 권각은 청년의 특기- 아무리 기습적이고 무서운 기술이라 해도 청년의 임장에서 보자면 불의의 기습조차도 못되는, 어떤 의미로는 재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권각으로 나에게 닿을 수 없음은 알텐데?"
"그건 그렇네!"
잡힌 발을 축으로 반대발을 백회를 향해 내려꽂는 여인, 그런 여인의 공격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청년는 그대로 반대손을 뻗어 곧장 내려꽂히는 발을 막아내며 축이 된 발을 두고 다른발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무게중심을 옮겨 쓸어내린 발을 축삼아 청년는 여인의 다리를 잡고 맹렬히 회전했다. 약 두바퀴 반, 단지 그 짧은 순간에도 여인이 겪은 타격은 상당했다.
그리고 두바퀴 반이 지나 세바퀴에 들어서자 청년는 근처에 있는 바위를 향해 맹렬히 집어던졌다. 일말의 사정없는 손속-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너무하다 말하겠지만 여인은 무척이나 가볍게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착지했다.
"역시 권각으로는 무리인가..."
어느샌가 칠흑과도 같은 검을 꺼내든 여은은 마치 불처럼 타오르는 기운을 일으키며 청년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갈거야."
"와!"
"천마삼검天魔三劍 일검一劍 단공斷空"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지자 그 순간 불어내리던 눈보라가, 눈보라를 내리게 하는 두터운 천산의 먹구름이 갈라졌다. 물론 눈에 바로 뛸 만큼 갈라진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순간, 보통 사람은 그런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의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일순간이 가져온 결과물은 무시무시했다.
그려진 검로는 100장 밖의 바위조차 두동강으로 만들고 거기까지 가느다란 선을 바닥에 새겨놨으니까 말이다.
"역시 천마검... 검공의 위력이 틀려졌군"
"그런것치고는 통하지 않은듯하다만."
어느새 청년의 손에 들려있는 묵빛의 창, 아니 봉이라고 해야할법한 검은 철제 장대는 어느새 여인의 검이 갈라놓은 흔적에 또다른 흔적을 새겨놓고 있었다.
"역시 신창... 천마삼검의 일검을 그리 상쇄하다니."
청년이 여인의 참격을 상쇄한 방법은 간단했다. 동질의 참격으로 상쇄시켜버린것- 그것이 청년이 단공을 상쇄시킨 방법이었다. 그리고 여인이 거기에 놀라고 있을때 청년의 왼손이 반개한 상태로 여인의 얼굴이 있는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공파폭심추空波爆沈錐"
청년의 손에 머물고 있던 경력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여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손짓으로 인해 방향정도는 있으나 무음무형의 속도도 알 수 없는 경력을 막기란 여간 고된일이 아니었다.
물론 보통 장력이라면 기감으로 막으면 될 일이나 이것은 기가 실리지 않은 순수한 경력勁力. 감각도 즉 청경으로 감지하지 않는 이상 피하기 지극히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파황수의 경력이 발해진 좌수는 그대로 허공을 내리찍으며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일그러진 대기에 의해 공파폭심추의 경력은 그대로 와해되었고 그 사이 천마군림보를 통해 순식간에 뒤를 점한 여인은 백회를 향해 칼을 내리그었다.
청년은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그어지는 칼날을 창을 들어올려 가볍게 막아내며 빗겨냈다. 그리고 곧장 발을 내딛으며 어깨를 들이미는 청년, 그런 청년을 보며 칼을 놓고 그대로 청년과 같이 어깨를 마주하는 여인, 두 사람의 어깨가 부딪히는 순간 무지막지한 경력이 쌓여있는 주위의 눈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앙천금강공仰天金剛攻"
"탄유비선격彈柳泌腺擊"
천마조사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금철마신의 비전 고공拷功인 앙천금강공과 무박자에서 발해지는 위력적인 고공인 탄유비선격. 둘다 집채만한 바위를 단번에 가루로 만들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둘이 격돌한 순간 발해진 충격은 너무나도 엄청나서 설산 곳곳에서 눈사태가 일어났다.
물론 그 여파는 두사람이 싸우고 있는 봉우리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두사람의 고공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설산 봉우리 정상의 만년설이 부서져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두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청년의 매서운 권각과 현란한 창술이 여인을 향해 휘몰아쳤고 여인의 검술과 수공장타가 퍼부어졌다.
눈사태는 두사람이 발하는 공격속에서 두사람을 휩쓸지 못한채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지?"
"세상을 바꾸는건 힘이 아니야. 시간과 사람들의 변화지"
"하지만 우리가 인도하지 않으면 바뀌는건 늦어!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중원에 살고 있는 한족들이 아니었다. 멀고먼 대막을 건너서 천축을 지나 서역에서부터 이곳 중원까지온 이민족들, 중원에서는 각기 녹인綠人과 소인小人으로 불리는 서역의 엘프와 드워프들.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이민자들-
원나라 시절때는 그래도 원나라 황실이 나름 개방적이었던 탓에 중원에 자리 잡을 수 있었으나 명이 들어서고 한漢족의 황실이 들어서자 극단적인 이민족 배척주의자 때문에 녹인과 소인들은 배척받고 탄압받으며 심지어는 노예화 되기 시작했다.
그나자 녹인의 경우 녹림과 연계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소인의 경우 여러가지로 학대 당하며 관을 중심으로 노예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걸 보다못한 여인과 청년은 그들을 구하러 나선것이었고.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두사람의 의견이 갈라졌다. 마교라는 거대세력의 차기 수장인 여인은 자신들이 나서서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인전승문파 출신인 청년은 이 흐름을 일개 세력이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말하며 여인을 말렸다.
결국 두사람의 의견차이는 이런 무시무시한 싸움으로 바뀌게 되었고 두사람은 자신의 생사를 걸고 서로를 향해 창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세상은 고작 한개의 세력이 바꿀 수 있는게 아니야!"
"바꿀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겠어!"
"이 바보가!"
"누가 할 소릴!"
서로 고집불통,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게 된 두사람은 지금까지의 손대중을 그만두고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신화시대의 최고의 마공인 천마신공天魔神功의 기운이 여인의 전신에서 발하고 청년은 창을 버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근육을 일깨웠다.
그리고 서로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서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대기가 울렸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권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법한 권격이 허공을 가르며 여인을 향해 뻗어졌고 여인은 천마강기를 펼쳐 강막으로 권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청년은 호신강막에 막힌 자신의 주먹을 보면서도 한점의 아쉬움이나 실망도 없이 진각을 밟았다.
그리고 한번더 주먹에 힘을 준 순간, 강막이 일렁이며 충격이 여인을 향해 쏘아졌다. 여인은 강막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무형의 경력에 놀라며 강막을 풀었고 그 즉시 사내의 발길질이 그녀의 무릎을 향해 쏘아졌다.
바위도 가볍게 부숴버리는 발차기. 여인은 그것을 알면서도 발을 빼기 보다도 다리에 경포공硬布功을 발하며 발을 내밀어 발차기를 막았다. 사내의 실력상 물러서면 더한 공격이 들어올것은 당연지사였으니까.
발차기가 막히자 사내는 그대로 차던발에 반동을 주며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다. 예상치 못한 방식의 공격- 그 궤도의 끝에는 여인의 머리, 정확히는 관자놀이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쐐액-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머리카락이 일부 잘려나갔다. 다행이도 피하는것이 늦지 않았기에 머리카락정도만 희생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보통 여인이라면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그 순간 신경이 그쪽으로 쏠릴터이나 여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듯 검을 놓고 양손을 검게 물들이며 권격을 뻗었다.
"현강폭마권玄剛爆魔拳!"
수많은 고수가 넘치는 천마신교 내에서도 현재 권마의 자리를 꿰고 있는 노마의 절기로 묵빛 강기로 주먹을 덮어씌우고 폭발적인 위력의 권격을 장대비처럼 쏟아붓는 절기였다. 지근거리인 이 상황에서는 미완성의 천마신공보다도 더 효율적이고 또 위력적일 것이었다.
노도처럼 쏟아지는 권격.
하지만 그 권격을 청년은 아무런 충격도 발생시키지 않으며 받아 넘기고 있었다. 강권의 달인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화경마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아니지 생각을 못한게 잘못이었다.
그는 권拳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존재니까.
"현강폭마권이라. 난격으로선 제법이지만 그래봤자 고작 1대로 완성된 무공. 깊이가 부족해!"
"권마아저씨가 들으면 대노할 말이군."
"화내도 상관없어. 틀림없는 진실이니까"
난격의 끝은 상당히 빨리 왔다. 통하지 않는 무공을 잡고 있을 여인이 아니었기에 여인은 마지막 권격에 여남은 힘을 모조리 터트리고 천마군림보를 밟으며 청년의 뒤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앞에는 현강폭마권의 강기, 뒤에는 여인의 파황수. 어느쪽도 위험한 공격. 하지만 청년은 재빨리 양손을 뻗어 두 공격을 모조리 파훼했다. 중첩폭뢰의 권격이 현강폭마권의 강기를 박살냈고 유파격류장의 전사轉絲가 파황수를 빗겨내며 여인의 팔을 강타했다.
"큿!!"
유파격류장에 격중당한 여인은 자신의 팔을 타고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전사에 인상을 찌푸리며 천마신공을 운용해 전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기를 이용한 것이 아닌 순수한 '회전력'이었기에 여타의 전사보다 풀어내기 힘들었다.
"역시 무문武門이란건가. 천마天魔와 함께 신마무구종神魔武九宗의 일좌인...!"
"신마무구종이라... 그리운 이름이네."
신마무구종. 보통 사람들은 무학의 시작을 달마사조와 육조혜능대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선인들이 아직 지상에 있었을 시기... 청룡이며 주작이라 불리는 신수며 환수들이 이야기로만 존재하는것이 아닌 아닌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을때 그들에게서 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인간의 소망과 욕망이 힘을 갖추게 된것이 바로 신마무구종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9개의 무학중 하나가 바로 천마와 무문이었고-
"이번 공격으로 끝내자. 더 이상의 힘겨루기는 무의미 하니까..."
"그렇네..."
여인은 어느샌가 땅에 버려두었던 천마검을 줍고서 아까와 같은 타오르는 듯한 기운을 일으켰다. 천마삼검이 다시한번 지금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청년은 봉을 버리고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오른발 발바닥에서 시작된 전사는 청년의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타고오르며 이윽고 전신의 전사를 증폭시키며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무문팔극권 합기合技-"
"천마삼검 이검二劍-"
"격류폭축용격퇴激流暴縮龍擊槌!"
"천파天破"
전신으로 증폭된 전사가 청년의 발끝에서 모여 무지막지한 용권풍이 발해지고 여인의 검이 공간을 후려치자 막대한 경력이 공간을 때려부수며 대기를 울렸다.
공간을 울리는 경력, 대기를 뒤트는 전사.
어느쪽이든 무학의 상식을 초월한 공격이었다.
두 기술의 격돌은 산위를 덮고 있던 구름까지 갈라버렸고 두사람이 있던 봉우리에 있던 눈 대부분을 흩날려버렸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눈에 시야가 가려진 순간. 두사람은 땅을 박차며 서로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천마검 일검 단공!"
"무문팔극권武門八極拳 비의秘意 팔극八極!"
대기를 자르는 검격 단공, 공진하는 여덟개의 권경 팔극.
여인의 단공이 청년의 가슴을 갈랐고 그 순간 청년의 권격이 여인의 가슴을 강타했다. 다행이랄까 여인의 단공은 청년의 가슴을 채 가르지 못했고 청년의 팔극은 경력이 불완전하게 들어가 여덟번의 권격이 작렬한 수준에 그쳤다.
"어째서... 이만한 힘이 있으면서..."
여인은 눈물과 함께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단공이 얕았던 탓에 가슴에 상흔이 남는 것에 그친 청년은 자신의 옷을 찢어 상처를 감쌌다.
"역시 천마검은 굉장하군..."
갑작스럽게 흐르는 입가의 죽은 피
어느샌가 침입한 천마검의 경력은 청년의 내부를 진탕시켰고 내상을 입혔다. 내상을 좀처럼 입지 않는 무문의 특성상 그만큼 천마검의 경력이 대단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대충의 처치를 마친 청년은 쓰러져있는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련을 가지게 해버린건가... 그녀는 순수하니까"
무림에 나와 처음으로 만나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처음으로 꿈을 꾸게 한 여인. 청년은 지금 눈앞의 이 여인에게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네가 이 무림을 바꾸고 싶은 이유는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힘으로 해서는 안될 일이야...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줘"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여인의 등에 손을 갖다대었다. 불완전했다고는 하나 여인의 몸안에 들어간 팔극워 경력은 여러모로 위험한 수준. 즉사는 아니라고하나 이대로 두면 여인의 경맥을 모조리 망가뜨릴 것이 분명했다.
"심의백타審醫百打"
청년의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력이 없는 청년의 특성상 결국 여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팔을 바쁘게 놀릴 수밖에 없었다. 타격으로 여인의 몸을 살피고 타격으로 여인의 몸안에 잔류안 경력을 해소한다. 그 작업은 부상중입에도 반시진가량 꼬박 계속되었다.
"으음..."
여인이 깨었을때 본것은 설산의 어두운 구름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집의 천장. 여인은 어느새 치료된 자신의 가슴과 경맥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운기해서 내상을 살피려 했던 그녀는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주위를 살폈다. 자신의 내상을 고칠만한 실력을 지닌이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 근방에 있는 이들중에서는 청년이 유일했다.
다시한번 청년과 대화하려했던 여인은 문득 침상 옆에 있는 탁자 위의 서찰를 볼 수 있었다. 서찰을 펼쳐든 여인이 본것은 청년이 쓴 자신을 설득하는 말과 이별을 고하는 말-
그 서찰을 본 여인은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알고 있지만... 알고 있었지만..."
2개월 전, 서역에서 온 이민족들을 구했을때 청년이 말했었다. 세상은 힘만으로 바꿀 수 없다고 바꾸고자하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그때 여인은 자신있게 말했다. 자신의 힘이면... 앞으로 자신이 얻을 힘이라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때부터였다. 청년과 여인이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결국 이민족에 대한 의견이 충돌하고 충돌해 싸움에 이르게 되었다.
"시현..."
여인의 이름은 묵현영, 천마신교에 단하나뿐인 소교주이자 천마신공의 전통 전승자였다. 그리고... 청년, 이시현이 좋아했던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지금쯤이면 일어났으려나..."
설산을 떠나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시현은 문득 설산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지난 2년간의 추억이 담긴 장소...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장소.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힘드려나"
이렇게 대판으로 싸움까지 벌인 상황.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확고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경험속에서 얻은 확고한 신념이며 경험이었으니까.
"우선은.. 그곳으로 돌아가볼까. 형님이 계시는 이검장李劍場으로"
설산에서 동쪽, 요동에 있는 자신의 고종사촌이 주인으로있는 장원, 시현은 그곳으로 가기 위해 다시한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시현은 물론 현영도 모르고 있었다, 서로 헤어진 10년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들어갈지...
청년의 이름은 이시현, 신마무구종의 한곳인 무문팔극권의 유일한 전승자이자 무림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무림출두 3년째 겨울, 두사람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