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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하늘


제5장


  아픔도 아픔이거니와 가장 갑갑한 것은 내가 무슨 죄로 이 속에 왔는지를 모름이라.

  ​(​순​옥​사​자​가​ 오시면 안다 하니 언제나 오나.)

  ​하​며​ 빠지는 눈을 억지로 참고 며칠을 기다리더니 하루는 3백 예순 다섯 가지 풍류소리가 나며

  ​“​신​임​ 순옥사자 고려 문하시랑동문장사 ​강​감​찬​(​巡​獄​使​者​高​麗​門​下​侍​郞​同​文​章​事​姜​邯​贊​)​이​ 듭신다.” 하더니 온 옥중이 괴괴한데,

  ​한​놈​이​ 좌우의 낯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은

  ​“​나​야​ 무슨 죄가 있나, 설마 순옥사자께서 곧 놓아 보내겠지.” 하는 뜻이 있어 기꺼운 낯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내​ 죄는 이보다 더 참혹한 지옥에 갇힐 터인데 순옥사자가 오시면 어찌하나.” 하는 뜻이 있어 걱정스러운 낯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죄​를​ 지면 지었지 지옥 밖에 더 왔겠니.” 하는 뜻이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낯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아​이​고​ 이제는 큰 일 났구나. 내 죄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만 순옥사자가 아마 덮어놓고 죽이실걸.” 하는 뜻이 있어 잿빛 같은 낯을 가지며 지옥이 무엇인지 천당이 무엇인지 순옥사자가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으며

  ​“​오​냐​ 지옥에 가두어라. 가두면 장 가두겠느냐. 나가는 날에는 또 도적질이나 하자.” 하는 사람도 있으며

  ​“​우​리​ 어머니가 내 일을 알면 오죽 울겠느냐? 순옥사자시여! 제발 놓아 주옵소서.” 하는 사람도 있으며

  ​“​옥​이​고​ 깨묵이고 밥이나 좀 먹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으며

  ​“​순​옥​사​자​가​ 오기만 오너라. 내 죽자 사자 해보겠다. 인간에서 하던 고생도 많은데 또…”하는 사람도 있으며

  ​“​내​가​ 돈이 백만 량이 있으니 순옥사자의 옆구리만 쿡 찌르면 되지.” 하는 사람도 있으며

  ​“​나​는​ 계집인데 순옥사자가 밉지 않은 나야 설마 죽이겠니.” 하는 사람도 있어 빛도 각각이요, 말도 각각이더라.

  ​옥​중​에​ 서기가 돌며 순옥사자 강감찬이 드시는데 키는 불과 5척이요, 꼴도 매우 왜루하지만 두 눈에는 정기가 어리고 머리 위에는 어사화(御賜花)가 펄펄 난다.

  ​이​때​에​ 당하여 사방을 돌아보니 억센 놈도 어디 가고, 다리 긴 놈도 어디 가고, 겁 많은 놈도 어디 가고, 돈 많은 놈도 어디 가고, 얼굴 좋은 아가씨도 어디 가시고 온 옥중에 있는 사나이나 계집이나 모두 오래 젖에 주린 아이가 어미 옴을 보는 듯하여 콱 엎드러져 흑흑 느끼어 가며 운다.

  ​강​감​찬​이​ 보시더니 불쌍히 여기사 물으시되

  ​“​왜​ 처음에 지옥이 무서운 줄 몰랐더냐? 죄를 왜 지었느냐?” 하니 옥중이 묵묵하여 아무 대답이 없거늘 한놈이 나서며 여쭈오되

  ​“​우​리​가​ 나고 싶단 말도 없었는데 님이 우리를 인간에 내시고, 우리가 오겠다고 원하지도 안하였는데 님이 우리를 지옥에 넣으시니 우리들이 님의 일이 답답하여 우나이다.” 강감찬이 웃으시며

  ​“​님​이​ 너희들을 내셨다더냐? 또 지옥에 올 때도 님이 가라고 ​하​시​더​냐​?​” ​

  ​“​그​러​면​ 누가 내시고 누가 이리 오게 하셨습니까?” 강감찬이 크게 소리를 질러

  ​“​네​가​ 네 일을 모르고 누구에게 묻느냐?” 하고 꾸짖으시니 온 옥중이 모두 한놈과 함께 황송하여 일제히 그 앞에 엎드리며

  ​“​미​련​한​ 것들이 알지 못하오니 사자님은 크게 사랑하사 미혹을 열어 ​주​소​서​.​” ​

  ​강​감​찬​이​ 지팡이를 거꾸로 받드시더니 모든 옥수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죄를 짓지 않으면 지옥이란 이름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지옥은 님이 지은 것이 아니라 곧 너희들이 지은 ​지​옥​이​니​라​.​” ​

  ​한​놈​이​ 일어서 아뢰되

  ​“​우​리​가​ 지은 지옥이면 깨기도 우리 힘으로 깰 수 있습니까?” 강감찬이 가라사대

  ​“​적​은​ 죄는 자기 손으로 깨고 나아갈지나 큰 죄는 제 손은 그만두고 님이 깨어주려 하여도 깰 수 없나니 ​천​겁​만​겁​(​千​劫​萬​劫​)​을​ 지옥에서 썩을 뿐이니라.” 한놈이 묻되

  ​“​어​떤​ 죄가 큰 죄오니까?” 강감찬이 가라사대

  ​“​처​음​에​ 단군이 5계(五戒)를 세우시니

  ​1​.​ 나라에 충성하며

  ​2​.​ 집에서 효도하고 우애하며

  ​3​.​ 벗을 미덥게 사귀며

  ​4​.​ 싸움에서 뒷걸음질 말며

  ​5​.​ 생물을 죽이매 골라 죽임이라.

  ​옛​적​에​는​ 5계에 하나만 범하여도 큰 죄라 하여 지옥에 내리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 일이 급하여 다른 죄를 이루 다 다스릴 수 없어 오직 나라에 대한 죄만 큰 죄라 하여 지옥에 내리느니라.” 한놈이

  ​“​나​라​에​ 대한 큰 죄가 몇입니까?” 물은대 강감찬이

  ​“​네​가​ 앉아 들으라!”하시더니 하나씩 세신다.

  ​“​첫​째​는​ 국적을 두는 지옥이 일곱이니

  ​(​가​)​ 국민의 부탁을 맡아 임금이 되자거나 대신이 되어 나라의 흥망을 어깨에 메인 사람으로 금전이나 사리사욕만 알다가 적국에게 이용된 바가 되어 나라를 들어 남에게 내어주어 조상의 역사를 더럽히고 동포의 생명을 끊나니 백제의 임자(任子)며, 고구려의 남생(男生)이며, 발해의 ​말​제​인​선​(​末​帝​諲​譔​)​이​며​,​ 대한 말일의 민영휘·이완용 같은 무리가 이것이라, 이 무리들은 살릴 수 없고 죽이기도 아까우므로 혀를 빼며 눈을 까고 쇠비로 그 살을 썰어 뼈만 남거든 또 살리고 또 이렇게 죽이되 하루 열두 번을 이대로 죽이고 열두 번을 이대로 살리어 죽으면 살리고 살면 죽이나니 이는 곧 매국 역적을 처치하는 겹겹 지옥이니라.

  ​(​나​)​ 백성의 피를 빨아 제 몸과 처자를 살찌우던 놈이니 이놈들은 독 속에 넣고 빈대와 뱀 같은 벌레로 그 피를 빨게 하나니 이는 줄줄 지옥이니라.

  ​(​다​)​ 혓바닥이나 붓끝으로 적국의 정책을 노래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몰아 그물 속에 들도록 한 연설쟁이나 신문 기자들은 혀를 빼고 개의 혀를 주어 날마다 ‘컹컹’ 짖게 하나니 이는 강아지 지옥이니라.

  ​(​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 먹을 것 없으니 정탐질이나 하리라 하여 뜻있는 사람을 잡아 적국에게 주는 놈이 돗 껍질을 씌워 ‘꿀꿀’ 소리나 하게 하나니 이는 돼지 지옥이니라.

  ​(​마​)​ 겉으로 지사인 체하고 속으로 적 심부름하던 놈은 그 소위가 더욱 밉다. 이는 머리에 박쥐 감투를 씌우고 똥집을 빼어 수리개를 주나니 이는 야릇 지옥이니라.

  ​(​바​)​ 딸각딸각 나막신을 끌고 걸음걸음 적국 놈의 본을 뜨며 옷 입고 밥 먹는 것도 모두 닮으려 하며 자식이 나거든 내 말을 버리고 적국 말을 가르치는 놈은 목을 잘라 불에 넣으며 다리를 끊어 물에 던지고 가운데 토막은 주물러 나나리를 만드나니 이는 나나리 지옥이니라.

  ​(​사​)​ 적국 놈에게 시집가는 년들이며 적국의 년에게 장가가는 놈들은 불칼로 그 반신을 끊나니 이는 반신 지옥이니라.

  ​둘​째​는​ 망국노를 두는 지옥이니

  ​(​가​)​ 나라야 망하였건 말았건 예수나 잘 믿으면 천당에 간다 하며 공자의 글이나 잘 읽고 산림에서 ​독​선​기​신​(​獨​善​其​身​)​한​다​ 하여 조상의 역사가 결단남도 모르며 부모나 처자가 모두 남의 종이 된 지는 생각도 않고 오히려 선(善)과 천당을 찾는 놈들은 똥물에 튀하여 쇠가죽을 씌우나니 이는 똥물 지옥이니라.

  ​(​나​)​ 정견(政見)을 가진 당파는 있어야 하지만 오직 지방으로 가르며, 종교로 가르며, 사감(私感)으로 가르며, 한 나라를 열 쪽에 내어 서로 해외로 다니며 싸우고 이것을 일로 아는 놈들은 맷돌에 갈아 없애야 새싹이 날지니 이는 맷돌 지옥이니라.

  ​(​다​)​ 말도 남의 말만 알고 풍속도 남의 풍속만 좇고 종교나 학문이나 역사 같은 것도 남의 것을 제 것으로 알아 러시아에 가면 러시아인이 되고 미국에 가면 미국인 되는 놈들은 밸을 빼어 게같이 만드나니 이는 엉금 지옥이니라.

  ​(​라​)​ 동양의 아무 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의 독립을 찾으리라 하며 서양의 아무 나라가 우리 일을 보아 주어야 무엇을 하여 볼 수 있다 하여 외교를 의뢰하여 국민의 사상을 약하게 하는 놈들은 그 몸을 주물러 댕댕이를 만들어 큰 나무에 감아 두나니 이는 댕댕이 지옥이니라.

  ​(​마​)​ 의병도 아니요, 암살도 아니요, 오직 할 일은 교육이나 실업 같은 것으로 차차 백성을 깨우자 하여 점점 더운 피를 차게 하고 산 넋을 죽게 하나니 이놈들의 갈 곳은 어둥 지옥이니라.

  ​(​바​)​ 황금이나 여색 같은 데에 빠져, 있던 뜻을 버리는 놈은 그 갈 곳이 단지 지옥이니라.

  ​(​사​)​ 지식이 없어도 아는 체하고 열성이 없어도 있는 체하며, 죽기는 싫으나 명예는 차지하려 하여 거짓말로 남 속이고 다니는 놈들은 불로 지져 뜨거움을 보이어야 하나니 이는 지짐 지옥이니라.

  ​(​아​)​ 머리 앓고 피 토하여 가며 나라 일을 연구하지 않고 오직 남의 입내만 내어 마신니(마치니)의 ‘소년 이태리’(청년 이탈리아)를 본떠 회(會)의 규칙을 만들며, ​손​일​선​[​孫​逸​仙​(​일​선​ 손문)]의 ‘군정부 약법(約法)’을 번역하여 자가(自家)의 주의를 삼아 특유한 국성(國性)이 없이 인판(印板)으로 사업하려는 놈들의 갈 지옥은 잔나비 지옥이니라.

  ​(​자​)​ 잔꾀만 가득하여 일 없는 때는 칼등에서 춤이라도 출 듯이 나서다가 일 있을 때는 싹 돌아서 누울 곳을 보는 놈은 그 기름을 빼어야 될지라. 고로 가마에 넣고 삶나니 이는 가마 지옥이니라.

  ​(​차​)​ ‘아무래도 쓸데없다. 맨손으로 총을 막으며 빈 입으로 군함 깰까 망한 판이니 망한 대로 놀자’하는 놈은 무쇠 두멍을 씌워 다시 하늘을 못보게 하나니 이는 쇠솥 지옥이니라.

  ​(​카​)​ 돈 한 푼만 있는 학생이면 요리집에 데리고 가며 어수룩한 사람이면 영웅으로 치켜세워 저의 이용물을 만들고 이를 수단이라 하여 도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놈의 갈 곳은 아귀 지옥이니라.

  ​(​타​)​ 공자가 어떠하다, 예수가 어떠하다, 나폴레옹이 어떠하다, 워싱턴이 어떠하다, 내 나라의 성현영웅을 하나도 모르는 놈은 글을 다시 배워야 하나니 이놈들의 갈 곳은 종아리 지옥이니라.

  ​이​밖​에​도​ 지옥이 몇몇이 더 되나 너희들이 알아 둘 지옥은 이만 하여도 넉넉하니라.” 온 옥수가 악마구리 울 듯하며

  ​“​사​자​님​은​ 크게 어진 마음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이곳을 떠나게 하소서.” 강감찬이

  ​“​공​은​ 공대로 가며 죄는 죄대로 간다.” 하고 부채로 썩 가리우니 모든 옥수가 어디 가 있는지 하나도 안 보이더라.

  ​한​놈​이​ 모든 옥수가 어디 있는지 보지는 못하나 마음에 그 참형당할 일이 애달파 강감찬의 앞에 나아가 매국적 같은 큰 죄는 할 수 없거니와 그 나머지는 다 놓아 보냄을 청하니 강감찬이 한놈의 등을 만지며

  ​“​그​대​가​ 이런 마음으로 님 나라에 갈만 하지만 다만 두 사랑이 있으므로 이곳까지 옴이로다.” 하거늘 한놈이 그제야 미인의 홀림으로 풍신수길을 놓치던 일을 생각하고 묻자와 가로되

  ​“​나​라​ 사랑하는 사람은 미인을 사랑하지 ​못​하​옵​니​까​?​” ​

  ​강​감​찬​이​ 땅 위에 놓인 칼을 가리키며

  ​“​이​ 칼 놓은 자리에 다른 것도 또 놓을 수 ​있​느​냐​?​” ​

  ​“​안​ 될 말입니다. 한 물건이 한시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습니까?” 강감찬이 이에 손을 치며

  ​“​그​러​하​니​라​.​ 한 물건이 한시에 한 자리를 못차지할지며 한 사상이 한시에 한 머릿속에 같이 있지 못하나니 이 줄로 미루어 보아라. 한 사람이 한 평생 두 사랑을 가지면 두 사랑이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고로 이야기에도 있으되 ‘두 절개가 되지 말아’ 하니 그 부정함을 나무람이니라.” 한놈이 또 묻되

  ​“​그​ 줄이 있습니까?” 강감찬이 대답하되

  ​“​소​경​은​ 귀가 밝고 귀먹이는 눈이 밝다 함은 한 길로 가는 까닭이라 그러기에 석가여래가 아내와 아들을 다 버리고 보리수 밑에서 아홉 해를 ​지​내​심​이​니​라​.​” ​

  ​“​애​국​자​의​ 일도 종교가와 ​같​으​오​리​까​?​” ​

  ​“​하​나​는​ 출세자의 일이요, 하나는 입세자의 일이니 일은 다르지만 종교가가 신앙 밖에 다른 사랑이 있으면 종교가가 아니며, 애국자가 나라 밖에 다른 사랑이 있어도 애국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몸은 안 아끼는 이 없지만 충신이 일에 당하면 열두 번 죽어도 사양치 않으며 누가 처자를 안 어여뻐 하리오만 열사가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나니 이와 같이 나라 밖에는 딴 사랑이 없어야 애국이거늘 이제 나라도 사랑하며 술도 사랑하면 술로 나라 잊을 적이 있을지며, 나라도 사랑하며 미인도 사랑하면 미인으로 나라 잊을 때가 ​있​을​지​니​라​.​” ​

  ​한​놈​이​ 절하며 그 고마운 뜻을 올리고 그러나 지옥에서 나가게 하여 달라 하니 강감찬이 가로되

  ​“​누​가​ 못나가게 ​하​느​냐​?​” ​

  ​“​못​나​가​게​ 하는 사람은 없사오나 몸이 쇠사슬에 묶여 나갈 수 없습니다.” 강감찬이 웃으시며

  ​“​누​가​ 너를 묶더냐?” 하니 한놈이 이 말에 ​대​철​대​오​(​大​徹​大​悟​)​하​여​ 본래 묶이지 않은 몸을 어디 풀 것이 있으리요 하고 몸을 떨치니 쇠사슬도 없고 옥도 없고 한놈의 한 몸만 우뚝하게 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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