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승자에게는 영광을, 패자에게는 연민의 말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너, 누구?”
일단은 시치미 떼 보기로 했다.
이 무렵의 페이트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고는 해도, 갑자기 말도 듣지 않고 덮쳐오는 일은 없겠지.
주변에는 인기척이 없어, 좀 이질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전에 유노에게 부탁해서 구경했을 때와 마찬가지다. 이미 결계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알프도 어딘가에 숨어 있으려나.
“바디시.”
『put out.』
페이트의 말에 페이트에게 들려 있던 칠흑의 전투 도끼――바디시의 보옥에서 자그마한 보석이 방출되어 페이트의 손바닥 위로 올라간다.
“당신은 이것과 같은 걸 가지고 있을 터. 그걸 건네줘.”
안된다는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페이트.
도망가는 것도 싸우는 것도 무리. 뭐어, 내가 가지고 있어봐야 별수 없는 거니까 넘겨줘도 괜찮겠지만. 그냥 넘겨주는 것도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주얼 시드의 폭주체와 다르게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니까 내 마음도 상당히 여유가 있다.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던 내 귀에, 그 소리는 갑자기 들려왔다.
꾸루루루루~
“………….”
“………….”
또렷이 들려 온 그 소리는 일상생활에서 특별히 드문 건 아니다. 드물지는 않지만, 이 상황에는 너무 안 맞는다고 할까 안 어울린다고 할까.
뭔가 긴장감이라거나 그런 것들 갖가지가 박살 났다. 일단, 소리의 출처가 나는 아니다.
“저기…….”
“건네주세요.”
어찌 배겨내기 힘든 기분으로 말을 걸었지만, 늠름한 목소리에 일축당한다. 그건 괜찮지만 페이트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빨개져 있어 전혀 무섭지 않다. 기분 탓인지 그 눈에는 약간 눈물이 배겨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세계에 페이트가 오고 며칠째인지는 모르겠지만, 페이트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식사나 수면 시간도 깎아가며 최대한의 시간을 주얼 시드 탐색에 쏟고 있었겠지. 어머니를 위해서 1분 1초라도 빨리 주얼 시드를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서.
“뭐, 뭔가요! 그 동정하는 듯한 눈은! 어째서 당신이 눈물을 머금은 건가요?!”
얼굴를 새빨갛게 하고선 아무리 소리를 쳐봐야 별 위협도 되지 않는다. 기분 탓인지 쑥 내밀린 바디시에도 애수가 감돌아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밥을 먹을 시간까지 줄여서 배가 비어 있다니……페이트……가엾은 아이!
“주얼 시드는 확실히 여기에 있어. 건네줘도 좋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
내 말이 지금의 거북한 분위기를 씻어낼 수 있을까 했지만, 페이트는 제대로 헛기침을 한 뒤에 표정을 고쳐 경계심 섞인 눈길을 부딪쳐 온다.
아까 전의 배고픈 소리가 없었으면 좀 더 폼이 났었을텐데에.
“내가 힘으로 가져간다고 하면?”
『Scythe form. Setup.』
바디시의 해드가 돌아, 금빛의 빛에 의한 칼날이 만들어진다.
단순한 블러프. 위협 정도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노하를 말없이 공격한 전과가 있으니 과신할 수는 없다. 어머니를 위해 필요하면 선을 넘을 각오를 지니고 있을 터다. 단지 할 수 있는 한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를 해 주긴 하겠지만.
그렇다곤 해도,
“하다못해 조건이 뭔지 듣지도 않고 덮쳐올 정도로 위험한 녀석은 아니지?”
팔짱 낀 자세로 흥 하고 어딘가의 사장처럼 콧방귀를 뀐다. 이런 상황에서는 잘난듯한 태도야말로 성공의 비결인 거다.
실제로 덮쳐왔다간 저항조차 할 수 없지만!
“……조건의 내용은?”
내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로 페이트가 묻는다. 그 눈길을 정면에서 받으며 나는 겁 없는 미소를 띠고,
“같이 밥먹자.”
페이트가 눈을 둥글게 떴다. 좀 귀여울지도. 하고 생각한 것도 잠시, 금방 눈을 좁히며 노려본다.
“뭘 생각하고 있어?”
“배가 고파.”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증거로써, 이번에는 내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낸다.
“근데 혼자서 밥 먹어도 별로 맛없잖아? 기왕이면 같이 먹고 싶다고 생각해서. 물론 내가 쏠게.”
경계심을 드러내며 노려보는 페이트에게 별거 아냐―하는 뜻을 담아 양손을 흔들흔들 올린다.
오늘은 가족들이 일로 다 나가 있기에 애초에 혼자 먹을 예정이었고.
지금의 내게 페이트를 어찌해줄 수단은 떠오르지 않지만, 적어도 맛있는 거라도 먹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이겠지.
그러고 보면, 이 세계에서 페이트의 식사 사정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외식……같은 이미지는 아닌데. 직접 짓지도 않을 것 같고. 어떤 느낌이냐면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걸 조용히……같은 느낌이 든다. 알프는 도그푸드를 열심히 먹을 것 같고.
“날 못 믿겠다고 하면, 먼저 주얼 시드 건네줄게? 나랑 같이 밥을 먹겠다고 약속한다면.”
양손을 들어도 페이트는 경계를 늦출 기미가 없다. 뭐어, 이 세계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일 마도사를 앞에 두고 태연히 있는 것만으로도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긴 한데.
“거절하면 어떡할 거야?”
“흐응. 그건 그때의 즐거움이야. 페이트·테스타로사.”
“……읏?!”
자칭도 하지 않은 이름을 맞춰, 더욱이 경계를 굳히는 페이트. 흐응, 그 정도로 동요를 겉에 드러내다니 아직 부족하구나.
“이름만이 아니야. 그 외에도 잔뜩 알고 있다고? 미드칠더 출신의 마도사로, 사역마는 이리인 알프. 스승은 리니스. 어머니는 프레시아·테스타로사.”
내 말에 페이트는 틈 없는 자세로 바디시를 고쳐쥔다.
이 세계의 일반일 터인 내가 알 리 없을 정보를 차례차례 입에 담고 있는 거다. 페이트가 아니라도 경계하겠지.
어째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거냐 하면, 내가 단순한 일반인이 아니라고 경계시켜, 갑자기 전투를 시작하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이런 정보만으론 전투력이 있다고 하는 블러프도 되지 않지만, 경계심을 부채질하기에는 충분하다.
“힘으로 덮쳐오겠다면 그것도 좋아. 단지, 그만한 리스크는 각오해 두길.”
앞뒤도 생각지 않고 기세 타서 말하고 있는 나, 자중해. 적당한 중2병도 초등학생인 지금이라면 괜찮아. 아마도.
만에 하나 힘으로 덮쳐오게 됐다간 전력으로 사과하자.
“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셋.”
페이트에게 향한 손가락을 하나 세운다.
“첫째, 그대로 주얼 시드를 단념하고 돌아간다. 둘째, 힘으로 덮치다 패배를 맞이한다.”
하나씩 손가락을 세워 가며, 세 번째 손가락을 세운다.
“셋째,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상처없이 주얼 시드를 가져간다. 물론, 함께 먹는다면 알프 몫도 같이 살게.”
“……넌 대체 뭔 사람이야?”
“금칙사항입니다.”
흐흥 하고 겁 없는 미소를 만들어내는 나. 역시나 손가락을 입에 대는 시늉은 자중했다.
내 제안을 동의하지 못하는 건 함정인지 뭔지를 경계하고 있어선가. 이미 나를 현지의 일반인이 아닌, 미드칠더의 마도산지 뭔지라고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페이트는 바디시를 이쪽으로 향한 채로 머뭇거린다.
흠, 좀 더면 되려나?
“덤으로. 힘으로 덮쳐왔을 경우나 약속을 깼을 때 대가로 그 외에 벌 게임이 있어.”
“벌 게임?”
“그래. 정말로 잔혹한데다 굴욕적인 벌 게임이다. 과연 두부 멘탈인 네가 견뎌낼 수 있을까?”
“……두부 멘탈?”
두부 멘탈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겠지. 유감.
“그 내용은…….”
“…….”
긴장했는지 페이트가 바디시를 잡는 손에 꾹 힘이 들어간다.
“아까 꼬르륵 소리를 낸 걸 프레시아에게 까발린다!!”
“에?”
예상도 하지 못했던 말에 페이트의 입이 떡 벌어진다.
“프레시아만이 아냐! 네가 이전에 싸운 하얀 마도사와 그 사역마에게도 까발린다! 물론 알프에게도!”
“…………뭐, 뭐뭐뭐뭣……”
그 광경을 상상한 건지, 아니면 아까 전의 수치심이 되살아난건지, 다시금 페이트의 얼굴색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바디시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데요?!”
“흐응. 승자에게는 영광을, 패자에게는 연민의 말을. 당연한 소리다. 물론 내가 이겨도 져도 프레시아에게는 퍼트린다. 네 친구나 지인이 늘어날 때마다 계속 소문내 주겠어!”
“으, 으으으읏”
눈물 섞인 눈으로 신음하는 페이트. 어른스럽다 해도 9살. 수치심이 넘쳐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된 모양이다. 역시나 순수한 M속성. 괴롭히는 보람이 있다.
자신에게 친구나 지인이 늘어난다는 건 지금 시점에서 생각한 적도 없겠지.
하지만 자신이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알려진다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페이트의 정신을 흔들리게 하는 건 손쉽다.
당연하지만 지금의 내게 프레시아와 이야기할 수단 같은 건 전혀 없다.
“물론, 내 조건을 따른다면 앞으로 절대 남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자아, 어떡할래? 어떡할래? 어떡할래? 너라면 어떡할래?!”
하고 페이트에게 결단을 재촉하는 나. 원래 나이로 이랬다간 확실히 범죄자 같겠지. 지금이 어린애여서 다행이다.
그렇다곤 해도, 이런 떡밥에 태클 걸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그것대로 쓸쓸하다.
아무나 태클 걸어줄 만한 상대가 있으면 좋겠네에.
“…………알았어. 조건을 따를게.”
굉장히 긴 갈등의 끝, 페이트는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택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판단의 재료를 줬는데 어째서 그렇게 고민하지?
그렇게나 나와 함께 밥을 먹는 게 싫은 건가? 섬세한 나는 조금 쇼크를 받아 버린다고. 어떻게 생각해도 제가 쓸대없이 위협한 탓이지요, 예.
“그럼―, 교섭 성립. 자, 주얼 시드.”
“에? 왓?!”
메고 있던 가방에서 주얼 시드를 꺼내 던져준다. 멍하니 정신이 빠져 있던 페이트가 당황하며 주얼 시드를 양손으로 캐치.
역시나 페이트. 허를 찔려도 시원스레 대응할 수 있는 운동신경은 어중간하지 않구나.
“에……그. 바디시, 이거 진짜?”
『Yes, it's genuine.』(예. 그건 진짜입니다.)
우와. 신용 완전 제로.
주얼 시드를 봉인한 뒤 넣은 페이트는, 아직껏 바디시를 잡은 채로 이쪽을 경계하고 있다.
“그럼, 후딱 밥 먹으러 가자. 슬슬 배고파서 한계라고.”
“……정말 뭘 생각하고 있어?”
“밥을 먹고 싶어.”
“……하아.”
이윽고, 더 이상 말싸움해봐야 쓸데없다고 판단했는지, 간신히 페이트는 바디시를 아래에 내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굉장히 무례한 걸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아마 기분 탓이 아니겠지.
“그래서, 해 끼칠 마음이 없다고 판단해 준 모양인데 밥 같이 먹어 줄거야?”
“……일단, 약속이니까.”
마지못해 하는 느낌으로 중얼거리곤, 배리어 재킷을 해제해, 빨강과 검정이 섞인 원피스 차림이 되는 페이트.
흠. 무인에서는 사복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 제법 레어였던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렇다고 할까 전신이 검은색이면 보통은 밸런스가 나쁘기 마련인데, 이 애는 머리 색이나 피부색 등 덕분에 잘 어울린다.
“어울리네, 그 옷.”
“……그래.”
모처럼 칭찬해 줬는데 시원스레 흘려버려, 나 울상.
“그럼, 뭔가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요망같은 거 있어?”
“……잘 모르니까 맡길게.”
“라저.”
페이트가 결계를 풀어 주변에 소리가 돌아온 걸 확인하면서 어디에 갈지를 생각했다.
뭐어, 아직 저녁때가 좀 지났다고 해도 애들만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이유로. 결국, 주변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알프는 괜찮아?”
서로 마주앉아 메뉴를 펼치며 물어본다.
“응, 지금은 다른 곳에 있으니까.”
“온천?”
원작대로라면 나노하와 같은 온천에 가 있을 터다.
“……정말로 뭔 사람이야?”
“단순히 지나가는 초등학생입니다.”
“…….”
명확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노려봐온다.
“뭐어, 나 자신은 페이트의 방해를 한다거나 하는 걸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괜찮아. 그건 믿어주면 기쁠지도.”
“……응.”
망설이면서 끄덕여 줬지만, 실제로는 반신반의겠지. 스스로 지금까지의 언동을 되새겨봐도 너무 수상하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좀 더 뒷일을 생각하고 행동하자, 나.
“뭐, 사소한 건 됐으니까 빨리 메뉴 고르자. 슬슬 후딱 먹고 싶어.”
“에, 아, 응.”
내게 재촉받아 메뉴에 눈길을 향한다. 나는 이미 정해서 살짝 페이트를 관찰.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건 제대로 올 일 없을 그녀는, 흥미진진한 느낌으로 으음으음 소리를 내며 메뉴의 구석부터 구석까지 눈을 옮기고 있다.
이런 행동은 나이다워서 정말로 좋다.
“정했어?”
“으, 응. 괜찮아.”
“자, 여기. 이거 누르면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와 줘.”
슬쩍 페이트의 눈앞에 점원을 부르는 버튼을 내민다.
“이걸 눌러……응.”
긴장한 표정으로 결심한 듯 손을 뻗는 페이트.
위험해, 페이트 관찰이 좀 즐거워져 왔어.
주문 뒤 요리가 올 때까지 별 해프닝은 없었고.
“페이트― 이쪽 향해줘―.”
“에?”
“자, 치즈―.”
찰칵하고 포크를 문 페이트를 사진에 담는다.
덧붙여 페이트가 부탁한 건 일반적인 햄버그스테이크였다.
이런 부분은 애다워서 좋다.
“에……그, 뭐?”
“찍는다고 하고 휴대폰 카메라에 사진 찍었어. 나중에 나노하한테 자랑하려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페이트에게 휴대폰을 보여줬지만, 그런 걸 해서 뭘 하려고? 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거의 없으니 반응도 이렇겠지.
“……나노하?”
그쪽인가.
그러고 보면 이름 기억 못 했던가. 아니, 애초에 아직 이름 밝히지도 않았었나?
“저번에 네가 싸운 하얀 애의 이름.”
“그 애랑 아는 사이야?”
“아는 사이라기보다는 친군데.”
페이트가 눈을 약간 크게 뜬다. 아까 전의 대화에서 나노하도 슬쩍 화제에 냈었지만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그 애와 싸웠다는 걸 알면서 왜 이런 걸?”
“뭐어, 그쪽에도 사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나는 같이 밥 먹고 싶었을 뿐이고.”
주먹과 주먹으로 하는 이야기, 아니 페이트를 설득한다고 할까 마음의 벽을 부수는 일은 나노하에게 전부 떠넘긴다.
어떻게든 하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의미가 있나 싶은 만큼 사소한 도움 정도의 것.
쓸쓸해애. 좀 더 멋지게 괴뢰병이나 폭주체를 상대로 무쌍하고 싶고만.
“나는 또 그 애랑 싸울지도 몰라.”
“그렇겠지. 나로서는 서로 다치지 않을 정도로 힘내!라는 느낌인데.”
“……이상한 사람.”
무표정으로 어찌 됐던 좋다는 듯 중얼거리고, 페이트는 햄버거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봐주지 않는 말 고마워.”
아무래도 뭔가 말대답하고 싶은 기분이긴 하지만, 페이트가 본 내 행동은 수상한 인물 그 자체니 부정할 수 없다.
그 뒤는 특별한 이야기 없이 둘이 담담히 식사. 내 일이지만 시시하다.
뭐어, 점원이 내온(내가 멋대로 시킨) 파르페에 살그머니 미소를 띤 페이트를 볼 수 있었던 걸로 됐다고 하자.
본인은 숨기고 있을 생각이겠지만 전혀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게 흐뭇하고. 물론 제대로 사진을 찍었더니 날 좀 노려봤다.
이런저런 걸로 어떤 의미로 충실한 저녁에 만족하며, 계산대에.
그리고 지갑의 안을 보고 얼어붙는다.
“어라?”
아까까지 들어있었을 터인 히구치 씨(=5천엔)가 없어?
“………….”
저질렀다――――!!
어제, 새로 나온 건프라를 샀었던 참이었다.
주르륵 식은 땀이 이마를 타고 내려간다. 곤란해, 돈이 부족할지도 모르겠어.
“저기, 혹시나 돈이 부족하다거나?”
지갑을 노려본 채로 굳어있는 내게 페이트가 걱정스런 눈길을 향한다.
“돈이라면 나도 있어?”
“아, 아니,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마!”
서둘러 지갑 안의 전재산을 계산한다.
곤란해, 자기가 쏜다던가 말하고선 돈이 부족하다니 너무 비참하고, 너무 부끄러워.
남자의 자존심의 대 핀치야. 부탁해. 지갑 속이여, 부족하지 말아줘!
하늘은 날 버렸다.
“사, 삼백엔 빌려주세요…….”
좀 죽고 싶어졌다.
“나도 반 낼테니까.”
“아니, 괜찮아! 삼백엔! 삼백엔이면 돼! 그것도 다음번에 만났을 때 반드시 돌려줄테니까!!”
페이트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 별거 없는 오기라고 해도 여기는 남자로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거다. 이미 남자로서의 긍지나 프라이드 같은 게 가루가 되어 흩어졌지만!
결국, 페이트는 내 간절한 간청에 따라 3백엔만을 빌려주어, 무전취식이라 하는 위기는 피했다.
피할 수 있었던 것뿐으로, 페이트의 딱하다는 듯한 상냥한 눈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에 팍팍 박히는 게 아팠다.
울고 싶다.
“저기, 오늘은 잘 먹었어. 고마워.”
“아니오별것아닙니다.”
너무 비참해서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한다.
“저기,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그럼, 다음에 만났을 때 삼백엔은 반드시 돌려줄테니까! 그럼 다음에 봐!”
더 이상 얼굴을 마주 대고 있는 게 거북해서 뛰어 도망갔다.
다행히도 페이트가 쫓아오지는 않았지만, 이날의 나는 나노하에게 메일을 하는 것도 잊고 베개를 눈물로 적셨다.
젠장할!!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달려나간 소년을 페이트는 멍하니 눈으로 쫓았다.
대체, 저 소년은 뭔 사람인가 하는, 저 소년과 만나고서 수없이 되풀이된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솔직히 그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자신에 대해서나 알프만이 아니라, 어머니까지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단순한 현지의 일반인이 아닌 건 알 수 있다. 알 수 있지만, 그의 행동원리는 굉장히 수수께끼였다.
그의 행동을 보면 주얼 시드가 로스트 로기아라는 건 파악하고 있다. 주얼 시드를 가지고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라,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찾은 거겠지. 그럼에도 흔쾌히 자신에게 그걸 건네주고, 게다가 자신과 밥을 같이 먹자고 꾄다. 뭔가 함정이 있는지 계속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은 헛수고로 끝났다.
정체를 모르는 상대……인가 했더니, 아까 전 같은 얼빠졌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일을 저지른다.
정말로 하나에서 열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년이었다.
“이상한 애…….”
아까 입에 담은 말을 다시 한 번 꺼내고, 페이트는 알프와 합류하기 위해 우미나리 온천으로 향한다.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년을 어떻게 자신의 사역마에게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