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방과 후 옥상
“차차마루, 오늘 새로 온 선생에 대한 자료는?”
“전무(全無)합니다.”
“뭐?!”
차차마루의 답변에 에반젤린은 무슨 소리냐는 투로 외쳤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대답에 에반젤린은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를 비롯해 마법계 및 전 네트워크를 뒤졌는데도 그 선생님의 대한정보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없던 사람이 나타난 듯 말입니다.”
“그래? 그거 이상하군.”
에반젤린은 갑자기 나타난 시로선생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이내 그 의문을 지웠다. 현재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시로선생의 정체 같은 것이 아니다. 현재는 네기에게 집중해야할 때...
“차차마루, 계획의 그날까지는?”
“앞으로 4일정도 남았습니다.”
“그래?”
에반젤린은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발을 걸린 탓에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꽤나 괜찮은 착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발이 걸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척이나 화를 냈다.
“젠장! 이렇게 된 것도 다 스프링필드 일족 탓이야!”
여자 중등부 교사 옥상에서 요란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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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교무실
“하아... 묘하게 일이 많군...”
“아하하... 자네는 여중등부 기숙사 관리까지 겸하고 있으니까 말일 세 수업준비도 하려면 고생일걸?”
아처, 아니 시로의 투덜거림에 다카미치는 특유의 너털거리는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시로는 그런 다카미치를 보며 약간은 짜증이 난 듯한 표정으로 지었다.
“으으...!”
"다카미치, 너무한 거 아니야?“
“하하 미안 네기. 신입선생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해서 말이지.”
네기의 말에 다카미치는 시로를 놀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시로는 그런 다카미치를 향해 적의마저 보이고 있었다.
“시로형,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래, 고마워...”
보통 때라면 시로 혼자서 알아서 했을 터이나 처음 접하는 선생일 인데다가 기숙사 관리인역할까지 해야 하는 탓에 무리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물론 심안(眞)에 의해 돌출된 결론이다.)
“그럼 잘해보게나. 나는 일이 있어서-”
다카미치는 시로와 네기에게 손을 흔들며 유유히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왠지 얄밉군, 다카미치 선생은...”
“뭐, 긴장 풀라고 그런 거겠죠”
네기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네기도 다카미치의 행동에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장난기를 느꼈기 때문에 미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힘들구나, 선생일도.”
시로의 투덜거림에도 묵묵히 미소를 띄우며 일을 돕고 있는 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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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중등부 기숙사 입구.
“하아~ 지루해라”
길가메쉬는 너무나 지루한지 아침부터 여자기숙사 입구 근처에 있는 나무위에서 늘어져 있었다. 기숙사 관리인 보조라지만 왕인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턱이 없는데다가, 그 일들을 전부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메이드로봇 히스리가 전부 처리했다.
한마디로 할 짓 없음이란 소리였다.
“길가메쉬, 그렇게 지루하면 잠시 나갔다 오는 것이 어떤지?”
히스리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방해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길도 모르고... 자랑은 아니지만, 저 이래보여도 약간 길치라고요.”
길가메쉬의 방향감각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나 특유의 깜빡 스킬(랭크:A+~EX 이미 린 이상이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길을 잃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럼 그냥 잠이라도 주무시고 계시죠.”
“역시 그러는 편이 좋을려나... 하지만 잠이 안와~”
길가메쉬의 불평에 짜증이 났는지 히스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히스리는 문득 하늘을 보았다. 해의 기운 정도를 보아 대략 4시정도.
이미 수업은 마쳤으리라. 빨리 마무리 짓지 않으면 학생들이 돌아오기 전에 끝내지 못한다.
“길가메쉬, 당신 잠깐 밖에 나갔다 오시길.”
“귀찮은데...”
단 하루만에 무기력증에 빠진 길가메쉬였다. 그러나 방해되는 존재를 그냥 둘 히스리가 아니 였다.
“만약 안 나가시겠다 하면... 저는 이 총으로 당신의 이마를 쏴버리겠습니다.”
어느새 히스리의 손에는 붉게 빛나고 있는 자동권총 한정이 들려있었다. 길가메쉬는 긴장하며 히스리의 손에들린 자동권총을 보았다. 보통의 자동권총이라면 곧바로 무시했을 터였다. 그런 것을 수천, 수만발 쏘아봤자 자신에게 타격을 줄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마구(魔具)라면 얘기가 달랐다. 비록 따가울 정도라 하더라도 분명 타격을 주는 물건이니 말이다. 하지만 저것은 어지간한 마구와는 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일견 보아도 보구급,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은 길가메쉬마저도 경시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만약 무방비 상태로 저것을 맞는다면...?
일격에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빈사상태까지는 가리라... 뭐 길가메쉬가 전투모드로 들어간다면 모르겠지만, 현재의 길가메쉬는 싸우고 싶은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 그래 잠시 바람을 쐬고 오는 것도 좋겠지? 나 잠시 나갔다 올게.”
길가메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기숙사에서 멀어진 길가메쉬는 문득 자신이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왠지 갑자기 서러워지는 날이었다.
“에잇!”
길가메쉬는 애꿎은 돌맹이를 발로 찼다. 소년의 모습이라고는 하나 영령. 가볍게 찼는데도 상당히 멀리 날아갔다.
“멀리도 날아가네.”
길가메쉬가 찬 돌맹이는 쭉쭉 뻗어가더니 앞에 있던 한 소녀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추었다.
“아야!”
돌맹이를 맞은 소녀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옆에 있던 주근깨 소녀는 갑작스런 일에 당황하며 허둥거렸다.
“이런”
길가메쉬는 의도치 않은 상황에 난색을 표했다. 왕이라고는 하나 왕이기 이전에 소년이다. 이런 일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이였다.
“괜찮아요?”
길가메쉬는 쓰러진 소녀에게 다가갔다.
쓰러져있는 소녀가 입고 있는 교복은 분명 마호라 여자중등부 교복이었다. 그러나 중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몸매가 너무 성숙해 있었다.
“아-”
소녀는 의식이 깨어난 듯 신음성을 흘렸다. 그제 서야 옆에 있던 소녀는 공황상태에서 회복된 듯 쓰러진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치즈루! 괜찮은 거야?”
“어, 조금 머리가 아프기는 하지만...”
괜찮다. 라고 말했지만 치즈루의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한 가득 흐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길가메쉬는 괜히 죄책감이 드는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왠지 요즘들에 계속 위축되는 길가메쉬였다.
“...?”
갑자기 길가메쉬의 뺨에 따뜻한 감각이 느껴졌다. 길가메쉬는 따뜻한 감각이 느껴지는 곳에 손을 갖다 대었다. 어느새 손이 올려져 있었다. 자신이 다치게한 소녀의 손이...
소녀는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도 웃으면서 길가메쉬를 보았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침울해 하지마.”
두근-
순간 길가메쉬는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 자신의 친우를 만났을 때와같은 고동을...
“우... 우왓!”
길가메쉬는 자신도 모르게 붉어진 얼굴을 하고 뒤로 물러서 버렸다.
“아아...”
“?”
치즈루와 옆에 있던 소녀는 그런 길가메쉬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저기 죄송합니다!”
우렁찬 사과와 함께 길가메쉬는 전력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을 잡지 못한 두명의 소녀는 길가메쉬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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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중등부 교사(校舍)
“으극- 빨리 기숙사로가서 일을 시작해야 겠군...”
시로와 네기가 퇴근할 무렵... 어느새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네기는 상념에 빠진 채로 멍하니 걸었다.
“네기 무슨 일 있는 거야?”
“아... 네?!”
정신을 차린 네기가 허겁지겁 대답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시로는 네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상담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시로의 말에 문득 깨달은 네기.
‘그래 지금 내 앞에는 나를 단련시켜줄 사람이 있다.’
“시로형... 저를 단련시켜 주세요!”
네기는 무척이나 비장한 표정으로 시로에게 말했다. 갑작스런 네기의 말에 시로는 그 의미를 이해하느라 잠시 시간이 걸렸다.
“그게 무슨?”
“저 실은...”
네기는 우물거리며 몇일 전에 있었던 사건을 말했다.
한 흡혈귀에 의한 습격사건, 그리고 그 흡혈귀가 자신반의 에반젤린이라는 것과 그때 있었던 싸움의 결과를...
“그런가? 그럼 나보고 단련시켜 달라는 거냐? 차라리 그녀를 ‘제거’해 버리는 편이 더 빠를 텐데?”
평소 이쪽일이 많던 아처는 자신도 모르게 직업병이 도져버렸다. 본디 아처는 세계에 위협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수호자... 아니 청소부...
당연하게도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제거하고 본다. 라는 공식이 뇌 속 깊은 곳에 박혀있었다.(본래는 제거or갱생이었지만 갱생하지 않는 녀석들이 워낙에 많은 탓에 제거라는 선입견이 박혀버렸다.)
“아니요,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설령 이전에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저의 학생입니다. 그런 일은 할 수 없어요.”
“하... 너무 착하다고 네기.”
시로를 아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네가 할 소리냐?!’라고 했을 터이나 다행이도 시로를 아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그... 그런가요?”
“하는 수 없지... 하지만 네기...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오직 전술과 체술뿐이다. 나는 마술이니, 마법에는 재능이 없거든...”
“그거면 충분 합니다.”
네기의 눈에는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
“알았어... 일단 기숙사에 돌아가고 나서 생각해보자고...”
이정도로 열정적인 부탁을 사람 좋은 시로가 거절하기란 무리, 결국 시로는 승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