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게임 판타지 소설입니다.
취미로 쓰고 있습니다.
관심이 필요합니다.
코멘트좀 남겨주세요.
[인식 코드를 입력 해 주십시오.]
벽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이나 억양을 철저히 배제한, 오직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너무나도 충실한 목소리에 소녀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식으로 말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사람이란 건 자신도 모르게 그 때의 기분이나 감정이 섞이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만들어진 목소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보이스웨어나 마찬가지다. 새카만 반소매 티셔츠에 감싸인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소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차라리 한가한 사무원 중 아무나 한 명 시켜 녹음하면 될 걸.'
소녀는 그 목소리가 싫었다. 사원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 자신 외에도 이 기계적인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시스템에 사용되는 목소리를 끝까지 바꾸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특별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닐텐데. 하지만 생각한다고 뭔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소녀에게 권한은 없었고 또 권한이 있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이야기 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소녀의 입술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들릴 듯 말 듯 자그마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에효…."
[인식 코드를 입력 해 주십시오]
어딘가의 센서에 감지되고 있었는지 방금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온다. 코드의 입력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굳게 닫혀있던 입력기의 뚜껑이 덜컹!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입력기에 부착되어 있는 푸른색의 액정에 떠오른 촌스러운 일곱 개의 언더바와 마치 7~80년대의 타자기를 연상시키는 버튼은 이미 오래전에 퇴역했어야 될 구시대의 유물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우습게도 기술부의 치프인 강현호는 이 보안시스템을 두고 「최신 테크놀로지」 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차라리 동네 오락실이 더 최신 테크놀로지겠다구."
소녀는 불만스런 울림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입력기의 버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어디보자… 웅, 웅, 그러니까아…."
[0 4 3 9 8 1 3]
[입력한 코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코드 확인 완료. 다음 보안 단계로 넘어갑니다. 보안 입력기의 액정에 얼굴을 가까이 대 주십시오.]
"으에에―!? 업데이트 되 있어?"
소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일주일 전 까지만 하더라도 코드만 입력하면 바로 통과가 허가되는 시스템이었는데, 모르는 새에 보안 시스템을 업데이트 했었던 모양이다. 마치 가정용 컴퓨터에서 흔히 발생하는 컴퓨터 오류, 블루 스크린이라도 발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푸른색 일색이었던 액정은 어느새 상당히 그럴듯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라니, 설마 이건 이야기로만 들었던 홍채 인식 같은 걸까?
조금 질린듯한 표정으로 소녀는 볼을 긁적였다.
"이, 이런 것까지 할 필요가 있는걸까아."
어차피 이런 곳까지 들어올만한 사람, 거의 없을테고―.
그래도,
"으므므므…."
뭔가 굉장하다.
정말로 테크놀로지! …라는 느낌?
소녀는 살짝 다문 얇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조금 긴장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같이 해오던 단순한 버튼입력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나 봐 왔던 홍채인식이라는 걸 직접 해본다고 생각하자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물론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그다지 대단한 것처럼 묘사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처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라 생각하며 꼴깍 침을 삼켰다. 후아―, 하고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소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정말 그냥 얼굴 가져다 대면 되는거지?"
당연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해진 문장만 반복하는 시스템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애초 처음부터 대답을 기대하며 했던 말도 아니었다. 소녀는 두 팔을 가슴 앞으로 작게 모으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조오아. 힘내자!"
뭘 힘 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허리를 잔뜩 숙여 액정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니 대려고 했다. 그 때 소녀의 등 뒤에서 목소리만 들려오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꺄아!?"
바로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소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홱 돌려 벽에 등을 붙였다.
본능적인 방어행동으로 몸을 감싸듯 팔을 끌어당기고 어깨를 오므려 안 그래도 자그마한 몸을 더 작게 웅크린 소녀는 턱을 안쪽으로 잡아당겨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물끄러미 눈동자만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도데체 언제 다가왔는지 검은색의 양복을 차려입은 반백의 중년이 서 있었다. 나이는 40대 초, 중반 정도일까. 어디로 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 아저씨' 같은 느낌이지만 안경 안쪽에서 빛나는 날카롭게 치켜올라간 눈동자만은 예외다. 마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치 송곳으로 콕콕 찔리는 것만 같은 그 감각은,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하다.
"뭘 그렇게 놀라는겁니까? 승아 양."
능청스레 말하는 중년을 보며 승아라는 이름으로 불린 소녀는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던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갑자기 뒤에서 부르면 누구라도 놀란다구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습니까."
후, 하고 작게 소리내어 웃는 중년을 보며 승아는 부― 하고 양 볼을 부풀렸다. 묘하게 사람을 깔보는 듯한 그 태도도 왠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 곳에는 무슨 일입니까? 승아 양도 알고 있다시피 이 곳은 A 급 제한 구역인데요."
"무슨 말을 하는건가요. 보스. 보스가 부른다길래 일부러 찾아온건데."
정식 사원도 아닌 승아가 이런 곳까지 찾아올만한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일, 이주일에 한 번 정도일까. 보통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들러 카운터 앞에서 가볍게 인사나 주고받는 정도였으니까.
최근들어 대두되고 있는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그리고 아직 미개척지에 가까운 가상현실 게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게임 개발 회사인 'D&B 엔터테인먼트' 에서 승아는 비공개 테스터라는 이름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평범한 아르바이트생. 단지 그 뿐이었다. 이러저러하다 보니까 아르바이트 기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레 회사의 사원들과도 알고 지내게 된 것 뿐.
눈 앞의 중년 남자.
'D&B 엔터테인먼트' 의 대표를 승아는 '보스' 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잘 아는 후배라는 것 같지만, 본명은 모른다. 올 해로 중학교 2학년인 승아에게 영화나 만화 속에서나 들어 볼 수 있었던 '보스' 라는 단어의 어감은 꽤나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지만, 사실 저런 아저씨의 본명같은 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또 본인도 '보스' 라 불러주기를 원하고 있었으니 딱히 불편할 건 없었다.
"그랬었지요.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쟁이, 승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쨋든 제가 불렀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자 들어가도록 하죠."
보스는 그렇게 말하며 승아의 옆을 스쳐지나가듯 문을 향해 다가갔다. 굳게 잠겨있던 문은 사내가 다가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이이잉―, 하는 묘한 기계음과 함께 좌우로 열렸다. 귀찮은 인식 코드도 조금은 신기했던 홍채 인식도 없었다.
우아―, 하고 작게 입을 벌리며 바라보는 승아를 향해 보스는 말했다.
"제 건물이니까요."
승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납득이 갈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따라오십시오."
문의 반대편은 좁다란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로 통로의 끝에 다시 문이 하나.
타박 타박 발소리를 내며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보스의 곁에 승아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그런데요. 보스―"
"무슨 일입니까?"
힐끔 곁눈질을 하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보스를 마주보며 승아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무슨 일? 별로 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후, 하고 보스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동그란 눈동자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승아를 향해 보스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테스터' 가 될 분을. 조금 더 디테일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겠지만, 포인트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마지막 한 자리가 될 그 분의 '인도' 를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기이이잉―
마지막 문이 열렸다.
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스' 는 말했다.
어딘가 조금 들뜬 듯한 목소리였다.
"우리들의 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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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식 코드를 입력 해 주십시오.]
벽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이나 억양을 철저히 배제한, 오직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너무나도 충실한 목소리에 소녀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식으로 말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사람이란 건 자신도 모르게 그 때의 기분이나 감정이 섞이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만들어진 목소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보이스웨어나 마찬가지다. 새카만 반소매 티셔츠에 감싸인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소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차라리 한가한 사무원 중 아무나 한 명 시켜 녹음하면 될 걸.'
소녀는 그 목소리가 싫었다. 사원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 자신 외에도 이 기계적인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시스템에 사용되는 목소리를 끝까지 바꾸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특별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닐텐데. 하지만 생각한다고 뭔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소녀에게 권한은 없었고 또 권한이 있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이야기 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소녀의 입술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들릴 듯 말 듯 자그마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에효…."
[인식 코드를 입력 해 주십시오]
어딘가의 센서에 감지되고 있었는지 방금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온다. 코드의 입력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굳게 닫혀있던 입력기의 뚜껑이 덜컹!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입력기에 부착되어 있는 푸른색의 액정에 떠오른 촌스러운 일곱 개의 언더바와 마치 7~80년대의 타자기를 연상시키는 버튼은 이미 오래전에 퇴역했어야 될 구시대의 유물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우습게도 기술부의 치프인 강현호는 이 보안시스템을 두고 「최신 테크놀로지」 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차라리 동네 오락실이 더 최신 테크놀로지겠다구."
소녀는 불만스런 울림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입력기의 버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어디보자… 웅, 웅, 그러니까아…."
[0 4 3 9 8 1 3]
[입력한 코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코드 확인 완료. 다음 보안 단계로 넘어갑니다. 보안 입력기의 액정에 얼굴을 가까이 대 주십시오.]
"으에에―!? 업데이트 되 있어?"
소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일주일 전 까지만 하더라도 코드만 입력하면 바로 통과가 허가되는 시스템이었는데, 모르는 새에 보안 시스템을 업데이트 했었던 모양이다. 마치 가정용 컴퓨터에서 흔히 발생하는 컴퓨터 오류, 블루 스크린이라도 발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푸른색 일색이었던 액정은 어느새 상당히 그럴듯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라니, 설마 이건 이야기로만 들었던 홍채 인식 같은 걸까?
조금 질린듯한 표정으로 소녀는 볼을 긁적였다.
"이, 이런 것까지 할 필요가 있는걸까아."
어차피 이런 곳까지 들어올만한 사람, 거의 없을테고―.
그래도,
"으므므므…."
뭔가 굉장하다.
정말로 테크놀로지! …라는 느낌?
소녀는 살짝 다문 얇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조금 긴장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같이 해오던 단순한 버튼입력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나 봐 왔던 홍채인식이라는 걸 직접 해본다고 생각하자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물론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그다지 대단한 것처럼 묘사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처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라 생각하며 꼴깍 침을 삼켰다. 후아―, 하고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소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정말 그냥 얼굴 가져다 대면 되는거지?"
당연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해진 문장만 반복하는 시스템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애초 처음부터 대답을 기대하며 했던 말도 아니었다. 소녀는 두 팔을 가슴 앞으로 작게 모으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조오아. 힘내자!"
뭘 힘 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허리를 잔뜩 숙여 액정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니 대려고 했다. 그 때 소녀의 등 뒤에서 목소리만 들려오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꺄아!?"
바로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소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홱 돌려 벽에 등을 붙였다.
본능적인 방어행동으로 몸을 감싸듯 팔을 끌어당기고 어깨를 오므려 안 그래도 자그마한 몸을 더 작게 웅크린 소녀는 턱을 안쪽으로 잡아당겨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물끄러미 눈동자만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도데체 언제 다가왔는지 검은색의 양복을 차려입은 반백의 중년이 서 있었다. 나이는 40대 초, 중반 정도일까. 어디로 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 아저씨' 같은 느낌이지만 안경 안쪽에서 빛나는 날카롭게 치켜올라간 눈동자만은 예외다. 마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치 송곳으로 콕콕 찔리는 것만 같은 그 감각은,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하다.
"뭘 그렇게 놀라는겁니까? 승아 양."
능청스레 말하는 중년을 보며 승아라는 이름으로 불린 소녀는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던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갑자기 뒤에서 부르면 누구라도 놀란다구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습니까."
후, 하고 작게 소리내어 웃는 중년을 보며 승아는 부― 하고 양 볼을 부풀렸다. 묘하게 사람을 깔보는 듯한 그 태도도 왠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 곳에는 무슨 일입니까? 승아 양도 알고 있다시피 이 곳은 A 급 제한 구역인데요."
"무슨 말을 하는건가요. 보스. 보스가 부른다길래 일부러 찾아온건데."
정식 사원도 아닌 승아가 이런 곳까지 찾아올만한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일, 이주일에 한 번 정도일까. 보통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들러 카운터 앞에서 가볍게 인사나 주고받는 정도였으니까.
최근들어 대두되고 있는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그리고 아직 미개척지에 가까운 가상현실 게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게임 개발 회사인 'D&B 엔터테인먼트' 에서 승아는 비공개 테스터라는 이름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평범한 아르바이트생. 단지 그 뿐이었다. 이러저러하다 보니까 아르바이트 기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레 회사의 사원들과도 알고 지내게 된 것 뿐.
눈 앞의 중년 남자.
'D&B 엔터테인먼트' 의 대표를 승아는 '보스' 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잘 아는 후배라는 것 같지만, 본명은 모른다. 올 해로 중학교 2학년인 승아에게 영화나 만화 속에서나 들어 볼 수 있었던 '보스' 라는 단어의 어감은 꽤나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지만, 사실 저런 아저씨의 본명같은 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또 본인도 '보스' 라 불러주기를 원하고 있었으니 딱히 불편할 건 없었다.
"그랬었지요.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쟁이, 승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쨋든 제가 불렀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자 들어가도록 하죠."
보스는 그렇게 말하며 승아의 옆을 스쳐지나가듯 문을 향해 다가갔다. 굳게 잠겨있던 문은 사내가 다가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이이잉―, 하는 묘한 기계음과 함께 좌우로 열렸다. 귀찮은 인식 코드도 조금은 신기했던 홍채 인식도 없었다.
우아―, 하고 작게 입을 벌리며 바라보는 승아를 향해 보스는 말했다.
"제 건물이니까요."
승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납득이 갈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따라오십시오."
문의 반대편은 좁다란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로 통로의 끝에 다시 문이 하나.
타박 타박 발소리를 내며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보스의 곁에 승아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그런데요. 보스―"
"무슨 일입니까?"
힐끔 곁눈질을 하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보스를 마주보며 승아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무슨 일? 별로 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후, 하고 보스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동그란 눈동자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승아를 향해 보스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테스터' 가 될 분을. 조금 더 디테일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겠지만, 포인트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마지막 한 자리가 될 그 분의 '인도' 를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기이이잉―
마지막 문이 열렸다.
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스' 는 말했다.
어딘가 조금 들뜬 듯한 목소리였다.
"우리들의 왕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