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저 바보가 지금 뭐하는거야.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에? 무슨 말이에요, 그거?"
상황을 지켜보며 라이네스가 이를 갈자 디아나가 의문을 표했다.
[실버백 때랑 똑같아. 어떻게든 '죽이지 않을' 작정으로 싸우고 있으니까 저런 꼴을 당하는 거라고. 보통 맹수도 아니고 '주인' 상대인데.]
역시 이 자리에선 자신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라이네스는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디아나. 그거 할 줄 알지? 잠깐 동안 아픈 거 못느끼게 하는거.]
"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나중에 엄청 힘들텐데?"
[지금 여기서 안싸우면 나중이고 뭐고도 없어. 저 바보 힘이 아무리 세도 저 자세에선 오래 못버틸테고.]
디아나는 라이네스가 말하는대로 기계 쪽을 살펴보았다.
기계는 지금 두 손으로 케찰코아틀의 입을 막고 있었지만, 꼬리에 의해 점점 입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디아나는 결심을 굳혔다.
"응. 그럼… 시작한다."
여우족은 직접전투력이 다른 수인들보다 낮은 대신, 특별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디아나도 그와 같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특히 그녀의 경우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보통보다 많은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인간들이 '마법'이라고 부르는 힘보다 종류는 적지만, 그 대신 소모는 적으면서 효과는 높은 여러가지 힘들을.
라이네스의 상처 부위에 갖다댄 디아나의 손이 녹색의 빛을 발하고, 이윽고 그 빛이 사라졌을 때 라이네스는 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좋아… 이걸로 단시간이라면 문제없겠군.]
"저기, 나도 돕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아. 그래주면 좋겠지만, 넌 몸으로 떼우는 건 잘 못하잖아. 뒤에서 가끔 한발씩 날려주는 걸로 충분해. 그리고 나도…]
우둑, 우둑─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라이네스의 몸 속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들은 디아나는 작게 탄성을 내지른다.
"어, 라이칸트로피(Lycanthropy)하려고요?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스피드는 좀 줄어들어도, 이쪽이]"파워는 높으니까 말야… 간다."
변신을 끝마친 라이네스는 그대로 케찰코아틀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익, 치익, 치익─
케찰코아틀의 이빨에서 흘러내린 독액이 기계의 갑옷에 닿자, 소리와 함께 연기를 뿜어낸다.
갑옷이 녹아내린 것은 아니다. 독액이 갑옷과 닿게 됐을 때 성질이 변하여 혼자 멋대로 산화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갑옷에 남은 잔류물을 분석한 결과 갑옷은 문제없어도 피부에 닿게 되면 큰일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았다.
'어떻게든 하고 싶지만, 힘이 너무 세…!'
그 동안에도 힘 겨루기가 상당히 진행되어, 이미 머리는 입 속에 반쯤 들어갈까말까 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질─풍─신─뢰─킥─!!"
─은색의 '창'이 꽂혔다. 정말로, 느닷없이.
지금까지 기계를 누르고 있던 케찰코아틀의 얼굴이 옆으로 밀려났다.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고 해도 '타격'인 이상 케찰코아틀의 비늘을 뚫을 순 없다. 하지만 케찰코아틀의 머리 속에서는 지금, 조금 전까지 기계에게 머리를 연속으로 두들겨맞았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기에 과도하게 반응한 것이다.
'지금!'
두 팔을 밑으로 내려, 자신을 조이고 있는 꼬리 사이로 집어넣고 사이를 벌린다.
마침 얼굴을 공격당한 충격으로 느슨해져있던 터라,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꼬리 사이에 틈을 만들 수 있었다.
틈을 벌린 후 손으로 꼬리를 붙잡고 몸을 위로 빼냈고, 나오자마자 발로 꼬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케찰코아틀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케찰코아틀의 얼굴에 킥을 먹인 라이네스도 그 반동으로 몸을 뒤로 날려 지면에 착지했다. 길다란 은빛의 머리카락이 자신이 일으킨 먼지구름으로 뒤덮히지만, 정작 본인은 딱히 개의치 않는 듯 했다.
"… 라이네스 씨인가요?"
"달리 누가 있겠나. …하지만, 나름대로 힘을 담아 때린건데 아무렇지도 않은건가. 조금 자신감이 상실되는군."
거대한 엘리펀트 라이노를 날려버렸던 일격도, 케찰코아틀에겐 먹히지 않았다.
라이네스라고 해도, 실버백 이외의 주인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렇기에 사양않고 전력으로 때렸건만 효과는 없다.
"하긴, 귀공─ 아니, 네가 그 모양으로 고전한 상대니 내가 힘으로 어쩌진 못하겠군. …… 뭘 그렇게 보고 있는건가."
"… 다리는? 상당한 부상이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아. 디아나의 힘이다. 당분간 통증을 못느끼게 되니까 마음껏 날뛸 수 있지. … 지나치게 움직일 순 없지만."
그 정도라면 다행이다. 주력은 자신이 맡으면 되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여성이셨군요."
"남자라고 말한 기억은 없는데.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래도 좋지만."
보통의 남성이었다면 당장 달려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와 프로포션을 지니고 있는 라이네스였지만─무엇보다 반수인화였기에 중요한 부분은 가리고 있었다고 해도, 가리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 기계의 반응은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라이네스 본인도 그런 쪽으로는 신경쓰지 않고.
두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눈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이쪽을 향하고 있는 케찰코아틀이었다.
'두 사람 다 격투 타입이라는 게 한이군.'
'무기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치를 바랄 순 없고.'
'그렇다면─'
'현재 가장 유효한 방법은─'
─샤아아아아아아악!!
케찰코아틀이 다시 한번 꼬리를 위로 들어올리고 내리친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옆으로 흩어져, 이리저리 교차해가면서 케찰코아틀을 향해 달려갔다.
케찰코아틀은 계속해서 꼬리와 몸을 움직여 두 사람을 막으려고 하지만 기계도 라이네스도 문제없이 피해낸다.
어쨌거나 아까와는 달리 두 사람이다. 두 사람에게 공격을 분산시켜야 하니까, 조금 전보다 피해야하는 공격 횟수도 범위도 적을 수밖에 없다.
기계와 라이네스는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빠르게 간파했다.
'그럼 우선은─'
'그래… 네가 먼저 때려줘야 뒤가 편하지.'
라이네스가 살짝 뒤로 빠지는 것과 동시에 기계가 앞으로 나섰다.
주먹을 움켜쥐고 팔을 뒤로 빼는 순간 팔꿈치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팔꿈치까지 감싸고 있던 건틀렛이 형태를 바꿔, 팔꿈치에 노즐을 만들어낸 것이다.
발뒤꿈치에 있는 부스터와 같은 종류로, 기계의 몸에는 총 8군데에 부스터가 붙어있는데 양 발뒤꿈치, 양 팔꿈치, 허리의 양쪽, 그리고 등의 좌우다. 디아나를 앉고 여기까지 올 때는 이 부스터들을 풀 가동시킨 것이었다.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만 도중에 방향 전환도 못하고 단시간밖에 유지할 수 없기에 지금까진 발뒤꿈치만 쓰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격에도 사용할 수 있다.
노즐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제트 분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기계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한 일격이 뱀의 몸통 한가운데에 꽂혔다.
─캬아아아아아악?!
맞은 부분의 몸통이 위로 들려버릴 정도의 파괴력.
지금까지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충격에 케찰코아틀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격을 날리자마자 연격. 이번엔 다리를 휘둘러, 방금 주먹으로 친 곳을 다시 한번 공격한다. 물론 이번의 발차기도 발뒤꿈치의 부스터를 사용하여 파워와 스피드를 높인 공격.
쿠웅.
조금 전의 주먹이 꽂혔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소리와 함께 몸통이 밀려난다.
─그와 함께, 지금까지는 공격받아도 곧바로 회복했던 케찰코아틀의 비늘이 충격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낀 케찰코아틀이 정신을 차려 입을 벌리고 기계를 향해 달려든다.
"그건 안되지!"
그런 케찰코아틀의 턱을 라이네스가 올려찬다.
늑대의 모습일 때보다 파워가 올라간 덕분에, 그 일격만으로도 케찰코아틀의 머리가 위로 들려졌다. 데미지는 없어도, 방향은 틀었다.
그 사이에 기계는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위력은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남은 것은, '같은 위력'의 공격을 원하는 만큼 꽂아넣는 것 뿐.
양주먹, 양발이 부스터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빗발처럼 쏟아진다.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차고 때리고 차고 때리고 때리고 차고 때린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거대한 뱀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쳤다. 이빨을 들이대고, 꼬리를 휘두른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이 늑대 여인에 의해 차단당했다. 결국, 뱀으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통'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 사이에도, 기계는 뱀의 몸통을 때리고 찬다.
처음 일격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공격은 오직 한 곳만을 노리고 있었다. 오직 한 곳에 있는 비늘만을 두들겼다.
케찰코아틀의 비늘이 아무리 탄성이 뛰어나고, 아무리 충격을 잘 흡수하여 분산시킨다고 해도.
결국 그 비늘 또한 이 세상의 물질로 이루어진 것인 이상 한계는 있다. 그 한계점까지 두들길 생각이었다.
기계 혼자였다면 틀림없이 케찰코아틀의 반격을 받거나 그 거친 몸부림에 방해받아, 지금처럼 일점집중을 노릴 순 없었을 것이다. 아까도 비슷한 것을 노렸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러나 지금은 라이네스가 있다. 부스터를 쓰지 않으면 자신조차 따라갈 수 없는 스피드로 움직일 수 있는 그녀가 있다. 하물며, 늑대의 모습일 때와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파워까지도 높다.
그녀가 케찰코아틀의 방해를 막고, 자신이 공격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케찰코아틀을─ 맹수들의 왕 중 하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때린다.
정권, 평권, 리권, 묘수, 골타, 응경, 장저, 수도, 배도, 관수, 학취, 배지, 소권, 호조, 탁지.
데이터에 있는 모든 종류의 권격(拳擊)을 그대로 실행하여 일점에 쳐넣는다.
찬다.
상단, 중단, 하단, 무릎, 발등, 뒤꿈치, 발가락 관절, 발의 옆면.
다리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공격을 주먹으로 친 곳과 같은 곳에 집중시킨다.
그 모든 공격들에, 가속과 가속이 더해진다.
이미 이것은 '빗발'이나 '발칸'이 아니라, '폭풍'에 비유해야할 연격.
만약 케찰코아틀의 비늘이 드래곤이나 여타 생물의 생체갑옷처럼 '단단한 방어력'을 중시한 것이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한 공격들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시점에서 케찰코아틀의 비늘은 다른 데빌웜들조차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는 걸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케찰코아틀의 비늘조차 이 연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충격이 누적되어 주인에게 고통을 전달하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악!
마지막 수단.
케찰코아틀은 입을 벌리고 흑보라빛의 독액을 끌어모았다.
아까 전에 라이네스를 상대로 해서 사용했던 「포이즌 애로우」. 물론 이것을 자신의 몸에 사용한다면 케찰코아틀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케찰코아틀은 사용하는 것을 강행했다.
「포이즌 애로우」
독액의 화살이 기계를 향해 날아간다.
아무리 라이네스가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그 몸을 방패로 쓰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미 발사된 독의 화살들을 멈추는 것은 할 수 없다. 아니, 설령 방패로 한다고 하더라도 포이즌 애로우는 라이네스와 함께 기계를 두들길 것이다.
─여기서, 디아나의 차례다.
"──────────────"
디아나의 입에서 마치 노래와도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고, 허공에서 불꽃이 만들어졌다.
총 여덞개. 불꽃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마치 여우의 머리 모양과도 같은 형태를 한 불꽃들이 독액 화살들을 태워버리며, 케찰코아틀의 입 속으로 들어가 폭발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독액으로 인해 오히려 케찰코아틀의 입 속에 불이 붙어 꺼지지 않았다.
케찰코아틀이 열과 고통으로 미쳐날뛰는 동안, 기계 역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져서 너덜너덜한 비늘. 케찰코아틀의 몸에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비늘 중에서 단 한장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기계는 그것을 두 손으로 붙잡고 강제로 찢듯이 떼어내기 시작했다.
찌익, 찌익, 찌이이이이이이익─
케찰코아틀은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아직까지 입안에서 타오르는 불을 꺼트리지 못해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간신히 만든 타액을 필사적으로 묻히고, 입을 벌려 땅에 쳐박는 방식으로 불을 꺼트리고 정신을 추스렸을 때.
자신의 몸에서 단 한장의 비늘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곳으로 날아오는 여우의 번개도 보지 못했다.
다시 한번, 디아나가 노래와도 같은 소리를 퍼트린다.
이번에 만들어진 것은 3개의 전기 구슬.
역시 여우의 머리와 같은 형태로 변한 전기의 구체들은 그대로 비늘이 떨어져나간 자리를 향해 날아갔다.
본래의 케찰코아틀이라면 그 몸의 비늘 때문에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설령 입을 노린다고 해도 그 특유의 반응 속도로 입을 닫아버리거나 피할 확률마저 있었다(어쨌거나 '번개'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뭉쳐진 전기를 날리는 것'이니까 진짜 번개에 비하면 굉장히 느리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늘이 떨어져나가고 정신이 없는 상태라면 충분히 맞출 수 있다.
기계가 몸을 빼내고, 라이네스가 떨어지는 순간 최대로 전력을 높인 3개의 전격구들이 상처에 명중된다.
상처를 통해 체내에 침입한 전기들은 불과 수초만에 케찰코아틀의 꼬리 끝부터 머리 끝까지 퍼졌고
─쿠웅, 하는 굉음과 함께 케찰코아틀은 비명도 없이 쓰러졌다.
"에 또… 끝난, 건가요? 이걸로?"
"…… 그런 것 같군요. 이미 의식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뱀을 가리키며 디아나가 의문을 표하자, 기계는 그렇게 대답했다.
기계의 말과 동시에, 라이네스가 털썩하고 넘어져버린다. 하지만 넘어지기 직전에 기계가 받아서 일으킨다.
"괜찮으신가요─ 라고 물을 것도 없겠네요."
"아아… 고마워. 하지만… 이번엔 진짜 죽을 뻔했군."
그녀의 결코 짧지 않은 생에 있어서도, 이번의 싸움은 특히 격렬했다. 가능하면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계는 라이네스의 오른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 짊어졌다. 그때 디아나가 냉큼 달려와 라이네스의 왼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더니 말했다.
"저기, 아까 올 때처럼 슈웅하고 날아가는 건 안되나요?"
"안됩니다."
딱 잘라 말하자, 실망감에 디아나가 귀를 축 늘어뜨리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다. 라이네스가 심하게 다쳤으니까, 올때만큼 고속으로 날아갔다간 틀림없이 상처가 벌어져버릴 것이다. 게다가 아까의 싸움에서 부스터를 너무 많이 써서 과열되기도 했고.
하지만 라이네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뭐 어때. 천천히 가도. … 가장 문제가 될만한 놈은 지금 저 뒤에 뻗어버렸고."
"… 그치만 라이네스. 내가 알기론 이 숲의 원래 주인은 저 뱀 씨가 아니지 않아…?"
"………"
까맣게 잊고 있었다. 라이네스는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점차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 확실히. 지금 상태로 실버백이 나타나면 드러누워버리겠지만. 그땐 기대해도 될까?"
"…… 만약의 경우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의 스펙은 지난번에 겪어봤고."
솔직히 말해서 방금 쓰러트린 케찰코아틀과 비교하면 실버백은 아무래도 격이 떨어진다. 전투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성의 문제로.
머리가 원숭이보다 좋은 수준이라고 한들, 실버백은 케찰코아틀처럼 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는 비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최소한 두 사람을 짊어지고 도망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그땐 확실하게 부탁하지. 하얀 원숭이가 나타나면 확실하게 때려눕혀줘."
"…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지만요."
"아, 그래. 말을 잘못했군. 너의 경우에 한해선 이렇게 말해야지. 때려눕혀'라'."
"…… 명령형이잖아요."
그렇게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것도, 라이네스가 기계의 실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전투만으로도, 그의 힘은 경의를 표하기에 충분하니까.
하지만.
상대가 실버백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케찰코아틀.
대륙 북방의 어떤 원주민족이 모시고 있는 신앙의 주체.
민중에게 문화를 전수해주는 현명한 신으로 모셔졌으며, 그 이름의 유래는─
['날개 달린 뱀', 이었지.]
느닷없이 하늘이 어두워졌다.
확실히 해는 진작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달은 나와있었다.
보름이었기에, 구름이 끼지 않았다면 어두워질 이유가 없다.
만약 구름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달빛이 가려진 거라면─
기계가 두 사람을 짊어진 채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그의 귀에 붙어있는 센서가, '거대한 날개짓 소리'를 포착하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그것을 듣고 두 사람을 들어올려 몸을 옆으로 던지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방금 전까지 서있던 지면의 흙더미와 함께, 케찰코아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대체 뭐가…!"
"… 저건─"
디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위를 올려다본다.
라이네스와 기계도, 같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뱀.
바로 조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를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케찰코아틀이다.
하지만 케찰코아틀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상당 부분 달랐다.
첫째로 머리 양 옆에 펼쳐져있던 지르러미.
그것이 훨씬 더 커져, 케찰코아틀의 본체와 거의 같은 크기가 되었을 정도다.
그 지르러미가 날개처럼 움직여, 케찰코아틀의 몸을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로─ '눈'이다.
케찰코아틀의 또다른 이름. 「구안(九眼)의 뱀」.
그 이름처럼, 지금의 케찰코아틀은 아홉개의 눈 모두를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 갖고 있던 눈이 두개.
그 밑에 있는 눈이 두개.
가운데 미간에 있는 눈이 세개.
마지막으로 날개처럼 펼쳐진 지르러미에 하나 씩.
──────────────!!
케찰코아틀의 입에서, 더이상 뱀이 내는 소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포효가 터져나왔다.
그 케찰코아틀의 로어(Roar)는 라이네스와 디아나조차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하늘도… 날 수 있었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상대한다고? 터무니없는 오만이었다.
예전에 단 한번 대면했던 스노우 드래곤 브류나크와 했던 대화가 라이네스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흰털 원숭이는, 어쨌든 우리 일곱 중에서 제일 떨어지니까. 나로선 어떻게 그 녀석이 다른 주인 후보였던 메갈로 렉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야. 틀림없이 그 녀석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가장 격이 떨어진다.
브류나크가 했던 그 말의 의미가, 지금 확실하게 와닿았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실버백 이외의 여섯 주인.
눈앞의 케찰코아틀을 제외해도 다섯.
그 다섯이, 전부 저것과 동급 이상의 괴물들이라고 하는건가.
라이네스와 디아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지, 기계는 움직였다.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하늘 위에 있는 케찰코아틀의 시야 안으로 뛰어들었다.
디아나는 직접 전투원이 아니고, 라이네스 역시 아까 전의 움직임으로 부상이 악화되었다. 자신이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런 괴물을, 어떻게?
진짜로 '단순한 기계'라면 가질 수 있을 리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상황에선 결코 반갑지 않은 감정, '공포'였다.
인간들은 이 감정을 '등골이 오싹해진다'라고 표현하던가. 지금의 자신이 꼭 그렇다.
두 사람은 들켜선 안된다. 할 수밖에 없다.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이쪽도 포텐셜을 전부 해방시키면 어떻게든─
─상대는 엔션트 데빌웜. 그 중에서도 최악의 변종.
적어도 땅에 떨어뜨릴 수라도 있으면─
─지상전. 불가. 상대가 내려오지 않고 있다.
차라리 자신도 비행을 하면서 요격하는 건─
─공중전. 불가. 발판이 없는만큼 아까같은 위력도 낼 수 없다.
두 사람과 다시 합류하는 건─
─의미가 없다. 말려들게 할 뿐이다.
싸울 수 밖에 없다.
─싸워선 안된다.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싸워선 안된다.
싸우면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파괴당한다.
"닥쳐!!"
머리속에서 계산하고 있는 '어떤 것'에게 일갈한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리자, 케찰코아틀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까의 전투에서 가장 케찰코아틀을 괴롭혔고, 케찰코아틀이 쓰러지는 원인이 됐던 것이 자신이니까.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
케찰코아틀이 다시 한번 포효한다. 기계조차도 한순간 굳어버렸을 정도의 로어. 하지만 그것을 떨쳐버리고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끝이니까.
기계가 그 자리에서 몸을 피하자마자 케찰코아틀의 지르러미가 수직으로 가로지르며 지나갔다. 땅이 마치 손가락으로 파낸 진흙처럼 갈라졌다.
케찰코아틀은 그대로 앞으로 날아가, 앞쪽에서 선회하여 다시 돌아왔다.
이 앞쪽에는 두 사람이 있다. 가게 할 수는 없다.
결국 불리할 것을 각오하고, 전신의 부스터를 가동시켜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적어도 속도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우위. 최소한 두 사람이 도망칠 시간이라도 벌지 않으면 안된다.
─────────!!
케찰코아틀이 포효하며 기계에게로 달려든다.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해내지만, 케찰코아틀의 거구가 일으킨 바람에 의해 날려갔다.
팽이처럼 회전하며 날려가다가, 부스터의 분사와 역분사를 조절하여 간신히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아 정지. 케찰코아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케찰코아틀은 여전히 자신을 보고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라이네스도, 디아나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기계가 케찰코아틀을 막는 동안 마을로 도망치는 쪽이 현명하다고.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럴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운 '동료'를 버리고 갈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숨어있던 곳의 밖으로 나왔다. 최소한 원호라도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기계는 또 한가지를 깨달았다.
케찰코아틀이 갖고 있는 아홉개의 눈.
그 중에, 자신을 보고 있는 눈은 머리에 달려있는 일곱 개 뿐.
나머지 지르러미의 두개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두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을 찾자마자, 케찰코아틀은 주저없이 기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포이즌 웨이브」
독액을 고체 형태로 굳혀서 날리던 '애로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공격. 문자 그대로 '독액의 물결'이 라이네스와 디아나를 향해 쏟아졌다.
─디아나가 움직였다.
노래를 불러 불꽃을 만들어, 벽으로 바꾼 후 앞으로 날렸다.
하지만 불의 벽은 독액의 파도에 집어삼켜져 사라져버린다.
─라이네스가 움직인다.
디아나를 끌어안고, 몸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순간 다리의 통증이 돌아와, 그녀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기계가 움직인다.
케찰코아틀이 독액을 분사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아래로 날렸다.
몸이 지면에 끌려가는 중력까지 이용한 전속력으로.
그리고.
케찰코아틀의 독액은, 세 사람 모두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