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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9화



모든 것이 느려졌다.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느렸다.
디아나의 노래도, 라이네스의 움직임도, 위에서 쏟아지는 독액의 물결도. 그리고, 자신의 움직임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사고 속도 뿐. 그 덕분에 지금 그는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막을 수 없다.


케찰코아틀이 이번에 날린 「포이즌 웨이브」. 애로우와 달리, 이것은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삼는다고 해도 두 사람을 지킬 수 없는 공격이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몸이 너무나도 작다.


자신은 이 물결을 받아낸다고 해도 상관없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모조리 녹아버린다고 해도, 중요부분들을 감싸고 있는 장갑은 이 독액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활동에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은 자신과 다르다.
자신같은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
그런 두 사람이 저런 것을 뒤집어썼다간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피부도, 뼈도. 남김없이 녹아내린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라이네스'와 '디아나'는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독액의 물결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막을 방법이 없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자신의 몸 하나로는 두 사람을 지킬 수 없다.
어째서 자신은 인간형인가. 다른 안드로이드들처럼 더욱 커다랗고 더욱 두꺼운 몸이었다면 지킬 수 있었을텐데.
적진으로의 잠입? 인간 사회에 위화감없이 섞여들기 위해?
그런 것을 위해 만들어진 지금의 이 몸은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도 쓸 수 없는 쓸모없는 몸뚱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몸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지키고 싶은데,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데도.


그렇다면.


─생각해라.


지금의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기계이기에 가능한, 지금의 이 초고속 사고가 유지되는 시간 안에.


─생각해라.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바라는 것이라면 '시간'이었다. 단 1초에서 2초만 더 있었더라도, 두 사람을 데리고 독액의 범위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현실은 그 1. 2초의 시간조차 없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생각해라.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을까.
데리고 피하는 것도, 몸을 방패로 해서 지키는 것도 할 수 없다. 반격도 요격도 시간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미, 어떤 방법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설령 이대로 혼자 물러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계'가 가져야할 사고방식이 아니다. 비효율적이니까. 의미가 없으니까.


─생각해내라.


올바른 기계라면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정상이다. 물러나서 전력을 온존하고 반격하는 것이 옳다.
그 이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이성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생각해내라.


그러나 태어난지 얼마 안된 기계의 자아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를 움직여온 '이성'이 내린 결정을, 진짜인지 어떤지도 모를 '감정'이 거부했다.


이성은 냉정하게 주변의 상황을 판단하고 근거를 들어, 두 사람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감정은 이유도 논리도 확신도 없이, 그저 두 사람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계를 움직인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설령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언가가 잘못되어 생겨난 버그라고 해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없어도 찾아내야한다.
억지라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무언가가, 있었다.


필요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초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무언가'가.
그래, 이를테면

 

 

─'원래의 자신'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가.


─이를테면.


─조금 전의 노이즈로 가득한 영상 속에서의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은 철'이라거나.

 

 

그러나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야 겨우, 기억을 찾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지금 자신이 얻은 '감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사람을 지키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한 기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단순한 기계'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행위를 감수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바보같은 짓이다.


그럼에도, 기계는─

 

 

 


케찰코아틀은 독액의 분사를 멈췄다.
그를 분노하게 한 3마리의 작은 생물─하나는 애매하지만─들은 이미 그가 내뿜은 포이즌 웨이브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상태였다. 마침 독액도 슬슬 충전이 필요하기도 했고.


포이즌 웨이브가 닿은 부분은 이미 독액으로 인해 녹아내리고 질퍽질퍽해진 상태로 늪지대에 가깝게 되었다. 그것도 독에 내성이 있는 생물조차 들어가면 뼈남 남긴 채 녹아버릴만큼 무시무시한 독늪으로.
무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케찰코아틀 자신 뿐이다.


거대한 날개를 훼치며, 케찰코아틀은 공중을 선회했다.
분노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지나치게 움직였던 탓에 다시 배가 고파졌다. 애초에 작은 생물 2마리를 먹은 게 전부인데다 원래부터 많이 먹기로 소문난 그이기에 고작 그 정도론 간에 기별조차 가지 않는다.
아까 작은 생물들이 들고 가다가 자신에게 공격받는 바람에 떨어뜨린 '조금 더 큰 생물'들이 3개 정도 있었지만, 아마 그것들도 지금의 포이즌 웨이브로 인해 깨끗이 녹아버렸을 것이다.


별 수 없이 돌아다니면서 찾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생각한 케찰코아틀은 곧 밑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사실 날개가 있다곤 해도 이렇게 거대한 몸을 계속 공중에 띄우고 있는 것도 중노동이니까.
케찰코아틀은 바닥에 내려앉았고, 천천히 지르러미를 접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감겨가던 눈이 일제히 다시 떠졌다.

 


접혀졌던 지르러미도 다시 한번 활짝 펼쳐졌다.
케찰코아틀은 입을 벌리고 샤악거리며, 전면을 주시했다.


기분 탓일까. 아니, 다르다.


포이즌 웨이브로 인해 지면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수증기.
그 사이에서, 틀림없이 '무언가'가 움직였다.


아까 그 놈들일까.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오르지만, 머리 한구석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놈들에게는 그것을 피할 방법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 이상한 '검고 하얀 것'이라면 몰라도, 나머지 둘은 틀림없는 늑대와 여우. 그런 것들이 자신의 독물결을 뒤집어쓰고도 살아있을 수 있을 리 없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까. 저 터틀 크랩의 껍질조차도 자신의 독을 견디진 못했다.


그럼에도 만약, 놈들이 살아있다면.


케찰코아틀은 연기 속을 주시했다. 무엇이 나타나서 어디로 이동한다고 해도 놓치지 않도록.
천천히, 연기가 걷혀져갔다. 걷혀져 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독액에 의해 녹아내려 부글거리고 있는 지면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생물들보다 머리가 높은 케찰코아틀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느 한 곳을 기점으로, 독액을 뒤집어쓰지 않은 지면이 있다. ​.​.​.​.​.​.​.​.​.​.​.​.​.​.​.​.​.​.​.​.​.​.​.​.​
사방이 독으로 녹아 부글거리는 가운데, 그 중심부에 있는 일부분의 지면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사했다.


그리고 그 지면의 한가운데에.

 


─흑색의 철덩어리가 서 있었다.

 


흑의 강철.
사신의 관.
흑철의 십자.
블랙 퍼니셔.
다크 세인트 저지먼트.


저 '아래쪽 세상'에서, 무수한 이름을 갖고 있는 무기.
그것이 거꾸로 땅에 꽂혀진 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것이 천천히 땅에서 뽑혀져 나오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기계의 오른팔에서 '펼쳐져' 나타난 '검은 십자'. 형태로 보아선 방패인 것 같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저것은 너무 컸다. 기계가 바닥에 거꾸로 박혀있던 십자를 뽑아내고 팔을 평소처럼 늘어뜨리자, 아래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고 위는 머리보다 높이 올라갔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 크기 이상으로 위력도 굉장했다. 기계가 저것을 바닥에 꽂았을 때, 십자가의 중심부에 있던 푸른 수정이 만들어낸 청백색 장막에 의해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던 독의 물결이 둘로 쪼개져버렸으니까. 그 결과 자신들과 자신들이 서있던 이 지면만은 저 십자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건, 대체…?"
"독액이 닿으신 곳 있습니까?"


기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라이네스의 의문을 끊어버리며 말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저쪽에서는 아직까지 케찰코아틀이 9개의 눈을 번뜩이고 있으니까, 그런 걸 앞에 놓고 고개를 돌린다는 짓은 할 수 없다.
기계의 말에 대답한 것은 디아나였다.


"에, 아니오! 괜찮아요. 저도 라이네스도 안맞았어요."
"… 그렇습니까."


십자가의 중심부에 있는 수정─코어 메탈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청백색의 장막 「에너지 실드」를 흡수하여 거둔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그렇게만 말하고, 기계는 십자가를 오른팔에 장착한 채 걸음을 내딛는다.


"잠깐만?! 설마 혼자서 저거랑 싸우겠다고?!"
"무리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습니다."


두 사람이 걱정하는 이유는 알고 있다. 실제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셋이 덤벼서 이기지 못했으니까. 그런 상대를 혼자 상대한다고 하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것과 동의어다.
… 보통의 경우, 라면.


지금은 조금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때에는 없었던 '여러가지' 것들이, 지금은 있으니까.


"오래는 안 걸릴테니까."


단 한번, 기계는 고개만을 뒤로 돌려 그렇게 말했다.

 

 

 


기분 탓이 아니다.
지금 딱 한번 고개를 돌렸을 때, 잠깐이지만 보였다.


─그의 눈은, 이곳을 보고 있었지만 이곳을 보지 않았다.


보통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시력과 감각을 가진 수인이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그의 눈. 평소의 은빛 눈과는 달리, 금색의 눈동자에 핏빛 자위로 바뀐 그의 눈 속에서.
굉장히 작고, 엄청나게 작은 '문자'인지 '숫자'인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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