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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18화



푸른 빛이 걷히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얼음.
아니, 단순한 얼음이 아니다. 엄청나게 거대한 얼음들이 몇십개씩 쌓이고 교차되고 얽혀서 만들어진… 굳이 말하자면 '성'.
그것을 확인한 기계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아래 쪽에 누워있던 두 사람도 붙잡아 세웠다.


"무사하십니까."
"아, 아니… 우리들보다도 네가…!"


라이네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청백색의 빛이 자신들의 주변을 둘러쌌을 때, 기계는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였다.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여서, 라이네스와 디아나를 감싸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위에서 어떤 공격이 떨어져도, 자신이 받아낼 수 있도록.
실제로 이곳에서 옮겨지자마자 얼음 파편들이 떨어져내렸고, 그것을 전부 자신의 등으로 막아냈다.
기계는 아직 등에 달라붙어있는 얼음조각들을 털어내며 대답했다.


"장갑이 있으니까. 데미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스노우 드래곤 브류나크의 영역, 「코큐토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 이외엔 해당하는 지역이 없군.]


반대쪽에서 눈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성수들도 이 자리에 옮겨져있었다. 청룡과 현무는 몸과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경계 중, 주작의 경우엔 머리부터 눈 속에 파묻혀있었기에 지금 백호가 발목을 붙잡고 눈속에서 끄집어낸 직후였다.


[푸하! 살았다… 여기 눈밭 너무 차거워서 화상입을 거 같아… 아, 감사합니다 보스!]
[방심하지 마라. 여기는 용의 굴 바로 앞이다. 전설로 듣던 것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용의 굴'이라고 하기 보단, '얼음의 성'이라고 불러야할 '건축물'을 바라보며, 백호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때랑 똑같아…"
"라이네스 씨?"
"아니, 나도 전에 왔을 때 설원에서 해맸었거든. 근데 갑자기 빛이 화악나더니 여기더라고."


브류나크는 그때, 그것이 자신이 한 일이라곤 말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 그 일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황상으로 볼 때 브류나크가 한 일이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었으며, 그걸 감안하면 지금 이것도 브류나크가 한 짓일 것이다.
…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산에 있는 사람을, 그것도 이 인원을 동시에 끌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


라이네스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연하다. 말하지 않았으니까.]

 

 

 


또다시 한번, 목소리가 울린다.
이 자리에 있는 7명 중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목소리가.
하지만 머리 속에서 직접 울린 조금 전과는 달리, 지금의 이 목소리는 근처에서 울려퍼졌다.


─카랑.


어둠으로 감싸여져, 안쪽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동굴. 그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7명은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며, 한발짝 두발짝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카랑.


"…… 이거… 발 소리?"


입밖으로 꺼낸 것은 디아나 뿐이었지만, 그 의문은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갖고 있는 의문이었다.
브류나크는 '스노우 드래곤'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 이름으로 추정하건데, 용의 형태를 한 괴수일 터.
하지만 이 발 소리는─


유일하게 놀라지 않았던 라이네스가 말했다.


"아, 깜빡했군. 저 녀석, 이름은 드래곤이지만 전설로 내려오는 거하곤 많이 다르니까 놀라지 말도록."
[… '보통의 드래곤'과 다르다는 건가. 무슨 의미지?]
"지금 나오고 있는 것 같으니까, 직접 보면 알게 될거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 밖으로, 브류나크가 '걸어'나왔다.


─두 발로 걷는, 백은의 드래곤.


[뭐─]
"……"


가장 눈에 띄게 반응한 것은 백호와 기계였다.
백호는 경악성을 흘렸고, 기계는 눈을 크게 떴다. 그나마 두 사람은 반응이라도 했으니까 낫다. 라이네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멍하니 브류나크를 바라보고 그대로 굳어버린 상태였으니까.


"놀라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효과는 없었나보군."
[그쪽은 평범한 반응이다. 처음 봤을 때조차 "듣던 거랑 좀 다른데."가 감상의 전부였던 네가 이상한 것 뿐이야.]


지면부터 그 머리의 높이는 약 8m 정도.
앞발, 뒷발이라는 것보다 팔, 다리라고 불러야할 사지.
도마뱀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에 가까운 역삼각형의 동체.
그리고, 꼬리는 있지만 날개는 없었다.


─여기까지라면, '특이한 드래곤' 정도로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리고 그것은 기묘한 발소리의 원인이기도 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청백색의 아머.
사이즈로 보건대, 원래 몸이 있어야할 장소까지 갑옷이 차지하고 있다.
즉, 저 갑옷은, 육체와 일체화되어있던가 육체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라이네스와 디아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알고 있다.


백호는 패닉을 일으킬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한마디를 흘렸다.

 


[어떻게… '드래곤 타입 괴수를 소체로 한 사이보그'같은 게 여기에 있는거냐…!!]

 


사이보그 제조 기술은 연방에서도 최고 기밀. 혹시 제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여 사이보그가 행동 불능이 되면 자폭하는 장치까지 달아놓는 자들이 연방의 상층부다(물론 그런 게 없어도,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천한 존재'인 사이보그를 사용할 리 없지만). 그렇기에 오직 연방에서만 그 기술을 지니고 있으며,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성수들로서는, 「드래곤 사이보그」의 존재에 경악할 수밖에.


[미지의 존재를 만나는 것으로 생긴 의문과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대들은 나를 보고 놀라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닐텐데.]
[……!!]


브류나크의 말에, 성수들이 반응을 보였다.


[인간의 손에 태어나 괴수의 힘을 얻은 생명들이여. 그대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 목적도.]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군. 우리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열쇠를 얻기 위해 왔다. 따로 보관하고 있다면 문제없겠지만, 당신도 몸 속에 열쇠를 갖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 호오.]


백호의 말에 브류나크가 웃음을 지었다.
보는 입장에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웃음이었지만.


[그대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건가.]
[모른다. 알 필요도 없으니까.]


알고 있는 것은, 단 두가지다.
눈앞의 이 괴수가 자신들의 타겟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어떤 존재보다도 강하다고 하는 것.


눈앞의 이 드래곤 사이보그는 강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몇번 정면에서 싸운 적이 있는 연방의 안드로이드 군단을 합친 것보다도.
이 땅에 도착해서 싸워온, 6체의 '주인'들보다도.
백호 자신과 호각으로 싸운 Z넘버의 안드로이드보다도.


[확실히 그대들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열쇠는 내 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넘겨줄 생각도 없다.]
[그렇다면 힘으로라도 말하게 만들 뿐이다!!]


외치는 순간 백호를 비롯한 성수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백호는 정면에서, 주작은 위에서, 현무는 오른쪽에서, 청룡은 왼쪽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스피드와 파워를 담고 달려들었다.
그것을 맞게 된다면, 설령 '주인'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길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달려드는 건 예의가 아니잖나. 「HOLD」.]

 


바닥에서 올라온 수많은 빛의 끈들이, 성수들을 묶고 허공에 고정시킨다.
주작의 날개도, 청룡의 창도. 현무에 이르러서는 전신이 구속당했다.


'이건, 대체…?!'


백호 역시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가슴과 복부와 목을 묶여 강제로 고정'당했다'.
아무런 매개물도 장치도 없이, 단지 말한마디에. 바닥의 눈밭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빛의 끈'에게 묶였다.
구속계의 능력을 사용하는 초능력자라면 제국에도 있다. 하지만, 백호를 묶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우,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백호의 생체 갑옷에, 혈관과도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단 한순간이지만, 신체 능력을 2배로 상승시키는 「부스트(근력 증폭)」. 체내의 기(氣)를 조작하여 근력이나 타격력을 상승시키는 기술은 '무술' 중에도 여럿 있지만, 백호의 이것은 그것들을 전부 참고로 하여 자기 식으로 어레인지한 물건이다. 로켓의 위에서 기계와 싸울 때, 최후의 헤드 샷을 먹일 때도 사용되었던 기술이다.


그것으로, 빛의 끈들을 끊어버리고 돌진한다.


[그걸 풀어낸건가.]


브류나크는 작은 목소리지만,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F​L​A​S​H​」​.​]​


브류나크의 코앞까지 다가왔던 백호를, 느닷없이 터져나온 빛이 밀어낸다. 백호는 브류나크를 향해 돌진해오던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뒤로 날려가, 얼음의 벽에 부딪히고 떨어진다.
그러나 곧바로 몸을 일으켜, 브류나크를 향했다.


​[​「​P​R​E​S​S​U​R​E​」​.​]​


브류나크가 다시 한마디를 내뱉자, 결국 백호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아니, 백호만이 멈춰선 것이 아니다. 백호를 중심으로 하여, 지면이 직경 2미터 정도의 원형으로 내려앉아 크레이터로 변했다.
─그런데도, 마스크 아래의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고 버텨, 끝끝내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지만.


간신히 한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하지만 내딛는 순간 다른 한쪽 다리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꺾여, 무릎이 땅에 닿기 일보직전까지 내려간다.
그 상태에서 버티다가, 겨우겨우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말로 완고한 남자로군. 그냥 쓰러지는 쪽이 편할텐데도. … 아니, 아니지. 그 의지도 또한 인간의 힘 중 하나인가.]


브류나크는 그 상태로 몸을 돌린다.


"어이, 잠깐. 저들은 저 상태로 내버려둘 생각인가?"
[묶어놨다고 해서 이야기가 안들리는 건 아니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만.]
"… 악취미군."
[무얼. 100년 전 그대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가 확실하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확신이 없어선 안된다고.]
"또 한번 그때처럼 걷어차 줄 수도 있는데?"
[사양하지.]


둘만이 알 수 있는 대화를 나누던 중, 디아나가 손을 들었다.


"… 저기, 라이네스 씨? 지금 그거, 무슨 말?"
"응? 아, 별 건 아니다. 전에 왔을 땐 내가 다짜고짜 턱에다 킥을 먹였을 뿐이지."
[덧붙여서 나는 처음 오는 손님이라 무언가 말을 하려던 순간에 맞았기 때문에 혀를 깨물었지. 그땐 상당히 아팠고.]


… 드래곤 상대로 싸움까지 걸었던가, 이 늑대는.


[우선은 소개부터 할까. 거기의 '인간'들도 잘 듣도록.]


브류나크는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워낙 거체였기에, 그것만으로도 성수들과 라이네스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까지 거리가 벌어졌다.


[이 몸의 이름은 「브류나크」. 이 '설원'땅의 주인인 동시에─ 이 '상자'의 관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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