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19화



​「​상​자​」​(​P​a​n​d​o​r​a​ box).
그것은 이를테면, '대지의 모형'.
천년 전의 「대소멸」로 인해, '인간'과 약간의 괴수를 제외한 모든 생명이 지상에서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수 펜릴과 지크프리트는 「폭력」을 막아내고, 남아있는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펜릴이 먼저 사라지고,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지크프리트도 모습을 감추었다… 인간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펜릴은, 모습을 감춘 직후부터 섬… 「상자」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제국」이 생겨나기도 전이었고 인간들 전체가 서쪽 구석에 모여살고 있었기에, '동쪽'에서 행해진 그 작업에 대해서는 어떤 '인간'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검을 휘둘러 대륙의 일부를 자르고 바다에 띄운 후, 그것을 다시 들어올려 대지에 올려놓고.
그렇게, '육지의 섬'을 만들었습니다.


펜릴은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자신들이… 아니, 자신이 늦게 각성한 탓에, 「폭력」에 의해 멸종되어버린 생명들을.
그래서, 그 육지의 섬 위에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생명들을 '복원'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생명을 빼앗겨버린 대지에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고.
식물들을 되살리고, 초식동물들을 만들어낸 후, 육식맹수들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던 지크프리트도 가끔씩 찾아와 그 '복원작업'을 거들었고, 그 결과 숲이 만들어졌습니다.


펜릴은 다시 볼 수 있게 된 숲을 보고 기뻐하며, 자꾸자꾸 생명들을 복원시켰습니다.
강을 새로 만들고, 늪을 만들며, 초원을 만들고, 황야를 만든 후, 산을 만들고, 설원을 만들고.
그 지형들에 맞춰서 기억 속에 있는 생물들을 복구시키고, 새로운 생태계를 세웠습니다.


'상자'를 만들기 시작한지 10년.
남은 것은, '인간 이외의 인류' 뿐.
펜릴은 가끔 찾아오는 지크프리트와 힘을 합쳐, 멸망하여 사라진 종족들을 다시 부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엘프를 만들고, 드워프를 만들고, 요정과 수인을 만들고, 날개달린 인간들을 만들고. 커다란 인간을 만들고, 작은 인간들도 만들고.


말그대로, '신'.
'갓슬레이어'의 이름을 갖고 있는 그가, 마치 창세의 신과도 같이 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이 지상의 생물이 진화한 초수(超獸).
결코 '진정한 신'은 아니었기에, 그 힘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강력했던 종족인 '드래곤'은 복원시키지 못했고, 펜릴 그 자신의 힘도 「폭력」과 싸울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줄어들었을 정도니까요.


펜릴은 상자의 생태계를 완성한 후, 또 한명의 친구인 브류나크에게 이 섬을 관리해달라고 부탁한 후, 방랑을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인간들이 다시 숫자를 늘리고, 세력을 불리고.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져있던 인간들이, 둘로 쪼개졌습니다.


펜릴과 지크프리트는 다급해졌습니다.
예전의 이 땅은 분명,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종족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 이외의 종족은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상태. '상자'에 있는 인류들도, 균형을 맞추기엔 너무나도 숫자가 적었습니다.


펜릴은 다시 한번 상자로 돌아왔고, 지크프리트와 브류나크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섬을, 인간들에게서 떨어뜨리자고.


펜릴이 섬을 조각하고 지크프리트가 힘을 공급하자, 섬은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뒷발이 생기고, 앞발이 생기고, 꼬리가 생겼으며, 머리가 생겼습니다.
등에는 일곱개의 지역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무수한 생물들을 엎은.
거대한, 거대하고 또 거대한 암석룡의 모습으로.


상자를 등에 짊어진 암석룡은 끊임없이 움직였고, 인간들의 세력권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 에, 또… 그러니까… 그 펜릴이라는 분이 저희들의 하느님인거고 브류나크 씨는 그 하느님의 친구… 라는 건가요?"
[축약하면 그렇게 되는군.]
"전엔 그런 이야기 못들었는데. 상당히 거창한 사람이었군, 당신."
[그때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자리를 옮겨, 브류나크의 성 안.
라이네스를 비롯한 세 사람은 물론이고 성수들까지도 끌려들어와, 강제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 설마, 이 '암석 괴물'을 갓슬레이어와 하늘의 황제가 만든 거였던가…]
"확실히, 그들은 지상의 모든 것을 멸했던 「대소멸」조차 막아낸 이들. 무슨 일을 한다해도 놀랄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합니다만…"


라이네스와 디아나가 '신화'나 '전설'을 듣는 기분으로 받아들인 반면, 성수들과 기계를 비롯한 '지상'조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암석 괴물'.
지상을 떠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자리를 짓밟아 초토화시키는, 거대한 '거북이'를 닮은 괴물을 뜻한다.
등 위에 있는 '지역'만도 길이 80Km, 폭 50Km 이상. 본체의 크기는 그것조차 능가하는, 실로 거대한 '초대형 괴수'.
언제부터 지상을 떠돌기 시작했고,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괴물… 이었다. 지금까지는.


[우리들은 이 위에, 거대한 힘을 가진 고대 병기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왔지만… 오는 것만으로도 고생했지.]


그들이 굳이 '로켓'을 타고 와야 했던 이유.
'섬 괴물'의 등 위는 언제나 거대한 회오리와 폭풍이 몰아치고 있어, 보통의 비행선이나 기구로는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켓정도의 추진력이 없으면, 폭풍을 돌파하긴 커녕 '도로 튕겨져' 지상으로 떨어져내리니까.
하물며 언제나 이동하고 있는 섬 괴물의 등 위에, 대대적인 탐사대를 보낸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런데.
그 골칫덩어리였던 '섬 괴물'을 만든 것이, 세계를 구한 영웅 둘이었을 거라고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말해봐라. 기계로 태어났으면서 감정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
"… 그렇게 길게 늘리지 않으셔도. 아까 사용했던 당신의 '힘'은… 기록으로 전해지는 '마법'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지상의 인간들에게서는 사라져버린 힘.
언어로 된 주문을 외쳐 자신의 정신력을 구현화시켜 "현실"에 반영하는, "섭리"를 일그러뜨리는 힘.
이 '상자'에서조차, 지금에 와서는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그다지 많지 않다. 적어도 '마을'에는 그랬다.


[정답. 그 이외에는?]


그러나 브류나크는, 너무나도 쉽게 인정했다.
자신이 사용한 힘이, 천년도 전에 사라져버린 힘인 '마법'이라는 것을.


[바보같은 소리를─]


백호가 부정한다.
당연하다. 지상의 괴수 중에는, 분명 고대종족인 '드래곤'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괴수들도 있다. 그런 종을 특별히 "유사 용족"이라고 구분하여, 특히 강력하고 위험한 종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괴수'일 뿐 드래곤이 아니다. 특히 지능이 발달한 종은 언어를 구사하거나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브류나크처럼 마법을 사용하진 않는다.


[믿건 안믿건 자유지만, 나는 그대들이 말하는 '괴수'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지상'조는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고,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는 가능성.


"당신은… 설마…"


기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리고,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느건지 알아차린 브류나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지금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소멸」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니까.]

 


유사 용족의 괴수가 아니라.
정말로, 천년 전에 존재했던 고대의 드래곤.


그 환상의 존재가, 자신들의 눈앞에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기까지 해두지. 그쪽의 네 사람. 아까 듣기로 내가 갖고 있는 '열쇠'까지 받아가려고 왔다고 했던가.]
[… 그렇다.]


성수들의 투기가 높아진다.
여차하면, 지금 당장 브류나크를 향해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 '열쇠'가 무슨 물건인지, 정체는 알고 있나.]
[… 아까도 말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 병기'를 움직이는 열쇠라고 알고 있다. 그것을 이용해서 연방을 제압할 생각이지만.]


브류나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상당히 크고, 갑자기 터져나온 웃음이었기에 모두가 흠칫할 정도였다.


[고대 병기라… 그렇군. 그렇지. 그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었군.]
[…… 뭐?]


브류나크는 느닷없이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끝없이 차갑고 냉정한 '분노'.


[가르쳐주지. 너희들이 가지러 왔다는 열쇠는… 천년 전 「대소멸」을 불러온 물건이다.]

 

 

 


[펜릴과 지크프리트는 「대소멸」을 막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일곱개의 폭력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검으로 쪼개도 보고 번개와 불로 태우기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지. 결국 둘은 일곱개의 폭력을 육체와 정신으로 분리시켰고, 육체는 그대로 지상에 묻어둔 후 정신만을 한데 모아서 봉인했다. 그것을 일곱개로 쪼개어 이곳에 있는 '주인'들에게 맡겼고, 그것이…]
"이 자들이 입수한 '열쇠'… 라고 하는거군."
"… 그러면, 여러분들의 목적은… 다시 한번 그 「대소멸」이라는 걸 일으키는 거였나요?"


라이네스와 디아나가 성수들에게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들 자신에게는 「대소멸」 당시의 기억이 없었지만, 그때 멸망했다가 부활한 종족으로서 영혼 레벨에 새겨진 '적개심'과 '공포'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틀려! 우리들은 그런 건 줄 몰랐어! 그냥, 그냥 엄청 강한 무기라고 들어서, 그래서…!]


주작이 당황하면서 외쳤다.
이어서, 청룡이 말했다.


[우리들이 받은 정보로는 '7개의 열쇠로 가동되는 고대의 병기'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 물건이라는 정보는 없었어요.]


현무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기색으로 보아서 다른 둘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선이 백호를 향한다.


[「대소멸」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의 초병기. 그것은 이 '섬 괴물'의 등 위에 존재하고, 또한 7개의 열쇠로 움직이며, 그 열쇠는 '주인'이라고 칭해지는 일곱의 괴수가 지니고 있다. 그러니 열쇠를 입수하고 병기를 가동시킨 다음 제국으로 복귀한다. 그것이 우리들이 받은 임무의 내용이다.]


지상에서 살고 있는 자로서, 설령 천년이나 지난 이야기라고 해도 「대소멸」의 두려움은 뼛속 깊이 새겨져있다.
브류나크가 거짓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했지만… 지금 그가 보여준 힘을 생각하면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자신들을 모조리 죽이는 쪽이 빠른 해결책일 것이다. 즉,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백호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것을 들은 브류나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건 이상하군. 그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온건가.]
[모른다. 정보부에서 나온 이야기를 황제 폐하께서 종합하여 임무를 내리신 거니까.]


청색의 호구 속에 있는 브류나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뭐가 말이지?"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열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이 자리에 있는 그대들과 나를 제외하면 단 두 사람… 펜릴과 지크프리트 본인들 뿐이다. 그대들이 그런 정보를 들었을 때라면 나와 그 둘을 합쳐서 셋. 나는 여기서 한발짝도 나간 적 없고, 다른 둘이 정보를 퍼트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 인간들의 사고 패턴에 의하면, 자신들이 모르는 미지의 장소를 미화하거나 숨겨진 재화같은 것이 있는 비경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닌지?"


기계의 말에, 브류나크는 잠깐 생각해본 끝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야. 「대소멸의 괴물」이 「고대 병기」라고 왜곡됐다는 것만 빼면 거의 들어맞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자세하잖나. 게다가 어느 정도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대들을 파견한 거겠지. 다른가?]
[…… 우리들은 받은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명령하신 폐하께는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긴 하군.]


즉, 어떻게 정보를 입수한 누군가가 내용을 왜곡해서 제국에 전했다.
제국이 행동을 개시하자, 연방도 스파이를 통해 그걸 알고 A넘버즈를 보냈다.


[대충 이야기는 떠오르지만… 문제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 정도로군. 그래서, 그대들은 어떻게 할건가.]


브류나크는 백호를 비롯한 성수들에게 말을 걸었다.
주작과 청룡, 현무는 잠시 동안 서로서로 바라보다가, 최종적으로는 백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만약 백호가, 「열쇠를 빼앗아서 가져간다」는 것을 택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지금 이 자리에서 브류나크에게도 달려들 것이다.


설령 그 끝이, 「대소멸」의 재현이 된다고 해도.
그만큼, 그들이 백호에게 품고 있는 충성심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 「정보가 잘못됐다」.]
"… 응?"
[「A넘버즈는 파괴했으나 이곳은 단순히 섬 괴물의 등껍질 위일 뿐, 고대 병기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이, 내 보고 내용이다.]


백호는, 깊은 한숨을 토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임무를 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국에 충성하기 위해서일 뿐. 제국 그 자체를 멸망시킬 물건을 가져갈 생각은 없다.]


다행이다. 이들과 싸우지 않게 되서. 라이네스와 디아나는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이들이 이야기가 통하는 이들이라서 다행이었다.

 

 

 


"그건 곤란하네요. 여러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전 그게 필요하거든요."

 

 

 


이 자리에 존재할 리 없는 '아홉번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류나크를 포함한 전원이, 목소리가 들려온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루퍼스, 감찰관…!]
"이야, 솔직히 놀랐는데요. 드래곤 사이보그라니, 그 둘도 터무니없는 물건을 만들었다니까요."


나타난 것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 양복 정장으로 몸을 감싼 남자.
제국 특무감찰관, 루퍼스다.


[… 그대는 누구인가.]
"글쎄요. 자력으로 알아맞춰 보실래요? 아, 카메라로 된 눈이라서 좀 힘들려나."


평소와 다름없는 웃음.
그렇다. 지금까지 전투라곤 치루지도 않은 저 남자가.


저, '리얼 드래곤' 브류나크의 앞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소릴 지껄이고 있었다.


[루퍼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당신도 지금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 아니, 잠깐만.]


주작의 외침을 청룡이 끊었다.
그녀는 창을 들어올려 언제든지 내지를 준비를 하며 루퍼스를 바라보았다.


[당신…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이곳까지 워프된 건 우리들 일곱 뿐일텐데.]


그렇다.
'산'에 있는 다크 우드의 영역에서, 브류나크가 워프시켜온 것은 여기의 7명 뿐.


루퍼스는, 그때 함께 오지 않았음에도 여기에 있다.


"뭐, 그건 문제없었는걸요. 전 한번 체크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이동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백호 씨와 저 안드로이드, 둘 중 누구라도 여기에 오면 저도 따라올 수 있는거고."
[─능력자였나? 하지만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능력자라니, 그런 거랑 비교하지 말아주세요, 정말로. 그치만 뭐, 일단 고맙다고 해두죠.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은 이제 없으니까."
[… 뭐?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고 뭐고, 처음부터 전 여기에 오려고 당신들을 이용한 것 뿐인걸요. 일부러 제국에다 정보를 뿌리고, 연방에도 보험 삼아서 제국이 하고 있는 일을 알려주고. 당신들의 원래 감찰관으로 올 예정이었던 인간을 하나 지우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수고까지 했지만… 그 보람은 있었죠. 간신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 네놈은, 대체…?]


여전히 웃음을 띄우는 루퍼스의 앞에서.
브류나크는, 이빨을 드러냈다.


['열쇠가 필요하다'고 했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는건가.]
"다시 한번 「대소멸」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죠. 그쪽이야말로 다 알고 있으면서 일일이 말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귀찮게─"

 

 


「DRAGON HOWL」

 

 

 

포효.
다른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귀를 막고, 무릎을 꿇고, 벽에 기대어버릴 정도로 큰 포효.
대지를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브류나크의 입에서 거대한 에너지의 구체가 발사되었다.
그 크기는 브류나크의 본체와도 거의 비슷. 삽시간에 얼음성의 벽이 부서지고, 입구가 부서지며, 그 뒤에 있는 눈밭이 둘로 쪼개지고, 그 뒤쪽에서 버티고 있던 숲들마저 일부분이 사라져버린다.
사정거리는 조금 짧아도, 단순 파괴력으로 치자면, 블랙 크로스의 크로스 파이어와 동등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지나갔는데도, 루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타났다.


"우와, 위험하잖아요 갑자기."
[… 네놈.]


이 자.
드래곤 하울이 닿기 직전, 모습을 감추었다가.
지나가고 난 후에, 그곳의 '그림자'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굉장한 위력이군요. 과연 「라스트 리얼 드래곤」, 과연 「라스트 리얼 메이지」. 과연─「라스트 드래곤 킹」 알카드론. 정말 강하네요."

 


[?! 그 이름까지 알고 있다고?!]


벌써 수백년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이름이,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여기에는 브류나크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7개의 폭력」에 맞서 싸웠다가 죽은 당신을, 후에 펜릴과 지크프리트가 시체를 회수해서 네크로멘시로 부활시켰죠. 사이보그로 개조한 건, 지크프리트가 연방에서 사이보그 제조 기술을 확립시키는 것을 보고난 다음이었죠. 아니, 그거보다 조금 더 뒤던가…? 아무렴 어때."
[네놈은… 누구냐…?]


신음성을 흘리며, 브류나크는 루퍼스에게 물었다.
하지만, 루퍼스는 반대로 슬픈 표정─연극임이 틀림없는─으로 대답했다.


"어라, 정말 기억 못하시는 건가요? 전 예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는데. 그래… 당신이, 목이 꺾여 죽어버리는 그 순간도 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모자를 벗어 가슴 앞으로 가져온다.
그의 얼굴을 확실하게 본 브류나크의 눈이 커졌다.


[너…!! 네놈…!! 생각났다!! 그때, 「7개의 폭력」과 함께 다니던 인간!! 펜릴과 지크프리트가 「폭력」들과 싸울 때 죽은 게 아니었나?!]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아슬아슬하게 몸을 빼냈거든요. 이야, 그 사람들이 그렇게 강할 줄 몰랐답니다. 덕분에 손해가 막심했죠. 천년이나 시간 까먹어버리고."


루퍼스는 벗었던 모자를 다시 쓰고, 손으로 눌렀다.
그리고… 언제나와 다름없는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뭐, 그런 이야기니까. 여기 있는 전원, 이제 죽어주실래요? 물론 선택권 같은 건 안줄겁니다만."

 

섬 괴물
언제부터인가 대륙을 떠돌기 시작한 거대한 괴물. 실로 거대한 몸을 지니고 있어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으며,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초토화시킨다. 항상 등에는 거대한 회오리와 폭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에 있는 지역만도 전후 80Km, 폭은 50Km 이상이며, 본체는 그것보다도 훨씬 크다. 높이는 발까지 합쳐서 해발 9000m 이상. 엄청나게 거대하다.
단, 높이의 경우 '보이는 부분'까지 추측한 것이기에, 회오리와 폭풍에 가려져있는 부분은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