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작전은 있는 겁니까."
[있다고 하면 있는 거지만,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브류나크의 형태가 변했다.
등에 붙어있던 금속 전각이 늘어나 외골격을 형성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에너지체의 날개를 만들어내 펼쳤다.
[내가 놈의 움직임을 묶고, 데미지를 입힌다. 그 틈을 노려 그대들이 일제히 놈을 공격한다. 작전이랄 것도 없이 단순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지만.]
루퍼스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당연히 가장 강력한 존재인 브류나크일 것이다. 그렇기에 브류나크가 직접 대결로 몰아붙여 루퍼스에게 틈을 만들고, "루퍼스가 신경쓰지 않는 존재"인 나머지 여섯 사람이 일점 집중으로 루퍼스를 공격. 그런 플랜이다.
[이곳에는 괴수급 이상의 존재가 일곱이나 있다. 한꺼번에 달려들면 어떻게든 되겠지.]
단순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
압도적인 존재감과 파동이 담긴, '리얼 드래곤'의 로어.
그것이 설원 지역 전체를 뒤흔들었고, 브류나크는 날아올랐다.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곳에는, 그림자로 만들어낸 날개를 펼친 루퍼스가 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요. 얌전히 마지막 열쇠만 내놓으면 적어도 이 세계가 완전히 멸망할 때까진 살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래뵈도 전 꽤 관대하거든요."
[들을 가치도 없다.]
「DRAGON CLAW」
브류나크의 양 손톱이 청백색의 빛에 휩싸였다.
인간이 무기를 마력검으로 정제하는 것처럼, 자신의 손톱에 직접 마력을 주입하여 일시적으로 마력검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것.
영체도 베어낼 수 있으며, 마력을 집결시켜 만드는 공격인 만큼 적의 마력 방어에도 데미지를 줄 수 있다.
그 양손의 손톱을 휘두르며, 브류나크는 루퍼스를 공격했다. 그리고 루퍼스 역시 날개들을 움직여 그것을 받아냈다.
일격, 이격, 삼격, 사격, 오, 육, 칠, 팔, 구─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나고, 마력과 그림자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그 여파로 인해 주변의 빙산들이 무너져내린다.
'움직임을 묶고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 해도 대충할 생각은 없다. 브류나크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선에서 끝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공격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브류나크는 쉴 새 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마도시대'라고 일컬어진 천년 전에조차 '마법의 극한'이라고 불리는 마법들을 아낌없이.
「ABSOLUTE ZERO」
섭씨 -273.15도의 냉동 에너지포를 발사하여, 표적을 얼려 원자 레벨까지 분해해버리는 극한의 절대동결파.
이것을 사용하려고 했던 인간 마법사가 도시 하나를 영구 빙벽으로 만든 사건은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었다.
「PLASMA JET」
수만도에 달하는 초고온의 입자 가스를 음속에 달하는 스피드로 발사하는 초열의 절대승화포.
조금이라도 제어에 실패하면, 지금 이 설원을 당장에 용암 지대로 바꿔놓을 수 있는 마법이다.
「HEAVENS GUNGNIR」
과거에는 '신의 심판'이라고까지 일컬어진 빛의 마법.
거대한 빛의 기둥을 표적에게 날려, 이 세상에서 존재 자체를 말살해버리는 '신의 창'.
「RUIN CLOUD」
오른손에서 절대영도포, 왼손에서 절대승화포.
두 정반대의 마법을 발사한 후, 다시 오른손으로 '신의 창'.
그 모든 공격을 한 후,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또 하나의 마법을 준비한다.
수억 볼트의 번개, 풍속 100m/s 이상의 폭풍, 자외선 함유 80% 이상의 일조, 영하 90도의 눈보라, 용량 1009mm 이상의 호우, 그 모든 기상현상을 한군데 발동시키고 그것을 구름으로 극한까지 압축한 후 표적을 향해 투척. '구름'은 표적에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켜, 그때까지 가두어두고 압축시켜 파괴력을 증대시킨 '기상 현상'을 한꺼번에 해방시킨다.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 기상이변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지만, 브류나크는 그마저도 완벽하게 컨트롤하여 오직 루퍼스 하나로 표적을 한정시켜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리얼 메이지'라는 호칭을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냉동포에 얼려지고 승화포에 녹아내린 후 신의 창에 꿰뚫리고 구름의 폭발에 휩쓸린다.
브류나크로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지니고 있는 마법 연계. 펜릴과 지크프리트조차 한번 휘말리면 막을 수 없다고 자신하고 있고, 그 두 사람조차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루퍼스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왓, 하하하하!! 굉장해! 굉장해굉장해굉장해 정말로 굉장해! 지금 건 놀랐어요! 아니, 정말로! 진심으로! 엄청나잖아, 지금 거! 대단해요! 고작해야 드래곤 주제에 잘도 이렇게까지! 이러면 아무리 저라도 감탄밖에 할 게 없잖아요! 깎아내리고 싶어도 깎아내릴 구석이 없다고!"
아무래도 루퍼스 딴에는 꽤 '진심'으로 칭찬하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브류나크의 입장에선 신경에 거슬릴 뿐이다.
마법은 눈보라와 하늘을 둘로 갈라버리고, '바깥'과 '이곳'을 구분하는 폭풍마저 뚫어버리며 날아간다. 단지, 그것 뿐. 루퍼스는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스피드로 그것들을 모조리 피해냈다.
─맞추지 못했다.
아무리 세상을 찢을듯한 강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수의 '궁극 마법'들을 동원해도.
눈앞의 적을 맞춰서 격멸하지 못하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천년 전과 똑같다… 마법의 힘만으론, 놈에게 이기지 못하는건가…! 그렇다면!'
어깨가 열리고 허벅지가 열리고 전완부가 열리고 가슴이 열린다.
그 안에 품고 있던 모든 미사일, 모든 탄환이 일제히 발사되어 루퍼스를 노렸다.
물론 그 공격들은 어디까지나 '연막'. 전탄 전미사일의 호우로 인해 루퍼스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도로 또 하나의 마법을 사용한다.
루퍼스의 '그림자 날개'가 수백 줄기로 분열되어 탄환과 미사일들을 쳐낸다.
쳐내고, 쳐내고, 쳐내고, 쳐내고, 또 쳐낸다.
발사된 탄환은 3600발, 발사된 미사일은 650발. 보통의 경우라면 '인간형태를 한 적 1인'에게 쏟아붓기엔 지나치게 많다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특별하니까 상관없다.
그러는 동안, 마법이 완성된다.
「DEATH RECKONING」
지금까지의 마법과는 달리, 표적의 '인과'와 '운명'에 직접 관계하는 금기 주문.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마법술식으로 계산하여 직접적인 공격으로 바꾼다.
상대가 공격에 맞을 가능성, 방어할 가능성, 회피할 가능성, 아예 공격이 닿지도 않을 가능성. 그 모든 것을 '계산'하여, 상대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과 장소에서 '그에 적합한 공격이 만들어진다'.
루퍼스의 등 뒤에서 출현한 공격들은 바야흐로 백여개.
불꽃의 검도 얼음의 창도 빛의 화살도 어둠의 낫도 강철의 손톱도 총탄도 미사일도 레이저도,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된 공격이 일제히 루퍼스를 향해 쏟아진다.
─그것조차도, 수백을 넘어 수천으로 쪼개진 그림자의 날개가 모조리 튕겨내버린다.
공격을 튕겨낸 날개들은 다시 하나로 합쳐져 두 장의 날개로 복귀했다.
"앞의 시야를 막고 뒤로 돌아가 공격. 너무 고전적이잖습니까. 그런 게 가끔 효과적일 때가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진 않겠습니다만."
[… 단순히 네놈이 괴물인 것 뿐이다. 지금까지 이걸 피해낸 건 그 둘밖에 없어.]
마법의 연계도, 금기 주문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한가지 뿐.
「DRAGON CALIBUR」
오래 전에 멸종한 동족들의 뼈와 비늘을 모아서 가공하여 만들어낸 최후의 「용마검(龍魔劍)」.
용의 머리에서 검이 뻗어져있는 형상을 한 이 검이, 브류나크의 오른팔에 장착되었다.
['리얼 메이지'라는 이름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정공법에 파워 게임으로 나가는 수밖에.
경이롭다.
그 말 이외의, 어떤 말로 지금 이 광경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늘이, 물들었다.
이미 설원에 몰아치던 눈보라는 깨끗이 걷혀버린 다음이다.
그 대신, 하늘에는 불꽃과 얼음과 빛과 어둠과 번개가 자리잡았다.
그 속에서, 한 마리의 드래곤과 한명의 「괴물」은 검격을 주고받고 있다.
[… 우리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긴 한건가요, 이거.]
어딘가 꿈을 꾸는 듯한 어조로 주작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들의 아군도 자신들의 적도 너무 굉장하다.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 건 둘째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수준이 너무나도 높다. 어딜 어떻게 봐도, 자신들이 끼어드는 정도로 전세가 변할 것 같진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브류나크가 이기길 비는 쪽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무렵.
「블랙크로스 저지먼트 모드」
블랙크로스는 주인의 조작대로 형태를 바꿨다.
십자가의 하단부가 양쪽으로 열리고, 실체의 검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정정. '검'이 아니다.
검과 비슷했지만 그것은 검이라기보다 거대한 '못' 혹은 '송곳'에 가까웠다.
굳이 표현하자면, 금속으로 된 '말뚝'.
그리고 그 말뚝에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블랙크로스의 에너지만이 아니라, 기계 자신의 에너지까지도.
[이봐, 너─]
"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기계는 눈을 감고 에너지를 모으는데 집중하며 대답했다.
"확실히 '적'은 강대합니다. 현 단계에서조차 코드 「브류나크」와 동등. 숨겨진 포텐셜을 합치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기계 자신에게도, 저런 적을 상대로 싸우는 법따윈 프로그래밍 되어있지 않다.
… 그 이전에, 저런 '괴물'을 상대로 싸우는 상황 자체가 상정되어있지 않았다.
무모, 무리, 무용, 무력. 자신의 힘이, 저 괴물에게 통할지 어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라이네스 씨."
"어, 어?"
"기억하십니까. 처음 제가 마을에 갔을 때, 마을 아이들이 잔뜩 몰려들었던 일."
"……"
잊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날, 자신이 기계를 데리고 마을로 들어섰을 때.
처음 보는 '인간'이 나타났을 때, 많은 아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달라붙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등에 달라붙기도 하고, 뒤통수에 올라타기도 하며, 기계와 함께 지내면서 웃고 떠들고 넘어지거나 다쳐서 울고, 화내며, 기뻐했다.
그 일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디아나 씨."
"아, 네…!"
"제가 처음 마을의 일을 부탁받기 시작했을 때, 기억하시나요."
"…… 네."
처음은, 단순히 힘을 쓰는 노동 뿐이었다.
밭을 가로막고 있는 바윗덩어리를 치우거나, 필요한 나무를 꺾어오거나.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신뢰가 쌓인 이후부터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귀중한 작물을 수확하는 일까지 맡았다.
그 모든 일을, 디아나가 기계의 옆에서 함께 해왔었다. 옆에서 지켜보며, 가끔 함께 일을 돕기도 하면서.
그녀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즐거운 기억들이었다.
"저에게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감정'을 갖게 됐다고 해도, 저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감정들조차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순수한 감정'.
그것은 기계의 가슴 속에서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자라왔지만, 아직 미성숙하다는 것은 변함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이 '작은 감정'조차도, "이것만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계의 눈이 떠졌다.
그 눈은 하늘에서 브류나크와 루퍼스의 격전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곳에, 평소와 같은 망설임은 없었다.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데 힘의 유무는 상관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라이네스를.
이제까지 함께 해와준 디아나를.
그리고, 자신을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받아준 마을을.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그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저 '괴물'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싸우겠습니다. 지금 이 싸움에서의 패배는 결코 용납되지 않으니까."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통용될지 모른다.
그런 사소한 문제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통용될지도 모르는' 작은 힘이라고 해도, 그것으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저 '괴물'에게 검을 겨눌 수 있다.
동료들이 말을 잃어버리고, 침묵에 빠져든다.
그에 아랑곳없이, 기계는 타이밍을 기다린다. 브류나크가 말한 '뛰어들 타이밍'을.
[… 감사를 표하지, 안드로이드. 지키고 싶으면 행동해라, 라고. 그 말그대로다.]
돌연, 침묵이 깨졌다.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백호다.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다.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이라면, 설령 신이라고 해도 이 손톱으로 찢어발길 뿐.]
백호가 몸을 낮춰,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를 한다.
다리의 근육이 평소의 2배 정도로 응축되고, 근력과 속도의 증폭 또한 평소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양 손에 손톱을 만들어내고, 적의 목과 심장을 주시한다. 언제 뛰어들어도 목표를 놓치지 않도록.
"그렇군. 여기서 물러나봐야 결과가 나오길 떨면서 기다릴 뿐이겠지. 그리고 그런 건 성격에 안맞아."
늑대의 여전사가 미소를 띄우며 검을 뽑아든다.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기에, 이렇게 결정적일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전우를 들어올린다.
할 수 있는 한, 최속의 스피드와 최강의 힘으로 적을 찌른다. 오직, 그것만이 그녀가 해야할 일이었다.
"우웅… 전 머리가 나빠서 잘은 모르지만 모두랑 못만나게 되는 건 싫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힘내겠습니다!"
여우의 여인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노래를 시작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해방했다.
'마법'도 아니고, '초능력'도 아닌. 그저, 이 세상 어디에나 퍼져있는 '영혼'들에게 부탁하는 힘을.
[확실히 그렇군요. 제국의 군인으로서, 제국을 위협하는 자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게다가, 보스가 함께 싸운다고 하면 저딴 거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요!]
청룡과 주작이 몸을 움직인다.
붉은 새의 갑옷을 걸친 그녀는 양 팔만이 아닌 전신을 백열화시켰다.
푸른 용의 갑옷을 걸친 그녀는 창을 꺾어, 활로 바꿔서 빛의 화살을 시위에 매긴다.
[…………………………]
말은 할 수 없었지만, 현무의 의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일행의 가장 앞으로 나와서, 몸을 낮춘다.
백호와 비슷해보이지만, 그보다도 낮다. 두 손이 바닥에 닿아있고, 양 무릎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떨어져있다.
숨을 죽이고, 기회를 기다린다.
저 기계의 용왕이 '기회'를 만들어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