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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짐승과 마을 이야기


23화



흔들렸다.
대기가, 지면이, 하늘이.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본다.


─돌아볼,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현무가 하늘로 떠올랐다.
아래쪽에서 걷어차여, 위를 향해서.
그 일격만으로, 현무의 두 팔에 있는 장갑이 산산히 박살나 흩어졌다.

 


다음으로, 주작과 청룡.
공격을 창으로 가로막지만, 공격은 창을 뚫고 청룡의 복부를 후려쳐 날린다.
주작이 만들어낸 화염의 벽을, 수도(手刀)로 잘라낸 후 그 풍압으로 주작을 베어낸다.
청룡은 입에서 피를 토해내고, 주작은 베인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앞으로 넘어졌다.

 


라이네스와 디아나의 차례가 돌아온다.
라이네스의 후두부를 붙잡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트려 안면부터 지면에 꽂는다.
지면이 크레이터를 만들고 함몰되며, 라이네스 자신도 파묻혀버린다.
노래를 부르려던 디아나는 입을 틀어막히고 뒤로 날려가, 빙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졌다.

 


기계의 주먹과 백호의 주먹이 동시에 '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 두 주먹을 붙잡고, 악력만으로 으스러뜨린다.
고통에 찬 표정을 짓거나 신음을 흘릴 틈도 없이, '적'은 두 사람을 붙잡고 휘둘러 바닥에 쳐박고 빙벽에 쳐박고 하늘로 내던진 후, 따라 올라가서 둘을 밟은 채 지면으로 추락, 두 사람은 그대로 크레이터를 만들며, 땅에 꽂혔다.

 

 

여기까지, 불과 10초.
브류나크를 제외한 전원이 침몰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브류나크는 처음으로 '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놈… 그 모습은…!!]


─기계.
전신을, 갑옷으로 감싸고 있다.
인간형이고, 훨씬 작지만.
그 형태는, 브류나크와 같은 '사이보그'였다.
하지만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 특유의 구동음이 '기계'보다 적다. 소리의 크기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부분'이 적다.


[아~ 열받는다고!! 얕보고 있던 벌레들한테 물린 기분이란 거!! 이렇게까지 열받을 줄은 몰랐단 말이지!! 느려, ​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 이 모습이 되고 나니까 하나같이 느려터져갖고!! 이런 놈들한테 한방 먹었다는 게 제일 열받아!!]


투구의 칠흑색 바이저 안에서 빛나는 두 금색눈이 불타오른다.


[네놈… 사이보그가 된 거냐?!]
[다르다고, 멍청이!! 이 내가, 천년 전에 그 빌어먹을 꼴을 당한 내가!! 천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줄 알았냐!! 더 강해지려고 온갖 짓을 다했을 게 당연한거잖아!! 그 늑대랑 용독수리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문제가 없게 말야!!]


브류나크는 감각을 집중시킨다.
─그와 동시에, 루퍼스의 몸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는, '기계'와 같은 개조인간의 쇠 냄새.
그리고 또 하나는─ 키메라클론 특유의 약품 냄새.


[그런, 설마… 스스로를 키메라 클론으로 개조하고, 다시 사이보그가 됐다고?!]
[그걸 이제 알았냐. 애초에 말이지, 제국의 키메라 클론 기술도 연방의 사이보그 제조 기술도 '내'가 만들어서 뿌린 거거든?! 기초만 잡아놓고 뿌린 것 뿐인데 좋다고 달려들어서 알아서 발전시켜주더란 말야, 인간들이!! 그리고 여기 오기 직전에 그 놈들이 발전시킨 기술을 이용해서 이 몸까지 개조했다!! 이제 좀 이해가 되냐!!]


사이보그와 키메라 클론의 전투력은 소체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에, 브류나크 자신도 '드래곤 사이보그'로서 보통의 사이보그보다 월등한 전력을 가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의 이 경우처럼.
소체가 「폭력」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상황이라면…

 


[「DRAGON HOWL」!!]

 


아까의 루퍼스조차 막는 것을 포기하고 피하는 것을 택했던 에너지포가 다시 한번 발사된다.
설령 이 거리라면 직격으로 맞추진 못한다고 해도, 데미지를 주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아까까지의 루퍼스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느려터졌다니까!! 사람 말 좀 들으라고!!]

 


「FORCE CANNON」

 


등 뒤의 아머가 움직인다.
돌출되어있던 부분이 한층 더 튀어나와, 위로 올라와 어깨에 장착된다.
그렇게 나타난 두 개의 포구가, 흑색으로 빛나는 광선포를 발사해 드래곤 하울과 부딪힌다.


흑색의 빛과, 백색의 빛.


두 '힘'과 '힘', '폭력'과 '폭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흑색의 빛이 백색의 빛을 밀어내, 그 주인과 함께 날려버렸다.

 

 

 


새카맣게 그을려진 브류나크가, 입에서 연기를 뿜으며 무릎을 꿇었다.
완전히 쓰러져버리진 않았지만,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을 뿐'. 한 손으론 바닥을 짚고 있다.


[결국 이거란 말이지. 애초부터 나도 그림자같은 거 쓰지말고 힘으로 밀어붙였으면 이 결과가 진작에 나왔을텐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의 루퍼스의 목소리는 격앙되어있다.
─그렇다고 하기보다, 스스로도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뭐… 이걸로 됐나.]


푸슈욱, 하고.
입 부분을 가리고 있는 가드에서, 증기가 뿜어져나온다.
그와 함께, 루퍼스가 두르고 있던 열기도 가라앉았다.

 


방금 전 백호를 날려버릴 때 빼앗았던 6개의 파편.
이제 남은 파편은, 브류나크가 숨기고 있는 1개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위치도 이미 파악했다.

 


[얼음성 밑에다 파묻어놓다니, 어지간히도 정성을 들였구만. 하지만, 그런다고 못찾을 내가 아니란 말이지.]

 


한 걸음, 한 걸음.
루퍼스는 목표를 향해 걸어갔다.


[네놈들에겐 특별히 세상이 멸망하는 걸 지켜볼 자격을 주지! 여기서, 네놈들이 지키려고 했던 모든게 박살나는 꼴을 똑똑히 봐라!!]

 

 

 


─산맥이 움직인다.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산맥이라고 일컬어지는 북방의 영구 설산 레스토니아 산맥이.


움직여서, 일어났다.
대지에서부터 뽑아낸 팔을 휘두르고, 대지에서부터 뽑아낸 다리로 지면을 딛고 일어선다.


어지간히 거대한 도시조차도, 한번 밟는 것만으로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산맥의 거인.
펜릴에 의해 둘로 쪼개져 잠들었던 거인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내려온다.
하늘을 장식하고 있던 구름과 대기가,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구름의 구체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앞의 거인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만큼 거대한 구름.
곧 구름은 그 몸에서 '팔'과 '다리'를 연상하게 만드는 것들을 몸에서 뽑아내고, 그것으로 몸을 만든다.


나타난 것은 '산맥의 거인'과 필적하는 크기를 가진 구름의 거인.
지크프리트에 의해 하늘로 올려보내진 거인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땅이 일어난다.
지면들이 강제로 끌려들어가 한데 뭉쳐지고,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땅이 뭉쳐져, 흙이 뭉쳐져, 돌이 뭉쳐져서.
그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거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부서지고, 지면에서 흙을 끌어와 재생하는 것을 반복하는 땅의 거인.
천년 전, 두 영웅에 의해 땅에 눕혀져버린 거인이, 다시 일어났다.

 

 

 


─바다가 포효한다.
그것은, 바다 전체를 본다면 그리 많은 양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다 전체의 수위가 3Cm 낮아져버렸만큼, 어마어마한 양이기도 했다.


바다에서부터 해안가로 상륙한, 엄청난 양의 해일.
지상에 닿은 해일들은 서로 뭉쳐지고 꾸물거리기 시작하며, 모습을 바꾼다.


만들어진 것은 반투명의 물로 이루어진 바다의 거인.
산산히 부서져 바다 전체에 흩뿌려졌던 거인이, 다시 한번 포효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어서라,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셀​레​스​티​얼​(​c​e​l​e​s​t​i​a​l​)​!​!​ 천년 전에 다 끝내지 못했던 일을, 지금이야말로 완전히 끝내도록 하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루퍼스는 완성된 열쇠를 들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비록 '빛'과 '어둠'과 '생명'의 거인이 아직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얼마 뒤에 깨어날테니까 문제없다.
이제는 설령, 그 옛날의 펜릴과 지크프리트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문제없다. 그땐 「7개의 폭력」만이 그들과 대적했다가 패배했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자신도 있으니까.


이제는 아무도.
이 두번째 「대소멸」을 막을 수 없다.

 

 

 


[… 인데 말야.]


루퍼스는 느닷없이 웃음을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블랙크로스로 몸을 지탱하고, '기계'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야, 정말 끈질기구나. 진짜로 끈질겨. 뭐… 너를 보험으로 선택했던 몸으로선 그렇게 끈질긴 게 기쁘기도 하지만 지금은 좀 짜증나는데.]


오른손을 들어, '기계'를 향했다.
앞으로 내지르며 손바닥을 펼치자, '기계'의 몸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도, 쓰러지진 않았다.


[하핫, 굉장한데. 아직도 내 앞에서 버티고 서있단 말이지! 정말로 멋져! 멋지긴 한데… 이제 일어나서 뭐하겠다고?]


'열쇠'가 부활하고 「폭력」들이 일어났다.
이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설마해서 묻는건데, 나를 쓰러트리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아, 뭐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말야. 너 어딜봐도 너덜너덜이잖아? 이길 수 있을 턱이 없다고?]


─챙강.


아랑곳없이, 한발짝 앞으로 걸어간다.


─챙강.


또 한걸음.
그것을 지켜보던 루퍼스가 말을 멈춘다.


─챙강.


세 걸음째를 걸었을 때, 루퍼스는 다시 한번 폭발했다.


[이, 버그 자식이이이, 짜증나게 굴지 말란 말야!! 이제와서, 인간 손에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하나가 뭘 하겠다고!!]

 

 

 


확실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성은 승산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도 남아있지 않다고, '계산'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할 수 있는 일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 할 수 있는 일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이성'이 아닌 다른 것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 했으니까요."
[… 뭐?]


그리고, '기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소리로 외쳤다.

 


"지킨다고, ​결​심​했​으​니​까​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승산이 남아있지 않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자신은 아직, 움직일 수 있다. 발버둥칠 수 있다.


계산이나 확률따위, 자신이 알 바 아니다.

 


본래라면 존재할 리 없는 감정이 태어난 '기계'의 가슴은 지금 전에 없을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버그가, 아까 내가 말한 걸 뭘로 들은거냐!! 네가 갖고 있는 감정따윈 내가 네 프로그램을 손보다가 얼떨결에 나온 '버그'라고!! 그딴 게 뭐 어쨌다는거냐!!]

 


시끄러운 건 네 쪽이다.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기계'는 그렇게 대답했다.


버그로 만들어진 감정.
본래라면 존재하지 않아야 정상인 감정.


그래도, 상관없다.


버그로 만들어졌든, 없는 것이 정상이든.

 

 

─지금, 자신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이것'은, 틀림없는 ​'​진​짜​(​R​e​a​l​)​'​다​.​

 

 

머리는 냉정하게, 해야할 일을 결정한다.
가슴은 뜨겁게, 각오와 결심을 다잡는다.

 

 

지금, 이 순간.

 


기계는, 설계도로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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