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 Down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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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 경치는 변함이 없군.'
기지로 돌아가는 T3급 우주선 안의 개인실에서 창 밖을 무심히 보며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서리가 약간 낀 듀러글래스 창 밖으로는 별의 바다가 눈이 인지할 수 있는 한도까지 저 멀리,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주. 고래로부터 무한함의 상징이자,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나가면 확실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탄생의 대지, 지구 (Terra) 에서 수많은 행성계로 뻗어나가면서 인류 사이의 분쟁은 지난 역사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으나, 인류는 아직까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버리지는 못 한 모양이다.
니콜라이는 곧 기지에 도착한다는 예정을 알리는 무성의한 합성 여성음을 들으면서 꺼내 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동하는 동안 기분이 괜찮으면 읽는 책 - 정확히는 수정결정판 - 과 가족, 그리고 아내의 사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식명칭 FSLAR-02M - 사람들 사이에선 Aunt Lassy라고 불리는, 연방의 제식 라이플 - 을 가진 뭉툭한 검은 메탈릭 색의 물체를 집어들었다.
총. 지구에 있을 때 부터 우주로 나왔을 때 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 만능, 만국 공통의 언어.
지난 날의 작용/반작용 원리를 사용한 물건들에 비해선 상당히 진보된 방식이지만 그 역할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 역할을 좀 더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마지막 손질을 간단하게 끝낸 다음 선내에서 충전한 배터리와 같이 라이플을 숄더 백에 넣은 후, 지퍼를 닫고 백을 어깨에 올린 니콜라이는 반대쪽 손에 책과 사진 등 개인물품이 든 가방을 들고 문을 연다. 아직 충전이 안 된 배터리는 '나중에 목적지에 있을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 해 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직은 아무도 없어 한산한 복도를 지난다.
니콜라이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하나 뿐이다.
긴 복도 끝, 군용 함선 치고는 넓찍한 휴게실 - 주 출입구와 바로 연결되는 '로비'의 역할을 겸해서 그런 게 아닐까, 라고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 에 다른 남성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일어난다.
코드 네임 그레이. 연방 안전보장이사회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보낸 사람이다. 아마 안전 이사회는 니콜라이의 능력을 꽤 높게 산 듯 했다. 니콜라이보다 더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 직접 찾아와서 요청을 할 수준이었으니까.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얼굴(과 첩보원처럼 들리는 코드네임)과는 다르게 그레이도 전직 특수부대 요원이다. 비록 다른 부대에 있었지만 동업자라는 점이 작용했는지 니콜라이와 그레이는 꽤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 미션에서도 약간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 점 - 원래 그레이는 니콜라이의 실력만 볼 예정이었으나 미션의 마지막 순간 있었던 돌발상황 중 직접 뛰어들어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도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닉 (Nick, 니콜라이의 애칭), 결정은 내렸나?"
"아마도. 어짜피 이번 미션을 끝으로 전속이 결정되어 있었으니 마침 좋은 기회였지. 확실히 처음에는 좀 의심스럽긴 했지만-"
니콜라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그레이도 그에 맞게 약간의 웃음을 흘렸다. 둘 다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믿어 볼 수 있을 것 같군."
"고맙네. 솔직히 말해 약간은 불안했었거든."
"레이가 불안해 할 정도였나, 우리는 서로를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니콜라이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그레이를 괴롭힌다.
"크윽, 그 손은 치우고 이야기하자고. 이해와는 별개로 그건 자네의 결정이니까 말이지. 자네 상관들이 뜯어말릴지도 모르는 것이었고."
"상관? 이제 기지에 도킹하면 더 이상 상관도 아닌데?"
약간 빈정거리는 어투다. 고개를 저으면서 그레이가 말한다.
"...그건 아니지. 일단 서류 수속은 완료해야 할 것 아닌가."
"딱딱한 녀석. 하긴, 그게 너의 좋은 점이기도 하지."
"...칭찬이라고 생각하겠네."
니콜라이와 그레이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서 도착지에 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난다. 그 중에는 니콜라이의 동료도 있다.
"어이, 니키. 미트스핀은 조심하라고."
"뭔 소리야, 이 [삐-]. 그건 오히려 니랑 델린저가 조심할 거 아닌가?"
"시끄러워. 하긴, 델은 이름이 좀 그렇긴 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케인즈 상사님. 그 쪽 취미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레이가 정중하게 대답한다. 얼굴은 코믹 그 자체지만.
"뭐, 한 번 놀려 본 거라고. 그나저나 정말로 니키를 가져 갈 생각인가?"
케인즈라 불린 남성이 확인하듯이 물어 본다.
"아아. 내 결정이야."
니콜라이가 대답한다. 그와 함께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어짜피 이제 도킹하면 나나 니키나 델이나 스크류 - 선 스류의 애칭이다 - , 모두들 뿔뿔히 흩어지니까."
"켄은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과 같이 산다고 했나?"
"아아. 우리 부모님은 좀 오래 사셨으니까."
"그래, 연세도 오래 되셨는데다가 걱정도 많이 끼쳐 드렸으니 이제 좀 같이 있어 드려야지."
니콜라이의 표정이 미묘해지는 것을 케인즈는 놓치지 않는다.
"미안하네, 니키는 이런 대화는 좋아하지 않았지."
"아니, 괜찮아. 이미 다 지난 일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그와 함께, 휴게실 창으로 보이던 태양이 거대한 우주 구조물에 가려지면서 우주선 안이 약간 어두워진다.
"...거의 다 왔군."
니콜라이가 중얼거린다.
"그래, 우리들의 여정도 여기서 끝인 거지."
케인즈가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델은 어찌 하기로 했나?"
니콜라이가 케인즈의 뒤에 서 있는 연약해 보이는 청년을 보면서 묻는다.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같이 묵을 예정이야. 너도 알다시피 이 녀석은 당장 갈 곳이 없잖아?"
청년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말은 없다.
"...확실히 미트스핀은 네가 조심해야겠군, 켄."
케인즈와 델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물론 그 둘은 그런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서로를 형과 동생으로 부르는 사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배의 앞 부분에서 문이 열리면서 그들의 상관 - 곧 아니게 되겠지만 - 인 스티븐 소령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수고가 많았다, 제군들."
다들 소령을 쳐다본다. 항상 위엄이 넘치고, 절도있게 그들을 압도하던 어깨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령도, 속된 말로 하자면, 잘리는 것이다.
잠시동안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다들 소령에게 경레를 한다. 니콜라이도 마찬가지다. 소령과는 지금까지 의견 대립이 종종 있었지만 서로서로 그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령은 이런 때 연설같은 건 잘 하지 못 한다. 아니, 처음부터 연설같은 건 잘 하지 못 했다. 언제나 행동으로 보여주던 남자였으니까.
적어도 마지막은 이렇게 보내 주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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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다섯명이 다였다는 거군. ...해체는 정말 시간 문제였던 거네."
화려한 공중 광고가 위를 날아다니고, 양 옆에서는 홀로글래스가 제품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넓은 상점 아케이드를 걸어가며 그레이가
"인정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그놈의 무인병기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없어지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오토마톤이 효과가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리고는 니콜라이의 표정이 찌푸려지는 걸 보면서 덧붙인다.
"물론, 나도 오토마톤은 싫어하지만. 반응 속도는 확실히 빠르긴 한데 너무 위험하다고. 최근 연방 정부는 너무......조급해 하는 것 같달까."
"...어이, 그래도 널 고용하고 있는 곳이라고?"
"닉도 마찬가지지. 뭐, 연방의 모든 곳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게 바로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지만."
"그건 그렇군. 하긴, 서로서로 인정하기 싫겠지."
"뭐, 정치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연방으로서도 정말 중요한 곳에는 오토마톤은 투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으니까, 어짜피."
늦은 시간 - 이라고는 해도 우주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행성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밤과 낮의 구별에 따르기보단 시계에 맞춰서 부르는 거지만 - 이라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가며 둘이 대화한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휴가철이라는 게 인적이 드문 이유에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하필 휴가철에 훈련인가, 그 곳은? 어짜피 할 일도 없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겠지?"
니콜라이가 약간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본다.
"...그렇지 않길 바라고는 있어. 나도 그 곳은 생소한데다가, 그 쪽도 이번이 개장 후 처음 하는 훈련이니까. 다만 원래는 이렇진 않을 거라 믿고 있네."
"그런 상태로 잘도 나를 꼬셨구만."
니콜라이는 쿡, 하며 웃는다.
"서류상으로는 이미 전부 완성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이미 말했다시피 이런 일 형식은 우리가 아마 처음이 될 거야. 성공하면 원할 때 까지 계속 일 할 수 있지. 어디까지나 성공할 때 이야기겠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휴가철에도 훈련하는 것이지 않나. 뭐, 난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군."
코너를 돌면서 이야기한다. 방금 좀 예쁜 아가씨가 지나갔는지 니콜라이의 눈이 그 쪽으로 돌아간다. 그레이는...잠시 흘긋 보더니 다시 주위를 둘러 본다.
"...다들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어. 어짜피 휴가 기간이 조금 달라지는 것 뿐이니까. 오히려 전체적으로 보면 휴일도 늘어나고 추가수당도 주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한데."
"그것도 확실히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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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스테이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 니콜라이는 죽은 아내의 기일에 쓸 선물을 샀다 - 민간항으로 자리를 옮겨서 케르니언 행 특급우편선에 탑승했다. 총기류는 따로 검사를 받아 밀폐 컨테이너에 넣었다. 어짜피 전속했다고는 하지만 신분은 여전히 연방 군인이라 그 부분의 수속은 큰 문제가 없었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도 했고.
"레이. 너의 일처리는 정말 마음에 들어."
"칭찬은 무슨. 원래 이게 당연한 거지. 그래도 민항선에 무기를 들고 타는 건 좀 찝찝하다만."
"...민간인은 아무도 몰라. 문제 없을 거야."
"..."
그런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몰래몰래.
출발 시각이 다가오면서 그들 주위의 좌석이 차기 시작했다. 뒷부분으로 빈 자리가 드문 드문 남긴 했지만, 앞 부분은 거의 만석이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 행선지인 케르니언에 대한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비록 몇 시간 안 되는 항해겠지만 선잠에 익숙해 진 그들에게는 충분한 휴식 시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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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니언 스테이션은 붉고 푸른 쌍성을 공전하는 네 번째 행성과 그 달의 사이 - 정확히는 라그랑쥬 지점 - 에 건설된 거점 중계형 상업 스테이션으로 그 크기나 디자인에서 가히 케르니아 행성연합이 연방 내에서 가지는 중요한 위치를 짐작하게 해 주는 훌륭한 건조물이었다. 크기 만큼이나 역사도 오래 된 편이라 실제 주거구나 상업지구도 여러 군데로 나뉘어 있어 시대에 따른 변화상을 느낄 수도 있었다. 물론 이 스테이션을 거치는 대부분의 인원은 유동인구로, 그들은 모든 곳을 둘러 볼 시간은 가지지 못 했지만.
니콜라이와 그레이도 마찬가지였다. 특급 우편선에서 내려 수화물을 인계 받은 다음 정부 전용 플랫폼으로 향한 것이 그들이 이 스테이션에서 했던 전부였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켈 2지구라도 가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정작 휴가인데도 못 가다니..."
니콜라이가 그레이에게 푸념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아까는 괜찮다고 했으면서, 정작 앞에 기회가 있으니 역시 아까운 모양이다.
"어짜피 훈련이 끝나면 다시 여기로 와야 할 텐데, 뭘 그리 걱정하나, 자네는. 스테이션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다 알면서 말하는군."
"이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니었나?"
니콜라이가 뭐라 말하기 전에 카운터의 안드로이드가 인사한다.
"좋은 저녁입니다. 이 곳 부터는 관계자만 출입 가능합니다만, 두 분은...?"
그레이가 자연스럽게 카드를 꺼내 든다. 이렇게 행동하는 걸로 자신이 관계자라는 걸 보여 주고 또한 신분증 및 개인 DB역할을 하는 카드와 서버가 통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카드는 주머니에 있어도 되고, 얼굴이나 홍채 인식 또한 가능하겠지만 굳이 이런 고전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도 이 곳의 특징이다.
"...확인하였습니다. 안내등을 따라 가시면 준비된 이동정에 탑승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바닥과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된 안내등이 표시된다) 짐은 자동으로 짐칸에 이동될 예정이니 그냥 놓고 가시면 됩니다."
어짜피 알아서 지금까지 두 사람의 뒤를 따라오던 짐이었다. 별로 상관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은 안내등을 따라 걸어가면서 아까 말하던 대화를 계속한다.
어짜피 그들도 짐이 자동으로 화물칸으로 이동하는 도중 스캔 될 거라는 건 알고, 그것이 형식적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나저나 그냥 직행선을 수배해 줬으면 편했을 텐데 말이지."
그레이가 정말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동정에 발을 디디었다. 니콜라이도 동의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레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의외라는 표정 또한 짓고 있었다.
"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귀찮은 건 귀찮은 거라고, 닉. 왜 이렇게 되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음에도 직행선이 없는 건 정말 불편한 일이야."
이동정은 대략 6-8명이 탈 만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T3급 수송선이나 특급우편선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였다. 통로도 하나 뿐이고, 생각보다 천장도 낮은 편이라 머리가 부딫히지 않을까 신경을 써야 할 정도이다.
어짜피 스테이션과 달 사이를 자동으로 운행하는 무인기다. '비정기선이기도 하니 굳이 클 필요는 없었겠지', 라고 니콜라이는 가볍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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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추진 및 감속 후 이동정은 달 표면의 어딘가에 안착했다. 정확히는 기지 안이겠지만. 이제부터 몇 주간 여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훈련 및 검정을 받을 것이다.
일단 구조물 자체는 오래 되어 보였지만 군데 군데 새로 만들거나 덧붙인 모습이 보였다. 듣자하니 훈련실은 완전히 새로 만들었고 주거지역도 리모델링을 거쳤다는 것 같은데...
"...미묘하게 엉성하달까, 불안불한한 느낌을 주는군."
니콜라이가 운을 뗐다.
"워낙 급하게 만들어 진 기지니까. F섹에서도 새로 기지를 만들고 싶진 않았겠지... 안타깝게도, 사실을 말하자면 원하는 바와는 달리 여기와는 다른 기지를 이미 만들고 있다는 것 같지만."
"...호오?"
그레이의 대답에 니콜라이의 눈썹이 잠시 올라갔다 내려갔다.
"굳이 그 쪽으로 보내지 않고 이런 곳으로 먼저 보낸 이유라도 있나? 아직 미완성이라 그런가?"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일단은 새 기지가...음, 말할 수 없네."
그레이는 잠시 표정을 찡그린다.
"...블랙인가?"
니콜라이 표정이 진지해진다. 물론, 그도 이 질문에 대해 답은 없으리라는 건 안다.
그레이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서 있다가, 화제를 돌린다.
"일단, 배도 고프니 이 곳 식당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한 번 구경하러 가 보세나."
"...그러지. 군데리아보다 맛이 없기만 하면 차라리 직접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 이 상태를 보면."
두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앙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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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장 작업이 다 끝나지 않은 것인지 카페테리아로 향하는 복도는 군데군데 마감 자재들이 쌓여 있고 벽 판이 없어 배선이 드러난 부분도 보였다. 전체적으로 회색 톤을 가진 복도를 걸으며 두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거 참,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역시 서류작업이라는 건 믿을 수가 없구만."
니콜라이가 먼저 운을 떼었다.
"이쯤 되면 담당조사관에게...아...//의혹//이 생길 수 밖에 없겠군."
그레이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
"그래도 방해물이 있다 뿐이지 바닥 작업은 완료된 것 같으니, 그 부분만큼은 칭찬...해 주어야 하려나?"
약간 비아냥을 담은 니콜라이의 말에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하며, 그레이는 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반들반들 거리는 얇은 판 - 1회용 스탠더드 결제칩 - 을 두 개 꺼낸다.
"그러고 보니 닉, 아직 식권은 구하지 못 했지?"
닉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레이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칩을 본다.
"...무선결제가 되지 않는 건가?"
"아. 업체 선정이 늦어져서... 그냥 민간업체에 맡기면 될 것을, 대체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자, 여기 받게나."
그레이가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칩 하나를 니콜라이 방향으로 튕긴다.
"거 참. 역시 공무원 놈팽이들은..."
니콜라이는 가볍게 오른손으로 칩을 받고는 그 위에 새겨진 마크를 살펴본다.
"...F...SComm... UB? 보통 식권이 이렇게 화려한가?"
그레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린다.
"설마, 식권 만든다고 예산을 다 썼다거나?"
니콜라이가 반쯤은 농담삼아 묻지만, 그레이는 굳은 얼굴로 답을 하지 않는다.
"...진짜냐."
"그런 소문이 돌긴 하네. 듣기로는 이 칩, 꽤 실력있는 공학자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 원 참... 기지는 이 모양인데..."
"일단, 도착한 것 같군."
그레이가 앞을 본다. 니콜라이도 따라서 앞을 주시한다.
그들의 앞에는 사람이 없이 횅하니 바람만 불고 있는 - 실내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공조설비에 의한 바람이겠지만 - 가로 서른걸음, 세로 쉰 걸음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조명은 밝은 편, 새로 마감을 한 것인지 바닥과 벽은 새 것 특유의 반질반질함과 깨끗함을 보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음식이라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낚였나?"
니콜라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린다.
"식권도 보내 주었는데 그럴 리가...아."
그레이가 말을 하다 말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왼쪽의 문 - 아마도 주방으로 통하는 문인 것 같다고 니콜라이는 판단했다 - 이 열리며 표정이 없는, 단아한 모습의 여성이 걸어나온다.
"두 분이십니까?"
억양이 없는 목소리. 인간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무미건조한 느낌을 준다.
"...종업원이십니까?"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어본다.
"예. 13일 7시간 전부터 이 곳의 안내를 맡게 된 LAAF-01입니다. 편하게 라프라고 불러주십시오."
"...안드로이드인가."
"예. 주방장님께 두 분을 모셔 오라고 명령받았습니다."
"쉐프가? 직접? 의외군."
그레이가 눈가를 위로 올린다.
"이용자가 많이 없기 때문에 바로 만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흠. 뭐, 기대해도 좋겠지."
니콜라이가 끼어들어 말한다.
"그럼 이 쪽으로..."
여성은 끊김 없이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며 다시 주방 쪽으로 향했고, 니콜라이와 그레이는 그 뒤를 따랐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오랜만이네."
정리정돈이 깔끔하게 잘 된 주방의 테이블 사이를 걸으며, 니콜라이는 운을 떼었다.
"음? 취사-"
그레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그들을 환영한다.
"어서 옵쇼, 양반나리들. 당신들도 나처럼 낚인 거요?"
붉은색 액체가 흘러내리는 고기...로 보이는 것을 잘게 다지다가, 험상궂은 얼굴을 가지고 왼쪽 팔에 프라이팬...과 부침개 문신을 한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은 '우리 모두 바보군요?'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좋게 말하면 꾸밈없고, 나쁘게 말하면 쉽게 싸움에 휘말릴 것 같다.
"...부정할 수가 없네요, 쉐프씨."
그레이가 웃는 얼굴로 되받아친다.
"뭐, 어짜피 돈만 제때 제때 나오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쇼, 거기... 전직 우주군 해병 양반?"
"...뭐?"
니콜라이가 놀란 얼굴로 반문한다. 그레이도 의외로 눈초리를 가늘게 뜨며, 주방장과 니콜라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쉬운 일이야, 쉬운 일. 거기 그 옷 사이로 보이는 셔츠, 연방군 강습해병에게만 지급되는 제식셔츠거든. 게다가 셔츠 목덜미와 당신 목덜미를 보면 뭔가에 자주 눌렸다는 걸 볼 수가 있지. 그건 할시온 헬멧을 쓰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특유의 사인이야. 더군다나 최근 연방군은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가장 먼저 강습해병을 해고하기 시작했지. 그렇지 않소?"
"...당신 요리사 맞소?"
니콜라이가 충격에서 벗어나서 묻는다.
"아아. 정진정명 30년 넘게 요리만을 바라봤지. 내 몸은 지금껏 만든 음식으로 되어 있어. 요리도구는 나의 뼈, 요리재료는 나의 피. 수많은 주방을 거치며 단 한 번도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은 없었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요리사가 맞나 보군."
니콜라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주방의 테이블 위에 걸터앉으려 한다.
"동작그만! 거기에 앉으면 더러워지잖소."
주방장이 팔을 흔들며 니콜라이를 멈추게 한다.
"실례했군. 그나저나, 설마 요리를 서서 먹으란 말이요?"
니콜라이의 물음에, 주방장은 자신 오른편 뒤를 가리킨다. 니콜라이가 걸어가 보자, 커다란 냉장고..로 보이는 물체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간단한 좌식 공간과 상이 보인다.
"...아아. 과연."
"거기 앉아서 기다리쇼. 금방 구워서 대령할 테니. 아, 물론 돈은 들고 오셨소?"
그레이가 주방장에게 식권을 튕긴다. 주방장은 한 손으로는 칼로 고기를 다지며, 다른 손으로 그걸 잡아 보더니, 다시 그레이에게 던진다.
"이런 거 받아서 어찌 하게. 그냥 외상으로 달아 둘 테니 나중에 주시오."
"잠깐, 식권을 못 쓰는 건가, 설마?"
그레이가 반문한다.
"그거. 일반적인 기기로 읽을 수 없더군. 대체 뭐 하는 에너지칩인지 모르겠지만, 리더기가 없는데 어떻게 사용하란 거요."
그레이와 니콜라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쿡, 하며 웃음을 터트리곤 한숨을 쉰다.
"...양반나리도 힘들겠구먼. 뭐, 걱정하지 마쇼. 어짜피 하루이틀만 볼 사이도 아니고."
다져진 고기를 플라스마 불판에 올려놓으며 주방장이 덧붙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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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니콜라이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하는 그레이와 헤어져 배정받은 방으로 왔다. 의외로, 숙사는 제대로 완성되어 있는 듯 했다. 하긴, 여기까지 엉망이었다면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을 진지하게 재고해 봤을 것이라고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후우..."
짐을 바닥에 둔 다음, 털썩, 하고 하얀 시트 커버와 가벼운 파스텔톤의 이불이 덮인 침대에 누으며, 니콜라이는 길었던 하루를 회상했다.
"과연 잘 된 일일까..."
혼잣말을 하며 니콜라이는 잠시 뒤척이다가 몸을 일으켜 방을 살펴봤다. 방은 깔끔한 편으로, 1인실 치곤 꽤 넓은 듯 했다. 침대 맞은 편에는 접이식 듀랄루민 책장이 있었지만 책이 한 권도 없어 휑하니 서 있었다. 왼쪽으로는 책상과 의자가 보였으며, 보급품 치곤 괜찮은 품질인 듯 했다. 무엇보다, 등받이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 니콜라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흠. 앉아 볼까."
훌쩍, 하고 일어선 니콜라이는 의자를 꺼내 앉아 보았다. 그 동안 주어진 개인실에서 쓰던 의자와는 확실히 감촉이 달랐다.
"...잘못하다간 잠들어버릴 정도군."
중얼거리며, 니콜라이는 무의식중에 팔을 팔걸이에 올리며 손으로 팔걸이의 아래를 두드렸다.
그 순간, 천장에서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양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며 검은 바탕에 하얀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장면이 나타났다.
우주 공간.
순간적으로 니콜라이는 몸을 긴장시켰지만, 이내 몸을 풀었다. 그와 우주공간 사이에는 단단한 듀러글래스 창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쓸 데 없는 곳에 정성을 들였군, 이 곳은. 이러면 방어에 취약한데."
니콜라이는 '하늘'을 올려보며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곧 그는 얼굴을 풀며 눈을 감았다.
"뭐, 운치는 있을지도..."
그리고, 곧 방 안에는 코를 고는 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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