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ε-α 0: Prelude


Chapter 03 Once upon a red moon


---*--- ---*--- ​-​-​-​*​-​-​- ​

"과연.  ​구​룡​씨​였​나​.​  후우.  사람 간 떨어지게 하지 말게, 레이.  안 그래도 요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니콜라이가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려다가 그레이의 해명을 듣고는 대답했다.

"제가 뭔가 잘못 했습니까, 중사님?"

"아니.  문제 없네, 하사."

"카페테리아를 비우는 건 여기 그레이 양반의 아이디였다네, 해병 양반."

그레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니콜라이를 바라봤다.

"됐네, 됐어.  ​솔​직​히​,​ 난 구룡씨가 여길 버린 줄 알았지."

"어허, 해병 양반.  난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오."

구룡이 조금은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반발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생각 할 만 하긴 했습니다."

에렌마이어가 케잌을 떠 먹으면서 말했다.  아무도 여기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도 늘어나고... 이 추세면...음, 1년 뒤면 카페테리아로 옮겨야 되겠소."

구룡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웃지 못 했다.

"...그거, 농담 맞죠, 쉐프씨?"

그레이가 억지로 하, 하, 하, 웃는 표정으로 되물어보았다.

"뭐, 좀 더 빨라 질 지도 모르-"

니콜라이가 머그잔에 든 음료를 슉, 들이킨 후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과 진동 후,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주방의 불이 '퉁'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나갔다.

잠시 후,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네 남자는 일어서서 주방 바깥으로 나간 후였다.

---*--- ---*--- ​-​-​-​*​-​-​- ​

"첫날부터 실전 테스트라니, 화끈한 곳이군요, 여긴!"

에렌마이어가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닐세, 하사."

니콜라이는 에렌마이어를 쳐다보지 않은 채 복도의 붉은 비상등에 의지하여 무기고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뒤를 다른 세 명이 근소한 차이로 따라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들 이외에는 인영이 보이지 않았지만 굳은 표정을 한 니콜라이도 싱글싱글 웃는 에렌마이어도 눈만큼은 예리하게 이곳 저곳을 훑고 있었다.

“헌데 이 곳은 그래도 기밀사항에 속하지 않았던가, 레이?”

니콜라이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며 그레이에게 물었다.

“모르겠네.  하지만 그 이전에 기밀사항인지보다 이렇게 기지에 공격을 올 간 큰 놈들이 있다는 게 더 놀라운 것 같은데, 닉.”

니콜라이는 그레이를 오른쪽으로 훔쳐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달렸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무기고일 터였다.

불현듯, 니콜라이가 멈춰섰다.  다른 세 명은 의아해하면서도 바로 멈춰서고 경계 자세를 취했다.

“…격벽이 내려와 있군.”

니콜라이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요, 중사님?”

에렌마이어가 미소를 지우며 물었다.  하지만 그도 이미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먼 길을 돌아가거나, 여길 뚫어야 한다는 거지.”

“후자는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진 않군요.”

에렌마이어가 단단한 플라스틸 벽을 콩콩 두드리며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레이가 벽면의 판을 익숙한 솜씨로 뜯어냈다.

“…휘유.”

에렌마이어가 휘파람을 불다가, 니콜라이의 따가운 눈총에 그만두었다.

“어떻게 거기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소?”

구룡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레이를 쳐다보며 물어보았다.

“…배선이 여기에 있으니까요.  아아,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냥 눈에 보이게 되는 법입니다.”

그레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작업에 집중하면서 대답했다.  그동안 니콜라이는 일행이 왔던 복도 쪽을 경계하면서 살펴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비상등을 붉은 색으로 하다니, 꽤 으스스하네요, 중사님.  보통은 녹색이나 청색으로 하지 않습니까?”

에렌마이어가 벽에 기대며 니콜라이에게 물어보았다.

“무서운가?”

니콜라이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뇨.  하지만 왠지 유원지의 공포의 성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

에렌마이어의 대답에 니콜라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머리를 돌렸다.  그 순간, 피슁, 하는 소리와 함께 앞의 격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반대편에 공기가 없다거나 하진 않네요.”

그레이가 웃으면서 벽에서 돌아보았다.  물론, 일행의 표정은 ‘그런 건 미리 확인하라고!’ 라는 느낌이 잘 살아 있었다.

---*--- ---*--- ​-​-​-​*​-​-​- ​

“아무도 없군.  ​자​동​으​로​ 폐쇄가 된 건가?”

니콜라이가 중얼거리며 무기고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붉은 빛을 받으며 어둡게 빛나는 각종 화기류와 슈츠가 일행을 맞이했다.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누만.”

구룡이 덧붙였다.

“일단은, 사령실로 가 보는 게 우선이겠군요.”

그레이가 투박해 보이는 대형권총 – XM-2 데저트 팰컨 블라스터 – 를 들어 전지 카트리지를 확인하며 말했다.

“레이.  ​원​격​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가?”

니콜라이가 언트 래시를 꺼내서 벽에 세우고 슈츠를 장착하며 물었다.

“아직 그 작업은 안 한 모양이더라고.  ​.​.​뭐​,​ 했어도 아마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은 들지만.  지금 재밍 당하는 중인 모양이라.”

그레이의 대답에 일행의 표정이 싸해졌다.

“아주 끝장을 볼 기세네요.  점점 적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요.”

에렌마이어가 저격총을 등에 메고 고글을 끼며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이야기했다.

“후우.  일단 나와 레이가 앞장설 테니 하사와…구룡씨는 뒤를 맡아 주시오.”

니콜라이의 말에 구룡과 에렌마이어는 고개를 끄덕이곤 고글을 내렸다.  이제 빛이 없어도 아마 앞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가세.”

니콜라이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며 무기고를 나섰다.  그 뒤를 그레이가 소리 없이 따랐다.

---*--- ---*--- ​-​-​-​*​-​-​- ​

적막감이 감도는 복도.  붉은 빛이 스산하게 비치는 플라스틸 벽과 바닥 이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곳을 일행은 걷고 있었다.

앞에서 소리를 죽이고 전진하던 리더가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갑옷에 달린 신호등이 점멸하며 메시지를 분대원들에게 전했다.

'섬멸.'

제국의 마포가 초록빛 광선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