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는 하야테의 휠체어를 밀며, 하야테가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실 이 휠체어는 전동식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밀거나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야테로서는 '누군가가 밀어준다'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와 함께 집에 돌아간다는 이 단순한 행위 자체가 기뻤다.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고, 어릴 적의 사고로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이후 고아가 되었다. 비록 부모의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가 돈을 보내오고 재산관리를 해주고 있기에 생활에 곤란한 것은 없지만, 학교에 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즉… 함께 집으로 돌아가주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줄 사람같은 건 없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우미나리 대학병원의 주치의인 이시다 유키에와 그 이외의 간호사들 정도이고, 그 사람들에게도 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자신의 상대를 해달라는 등의 폐를 끼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사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웠다.
오전 7시 쯤에는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고, 얼굴을 씻고 양치질을 한 후 우체통에 들어온 신문을 가져와서 글자 하나 빠짐없이 읽는다. 그것이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한 다음 TV를 보고, 이불을 널어서 햇볕에 말리고 빨래를 하고, 가벼운 청소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미나리 병원에 가서 이시다에게 진찰을 받고, 돌아오면서 도서관에 들르거나 쇼핑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등 시간을 보낸다. 날이 저물 때 쯤이면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한다.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거나 TV를 본 다음 목욕을 하고 침실에 들어와 잠을 청한다. 내일은 뭔가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기대를 품으면서.
그것이 매일매일 반복되어왔다. 철이 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혼자뿐인 날들이 계속.
내일은 무언가가 바뀔까. 그 다음 날에는 무언가가 바뀔까. 아니면 또 그 다음 날에는. 다음 날에는.
기대를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그럴 리 없다"고 쓸쓸하게 웃는 그런 날들이 계속.
그렇기 때문에, 하야테는 마냥 즐거웠다.
언제나 똑같았던 날들에, 느닷없이 큰 '변화'가 찾아왔으니까.
"아, 그러고보니까."
엑스가 미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하야테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고개만을 살짝 뒤로 돌려, 이렇게 말했다.
"아직 이름도 모르네. 내는 하야테라고 칸다. 야가미 하야테."
"…… 엑스.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불러."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그것만이 자신의 '이름'이었다.
간혹 다른 사람들이나 시민들, 혹은 이레귤러들이 "푸른 유성의 용사"라거나 "영웅"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칭'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과분한.
하지만 이 소녀─ 하야테는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이름을 대는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엑스면… 그 알파벳 말하는기가? X? 좀더 좋은 이름도 있었을텐데."
"나쁜 이름같아?"
"으응, 뭐랄까… 알파벳을 그대로 이름으로 썼다고 하니까 물건에다 번호매긴 것 같아서."
그러고보니, 그런 관점으로 보는 것도 가능했군.
그렇게 생각하며 엑스는 입을 열었다.
"나는 별로… 나쁜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에? 어째서?"
알파벳을 그대로 쓴 것처럼 '번호'나 다름없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건 물건 취급을 당한다는 것과 동의어일 것이다. 그런 이름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엑스의 말은 하야테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엑스는 하야테의 생각과는 달리 '물건 취급 당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잠시 휠체어를 멈추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으로.
엑스는 100년도 전에 들은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엑스(X). 미지수, 혹은 무한대의 가능성. 나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아버지'는 그런 뜻으로 붙인거래. '기계'에 주어진 한계에 머물지 말고, 그걸 넘어서 무한히 성장하라… 는 의미로."
그렇기에 이 이름은 자신의 자랑이기도 했다.
용사니 영웅이니, 그런 걸맞지도 않은 거창한 호칭들보다, 훨씬 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이름.
하지만.
과연 지금의 자신이, 그런 아버지의 뜻에 맞게 '성장'한건지, 지금의 엑스로서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아니,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조차 두려웠다.
이레귤러를 부수는 것 이외의 일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자신이 과연 올바르게 '성장'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인지.
물론 하야테로서는 그것에 대해 알 리 없고, 단지 엑스의 말에 감탄할 뿐이었다.
"… 듣고 보니까 의미를 따지면 그래 나쁜 것도 아이네. 그럼 「엑스 군」이라고 부르믄 되나?"
"호칭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 편이니까, 좋을대로 부르면 돼."
통성명이 끝나고, 엑스가 휠체어를 다시 밀기 시작한 후에도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럼 엑스 군은 그 '아버지'하고 같이 사는기가?"
"…… 아니. 아버지는… 안 계셔."
이미 200년 정도 전에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런 사정을, 하야테가 자세히 알 리 없다. 하지만 엑스의 목소리와 분위기에서부터, 파악해냈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자신의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에 있구나. 라고.
그래서 더이상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하고, 화제를 돌렸다.
"형제나 친구는?"
"형제는 없고…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도 있긴 했어."
그 친구조차도 스스로 두번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졌지만.
가족이나 형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모를 뿐이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엑스는 단 한번도 만난 적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형제가 아르카디아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을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베이스의 동료들과도 필요최저한 이상의 대화를 나누는 일은 드물다. 10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몇번이나 세대 교체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베이스 멤버들에게 있어 엑스는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든 대선배이자 살아있는 전설의 영웅.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까마득한 후배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말을 걸기엔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존재다. 대화를 성립시키고 싶다면 엑스 쪽에서 말을 거는 수밖에 없지만, 이미 엑스에게 그럴만한 정신적인 여유같은 건 없었고.
그렇기에 베이스 내부에서도 한없는 존경을 받고 우상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지만, 정작 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걸 받는 것보다 친구가 있는 쪽이 나았는데.
"얼마나… 혼자 있었는데?"
"오래."
"오래?"
"응. 오래. 정말로… 아주 오래."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
100년이 넘는 세월은, 몸보다도 마음을 먼저 깎아내갔다.
"… 익숙해질 때까지 힘들었제?"
조심조심, 하야테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하야테의 이 말에, 엑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익숙해지지 않아."
그리고.
하야테의 눈에, 그 웃음이 너무나도 쓸쓸하게만 비추어졌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아."
역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눈빛도, 그 몸에 배여있는 분위기도.
아마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혼자 뿐인 사람".
쓸쓸하고 외롭지만,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조차 힘든 사람.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쓸쓸함, 외로움. 그리고 그 두가지만큼이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 깊고 깊은 '어둠'과 '상처'들.
그것이 무엇인지까지 정확하게 알아낼 정도의 안목은 지금의 하야테에겐 아직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외계인이라느니, 인간이 아니라느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라느니 그런 사소한 문제따위와는 상관없이.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이때는 단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
"응?"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집이 가까워져왔을 때.
이렇게 말해버렸다.
"우리 집에, 들맀다 갈래?"
IRREGULAR HUNTER - X
3화
분명히 말해두지만 엑스는 그다지 쌀쌀맞은 것도 아니고 철면피도 아니고 성질이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성정을 본다면 틀림없이 선인(善人)의 반열에 들어갈 것이다. 그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손해를 본 적도 많고, 예전의 '동료'들에게 질책을 받은 적도 있다.
─그렇기에, 그렇게 울 것 같은 얼굴로 부탁받으면 거절할 수 있을 리 없다.
'해서 지금 여기에 있단 말이지.'
가끔은 자신의 이런 성격에 스스로 열받기도 하지만, 이제와서 고칠 수도 없으니까 포기하기로 했다.
한편, 정작 엑스를 여기까지 데려온 장본인은
"다행히 요리는 특기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도 된데이♪"
희희낙락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이 이런저런 음식물들을 꺼내왔다.
레플리로이드의 동력원은 「에네르겐」이며, 딱히 인간이 먹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타입은 먹고나서 속에서 태워버리는(소화시키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지금의 엑스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타입으로, 그의 경우에는 신체 중 상당부분이 유기체계의 기계로 대체되어있는 '바이오 로이드'의 프로토 타입 형식으로 개량되어 있기도 하다(열화된 거라는 주장도 없는 건 아니지만). 맛만을 즐기기 위해 인간의 음식을 먹어도, 정작 뱃속에 들어가면 '쓸모없는 것'으로 자체 판단되어 내부에서 태워버리는 타입들과는 달리 엑스의 경우 유기체계 부분을 유지하기 위해 쓰여질 수 있다. 물론 에너지 변환 효율로 따지자면 에네르겐쪽이 훨씬 연비가 좋으니까 보통은 음식을 먹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고보니, 제대로 '식사'라는 행위를 즐겨본 적이 얼마만일까.
… 모두가 있던 '그 시절'을 제외하면 없었다. 이것은 확실하다.
음식을 입으로 옮긴다. 그 시절엔 베이스 내부에서 요리하는 사람 중 꽤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도 많았으니까, 나이프나 포크는 물론 숫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법도 배워둬야 했었다. 그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한번. 또 한번.
결코 빠르지는 않게, 하지만 결코 느리지도 않게.
그릇 하나를 다 비울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부엌에서 새 음식을 가지고 들어오던 하야테는 상당히 놀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 꽤 데웠는데 안 뜨겁드나?"
"…… 별로."
… 하지만, 아무리 유기체가 섞여있어도 기계는 기계다. 인간과는 다르다. 여러모로.
혀의 형태를 한 기관으로 '뜨겁다'나 '차갑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어도, 사람처럼 그것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견딜 수 있는 한도가 인간보다 훨씬 높으니까.
"근데…… 오늘은 어디서 잘 거고?"
하야테 자신의 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엑스를 향해 이렇게 물어왔다.
그러고보니 그런 문제가 있었다. 이쪽 세계의 화폐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여관이나 호텔을 쓰는 것은 할 수 없고, 노숙은 확정. 단지 그 장소가 건물 옥상 위냐 공원 벤치냐 그것도 아니면 수풀 속의 나무냐가 문제일 뿐이다.
"우와아… 요즘 시대에 노숙…"
그러고보면 오늘 만났을 때도 공원 나무 위였지. 하야테는 아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이제 이 자칭 안드로이드 소년(진짜지만)을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무난한 선택지는 여기서 "오늘은 고마웠데이 바이바이~" 하는 거지만, 하야테의 성격상 그 선택지는 아예 떠올리지도 않았다.
(엑스로서는 이게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그럼 일단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 어째서 그렇게 되는건데?"
"어디서든지 잘 수 있다, 라는 건 딱히 우리 집에서 자도 상관없다는 거제?"
"그런 식으로 보자고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왜 굳이 그렇게 해석을 하는건데?"
"뭐어뭐어.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말그라. 남자 아이다 아이가."
아홉살 짜리 여자아이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말이 하고 싶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적어도 하야테 쪽은 타산없이 '호의'로 말해주고 있다. 삐딱하게 받아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벌써 몇번이나 그랬다는 건 잊어버린 다음이다).
어차피 쉴 곳은 찾아야하고, 여기라면 걱정할 필요없으니까 회복에 전념할 장소로서는 최적이다. 하루 정도 완전수면 모드로 푹 쉬고 나면 몸 상태도 어느 정도 회복될테니까, 그 다음부터는 움직이기도 편해진다.
… 이 세계라면, 적에게 기습당할 걱정도 없으니까.
하야테의 허락을 받은 후, 그녀의 집에 있던 PC를 사용했다. 꽤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다행히 별 문제없이 작동되었다.
물론 이쪽도 아르카디아의 그것에 비하면 구 시대의 인터페이스라는 것은 다를 바 없지만, 적어도 '근본'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책보다는 훨씬 다루기 편했다.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얻었다. 이제와서 이것을 사용해도, 아마 별반 다를 것 없겠지.
그럼에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확인 절차 겸 미약하기 짝이 없는 희망 때문이다.
전원을 켜고, 인터넷의 연결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린 후─ 모니터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엑스의 전신이 옅은 청백색의 빛을 발하고, 그 빛은 이윽고 모니터에 얹은 손으로 집중되었다가 모니터로 빨려들어간다.
사이버엘프.
본래의 그것은 인간과 레플리로이드를 서포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로 의지마저 지니고 있는 극도의 고정밀 프로그램 생명체를 의미한다. 그 능력의 종류와 활용도의 폭도 지극히 넓으며, 그렇기에 아르카디아에서는 그들을 악용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요정전쟁'까지 일어났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류의 60%, 레플리로이드의 90%가 전멸하는 최악의 사태가 아르카디아에 닥쳤으며… 엑스 개인적으로도, 누구보다도 의지하고 누구보다도 신뢰했던 친구를 잃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그쪽이 아니고, 엑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다.
─그는, 현 시점의 아르카디아 전체를 통틀어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사이버엘프화시키고, 또한 복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전자의 세계'. 그런 곳에서 정보를 얻으려면, 자신도 같은 존재가 되는 쪽이 가장 빠르다.
물론 하려고만 한다면 엑스 이외의 레플리로이드를 사이버엘프로 만드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 경우 그 레플리로이드의 육체는 사멸되며, 당연히 원래의 레플리로이드로 돌아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무런 장비나 제약도 없이 사이버엘프가 됐다가 레플리로이드가 될 수 있는─그것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존재는, 엑스밖에 없다.
전자 세계의 편리한 점. 뭐니뭐니해도 빠르다. 인간이 PC를 이용하여 눈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전자'가 되어 정보를 받아들이는 거니까 당연히 속도에서 비교가 될 리 없다. 엑스는 도서관에서 얻은 것보다 더욱 막대한 양의 정보를,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전부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레플리로이드」「로봇」「요정전쟁」「이레귤러」「사이버엘프」「록맨」「이레귤러 헌터」
─아무리 원하는 키워드를 집어넣어도.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닫기까지,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였다.
'역시나, 인가…'
이미 알고는 있었다.
이 세계는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세계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말했다시피 지금 이것은 단순한 '확인' 작업. 그렇기 때문에, 마음 속에 일어난 동요조차 그다지 어려움없이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로」
그리고
「시그마」
엑스에게 있어 사이버엘프화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할 일도 아니다.
페널티─ 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일단 한번 하고나면 무지막지하게 지친다. 몸도 정신도. 억지로 표현을 한다면, '정신이 뜯겨져서 네트워크에 던져졌다가 다시 헤엄쳐서 올라오는' 것과 비슷하다. 물리적인 데미지는 없지만 까놓고 말해 아무리 엑스라도 이걸 한번 하고 나면 피곤하다.
이 방의 침대는 마음대로 써도 좋다고 허락받았으니까, 문제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진다.
"통상 모드 기동 종료… 완전 수면 모드 작동. 설정 12시간."
베이스 이외의 장소에선 한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모드.
반경 10m 이내에 누군가가 들어오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는 가수면 모드와 달리, 이것은 프로그램 자체에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외부에서 어떤 충격을 가해도 설정 시간이 다 지나가기 전까진 눈을 뜰 수 없다.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안전이 보장된 장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던 모드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세계에는 이레귤러도 레플리로이드도 없다. 싸워야할 적이 없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고작 24시간 안에 이렇게 여러가지 일을 겪어본 것도 오랜만인데.'
요새에 잠입하고, 루시퍼와 싸우고, 자폭에 휘말려 다른 세계로 넘어와 바다에 빠졌다가 해안가로 밀려오고, 여기가 어디인지 돌아다니고, 공원에서 덜 파괴된 루시퍼에게 습격받던 하야테를 만나고, 다시 루시퍼와 싸우고, 가수면 모드로 좀 잤다가 하야테와 다시 만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다시 하야테를 만나고, 어째서인지 그녀의 집까지 오게 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지금은 이렇게 뻗어있다.
스스로 떠올리기에도 사건사고 투성이. 저걸 오늘 하루 안에 전부 겪었다보니 어지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호의'라는 건, 역시 나쁘지 않았다.
─한발.
─두발.
─세발.
걷는다.
철컥철컥 금속음을 울리면서, 걸어간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길을 걸어간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것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은 길도 뭣도 아닌 단순한 '틈' 사이에 있는 흙바닥이다. 그것도 자신 한명이 겨우 걸어갈 수 있을만큼 좁은 틈새.
그리고 이 틈새의 양 옆으로, 무엇인가가 쌓여있다. 한둘일리는 없고, 백이나 2백─ 그런 숫자로 헤아리는 것조차 할 수 없을만큼 '무수한 어떤 것'들이 이 틈새의 양옆으로 쌓여있다.
걷는 것을 멈추고, 뛰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단지 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뛰고, 뛰고, 뛰고, 뛰고. 대쉬를 사용하지도 않고 그저 달린다.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다른 '생각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얼마를 그렇게 달렸을까.
발밑에 스며드는 감촉이 다른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앞으로 넘어졌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너무나도 쉽게.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그러자, 아까의 흙바닥과는 다른 감촉이 손과 발에 스며들었다.
─축축하고, 끈적거린다.
몸을 살짝 일으키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들어올려 얼굴 앞으로 가져온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그것'이 그대로 손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붉은 색. … 아니, 그것보다 더 진하고, 어두운 색의 '어떤 액체'.
피인가, 아니면 레플리로이드용의 의사 체액인가.
어느 쪽이든 이런 곳에서 '무한정으로 흐르고 있을' 물건이 아니다.
… 아니, 잠깐만.
그 이전에, '여기'는 어디일까.
한참 전에 떠올렸어야할 당연한 의문을 이제서야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사지가 뭉개지고 가슴이 파헤쳐진 채 거꾸로 쳐박혀 이쪽을 보고 있는 용 형태의 메카닉.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원 이레귤러 헌터 제 14백병전 부대의 대장이었으나, 이레귤러로 떨어져, 결국 파괴된 레플리로이드 「마그마 드래곤」.
그리고… 그를 파괴한 것은 다름아닌 자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자, 똑같지만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양팔이 어깨에서부터 떨어져나가고, 송곳니가 빠진 채 쓰러져있는 「슬래시 비스트」.
날개가 박살나고, 얼굴의 절반 정도가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있는 「스톰 이글리드」.
여덞개의 다리가 전부 뽑혀져, 몸통만이 남은 채 박혀있는 「볼트 크라켄」.
복부와 가슴 부분이 파헤쳐져, 내부 구조가 완전히 드러나있는 「크레센트 그리즐리」.
하반신이 '폭발'하여, 상반신만이 남아 거꾸로 떨어져있는 「스페이스 호넷」.
그들만이 아니다.
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쌓여, '산'을 이루고 있는 이것들이.
─전부, 파괴된 레플리로이드의 잔해.
바닥에 가득 흘러넘치고 있는 이 액체들도, 전부 거기서 흘러나와 고여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형태도 형식도 모델도, 공통점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레플리로이드들의 잔해.
하지만, 이들에게는 딱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파괴당한 이레귤러들이다.
잊고 싶어도 그 기억력때문에 잊을 수 없는 이들.
이레귤러 전쟁, 요정전쟁,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
지난 100년이 넘는 세월 간… 아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날 이때껏 자신이 파괴해온 이레귤러. 그 모두가, 지금 이곳에 있다.
왜?/왜 이들이 여기에/그 이전에 여기는 어디/나는 왜 이런 곳에/언제부터/뭣때문에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머리 속에서 정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 쯤이었다.
움직일 수 있을 리 없는, '레플리로이드의 잔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이쪽을 보면서, 발이 없는 자는 기어오고 사지가 없는 자는 몸통을 움직이며 다가왔다.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 그렇게 생각하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는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본래라면 그가 자랑하는 무기인 버스터로 변해, 푸른 광탄을 발사했어야할 오른팔이.
변하지도 않고, 빛을 발하지도 않는 '손'인 채 그대로 있다.
어째서? 라는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잔해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팔을 붙잡히고, 발목을 붙잡히고, 다리를 붙잡히고, 어깨를 붙잡히고, 허리를 붙잡히고, 목을 붙잡힌다.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치지만, 그럴수록 바닥에 있던 액체들마저 올라와 팔과 다리에 휘감긴다.
자신에게 파괴된 레플리로이드들이 흘린 의사체액(피).
그것이 붉은 쇠사슬과 수갑이 되어, 자신의 팔과 다리를 구속했다.
그 시점에서, 몸부림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몸에 채워지는 진홍의 사슬과 수갑의 숫자가 늘어간다. 그와 함께, 자신에게 달라붙는 잔해들의 숫자도 늘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내는 소음에 섞여 다른 소리가 하나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발 소리?
그 소리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을 때, 간신히 고개만을 들어올려 앞을 바라본다.
─자신의 앞에 선 '그것'은 붉은 레플리로이드.
스스로 잠이 들기 전까지, 최강이자 최고의 '영웅'이라고 불렸으며 자신에게 있어서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친우.
적어도, '모습'만은 그와 똑같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다르다. '저것'은 '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그'는 아닌 존재.
아아, 그런가.
'저것'. 요정전쟁 때의 '그 녀석'인가.
어때?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 라고는 해도, 이쪽은 꼼짝없이 붙잡힌데다 어째서인지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 대답해줄 수도 없지만.
'녀석'은 두 팔을 벌려, 지금의 이 광경을 과시하듯이 말했다.
이게 네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야.
확실히, 그렇다.
무수한 이레귤러를 파괴해오면서 만들어온 길.
오로지 인간과 레플리로이드의 공존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쌓아올린 업.
하지만 현실은 어때?
인간은 레플리로이드를 무서워하고, 레플리로이드는 인간을 경계한다. 거기서 변한 게 뭐지?
……
아무리 싸우고 부수고 죽여도 이미 정해진 것은 변하지 않아. 그걸 알면서도 걸어온 길이잖아?
……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인간. 그런 인간을 불신함과 동시에 자신의 가능성을 과신하는 레플리로이드.
그런 세계 속에서, 네가 가진 힘같은 건 너무나도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아. 너는… 그걸 그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지?
…… 부정하는 것은 할 수 없다.
'용사'라고 불리고 있어도,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어도.
결국은 남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인 "레플리로이드 하나". 세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할 수 있어도 세계를 변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믿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아득히 먼 훗날이라도. 설령 자신 그것을 볼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아르카디아에도 진정한 의미의 '평화'라는 것이 찾아올 거라고.
이봐, 이봐. 아직도 그런 소리야? 지금 이상으로 괴로워질 게 뻔한 길을 자기 발로 걸어가서 어쩌자고?
……
어째서 거기까지 믿을 수 있는 거야? 인류도 레플리로이드도 지금의 혼란과 멸망은 전부 녀석들이 초래한 거잖아.
그런데, 어째서 네가 거기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거지?
그건─
인간이 레플리로이드를 만들고, 레플리로이드가 이레귤러로 변하고, 놈들끼리 치고받다가 세계를 멸망시킬 뻔한 게 도대체 몇번째지? 그리고 너는 그 사이에 끼여서 몇번이나 세계를 구해야했지? 그리고 어째서 그렇게까지 온걸까? 이렇게나 시체들을 쌓아가면서.
…… 그, 건…
이제 그만, 솔직해지는 게 어때?
……
어째서 이날 이때까지 싸워온 건가.
어째서 상대를 죽여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게 되지 못할 때까지 싸워온 건가.
어째서, 그렇게 마모될 때까지 싸워온 건가.
……
처음은 분명 이랬겠지. '인류를 위해서''레플리로이드를 위해서''지금은 없는 친우를 위해서'.
하지만 그 의지조차도 지금은 차례차례 깎여져나가, 느끼지 못하게 되버렸는데.
그런데도, 너는 아직까지 싸워왔다.
더이상 그렇게 목숨걸고 싸워야할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싸워왔다. 무엇 때문에?
……
이걸로 간신히 체크메이트.
결국 너는─ 나와 같은 존재라고 하는 거다.
……
싸움 이외의 방법으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
싸움터 이외의 장소에선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
무언가를 죽이고 부수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조차 알 수 없는 것.
너도, 그리고 나도.
…… 나는─
싸우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멘탈 회로에 치명적 데미지 발생.>
<원인 규명─ 불가능. 회복 프로그램 작동 정지.>
<완전 수면 모드 강제 해제.>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굴러떨어진다.
두 손으로 양팔을 감싸고, 떨면서 머리를 바닥에 박는다. 그 상태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비명만을 뱉는다.
"아니… 아니야… 달라… 나는…!"
입으로는 뭐라고 하고 있어도, 이미 그것은 엑스 자신조차 속이지 못한다.
오히려 엑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망가져있다는 것 정도는.
친우가 모습을 감추고, 오직 혼자서 터무니없는 수의 이레귤러를 파괴해온 자신.
그것은, 새삼 다시 떠올릴 것도 없이 괴롭고 슬프고 힘든 싸움들로만 가득 차 있는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 싸움 속에서 자신은────── 점차 마음이 파괴되어, 결국 지금은 적을 죽여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갔다.
불의로 가득 한 악에 대한 분노도, 같은 기계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대한 슬픔도.
그 이외의 어떤 감정도 없이, 눈앞의 적을 파괴하는 '완전한 기계'와도 같이.
그런 자신에게, 이레귤러와 싸우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이 가능할까.
이레귤러를 파괴하고, 아르카디아를 지키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
그렇기 때문에.
─파괴할 이레귤러가 없는 지금의 자신은,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녀석'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싸움 이외의 것을 모르고, 전장 이외의 곳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어째서 살아있는가, 라고.
"크, 카악… 큭… 케훅…!"
평소의 엑스라면, 이곳이 아르카디아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리 없다.
하지만 이곳은 아르카디아와는 다른 세계. 하물며 아르카디아로 돌아갈 방법조차 알 수 없는 상태.
그리고 엑스가 언제나 느껴오던 자신의 마음에 대한 것.
그것들이 한데 맞물려, 지금의 혼란을 엑스의 머리에 가져왔다.
"무슨 일이고?! 괘안나?!"
닫혀있던 방문이 열리고, 하야테가 들어왔다.
그녀 역시 옆 방에서 자고 있었지만, 비명 소리가 들리자마자 휠체어를 급하게 움직여 온 것이다.
"엑스 군?! 괘안나?! 무슨 일─"
그리고, 엎드려있는 엑스에게 다가온 하야테는 잠시동안 말을 잃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기에, 겨우 엑스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울고 있나?"
본래의 레플리로이드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
그의 친우가 "마치 인간같다"라고 했던 그것이.
지금, 엑스의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안되는데…"
"… 에?"
엑스는 하야테가 옆에 있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데…"
"… 엑스, 군…?"
"이레귤러를… 없애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데…!!"
중얼거림은 곧 절규로 변하고,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여기엔 없어…!! 내가 싸워야할 '적'이… 없애야할 이레귤러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싸울 수 없으면… 그럼… 그러면, 싸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존재할 이유같은 건─"
없다.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아도, 엑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있었다.
… 누군가와 싸울 수 없으면, 있을 가치가 없는 존재.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
한순간, 엑스가 숨을 집어삼킨다.
휠체어에 앉아서 그 말을 듣고 있던 하야테가, 거기서 내려와 살며시 엑스의 머리를 안았다.
그때서야 엑스는 하야테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 괜찮데이."
"…… 하야, 테……?"
하야테는 엑스의 어깨와 등을 두드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싸워야할 이유가 없으면… 안 싸우면 되니까."
"…… 틀려, 하야테. 나는… 그런 게 아냐…"
이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의 100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그 시간 동안 자신에게 파괴된 레플리로이드가 얼마나 되는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자신의 마음이 깎여져 나갔는지.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한 순간.
"… 분명히 내는, 엑스 군에 관한 건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건지, 뭐하면서 살았는지, 왜 지금 이렇게 울고 있는건지도."
그리고, 소녀는.
어디까지나 침착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래도… 딱 두개는 알고 있데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하나는… 엑스 군한테 '엑스'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라는 사람은, 엑스 군이 싸움만 하길 바래서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니라는 거."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이유로, 이렇게 울고 있는 엑스 군이… 싸움 말고 다른 걸 할 수 없을 리 없다는 거."
어느 틈엔가.
엑스는 소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틀림없이 많이 힘들었겠제? 그러니까 이렇게 우는 거겠제?"
하야테는 엑스를 일으켜세워, 그를 끌어안았다.
얼굴만이 아니라, 그의 몸을.
"그러니까 괜찮데이. 엑스 군이라면… '이런' 이유로 울 수 있는 엑스 군이라면, 분명 싸우는 거 말고도 다른 걸 찾아낼 수 있을테니까."
─어느 틈엔가, 몸의 떨림은 멎었다.
눈물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찾아보자. 엑스 군이 '싸우지 않고도 살 이유'를. 내도…"
하야테는 엑스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어, 강하게 끌어안았다.
자신이 엑스를 놓치지 않도록, 엑스가 자신을 놓치지 않도록.
그리고 엑스는.
"내도… 같이 찾아줄테니까."
단 하나뿐이었던 친구가 사라진 이후,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