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귤러(Irregular).
불규칙, 변칙, 비정상, 불법, 부정, 부정규, 부정기.
아무튼, 좋은 의미라고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단어다.
하지만 이 이레귤러라는 단어는, 아르카디아에서만큼은 그 의미가 달라진다.
아르카디아에서의 이레귤러란, 원래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며, 파괴행동을 하는 레플리로이드를 가리킨다.
프로그램에 이상이 생겼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됬거나, 혹은 인간의 의지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위나 사상을 품으면 그것도 이레귤러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레플리로이드들이 지니고 있는 "지나치게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우수한 사고회로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버그"가 원인.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들은 오직 인간의 말을 듣지 않거나 인간에게 약간이나마 거스르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즉시 사형에 처했다.
실제로 몇번이나 사고나 오류로 인해 억울하게 이레귤러 판정을 받고 파괴된 레플리로이드들도 셀 수 없으며, 이 때문에 레플리로이드들의 불만은 대단히 컸다. 그것이 극대화되었던 사건이 바로 "이레귤러 헌터 최악의 실태이자 그들이 친 가장 큰 대형 사고"라고 일컬어지는 레플리포스와 이레귤러 헌터 간의 전쟁이었지만, 그것은 잠시 묻어두도록 하자.
이레귤러 헌터.
레플리로이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이레귤러가 되어 파괴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으로, 모두 18개의 부대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기 특성에 따라 지형과 능력에 특화되어있다. 실상 아르카디아의 평화를 책임지고 있는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레귤러 헌터 부대원들 중 실력이 뛰어나다 싶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 시그마의 반란 때 배신하거나 그 이후의 사고에 휘말려 이레귤러 판정을 받고 파괴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전력 자체가 크게 약화되었다. 비록 지금이야 푸른 유성의 용사 엑스의 활약─이라기 보단 그 혼자서 전후를 책임진 거나 다름없지만─으로 인해 예전의 규모와 전투력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지만 그 한때의 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가, 하면 그도 한때는 이레귤러 헌터였기 때문이다.
상층부가 그에게 보내는 신뢰도 상당히 두터웠으며, 실력도 인정받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레귤러 헌터 부대 중 하나의 대장이라는 지위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파괴 행위를 일삼는 이레귤러들을 파괴하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대지를 크게 상처입히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사건.
이제와서 변명할 생각따윈 없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저지른 실수였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은 수많은 인간과 레플리로이드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레귤러로서 판정받고 파괴당했다고 해도 거기에 불만은 없다. 저지른 죄에 대한 당연한 처벌이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미련이 남았다.
타인의 목숨을 셀 수도 없이 빼앗고, 그들이 살아가던 터전을 빼앗은 죄인 주제에.
그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못해 이레귤러로 떨어졌던 주제에.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라도 이루고 싶은 '미련'이 남아있었다.
그 '미련'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지위를, 명예를, 자부심을, 믿고 따라왔던 부하들까지도 모조리 사지로 내몰았다.
그렇지만… 그 '미련'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 왔을 때는 희열이 차올랐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만큼.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순수하게, 그의 소원이 "그들과 싸우고 싶다"라는 것만을 전제 이야기한다면.
하지만 그 싸움은 그가 바라던 것과는 심하게 차이가 났다.
상대는 자신이 있는 곳까지 돌파해오느라 상처투성이에 체력 소모 극심.
반면 자신은 만전의 상태였지만, '그 녀석'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있던 상태.
어느 쪽도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그가 바라던 "정정당당한 결투"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결국 결과는 그의 패배. 싸움의 도중에도 망설임을 끊어내지 못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미련이 남았다.
비록 몸이 파괴되었어도, 그 집념만은 남았다.
그 몸은 100년 동안의 비바람에 풍화되어가도, 의지만은 깎여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한번만 더.
한번만 더, 그 '용사'와 '영웅'과 싸우고 싶다.
설령 인간이 말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짓을 하게 되더라도.
레플리로이드인 자신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마저 지옥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이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뭐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락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몸, 여기서 더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바라는 바다.
그러니까─
신이든, 악마든 누구라도 좋다.
나에게… 다시 한번 더 싸울 수 있는 힘을.
그리고.
그런 그의 집념에, 대답이 돌아왔다.
─시공을 뛰어넘어 그의 앞에 나타난, '푸른 보석'에게서.
IRREGULAR HUNTER - X
5화
아리사 버닝스는 현재 눈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이는 아홉살로 십년도 채 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또래의 소녀들보다 훨씬 총명했다. 어른들도 알아차리기 힘든 일이나 깨닫지 못하는 일들을 알아차리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지금의 이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선, 자신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손꼽히는 대기업의 CEO.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버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납치한 것도, 그런 인종들. 정당하게 정면에서 사업으로 맞설 용기는 없는 주제에 어떻게든 아버지의 약점을 잡고 싶어서 이런 짓을 벌인, 어린 그녀의 눈으로 봐도 추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생각이고, 신변에 닥친 위협을 어떻게 할 힘이 없었던 것도 사실. 아무리 자부심 강하고 총명하다 해도 결국은 9세의 소녀. 성인 남자 여럿이 힘으로 누르면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거기에, 소녀에게 있어서는 불행한 일로 이들은 대단히 질이 나쁜 인종이다. 그대로였더라면 그 뒤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럴 때만큼은 쓸데없이 지식이 많은 자신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로.
그래… 어디까지나 그대로였더라면, 이지만.
여기부터가,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의가 살짝 찢겨진 시점에서, '그것'이 나타났다.
그녀가 '그것'을 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들어올려야 할 만큼 '커다란' 무언가.
─두 발로 걷는, '용'의 머리를 가진 어떤 것.
신장은 얼핏 봐도 2m 이상. 아니, 2m 20 이상일지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거기까지. '그것'은 전신이 금속처럼 보이는 물건으로 되어있는 인지외의 존재.
기계인가, 생물인가. 그것조차도 알 수 없지만 소녀도 남자들도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은 아니다.
'인간'에게서, 이런 열기가 뿜어져나올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것'은 느릿한 동작으로 천천히 두 손을 들어올린 후, 그것을 번갈아가며 살펴본다.
그러다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 그 손으로 어깨(로 보이는 부분)를 몇번 두들겨보기도 한다.
"뭐, 뭐, 뭐야, 너는?! 어떻게 들어온거야?! 어디서 왔어?! 누가 보낸거냐?!"
겨우, 남자 하나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그 말에 다른 이들도─소녀조차도─ 간신히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것'은 분명히, 어디로도 들어오거나 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지금 서있는 자리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의 절규를 무시하고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내려다보더니 마침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지만.]
고개만이 아니라, 몸을 완전히 이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한발 내딛자, '쿵'하고 무거운 금속음이 울렸다.
[테스트에 좀 어울려 줘야겠는데.]
테스트? '용'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보다 이 녀석 말도 할 수 있었던건가.
'인간'들이 더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사이. '용'은,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아, 신체 회복 테스트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그저 일방적인 '폭력'.
[역시 인간에게는 이 정도가 고작인가… 회복을 가늠할 연습거리도 안되는군.]
나이프와 총기로 무장한 성인 남자 5명이 엉망진창으로 박살나 바닥을 나뒹굴 게 될 때까지, 약 30초.
정확히 말하자면 박살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전까진 그저 남자들이 쏘는 총탄이나 휘두르는 나이프를 맞아줬을 뿐. 하지만 그들의 공격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었다. 나이프는 닿는 순간 부러지다가 녹아내렸고 총탄에 이르러서는 반쯤 녹아 튕겨지기까지. 오히려 부상자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공격에 되려 상처입은 이들이다.
뭐, 딱 한명 안면 골격이 손상되고 화상을 입은 남자도 있긴 하지만. 그가 손바닥으로 살짝 '밀어낸' 결과다.
[운동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지만, 그 이외의 것은 알 수 없군.]
상대가 너무 약했던 탓에.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세계에서 그에게 '상대'라는 인식을 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일반인'들에게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을만큼의 실력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 아…!"
[… 그러고보니 하나가 더 있었던가.]
공격해오지 않고 구석에 있었던데다 크기도 작아서 신경쓰지 않았지만.
체격으로 보건대 10세 이하의 인간 소녀. 얼굴과 몸의 상태로 봐서 구타를 당한 흔적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관찰할 이유도 없고, 관찰할 생각도 없다. 인간… 그것도 전투력을 지니지 않은 존재라면 그에게 있어서는 대상외. 신경쓸 이유도 그럴 가치도 없다. 물론 소녀 쪽에서 먼저 덤빈다면 이야기는 별개지만, 덤비지 않는다면 손을 댈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보고 전율하며, 단지 덜덜 떨고 있을 뿐인 소녀의 존재를 무시하기로 했다. 우선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이곳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때 들린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싸워야할 상대는 틀림없이 이 세계에 있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걸음을 옮긴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에게 소녀─ 아리사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단순히 이 낡아빠진 폐건물의 방, 그 출구가 그쪽 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간 것 뿐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을 아리사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안그래도 납치를 당한데다 하마터면 레이프 당할 위기까지 겪어, 머리속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된 사고가 나올 리 없고, 하물며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건 남자들을 순식간에 박살내놓은 괴이한 철덩어리.
보통의 소녀라면, 비명을 지르는게 정상이다.
"싫어… 오지마…!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지금까지 참아왔던 공포.
남자들의 앞에서는 꾹 참고 자존심으로 눌러왔던 비명이, 마침내 터져나왔다. 동시에, 귀를 막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과연 그것을 견디긴 어려웠는지, 출입구를 향하던 그의 발도 멈추었다.
'… 곤란하군.'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할까.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곧 '무시하고 지나간다'라는 선택을 하고서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걸음이 멈춘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쪽을 응시하다가, 몸 전체를 돌린다.
[인간 사이즈에서 이 스피드라는 건… 이 세계에도 이 정도의 녀석이 있었던가.]
그의 레이더가 감지한 속도는 '음속' 이상.
이 정도의 일이 가능한 상대라면 회복된 몸을 시험해보기에 딱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전투 준비를 갖춘다.
그리고 조금 후.
그는, 단순히 '몸의 회복을 시험해보기 위한' 상대가 아니라.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이를 만나게 된다.
엑스의 에어 대쉬에는 예전과는 다른 기능이 몇개인가 추가되어있다.
그 중 하나가 공중 4연속 대쉬.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사용한 초가속 대쉬. 4번의 대쉬로 날아갈 수 있는 '거리'를 포기하는 대신, '속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기능. 요컨대 4번에 걸쳐 사용 가능한 대쉬를 단 한번에 모조리 써버린다는 것이다. 거리로 치자면 통상의 4연속 대쉬처럼 멀리 날아갈 수 없는 대신, 그 속도만은 음속을 가볍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보통으로 사용했다간 거기서 파생되는 충격파로 인해 도시 전체가 엉망이 된다. 충격파 발생을 막기 위해, 그 역위상의 파동을 발생시켜 충격파의 위력을 미풍 수준으로 낮춰버리는 푸른색의 에너지 필드를 전신에 두른다. 물론 이 방식은 충격파가 발생되는 모든 각도를 계산해서 거기에 정확히 반대가 되는 파동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 엑스 이외에는 어느 레플리로이드도 사용할 수 없다.
그 에너지 필드의 푸른색으로 인해, 「블루 미티어」라고 불리는 대쉬 능력. 그것이, 전혀 다른 이세계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나와 루시퍼 이외의 레플리로이드… 그것도 이레귤러라니.'
우선, 이 세계 출신의 기계가 걸렸을 리는 없다.
엑스가 지니고 있는 이레귤러 레이더는 오직 '레플리로이드 전용'. 그것도 감지하는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있다.
첫째, 과거에 한번 만났고 이레귤러 판정을 받은 후 해소되지 않은 레플리로이드일 것.
둘째, 첫째 케이스의 이레귤러와 '같은 종류'의 회로 이상이 감지되는 레플리로이드일 것.
이 세계에는 레플리로이드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레귤러 레이더에 걸려들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과 같이 아르카디아에서의 '전이자'라는 것.
그리고 지금 감지된 상대는 거기서 한술 더 떠, 전투레벨 A 이상의 이레귤러. 그 전투력은 최저로 잡아도 이레귤러 헌터 부대장급으로… 전술에 따라서는 이 정도 크기의 도시조차 몇일 이내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다.
시그마의 조작으로 인해 이레귤러 판정을 받은 레플리포스라던가, 그 이외의 극히 일부를 제외한 이레귤러들은 자신의 감정을 거의 절제하지 않으며, 그 힘을 무제한으로 휘둘러 인간에게 해를 입힌다.
그렇기 때문에… 이레귤러는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치 특정─ 앞으로 200m."
목표 지점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는 낡은 건물. 여기라면 다소 날뛰어도 피해가 적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도 없고 주저할 이유도 없다. 엑스는 곧바로 돌진하여,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유성처럼 날아들어와, 자신의 앞에 선 '그것'.
전신을 푸른 색의 갑옷으로 감싼 '그것'은, 마치 자신을 지켜주는 것처럼 '용'의 앞에 섰다.
푸른 색의 용사가, 붉은 용의 앞에 선다.
그 광경을, 넋을 잃고 그저 바라봤다.
우선은 주변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다.
자신의 뒤쪽에 인간 소녀가 1명. 주변에 널부러져있는 검은 양복 남자가 다섯 명. 소녀 쪽은 심장 박동수를 측정해봤을 때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었지만 서서히 진정되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엑스는 짧게 망설였다. 이곳이 폐건물이었기에 그대로 전투장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상대에 따라서는 말려들게 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역시, 틈을 봐서 장소를 옮기도록 유도하는 쪽이 좋을지도. 그렇게 생각한 엑스는, 상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 의미로, 이 세계에 온 이후 가장 큰 경악이 그를 덮쳤다.
"당신… 은……"
[오랜만─ 이라고 하기도 뭐하군. 그렇다고 잘 지냈는가라고 묻기도 뭐하고.]
─눈앞의 이레귤러는, 모르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여기에 있을리 없는 자다.
단순히 '그'가 아르카디아의 레플리로이드이기 때문에, 다른 세계인 이곳에 있을 리 없다…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이쪽 세계고 저쪽 세계고를 떠나서, 그는 여기에 있을 수 없다. 있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은… 파괴됐는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거야…! 마그마 드래곤!!"
원 이레귤러 헌터 제 14 백병전 부대의 부대장.
스카이 라군 추락 사태를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던 레플리로이드.
그 직후, 이레귤러로 분류되어 제로와 싸웠고, 엑스에게 파괴된 자.
엑스를 무엇보다도 혼란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실이다.
백년도 전에 파괴되어 없어졌던 자가, 지금 엑스의 눈앞에 있다.
하지만 엑스의 경악에도, 마그마 드래곤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보석이다.]
"…… 보석?"
[푸른 색의 보석. 그것이, 두번 다시 재생될 수 없을만큼 파괴된 내 몸을 복구하고, 이쪽 세계로 이끌었다.]
"… 무슨 이야기야."
[믿을까 믿지 않을까는 네 자유다. 하지만 놀라운데. 설마 이곳에서 너를 만나게 되다니. 그 보석이 '소원을 들어준다'라고 했던 것도 아주 헛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군.]
완전히 파괴된 마그마 드래곤을 부활시키고, 이쪽 세계로 전이시키기까지 한 푸른 보석.
지금의 엑스로서는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 보석이라는 건?"
[모른다. 이 세계에 도착하자마자 버렸으니까. 이틀 전쯤의 이야기니까, 아직 그 자리에 있을 확률은 낮군.]
… 이건 또, 굉장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들은 걸로는 상당한 힘을 가진 테크놀러지의 집합체인 모양인데, 그런 걸 버리다니.
[몸이 회복됐다면 그런 물건에 볼일은 없다. 무엇보다… 내 '소원'은 그런 걸론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거기까지 들은 엑스는 인상을 굳혔다.
설마, 라고 생각되지만 이 남자의 소원이라는 건─
[아아, 그것만은 백년 전과 똑같다. 지금도, 그때도. 원했던 건 오직 하나였지.]
─마그마 드래곤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증기와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엑스는 위치를 바꿔 소녀에게 증기가 가지 않도록 했지만, 쓰러져있던 남자들은 어떻게할 새도 없이 뒤집어쓰고 신음을 흘렸다.
"… 이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 같군."
[손댈 가치도 없으니까. … 그렇다기 보단, 멋대로 나를 공격하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진 것 뿐이다. 그걸로 죽은 놈이 있다면 머저리지.]
두 사람 다, 목소리는 조용하고 평온했다. 마치 일상에서 농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목소리만의 이야기지만.
목소리와는 반대로 마그마 드래곤은 있는대로 전의(戰意)를 드러내며 투기를 뿜어냈고, 엑스 역시 그에 호응하듯이 주먹을 쥔다.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겠군."
[당연하지. 너와 '그 녀석'과 다시 한번 싸운다… 그것만을 위해서, 나는 죽음에서 돌아와 세계를 넘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 직후, '용'의 포효가 울려퍼지고.
이 세계로 온 이후의, 두번째 전투가 시작됐다.
"다행이지, 페이트. 이번 건 쉽게 구해서."
"으응. 설마 이런 곳에 떨어져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번엔 쉬웠다. 수풀 속에 떨어져있던 쥬얼 시드를 주웠을 뿐이니까.
하지만 어째서 이런 곳에 있었던 걸까.
작은 의문을 품으며, 페이트는 다음 쥬얼 시드를 찾기 위해 이동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