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하라오운은 시공관리국 소속의 집무관이다.
현재는 그의 모친, 린디 하라오운이 함장으로 있는 차원항행함 「아스라」에 소속되어있으며, 15세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도 벌써 여러 범죄를 해결한 경력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몇번인가 임무 실패의 위기를 겪은 적도 있고, 목숨을 잃을 뻔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꿋꿋하게 집무관으로서 일하며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밞고 있었다.
본래부터 재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크로노는 시공관리국원이었던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비록 불운한 사고로 순직했지만, 소년에게 있어 아버지는 영웅이었고 또한 따라잡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했다. 죽을 힘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울만큼.
축복받은 재능의 위에, 그 본인의 노력이 더해졌다. 15세에 관리국 집무관이라고 하는 지위는, 그로 인해 얻은 대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의 동료들은 소년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행동해온 아스라의 크루라면 누구라도 그의 실력을 믿고 있다. '함장의 아들'이라거나 '영웅의 후계자'라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다. 소년의 실력이 가져온, 무수한 성과와 실적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모친인 함장 린디 하라오운 역시 아들을 대단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상황이 많이 나쁜걸."
린디는 드물게 표정을 굳히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스크린에서는 현재 3개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과, 한 푸른 전사가 힘을 합쳐 "금색의 사자"와 대치하고 있는 광경.
─하얀 색의 마도사 소녀와, 검은 색의 마도사 소녀가 대치하고 있는 광경.
─그 바로 옆에서, "붉은 용"과 "푸른 독수리"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광경.
화면상으로 봤을 때, 관리국에서 회수해야할 쥬얼 시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보이는 것은 저 두 사람의 마도사 소녀와 크로노 뿐이었다. 그 이외의 나머지 네 사람은 이 자리에 있다가 말려든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저 마도사 소녀들과 이야기를 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현지인들(아스라의 입장에서)이 크로노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점. 단순한 현지인이었다면 이쪽에서 싸움을 피하면 그 뿐이지만… 상대는 관리외 세계의 존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도형 사격 마법을 문제없이 회피해버리는 스피드, 콘크리트를 우습게 가르고 부숴버릴 정도의 파워, 불길을 뿜어내며 폭풍을 일으키는 힘. 이 모든 것이, 마법도 마력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행해진 일들이었다.
아무리 크로노의 경험이 나이에 비해 많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험 지정 생물이나 범죄 마도사를 상대로 한 이야기. 위험 지정 생물급 이상의 전투력과 인간 수준의 지능을 함께 가진 존재와는 아직까지 싸워본 적이 없다.
물론, 모친으로서의 린디 하라오운은 아들을 믿고 있다. 그러나 함장으로서의 그녀는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즉, 크로노가 저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쥬얼 시드를 확보하지도 못했을 때를 대비한 상황을.
쥬얼 시드는 세계 한둘 정도도 멸망시켜버릴 수 있을 가능성을 지닌 로스트 로기아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무장국원들을 아스라에 태워 함께 데려온 것이 다행이었다.
린디는 함장으로서 조금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5명의 무장국원들을 제 97 관리외 세계로 출발시키로 결심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0분 정도 전의 이야기다.
"에이미, 보낸 사람들에게서는 연락 없어?"
"네에, 그게… 벌써 포진하고 연락이 왔어야 하는데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로스트 로기아가 관련된 사건인 이상, 어떤 상정 외의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이 상황은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것이, 린디에게는 한없는 불안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곤란하다고, 너희같은 녀석들이 함부로 끼어들면.]
짓밟는다. 반응이 없다.
숨이 끊어졌는지 어떤지는 알 바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그들이 발로 밟고 있는 이들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 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던 녀석들의 뒤통수를 쳐서 떨어뜨리고 단번에 목을 비틀어버린 것 뿐이니까. 마침 숫자도 이쪽과는 한명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거의 소리소문도 없이 이 5명을 제거할 수 있었다.
가장 커다란 이가 물었다.
[이봐.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거야. 당장 가서 밟아버리자고!]
[기다려. 아직은 아냐. 게다가 녀석의 센서는 반경 400m 안에 있는 이레귤러는 남김없이 감지할 수 있어. 지금 들어가면 100% 걸릴걸.]
이들은 지금 현재 결계 안에 있었지만, 그 가장자리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엑스와의 거리는 약 500m. 아슬아슬하게 센서에 걸리지 않는 범위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의 전투로 보건대 녀석은 확실히 정상이 아닌 상태… 그렇다면 틀림없이 기회는 올테니까.]
시공의 참절귀는, 지극히 냉정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웃음 소리를 흘렸다.
IRREGULAR HUNTER - X
"싸움을, 멈춰주세요!"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은 갑자기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용과 독수리가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자 잠깐동안 오싹함을 느낀 나노하였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레이징하트를 들어올렸다.
저쪽의 소녀와 늑대는 현재 유노가 발목을 잡아놓고 있는 상태. 그 틈을 이용해 나노하는 도시를 망가뜨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온 것이다.
"여기는 모두가 살고 있는 마을이에요! 지금도 건물 하나를 무너뜨리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마그마 드래곤쪽의 방향에서, '흥'하는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곧장, 마그마 드래곤은 고개를 다시 스톰 이글쪽으로 돌리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에, 에에에에엣?!"
나노하가 놀라던가 말던가, 마그마 드래곤은 스톰 이글을 향해서 오른주먹 스트레이트. 스톰 이글은 그것을 십자 막기로 막아낸 후 날개를 펼쳐 그대로 휘둘러 마그마 드래곤을 후려쳤다.
하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잔상이 남을 정도의 스피드로 몸을 낮춰 그것을 피해내고, 그 상태로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 후리기. 철빔조차 간단하게 끊을 수 있는 파괴력이 담긴 킥이 스톰 이글의 다리를 걷어찬다.
[윽…!!]
다리가 걸려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스톰 이글이 손가락을 세워 마그마 드래곤의 흉부를 할퀸다. 그의 가슴쪽 장갑에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크게 할퀴어진 상처가 생겨났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켜 발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내리찍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로 된 도로 바닥이 쪼개진다.
다시 한번 발을 들어올린다.
다시 한번 내리찍는다.
스톤핑이 복부에 꽂힐 때마다 굉음과 함께 도로 바닥의 균열이 커져갔고, 4번째의 스톤핑이 찍혔을 때는 몸이 바닥에 박혀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섯번째 스톤핑이 그를 찍으려 했을 때, 스톰 이글은 두 손으로 그 발을 받아냈다. 내려오려는 발을 반대로 밀어올리며, 바닥에 박혀있던 몸을 떼어내 일으키고는 그대로 밀어냈다.
그러나 밀려나기 직전에, 마그마 드래곤은 이미 발에서 힘을 빼버린 상태. 스톰 이글이 자신의 발을 밀어내자마자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스톰 이글의 안면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을 예상해고 있던 스톰 이글은 몸 전체를 반회전시켜 그것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마그마 드래곤의 팔을 양손으로 붙잡고 휘둘러, 마그마 드래곤을 내던져버린다. 그렇게 내던져진 마그마 드래곤 역시 몸을 빙글하고 회전시켜, 데미지없이 바닥에 착지한다.
그 순간
「스톰 토네이도」
─코앞까지 날아온, 주먹 정도의 크기까지 압축된 '회오리'의 폭탄에 맞고 뒤로 튕겨지듯이 날아가 뒤쪽 건물의 벽에 부딪힌다.
몸이 벽에 박혀버릴 정도로 크게 박혀버리고, 그 충격으로 벽이 함몰되다가 무너져내린다. 벽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마그마 드래곤은 고개를 크게 저어 충격의 여파를 떨쳐버리고 일어선다.
[과연. 아무리 힘을 소모했어도 이레귤러 헌터의 부대장. 그렇게 쉽게 당해주진 않는군.]
[… 이쪽이 할 말이라고, 그건.]
출력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스톰 토네이도는 압축할수록 파괴력이 강해진다. 본래 기상현상의 일종이라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회오리의 특성상, 회전을 유지하면서 압축할수록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런 것을 아까 긁어놓은 상처 부위에 직격으로 맞은 주제에 곧바로 일어나다니. 인간형 격투 타입이면서 어디까지 내구력을 높여놓은건지─
─아니, 그것은 아니다. 스톰 이글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 녀석은 딱히 방어력이 높기 때문에 견딘 것이 아니다. 통각을 제거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견디고 있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입은 고통을, 데미지를, 투쟁심으로 억누르고 있다.
'타고난 전사'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저 녀석에게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마그마 드래곤이 다시 주먹을 쥐고 몸을 일으켜 달려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막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각오를 굳히며 스톰 이글도 주먹을 쥐고 날개를 크게 펼친다.
「디바인 슈터」
두 레플리로이드의 사이로, 분홍빛의 무언가가 빠르게 가로질러 지나갔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제 3의 방해가 들어오자, 스톰 이글도 마그마 드래곤도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둘 사이를 가로질러갔던 분홍빛의 구슬이 저 멀리서 선회하며 다시 돌아와 한번 더 사이를 가르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자신들에게 말을 걸었던 소녀의 주변에서 정지했다.
"다음에는, 맞출지도 몰라요."
… 그러고보니 이 꼬마, 아까부터 계속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 같은데.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하고 싶은 말은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나서야, 마그마 드래곤이 소녀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진 '주변에 있는 장식물 중 하나'를 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확연하게 '방해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 꼬마. 이름은?]
"… 네?"
[이름이다, 이름. 설마 이름이 없다고 하진 않겠지.]
느닷없이 이름을 물었다. 이 시점에서, 스톰 이글은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노하는 주저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노하, 타카마치 나노하입니다."
[그래, 나노하. 그 나이에 우리 싸움에 끼어들 정도의 용기를 발휘한 건 칭찬해주마. 그 대신, 다음에도 쓸만한 충고를 하나 해주지.]
다음 순간.
마그마 드래곤의 몸에서, 폭발적인 투지와 살의가 터져나왔다.
스톰 이글조차 오싹함을 느끼고, 이런 것에 면역이 없는 나노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을 정도의.
[그 경우, 빗맞추고 나서 "다음에는 맞출지도 몰라요"가 아니라 초격을 맞춰버리는 게 정답이다.]
"우, 아, 아…!"
한발짝, 한발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그마 드래곤을 보며,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앞에 두고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런 나노하의 앞을 스톰 이글의 등이 가려주고 나서야, 나노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너. 아이 상대로 진지해지지 말라고.]
[뭘. 지금 건 단순한 경고다. 한번 더 끼어들면 그땐 정말로 가만안두겠지만.]
한달 전 엑스와 잠깐 싸울 때의 아리사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때의 아리사는 단지 주변에 있었을 뿐이고 적극적인 방해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그마 드래곤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노하는,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자신의 싸움을 방해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인'이었던 아리사와는 달리 묘한 능력을 사용하면서까지.
분명 마그마 드래곤은 다른 이레귤러들과는 달리, 그리 쉽게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하면 공격하고 싶지 않다"는 정도의 가벼운 기분일 뿐이고, 엑스처럼 "인간을 공격해선 안된다"라고 머리에 박혀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받쳐주고 마그마 드래곤 본인이 그럴 기분만 든다면, 인간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여자든 죽기 직전의 병자든 얼마든지,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다.
아무리 다른 이레귤러들과 다르다고 해도.
그것이, 마그마 드래곤이 '선'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스톰 이글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 원래는 이레귤러 헌터였던 자가 어디까지 떨어진거냐.]
[너야말로 잊은건가. 이레귤러 헌터 중에도 이레귤러로서의 소질을 가진 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스톰 이글은 시그마의 반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엑스에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모른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이레귤러 헌터들이 인류를 배신하고 적으로 돌아섰는지.
[그리고… 나에게는 목적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적이.]
100년 전에도, 똑같은 목적을 가졌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이루지 못한 채, 파괴당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죽음에서 되돌아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추락해주지. 어디까지라도 타락해주마.]
[… 결국 네놈도 어쩔 수 없는 이레귤러라는 건가.]
스톰 이글은 몸을 살짝 낮춰 언제든지 마그마 드래곤의 공격에 대비하며, 뒤에 있는 나노하에게 말을 걸었다.
[봤으면 알겠지만, 저건 말이 통할 상대가 아냐. 이 이상 여기에 있다간 너까지 휘말릴거다.]
"… 그럴 순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긴 민간인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
이렇게까지 말을 못알아듣는건가. 살짝 분노를 담으며 고개를 돌리던 스톰 이글은 한순간 생각을 멈췄다.
나노하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마그마 드래곤의 살기에 완전히 눌려있던 꼬마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만큼,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분명 제가 나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싸움으로 마을이 부서지고 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 너.]
딱 잘라 말해서, 열살도 안되보이는 인간 꼬마가 보일 수 있는 '각오'는 아니었다.
잠시동안 나노하를 바라보던 스톰 이글은, 이윽고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라. 할 수 있겠지?]
"네!"
… 인간의 아이를 싸움에 휘말리게 했다.
이레귤러 헌터라면 틀림없이 제명당하고 이레귤러의 낙인이 찍혔을 행위. 그런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 저 녀석을 이레귤러라고 매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군,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스톰 이글은 나노하와 함께 위로 올라갔다.
[■■■■■■■■■■■■■■■!!]
슬래시 비스트가 포효하며 돌진하자마자 엑스와 크로노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떨어졌다.
강철의 사자는 엄청난 속도로 그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다가, 저 멀리서부터 방향을 전환해 다시 달려온다. 엑스의 버스터 샷도 크로노의 마력탄도 하나하나 모조리 피해가면서.
"무슨 스피드가…!"
이를 갈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슬래시 비스트의 돌진을 피해낸다. 크로노가 피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엑스 역시 위로 뛰어올랐다. 단순히 위로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건물의 벽을 향해서.
벽을 차고 허공을 지나가면서 아래쪽을 향해 버스터 슛을 난사한다. 총 6발이 발사되었고, 그 중 스친 것이 2발이고 나머지는 전부 빗나갔다. 엑스의 컨트롤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은 차지하고, 역시 슬래시 비스트의 스피드가 문제였다.
엑스와 크로노를 합친 것보다 거대한 체격으로, 두 사람보다 빠르다.
'부조리하군.'
크로노가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 한들, 저 녀석은 원래부터 수송 부대 출신. 발이 느리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움직임은, 이미 알고 있다!"
「스팅거 스나이프」
크로노가 자랑으로 사용하는 유도형 저격마법. 허공에서 나선을 그리던 푸른 빛이, 이쪽을 향해 오는 슬래시 비스트에게로 날아갔다.
[아까 전에도 통하지 않았던 걸 무슨 생각으로…!]
슬래시 비스트는 코웃음을 치면서 위로 뛰어올라 피해낸다.
─하지만, 이번의 스팅거 스나이프는 아까의 것과는 달랐다.
처음에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유선으로 움직이던 빛이, 돌연 움직임을 바꿨다. 격렬하게 여기저기에 부딪히는 듯한 직각으로 움직이며, 그 속도를 높였다.
잠깐 동안 당황한 슬래시 비스트였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양쪽의 벽을 교대로 차가면서 피해낸다.
그리고 스팅거 스나이프는, 그것보다도 더욱 빠른 스피드로 위로 날아올라, 슬래시 비스트를 지나쳐서는 다시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나보다─ 빠르다고?!]
경악할 틈도 없이 스팅거 스나이프는 슬래시 비스트에게 직격되어 작게 폭발을 일으킨다.
치명타나 중상이라고 할만한 것은 입히지 못했지만, 슬래시 비스트는 지상으로 추락하여 바닥에 꽂혔다.
어떤 마법이든지 마찬가지지만, 마력을 소비하는 양에 따라서 위력도 속도도 달라진다. 지금의 스팅거 스나이프를 사용할 때 쓴 마력은 평소에 쓰는 것의 2배에 가깝다. 확실히 말해 과소비에 효율성이라곤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지만,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데에 효율성을 따질 틈은 없다.
"아직 몸이 불편한건가?"
"… 미안."
숨을 돌린 틈을 얻은 크로노는 아까 슬래시 비스트의 돌진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어버린 엑스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대쉬를 이용해서 피한 것까진 좋았는데, 그 순간 왼쪽 무릎이 스파크를 일으켜버리며 격렬한 통증을 가져왔다. 그 때문에 넘어져 뒹굴어버린 것이다.
… 성급해도 너무 성급했다. 크로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자신이 도착했을 때, 좀 더 자세히 상황을 살폈더라면.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가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막아 도시를 구했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그에게 공격을 가할 일도 없었고, 지금처럼 괴로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엑스가 입은 부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지만, 그것을 알 수 있을 리 없는 크로노로서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피지컬 힐」
S2U를 엑스에게 겨누고, 회복의 마법을 사용한다.
디바이스의 끝에서 푸른 빛의 마력이 빛을 발하고, 점차 엑스에게로 빨려들어갔다. 육체적인 부상에 대해서는 즉효성을 지니는 회복 마법. 깊은 중상이라면 완치까진 어려워도, 최소한 몸을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진 회복될 것이다.
… 라는 생각으로 사용한 마법이지만.
"……?"
정작 당사자는 의문만을 가득 담은 채 크로노를 바라보고 있다.
피지컬 힐을 받고도 편해진 기색을 보여주기는 커녕 지금 뭐하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엑스를 보며, 크로노는 내심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전투기인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어야 정상이니까.
이것은 크로노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은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하여 기계에 대한 적합도를 높여 출생시킨 아이에게 기계를 이식시켰을 뿐인 전투기인과 처음부터 기계로 만들어진 레플리로이드의 차이 때문이다.
피지컬 힐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비롯한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마법. 확실히 '생체'적인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엑스의 근본은 '기계적인 부분'에 있다. 따라서 통증은 가라앉을지 몰라도 지금 엑스가 짊어지고 있는 부상 자체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아까 공격에 대한 사과도 겸한 거였지만, 도움이 안됐나 보군."
"응? 아니, 아냐. 상당히 편해졌어. 고마워."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크로노는 어색함을 애써서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조금 전 바닥에 꽂혔던 슬래시 비스트가 몸을 일으키고 있다.
엑스는 생각했다.
화력이라면 있다. 자신의 풀 차지 슛도 있고, 자신의 옆에 있는 이 소년이 가진 기이한 힘도 있다.
문제는, 그 화력을 쏟아부을 방법.
문제는, 그 화력을 남김없이 적중시킬 방법.
문제는, 그 화력을 적중시키기 위해서 저 사자의 발을 묶을 방법.
엑스는 생각했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이 도시에게도, 저 소년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방법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떠올려놓고 스스로도 자조한다.
있을 리 없다. 그런 꿈같은 방법이. 이상적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아까의 괴조 때와 똑같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가능할 리가 없다.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모두가 무사할 수 있는 방법따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도 포기했다.
적을 쓰러트리고, 도시도 동료도 무사한 대신.
─'자신도 다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으면,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 동료도 지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는 이 세계로 온 이후 싸울 때마다, 죽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거의 자신의 몸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기. 아까의 그거, 또 쓸 수 있어?"
"…? 어느 걸 말하는거지?"
"열기가 담겨있던 가장 큰 포격. 그거."
"블레이즈 캐논이라면… 시간만 있다면 다시 쏠 수 있지만, 쏜다고 해도 저 스피드를 상대로는 맞출 수 없어."
한번 더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상관없다.
"그럼 됐어. 시간이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충전해둬."
"뭔가 방법이라도?"
눈치가 빠른 녀석이 동료일 때는, 역시 설명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좋다.
"조금 후에 녀석이 움직임을 멈출 거야. 그때를 노려."
"… 알았다. 조심해."
그 말만을 남긴 채, 크로노는 S2U와 함께 블레이즈 캐논의 준비에 들어갔다.
본래 크로노는 자신의 컨트롤 능력으로 순간적인 방출을 제어하여 빈틈이 없도록 조정하고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컨트롤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고, 오직 출력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엑스는 그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슬래시 비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 슬래시 비스트를 향해 달렸다.
'역시 그 방법인가…!'
크로노는 이를 악물었다.
몇번이고 말하는 것이지만, 크로노는 집무관 직업 특성상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엑스의 언동으로부터 대략적인 성격은 파악해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가 처음 블레이즈 캐논의 사용에 대해 물어왔을 때부터 이런 방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가능성은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해버릴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 인생, 생각대로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은 모양이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지금부터라도 주문을 캔슬하고 서포트 해야할까. 그게 아니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2m가 넘어가는 사자형태의 로봇과 인간이 부딪히면 어느 쪽이 날아갈지는 뻔한 이야기. 당연히 지금은 마법을 해제하고 저쪽을 돕는 것이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을 그 당사자가 알지 못할 리 없다. 알면서도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고, 방법이 있다면 크로노가 마법을 해제하면서까지 돕길 바랄 리 없다.
거기에… 엑스는 크로노를 등 뒤에 두고 달려가고 있다.
첫 대면도 하기 전에 공격부터 한 자신을 믿고서. 틀림없이 믿고 있는대로 해줄거라고 생각하고서.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자신이 그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자신도 믿기로 했다. 기껏해야 자신과 연령 차이도 거의 나지 않으면서, 용감하기 짝이 없는 소년을.
두 사람이 만난지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크로노는 이미 엑스를 믿고 있었다.
한편, 엑스는 달리는 것과 동시에 풀 대쉬를 시작했다. 첫번째 시도에서는 오른발만 성공, 두번째 시도에서는 양쪽 다 불발, 세번째 시도에서는 왼발이 성공하려다 말고 꺼졌고, 네번째 시도에서야 간신히 성공.
그리고 네번째 시도가 성공하자마자, 엑스는 슬래시 비스트와 충돌했다.
[■■■■■■■■■■■■■■■!!]
돌진해서 깔아뭉개버리려는 슬래시 비스트. 그것에 손을 뻗어 멈추려는 엑스.
슬래시 비스트의 두 손과 엑스의 두 손이 서로를 붙잡았다.
엑스는 무릎을 살짝 굽혀 버텨내고, 슬래시 비스트는 그런 엑스를 그 상태 그대로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충돌 충격으로 인해 땅을 딛고 있던 발이 지면을 파고 들어갔고, 그 뒤에 이어진 돌진으로 인해 지면을 갈라버리며 밀려난다.
분명 슬래시 비스트는 헤비급에, 파워도 강력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엑스는 그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더욱 파워도 강한 '루시퍼'를 상대로, 같은 일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그러니까 슬래시 비스트와 충돌한 정도로 자세가 무너져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 평상시라면.
충돌하자마자 다리 쪽에서 힘이 빠져버려, 엑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슬래시 비스트가 위에서 누르는 형태가 되버렸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엑스의 등이 지면과 충돌하고, 슬래시 비스트는 그대로 두 손으로 엑스의 손을 누르기 시작했다.
[바보냐, 네놈은!! 정면 충돌로 나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아아. 혹시나 했지만, 예상했던 그대로라서 놀랄 것도 없네."
엑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슬래시 비스트에게 저런 소릴 들을 것도 없이, 지금의 자신의 몸 상태 정도는 엑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면 충돌로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굳이 강행한 것은, 오히려 지금의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엑스는 쓰러진 상태에서 두 발을 들어올려, 자신을 누르고 있는 슬래시 비스트의 복부에 갖다댔다.
─그 상태에서, 부스트. 대쉬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가 발을 통해 방출된다.
첫번째엔 불발, 하지만 두번째 시도에는 양쪽 모두 성공했고, 슬래시 비스트는 로켓과도 같은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뭣이?!]
자신의 거체를 공중에 띄워버릴 정도의 추진력에 슬래시 비스트가 경악하는 사이.
엑스는 쉴 틈도 없이 '등'으로 바닥을 쳐 그 반동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실행했다.
「Four part Change」
양 팔과 양 다리. 4개 파츠의 동시 변환.
전신에 전류가 흐른다. 단순한 '변형'을 넘어서, 통증마저 가져올 정도로.
엑스의 밸런스 회로는 신체의 모든 '균형'을 통괄하는데, 신체의 변형이라는 큰 작업이 그 회로의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현재의 밸런스 상태로는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
「경고(Warning). 밸런스 회로에서 치명적 데미지 확인. 현 상황에서 변환을 시도할 경우 오버 히트가 우려됩니다.」
물론 신경쓰지 않고 강행한다.
'넷 중에… 하나만이라도… 성공하면…!!'
밸런스가 망가져있다고 해도 시도하는 모든 것이 실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패하거나 무효화되는 일이 많아지긴 했어도 성공 확률 또한 확실하게 존재한다. 엑스는 그 확률에 건 것이다.
─「우완 : 블리저드 버팔로」
얼음의 힘을 갖고 있던 버팔로의 대형 레플리로이드.
하지만 오른팔은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캐쉬 크라우피시」의 집게발로 변했다.
─「좌완 : 스톰 아울」
바람의 힘을 가진 레플리포스 소속의 부엉이형 레플리로이드.
그러나 왼팔 역시 제어가 듣지 않아, 전혀 관계없는 「그라비티 비틀」의 팔로 변했다.
─「우각 : 마그넷 센티피드」
자력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던 지네형 레플리로이드.
이번에는 아예 변형 자체가 실패해버려, 변형하려다가 말고 다시 원래 다리로 돌아온다.
─「좌각 : 제트 스팅레이」
그리고, 유일하게.
이 왼발만이 변형에 성공하여 가오리형 레플리로이드의 것으로 변형된다.
동시에 진행된 이 모든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1.2초. 이 중 생각한 것대로 된 것은 하나 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게다가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버그 홀」
그라비티 비틀의 무기였던 중력장 생성기. 그 무기가 공중에 떠오른 슬래시 비스트에게로 날아가 부딪혔고, 곧바로 원형의 중력장을 생성해 슬래시 비스트를 봉쇄한다. 이것으로 움직임을 멈췄다고 해도 그 시간은 불과 2~3초. 블레이즈 캐논을 쏜다고 해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 포격의 도달 전에 중력장이 풀려서 결국은 피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밑에 있는 엑스가 또 하나의 무기를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라운드 헌터」
왼쪽 발을 휘둘러, 가오리 형태의 에너지탄을 발사한다.
이 무기의 본래 주인은 제트 스팅레이. 과거 레플리포스 해군 소속의 용장이며, 슬래시 비스트와는 전우였던 자다. 해군 소속임에도 공중을 날 수 있고, 또한 매우 빠른 스피드로 움직일 수 있었던 레플리로이드이며… 그의 그라운드 헌터는 대기 중의 수분을 조작하는 것으로 슬래시 비스트의 움직임을 묶어버릴 수 있다.
본래부터 사막이나 산악 지대 등의 거친 지형에서 움직이기 위해 설계된 슬래시 비스트는 해양 근처에 갈 경우 상대적으로 녹슬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운드 헌터는 속된 말로 '쥐약'.
그 때문에 같은 레플리포스 소속임에도, 별로 몇번 만날 기회가 없었음에도 슬래시 비스트는 제트 스팅레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원래 뼛속까지 군인 정신으로 들어차있는 스팅레이와 불량하고 껄렁하기 짝이 없는 비스트의 성격이 맞을 리 없다는 이유도 있다).
만약 슬래시 비스트의 움직임이 버그 홀에 의해 묶여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밸런스 엉망인 엑스가 맞출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근거리에서 움직임을 묶고 확실하게 먹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부러 몸으로 충돌한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한 것도 그 때문.
다리에서부터 발사된 세 마리의 가오리가 슬래시 비스트의 몸에 적중. 슬래시 비스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굳어버렸다.
엑스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벗어나 소리친다.
"지금!!"
엑스가 소리칠 것도 없이, 크로노는 이미 충전을 끝내고 발사 준비에 들어가있었다.
"「블레이즈 캐논」!!"
크로노와 S2U에서 동시에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와 함께 아까도 모습을 드러냈던, 열화를 담은 푸른 빛의 기둥이 발사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까 것보다 크기도 열기도 기세도 속도도 더욱 높아졌다는 것.
그때 쯤에는 슬래시 비스트의 중력장도 해제되어있었지만, 그라운드 헌터에 의한 경직이 풀리질 않았다.
결국,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열선을 보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노의 고함을 터트리는 것 뿐.
[제에에에기이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푸른 빛의 기둥이, 슬래시 비스트를 날려버렸다.
"… 쓰러졌을까?"
"아마도."
비살상 설정이라고는 해도 최대 출력의 블레이즈 캐논이었다. 쓰러져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엑스와 크로노는 슬래시 비스트가 날려간 방향을 노려보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반응이 없었다.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크로노는 엑스를 돌아보았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역시 가장 먼저 해야할 건 이거겠지."
크로노는 몇번인가 헛기침을 하여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했다.
"협력에 감사한다. 나는 크로노 하라오운. 시공관리국의 집무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없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 이레귤러 헌터는 이레귤러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게 사명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렇다 하더라도, 구해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이레귤러 헌터라는 건?"
'이레귤러'란 저기의 사자같은 녀석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은 '이레귤러 헌터'라고 자칭했고. 이름에서 느껴지는 뜻을 볼 때, 이레귤러 헌터라는 건 문자 그대로 이레귤러를 때려잡는 것이 임무인 것 같지만… 인명 구조 역시 임무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슬래시 비스트의 공격으로부터 크로노를 구하지 않고 곧바로 슬래시 비스트를 쳐버리는 쪽이 나았을테니까.
"내가 소속되어있는 조직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인데…"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이 세계'에 이레귤러 헌터라는 조직이 없을 뿐이다.
'그렇군… 공투에 익숙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어딘가 조직의 소속이었나. 이레귤러 헌터라는 조직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고, 그의 힘을 생각하면…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관리외 세계의 조직일 확률이 높겠군.'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정도의 전투력. 솔직히 그것에는 대단히 놀랐다. 저 사자만 해도 AAA+ 랭크의 마도사급 전투력을 보였고, 눈앞에 있는 소년의 힘은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아까 슬쩍 봤을 땐 중력이나 물의 힘도 사용한 것 같았는데.
"이번엔 내가 묻고 싶지만… 시공관리국이라는 건?"
"이름 그대로, 다중차원세계를 관리하는 조직이다. … 라고 해도 관리외 세계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말야."
"……"
거기까지 들은 엑스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물론 여전히 그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있었기에, 그 표정을 크로노가 볼 일은 없었다.
"하나 더. 당신…… 몇 살?"
"…? 15살이지만,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엑스의 상식으로 비추어볼 때, '인간' 소년의 15세 시절은 신체가 성장 도중이라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그다지 강하지 못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근로기준법 위반에도 정도가 있다.
게다가.
"정말로 열 다섯? 그 나이 소년의 평균 신장보다 꽤 작은데."
"……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콤플렉스를…!"
엑스의 외관 연령은 15세. 마스크와 장갑을 두르고 있는 지금도 그것이 반영되어, 신장은 헬멧 제외하면 160Cm 정도다. 크로노가 '자기 또래의 소년'이라고 판단한 것은 거기에 기준한 것이기도 하다.
… 그리고 크로노는, 그런 엑스보다 15Cm 정도 작다. 그것은 평소에도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였다.
한참동안 궁시렁 거리던 크로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아, 그렇지! 쥬얼 시드!"
"… 응?"
"미안하다. 이야기는 나중으로 돌리지. 지금은 우선─"
"우와아아아아앗!!"
두 사람의 위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오고, '매우 작은 무언가'가 떨어졌다.
엑스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들어올려 떨어진 것을 받아냈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다.
"아야야… 큰일날 뻔 했네… 아, 감사합니다…"
"아니, 천만에. 그런데… 넌 누구?"
엑스의 두 손에 떨어진 것은 한 마리의 페릿. 말할 것도 없이, 페이트와 알프를 혼자서 막고 있다가 지금 막 알프에게 걷어차여 떨어진 유노 스크라이어다.
"아, 저는 유노 스크라이어라고……"
"스크라이어? 그럼 스크라이어 일족의 사람인가?!"
크로노가 놀라는 사이.
공중에서 페이트와 알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왓…! 저 녀석은 시공관리국이잖아…!"
크로노를 보자마자 알프가 날린 감상. 페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굳어있었다.
여기서 엑스는 조금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푸른 빛의 작은 제너레이터를 가지고 있던 괴조.
그 괴조에게서 '쥬얼 시드'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푸른 보석을 꺼낸 소녀.
마찬가지로 '쥬얼 시드'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이 소년.
요컨대, 그 푸른 보석이 쥬얼 시드이고 소년, 그리고 소녀와 저쪽의 견이(犬耳)는 그것을 사이에 놓고 있는 관계라는 것인가. 확실히 그 괴조가 난사했던 공격을 생각하면 꽤나 강력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지만, 이런 아이들이 목숨걸고 싸워야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던가.
'역시 지금 내가 파악하고 있는 것 이상의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견이(犬耳), 그러니까 알프가 말을 걸었다.
"어이, 너! 역시 시공관리국쪽 녀석이었냐!"
"… 아니, 전혀 무관계지만."
거짓말하진 않았다. 여기 있는 크로노와는 목숨 걸고 함께 싸운 사이지만, '시공관리국' 그 자체에는 아무런 빚도 없고 연관도 없다. … 최근 들어서 이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엑스의 대답에 다시 말을 걸어온 것은 알프가 아니라 금발, 페이트 쪽이었다.
"관리국과 관계없다면, 물러나줘. … 말려들어버릴테니까."
목소리는 작았지만, 소녀의 말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최악의 경우, 관리국의 집무관을 지금 이 자리에서 때려눕히겠다는 의지가. 그 뒤에는 물론 후퇴해야겠지만.
"… 그건 나도 동감이지만."
그리고, 페이트의 말을 받은 것은 의외로 크로노였다.
"굳이 불법 마도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신한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쓰러트린 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조금 전 나를 구해준 일에 대해서도. 하지만 여기부터는 우리들의… 마도와 관련된 이들의 일. 당신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이 이상 말려들어서 피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는 자신 혼자서 맡는다.
소년 집무관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엑스의 손에서 내려온 페릿이 이어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부턴 마법을 쓸 수 없는 일반인이 말려들면 위험하니까."
'… 아니, 좀전까지 본 전투력으로 봐서 이 사람은 그거에 해당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유노는 엑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량이 보통 사람 이하인 것을 느끼고 말했지만, 그와 함께 싸운 크로노로서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크로노가 엑스를 말려들게 하지 않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이상 끌어들이기 미안해서니까. 아무리 마법이 아닌 특수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쥬얼 시드의 폭주에 말려든 것만으로도 큰일일텐데 여기서 더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 어떻게 하지.'
엑스는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당장 끼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평소의 싸움'이 아니다.
이레귤러도 레플리로이드도 관련되어있지 않은, '인간끼리의 싸움'.
게다가, 아무런 힘도 없는 약자인 하야테를 지키기 위해 볼켄 리터들에게 달려들었을 때(착각이었지만)와도 다르다. 지금 이것은 양쪽 모두에 싸울 힘이 있고, 자신이 가세하는 것으로 어느 쪽으로든 균형이 무너질 것이 분명한, '진짜 싸움'이니까.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가.
지금까지 그것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인간끼리의 싸움에 끼어들어본 기억은 없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번도.
왜냐하면, 아르카디아에서는 엑스 자체가 어느 쪽의 편을 드느냐에 따라 편을 든 쪽에 절대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죠커 중의 죠커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옳고 그름이 결정되어있지 않은 인간끼리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끼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엑스를 내버려두고, 크로노와 유노가 움직여 엑스와 거리를 벌리고는 두 소녀와 대치한다.
두 소녀는 둘을 견제하면서도, 언제든지 빠질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꾼다.
'…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사태를 앞에 두고, 엑스는 전에 없이 당황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쯤이었다. 스톰 이글과 나노하,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려온 것은.
스톰 이글은 나노하를 붙잡은 채 유노와 크로노의 앞에,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은 어느 쪽도 아닌 측면에 떨어졌다.
"우와… 여기까지 날아와버렸다… 에, 유노 군?! 게다가 모르는 사람들도 잔뜩 있어?!"
[… 비스트는 안보이는데. 엑스가 쓰러트린 건가?]
[지금의 엑스에게 쉽게 당할 녀석이라곤 생각안하지만, 일단 다운된 건 틀림없는 것 같군.]
한편, 원래부터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난입자들에게 크게 놀랐다.
"나노하?! 위험해, 빨리 이쪽으로 와!!"
"으응, 괜찮아. 독수리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 용 씨는 무섭지만."
유노의 걱정에 나노하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페이트. 또 이렇게 불어났는데.>
<… 괜찮아.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다면 틀림없이 혼란스러워 질테고… 몸을 빼낼 틈도 생길거야.>
금색의 소녀와 그녀의 사역마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결국, 이 아이는 당신의 협력자라는 것으로 좋은가? 스크라이어 일족."
"네. 부득이하게 힘을 빌려달라고 한 현지인이에요. 저 때문에 말려들어버려서."
"괜찮아, 유노 군 잘못이 아니니까. 그보다는 지금 이 상황부터 좀…"
소년집무관과 하얀 소녀, 그리고 그녀의 동행은 서로 의견을 나눈다.
[… 인간이 중간에 끼어들었지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 우리들은 우리의 싸움을 하면 그 뿐이다. 엑스, 너는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이 녀석을 정리한 다음엔 네 차례니까.]
염화의 용과 폭풍의 독수리는 다시금 전의를 불태운다.
그리고, 엑스도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옳고 그르고는 나중에 따지고, 일단은 이 싸움을 중지시키기로.
─모든 것이 뒤집어진 것은 그 직후였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엑스가 갖고 있는 센서의 이레귤러 색적 범위는 반경 400m에 달한다. 데이터에 등록되어있는 이레귤러가 그 안에 있다면 단번에 정확한 위치와 거리를 알 수 있다. 이 범위 안에 있는 이레귤러라면 결코 센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센서를 속이고 접근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예외가 있다면, 느닷없이 엑스 가까이에 나타날 때 뿐이다. 이를테면 "전송"이라던가.
엑스에게서 불과 5m 떨어진 머리 위에, 전송 마법진이 생겨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그리고 그 안에서 4개의 그림자가 나타나 떨어진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경고(Warning). 반경 5m 이내에 이레귤러 4체 동시 출현. 경고(Warning). 경고(Warning).>
"너희들은─"
페이트와 알프.
마그마 드래곤.
크로노, 유노, 나노하, 스톰 이글.
그리고 엑스.
그 네 집단의 사이에, 4개의 거체가 떨어져내린다.
무엇보다도 엑스가 놀란 것은… 그 4명 모두, 엑스가 알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플레임 맘모스! 차일 펭귄! 스파크 맨드릴! 부멜 쿠완거까지?!"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두른 거대한 코끼리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덩치는 작지만 무시무시한 냉기를 뱉고 있는 펭귄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그보다 약간 더 큰 오른팔에 드릴을 장착한 비비원숭이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칼날과 분위기를 전신에 휘감은 사슴벌레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엑스의 경악을 들은 이레귤러 중 한명… 부멜 쿠완거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인걸, 엑스. 재회하자마자 미안하지만… 꺼져줘야겠는데.]
그와 함께, 4명의 이레귤러들이 동시에 엑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엑스는 곧바로 대쉬를 사용해 자리를 이탈한다.
하지만.
'하필… 이럴 때에…!!'
오른쪽 발의 대쉬가 불발. 사용된 것은 왼발만의 대쉬 뿐으로, 그것만으로는 이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이레귤러들과 엑스의 거리가 좁혀져버렸다.
[냉큼 쓰러져라! 우리야─앗!!]
스파크 맨드릴이 오른팔에 있는 드릴을 회전시키며 돌진해온다.
한번 대쉬를 사용하느라 자세가 무너져버린 엑스는, 피하지도 못하고 복부에 직격된다.
"우아아앗!"
복부의 장갑이 드릴에 의해 파헤쳐지고, 엑스의 몸이 뒤로 튕겨져날아간다.
[이번엔 내 차례다! 부오오오오오오!!]
2.5m에 달하는 마그마 드래곤. 그보다 거대했던 루시퍼.
그러나 그런 루시퍼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체격의 플레임 맘모스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엑스의 위로 떨어져내린다.
─쿵, 하는 굉음과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엑스의 몸을 짓밟는다.
"……!!"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엑스의 몸은 땅바닥에 쳐박힌다.
[너한테 당했던 것, 한시도 잊어본 적 없다! 꾸왁─!!]
차일 펭귄이 입을 벌리고, 막 지면에서 일어서려는 엑스를 향한다.
그 입에서부터 맹렬한 냉기의 숨결이 토해지고, 삽시간에 엑스의 두 다리가 얼어붙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숨결 안에 섞여있던 얼음조각들에게 두들겨진다.
"크…!!"
[지금 쓰러지면 곤란한데. 아직 내 공격도 남아있거든.]
그리고, 부멜 쿠완거의 공격마저 엑스를 노린다.
머리에 달려있는 칼날과도 같은 뿔. 그것으로 엑스를 겨눈 채 돌격해온다.
엑스는 두 다리를 묶고 있는 얼음들을 향해 버스터 슛을 쏴 파괴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다리에도 데미지를 입었지만, 그것을 신경쓰지도 않고 필사적으로 몸을 틀어 부멜 쿠완거의 공격을 피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두개의 뿔 중 하나 뿐.
─나머지 하나의 뿔이, 엑스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목의 오른쪽 부분.
목 전체 두께로 볼 때 4분의 1 정도의 깊이로 뿔이 지나간 후.
엄청난 기세로, 피를 닮은 의사체액이 뿜어져나온다.
"………………!!"
나노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잔혹한 광경에 비명을 지른다.
페이트의 안색도 창백하기 그지 없어,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을지.
잠시 동안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엑스였지만, 곧이어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렬한 통증을 느끼고 목을 감싼 채 무릎을 꿇는다.
"크, 카, 아… 학… 카앗…!"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핏덩어리와도 같은 것이 입에서 토해진다.
─점차, 의식이 멀어져가는 가운데 부멜 쿠완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싫어하지만, 다른 녀석들처럼 너를 얕보는 짓따윈 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지칠 때까지 기다렸고, 그러고도 넷이서 함께 덤빈다는 길을 택한거다.]
[나■ ■를 싫■■지■, 다른 ■석■처럼 너를 얕■는 ■따■ 하■ ■■. ■■기 ■문에 일■러 지■ ■■지 기다■■, ■러고도 넷■서 ■■ 덤■■는 ■을 ■■거다.]
엑스의 귀에는, 이제 부멜 쿠완거가 뭐라고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네놈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극히 짧은 순간 굳어있었던 마그마 드래곤과 스톰 이글이 분노를 터트리며 동시에 달려든다.
마그마 드래곤이 입에서 불을 뿜어내고, 스톰 이글이 오른팔의 포구에서 토네이도를 발사한다.
─화염은 플레임 맘모스에게, 토네이도는 차일 펭귄이 세운 얼음 동상에 의해 가로막힌다.
[뭐─]
경악하는 마그마 드래곤을, 플레임 맘모스는 그 거대한 발로 찍어눌러버린다.
깊은 발자국과 함께, 마그마 드래곤의 몸이 도로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차일 펭귄은 슬라이딩을 사용해 스톰 이글의 발을 걸어 자세를 무너뜨리고, 아래 쪽에서 위를 향해 샷건 아이스를 발사한다.
스톰 이글의 날개가 얼음 미사일에 맞아 충격을 입고, 스톰 이글은 뒤로 날려간다.
[멍청한 놈들!! 지금까지 서로 싸우느라 있는 힘 없는 힘 다 빼버린 네녀석들이, 만전 상태의 우리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차일 펭귄의 말대로였다.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은 분명 이레귤러 헌터 중에도 굴지의 용사들이지만, 여기에 있는 이레귤러 4명 또한 원래는 자기가 속한 부대의 대장 자리를 역임하고 있던 일류의 이레귤러 헌터들이었다. 괴조와 싸우고, 슬래시 비스트와 싸우고, 여기에 또 서로 싸워서 힘을 소모한 두 사람이 달려든다고 해도, 승산은 낮다.
"이 놈들…!"
S2U를 들어올려 겨누는 크로노를 향해, 스파크 맨드릴이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오오, 끼어들면 곤란한데 인간. 나랑 달리 이 친구들은 부지런해서, 인간이 신경 거스르면 죽여버릴거라고.]
"큭…!"
척 보기에도, 이들은 조금 전에 날려보냈던 사자와 같은 수준의 흉흉함을 보이고 있다.
과연 혼자서 이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크로노의 머리 속에서는 부정적인 대답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페이트! 이 틈에!"
"아, 알프…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아니면 우리까지 당할지 모른다구!"
두려운 것은 알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까지 굳어있으면 페이트를 지킬 수 없다.
그 일념 하나만으로, 알프는 공포심을 이겨내고 몸을 움직여 페이트를 데리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나노하! 정신차려!"
"아… 아…!"
한편, 유노는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나노하를 붙잡고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초점이 희미해진 채 반응이 없는 나노하를 보며, 유노는 이를 갈았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요즘 마법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9세의 소녀. 이런, 사람의 목이 잘려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장면을 봤을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유노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그는 지금까지 발굴 작업을 하고 다니며 이것저것 본 것이 많기 때문에 나노하처럼 완전히 패닉에 빠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는 위험했다.
저 넷은 사람의 목을 아무 주저도 없이 베어버리는 이들이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과 나노하까지 위험해진다.
부외자들이 어떻게 하든 신경쓰지 않고, 부멜 쿠완거는 무릎을 꿇고있는 엑스를 향해 다가갔다.
[보통 레플리로이드라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만, 너는 '보통'이 아니니까. 지금까지 우리들의 상상을 몇번이고 뒤집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린 법은 없지.]
그러니까,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뒷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머리에 붙어있던 뿔을 떼어내, 그것을 단단히 틀어쥐고는 엑스를 향해 겨눈다.
[잘 가라, 엑스. 너는 시그마 대장의 말처럼, 정말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손에 쥔 뿔의 검을, 용서없이 내리친다.
「라이트닝 웹」
[뭐라고?!]
부멜 쿠완거와 엑스의 사이.
마그마 드래곤을 밟고 있는 플레임 맘모스의 머리 위.
스톰 이글에게로 입을 벌리고 있는 차일 펭귄의 등 뒤.
크로노에게 드릴을 겨누고 있는 스파크 맨드릴의 얼굴 바로 앞.
그 네 곳에, 번개로 이루어진 거미줄이 생겨난다. 부멜 쿠완거의 뿔 검이 거미줄에 얽혀, 허공에서 멈춰버리고, 거미줄을 뒤집어써버린 플레임 맘모스와 차일 펭귄은 비명을 지르며 스파크 맨드릴은 황급히 몸을 굴려 피해낸다.
[이 공격은… 설마!]
부멜 쿠완거가 놀라움을 내뱉는 동안, 엑스의 뒤에 있던 맨홀의 뚜껑을 날려버리며 또 한 사람의 레플리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맨홀 뚜껑을 열었지만, 그것보다도 체구가 크기에 결국 입구 부분을 부숴버렸지만.
비록 엑스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이레귤러 헌터 제 0 특수부대의 대원.
그 이후, 레플리포스 소속 게릴라 부대의 부대장.
엑스와도, 제로와도 같이 힘을 합친 적이 있는 옛 전우인 거미형의 레플리로이드.
[[웹 스파이더!!]]
[이야기는 나중이다!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니까 아파도 좀 참아!]
웹 스파이더는 엑스를 들쳐멘 후 곧장 마그마 드래곤과 스톰 이글을 향해 라이트닝 웹을 쏴서 둘을 감싸 끌어당기고는 남아있는 팔들로 두 사람을 붙잡았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라이트닝 웹에 의해 감전되었지만, 두 사람 모두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것을 보며 부멜 쿠완거는 드물게 분노로 찬 말을 토해냈다.
[네놈…!! 같은 이레귤러면서 우리들의 제안을 거절하더니 그쪽으로 붙겠다는거냐!!]
['같은 이레귤러'? 웃기지 마라, 인간에 대한 반항심만으로 들고 일어난 정진정명 진성의 이레귤러가.]
그 상태로 웹 스파이더는 세 사람을 들쳐메고는 자신이 나온 맨홀을 통해 다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뒤늦게 그물을 찢어버리며 달려온 부멜 쿠완거였지만, 이미 그때는 웹 스파이더의 흔적을 놓쳐버린 다음이었다.
이레귤러들이 웹 스파이더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크로노는 나노하와 유노를 데리고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아스라로부터 서포트를 받아 전송. 이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부오오옷!! 다 잡아놓고 놓치다니!!]
[꾸왁─ 그 망할 거미 자식이…!!]
플레임 맘모스와 차일 펭귄이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뛴다.
그런 반면, 스파크 맨드릴은 나른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뭐, 괜찮지 않아? 어차피 녀석을 공격한 건 '덤'이고, 부탁받은 의뢰는 달성했잖아.]
스파크 맨드릴의 말에, 부멜 쿠완거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 확실히. '아가씨'는 확실하게 보석을 들고 돌아간 것 같으니까 원래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도 좋겠지.]
하지만 가능하면 엑스는 죽여놓고 싶었다.
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부멜 쿠완거로서는, 그 '가능성'을 적으로 돌린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됐어. 그 정도 부상이라면 함부로 더 움직이지 못할테니까, 그 사이에 우리들의 목적을 완수하면 그 뿐이야. 하는 김에 저기 쳐박힌 사자 놈도 같이 챙기고. 거미 녀석과는 달리 우리들쪽에 가까운 것 같으니까.]
이 '의뢰'를 끝까지 완수하면서 엑스도 죽일 수 있게 된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딱히 죽이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 의뢰가 끝나면 그들은 엑스조차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이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하면 되니까.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프레시아 여사도 결과 보고 정돈 듣고 싶을테니까.]
───to be continue
현재는 그의 모친, 린디 하라오운이 함장으로 있는 차원항행함 「아스라」에 소속되어있으며, 15세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도 벌써 여러 범죄를 해결한 경력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몇번인가 임무 실패의 위기를 겪은 적도 있고, 목숨을 잃을 뻔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꿋꿋하게 집무관으로서 일하며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밞고 있었다.
본래부터 재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크로노는 시공관리국원이었던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비록 불운한 사고로 순직했지만, 소년에게 있어 아버지는 영웅이었고 또한 따라잡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했다. 죽을 힘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울만큼.
축복받은 재능의 위에, 그 본인의 노력이 더해졌다. 15세에 관리국 집무관이라고 하는 지위는, 그로 인해 얻은 대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의 동료들은 소년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행동해온 아스라의 크루라면 누구라도 그의 실력을 믿고 있다. '함장의 아들'이라거나 '영웅의 후계자'라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다. 소년의 실력이 가져온, 무수한 성과와 실적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모친인 함장 린디 하라오운 역시 아들을 대단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상황이 많이 나쁜걸."
린디는 드물게 표정을 굳히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스크린에서는 현재 3개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과, 한 푸른 전사가 힘을 합쳐 "금색의 사자"와 대치하고 있는 광경.
─하얀 색의 마도사 소녀와, 검은 색의 마도사 소녀가 대치하고 있는 광경.
─그 바로 옆에서, "붉은 용"과 "푸른 독수리"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광경.
화면상으로 봤을 때, 관리국에서 회수해야할 쥬얼 시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보이는 것은 저 두 사람의 마도사 소녀와 크로노 뿐이었다. 그 이외의 나머지 네 사람은 이 자리에 있다가 말려든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저 마도사 소녀들과 이야기를 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현지인들(아스라의 입장에서)이 크로노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점. 단순한 현지인이었다면 이쪽에서 싸움을 피하면 그 뿐이지만… 상대는 관리외 세계의 존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도형 사격 마법을 문제없이 회피해버리는 스피드, 콘크리트를 우습게 가르고 부숴버릴 정도의 파워, 불길을 뿜어내며 폭풍을 일으키는 힘. 이 모든 것이, 마법도 마력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행해진 일들이었다.
아무리 크로노의 경험이 나이에 비해 많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험 지정 생물이나 범죄 마도사를 상대로 한 이야기. 위험 지정 생물급 이상의 전투력과 인간 수준의 지능을 함께 가진 존재와는 아직까지 싸워본 적이 없다.
물론, 모친으로서의 린디 하라오운은 아들을 믿고 있다. 그러나 함장으로서의 그녀는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즉, 크로노가 저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쥬얼 시드를 확보하지도 못했을 때를 대비한 상황을.
쥬얼 시드는 세계 한둘 정도도 멸망시켜버릴 수 있을 가능성을 지닌 로스트 로기아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무장국원들을 아스라에 태워 함께 데려온 것이 다행이었다.
린디는 함장으로서 조금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5명의 무장국원들을 제 97 관리외 세계로 출발시키로 결심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0분 정도 전의 이야기다.
"에이미, 보낸 사람들에게서는 연락 없어?"
"네에, 그게… 벌써 포진하고 연락이 왔어야 하는데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로스트 로기아가 관련된 사건인 이상, 어떤 상정 외의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이 상황은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것이, 린디에게는 한없는 불안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곤란하다고, 너희같은 녀석들이 함부로 끼어들면.]
짓밟는다. 반응이 없다.
숨이 끊어졌는지 어떤지는 알 바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그들이 발로 밟고 있는 이들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 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던 녀석들의 뒤통수를 쳐서 떨어뜨리고 단번에 목을 비틀어버린 것 뿐이니까. 마침 숫자도 이쪽과는 한명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거의 소리소문도 없이 이 5명을 제거할 수 있었다.
가장 커다란 이가 물었다.
[이봐.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거야. 당장 가서 밟아버리자고!]
[기다려. 아직은 아냐. 게다가 녀석의 센서는 반경 400m 안에 있는 이레귤러는 남김없이 감지할 수 있어. 지금 들어가면 100% 걸릴걸.]
이들은 지금 현재 결계 안에 있었지만, 그 가장자리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엑스와의 거리는 약 500m. 아슬아슬하게 센서에 걸리지 않는 범위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의 전투로 보건대 녀석은 확실히 정상이 아닌 상태… 그렇다면 틀림없이 기회는 올테니까.]
시공의 참절귀는, 지극히 냉정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웃음 소리를 흘렸다.
IRREGULAR HUNTER - X
16화
"싸움을, 멈춰주세요!"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은 갑자기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용과 독수리가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자 잠깐동안 오싹함을 느낀 나노하였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레이징하트를 들어올렸다.
저쪽의 소녀와 늑대는 현재 유노가 발목을 잡아놓고 있는 상태. 그 틈을 이용해 나노하는 도시를 망가뜨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온 것이다.
"여기는 모두가 살고 있는 마을이에요! 지금도 건물 하나를 무너뜨리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마그마 드래곤쪽의 방향에서, '흥'하는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곧장, 마그마 드래곤은 고개를 다시 스톰 이글쪽으로 돌리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에, 에에에에엣?!"
나노하가 놀라던가 말던가, 마그마 드래곤은 스톰 이글을 향해서 오른주먹 스트레이트. 스톰 이글은 그것을 십자 막기로 막아낸 후 날개를 펼쳐 그대로 휘둘러 마그마 드래곤을 후려쳤다.
하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잔상이 남을 정도의 스피드로 몸을 낮춰 그것을 피해내고, 그 상태로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 후리기. 철빔조차 간단하게 끊을 수 있는 파괴력이 담긴 킥이 스톰 이글의 다리를 걷어찬다.
[윽…!!]
다리가 걸려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스톰 이글이 손가락을 세워 마그마 드래곤의 흉부를 할퀸다. 그의 가슴쪽 장갑에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크게 할퀴어진 상처가 생겨났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켜 발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내리찍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로 된 도로 바닥이 쪼개진다.
다시 한번 발을 들어올린다.
다시 한번 내리찍는다.
스톤핑이 복부에 꽂힐 때마다 굉음과 함께 도로 바닥의 균열이 커져갔고, 4번째의 스톤핑이 찍혔을 때는 몸이 바닥에 박혀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섯번째 스톤핑이 그를 찍으려 했을 때, 스톰 이글은 두 손으로 그 발을 받아냈다. 내려오려는 발을 반대로 밀어올리며, 바닥에 박혀있던 몸을 떼어내 일으키고는 그대로 밀어냈다.
그러나 밀려나기 직전에, 마그마 드래곤은 이미 발에서 힘을 빼버린 상태. 스톰 이글이 자신의 발을 밀어내자마자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스톰 이글의 안면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을 예상해고 있던 스톰 이글은 몸 전체를 반회전시켜 그것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마그마 드래곤의 팔을 양손으로 붙잡고 휘둘러, 마그마 드래곤을 내던져버린다. 그렇게 내던져진 마그마 드래곤 역시 몸을 빙글하고 회전시켜, 데미지없이 바닥에 착지한다.
그 순간
「스톰 토네이도」
─코앞까지 날아온, 주먹 정도의 크기까지 압축된 '회오리'의 폭탄에 맞고 뒤로 튕겨지듯이 날아가 뒤쪽 건물의 벽에 부딪힌다.
몸이 벽에 박혀버릴 정도로 크게 박혀버리고, 그 충격으로 벽이 함몰되다가 무너져내린다. 벽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마그마 드래곤은 고개를 크게 저어 충격의 여파를 떨쳐버리고 일어선다.
[과연. 아무리 힘을 소모했어도 이레귤러 헌터의 부대장. 그렇게 쉽게 당해주진 않는군.]
[… 이쪽이 할 말이라고, 그건.]
출력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스톰 토네이도는 압축할수록 파괴력이 강해진다. 본래 기상현상의 일종이라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회오리의 특성상, 회전을 유지하면서 압축할수록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런 것을 아까 긁어놓은 상처 부위에 직격으로 맞은 주제에 곧바로 일어나다니. 인간형 격투 타입이면서 어디까지 내구력을 높여놓은건지─
─아니, 그것은 아니다. 스톰 이글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 녀석은 딱히 방어력이 높기 때문에 견딘 것이 아니다. 통각을 제거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견디고 있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입은 고통을, 데미지를, 투쟁심으로 억누르고 있다.
'타고난 전사'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저 녀석에게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마그마 드래곤이 다시 주먹을 쥐고 몸을 일으켜 달려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막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각오를 굳히며 스톰 이글도 주먹을 쥐고 날개를 크게 펼친다.
「디바인 슈터」
두 레플리로이드의 사이로, 분홍빛의 무언가가 빠르게 가로질러 지나갔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제 3의 방해가 들어오자, 스톰 이글도 마그마 드래곤도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둘 사이를 가로질러갔던 분홍빛의 구슬이 저 멀리서 선회하며 다시 돌아와 한번 더 사이를 가르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자신들에게 말을 걸었던 소녀의 주변에서 정지했다.
"다음에는, 맞출지도 몰라요."
… 그러고보니 이 꼬마, 아까부터 계속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 같은데.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하고 싶은 말은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나서야, 마그마 드래곤이 소녀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진 '주변에 있는 장식물 중 하나'를 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확연하게 '방해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 꼬마. 이름은?]
"… 네?"
[이름이다, 이름. 설마 이름이 없다고 하진 않겠지.]
느닷없이 이름을 물었다. 이 시점에서, 스톰 이글은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노하는 주저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노하, 타카마치 나노하입니다."
[그래, 나노하. 그 나이에 우리 싸움에 끼어들 정도의 용기를 발휘한 건 칭찬해주마. 그 대신, 다음에도 쓸만한 충고를 하나 해주지.]
다음 순간.
마그마 드래곤의 몸에서, 폭발적인 투지와 살의가 터져나왔다.
스톰 이글조차 오싹함을 느끼고, 이런 것에 면역이 없는 나노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을 정도의.
[그 경우, 빗맞추고 나서 "다음에는 맞출지도 몰라요"가 아니라 초격을 맞춰버리는 게 정답이다.]
"우, 아, 아…!"
한발짝, 한발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그마 드래곤을 보며,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앞에 두고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런 나노하의 앞을 스톰 이글의 등이 가려주고 나서야, 나노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너. 아이 상대로 진지해지지 말라고.]
[뭘. 지금 건 단순한 경고다. 한번 더 끼어들면 그땐 정말로 가만안두겠지만.]
한달 전 엑스와 잠깐 싸울 때의 아리사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때의 아리사는 단지 주변에 있었을 뿐이고 적극적인 방해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그마 드래곤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노하는,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자신의 싸움을 방해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인'이었던 아리사와는 달리 묘한 능력을 사용하면서까지.
분명 마그마 드래곤은 다른 이레귤러들과는 달리, 그리 쉽게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하면 공격하고 싶지 않다"는 정도의 가벼운 기분일 뿐이고, 엑스처럼 "인간을 공격해선 안된다"라고 머리에 박혀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받쳐주고 마그마 드래곤 본인이 그럴 기분만 든다면, 인간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여자든 죽기 직전의 병자든 얼마든지,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다.
아무리 다른 이레귤러들과 다르다고 해도.
그것이, 마그마 드래곤이 '선'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스톰 이글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 원래는 이레귤러 헌터였던 자가 어디까지 떨어진거냐.]
[너야말로 잊은건가. 이레귤러 헌터 중에도 이레귤러로서의 소질을 가진 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스톰 이글은 시그마의 반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엑스에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모른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이레귤러 헌터들이 인류를 배신하고 적으로 돌아섰는지.
[그리고… 나에게는 목적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적이.]
100년 전에도, 똑같은 목적을 가졌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이루지 못한 채, 파괴당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죽음에서 되돌아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추락해주지. 어디까지라도 타락해주마.]
[… 결국 네놈도 어쩔 수 없는 이레귤러라는 건가.]
스톰 이글은 몸을 살짝 낮춰 언제든지 마그마 드래곤의 공격에 대비하며, 뒤에 있는 나노하에게 말을 걸었다.
[봤으면 알겠지만, 저건 말이 통할 상대가 아냐. 이 이상 여기에 있다간 너까지 휘말릴거다.]
"… 그럴 순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긴 민간인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
이렇게까지 말을 못알아듣는건가. 살짝 분노를 담으며 고개를 돌리던 스톰 이글은 한순간 생각을 멈췄다.
나노하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마그마 드래곤의 살기에 완전히 눌려있던 꼬마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만큼,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분명 제가 나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싸움으로 마을이 부서지고 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 너.]
딱 잘라 말해서, 열살도 안되보이는 인간 꼬마가 보일 수 있는 '각오'는 아니었다.
잠시동안 나노하를 바라보던 스톰 이글은, 이윽고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라. 할 수 있겠지?]
"네!"
… 인간의 아이를 싸움에 휘말리게 했다.
이레귤러 헌터라면 틀림없이 제명당하고 이레귤러의 낙인이 찍혔을 행위. 그런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 저 녀석을 이레귤러라고 매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군,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스톰 이글은 나노하와 함께 위로 올라갔다.
[■■■■■■■■■■■■■■■!!]
슬래시 비스트가 포효하며 돌진하자마자 엑스와 크로노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떨어졌다.
강철의 사자는 엄청난 속도로 그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다가, 저 멀리서부터 방향을 전환해 다시 달려온다. 엑스의 버스터 샷도 크로노의 마력탄도 하나하나 모조리 피해가면서.
"무슨 스피드가…!"
이를 갈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슬래시 비스트의 돌진을 피해낸다. 크로노가 피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엑스 역시 위로 뛰어올랐다. 단순히 위로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건물의 벽을 향해서.
벽을 차고 허공을 지나가면서 아래쪽을 향해 버스터 슛을 난사한다. 총 6발이 발사되었고, 그 중 스친 것이 2발이고 나머지는 전부 빗나갔다. 엑스의 컨트롤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은 차지하고, 역시 슬래시 비스트의 스피드가 문제였다.
엑스와 크로노를 합친 것보다 거대한 체격으로, 두 사람보다 빠르다.
'부조리하군.'
크로노가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 한들, 저 녀석은 원래부터 수송 부대 출신. 발이 느리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움직임은, 이미 알고 있다!"
「스팅거 스나이프」
크로노가 자랑으로 사용하는 유도형 저격마법. 허공에서 나선을 그리던 푸른 빛이, 이쪽을 향해 오는 슬래시 비스트에게로 날아갔다.
[아까 전에도 통하지 않았던 걸 무슨 생각으로…!]
슬래시 비스트는 코웃음을 치면서 위로 뛰어올라 피해낸다.
─하지만, 이번의 스팅거 스나이프는 아까의 것과는 달랐다.
처음에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유선으로 움직이던 빛이, 돌연 움직임을 바꿨다. 격렬하게 여기저기에 부딪히는 듯한 직각으로 움직이며, 그 속도를 높였다.
잠깐 동안 당황한 슬래시 비스트였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양쪽의 벽을 교대로 차가면서 피해낸다.
그리고 스팅거 스나이프는, 그것보다도 더욱 빠른 스피드로 위로 날아올라, 슬래시 비스트를 지나쳐서는 다시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나보다─ 빠르다고?!]
경악할 틈도 없이 스팅거 스나이프는 슬래시 비스트에게 직격되어 작게 폭발을 일으킨다.
치명타나 중상이라고 할만한 것은 입히지 못했지만, 슬래시 비스트는 지상으로 추락하여 바닥에 꽂혔다.
어떤 마법이든지 마찬가지지만, 마력을 소비하는 양에 따라서 위력도 속도도 달라진다. 지금의 스팅거 스나이프를 사용할 때 쓴 마력은 평소에 쓰는 것의 2배에 가깝다. 확실히 말해 과소비에 효율성이라곤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지만,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데에 효율성을 따질 틈은 없다.
"아직 몸이 불편한건가?"
"… 미안."
숨을 돌린 틈을 얻은 크로노는 아까 슬래시 비스트의 돌진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어버린 엑스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대쉬를 이용해서 피한 것까진 좋았는데, 그 순간 왼쪽 무릎이 스파크를 일으켜버리며 격렬한 통증을 가져왔다. 그 때문에 넘어져 뒹굴어버린 것이다.
… 성급해도 너무 성급했다. 크로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자신이 도착했을 때, 좀 더 자세히 상황을 살폈더라면.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가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막아 도시를 구했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그에게 공격을 가할 일도 없었고, 지금처럼 괴로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엑스가 입은 부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지만, 그것을 알 수 있을 리 없는 크로노로서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피지컬 힐」
S2U를 엑스에게 겨누고, 회복의 마법을 사용한다.
디바이스의 끝에서 푸른 빛의 마력이 빛을 발하고, 점차 엑스에게로 빨려들어갔다. 육체적인 부상에 대해서는 즉효성을 지니는 회복 마법. 깊은 중상이라면 완치까진 어려워도, 최소한 몸을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진 회복될 것이다.
… 라는 생각으로 사용한 마법이지만.
"……?"
정작 당사자는 의문만을 가득 담은 채 크로노를 바라보고 있다.
피지컬 힐을 받고도 편해진 기색을 보여주기는 커녕 지금 뭐하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엑스를 보며, 크로노는 내심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전투기인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어야 정상이니까.
이것은 크로노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은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하여 기계에 대한 적합도를 높여 출생시킨 아이에게 기계를 이식시켰을 뿐인 전투기인과 처음부터 기계로 만들어진 레플리로이드의 차이 때문이다.
피지컬 힐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비롯한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마법. 확실히 '생체'적인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엑스의 근본은 '기계적인 부분'에 있다. 따라서 통증은 가라앉을지 몰라도 지금 엑스가 짊어지고 있는 부상 자체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아까 공격에 대한 사과도 겸한 거였지만, 도움이 안됐나 보군."
"응? 아니, 아냐. 상당히 편해졌어. 고마워."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크로노는 어색함을 애써서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조금 전 바닥에 꽂혔던 슬래시 비스트가 몸을 일으키고 있다.
엑스는 생각했다.
화력이라면 있다. 자신의 풀 차지 슛도 있고, 자신의 옆에 있는 이 소년이 가진 기이한 힘도 있다.
문제는, 그 화력을 쏟아부을 방법.
문제는, 그 화력을 남김없이 적중시킬 방법.
문제는, 그 화력을 적중시키기 위해서 저 사자의 발을 묶을 방법.
엑스는 생각했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이 도시에게도, 저 소년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방법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떠올려놓고 스스로도 자조한다.
있을 리 없다. 그런 꿈같은 방법이. 이상적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아까의 괴조 때와 똑같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가능할 리가 없다.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모두가 무사할 수 있는 방법따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도 포기했다.
적을 쓰러트리고, 도시도 동료도 무사한 대신.
─'자신도 다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으면,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 동료도 지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는 이 세계로 온 이후 싸울 때마다, 죽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거의 자신의 몸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기. 아까의 그거, 또 쓸 수 있어?"
"…? 어느 걸 말하는거지?"
"열기가 담겨있던 가장 큰 포격. 그거."
"블레이즈 캐논이라면… 시간만 있다면 다시 쏠 수 있지만, 쏜다고 해도 저 스피드를 상대로는 맞출 수 없어."
한번 더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상관없다.
"그럼 됐어. 시간이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충전해둬."
"뭔가 방법이라도?"
눈치가 빠른 녀석이 동료일 때는, 역시 설명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좋다.
"조금 후에 녀석이 움직임을 멈출 거야. 그때를 노려."
"… 알았다. 조심해."
그 말만을 남긴 채, 크로노는 S2U와 함께 블레이즈 캐논의 준비에 들어갔다.
본래 크로노는 자신의 컨트롤 능력으로 순간적인 방출을 제어하여 빈틈이 없도록 조정하고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컨트롤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고, 오직 출력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엑스는 그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슬래시 비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 슬래시 비스트를 향해 달렸다.
'역시 그 방법인가…!'
크로노는 이를 악물었다.
몇번이고 말하는 것이지만, 크로노는 집무관 직업 특성상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엑스의 언동으로부터 대략적인 성격은 파악해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가 처음 블레이즈 캐논의 사용에 대해 물어왔을 때부터 이런 방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가능성은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해버릴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 인생, 생각대로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은 모양이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지금부터라도 주문을 캔슬하고 서포트 해야할까. 그게 아니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2m가 넘어가는 사자형태의 로봇과 인간이 부딪히면 어느 쪽이 날아갈지는 뻔한 이야기. 당연히 지금은 마법을 해제하고 저쪽을 돕는 것이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을 그 당사자가 알지 못할 리 없다. 알면서도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고, 방법이 있다면 크로노가 마법을 해제하면서까지 돕길 바랄 리 없다.
거기에… 엑스는 크로노를 등 뒤에 두고 달려가고 있다.
첫 대면도 하기 전에 공격부터 한 자신을 믿고서. 틀림없이 믿고 있는대로 해줄거라고 생각하고서.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자신이 그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자신도 믿기로 했다. 기껏해야 자신과 연령 차이도 거의 나지 않으면서, 용감하기 짝이 없는 소년을.
두 사람이 만난지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크로노는 이미 엑스를 믿고 있었다.
한편, 엑스는 달리는 것과 동시에 풀 대쉬를 시작했다. 첫번째 시도에서는 오른발만 성공, 두번째 시도에서는 양쪽 다 불발, 세번째 시도에서는 왼발이 성공하려다 말고 꺼졌고, 네번째 시도에서야 간신히 성공.
그리고 네번째 시도가 성공하자마자, 엑스는 슬래시 비스트와 충돌했다.
[■■■■■■■■■■■■■■■!!]
돌진해서 깔아뭉개버리려는 슬래시 비스트. 그것에 손을 뻗어 멈추려는 엑스.
슬래시 비스트의 두 손과 엑스의 두 손이 서로를 붙잡았다.
엑스는 무릎을 살짝 굽혀 버텨내고, 슬래시 비스트는 그런 엑스를 그 상태 그대로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충돌 충격으로 인해 땅을 딛고 있던 발이 지면을 파고 들어갔고, 그 뒤에 이어진 돌진으로 인해 지면을 갈라버리며 밀려난다.
분명 슬래시 비스트는 헤비급에, 파워도 강력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엑스는 그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더욱 파워도 강한 '루시퍼'를 상대로, 같은 일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그러니까 슬래시 비스트와 충돌한 정도로 자세가 무너져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 평상시라면.
충돌하자마자 다리 쪽에서 힘이 빠져버려, 엑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슬래시 비스트가 위에서 누르는 형태가 되버렸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엑스의 등이 지면과 충돌하고, 슬래시 비스트는 그대로 두 손으로 엑스의 손을 누르기 시작했다.
[바보냐, 네놈은!! 정면 충돌로 나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아아. 혹시나 했지만, 예상했던 그대로라서 놀랄 것도 없네."
엑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슬래시 비스트에게 저런 소릴 들을 것도 없이, 지금의 자신의 몸 상태 정도는 엑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면 충돌로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굳이 강행한 것은, 오히려 지금의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엑스는 쓰러진 상태에서 두 발을 들어올려, 자신을 누르고 있는 슬래시 비스트의 복부에 갖다댔다.
─그 상태에서, 부스트. 대쉬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가 발을 통해 방출된다.
첫번째엔 불발, 하지만 두번째 시도에는 양쪽 모두 성공했고, 슬래시 비스트는 로켓과도 같은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뭣이?!]
자신의 거체를 공중에 띄워버릴 정도의 추진력에 슬래시 비스트가 경악하는 사이.
엑스는 쉴 틈도 없이 '등'으로 바닥을 쳐 그 반동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실행했다.
「Four part Change」
양 팔과 양 다리. 4개 파츠의 동시 변환.
전신에 전류가 흐른다. 단순한 '변형'을 넘어서, 통증마저 가져올 정도로.
엑스의 밸런스 회로는 신체의 모든 '균형'을 통괄하는데, 신체의 변형이라는 큰 작업이 그 회로의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현재의 밸런스 상태로는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
「경고(Warning). 밸런스 회로에서 치명적 데미지 확인. 현 상황에서 변환을 시도할 경우 오버 히트가 우려됩니다.」
물론 신경쓰지 않고 강행한다.
'넷 중에… 하나만이라도… 성공하면…!!'
밸런스가 망가져있다고 해도 시도하는 모든 것이 실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패하거나 무효화되는 일이 많아지긴 했어도 성공 확률 또한 확실하게 존재한다. 엑스는 그 확률에 건 것이다.
─「우완 : 블리저드 버팔로」
얼음의 힘을 갖고 있던 버팔로의 대형 레플리로이드.
하지만 오른팔은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캐쉬 크라우피시」의 집게발로 변했다.
─「좌완 : 스톰 아울」
바람의 힘을 가진 레플리포스 소속의 부엉이형 레플리로이드.
그러나 왼팔 역시 제어가 듣지 않아, 전혀 관계없는 「그라비티 비틀」의 팔로 변했다.
─「우각 : 마그넷 센티피드」
자력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던 지네형 레플리로이드.
이번에는 아예 변형 자체가 실패해버려, 변형하려다가 말고 다시 원래 다리로 돌아온다.
─「좌각 : 제트 스팅레이」
그리고, 유일하게.
이 왼발만이 변형에 성공하여 가오리형 레플리로이드의 것으로 변형된다.
동시에 진행된 이 모든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1.2초. 이 중 생각한 것대로 된 것은 하나 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게다가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버그 홀」
그라비티 비틀의 무기였던 중력장 생성기. 그 무기가 공중에 떠오른 슬래시 비스트에게로 날아가 부딪혔고, 곧바로 원형의 중력장을 생성해 슬래시 비스트를 봉쇄한다. 이것으로 움직임을 멈췄다고 해도 그 시간은 불과 2~3초. 블레이즈 캐논을 쏜다고 해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 포격의 도달 전에 중력장이 풀려서 결국은 피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밑에 있는 엑스가 또 하나의 무기를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라운드 헌터」
왼쪽 발을 휘둘러, 가오리 형태의 에너지탄을 발사한다.
이 무기의 본래 주인은 제트 스팅레이. 과거 레플리포스 해군 소속의 용장이며, 슬래시 비스트와는 전우였던 자다. 해군 소속임에도 공중을 날 수 있고, 또한 매우 빠른 스피드로 움직일 수 있었던 레플리로이드이며… 그의 그라운드 헌터는 대기 중의 수분을 조작하는 것으로 슬래시 비스트의 움직임을 묶어버릴 수 있다.
본래부터 사막이나 산악 지대 등의 거친 지형에서 움직이기 위해 설계된 슬래시 비스트는 해양 근처에 갈 경우 상대적으로 녹슬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운드 헌터는 속된 말로 '쥐약'.
그 때문에 같은 레플리포스 소속임에도, 별로 몇번 만날 기회가 없었음에도 슬래시 비스트는 제트 스팅레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원래 뼛속까지 군인 정신으로 들어차있는 스팅레이와 불량하고 껄렁하기 짝이 없는 비스트의 성격이 맞을 리 없다는 이유도 있다).
만약 슬래시 비스트의 움직임이 버그 홀에 의해 묶여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밸런스 엉망인 엑스가 맞출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근거리에서 움직임을 묶고 확실하게 먹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부러 몸으로 충돌한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한 것도 그 때문.
다리에서부터 발사된 세 마리의 가오리가 슬래시 비스트의 몸에 적중. 슬래시 비스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굳어버렸다.
엑스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벗어나 소리친다.
"지금!!"
엑스가 소리칠 것도 없이, 크로노는 이미 충전을 끝내고 발사 준비에 들어가있었다.
"「블레이즈 캐논」!!"
크로노와 S2U에서 동시에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와 함께 아까도 모습을 드러냈던, 열화를 담은 푸른 빛의 기둥이 발사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까 것보다 크기도 열기도 기세도 속도도 더욱 높아졌다는 것.
그때 쯤에는 슬래시 비스트의 중력장도 해제되어있었지만, 그라운드 헌터에 의한 경직이 풀리질 않았다.
결국,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열선을 보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노의 고함을 터트리는 것 뿐.
[제에에에기이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푸른 빛의 기둥이, 슬래시 비스트를 날려버렸다.
"… 쓰러졌을까?"
"아마도."
비살상 설정이라고는 해도 최대 출력의 블레이즈 캐논이었다. 쓰러져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엑스와 크로노는 슬래시 비스트가 날려간 방향을 노려보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반응이 없었다.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크로노는 엑스를 돌아보았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역시 가장 먼저 해야할 건 이거겠지."
크로노는 몇번인가 헛기침을 하여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했다.
"협력에 감사한다. 나는 크로노 하라오운. 시공관리국의 집무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없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 이레귤러 헌터는 이레귤러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게 사명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렇다 하더라도, 구해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이레귤러 헌터라는 건?"
'이레귤러'란 저기의 사자같은 녀석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은 '이레귤러 헌터'라고 자칭했고. 이름에서 느껴지는 뜻을 볼 때, 이레귤러 헌터라는 건 문자 그대로 이레귤러를 때려잡는 것이 임무인 것 같지만… 인명 구조 역시 임무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슬래시 비스트의 공격으로부터 크로노를 구하지 않고 곧바로 슬래시 비스트를 쳐버리는 쪽이 나았을테니까.
"내가 소속되어있는 조직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인데…"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이 세계'에 이레귤러 헌터라는 조직이 없을 뿐이다.
'그렇군… 공투에 익숙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어딘가 조직의 소속이었나. 이레귤러 헌터라는 조직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고, 그의 힘을 생각하면…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관리외 세계의 조직일 확률이 높겠군.'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정도의 전투력. 솔직히 그것에는 대단히 놀랐다. 저 사자만 해도 AAA+ 랭크의 마도사급 전투력을 보였고, 눈앞에 있는 소년의 힘은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아까 슬쩍 봤을 땐 중력이나 물의 힘도 사용한 것 같았는데.
"이번엔 내가 묻고 싶지만… 시공관리국이라는 건?"
"이름 그대로, 다중차원세계를 관리하는 조직이다. … 라고 해도 관리외 세계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말야."
"……"
거기까지 들은 엑스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물론 여전히 그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있었기에, 그 표정을 크로노가 볼 일은 없었다.
"하나 더. 당신…… 몇 살?"
"…? 15살이지만,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엑스의 상식으로 비추어볼 때, '인간' 소년의 15세 시절은 신체가 성장 도중이라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그다지 강하지 못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근로기준법 위반에도 정도가 있다.
게다가.
"정말로 열 다섯? 그 나이 소년의 평균 신장보다 꽤 작은데."
"……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콤플렉스를…!"
엑스의 외관 연령은 15세. 마스크와 장갑을 두르고 있는 지금도 그것이 반영되어, 신장은 헬멧 제외하면 160Cm 정도다. 크로노가 '자기 또래의 소년'이라고 판단한 것은 거기에 기준한 것이기도 하다.
… 그리고 크로노는, 그런 엑스보다 15Cm 정도 작다. 그것은 평소에도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였다.
한참동안 궁시렁 거리던 크로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아, 그렇지! 쥬얼 시드!"
"… 응?"
"미안하다. 이야기는 나중으로 돌리지. 지금은 우선─"
"우와아아아아앗!!"
두 사람의 위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오고, '매우 작은 무언가'가 떨어졌다.
엑스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들어올려 떨어진 것을 받아냈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다.
"아야야… 큰일날 뻔 했네… 아, 감사합니다…"
"아니, 천만에. 그런데… 넌 누구?"
엑스의 두 손에 떨어진 것은 한 마리의 페릿. 말할 것도 없이, 페이트와 알프를 혼자서 막고 있다가 지금 막 알프에게 걷어차여 떨어진 유노 스크라이어다.
"아, 저는 유노 스크라이어라고……"
"스크라이어? 그럼 스크라이어 일족의 사람인가?!"
크로노가 놀라는 사이.
공중에서 페이트와 알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왓…! 저 녀석은 시공관리국이잖아…!"
크로노를 보자마자 알프가 날린 감상. 페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굳어있었다.
여기서 엑스는 조금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푸른 빛의 작은 제너레이터를 가지고 있던 괴조.
그 괴조에게서 '쥬얼 시드'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푸른 보석을 꺼낸 소녀.
마찬가지로 '쥬얼 시드'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이 소년.
요컨대, 그 푸른 보석이 쥬얼 시드이고 소년, 그리고 소녀와 저쪽의 견이(犬耳)는 그것을 사이에 놓고 있는 관계라는 것인가. 확실히 그 괴조가 난사했던 공격을 생각하면 꽤나 강력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지만, 이런 아이들이 목숨걸고 싸워야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던가.
'역시 지금 내가 파악하고 있는 것 이상의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견이(犬耳), 그러니까 알프가 말을 걸었다.
"어이, 너! 역시 시공관리국쪽 녀석이었냐!"
"… 아니, 전혀 무관계지만."
거짓말하진 않았다. 여기 있는 크로노와는 목숨 걸고 함께 싸운 사이지만, '시공관리국' 그 자체에는 아무런 빚도 없고 연관도 없다. … 최근 들어서 이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엑스의 대답에 다시 말을 걸어온 것은 알프가 아니라 금발, 페이트 쪽이었다.
"관리국과 관계없다면, 물러나줘. … 말려들어버릴테니까."
목소리는 작았지만, 소녀의 말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최악의 경우, 관리국의 집무관을 지금 이 자리에서 때려눕히겠다는 의지가. 그 뒤에는 물론 후퇴해야겠지만.
"… 그건 나도 동감이지만."
그리고, 페이트의 말을 받은 것은 의외로 크로노였다.
"굳이 불법 마도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신한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쓰러트린 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조금 전 나를 구해준 일에 대해서도. 하지만 여기부터는 우리들의… 마도와 관련된 이들의 일. 당신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이 이상 말려들어서 피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는 자신 혼자서 맡는다.
소년 집무관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엑스의 손에서 내려온 페릿이 이어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부턴 마법을 쓸 수 없는 일반인이 말려들면 위험하니까."
'… 아니, 좀전까지 본 전투력으로 봐서 이 사람은 그거에 해당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유노는 엑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량이 보통 사람 이하인 것을 느끼고 말했지만, 그와 함께 싸운 크로노로서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크로노가 엑스를 말려들게 하지 않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이상 끌어들이기 미안해서니까. 아무리 마법이 아닌 특수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쥬얼 시드의 폭주에 말려든 것만으로도 큰일일텐데 여기서 더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 어떻게 하지.'
엑스는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당장 끼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평소의 싸움'이 아니다.
이레귤러도 레플리로이드도 관련되어있지 않은, '인간끼리의 싸움'.
게다가, 아무런 힘도 없는 약자인 하야테를 지키기 위해 볼켄 리터들에게 달려들었을 때(착각이었지만)와도 다르다. 지금 이것은 양쪽 모두에 싸울 힘이 있고, 자신이 가세하는 것으로 어느 쪽으로든 균형이 무너질 것이 분명한, '진짜 싸움'이니까.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가.
지금까지 그것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인간끼리의 싸움에 끼어들어본 기억은 없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번도.
왜냐하면, 아르카디아에서는 엑스 자체가 어느 쪽의 편을 드느냐에 따라 편을 든 쪽에 절대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죠커 중의 죠커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옳고 그름이 결정되어있지 않은 인간끼리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끼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엑스를 내버려두고, 크로노와 유노가 움직여 엑스와 거리를 벌리고는 두 소녀와 대치한다.
두 소녀는 둘을 견제하면서도, 언제든지 빠질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꾼다.
'…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사태를 앞에 두고, 엑스는 전에 없이 당황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쯤이었다. 스톰 이글과 나노하,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려온 것은.
스톰 이글은 나노하를 붙잡은 채 유노와 크로노의 앞에,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은 어느 쪽도 아닌 측면에 떨어졌다.
"우와… 여기까지 날아와버렸다… 에, 유노 군?! 게다가 모르는 사람들도 잔뜩 있어?!"
[… 비스트는 안보이는데. 엑스가 쓰러트린 건가?]
[지금의 엑스에게 쉽게 당할 녀석이라곤 생각안하지만, 일단 다운된 건 틀림없는 것 같군.]
한편, 원래부터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난입자들에게 크게 놀랐다.
"나노하?! 위험해, 빨리 이쪽으로 와!!"
"으응, 괜찮아. 독수리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 용 씨는 무섭지만."
유노의 걱정에 나노하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페이트. 또 이렇게 불어났는데.>
<… 괜찮아.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다면 틀림없이 혼란스러워 질테고… 몸을 빼낼 틈도 생길거야.>
금색의 소녀와 그녀의 사역마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결국, 이 아이는 당신의 협력자라는 것으로 좋은가? 스크라이어 일족."
"네. 부득이하게 힘을 빌려달라고 한 현지인이에요. 저 때문에 말려들어버려서."
"괜찮아, 유노 군 잘못이 아니니까. 그보다는 지금 이 상황부터 좀…"
소년집무관과 하얀 소녀, 그리고 그녀의 동행은 서로 의견을 나눈다.
[… 인간이 중간에 끼어들었지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 우리들은 우리의 싸움을 하면 그 뿐이다. 엑스, 너는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이 녀석을 정리한 다음엔 네 차례니까.]
염화의 용과 폭풍의 독수리는 다시금 전의를 불태운다.
그리고, 엑스도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옳고 그르고는 나중에 따지고, 일단은 이 싸움을 중지시키기로.
─모든 것이 뒤집어진 것은 그 직후였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엑스가 갖고 있는 센서의 이레귤러 색적 범위는 반경 400m에 달한다. 데이터에 등록되어있는 이레귤러가 그 안에 있다면 단번에 정확한 위치와 거리를 알 수 있다. 이 범위 안에 있는 이레귤러라면 결코 센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센서를 속이고 접근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예외가 있다면, 느닷없이 엑스 가까이에 나타날 때 뿐이다. 이를테면 "전송"이라던가.
엑스에게서 불과 5m 떨어진 머리 위에, 전송 마법진이 생겨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그리고 그 안에서 4개의 그림자가 나타나 떨어진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경고(Warning). 반경 5m 이내에 이레귤러 4체 동시 출현. 경고(Warning). 경고(Warning).>
"너희들은─"
페이트와 알프.
마그마 드래곤.
크로노, 유노, 나노하, 스톰 이글.
그리고 엑스.
그 네 집단의 사이에, 4개의 거체가 떨어져내린다.
무엇보다도 엑스가 놀란 것은… 그 4명 모두, 엑스가 알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플레임 맘모스! 차일 펭귄! 스파크 맨드릴! 부멜 쿠완거까지?!"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두른 거대한 코끼리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덩치는 작지만 무시무시한 냉기를 뱉고 있는 펭귄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그보다 약간 더 큰 오른팔에 드릴을 장착한 비비원숭이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칼날과 분위기를 전신에 휘감은 사슴벌레 형태의 레플리로이드.
엑스의 경악을 들은 이레귤러 중 한명… 부멜 쿠완거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인걸, 엑스. 재회하자마자 미안하지만… 꺼져줘야겠는데.]
그와 함께, 4명의 이레귤러들이 동시에 엑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엑스는 곧바로 대쉬를 사용해 자리를 이탈한다.
하지만.
'하필… 이럴 때에…!!'
오른쪽 발의 대쉬가 불발. 사용된 것은 왼발만의 대쉬 뿐으로, 그것만으로는 이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이레귤러들과 엑스의 거리가 좁혀져버렸다.
[냉큼 쓰러져라! 우리야─앗!!]
스파크 맨드릴이 오른팔에 있는 드릴을 회전시키며 돌진해온다.
한번 대쉬를 사용하느라 자세가 무너져버린 엑스는, 피하지도 못하고 복부에 직격된다.
"우아아앗!"
복부의 장갑이 드릴에 의해 파헤쳐지고, 엑스의 몸이 뒤로 튕겨져날아간다.
[이번엔 내 차례다! 부오오오오오오!!]
2.5m에 달하는 마그마 드래곤. 그보다 거대했던 루시퍼.
그러나 그런 루시퍼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체격의 플레임 맘모스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엑스의 위로 떨어져내린다.
─쿵, 하는 굉음과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엑스의 몸을 짓밟는다.
"……!!"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엑스의 몸은 땅바닥에 쳐박힌다.
[너한테 당했던 것, 한시도 잊어본 적 없다! 꾸왁─!!]
차일 펭귄이 입을 벌리고, 막 지면에서 일어서려는 엑스를 향한다.
그 입에서부터 맹렬한 냉기의 숨결이 토해지고, 삽시간에 엑스의 두 다리가 얼어붙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숨결 안에 섞여있던 얼음조각들에게 두들겨진다.
"크…!!"
[지금 쓰러지면 곤란한데. 아직 내 공격도 남아있거든.]
그리고, 부멜 쿠완거의 공격마저 엑스를 노린다.
머리에 달려있는 칼날과도 같은 뿔. 그것으로 엑스를 겨눈 채 돌격해온다.
엑스는 두 다리를 묶고 있는 얼음들을 향해 버스터 슛을 쏴 파괴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다리에도 데미지를 입었지만, 그것을 신경쓰지도 않고 필사적으로 몸을 틀어 부멜 쿠완거의 공격을 피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두개의 뿔 중 하나 뿐.
─나머지 하나의 뿔이, 엑스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목의 오른쪽 부분.
목 전체 두께로 볼 때 4분의 1 정도의 깊이로 뿔이 지나간 후.
엄청난 기세로, 피를 닮은 의사체액이 뿜어져나온다.
"………………!!"
나노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잔혹한 광경에 비명을 지른다.
페이트의 안색도 창백하기 그지 없어,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을지.
잠시 동안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엑스였지만, 곧이어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렬한 통증을 느끼고 목을 감싼 채 무릎을 꿇는다.
"크, 카, 아… 학… 카앗…!"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핏덩어리와도 같은 것이 입에서 토해진다.
─점차, 의식이 멀어져가는 가운데 부멜 쿠완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싫어하지만, 다른 녀석들처럼 너를 얕보는 짓따윈 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지칠 때까지 기다렸고, 그러고도 넷이서 함께 덤빈다는 길을 택한거다.]
[나■ ■를 싫■■지■, 다른 ■석■처럼 너를 얕■는 ■따■ 하■ ■■. ■■기 ■문에 일■러 지■ ■■지 기다■■, ■러고도 넷■서 ■■ 덤■■는 ■을 ■■거다.]
엑스의 귀에는, 이제 부멜 쿠완거가 뭐라고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네놈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극히 짧은 순간 굳어있었던 마그마 드래곤과 스톰 이글이 분노를 터트리며 동시에 달려든다.
마그마 드래곤이 입에서 불을 뿜어내고, 스톰 이글이 오른팔의 포구에서 토네이도를 발사한다.
─화염은 플레임 맘모스에게, 토네이도는 차일 펭귄이 세운 얼음 동상에 의해 가로막힌다.
[뭐─]
경악하는 마그마 드래곤을, 플레임 맘모스는 그 거대한 발로 찍어눌러버린다.
깊은 발자국과 함께, 마그마 드래곤의 몸이 도로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차일 펭귄은 슬라이딩을 사용해 스톰 이글의 발을 걸어 자세를 무너뜨리고, 아래 쪽에서 위를 향해 샷건 아이스를 발사한다.
스톰 이글의 날개가 얼음 미사일에 맞아 충격을 입고, 스톰 이글은 뒤로 날려간다.
[멍청한 놈들!! 지금까지 서로 싸우느라 있는 힘 없는 힘 다 빼버린 네녀석들이, 만전 상태의 우리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차일 펭귄의 말대로였다.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은 분명 이레귤러 헌터 중에도 굴지의 용사들이지만, 여기에 있는 이레귤러 4명 또한 원래는 자기가 속한 부대의 대장 자리를 역임하고 있던 일류의 이레귤러 헌터들이었다. 괴조와 싸우고, 슬래시 비스트와 싸우고, 여기에 또 서로 싸워서 힘을 소모한 두 사람이 달려든다고 해도, 승산은 낮다.
"이 놈들…!"
S2U를 들어올려 겨누는 크로노를 향해, 스파크 맨드릴이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오오, 끼어들면 곤란한데 인간. 나랑 달리 이 친구들은 부지런해서, 인간이 신경 거스르면 죽여버릴거라고.]
"큭…!"
척 보기에도, 이들은 조금 전에 날려보냈던 사자와 같은 수준의 흉흉함을 보이고 있다.
과연 혼자서 이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크로노의 머리 속에서는 부정적인 대답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페이트! 이 틈에!"
"아, 알프…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아니면 우리까지 당할지 모른다구!"
두려운 것은 알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까지 굳어있으면 페이트를 지킬 수 없다.
그 일념 하나만으로, 알프는 공포심을 이겨내고 몸을 움직여 페이트를 데리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나노하! 정신차려!"
"아… 아…!"
한편, 유노는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나노하를 붙잡고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초점이 희미해진 채 반응이 없는 나노하를 보며, 유노는 이를 갈았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요즘 마법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9세의 소녀. 이런, 사람의 목이 잘려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장면을 봤을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유노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그는 지금까지 발굴 작업을 하고 다니며 이것저것 본 것이 많기 때문에 나노하처럼 완전히 패닉에 빠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는 위험했다.
저 넷은 사람의 목을 아무 주저도 없이 베어버리는 이들이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과 나노하까지 위험해진다.
부외자들이 어떻게 하든 신경쓰지 않고, 부멜 쿠완거는 무릎을 꿇고있는 엑스를 향해 다가갔다.
[보통 레플리로이드라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만, 너는 '보통'이 아니니까. 지금까지 우리들의 상상을 몇번이고 뒤집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린 법은 없지.]
그러니까,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뒷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머리에 붙어있던 뿔을 떼어내, 그것을 단단히 틀어쥐고는 엑스를 향해 겨눈다.
[잘 가라, 엑스. 너는 시그마 대장의 말처럼, 정말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손에 쥔 뿔의 검을, 용서없이 내리친다.
「라이트닝 웹」
[뭐라고?!]
부멜 쿠완거와 엑스의 사이.
마그마 드래곤을 밟고 있는 플레임 맘모스의 머리 위.
스톰 이글에게로 입을 벌리고 있는 차일 펭귄의 등 뒤.
크로노에게 드릴을 겨누고 있는 스파크 맨드릴의 얼굴 바로 앞.
그 네 곳에, 번개로 이루어진 거미줄이 생겨난다. 부멜 쿠완거의 뿔 검이 거미줄에 얽혀, 허공에서 멈춰버리고, 거미줄을 뒤집어써버린 플레임 맘모스와 차일 펭귄은 비명을 지르며 스파크 맨드릴은 황급히 몸을 굴려 피해낸다.
[이 공격은… 설마!]
부멜 쿠완거가 놀라움을 내뱉는 동안, 엑스의 뒤에 있던 맨홀의 뚜껑을 날려버리며 또 한 사람의 레플리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맨홀 뚜껑을 열었지만, 그것보다도 체구가 크기에 결국 입구 부분을 부숴버렸지만.
비록 엑스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스톰 이글과 마그마 드래곤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이레귤러 헌터 제 0 특수부대의 대원.
그 이후, 레플리포스 소속 게릴라 부대의 부대장.
엑스와도, 제로와도 같이 힘을 합친 적이 있는 옛 전우인 거미형의 레플리로이드.
[[웹 스파이더!!]]
[이야기는 나중이다!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니까 아파도 좀 참아!]
웹 스파이더는 엑스를 들쳐멘 후 곧장 마그마 드래곤과 스톰 이글을 향해 라이트닝 웹을 쏴서 둘을 감싸 끌어당기고는 남아있는 팔들로 두 사람을 붙잡았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라이트닝 웹에 의해 감전되었지만, 두 사람 모두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것을 보며 부멜 쿠완거는 드물게 분노로 찬 말을 토해냈다.
[네놈…!! 같은 이레귤러면서 우리들의 제안을 거절하더니 그쪽으로 붙겠다는거냐!!]
['같은 이레귤러'? 웃기지 마라, 인간에 대한 반항심만으로 들고 일어난 정진정명 진성의 이레귤러가.]
그 상태로 웹 스파이더는 세 사람을 들쳐메고는 자신이 나온 맨홀을 통해 다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뒤늦게 그물을 찢어버리며 달려온 부멜 쿠완거였지만, 이미 그때는 웹 스파이더의 흔적을 놓쳐버린 다음이었다.
이레귤러들이 웹 스파이더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크로노는 나노하와 유노를 데리고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아스라로부터 서포트를 받아 전송. 이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부오오옷!! 다 잡아놓고 놓치다니!!]
[꾸왁─ 그 망할 거미 자식이…!!]
플레임 맘모스와 차일 펭귄이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뛴다.
그런 반면, 스파크 맨드릴은 나른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뭐, 괜찮지 않아? 어차피 녀석을 공격한 건 '덤'이고, 부탁받은 의뢰는 달성했잖아.]
스파크 맨드릴의 말에, 부멜 쿠완거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 확실히. '아가씨'는 확실하게 보석을 들고 돌아간 것 같으니까 원래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도 좋겠지.]
하지만 가능하면 엑스는 죽여놓고 싶었다.
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부멜 쿠완거로서는, 그 '가능성'을 적으로 돌린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됐어. 그 정도 부상이라면 함부로 더 움직이지 못할테니까, 그 사이에 우리들의 목적을 완수하면 그 뿐이야. 하는 김에 저기 쳐박힌 사자 놈도 같이 챙기고. 거미 녀석과는 달리 우리들쪽에 가까운 것 같으니까.]
이 '의뢰'를 끝까지 완수하면서 엑스도 죽일 수 있게 된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딱히 죽이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 의뢰가 끝나면 그들은 엑스조차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이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하면 되니까.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프레시아 여사도 결과 보고 정돈 듣고 싶을테니까.]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