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IRREGULAR HUNTER - X


원작 | , ,


차원항행함 아스라.
이곳은 지금 두 사람의 새로운 손님을 맞이한 상태이고, 함장인 린디 하라오운은 그 손님들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듣고 있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의 손님이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타카마치 나노하와 유노 스크라이어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유노 혼자이며, 나노하의 경우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의 목이 베이는 광경을 리얼로 본 것은 9세의 소녀에게는 자극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던 모양이다.
유노는 곁눈질로 나노하를 걱정스럽게 보면서도, 린디에게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쥬얼 시드를 운반하던 중 사고가 생겨, 이 제 97 관리외 세계 「지구」에 쥬얼 시드를 떨어뜨린 일.
그것에 책임감을 느껴, 어떻게든 혼자 회수하려고 하다가 쥬얼 시드의 폭주체를 만나 부상을 입었던 일.
그 와중에 염화를 날렸고, 그것에 응하여 와준 나노하에게 레이징 하트를 맡기고 마법에 대해 알려준 일.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쥬얼 시드를 회수해오다가 검은 마법사 소녀와 붉은 늑대를 만났던 일.


"… 그래. 지금까지 고생했구나, 두 사람 모두."


모든 것을 듣고난 후 린디의 감상은 이러했다.
그녀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쥬얼 시드 운반부터 시작하여 폭주체와의 싸움과 그 봉인. 솔직히 말해 이제 겨우 10살이 될까말까한 소녀와 소년이 감당해낼 수 있을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 것을, 이제까지 두 사람이서 처리해왔다고 하니 감탄할 수밖에.
하지만.


"그래도, 경솔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 아이까지 끌어들이고."
"… 반성하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이 일은 자신 혼자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자신이 끌어들이지만 않았더라면 나노하는 이런 흉흉한 일에 끼어들지 않고, 지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어야 했다.
오늘의 일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처음부터 그녀를 마법의 길로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런 무시무시한 장면은 보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 말대로다. 그 경우에는 우리들에게 신고하는 게 우선이었어. 그랬더라면 조금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실제로 몇명 말려들었고."
"…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크로노, 그만하렴. 쥬얼 시드를 잃어버린 건 어디까지나 사고고, 그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을 테니까."


크로노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일로 유노에게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는 걸. 하지만 부당하게 화내는 것을 참을 수 없을 만큼 크로노는 열이 올라있는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까 전의 전투 후반부에 갑자기 난입한 그 4체의 기계들 때문이다.
그들에 의해, 코앞에 있었던 쥬얼 시드를 놓쳤다.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느닷없이 공격을 받은데다 그들을 체포하지도 못했다. 물론 그것도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로노를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은, 그 직전까지 함께 싸운 상대이자 생명의 은인이 당할 때까지 움직이지 못한 그 자신이었다.
자신의 힘은, 시공관리국 집무관으로서의 힘은 그런 악의로 가득찬 상황에서 행해지는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있는 것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봤을 때 전투기인으로 오인했다는 이유만으로 냅다 공격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명백히 부상을 입고 있던 그를 구하는 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뭘 해왔던 걸까.'


크로노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느덧 이번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기인(機人)들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다.


이번에 나타난 이는 총 8체. 마지막에 나타난 거미형까지 합쳐서 9체. 그 하나하나가 모두 제각기 다른 능력과 다른 모습,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며… 태도로 보아서는 서로 아군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처음 나와있던 이들도 서로서로 공격했던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두개 정도의 세력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쪼개어져있을 가능성도 있다.


"B급 마도사 클래스의 마력은 지니고 있지만 마법을 사용한 흔적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전투력이라니."


불을 뿜어내고, 폭풍을 일으키고, 전기를 방출하며 얼음을 만든다. 거기에 더해 이 파워와 스피드. 보통의 마도사라면 대적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놀란 것은 이들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에 주저함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마법처럼 비살상 설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한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 혹은 "아예 죽일 작정"으로 공격을 해대고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실제로 아까 파견했던 무장국원 5명이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고.


"에이미. 그 이외에 더 밝혀진 것 있니?"
"… 네. 우선은 이쪽의 8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붉은 용머리, 푸른 독수리, 금색 사자, 주황색 사슴벌레, 커다란 코끼리, 작은 펭귄, 드릴을 손에 단 비비 원숭이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거미. 그들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스캔해본 결과, 이 여덞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기계로 되어있습니다. 생체적인 부분은 0(제로), 100% 완전 메카닉. 생물처럼 보이는 부분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며 의사교환이 가능할 정도의 지능이 확인되었고, 각기 다른 종류의 ​특​수​능​력​─​전​투​기​인​의​ IS와 같은─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스스로의 의사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인텔리전트 디바이스조차 주인의 의사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결정했다.
그것은 몸의 구성 물질만 다를 뿐, 기계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가깝다는 거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행동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로봇의 궁극'이라고 불러야 할 존재.
그리고 그런 것은 이미 '로봇'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의 누가 이런 것… 아니, 이런 이들을 만든 것일까.


"네, 그리고 이번에는 이쪽이지만…"


스크린의 화면이 바뀐다. 8명의 기인들로부터, 크로노에게 공격받았으면서도 그를 도와주었던 '푸른 전사'로.


"신장은 헬멧을 포함하여 160Cm 정도. 체격으로 볼 때, 갑옷을 제외하면 15~16세의 소년으로 추정됩니다. 재질 불명의 아머로 무장하고 있으며, 이 아머는 스캔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소년이 앞의 8명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전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크로노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굉장하네… 역시 이쪽도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지?"
"네. 앞의 8명과 마찬가지로 B급 마도사에 해당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오른팔을 변형시킨 총에서는 앞의 8명이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력이 아닌 특수 에너지를 이용한 질량병기로 추측됩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몇배는 크고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주었던 앞의 기인들에게도 맞설 수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여기에도 물론 마법이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윽고, 스크린이 다시 모습을 바꾼다.
좌측에는 소년의 모습이, 우측에는 아까 8명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던 대화에서 나온 단어… '이레귤러', 그리고 '이레귤러 헌터'라는 말로 미루어볼 때, 이들은 전부 같은 기반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레귤러란 '불규칙'. 이레귤러 헌터는 그 '불규칙'의 사냥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그들과 같은 존재를 만든 곳이 있고,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불규칙'이 만들어졌으며, 그것을 막기 위해 이레귤러 헌터를 파견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이치에 맞는다.


하지만.


"그렇지만, 이 아이는…"
"…… 네. 비록 아군으로 추정되는 거미형 기인이 구출해가긴 했지만 그 부상으로 봤을 때는…"


침묵이 회의실을 감싼다.
마지막 순간, 그는 사슴벌레형의 기인에게 공격을 받고 목이 베여,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뿜어냈다. 이 세계의 의료 기술이 어느 정도일지는 몰라도, 그 정도 부상을 치료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설령 자신들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저것은.


"… 어찌되었건, 만약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와는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그만이 아니지. 쥬얼 시드와 그것을 노리는 마도사 소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전사들까지. 신경써야할 게 몇배로 늘어났어."


사람으로서의 감정은 일단 접어두고, 함장으로서 임무를 우선하기로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게 되버릴지도 모르니까.


'… 우선은, 그녀에게도 이야기해두지 않으면.'


린디는 하얀 마도사 소녀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방침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IRREGULAR HUNTER - X



17화


 

 

 


[우……]


엑스가 눈을 떴을 때, 주위가 지나치게 어두웠던 탓에 잠시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주변을 볼 수 있게 되자 자신이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 일어났나… 아직은 움직이지마. 상처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고개를 돌리려다가 통증때문에 멈췄기 때문에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알고 있는 상대다.


[… 웹 스파이더? 난 분명 부멜 쿠완거한테 당하고… 그 다음부턴 기억 안나는데.]
[거기까지 기억하는 걸 보니 머리에 이상은 없는 모양이군.]


들려온 목소리는 하나 뿐. 하지만 느껴지는 주변의 기척은 셋이다.
하나는 물론 웹 스파이더. 그리고 나머지 둘도 엑스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이들의 것이다.


[이글과 드래곤도 여기에 있어?]
[아아. 일단은.]
[……]


마그마 드래곤의 경우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을 인식했을 즈음, 엑스는 자신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변해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너, 목에 구멍났으니까. 바람이 샐 거야.]
[그랬지…]


부멜 쿠완거의 마지막 공격은 정말로 위험했다. 피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엑스의 목은 몸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을 테니까. 물론 그마저도 완전히 피하지 못했던 탓에 이런 꼴이 되버렸지만.
목에는 레플리로이드용의 특수 붕대가 감겨있다. 목이 흔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내가 갖고 있던 건 어디까지나 간이 키트라서 외상은 어떻게 치료했지만, 속까지 망가진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웹 스파이더는 레플리포스 게릴라 부대의 부대장이다. 혼자서 적진 깊숙한 곳까지 잠입하거나, 오랫동안 단독 행동을 하며 매복해있거나 하는 일이 많은 게릴라 부대원들은 사소한 부상 정도는 기지로 복귀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의료 도구를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일이라 잔부상이 많은 백병전 부대장인 마그마 드래곤이 비슷한 걸 가지고 다니는 것도 같은 맥락). 이번에 엑스의 목에 생긴 부상을 치료한 것도 그것.
하지만 그 도구도 어디까지나 '외상 치료 전문'이기 때문에 엑스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밸런스 회로 파괴─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이곳은 아까의 현장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폐 건물. 우연인지 어떤지, 1개월 전에 엑스와 마그마 드래곤이 교전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때의 싸움때문에 반파되버리긴 했지만, 일시적인 은신처로서라면 쓰지 못할 이유도 없다.


[스파이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한편, 웹 스파이더에게서 의료 기구를 나눠받고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스톰 이글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쿠완거가 한 말로 봐서, 그 녀석들 너하고도 접촉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흔한 이야기야. 이레귤러 동지들끼리 모여서 크게 한탕 하지 않겠느냐는 거였지.]


웹 스파이더의 말에 의하면, 녀석들은 이미 웹 스파이더를 찾아오기 전에 넷이 모여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웹 스파이더를 찾아냈는가는 모르지만, 그들은 웹 스파이더에게 자신들과 협력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합류하는 척 하면서 캐내볼까도 생각했지만 녀석들의 첫번째 행동이 '인간의 도시를 습격한다'는 것을 듣자마자 바로 거절하고 아까처럼 거미줄을 날려 시야를 막은 후 도망쳐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녀석들이 오늘 엑스를 공격한 건─]
[아마 단순한 우연일거야. 녀석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거기'였는데, 우연히 엑스가 있어서 함께 공격한거지. 아마 녀석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을 거야.]


그것까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웹 스파이더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상한데. 왜 녀석들은 네가 엑스를 구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거지? 네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서 너한테 찾아왔었다고 했잖아.]
[이래뵈도 게릴라 부대장이니까… 라고 낙관할 수는 없지. 물론 은신 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게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 추측할 수 있는 이유라면 두 가지. 우선 첫째로 녀석들이 나를 찾아낸 방법이 한번밖에 쓸 수 없는 거라거나, 그리 자주 쓸 수는 없는 거라거나, 혹은 특정한 레이더가 있어서 들고 다니지 못하는 종류라거나 그런 이유로 그때 거기에 있던 나는 캐치할 수 없었다, 겠지.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실제로 너를 찾아준 녀석은 따로 있고, 그 '협력자'는 지금 놈들과 함께 없다…]
[… 그런 정도겠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마그마 드래곤이 말했다.


[문제는, 그 '레이더' 혹은 '협력자'의 존재인가. 그런 게 있다면 여기 있는 이들의 누구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겠군.]
[… 아까처럼 흩어져 있을 때 각개 격파 당하면 그대로 끝, 이라는 건가. 과연 이레귤러 헌터 부대장급 4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고.]
[아니, 다섯일지도 모른다. 놈들의 성향이라면, 똑같이 뿌리부터 이레귤러인 비스트도 챙겼을 확률이 높아.]


헌터 부대장급의 전투력을 가진 이레귤러가 5체. 녀석들이 그럴 마음만 든다면, 이 정도 크기의 도시는 한나절로 초토화된다.
마그마 드래곤이 말했다.


[녀석들은 성격에 지대한 결점이 있었기에 문제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레귤러 헌터 부대를 지휘하던 자들이다. 확고한 목적이 없다면 이렇게 대담하게 움직이진 못할거다. 놈들이 아무리 인간에 대한 파괴 활동을 즐긴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잠시 동안의 숨 돌리기에 지나지 않아.]
[… 결국 원점인가. 녀석들이 하필 '거기'에 나타난 '목적'말이지.]
[놈들이 무엇을 위해 나타났는가, 그리고 놈들이 웹 스파이더를 찾아낸 방법은 무엇인가… 그거부터 알아내야겠군.]

 


<아마도, 그거라면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그마 드래곤이 일어나 주먹을 쥐면서 불길을 전신에 휘감는다.
스톰 이글이 날개를 펼치고 손톱을 세우며 입을 벌린다.
웹 스파이더가 위로 뛰어올라 천정에 달라붙어 몸에서 스파크를 일으킨다.
엑스조차 일어나서 오른팔을 포구로 바꾸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겨눈다.


<워, 워, 워, 워! 잠깐만요! 저예요, 저!>


유리가 없는 창문 틀에 내려앉은 고양이가 앞 발을 모두 들어올리고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말했다.
… 그 고양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마그마 드래곤이 불길을 거둔다.


[… 뭐야. 리니스인가.]
<뭐야. 리니스인가… 가 아니라구요!!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나요?! 아무 말도 없었는데 당신 위치는 엄청난 속도로 멀어져버리죠, 그거 쫓으러 가다가 관리국원같은 차림을 한 사람들 시체를 다섯 구나 봤죠, 이 몸으로 열심히 쫓아오려다가 계단에서 두번이나 굴렸죠, 난데없이 나타난 까마귀 떼한테 쫓겼죠, 동네 꼬마들한테는 4번이나 끌려갈 뻔했죠!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 맨 처음 하나를 빼면 나하곤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다 그 하나조차도 내 의사완 관련없이 일어난 일이니까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보다 너,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냐.]
<​계​약​했​잖​아​요​.​ 그거 마력 반응 찾아서 온 거예요.>


마법이라는 건 그렇게 편리한 일도 가능한 것이었던가.
마그마 드래곤이 그렇게 감탄하고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고양이가 말했다?!]]]

 


[… 앗차. 소개하는 걸 깜빡했군.]


마그마 드래곤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혀를 찼다.

 

 

 


마법. 세계 대부분에 존재하는 마력소(魔力素)를 특정한 기법으로 조작해서, 작용을 발생시키는 기술체계. 술자의 마력을 사용해서 '변화', '이동', '환혹' 등등 갖가지 작용을 일으키는 사상(事象)을 말한다. 즉, 마법이란, 자연섭리나 물리작용을 프로그램화해서, 그것에 임의의 내용을 추가기입하거나, 소거하는 것으로 작용으로 바꾸는 기법이다.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이 작용들을 조절, 조합한 내용을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며, 준비된 프로그램은 영창, 집중 등의 트리거에 의해서 기동된다.
마법의 구축이나 제어에는 수학이나 물리 등의 이과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한다.


마력. 마법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힘. 인간의 체내에 존재하며, 사용하면 줄어든다. 알기 쉽게 생각하자면, 체력같은 것이다. 사방에 존재하는 마력소를, 링커 코어에 의해서 체내에 축적하는 것으로 생성된다.


마력소. 세계의 대부분에 존재하는 것. 이것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 의해 체내에 마력을 축적시킬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밀실이라도 되지 않는 한, 개인이 손에 넣는 양보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양이 많기 때문에 부족해지는 경우는 없다. 반대로 농도가 너무 높으면 흡수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연회복의 저해나 마법의 폭주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사역마. 마도사가 만들어내서 사역하는 마법생명체. 사망하기 직전이거나 직후의 동물에게, 인조 영혼을 빙의 시켜서 만들어낸다. 사역마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주인의 마력을 계속 소비하며, 고성능의 사역마일 수록 소비마력이 커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고성능의 사역마를 가진 마도사는 그만큼 랭크가 높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 마법이니 사역마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로군.]
[하지만 눈앞에 실존하고 있다. 인정할 수밖에.]
"…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본론입니다만…"


조금전까진 고양이였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 이 여성의 이름은 리니스. 대마도사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프레시아 테스타롯사'의 사역마였다고 한다(뭐라고 할까, 그 정도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한 세계만이 아니고 차원계를 탈탈 털어도 별로 나오지 않는 귀중한 인재인 것 같다).
말했다시피, 사역마의 능력이 높을수록 마도사가 소비하는 마력도 커진다. 그 때문에, 애초에 만들 때부터 계약으로서 사역마가 이루어야 할 목적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능력을 결정,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계약을 해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용법이다.


엑스, 스톰 이글, 마그마 드래곤, 웹 스파이더가 실제로 만나본 적이 있는 사역마라곤 리니스가 유일(알프의 경우 그녀가 사역마라는 것도 모르니까)하기에 눈치채기 어렵지만, 리니스 역시 고등 사역마에 속하며 프레시아와는 계약으로서 이어진 사역마였다.


그녀와 프레시아의 계약이란, 프레시아의 딸인 페이트의 육성. 바로, 엑스가 만났던 그 소녀다.
리니스는 스승으로서 페이트에게 지식과 마법을 가르쳤고, 언니로서 페이트를 돌보았다. 또한 프레시아가 디바이스 「바르디슈」를 만드는 것도 거들었고, 그 모든 것을 완수하고 나서는 계약이 해제되고 사라졌다.
… 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녀는 지금 이곳에 살아있다.


"본래라면 저는 그대로 사라졌어야 합니다만… 마지막 순간에, 저의 주인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차원 공간 안에는 무수하게 많은 세계들이 있다.
태어나서, 자라고, 또한 사라지는 무수한 세계들이.
이 지구도 그렇고, 엑스가 있던 아르카디아도 그 중 하나다.


그 세계들 중에서, 아주 드물게 진화한 세계가 있다.
기술과 과학이 너무나 진화해버린 탓에, 그들 자신이 스스로의 세계를 멸망시켜버린 세계들마저.
그리고 세계가 멸망한 이후에 남겨진, 잃어버린 세계의 위험한 유산. 그들을 총칭해서 「로스트 로기아」라고 칭한다.


"이번에 그녀가 노렸던 로스트 로기아의 이름은 「쥬얼 시드」. 소유주의 소망을 감지하고, 그 소망을 증폭시키며 힘으로 바꾸는… 말하자면 '소원을 들어주는' 로스트 로기아입니다. 하지만 그 힘은 지나치게 강대해, 잘못해서 폭주하기라도 하면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지도 몰라요."
[… 폭주라면, 우리들이 싸웠던 그 괴조처럼?]
"아니오. 그것은 어디까지나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아요. 그 단계에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차원 진동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질테고, 그렇게 되면 세계 하나나 둘 정도는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또 무서운 이야기다. 이레귤러 헌터들의 얼굴빛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역전의 용사들인 그들조차, 겪었던 싸움의 최대 규모는 기껏해야 '인류의 존망' 혹은 '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정도였다. 말 그대로, 세계가 먼지로 변할 수 있을 정도라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프레시아의 목적을 알게 된 리니스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녀는 프레시아의 사역마였지만,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일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프레시아의 목적이 무엇이든, 로스트 로기아를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드는 것은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이 세계까지 함께 멸망시켜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레시아는 그 쥬얼 시드의 회수에 페이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고, 관리국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에 딸을 이용하려고 한다. 자신의 딸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만약 정말로 프레시아가 그렇게 할 생각이라면 막아야 한다.


계약의 날짜가 지나고, 프레시아가 자신이 소멸되었다고 믿게 되었을 때 리니스는 공간 이동진을 열어, 프레시아가 '쥬얼 시드를 떨어뜨릴 예정인 세계'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체력을 다 써버려 진짜 소멸의 위기에 이르렀던 것을, 마그마 드래곤이 발견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 일들은 모두, 리니스가 스스로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고등 사역마인데다 계약이 끝나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보통의 사역마와 보통의 경우라면 프레시아에게 거역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테니까.


[… 그리고 이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걷어찼단 말이지.]
"에? 아, 아니오. 애시당초 그건 제가 해야할 일이고… 오히려 여기까지 말려들게 해서 죄송하다고 할까…"


마그마 드래곤을 노려보며 말하는 스톰 이글에게, 리니스가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변호를 받아야 할 마그마 드래곤 자신이 코웃음을 치며 스톰 이글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 걸로 보아, 그녀의 변명은 소용없어졌을 것 같다.
웹 스파이더가 말했다.


[사정은 알았어. 하지만, 우리를 공격한 녀석들은 우리와 같은 레플리로이드. 그 중에서 이레귤러라고 불리는 놈들이야. 마법하곤 아무 상관없는 놈들인데 왜 그 녀석들과 당신의 전 주인이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는거지?]
"우선 그 사람들이 나타난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다른 것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복수'를 제외했을 때 그 장소에 있던 것 중 누군가가 노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쥬얼 시드 뿐이었다는 점. 완전 기계의 존재들인 그들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결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리국원이나 여러분들에게는 공격과 위협을 가했으면서 페이트와 알프에 대해서는 노마크였다는 점. 이상의 이유들 때문이에요. 그리고 만약 그들이 그녀와 한편이라면 스파이더 씨를 찾아내준 협력자도 그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만약 그들이 그녀에게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를 찾아달라"고 하면, 그녀의 힘을 감안했을 때 이 도시에서 사람 몇명 찾아내는 정도는 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실로 골치아픈 협력자가 저쪽에 붙었다. 과연 대마도사, 라고 할까. 자신들도 도시 하나를 기준으로 하면 누군가를 찾기 위해선 대형 레이더나 오퍼레이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데.


[당신, 그 금발 꼬마를 가르쳤다고 했지? 그럼 그 아이에게 직접 사정을 설명한다는 방법은?]
"… 무리일거라고 생각해요."


리니스가 가르칠 무렵에도 모친인 프레시아에 대해서 맹목적인 아이였다. 오히려 소멸됐다고 생각했던 리니스가 나타나면 가짜라고 판단할 확률마저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 여자가 강하다고 해도, 녀석들이 '인간'의 명령을 얌전히 듣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무언가의 계약이라거나, 이해일치에 의한 일시적인 공동 전선이라고 보는 게 좋겠군.]
[소원을 들어주는 로스트 로기아라… 녀석들이 탐내고도 남을 물건이야.]
[다음에도 녀석들과 싸울 거라면, 그 존재는 머리 속에 새겨두는 게 좋겠군.]
"아니, 잠깐만요 여러분… 싸운다니…"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리니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법'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은 것은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일에 휘말린 그들에 대한 사과의 표시이자, 그들에게 '그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즉, 마법 때문에 위험해지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끌어들이기 위함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마법이라는 '미지의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듯한 언동과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주욱 입을 다물고 있던 엑스가 말했다.


[리니스 씨.]
"아, 네!"


목의 부상으로 인해 새는 듯한 목소리로 들렸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드래곤에게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레귤러 헌터」입니다. 그리고 이레귤러 헌터라는 건, 이레귤러로부터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부멜 쿠완거, 차일 펭귄, 플레임 맘모스, 스파크 맨드릴, 그리고 슬래시 비스트.
다섯명이나 되는 이레귤러들이, 다른 세계에서 대마도사라고 불리는 이와 힘을 합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움직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세계에서 만나게 된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그들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 몸으로는─"
[지금 제 몸 상태가 어떤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아무리 부상을 입어서 나쁜 상태라고 해도, 그 일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할 일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굳이 리니스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엑스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니스의 설명은 엑스에게 「상대」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해준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이미 시공관리국의 국원과도 접촉했어요.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요!"
[그럼 정보를 주세요. 당신의 전 주인에 대해서도, 지금 말한 그 '관리국'이라는 거에 대해서도. 제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목적에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 그런…"


리니스는 이미, 그녀가 뭐라고 하든 하지 않든 엑스가 움직일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가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면, 엑스가 그들에게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리니스의 성격상 그것을 바랄 리 없고, 그녀가 돕기 위해서는 다른 정보까지 내놓는 수밖에 없다.
이미 이것은 '부탁'의 차원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니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대로 정말로 이 사람들을 '마법', 그리고 '관리국'과 연관시켜도 좋은 것인지.
물론 이곳은 관리외 세계니까 관리국이라고 해도 뭐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공개되는 쪽보다는 공개되지 않는 쪽이 좋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리니스 혼자서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을─ '우연히 말려들었을 뿐'인 이 사람에 가까운 기계들을 더이상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한가지 정정해주실까. 그 대목에선 '저는 이레귤러 헌터'가 아니라 '우리는 이레귤러 헌터'다.]


리니스의 상념을 깨트린 것은 스톰 이글이었다.
아니, 발언을 한 것은 스톰 이글 뿐이었지만, 행동은 웹 스파이더도 함께 했다. 둘은 엑스의 주변으로 모였다.


[B급 주제에 혼자서만 애쓰려고 하지마. 여기까지 관련된 이상, 이번엔 이쪽에서도 물러날 생각이 안들어.]
[이레귤러 헌터는 너 혼자만이 아니야. 무엇보다, 이번 상대는 다섯… 그 이상이다. 지금의 너 혼자선 무리겠지?]


'… 그런가.'


잊을 뻔 했다.
결코, 그 혼자서 프레시아와… 그 대마도사에게 맞서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에게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동료들이.


[… 바보같이 뜨거워지긴.]


그때, 마그마 드래곤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엑스를 비롯한 네 사람이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드래곤.]
[착각은 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과 달라. 내 자신의 의지로 외도에 떨어졌다. 이제와서 스스로를 이레귤러 헌터라고 칭할 생각도 없어.]


아무리 그 '사고'가 실수였다고 해도.
자신은 인간과, 레플리로이드의 목숨을 수도 없이 빼앗았다.
그 이후, '그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도.
'그 녀석'의 말에 넘어가, 힘을 원하게 된 것도.
'그 녀석'의 힘을 받아들여 인간을 적으로 돌린 것도.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일. 스톰 이글이나 웹 스파이더처럼 주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레귤러 헌터를 등지게 됐던 것과는 다르다.
자신은 이레귤러 헌터라는 이름으로 싸우지 않는다. 싸울 수도 없다. 그러니까─


[녀석들에겐 나도 빚이 있으니까. 그걸 갚는 차원에서다. 무엇보다… 나는 오직 너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네가 그런 꼴같잖은 놈들에게 당하는 꼴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 즉, 그 말은─


"에, 또… 드래곤도 도와주겠다… 그렇게 들어도 되나요?"
['이해일치에 의한 일시적 협력'이다. 그 부분을 착각하지마.]


인간, 그런 걸 '돕는다'라고 표현한다.


엑스, 스톰 이글, 웹 스파이더,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
전력적인 면에서 부족함은 없다.
이 시점에서 이미 그들은 이 일에 관여할 생각으로 가득하고, 설령 자신이 말린다고 해도 소용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주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택은 한가지.


"… 그러면, 염치 불구하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러고보면.]


한 템포 늦게, 웹 스파이더가 손을 들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당신, 상당히 랭크가 높은 사역마라고 했지. 우리들한테 있는 마력이라는 걸로 유지가 되긴 되는건가?]
"보통의 마도사라면 무리지만… 드래곤의 경우엔 다른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소비되는 마력도 저를 유지하기 위한 것 뿐이고."


다른 마법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자신의 마력을 전부 사역마의 유지를 위해 사용하려고 할 마도사는 보통 없다. 하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마력을 갖고 있을 뿐, 마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마력을 전부 사용해서 리니스의 유지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관리국 측도, 프레시아 측도 노리는 것은 쥬얼 시드. 그러니까 우리들도 쥬얼 시드를 목표로 움직이다 보면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건 좋지만, 그 쥬얼 시드라는 거… 우린 폭주체밖에 못봤거든. 원래는 어떻게 생긴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손가락 마디 두개 정도 크기를 한 마름모꼴의 푸른 보석이에요."


리니스는 손가락을 움직여, 바닥에 작은 홈을 만들어내 쥬얼 시드의 대략적인 형상을 그렸다.
─그것을 본 스톰 이글과 웹 스파이더의 얼굴이 점점 묘하게 변해가고 있다.


"대충 이렇게 생겼는데… 왜 그래요, 두 사람?"
[…… 혹시, 이거 말하는건가?]


한참동안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던 웹 스파이더가 꺼낸 물건.
그것은 분명히, 지금 리니스가 설명한 쥬얼 시드였다.


"맞아요! 그런데 이걸 어디서?!"
[어디서고 자시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되살아난데다 여기에 와 있는 거니까.]


스톰 이글도, 웹 스파이더도, 마그마 드래곤도.
전부 아르카디아에서 저 푸른 보석과 만나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면 지금의 이 세계에 있었다.
… 그렇다면, 슬래시 비스트나 부멜 쿠완거도 같은 경로로 이 세계에 왔을 확률이 높다. 아마도 그 이후에 프레시아와 접촉했겠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애초에 쥬얼 시드를 흩뿌릴 때 불안정해진 차원의 구멍을 통해서 몇개인가가 여러분의 세계로 흘러갔고, 그걸 여러분들이 가지게 되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제일 타당한 것 같네요. 엑스 씨, 이글 씨. 지금 쥬얼 시드 가지고 계신가요?"
[아, 나는 근처 호수에다 던졌는데. 장소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 저는 이쪽 세계로 온 방법이 다르니까. 쥬얼 시드를 직접 본 것도 지금이 처음이에요. '푸른 보석'에 대한 이야기라면 전에 드래곤에게서 들은 적 있지만 그땐 그게 쥬얼 시드인줄도 몰랐고.]


우선 찾아야할 것은 스톰 이글이 호수에다 버렸다는 쥬얼 시드. 아직까지 그쪽 방향에서 폭주체가 나타난 느낌은 없었으니까, 잘하면 아직도 그 장소에 그대로 있을 확률이 높다.


[… 그런데 리니스 씨. 어째서 드래곤에겐 물어보지 않는거죠? 벌써 회수한 건가요?]
"그게 말이죠… 이 사람, 그걸 그냥 아무데나 버려버렸다지 뭐예요. 장소도 기억못한다 그러고, 나중에 그 근처를 샅샅이 뒤져봤는데도 결국 못찾았고요."
[어쩔 수 없잖아! 그게 그런 물건인 줄 몰랐다고 몇번을 말해야 되는거야! 지난 한달동안 내가 얼마나 뒤졌는데!]
"보통은 그런 보석 버리지도 않아요. 하여간 그 성질 급한 거 정말 고쳐야 한다니까요, 당신은."


마그마 드래곤과 리니스가 그렇게 서로 아웅다웅할 무렵.
엑스는 오랜 기간 동안의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냈다.
어째서 자신이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마그마 드래곤을 찾아내지 못했던 걸까.


'… 그 동안 그거 찾느라 산 속에 있었으니까 도시에선 못찾았던 거구나.'


겨우 찾은 해답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허무했다.

 

 

 


"… 엑스 군. 지금 몇시인가 아나? 아~무리 밖에서 노는게 즐거워도 말이제. 다른 사람들이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으면 퍼뜩 들어와야 되는 거 아이겠나? 어째 생각하노?"
[… 미안.]
"…… 에?! 목소리는 와 그렇노?!"
[식사할 때 뭐가 목에 걸린 거 같아. 좀 쉬면 나을거야.]


저녁 9시.
엑스는 집으로 돌아왔다.
스톰 이글과 웹 스파이더, 마그마 드래곤과 리니스도 각자의 은신처로 돌아갔다. 통신 회선은 연결해두고,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연락할 수 있도록.
사실 부멜 쿠완거같은 이레귤러나 앞으로 있을 일들을 대비한다고 하면 함께 몰려있는 쪽이 낫겠지만…


'그 녀석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는 없고 말이지.'
"저기, 하야테. 엑스 군은 여러모로 피곤한 거 같으니까 이만 쉬게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네. 혼내는건 몸이 나아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샤멀의 말에 수긍한 하야테가 손을 내렸다.
─그러자, 그 뒤에서 레반틴과 그라프 아이젠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시그넘과 비타도 무장을 해제.


'… 아프지 않았다면 저걸로 때릴 생각이었나.'


확실히 귀가 시간치곤 많이 늦었다. 적어도 오늘 나갈 때까지만 해도 그런 대형 사건과 마주칠 줄 상상도 못했으니까.


"… 근데 엑스 군. 쉬는 것만으로 되겠나? 뭔가 약이라든가…"
[괜찮아. 왠만한 건 안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


엑스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볼켄리터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하야테는 곧바로 납득했다.


"그럼 걱정 안해도 되겠지만… 혹시 어디 아프거나 하믄 바로 이야기하그레이. 내 뿐만이 아이고, 다들 걱정하고 있응께."
[……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

 

 

 


하야테를 속이는 것은, 언제 해도 가슴에 걸리는 일이다.
아니, 꼭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그녀를 속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야 겨우 '가족'들을 얻고, '행복한 생활'을 손에 넣은 소녀를 자신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다.


[그걸 위해서 여기 이러고 있는 거니까.]


엑스는 전부터 생각해왔던 '어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힘은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쌓아온, 레플리로이드 중에서도 한 사람을 빼면 '최강'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힘이.
스피드도 전투 기술도, 이날 이때까지 싸워오면서 끊임없이 향상되어 왔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의 몸 상태'로도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새로운 종류의 힘.
몸속에, 그리고 머리속에 무수히 쌓아놓고 있는 '숫자만 많은' 힘들은 지금 상태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파츠를 교체할 경우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선 능력의 가짓수가 아무리 많은들 소용이 없으니까.


'지금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칩들을 정리하고 압축시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어.'


100년 전 엑스가 쓰러트렸던 40체가 넘는 이레귤러 헌터 대장급의 이레귤러.
그 이후로도 계속 싸워서 쓰러트리고, 힘을 흡수해온 무수한 이레귤러.
그들의 힘을, 종류별로 구분하고 같은 것들끼리 합쳐서 최종적인 숫자를 줄인다.
아무리 엑스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협력자가 없다면.

 


"도와달라고 하니까 돕긴 하는거지만, 꽤 난해한 작업이로군 이건."
[미안. 하지만 나 혼자선 아무래도 손이 딸려서.]


통상이라면 한달 이상 걸릴지도 모르는 일을, 엑스는 오늘 하룻밤 안에 끝낼 작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야테가 아끼는 '검은 책'. 그 안에 있는 '그녀'에게까지 부탁한 것이다. 비록 페이지가 모이지 않아 힘을 쓸 수 없는 지금의 그녀라도, 엑스의 연산을 도와줄 수는 있으니까.


"아니, 신경쓸 필요 없다. 당신에게는 나의 주인도, 나의 기사들도 상당히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엑스의 사과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엑스와 '그녀'가 있는 장소는 하야테의 방에 있는 컴퓨터 속, 그 전뇌 공간이다.
이곳에서 엑스는 사이버 엘프의 형태로 존재했고, '그녀' 역시 의식의 일부만을 이곳으로 옮겨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둠의 서에 주인이 아닌 자가 직접 엑세스하면 어둠의 서는 폭주한다'. 이것은 그 폭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백 도어. '직접 엑세스'가 아니라, 중개지점을 통한 '간접 엑세스'로 '그녀'와 의사를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16.5화 참조 : ​h​t​t​p​:​/​/​w​w​w​.​t​y​p​e​m​o​o​n​.​n​e​t​/​b​b​s​/​b​o​a​r​d​.​p​h​p​?​b​o​_​t​a​b​l​e​=​w​r​i​t​e​_​p​l​u​s&​w​r​_​i​d​=​8​5​6​2​8&​s​c​a​=&​s​f​l​=​w​r​_​n​a​m​e​%​2​C​1&​s​t​x​=​%​C​0​%​C​C​%​C​5​%​A​C​%​B​8​%​B​3​%​C​6​%​A​E&​s​o​p​=​a​n​d​)​


"… 한가지, 말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


상당히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말을 이었다.


"당신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나에게 이 일을 도와달라고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난 다음에라도, 사정을 설명해다오."
[… 확실히 사정 설명도 안하고 부탁한 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이걸로 안좋은 일을 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어. 당신이니까, 틀림없이 또 누군가를 돕거나 구하기 위해서 이러는 거겠지."


정답이다. 엑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움직일 때의 당신은, 스스로의 몸을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돌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타인이 위험해지면, 틀림없이 당신은 그것을 돕기 위해 몸을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거다. 주인도, 기사들도, 그리고 나도."


잠시 작업을 멈추고, '그녀'는 엑스를 돌아본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전뇌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의 빛들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약속해라. 무리하지 않겠다고."
[… 조금, 놀랐어.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처세술에 능한 자라면 이런 소릴 할 리도 없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말하는거고."


'그녀'는 거기까지 말한 후 입을 다물고, 대답을 기다린다.
엑스도 하던 작업을 멈추고,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미안. 그 약속은 못해. 나는 어느 쪽이냐고 하면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쪽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걸 한다고 해도 결국 그런 상황이 되면 지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 그렇, 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지."


아주 잠깐 동안,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너무나도 잠깐 동안이라 어떻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당신은, 그랬다.'


처음 자신과 '직접' 만나게 됐을 때도.
그는 하야테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한 자신에게 접속했었다.
그 이후 기사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할 때에도, 그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해주었다.


언제나 자기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움직였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다쳤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누군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서 무리하려고 하고 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영리한 삶의 방식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서 거기까지 자신을 희생한들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적다.


─하지만 그 간단한 사실을, 그라고 해서 모를 리 없다.
그 자신의 일이기에, 오히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는 주저없이 그 길을 택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위험에 빠트린다는 선택을 주저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주인은 그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기사들 또한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to be continue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