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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REGULAR HUNTER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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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싸우는 것은 무섭다. 거기서 상처입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무섭다.
위험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각오를 했고, 그러고 나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 아니, 했다고 생각했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상황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다르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녀에게, '싸움'을 한 기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한 소녀와 주먹으로 싸운 적도 있고─이때의 일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지만─, 요 근래에 들어서는 쥬얼 시드의 폭주체나 그 '검은 소녀'와 마법으로 싸우기도 했다.
혈통의 일도 있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오히려 그녀는 보통의 소녀들보다 훨씬 '싸움'에 면역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그것'은 다르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저절로 몸이 떨려오며 심한 추위가 느껴졌다.
두 손으로 양팔을 감싸안아보지만, 그럼에도 떨림은 전혀 가시지 않는다.
사슴벌레도, 코끼리도, 펭귄도, 원숭이도. 그들은 달랐다. 그 전까지 있던 용과 독수리, 그리고 소년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싸움'을 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죽일' 작정으로 공격한 것이다.


비록 그녀가 그 공격의 대상은 아니었다고 해도, 바로 옆에 있었던 탓에 그 살의와 살기에 정면으로 노출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이며 순수한 살의─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의 앞에서 그토록 직설적인 살기를 낼 리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이날 이때까지, 그런 살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녀는 이날 이때까지, 그런 살의를 낼 수 있을만큼 '사악한' 인간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녀와는 달리 그런 쪽으로 단련이 되어있는 다른 가족들이었다면 어떻게든 그 살의를 받아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아니다.
그 이레귤러들이 내보인 '악의'와 '살의'는, 평균보다 조금 더 강인한 정도의 9세 소녀에겐 너무나 무거웠다.


"나는……"


자신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고, 스스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새카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먹어치워가고 있었다. 그때의 일을, 사람의 목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버리던 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몸이 떨려오고 움직여지지 않는다.


… 아아, 그랬던가.
이제서야 생각났다.
그 동안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것'은 느껴보지 못했고, 소설책이나 영화나 애니매이션에서밖에 보지 못했기에,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간신히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을.

 


'공포'라고, 하는 거겠지.

 

 

 


IRREGULAR HUNTER - X



19화


 

 

 


─3일 전.


유노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아스라에 협력 의사는 전했다. 그쪽에서도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둘의 신병을 관리국에 맡길 것", 그리고 "반드시 지시에 따를 것"이라는 조건을 걸긴 했지만 그 정도는 원래부터 생각해두었던 것이었다.


'그럼 문제는 역시 나노하일까.'


유노 역시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나노하와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소년이니까.
하지만 그는 스크라이어. 유적을 찾아내 발굴하는 것이 생업인 일족의 일원이다. 유적을 찾고 발굴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유노의 부모님은 그가 갓난 아기였을 때부터 유적지를 돌아다녔고, 유노 본인이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에 참여한 것은 6살 때부터였다.
물론 연령의 문제도 있고, 아직 미숙한 그가 맡는 것들은 대부분이 난이도가 낮은 유적들이거나 한번 발굴한 것을 재조사하는 차원에서 다시 파견하는 정도의 것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탈락자는 나온다.
마법이라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마법은 결코 만능이 아니니까.
풍토병에 걸려 치료가 늦거나, 유적의 함정에 걸리거나, 흉악한 토착 생물에게 당하거나.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발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고, 유노 역시 그것을 몇번이나 봐왔다.
적어도 이쪽 세계에서 평화롭게 자란 나노하보다는 '이런 상황'에서 냉정할 수 있었다.


'역시 더이상 나노하에게 부탁할 수는 없어.'


쥬얼 시드를 회수하기 위해 그녀의 힘을 빌리려고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그것도 위험한 일인 것은 틀림없지만, 나노하의 높은 마력과 자신의 서포트가 있으면 어떻게든 문제없이 끝마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그토록 상대를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는 자들이라면 상대가 어린 인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전투력이 없는 '평범한' 아이라면 몰라도, 자신들처럼 그들을 위협할 가능성을 가진 '힘'을 가진 아이들이라면, 절대 봐주지 않겠지.
지난번에 자신들이 무사히 몸을 빼낼 수 있었던 것은 직접적인 방해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공격 대상에서 살짝 비껴나간 덕분. 말하자면 행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이 다음에도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 녀석들은 정말로 위험하다.
지금까지 유노가 봐왔던 어떤 맹수보다도, 어떤 마법생물보다도, 어떤 트랩보다도, 어떤 도굴꾼이나 밀렵꾼 범죄자들보다도. 그런 자들이 나온 이상 이제부터는 단순한 '유물 회수'가 아니라, 정말로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애초부터 이 일은 자신이 했어야할 일. 이제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은 하지 말자.

 


─그렇게, 결심했는데.

 


"으응, 그래서… 아스라엔 언제 가면 되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도 간단하게 그 결심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안 가."
"에? 하지만 린디씨들이랑 협력한다고…"
"그걸 하는 건 나 뿐이야. 나노하는 안돼."


자신치고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인상도 심각하게 굳혔고.
하지만 자신의 얼굴로는 어떤 표정을 지어도 상대에게 겁을 먹게 만든다는 것은 무리라는 사실을, 유노는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노하는 그런 유노의 '단호함'을 무시했으니까.


"하지만, 갈 건데."
"안돼."
"갈 건데."
"안된다면 안돼."
"… 갈 건데."
"안된다니까!"


결국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나노하는 끄떡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던 유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기, 나노하… 이번엔 안돼. 진짜로 안돼."
"쥬얼 시드도 지금까지 문제없이 모아왔는걸. 그러니까…!"
"그거하고 이거하곤 달라!"


유노는 필사적이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이 일에서 떼어놓기 위해서.


"나노하는 이제 싸우지 않아도 돼. 이제 마법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도 된다구… 이제부터는 관리국한테 맡기면 되니까."
"……"


소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는지 부정을 의미하는지 간파할 안목은, 아직 이 소년에겐 없었다.


"나노하도… 사실은 알고 있잖아?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만약 모른다면, 그렇게 공포로 가득한 얼굴이나 떨림을 보여주진 않았을 것이다.


유노의 말은 옳았다. 사실은 나노하도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지금까지의 쥬얼 시드 회수가 말그대로 "어린애 장난"이라고 여겨질만큼 위험한… 진짜 의미에서의 '목숨이 걸린 일' 이라고 하는 것도.
그리고… 이번에 나갔다간, 정말로 위험해질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는 것도.


머리로는 충분하고도 넘칠만큼 이해하고 있다.
자신같은 초보자, 아마추어가 나서는 것보다, '전문가'일 터인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라고.
자신이 가봐야 도움이 될지 어떨지도 모르고, 자칫 잘못하면 발목 잡기가 되버릴수도 있다고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머리'로는.

 


"… 응. 알고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도, 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그렇다면─"


알아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유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게 판단하긴 아직 일렀다.
바로 다음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노하가 머리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렇겐 할 수 없어."
"어, 어째서?!"


관리국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자신까지 위험 속에 들어가려고 한다.
유노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성적인 논리'로 내린 판단이 아니니까.


"무슨 소릴…!"
"유노 군, 잠깐만 내 이야기를 들어줘."


흥분하려는 유노를 진정시키며, 나노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렇게 넘겨버렸을 수도 있을거야. 아니,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마법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몰랐을 거야. 몰랐더라면 쥬얼 시드가 뭔지도 몰랐을거고, 몰랐더라면 그렇게 위험한 사람들과 만나지도 않았을거고, 몰랐더라면… 페이트짱과 만나는 일도 없었겠지."


요 1개월 동안 있었던, 충격적인 '비일상'.
그 모든 것이, 유노와 레이징 하트… '마법'과 만남으로서 생긴 일들이었다.


"그치만,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알고 있어. 알아버렸어. 유노 군이 잃어버린 쥬얼 시드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페이트짱이 쥬얼 시드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나 위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알았어."


여기서 잠시, 나노하는 말을 멈추었다.
딱히 호흡을 가다듬는다던가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 말'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 뿐이다.


"알았으니까, 모른척 할 수 없어. 도망칠 수도 없어. 잘 이야기하진 못하겠지만… 이대로 원래 생활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분명 크게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


비록 나노하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가지만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어차피 후회할거라면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 라고.


"……"


이것은, 안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설득같은 것은 이미 이 소녀에게 먹히지 않는다. 유노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 엄청나게 위험한데도?"
"위험하니까 더더욱. 나한테는 레이징하트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어떻게든'도 할 수 없잖아."


어쩌면 자신은 이 사태를 처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점점 기분이 가라앉아가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유노는 크게 숨을 토하며, 한손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 나 때문이구나."
"응?"
"내가 처음에 부탁같은 걸 하는 바람에… 결국 나노하를 여기까지 끌어들였구나."


그렇게 자책하는 유노에게, 나노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오히려 유노 군에게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있으니까."


유노가 자신에게 도와달라는 염화를 날렸던 덕분에.
그래서, 레이징 하트와 마법과 만나게 된 덕분에.
자신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새롭게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유노를 원망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나노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가지만 약속해줘."
"응?"
"절대 무리하지 말 것. 일은 관리국에 맡기고,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지원하는 차원에서 마법을 사용할 것."


나노하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이 일은 자신의 책임이다. 쥬얼 시드를 잃어버린 것도 나노하를 끌어들인 것도.
그리고, 지금 나노하의 의지를 꺾지 못해서 또다른 위협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도.


그러면 하다못해, 반드시 지켜내도록 하자.
이 소녀가, 무사히 돌아와서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생각하며 말한 유노에게, 나노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자신이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정한 소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응!"

 


─그리고 현재.


나노하와 유노는 시공관리국의 차원항행함 아스라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노하의 경우엔 가족들이 걱정하기도 했지만, 어머니인 타카마치 모모코에게만은 사정을 털어놓았다. 마법이나 유노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전부 이야기했다.
모모코는 걱정스러운 얼굴이긴 했지만 나노하의 결심을 존중해주었고, 아버지인 타카마치 시로우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설득까지 맡아주었다.
그때부터 나노하와 유노는 아스라의 임시 직원으로서 크루들과 함께 쥬얼 시드의 조사에 들어갔고, 이때까지 상당한 숫자의 폭주체들로부터 쥬얼 시드를 회수해왔다.

 


여기에, 마침내 오늘.
마지막 남은 쥬얼 시드들의 반응을 찾아냈다.

 

 

 


우미나리 시 근처의 해역.
그 상공에는, 거대한 금색의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다.
그 중앙에 있는 것은 검은 소녀─ 페이트 테스타롯사.
그녀는 자신의 디바이스 바르디슈를 들어올려,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르카스 크루타스 에이기야스. 빛나는 전신이여, 지금 인도에 따라 내려와라. 바리에르 자리에르 브라우제르…!"


그 순간 일어나기 시작하는 기상이변.
마법진에서부터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하고,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법이잖아, 저 아가씨. 그런데… 어이, 강아지.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스파크 맨드릴의 무전에, 알프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대답했다.
일단은 이 녀석들도 '아군'인 것 같으니까.


"… 남은 쥬얼 시드는 아마 바닷속에 있을거야. 그러니까 바다에 전기 마력류를 집어넣어 강제 발동시켜 위치를 확인하는거지."
[호오─ 과연. 보기하곤 다르게 난폭한 방법인걸.]


스파크 맨드릴은 감탄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알프의 마음은 점점 불안감으로 가득 차올라갔다.


'그것 뿐이라면 문제없지만… 하지만…'


알프는 알고 있다.
지금 페이트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사역마로서 서포트를 해주는 것 이외에는.


"페이트…!"


"치는 것은 번개, 빛나는 것은 광뢰. 아르카스 크루타스 에이기야스!"


페이트의 머리 위로 새카만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그 마력의 소용돌이는 점차 원형으로 모습을 바꿔가다가 이윽고 금빛으로 뒤덮였고, 그대로 거대한 눈동자로 변했다.
'눈동자'는 주변에서 떨어지는 번개들을 먹어치워가며, 크기와 힘을 더해갔다.


그, 눈동자는 하나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둘, 셋, 넷, 다섯─ 계속해서 숫자를 불려간 눈동자들은 서로와 서로를 전기로 연결하고, 금색의 마법진 바로 위에서 또다른 '원'을 형성했다.


​"​하​아​아​아​아​아​앗​!​!​"​


위로 날아오른 페이트가 마법진의 중앙에서 바르디슈를 내지른다.
그와 함께 눈동자들이 번개를 뿜어내고, 바다를 통째로 감전시켰다.


그 영향으로 떨어지는 비가 폭우로 바뀌고, 불기 시작하던 바람이 태풍으로 바뀐다.

 


─뇌신에 의해 공격당한 바다.
그리고 그 바닷속에 잠들어있던 보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쥬얼 시드를 의미하는 빛의 기둥이 바다속에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찾아냈다… 남은 건 여섯개…! 알프! 공간 결계의 보조를 부탁해!"
"… 아아! 맡겨둬!!"


서포트를 준비하면서도 알프는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만큼이나 되는 마력을 사용하고, 동시에 폭주하기 시작하는 쥬얼 시드를 여섯개나 한꺼번에 봉인이라니…! 아무리 페이트의 마력이라고 해도 이런 건 한계를 훨씬 넘는 일이라고…!!'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 얼마 되지 않는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누가 오고 뭐가 됐든… 페이트는 반드시 지켜주겠어!'


폭주를 시작하는 쥬얼 시드가 바다를 통째로 휘감아올려,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낸다.
그 숫자는, 쥬얼 시드의 숫자와 똑같은 여섯.


"가자… 바르디슈…!"


하지만 소녀는, 그 어마어마한 맹위를 보면서도 뛰어들어간다는 선택지 이외엔 떠올릴 수 없었다. 아니, 떠올리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오직 한가지의 목적만을 위해서니까.

 

 

 


[… 저건 좀 심한데.]


아이스 펭귄이 만들어놓은 얼음으로 된 은신처.
그 안에서 다섯 이레귤러─부멜 쿠완거, 차일 펭귄, 플레임 맘모스, 스파크 맨드릴, 슬래시 비스트─들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건대,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스파크 맨드릴이 우려를 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꽤나 무리를 하는군, 저 꼬맹이.]


우려라도 표시하고 있는 것은 스파크 맨드릴 정도 뿐이었고 나머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쪽을 보고 있다.


[어이, 쿠완거. 저거 도와줘야하는 거 아니야?]
[…… 어째서?]


스파크 맨드릴은 부멜 쿠완거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오히려 그는 지금 무슨 소릴 하느냐고 반문하듯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마도사가 아니다. 따라서 봉인 작업따윌 거들 능력은 없지.]
[아니, 그렇지만 잘못하면 봉인에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는건…]


스파크 맨드릴의 말대로였다.
그들이 알기로 지금까지의 쥬얼 시드 봉인은 한번에 한체씩 이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작업이었으니까. 이번처럼 여섯개를 한꺼번에 건드리는 일같은 건 한번도 해본 적 없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부멜 쿠완거는 이렇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 뭐?]


부멜 쿠완거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고개만을 스파크 맨드릴에게로 돌려 말을 이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하곤 관계없는 이야기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렇잖아? 성공한다면 그걸로 끝. 저 꼬마와 함께 쥬얼 시드를 갖고 가면 된다. 그리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어.]


쥬얼 시드를 찾고 있는 것은 자신들만이 아니다.
특히, 프레시아의 말에 의하면 그 시공관리국이라고 하는 마도사 집단도 쥬얼 시드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조직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실패한다면 그 뒷수습은 관리국인지 뭔지가 할거다. 그리고 우리는 놈들이 쥬얼 시드를 회수해서 가져갈 때 치면 되는거야. 솔직히 그쪽이 더 편하기도 하지. 우리 뒤를 쫓아다니는 놈들을 지쳐있을 때 한꺼번에 정리할 수도 있고.]


스파크 맨드릴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예 이쪽에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슬래시 비스트는 넘긴다고 쳐도, 플레임 맘모스와 차일 펭귄도 부멜 쿠완거와 같은 의견인 것 같다.


'이놈들은…'


아르카디아에서 '이레귤러'라는 말은 꽤나 폭이 넓게 쓰인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프로그램이 망가진 레플리로이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부터는 인간의 의지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위나 사상을 품으면 그것만으로도 이레귤러 판정을 받기도 했다. 레플리로이드 본인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판정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억울하게 이레귤러 판정을 받고 파괴된 레플리로이드들도 상당한 숫자.


그렇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다르다.
어떠한 오해도 없이, 어떠한 외적 요인도 없이.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을 거역하고, 인간을 벌레 이하로 여기게 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레귤러」.


'… 하긴.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로군.'
[확실히 그렇군. 내버려둬서 어부지리를 얻으면 그게 제일이니까. … 귀찮기도 하고.]


그리고 그것은 스파크 맨드릴도 마찬가지다.
페이트들과는 지금까지 함께 지내면서 조금 정도 정은 들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그다지 적극적으로 구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혹시 저게 실패해서 죽는다면 조금쯤은 우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손해를 본다거나 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이야기지. 그러니까 우리들이 손을 댈 필요는 없는거야. 오히려 스텔스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나 점검해둬.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스파크 맨드릴과의 대화를 끝낸 부멜 쿠완거는 다시 고개를 돌려 페이트와 알프 쪽을 바라보았다.
직선 거리로 수백미터 이상 떨어져있지만 저곳은 장애물도 없는 바다 위.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곤 해도 그들의 시력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하긴. 불쌍하다고 한다면 불쌍하다고 해줄 수 있지만.'


프레시아 테스타롯사가 페이트 테스타롯사에게 '애정'따윌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페이트 자신 이외의 전원이 알고 있다.
페이트는 자신의 모친이 자신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모른채, 저토록 죽을 힘을 다해서 모친이 시킨 일을 완수하려 하고 있다.


결코 보답받을 수 없는 일방통행의, 목숨을 건 딸의 사랑.
그 사랑에도 끄떡없이 냉정함과 혐오감마저 숨기지 않는 모친.


제 3자의 눈으로 본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한편의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부멜 쿠완거처럼 뒤틀릴대로 뒤틀린 심성을 가진 이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꼴불견인 희극에 지나지 않는다.


[뭐, 아무튼. 난 이번 일로 그 여자가 꽤 마음에 들기 시작했지만.]
[… 꾸왁? 쿠완거. 너 제정신이냐? 슬슬 맛이 간 거 아냐?]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차일 펭귄의 말과 미친 놈을 보는 듯한 플레임 맘모스의 눈빛에, 부멜 쿠완거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은 눈치채지 못한거냐? 설마 너희들, 자신에게 한없이 애정을 보내는 딸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지로 내몰 수 있는 여자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어머니'가, 정상일리가 없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이야기.
비정상이라는 것은 규칙에서 벗어난 불규칙이라는 이야기.
부멜 쿠완거가, 그리고 그를 포함한 이 자리의 모두가 '레플리로이드의 이레귤러'인 것처럼.


[그 여자는, '인간의 ​이​레​귤​러​'​라​는​거​다​.​ 그것도 상당히 질이 나쁜 종류의.]

 

 

 


"으아…! 쟤 지금 뭐하는 거래?!"


아스라의 오퍼레이터, 에이미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터트렸다.
그녀의 앞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페이트의 봉인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 하지만 그녀의 상식으로, 여섯개를 동시에 폭주시킨데다 그걸 또 봉인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말, 손대기도 힘들만큼 터무니없는 일을 하는 아이구나."
"무모하기 짝이 없어… 저러다간 틀림없이 자멸할겁니다. 저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마력의 한계를 넘었어요."


린디 하라오운과 크로노 하라오운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분명 저 검은 아이─ 페이트 테스타롯사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의 마력은 대단했다. 아직 10대 초반도 넘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AAA 클래스. 단순히 마력만이라면 크로노조차도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있다. 아무리 그녀의 마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어차피 그것은 한 개인의 힘. 그 정도로 쥬얼 시드들의 공명 폭주를 막아내는 것은 할 수 없다.


"페이트짱!"


그때, 상황실의 문이 열리고 한 소녀가 뛰어들어왔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민간협력자로서 이곳에 체류 중이던 나노하였다.
급하게 뛰어온 모양인지 숨을 심하게 몰아쉬고 있었지만, 모니터에서 페이트의 모습을 보고는 호흡을 가다듬지도 않고 말했다.


"저, 서둘러서 현장으로─"
"그럴 필요는 없어."


크로노는 나노하의 말을 잘라버리듯이 냉정하게 끊어냈다.


"내버려두면 저 애는 자멸할테니까. 설령 자멸하지 않는다고 해도 힘을 다 썼을 때 치면 돼. 오히려 지금은 이 틈을 타서 포획 준비를 끝내야 돼."
"……!!"


아직 순수한 9세의 소녀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이면서도 가혹한 이야기지만, 크로노의 이야기에 틀린 점은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이미, 지난번의 그 녀석들은?"
"아직은 탐지되지 않고 있지만, 지난번처럼 갑자기 전이해올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까 방심은 못해."
"우리들이 나갈 때엔 전이 방지 결계도 추가로 위에 설치해줘. 녀석들과 싸우는 건 쥬얼 시드를 전부 회수하고 난 후에라도 문제없으니까, 꼭 지금 싸울 필요는 없어."


에이미와 크로노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나노하는 스크린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는 페이트가 쥬얼 시드들의 마력에 밀려 이리 튕기고 저리 날려가면서도 봉인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린디는 그런 나노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돼. 우리들의 실패는 자칫 잘못하면 이 세계가 위험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잔혹하게 보이겠지만… 이게 현실이야."


그녀라고 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고 싶을 리 없다.
하지만, 로스트 로기아 회수에 있어서 실패는 있어선 안된다. 분명 저 소녀가 가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스라와 이 세계의 운명까지 저울대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책임져야할 수많은 목숨이 있으니까.


나노하 역시 그것은 알고 있다. 모를 리 없다.
지금 이 상황에 있어서 린디와 크로노의 말이 옳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감정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 그녀의 감정은, 이 상황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외치고 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 유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가, 나노하. 내가 게이트를 열어줄게.>
<유노 군?! 그치만, 내가 저 애랑… 페이트짱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유노 군하곤…>
<응. 확실히… 상관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나노하가 난처한 일에 빠졌을 때 도와주고 싶어. 나노하가 나한테… 그렇게 해줬던 것처럼.>


두 사람의 첫 만남.
쥬얼 시드의 폭주를 막지 못해 상처투성이가 된 유노와, 그가 사방으로 퍼트린 염화를 알아듣고 그곳까지 달려와준 나노하.


두 사람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서로를 믿고 서로를 위해서 이런 행동까지 할 수 있다.


"… 너?!"


크로노가 경악에 가까운 외침을 흘린다.
상황실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 열린 전송 게이트. 그것은 틀림없이 유노가 연 것이었다.
나노하는 재빨리 그곳까지 달려갔고, 게이트에 들어갔다.
린디도, 크로노도, 에이미도, 그 이외의 크루들도 미처 말리거나 막을 틈도 없이.


"죄송해요. 타카마치 나노하, 지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겠습니다!"
"해상의 결계 속으로 전송!"


유노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였고, 소리를 높여 외친다.
그 직후, 나노하의 몸이 빛에 휩싸여 아스라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지구의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노하는, 아래를 향해 떨어져내리는 분홍빛의 유성이 된다.
그 안에서 소녀는 레이징 하트를 꺼내들었다.


"간다, 레이징 하트…!"


이미 몇번이고 외쳐본 주문.
그녀를, 평범한 초등학생에서 마법소녀로 바꾸어주는 신비의 주문.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바람은 허공에
 별은 하늘에
 반짝이는 빛은 이 팔에
 불굴의 마음은 이 가슴에
 레이징하트, 셋 업!!"


「Stand by ready.」


소녀의 외침에, 「불굴의 마음」이 응답했다.

 

 

 


"……!!"


자신의 결계를 통과하여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것을 알아차린 페이트가 몸을 돌려 '침입자'를 발견했다.


─하늘의 저편, 구름을 뚫고.
─지금까지, 몇번이고 만나고 몇번이고 싸웠던, '하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자마자, 알프가 적대심과 함께 이빨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쥬얼 시드를 두고 다퉈온데다, 성격이 급한 그녀로서는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페이트를… 방해하지마!!]


자신을 묶고 있던 쥬얼 시드의 마력을 단번에 끊어버리고 나노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돌진은 돌연 눈앞에 나타난 연두색의 마법진에 의해 가로막혔다.


"오해하지 말아줘…! 우리들은 도우러 온 거니까!"
[… 뭐?!]


<너희들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유노의 말에 알프가 멈칫한 사이, 분노마저 살짝 담겨있는 외침이 나노하와 유노에게 흘러들어왔다.
물론 그 출처는 아스라. 송신자는 크로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떤 말을 듣는다고 해도 멈출 생각은 없다.


"죄송해요, 명령 무시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사과드릴테니까!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내버려둘 수 없어요!"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저 소녀는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외톨이라는 것을.
그리고 외톨이가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한 것인지, 약간이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유노에게 했던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몰랐다면, 페이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몰라도, 이미 만나고 그녀에 대해 알아버린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


"우선은 쥬얼 시드를 멈추지 않으면 큰일 나겠어… 그러니까 지금은─ 봉인의 지원을!"


높이 뛰어오른 유노의 발밑에 다시 한번 연두색의 마법진이 생겨난다. 그 마법진에서부터 뻗어나온 연두빛의 쇠사슬들이 쥬얼 시드가 일으킨 회오리들을 강제로 '붙잡아' 멈췄고, 이리저리 폭주하던 번개줄기들도 사그라들어갔다.
그 한순간의 틈을 이용해, 나노하는 페이트에게 다가갔다.


"페이트짱, 도와줘! 쥬얼 시드를 멈추자!"


레이징하트를 내밀자, 그 안에서 흘러나온 분홍색의 빛이 바르디슈의 코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것이 끝나자, 바르디슈는 증기를 뿜어내며 형태를 바꾸었다.


「Power charge.」
「Supply ​c​o​m​p​l​e​t​e​.​」​


에너지를 공급받은 바르디슈와 그 작업을 끝낸 레이징하트가 말했다.
그것으로, 페이트는 지금까지 소모한 마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여 기운을 차렸다.


한편, 유노의 연두색 사슬만으론 쥬얼 시드가 완전히 억제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유노는 묶인 쇠사슬채로 끌려갈 뻔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번엔 알프의 주황색 사슬이 회오리를 묶었다. 유노의 쇠사슬과 함께.


"유노 군과 알프가 막아주고 있어… 그러니까 이 틈에 봉인해야해! '하나 둘'이라고 하면 둘이서 단숨에 봉인하는거야!"
「Shooting mode.」


그 말만을 남긴 채, 나노하는 다른 포인트로 날아갔다. 레이징 하트도 포격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바로 얼마전까지 싸웠던 페이트의 앞에서 등을 보인 채.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


어째서?
어째서 저 아이는 여기에 있는거지?
도우러 왔다고? 누구를? 자신을?
무엇때문에?
게다가 자신의 앞에서 등을 보인다고? 두렵지도 않은건가? 걱정도 안되는건가?


페이트의 머리 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녀의 디바이스는 그녀의 망설임을 떨쳐주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개시했다.


「Sealing form Set up.」


조금 전까지 빛의 칼날을 뿜어내고 있던 바르디슈가 날을 접고, 쥬얼 시드 봉인을 위한 모습으로 변환되었다.


"바르디슈…!"


자신의 디바이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페이트.
그녀는 바르디슈와 나노하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 생각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쥬얼 시드의 봉인이 우선.
페이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바르디슈─ 자신의 디바이스의 의사에 따랐다.

 

 


[기껏 이제까지 기다렸는데 걸려든 건 겨우 둘 뿐이냐.]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나노하의 뒤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돌린다.


─자신의 바로 뒤에, '사슴벌레'가 있다.


─그것을 확인한 나노하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무섭다.
두렵다.
너무나도 커다란 '공포'가, 나노하의 몸을 완전히 먹어치웠다.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노하는 부멜 쿠완거를 향해 몸을 돌린 그 자세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소녀의 머리 속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페이트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잊은 '척'하고 있었지만, 나노하의 머리 속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될 가능성도 떠올리고 있었다.
단지, 그 불안감을 '설마 이번에 나오진 않겠지'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생각으로 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지극히 한순간이지만, 마치 영원처럼 느껴질만큼 긴.
인간이 죽을 때에는,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멜 쿠완거의 검이, 나노하를 향해 내려쳐진다.

 

 

 


'무언가'가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채 뒤로 끌어내고.
그, 부멜 쿠완거가 '푸른 주먹'에 맞고 튕겨지면서.
나노하도 간신히 공포에서 깨어났다.


"하아… 하아…?!"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노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지쳐버린 결과다.


자신은 분명, 저 사슴벌레의 검에 맞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사슴벌레는 지금 '주먹'에 맞고 날려가 아래로 떨어졌다.
바로, 자신을 붙잡고 뒤로 끌어내준 '누군가'에 의해서.
나노하는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그 푸른 유성의 용사.
지난번, 저 사슴벌레에 의해 목을 베였을 터인 그 소년이었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나노하의 눈에 들어오는 '갑옷'은 틀림없이 그때 봤던 그것이다.

 


「SPIRITS」

 


'… 지금?!'


레이징하트와는 달리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그에게서 작은 기계음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소년의 갑옷이 모습을 바꾼다.


짙은 청색이었던 부분이 하늘색으로.
아무런 장식도 없던 헬멧에는, 날개모양의 작은 티아라가.
그의 등 뒤에서는, 빛으로 된 두 장의 날개가 생겨났다.


푸른 유성─ 엑스는 손을 높이 들어올려 외친다.

 


"울부짖어라, 「타이달 맥코인」!!"

 

 


​─​■​■​■​■​■​■​■​■​■​■​■​■​■​■​■​■​■​■​■​■​■​■​!​!​

 

 


폭풍조차 재워버릴듯한 거대한 포효가 바다를 흔든다.
그와 함께, 엑스의 등뒤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굉장히 커다랗고, 또한 새카만 '고래'였다.

 


타이달 맥코인.
과거, 해양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동시에 해군 수비대의 지휘관이었던 레플리로이드.
그가 지금,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건…!'


─그렇지만, 그것은 무언가가 달랐다.
지금까지 나노하가 봐온 ​'​기​계​짐​승​인​간​'​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은, 입체영상을 보는 것처럼 "실체감"이 없다는 것과.


지금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이 고래의 몸이 반투명하다는 것이다.

 

 

「젤 세이버」

 

 

엑스가 손을 아래로 휘두르자, 타이달 맥코인이 포효하며 힘을 전개한다.

 


─그러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거세게 일어나던 파도들은 그 일어나던 모습 그대로 얼음의 오브제가 되버리고.
쥬얼 시드에 의해 회오리처럼 하늘로 뻗어올라갔던 물의 기둥도,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는다.


"굉장해…!"


그런 감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눈앞의 광경은 장관이었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만도, 반경 수백미터 넓이의 '바다'가, 단숨에 얼음의 섬이 되버렸다.


타이달 맥코인이 사라지고, 엑스는 나노하를 붙잡았던 손을 풀었다.

 


엑스의 주먹에 맞고 날려간 부멜 쿠완거는 바다속에 떨어졌었지만, 자신의 머리 위에 얼음이 생기자 그대로 베어서 뚫고 올라왔다.


[역시 살아있었나, 네놈…!!]


적의로 가득한 부멜 쿠완거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엑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 저 녀석들은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낼게. 그 동안 쥬얼 시드의 봉인을."
"에, 에?!"


'우리'? '내'가 아니라?
나노하의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하늘에서 '얼음의 섬'을 향해 그림자들이 떨어져내렸다.
스톰 이글. 그리고 그가 싣고 온 마그마 드래곤과 웹 스파이더다.
그 즈음해서, 부멜 쿠완거 쪽에도 이레귤러 넷이 합류했다.


[하나하나 차례대로 나타나긴…!]
[부오부오, 한번 박살난 놈들이 염치도 없게 나타나다니!!]
[저번과 같은 결과가 나올거라곤 생각안하는 게 좋을거다.]
[이번엔 이쪽도 확실하게 기합이 들어갔거든!!]


3 대 5의 대치.
엑스는 빛의 날개를 움직여 아래쪽을 향해 내려갔다.
부멜 쿠완거는 그런 엑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완전히 목을 자르진 못했지만 상당한 상처였을텐데 벌써 나타나다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거냐 네놈은.]
"확실히 그때는 죽는 줄 알았지.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 그때 확실하게 나를 끝내지 못한 걸 후회하게 해주지."


「STORM」


다시 한번 엑스의 갑옷이 모습을 바꾼다.
하늘색에서 녹색으로, 빛이었던 날개가 '새'와 같은 실체의 날개로.


[꾸왁!! 어째서 거기까지 하는거냐?!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곤 해도 왜 그렇게까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비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내키는대로 살아온 그들로서는.
지금의 엑스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왜 이렇게까지 자신들에게 맞서려고 하는지.
부멜 쿠완거는 엑스의 "물러터진 면"밖에 모르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그 성격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거나 하진 않았다. 그럴 필요도 못느꼈지만.


"한때는 같은 이레귤러 헌터였으면서도 모르는건가…"
[뭐?! 무슨 소리냐!!]


엑스는 망설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레귤러로부터 인간을 지킨다. 그게 「이레귤러 헌터」다."

 


이들과 싸울 이유라면,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가장 앞에 나와있던 엑스는 고개만을 뒤로 돌려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스톰 이글과 웹 스파이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시했고, 마그마 드래곤은 동의하진 않았지만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 밥맛떨어지는 놈들. 역시 네놈들과는 천년만년이 지나도 의견이 맞을 일 없겠군.]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슬래시 비스트가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달리고 싶을 때 달린다. 부수고 싶을 때 부순다. 어려운 것따윈 질색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지. 그걸 못하게 하는 인간따윈 없애버리면 그만이야!]
[… 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지만.]


슬래시 비스트의 말을 부멜 쿠완거가 받아서 끝을 맺었다.
둘의 말에는 광기에 가까운 감정이 섞여있었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다른 세 이레귤러도 다를 건 없었다.


[의견이 맞을 일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 암만 그래도 네놈들처럼 폭주할 생각은 없거든.]


이레귤러들의 광기가 높아짐에 따라, 헌터들의 투지도 따라서 높아져갔다.
바로 다음 순간에, 서로 충돌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만큼.

 

 

 


그렇게 맞고.
그렇게 다치고.
목까지 베여서, 그렇게 피를 흘렸는데.


저 소년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또다시 이곳에 나타났다.
자신의 앞에, 자신을 구해주면서 나타났다.


"인간을… 지킨다…"


이레귤러 헌터.
소년은 자신을 그렇게 칭했다.


"… 괜찮아."


레이징하트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그녀의 몸은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물론 무서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칠지도 모르고, 목숨을 잃을 위험마저도 있다는 것도 안다. 바로 수십초 전에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그럼에도 그 공포는 더이상, 그녀의 몸을 먹어치우지 못했다.


"… 괜찮아."


저 소년이, 저 용사가.
저들은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녀의 몸은 이제 그녀의 의지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해야할 일은 한가지.
처음에 하려던대로, 쥬얼 시드를 봉인하는 것.

 

 

 


───to be continue

 

NAME : 타이달 맥코인
고래를 본따 만들어진 레플리로이드. 바다를 매우 사랑하는 해양 박물관의 큐레이터이며, 또한 해군 수비대의 지휘관이다. 바다를 지키려고 하는 열정이 대단하기에 과거 레플리포스 해군과 여러번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다소 거친 면도 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의무의식이 매우 투철하다.
누출된 시그마 바이러스에 의해 이레귤러가 되었으며, 결국 엑스에게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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