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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방에서(단편소설 모음)


(동화) 쌀람 알레이쿰


쌀람 알레이쿰 -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3월 17일 수요일 맑음

날씨가 3월 중에 최고로 좋았다. 축구하기엔 딱 좋은 날씨! 그런데 엄마가 5시까지 들어오라고 해서 얼마 못했다. 집에 와보니 내일부터 학원을 나가라고 한다. 지난번에 시험 못봐서 혼났는데, 그때 나도 학원 보내주면 다른 애들만큼 할 수 있다고 소리질렀던 게 먹혔나 보다. 학원에는 민성이랑 홍기가 있으니까 셋이 포켓몬 얘기하며 놀 수 있겠지.

 

3월 18일 목요일 맑음

연속으로 맑은 날씨. 오늘도 축구.

아, 선생님이 조만간 남자 전학생 한명 올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3월 20일 금요일 흐림

엊그제 했던 말 취소. 무지 궁금해진다!

오늘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말씀하셨다. 전학생은 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외국 아이라고. 기본적인 한국말은 할 수 있지만 많이 서툴 거라고 하셨다. 어느 나라 아이냐고 혜진이가 물어봤는데, 그건 비밀이라며 웃고 넘기셨다. 너무해!

일기 쓰기 전에 상상해 보았다. 얼마 전에 해리포터를 보았는데, 전학생도 금발을 가진 백인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친구 삼아서 데리고 다니면 주변에서 부러워할 거다. 아, 영어도 배워야지. 대신 내가 축구를 가르쳐주면 되려나.

 

3월 22일 월요일 맑음

실망했다. 쓰기 귀찮아. 내일 쓸래.

 

3월 23일 화요일 맑음

어제 실망한 얘기부터 써야겠지. 까먹기 전에.

전학생이 왔다. 그런데 우리들 생각과는 달랐다. 흑인 아닌가 싶을 만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작은 아이였다. 옷도 촌스럽고, 선생님이 말한 대로 한국말을 잘 못한다. 이란에서 온 압둘이라고 어눌하게 자기소개하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몇몇 애들이 그만 웃어버렸다. 가만 보니 잘생긴 백인 남자애가 왔으면 좋겠다고 꺅꺅거렸던 여자애들이었다.

걔가 자기소개 마치고 선생님이 골라준 자리로 가는데, 몸에서 냄새가 꽤 났다. 목욕 안 한 지 몇 달은 된 것 같은 냄새였다. 하필 내 앞에 앉는데 냄새나 죽는 줄 알았다.

걔가 앉을 자리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짝꿍이 없는 민희의 옆자리. 우리 반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는 애다. 게다가 되게 착하다. 아마 민희가 아니라 다른 애였다면 짝 바꿔달라고 난리쳤을 거다. 그리고 난 압둘의 뒷자리.

대놓고 말하는 앤 없었지만, 냄새 때문에 먼저 다가가 말 거는 애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민희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있다. 다들 민희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놔두는 분위기다. 게다가 이란이면 사막 아냐? 오락기나 컴퓨터도 없는 그런 데 있었던 애가 재밌는 이야기를 할 리도 없겠지.

 

3월 23일 수요일 황사

오늘도 전학생 얘기.

민희가 목욕하라고 했는지, 요샌 냄새가 덜 난다. 그러고 보니 압둘의 앞자리에 있는 찬성이가 냄새 못 참겠다고 선생님한테 말했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일지도?

오늘 압둘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해 봤다. 이란에서 어떻게 살았냐고 묻자, 친구들이 많아서 좋았다고 한다. 매일 사막에서 낙타 타고 다녔냐고 묻자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애들도 슬슬 압둘과 이야기를 해 보려고 오는데, 압둘이 워낙 말을 더듬거려서 별로 재미없다.

여자애들은 민희 빼곤 압둘에게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다. 압둘이 키크고 잘 생겼으면 좀더 다가왔겠지.

 

3월 24일 목요일 황사

압둘이랑 싸웠다. 엄마가 전화로 선생님께 사과드리고 날 야단쳤다. 우울하다.

압둘 전학온 날에 급식시설에 문제있다고 며칠간 급식을 안 해주다 오늘 급식이 나왔다. 반찬 중에 불고기가 있었는데, 압둘이 내게 이건 무슨 고기냐고 물었다. 원래 민희한테 물어보려다 민희가 잠깐 손씻으러 가서 내게 묻는 것 같았다. 언뜻 보니 소고기 같아서 소고기라고 말해 주니 고맙다고 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민희가 들어오더니 깜짝 놀라며 압둘에게 이거 돼지고기라고 말했다. 그러자 압둘은 눈을 크게 뜨더니 입에 든 걸 그대로 식판에 뱉어버렸다. 대체 그게 뭐 어때서? 당근이나 피망도 아니고, 고기를 골라먹는 앤 처음 봤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압둘이 날 노려보더니 갑자기 한 대 쳤다. 게다가 날 가리키며 거짓말쟁이란다. 그 말에 나도 화가 나 압둘을 때렸다. 애들은 밥 먹다 말고 우릴 둘러싸고 막 응원했고, 우리가 싸우는 사이 민희는 선생님을 불러왔다. 선생님은 얘기를 듣더니 나만 막 야단친다. 먼저 맞은 게 난데! 게다가 선생님이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바람에 또 야단맞았다. 선생님도 밉고, 엄마도 밉고, 압둘도 밉고, 민희도 밉다.

압둘은 그냥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렸으면 좋겠다.

 

3월 26일 금요일 비

선생님이 오전수업 두 시간을 특별수업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뭘 하려는 건가 했더니, 이슬람에 대한 이해라고 했다.

난 이란이 사막으로만 된 곳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틀어 준 비디오를 보니 우리처럼 차도 다니고 아파트도 많았다. 선생님은 지금은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제히 어딘가로 절하는 장면이 나왔을 땐 저게 이슬람의 종교의식이라고 하셨다. 기독교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처럼, 저기선 저렇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절하면서 기도한다고 한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이번엔 날 보며 말씀하셨다.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기 때문에 어제 내 행동은 큰 실수였다는 것이다. 애들이 모두 날 쳐다봐서 무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압둘만은 날 보지 않고 영상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선생님은 압둘에게 고향을 본 소감을 물었다. 그러자 압둘이 울기 시작했다. 저기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고 말한 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저 나라의 말인 것 같은데, 선생님도 알아듣지 못했다. 선생님이 압둘을 데리고 나가 달래는 걸 보니, 내가 어제 실수한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 문제라고 하니까, 압둘은 어제 돼지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도 지옥에 가긴 싫으니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돌아오면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압둘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선생님이 압둘은 조퇴했다고 말해 주었다. 괜히 더 미안해졌다.

수업 모두 끝나고 선생님이 나랑 민희를 불렀다. 내일 압둘 어머니 병문안을 갈 생각인데 반 대표로 와달라고 하셨다. 나랑 민희 모두 가겠다고 말했다.

집에 와서 TV를 켜보니 마침 이슬람에 대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엔 보지 않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오늘은 집중해서 끝까지 보았다.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3월 27일 토요일 황사

오늘 선생님과 민희와 함께 압둘 어머니 병문안을 갔다. 압둘 어머니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압둘 가족이 한국에 온 건 압둘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서라고 한다. 아버지는 휴일에도 일하러 나갔다고 하고, 압둘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오자 압둘은 많이 놀라 허둥거렸다. 선생님이 미리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날 보고 멈칫거리는 게 보여 미안해졌다. 얼른 머리숙여 사과하니 압둘은 날 빤히 보다 짧게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인샬라, 라고 들은 것 같았다. 압둘은 그렇게 말하고 내게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완전한 한국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자기 가족을 소개해 주었다. 옛날 한국에 왔던 이란인 아버지와 서로 사랑했고, 결혼 후 이란에 가 살다가 이렇게 오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압둘을 국제학교로 보내야 했는데, 급하게 오느라 수속을 제대로 밟지 못해 일단 이리로 왔다고 한다. 한국말을 가르치긴 했지만 그리 잘 하는 게 아니라 걱정된다며 어머니는 조금 우셨다. 압둘이 그런 어머니를 달래며 한국말로 걱정하지 말라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날 째려보며 손가락을 휘휘 흔들었다. 말하지 말라는 표시 같아 입다물고 있었다.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며 압둘에게 모레 보자고 말했더니 조금 웃었다.

병원 갔다 와서 다시 학원 가느라 정신없었다. 피곤하고 정신없어 친구들하고 놀 기분이 아니라서 포켓몬 얘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월 29일 월요일 황사

오늘도 황사. 마스크를 하고 나가야 할 정도로 심했다. 이러면 학교 끝나고 축구도 못하는데.

민기랑 둘이서 투덜거리고 있는데, 압둘이 저런 황사는 애들 장난이라고 했다. 이란에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엄청난 황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먼저 말 거는 거 보니 화가 풀렸나 보다.

이젠 압둘에게 말 거는 애들도 많아졌다. 압둘의 인상이 처음보다 좋아진 것도 그렇고, 민희가 애들에게 압둘은 좋은 애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이유일 것이다. 잘 다가오지 않던 여자애들도 압둘의 어머니가 아프시단 말을 듣고 압둘을 격려해주기 시작했다. 애들이 말을 걸수록 압둘의 표정이 밝아져서 다행이다.

 

3월 31일 수요일 맑음

축구할 때 압둘을 끼워주었다. 생각 외로 무지 잘해서 깜짝 놀랐다. 압둘 혼자 두 골을 넣었다. 다음 판부턴 압둘을 자기 편에 넣으려고 애들이 싸울 것 같았다.

축구 끝나고 맥도날드 가 햄버거를 먹었다. 지난번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압둘에게 치킨버거를 사 주었다. 이번엔 닭고기 확실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햄버거를 많이 먹어보진 않은 것 같았다.

 

4월 1일 목요일 맑음

숙제 하나를 깜빡했다가 선생님께 불려갔다. 크게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나를 혼내는 대신 요새 압둘이 잘 지내냐고 물으셨다. 내가 같이 축구한 얘기, 치킨버거 사 준 얘기 등을 하자, 잘 했으니 이번 한번은 봐준다며 돌아가 보라고 하셨다.

교실에 돌아오니 애들이 많이 혼났냐고 물어봤다. 압둘도 궁금한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야단 조금 맞았다고 둘러댔다.

 

4월 2일 금요일 맑음

소풍날. 목적지는 북한산 둘레길이다. 이번에 새롭게 꾸몄다고 하는데, 가보기 전엔 잘 몰랐다. 어차피 등산 아닌가 했는데,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 산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게 아니라 산에 난 길을 걷는 거였다.

처음엔 다들 롯데월드 가는 게 낫다고 투덜거렸는데, 압둘 혼자 들떠 있었다. 민희가 이란에는 산이 별로 없어서 압둘은 산을 처음 보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산을 보고 이정도면 바닷가에 가면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웃겼다.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공기도 맑고 길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올라가다 저 멀리 있는 사슴도 보았다! 가까이 가볼까 했지만, 선생님이 사슴에게 스트레스 주면 안된다고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서 아쉬웠다.

쉼터에 도착해 간식을 먹을 때 선생님이 서울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서울에 처음 자리잡은 나라는 백제인데, 원래는 십제란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천 쪽에 자리잡은 형제 나라와 합치면서 백성들이 보다 다양해져 백제란 이름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은 옛날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고, 지금도 여러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인 장소이기 때문에, 서로 차별하거나 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압둘처럼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배려해 주며, 압둘이 태어난 곳의 문화를 바르게 알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압둘에게 아랍어로 간단하게 한마디 해보라고 하셨다. 압둘은 유창한 아랍어로 말한 후 한국말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건 너희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라고. 애들이 박수를 치자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었다.

돌아오는 길에 압둘의 어머니가 좀 나으셨는지 물어보았다. 압둘은 어머니 수술이 닷새 후로 잡혔고, 의사 선생님이 수술만 하면 완치될 거라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정말 의학이 발전된 곳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쩌면 난 굉장히 좋은 환경을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월 3일 토요일 흐림

오늘 압둘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결석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 민희가 교탁 앞으로 가더니 애들에게 제안을 했다. 압둘의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나흘 후 수요일에 수술을 하신다고 말하고, 우리가 압둘에게 뭔가 해주자고 말했다. 모두가 찬성했고, 조금 의논하다 깜짝 선물로 종이학을 접어주기로 했다. 각자 주말에 종이학 백 마리씩 접어서 월요일에 갖고 오기로 했다.

그런데 나, 종이학 접을 줄 모르는데?

결국 집에 와 엄마에게 배운 후에야 종이학을 접을 수 있었다.

백 마리를 다 접고 나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4월 5일 월요일(식목일) 비

종이학은 깜짝 선물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모두 바빴다. 내가 나가서 압둘이 오나 망을 보는 사이, 모두 종이학을 모아 큰 병에 담았다. 그리고 큰 종이를 가져와 압둘의 어머니가 수술 잘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썼다. 압둘은 평소 늦게 오는 편이라,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교실에 들어온 압둘이 우리 반의 이상한 분위기를 읽고 고개를 갸웃하는 게 우스웠다. 녀석이 혹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지만, 다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집에 와 드러누웠다가 종이학 종이가 남아있던 게 생각나 종이학을 마저 접었다. 다 접고 무슨 소원을 빌까 생각하다가, 그냥 이것도 압둘 어머니 수술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기로 했다.

 

4월 6일 화요일 맑음

학교 끝난 후 집에 갔다가 다시 나와 민희와 만났다. 우린 이번에도 반 대표로 병문안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선생님과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한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압둘은 없었고 압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압둘에게 미리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너무 깜짝 선물을 신경쓴 게 문제였다.

어쨌든 처음 뵙는 압둘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압둘 아버지는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건장한 체구의 아저씨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날 대신해서 민희가 나섰다. 쌀람 알레이쿰, 이라고 말하자 압둘 아버지의 표정이 확 밝아지며 알레이쿰 쌀람, 이라고 말씀하시더니 민희와 악수했다. 그걸 보고 나도 쌀람 알레이쿰, 이라고 하자 압둘 아버지가 대답하더니 갑자기 다가와 날 끌어안고 양 볼에 입맞춤을 했다. 갑자기 볼에 수염이 닿아 깜짝 놀랐고, 남자가 내게 뽀뽀한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지만, 겨우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보여 준 영상에 이런 장면이 나온 걸 보지 않았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압둘 어머니와는 그냥 한국말로 인사했는데, 어머니께서 압둘은 집에 일이 있어서 좀 늦게 올 것 같다며 아쉬워하셨다.

준비해 간 선물 - 종이학 삼천 마리, 그리고 우리 반 전원이 쓴 대자보 -를 보자 압둘 어머니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압둘 아버지가 궁금한 얼굴로 뭐라고 묻고 압둘 어머니가 대답하자, 압둘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땡큐를 연발하셨다. 그건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꼭 낫길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나와서 돌아가는 길에, 압둘과 마주쳤다. 우리가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자, 압둘은 아쉬워하면서도 매우 고마워했다. 선물 준 사실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나가서 이야기할까 했지만, 압둘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그냥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잠시 망설이다 압둘에게 쌀람 알레이쿰, 이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압둘은 멈칫하더니 곧 환히 웃으며 알레이쿰 쌀람, 이라고 말하고 곧바로 한국말로 다시 말했다. 당신에게도 평화가 깃들기를, 이라고. 아아, 저 인사가 저런 뜻이었구나.

뒤돌아서는 압둘의 모습을 보니, 내일이나 모레 다시 볼 압둘의 밝은 모습이 기대되었다. 그때는 압둘을 붙잡고 이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좀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 그곳과 서울이 어떻게 다른지, 그곳의 친구들은 뭘 하고 노는지, 같은 것들을 알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압둘과 함께 그곳에 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쌀람 알레이쿰, 서울에서 온 압둘의 ​친​구​입​니​다​.​”​라​고​.​

조금 빤한 스토리지만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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