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을 마음으로 느끼고
짐승의 힘을 손에 넣는 권법 '수권(獸拳)'
수권에는 서로 대적한 두 유파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정의의 수권 격수권(擊獸拳) 「비스트아츠」
또 하나는 사악한 수권 임수권(臨獸拳) 「아크가타」
두 유파는 하나가 되었고
'사룡'을 상대로 한 최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웃기지 마라…!>
<이 나를 영원한 어둠 속에 봉인할 셈이냐!!>
<고작 짐승 흉내의 힘따위로, 모든 짐승에 정점에 있는 '환수'를!!>
<환수의 왕좌인 이 나를──────!!>
적과 청, 그리고 황의 세 수권사에 의해
사악한 금색의 용은 봉인되고
세상은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된다.
그리고… 그 싸움 속에서 목숨을 잃은 한 사람의 권사가 있다.
수천년에 한번 태어난다는 선택받은 재능을 소유한.
하지만 그 때문에 '사룡'에게 인생을 지배당해, 사악의 길로 빠져든.
그리고 최후에는 올바른 길로 발을 돌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룡'을 파괴한.
수권 역사 4천년 사상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권사가.
그의 이름은, 「흑사자」 리오라고 한다.
비록 그의 생명은 사라졌지만.
그의 영혼은.
그가 가졌던 격기혼은.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 기억과 깨달음을 고스란히 가진 채로.
그것은, 작은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새롭게 시작된 우리들의 나날.
결정한 것은, 두번 다시 지지 않으리라는 것.
맹세한 것은, 두번 다시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는 것.
이제는 꺾이지도 흔들리지도 비틀리지도 않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해져야 할 것.
이제 두번 다시, 어떤 슬픔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拳武… 시작합니다.
1화
세이는 입으로 가져가던 젓가락을 딱 멈췄다. 페이트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의 일.
"… 꽤나 터무니없는 일을 꾸미고 있구나, 너희들."
루비빛의 눈동자에 기가 차다는 기색이 어린다.
여하간 놀랐다. 단지 이야기를 듣는 것 뿐으로 라면 먹는 게 중단되어본 건 처음이니까.
"…… 너무 그러지 말아줘. 나노하도 하야테도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고 한 일이니까, 가능하면 도와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적어도 지금 자기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자각은 하고 있나보네. 안심했어. 몇년 못 본 사이에 완전히 철면피가 된 거 아닌가 했으니까."
에누리없는 혹평에 페이트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친구는 언제나 이랬다. 아무리 친한 친우들이 하는 일이라고 해도, 결코 봐주는 일따윈 없다. 어찌되었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한다.
─우정을 중시하긴 하지만, 우정에 휘둘리진 않는다. 그 때문에 자신들은 큰일이 생기면 이 동갑의 소년에게 의지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남아있는 면을 전부 건져먹고, 그릇을 들어올린 후 국물까지 깨끗이 들이마신다.
그릇을 내려놓고, 페이트를 똑바로 바라본다.
"말이 좋아 대책부대지 하야테의 사설 부대나 다름없잖아."
"현존하는 부대들로는, 사건이 터진 뒤에 도착하는게 늦으니까. 어떤 재해든지 빠르게 대처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게 목적… 이야. 일단은."
"목적 자체는 나쁠 거 없지만, 만드는 방식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거야. 정식 절차도 아니잖아, 그거."
"그거에 대해서라면 할 말없지만, 일단은 '실험부대'라는 명목이니까. 1년간 해보고, 성과가 좋으면 그대로 존속이라는 조건이래."
"그것만으로도 엄청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틀림없이 관리국 내부에 적을 잔뜩 만들게 될거야."
출신도 경력도 불분명한데다 순전히 '연줄'로 인재를 끌어모아 만드는 부대. 적이 안 생기면 그쪽이 이상한 거다.
하지만, 페이트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각오는 되어있어. 힘들거라는 것도, 어려울 거라는 것도."
세이는 한동한 페이트를 바라본다.
페이트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손을 든 것은 세이쪽이었다.
"거기까지 말한다면 내가 뭐라고 할 건 없겠네. 마음대로 해라. 더이상 안말릴테니. 응원정도는 해주지."
여기까지 말하고, 남아있는 라면 국물을 마셨다.
─하지만 뒤이어 페이트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하자 도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 에? 세이 군… 안도와주는거야?"
이렇게 되면 황당하는 건 세이 쪽이다.
어째서 자신이 그녀들을 도와주는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하는거지?
"내가 왜?"
"하, 하지만…"
"저 말이지. 너희들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나본데. 난 어디까지나 의리 차원에서 '민간협력자' 신분으로 너흴 도운 것 뿐이야. 의무같은 건 없다구."
무엇보다도.
"난 미도리야 일만으로도 바빠. 수련에 도움이 되는 건 좋지만, 더이상 어릴 때처럼 막 돌아다닐 순 없어."
나노하들에게는 시공관리국 일이 본업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아니다. 자신에게는 엄연히 '이쪽' 세계에서의 생활이 있으니까.
"안그래도 아르바이트 생들이 죄다 휴가가는 바람에 시간없단 말야.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들키면 어떻게 될지."
"그러고보니, 미도리야는 아직도 모모코씨가 운영하고 있었지?"
"아, 뭐. 그 사람은 어떻게 된 게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게 없어."
외모도 성격도, 10년 전에 만났을 때와 똑같다.
그러고보니 린디도 그런 타입이었지.
"그런 이야기야. 너희들이 핀치에 몰렸거나 한다면 도우러 갈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엔 아냐."
생각해보면, 세이가 지금까지 그녀들을 도운 것은 그녀들의 힘만으로는 아무래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싶은 것들 뿐이었다. PT 사건이나 야천의 서 사건 이후로 세이의 도움을 받아본 것은 십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니까.
사적으로 만나는 거라면 꽤나 자주 만났다는 느낌이지만.
"매정하네. 십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인데."
"그러니까 더더욱 이런 관계는 확실히 해둬야지. 친구라고 하는 건 빚지고 빚갚고 하는 사이가 아니고, 우정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법. 그거엔 나도 동감이야. 하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면 곤란해. 그러니까─"
이 화제는 여기까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세이는 그렇게 끝맺었다.
그리고 라면 그릇을 내려놓고는 지갑을 꺼냈다.
"아, 내가 낼게."
"됐네. 넌 먹지도 않았잖아. … 그건 그렇고, 니네들 사전 모의라도 했어?"
"… 응? 무슨 소리야?"
페이트는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모르는 것 같다. 세이는 한숨을 쉬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 문제로 찾아온 사람이 네가 일곱번째니까. 하야테, 나노하, 크로노, 비타, 유노, 시그넘 순으로."
나도 같은 말 일곱번이나 하면 질린다고. 그렇게 덧붙인다.
10년 전.
금빛 머리카락의 소녀와, 은빛 머리카락의 소년은 만났다.
… 꽤나 어이없는 방식으로.
"… 어떻게 생각해? 페이트."
"……"
대답할 수 없다.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폭주한 쥬얼 시드를, '주먹'으로 두들겨패는 아이같은 게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마도사는 아니다. 하지만 소년은 그녀가 지금까지 봐온 어떤 마도사보다도 강했다.
몸에 주황색과 자주색의 '빛'을 두른 그 소년은, 오직 주먹과 발만으로 괴물을 상대했다.
거대한 나무의 형태를 한 괴물은, 뿌리를 이용해 사방에서 소년을 공격했다.
위험하다.
한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페이트의 감정이 그것을 제지했다.
보고 싶었다. 저 소년이 저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소년은 무슨 생각인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뿌리들을 보고서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버렸다.
"임수 스콜피온권…"
그리고 그대로 몸을 반전시킨다. 그러니까, 물구나무를 섰다는 이야기.
그 상태로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회전한다. 엄청난 속도로.
"「홍련주편각」!!"
소년의 발은 마치 검처럼 주변의 뿌리들을 모조리 잘라버린다.
회전이 멈추고, 자세를 바로잡은 소년은 괴물을 향해서 몸을 돌린다.
그리고, 괴물이 더이상 무슨 짓을 벌이기 전에 공격한다.
"격기술, 「전전탄」!!"
소년의 머리 위로 나타난 것은, 푸른 빛의 재규어.
이빨을 드러낸 재규어는 곧장 풍차처럼 회전하며 괴물에게로 날아갔다.
재규어는 괴물의 한가운데에 부딪혔고─ 폭발하여 괴물과 함께 사라졌다.
어째서일까.
지극히 파괴적인 위력에, 지극히 파괴적인 힘인데도.
─그 아름다움에서.
─그 대륜의 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잘 되긴 했네. 원래 이렇게 섬세한 기술은 전공이 아니니까. … 근데 이건 뭐야."
가까이 다가간 소년은 바닥에 떨어진 작은 보석을 주워올렸다.
쥬얼 시드의 본체. 그것이 눈에 보이자, 페이트는 그대로 뛰쳐나갔다.
"… 너는…"
"… 아."
어떡하지? 반사적으로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소년과 마주하고 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방금 쥬얼 시드를 봉인도 하지 않고 힘만으로 박살낸 것으로 보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잠시 고민하던 페이트는, 결심을 굳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것은 어머니가 원하는 것.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든 가져가지 않으면 안된다.
"… 그것."
"… 이거?"
"나는, 그걸 모으지 않으면 안돼."
소년은 페이트를 바라본다.
그리고, 손에 쥔 쥬얼 시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이런 걸 원하는거지?"
"… 말할 수 없어."
말하고서, 자신의 디바이스─ 바르디슈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심정적으로는 하고 싶지 않은 짓이지만, 이것이 아니면 승률이 대폭 낮아진다. 소년이 아직 자신에게 경계하고 있지 않을 때 전력으로 기습─
"… 상관 없으려나."
─할 예정이었지만, 소년은 들고 있던 쥬얼 시드를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던져서 넘겨준다.
그것을 당황하면서 받아낸다.
"어, 정말로…?"
"확실히 꽤 힘이 느껴지는 물건이긴 하지만 이래뵈도 권사. 그런 사도(邪道)적인 물건에 손댈 만큼 타락하진 않았어. 갖고 싶으면 마음대로 가져가. 나로서는 단지 내가 사는 동네에 그런 괴물이 나타났다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부순 것 뿐이고, 그런 거엔 볼일 없어."
그리고 소년은 그 왠만한 소녀보다도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호전적인 말투로 덧붙인다.
"하긴, 네가 그 물건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던가 난장판을 만들어놓겠다던가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런 건 아냐."
페이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것을 들은 세이는 미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됐어. 내가 뭐라고 할 건 없겠네."
그대로 돌아서려던 세이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아─ 하는 탄성을 내뱉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말해두는 걸 깜빡했는데… 다음에도 이런 녀석이 나타나고, 내 인식 범위 안에 있다면 나도 싸울거야. 어쨌거나 우리 집 앞마당에 저런 게 나돌아다니는 것도 마음에 안들고, 수련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으, 응…"
페이트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반응을 남겼다.
그러다가, 이번엔 페이트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저기─"
"응?"
"이름… 당신의…"
"… 어째서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거지?"
반사적으로 붙잡긴 했지만 오히려 반문을 받으니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고보면 딱히 이름을 들어두어야 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이때 의외의 지원이 들어왔다.
"아, 정말! 페이트가 묻고 있잖아! 이름 정도 가르쳐주는게 뭐 대수라고!"
뒤늦게 나온 알프가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세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시오 세이(星)."
사자왕의 별.
그것이, 다시 태어난 흑사자의 새로운 이름.
이후에도 몇번인가, 세이는 쥬얼 시드와 싸웠다. 가끔은 페이트와 공동전선을 펼친 적도 있다.
세이가 쥬얼 시드의 방어를 부수고, 페이트가 결정타를 먹인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날'이 와버렸다.
세이에게는 양친이 없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부모가 있었던 기억조차 없다.
제대로 '각성'을 한 것은 1살 정도의 무렵이었으니까, 어쩌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이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환경. 2살 때까지는 기를 모으는데 집중했고,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수권의 훈련을 시작했다.
…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2살짜리 꼬맹이가 동물 흉내를 낸다는, 참으로 꼴사납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리오였던 시절에 도달했던 길이니만큼 다시 한번 도달하는데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은, 역시 익숙한 임수권의 단련.
임수권의 근원인 임기(臨氣)가 기반으로 하는 것은 인간의 증오, 공포, 분노, 질투… 그리고 절망.
이런 온갖 종류의 마이너스 감정들을 빨아들여 힘으로 바꾸는 것이 사악의 권, 임수권 아크가타.
임기를 끌어모으는 것 자체는 쉬웠다. 어찌되었건, 세이가 있던 고아원에는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꼬마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는 질도 양도 꽤나 떨어지지만,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방법도 있었다.
─세이 자신의 절망과 공포를, 그대로 먹어치워서 힘으로 바꾼다.
이것 역시, 한번 했던 일이니 만큼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마스터 카타 왈, 그런 인간은 임수전 4천년 역사 속에서도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나 뭐라나. 지금에 와서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다섯살 때까지 임수권을 거의 대부분 '기억'해내고, 격수권의 수행으로 들어가려던 무렵, 자신을 어느 부부가 떠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타카마치 시로. 여자의 이름은 타카마치 모모코.
어째서 하필 자신을, 이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어린 녀석이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있는게 불쌍한데다 그런 걸 두르고 있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라는 이유. 요컨대 이 인간들은, 임기를 "불행한 사람에게 들러붙는" 사기라던가 장기라던가 하는 걸로 착각했다는 이야기.
무리도 아닐까, 이 세계에 수권 사용자는 자신밖에 없는 모양이니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사실 거절할 권한도 없고), 결국 자신은 타카마치 가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러니까─
"에, 세이 군?! 어째서 여기에 있는거야?!"
─지금 이 상황은 무지하게 곤란하다는 이야기.
페이트는 약간 당혹스러운 얼굴로 세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는 사이야?"
"… 아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딸인데 모를 리가 없지.
상황을 보아하니 페이트는 싸울 의욕 만만이다. 나노하쪽은 벌써 쥬얼 시드를 몇개인가 가지고 있으니까, 빼앗을 생각이겠지. 더불어 나노하도, 계속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걸로 보아서는 물러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골치아픈 일에 휘말렸군. 세이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럼 나 간다."
"에, 에?!"
"어?!"
─몸을 돌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나노하도 페이트도 알프도 맹렬하게 당황하지만 무시 무시.
"야, 야?! 너 어디가?! 안 도울거야?!"
알프가 손가락질을 해대며 외쳤다.
세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내가 왜?"
"왜라니, 저 아이가 쥬얼 시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너 뭔가 굉장히 중요한 걸 잊고 있지 않아? 난 너희 편이 아냐.."
"아…"
확실히 그랬다.
이 녀석에게는 쥬얼 시드를 모을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이 쓰러트린 쥬얼 시드를 페이트가 받고 있었을 뿐.
"사람끼리의 대전이라면 내가 나설 여지는 없어. 설마 나더러 거기까지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 아니. 당신한테는 지금까지 도움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
페이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갔다.
하지만 알프에게는 아직 불만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잠깐만… 너 진짜로 페이트를 도와주지 않을거야?"
"그럴 의리도 없고 의무는 더더욱 없어. 내가 싸운 건 마을이 망가질까봐 싸운 거고. 너희들과의 관계는 가끔 공동전선을 폈다, 단지 그것 뿐이잖아. 아니면 설마… 너희들과 나 사이에 우정따위가 존재하기라도 했다는 건 아니겠지?"
세이의 냉소에 알프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런 녀석을 잠시라도 동료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
결국 페이트를 지킬 수 있고, 그럴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알프는, 페이트를 따라 싸움터에 뛰어들었다.
세이는 단지 그 싸움을.
'빛'과 '번개'의 향연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심정적으론 어느 쪽의 편도 들 수 없었기에 양쪽 모두에게서 손을 떼자는 것 뿐이었지만.
요컨대 단지 솔직하지 못한 것 뿐이라는 이야기다. 입으로만 냉정하게 떠들었을 뿐이고, 사실은 페이트에 대해서도 반쯤은 동료로 인정하고 있는 주제에.
하지만 나노하를 공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심. 그러니까 양쪽 모두로부터 손을 떼는 수밖에 없다.
나노하와 페이트가 만나고.
서로 싸우게 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은 더욱더 커지게 되고, 결국 나노하와 유노… 그리고 세이까지도 아스라에 불려가게 된다.
"유실 세계의 유산… 이라고 해도 잘 모르겠네. 차원 안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단다. 각자 태어나서 자라는 세계지. 그 중 아주 드물게, 엄청 진화한 세계가 있어. 기술과 과학이 너무나 진화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멸망시켜버린 세계가. 그 이후에 남겨진 잃어버린 세계의 유산… 그것들을 총칭해서 로스트 로기아라고 불러."
쥬얼 시드도 그 중 하나고, 라고 린디 하라오운은 덧붙인다.
… 그리고, 세이는 마시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 다 좋은데, 나하고는 눈꼽만큼도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일단은 관계자잖니? 그러니까 사정 정도는 알아두는게 좋지 않을까 해서."
"게다가, 너의 경우 잘못하면 그 마도사와 '공범'으로 취급당할 우려도 있다. 어쨌거나 쥬얼 시드를 몇개나 넘겨줘버린 모양이니."
"그렇게 따지고 들면 애초에 우리 동네에 저걸 떨어뜨린 저 놈이 제일 죄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
세이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자, 유노는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그래서 어떻게든 회수하려고…"
"그게 아무 상관도 없는 현지 민간인한테 손을 빌린다는 방법이었냐. 최악이잖아, 그거."
생각해보면 세이의 냉정한 '혹평'은 불과 아홉살 소년이었던 이때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 직후에는 곧바로 나노하에게 화살의 방향을 돌렸으니까.
"너도 너야. 도와달란다고 그런 걸 덥석 받아들이면 어떡해."
"그, 그래도 뭔가 굉장히 다급한 것 같았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고 해서… 그러니까, 나한테 그걸 해결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돕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어."
"너 말야… 사람 좋은 거에도 정도가 있지…"
물론 나노하의 그런 성격덕분에 타카마치 가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섞일 수 있긴 했다. 겉돌고 있던 자신을, 쿄야나 미유키등과 연결해준 것도 나노하니까. 그 점에 있어서는 나노하에게도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거하고 이거하곤 별개 문제. 어째서 감정만으로 그런 일을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건지.
'하긴, 가짜 9살인 나하곤 달라서 진짜 9살이니까 무리도 아닌가.'
이쪽은 리오였던 나이까지 합치면 마흔 줄에 들어설락 말락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나노하가 우물쭈물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세이 군도 도와주면, 안될까…?"
"싫습니다."
"즉답인거야?!"
나노하가 당황하는 동안 린디가 지원사격을 날린다.
"어머나, 하지만 그건 우리들도 부탁하고 싶은걸. 폭주한 쥬얼 시드를 주먹질만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탐낼테니까."
"방금도 말했지만 거절. 당신들, 이런 일에는 프로겠지? 아마추어를 끌어들이는 발언을 해놓고 부끄럽지 않아?"
"아, 그건 인정할게. 하지만 이럴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거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이라곤 나노하짱 정도고. 그러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좋겠는데. 강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겠고."
"그거야 댁들 사정이잖아. 어째서 아마추어가 프로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지? 무엇보다도 나는 양쪽 중 어디에도 손을 댈 수 없어. 그 아이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고, 당신들에게도 나노하에게도 사정이라는게 있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이상 끼어드는 건 안돼. 내가 할 수 있는 건 폭주한 괴물을 박살내는 것 뿐, 그 이후의 문제에 관해선 손댈 권한도 의무도 이유도 없어."
"그렇다는 건, 당신이 쥬얼 시드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아이가 달라고 하면 줄 거라는 이야기?"
"아마도 그렇게 하겠지. 내가 가지고 있어봐야 쓸데도 없는데다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저 페릿 놈(이때 유노가 움찔했다)을 위해 모아줄 의리도 없으니까."
"곤란한 이야기네. 하지만 그게 안좋은 일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잖아? 당신은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니까, 그 정돈 예측할 수 있을텐데."
"맞아. 하지만 이건 이성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감정 문제. 솔직한 감정으로, 나는 나노하와 페이트, 둘 중 누구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노하의 편에 서면 페이트와 싸워야 하지. 반대의 경우엔 나노하와 싸우게 될테고. 그러니까 어느 쪽의 편에도 서지 않아. 이성도 논리도 관계없어."
나노하와 크로노와 유노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할만큼, 세이와 린디는 빠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린디는 곤란한걸, 하고 속으로 혀를 찬다.
이런 타입은 상대하기 힘들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논파라도 할 수 있지만, 이건 대놓고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 뿐이니까 이성하곤 상관없어."하고 못을 박아놓은 경우니까 논파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부술 논리가 없으니까.
"지금 당신이 하는 말, 어린애 투정이랑 비슷하다는 거 알아?"
"상관없잖아. 실제로 나노하랑 동갑이니까 어린애고. 어린애가 어린애 투정부리는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 자기 입으로 태연하게 말하다니. 하지만 전혀 어린아이 같지 않은걸, 당신은."
그 증거라고 하긴 뭐하지만, 어째서인지 세이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세이야 어깨를 으쓱하며 '기분탓이야'라고 넘겨버렸지만.
"결국 교섭 결렬, 이구나."
진심으로 아쉬웠다. 크로노조차 "상대가 못된다"고 단언했을만큼 강한 아이. 이런 재능을 두눈 뜨고 놓쳐야 하다니.
딱히 인재 욕심은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것도 상대의 재능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다.
… 나노하만 해도 충분히 보물급 재능이지만.
그리고 나노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한번 이야기해서 안되면 소용없어요. 세이 군이 한번 고집피우면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으니까. 예전에도 피망 먹기 싫다는 걸 오빠랑 언니랑 아빠가 어떻게든 먹이려고 했는데 다 실패했다가 엄마가 나서서야 겨우─"
"그 이야기가 지금 왜 나와?!"
냉소로 차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된다.
한바탕 모두에게서 웃음소리가 튀어나오고, 잠깐이지만 공기가 가벼워졌다.
아직도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린디가 세이에게 말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이상 강요하지 않겠어. 하지만… 나노하짱이 위험해지면, 그땐 도와주겠지?"
"그건 나노하가 자기 힘으로 위기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위험할 경우지. 그런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이때의 세이는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노하와 페이트가 동시에 '굉장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걸.
~현재~
"그러고보니… 프레시아 씨는 어때? 슬슬 형기 다 채우지 않았어?"
"응. 얼마 전에 끝났어. 아직도 보호관찰은 받고 있지만."
"그건 잘됐네. 특별히 나쁜 곳은 없고?"
"괜찮아. 어머니께서도 안부 전해달래.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고."
아니, 그거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무지 나쁜 짓한 건데 말이지.
하지만 그 당사자인 프레시아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니 마음놔도 되는 거겠지.
~10년 전 PT 사건 최종국면~
"아리시아! 아리시아! 아리시아아아아아아!!"
프레시아 테스타롯사는 달렸다. 오직 사랑하는 딸을 구하기 위해서.
몇번이고 몸을 날렸고, 몇번이나 손을 뻗었고, 몇번이나 딸의 이름을 외쳤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지만 그녀의 손이 딸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미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반복'되는 동안, 단 한번도.
냉철한 과학자이자 뛰어난 마도사인 그녀의 이성은 이미 이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시공관리국의 파견자들과, 그 실패작들에 이어 쳐들어온 회은발의 소년.
그 소년의 손에서 나온 보라색의 빛.
─그리고, 그 빛 한가운데에서 나타나 그녀를 잡아챈 거대한 발톱.
그 이후부터, 지금 이 상황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망가진 '그날'의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된다.
아마도 그 소년이 한 짓이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환상이든 뭐든 목숨보다도 소중한 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이번에는 오히려 다시 반복되기를 기다린다.
아니, 그녀는 이미 미쳐있다. '딸을 살린다'는 이유로, 차원 범죄까지 일으킨 그녀는.
지금은 단지 정도가 심해졌을 뿐.
─변화가 일어난 것은, 852번째로 반복되었을 때의 일.
이번에야말로 구할 수 있다. 프레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그리고 아리시아와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아리시아를 살릴 수 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멈춰버린다.
'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리시아의 손을 불과 수 센티미터 두고.
'움직여…!'
의지와는 달리, 그녀의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아리시아는 또다시 그녀의 앞에서 죽었다.
"아…"
그제서야, 몸이 움직여진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머리를 감싸쥐고.
무릎을 꿇어버리고.
오열하면서, 절규를 터트린다.
구할 수 있었는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심한 짓을 하는거야!! 구할 수 있었는데!!"
이미 이곳에, 경이의 과학자이자 차원범죄자 프레시아 테스타롯사는 없다.
단지 딸을 잃고 절망에 가득 차 있는 한 명의 어머니가 있었을 뿐.
"과연. 이게 당신의 「절망」이라는 거네."
프레시아의 몸이 굳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리자… 이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서있는 소년─ 세이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흑보라빛의 '구름'에 휩싸인 채로.
"너…!!"
잘도… 잘도… 잘도, 잘도, 잘도잘도잘도잘도잘도잘도잘도잘도잘도잘도!!
잘도 아리시아를 죽였겠다!! 몇십번이나, 몇백번이나!!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저'것'을 찢어죽이지 않으면─ 아니, 찢어죽인다 해도 이 분노는 풀리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다시 멈춰버린다. 아까 아리시아를 구하지 못했을 때처럼.
'이건, 도대체…!'
환각계의 마법이라면 알고 있긴 하지만, 이런 마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디바이스도 없이, 이런 형태로 사용되는 마법은 없다.
소년은 벽에 기댄 채, 왼손을 들어올려 살짝 펼쳤다.
─거기에서는 보라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 당신은 내가 만들어낸 악몽 속에 있어. 당신은 이 악몽 속에서 셀 수도 없을만큼 비명을 질렀고… 그건 곧 내 힘이 됐지."
"악… 몽…?"
"그래. 상대의 마음 속에 있는 절망을 강제로 끌어내 그걸 먹어치운다… 그것이 임수 호크권 임기 「암흑포(暗黑砲)」. 당신은 당신 자신의 악몽 속에서 죽어가는 거야."
어딜 봐도 페이트와 같은 연배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이, 황홀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레시아조차도 한순간 '공포'라는 감정에 빠지게 만들었다.
"맛있던걸. 당신의 절망. 요즘엔 제대로 된 절망이란 걸 먹어보지 못했는데, 아주 멋졌어. 여기서 나가기 싫을 정도야."
프레시아에게, 눈앞의 소년은 더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에게서 절망과 공포를 뽑아내, 그것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
보통 인간들은 그것을 이렇게 지칭하기도 한다.
"악마… 인건가… 너는…"
"유감. 난 인간이야. 이걸 만든 건 내 스승들 중 하나인데… 확실히 그 양반은 인간이 아니지."
프레시아에게 남아있는 건 절망과 공포 뿐이다.
앞으로, 이 '악몽'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절망과 공포가 모조리 뽑아내져 저 '괴물'에게 먹혀버리고, 죽을 때까지.
"말해두겠는데, 당신의 움직임을 막고 있는 건 내가 아냐. '몇번이나 더 이 악몽을 겪어야 하는 건가' 거기에서부터 나오는 절망과 공포가 사슬로 변해 당신의 몸을 옭아매고 있을 뿐. 아아, 내가 쓰고 할 말은 아니지만 참 지독한 기술이야. 마스터 카타도 정말 잘도 이런 걸 만들었다니까."
말과는 달리 세이는 황홀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이미 이 악몽에서 만들어진 절망과 공포가, 그의 몸에 흡수되고 있다.
─리오였던 시절까지 포함해도 몇번 먹어본 적 없는 양질의 절망.
이 정도의 것을 먹어본 것은, 옛날에 리오 자신의 절망을 먹어치웠을 때 이래로 처음이다.
본래 하늘의 권마 카타가 사용하는 암흑포에는 이 정도의 효과가 없다. 단지 상대를 악몽 속에 있는 절망으로 묶어버리고, 카타 자신이 그 상대를 직접 죽여 그 절망과 비명을 먹어치워야 하는 기술로, 상대의 절망이 어떤 것인지,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다. 덧붙여서 지금 세이가 한 것처럼, 악몽을 수백번이나 반복시켜 상대의 정신을 파괴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힘도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암흑포는 세이가 궁극의 임기인 노임기(怒臨氣)로 개량한, 세이 전용의 암흑포다.
세이 이외에도 노임기를 다룰 수 있는 자는 권마까지 포함해도 셋(정작 권마 중에는 하나밖에 없지만). 그렇지만 나머지 둘이 노임기를 이렇게까지 다룰 수는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세이의 재능은 확실히 규격 외의 것이다.
'아, 아니지. 안돼. 이러면 안되는데.'
세이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프레시아의 절망은 확실히 맛있다. 문제는 너무 맛있다는 것. 그만 절망을 먹는데 몰두해버리고 말았다. 이 이상 먹어치우면 프레시아는 죽는다.
입가에서 흘러내릴 뻔한 침을 슥슥 닦아내고, 세이는 프레시아를 바라본다.
암흑포를 사용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프레시아의 '절망'을, 한곳에 모아 구체화 시키기 위한 것.
이미 프레시아의 절망은, 확실하게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슬슬 끝낼까. 아무리 '바깥'에선 시간이 얼마 안 갔다고 해도 더이상 끌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두 손을 들어올려 교차시킨다.
그리고, 마치 짐승의 발톱과도 같이 손톱을 세운다.
"죽일… 생각인가…"
"당신이 지금까지 한 짓이나 망언으로 봐선 그렇게 해도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뒷맛 더러우니까 그건 그만두기로 했어."
세이의 몸에서.
적황색의 '빛'이 뿜어져나온다. 마치 태양처럼.
아까까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흑보라의 구름은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다르다.
─따뜻하다. 굉장히.
아까의 그것─ 노임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느낌.
임기의 극인 노임기와 상극되는 힘… 격기의 궁극인 과격기(過擊氣).
"이거 낼 수 있게 되는데 엄청 고생했다구. 원리 자체는 노임기랑 비슷한데 발동 조건이 완전히 반대라서."
아마 '진정으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할 때에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격기였던가.
리오 시절에는 끝끝내 이것을 손에 넣을 수 없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가능했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잔뜩 생겨버린 지금의 자신은.
세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과격기는 그의 양손에 집중되었고, 그것을 확인하자 세이는 자세를 바꿨다.
두 발의 발톱으로 모든 것을 찢어버리기 위해 몸을 낮춘 호랑이의 모습을 본 딴 호교(虎咬)의 자세.
"미안한데 말야. 나 이 기술 만들어놓고 쓰는 건 처음이거든? 아파도 봐달라고."
"무슨 짓을 할 생각─"
프레시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도 못했다.
세이의 두 손에 있는 과격기가 뿜어낸 빛이, 그녀의 '절망'을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빛에 의해 밀려난 '절망'은, 모조리 프레시아에게로 몰렸다.
그리고─
"격기술…"
─세이는 프레시아를 향해 달렸고.
─그 '호랑이의 발톱'으로, 프레시아를 찢는다.
─정확히는, 그녀의 몸을 감싸고 그녀의 몸 안에 있던 '절망'을.
"「호조염살타」."
물리적인 파괴력은 제로(0)인 대신, 모든 종류의 사악한 염(念)을 베어가르는 힘.
프레시아의 절망을 끌어모은 것은, 한번에 부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프레시아의 악몽은 유리처럼 깨져버렸다.
"… 뭘… 한 거지…?"
주저앉아버린 프레시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딱히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세이는 그 물음에 대답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가지고 있던 절망을 부쉈어. 이제 머리 좀 식었을텐데?"
"……"
확실히, 지금의 그녀는 냉정해졌다.
그녀에게 있던 광기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다음.
─문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증발되버렸다. 마치 지금까지 기나긴 꿈을 꾸고 있던 것처럼.
"이런 식으로 남의 감정을 어떻게 하는 게 안좋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이야기가 안통하니까 말야."
"… 체포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지."
아무리 냉정해졌다곤 해도, 저토록 끔찍한 악몽을 겪었던 그녀다. 저항할 기력도 분노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다.
"물론 시공관리국인지 뭔지가 오면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한가지 가르쳐주지 않겠어?"
"… 뭘 말이냐."
"당신 딸. 지금 어디에 있는데?"
프레시아의 공허한 눈동자에, 의문이라는 감정이 깃든다.
"내 전공인 임수권은 사악의 권. 인간의 감정은 물론이고 생명까지도 가지고 놀아. 린시라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 이런 이야기는 해봤자 당신은 전혀 못알아들을테니 치우고. 이런 임수권의 4천년 역사 속에는 보통 인간이 상상도 못할 비전이 잔뜩 있단 말씀. 그리고 그 중에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걸까.
세이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그 중,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의 손톱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진다.
"육체만 있다면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비술도 있지."
"!!"
"이건 '진독'이라고 하는 임수 스네이크권의 비전. 생명을 뒤집어 산 자에게는 죽음을 내리고 죽은 자에게는 거꾸로 생명을 내리는 독. 하긴,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9년 동안 두개 만드는게 고작이었지만."
죽은 인간을… 되살려?
아리시아를, 살릴 수 있어?
"… 아리시아를, 살려주겠다는거냐. 네가 무엇 때문에─"
"착각하지마. 당신을 위해서가 아냐. 페이트는 나노하의 친구고, 그녀는 당신의 목적이 이루어지길 바랬어. 얼굴도 모르는 여자애 하나를 살리는데 진독 하나라면 꽤 비싼 대가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나노하와 페이트에게 신세진 걸 생각하면 못낼 것도 없지. 그럼 다시 한번 묻겠는데."
세이는 악마처럼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하지만 악마와는 달리 악의는 없이.
다시 한번, 프레시아에게 물었다.
"지금 그 아인 어디에 있어?"
~현재~
"그러고보니 아리시아도 얼굴 못본지 오래 됐다고 한탄하던데."
"어쩔 수 없잖아. 나한텐 너희들처럼 시공을 넘는 능력같은 건 없으니까."
임수전에도 격수권에도 그것만은 없었다.
임동운을 응용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했던 적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임동운은 단지 '빨리 움직이는' 것의 극대판일 뿐이고.
"사이다이오를 부를 수 있으면 차원 가르기라도 해볼텐데, 조수도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나."
"사이다이오?"
"있어. 그런 물건이."
아니, 명색이 수권의 신(神)이라고 신앙의 대상이 됐던 건데 물건이라고 칭하는 건 좀.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페이트가 묘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무슨 일이야?"
"… 세이.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아리시아 못 본지 얼마나 됐어?"
계산해본다.
야천의 서 사건 이후에 한번 봤고, 그리고 그 다음에도…
…… 세이의 손가락이 천천히 접혀가다가, 어느 순간에 멈춰버린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페이트의 얼굴도 굳었다.
손가락은, 아직 두 개나 펼쳐져있다.
세이는 딱딱하게 웃으며 중얼거린다.
"… 한 2년 쯤…?"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섬광의 배틀액스' 바르디슈였다.
"와?! 잠깐, 잠깐?!"
"아니, 갑자기 헛스윙이 하고 싶어졌어. 세이는 거기에 가만히 있어도 좋아."
"기다려, 죽는다구?! 아무리 나라도 바르디슈에 머리를 찍히면 진짜로 죽어버려!!"
"괜찮아. 믿고 있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겠지!!"
"그런 문제야."
─보통의 민간 가게라는 것도 있어서, 페이트의 헛스윙 연습은 1분으로 끝났다.
"슬슬 시간이네. 나 간다."
"응. 그리고… 스카웃 제의, 언제든지 유효하니까 생각 변하면 말해줘."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분명.
페이트와 헤어지고, 세이는 옛날 생각에 잠겼다.
동료들이라면 나노하와 페이트 이외에 또 있다.
야천의 왕 야가미 하야테. 그리고 그녀의 수호기사인 볼켄리터.
뭐, 처음 만났을 때는 적이었지만.
'그러고보니 하야테 녀석… 새 디바이스 얻었다고 했지. '창천의 서' 린포스 츠바이였던가.'
린포스 아인이랑 잘 지내려나 모르겠군.
~6년 전~
여기에, 한 소년과 한 남자가 있다.
소년 쪽은 기껏해야 12살에서 13살 정도로, 나이에 걸맞는─ 아니, 보통 그 나이대의 소년보다도 가는 몸을 하고 있다.
반면 남자 쪽은 키도 체격도 훌륭했다. 마치 돌처럼 단단해보이는 근육으로 뭉쳐져있었으며, 그 발달 역시 훌륭했다.
전혀 반대라고 해도 좋을 체격을 가진 두 사람은 지금, 다른 것도 아닌 「맨손 격투」를 행하고 있었다.
그것도, 체격의 차이같은 것은 깨끗이 무시하고서 거의 대등하게.
손과 발이 어지럽게 얽힌다.
큰 주먹과 작은 주먹이 부딪히고,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튕겨진다.
큰 발과 작은 발이 허공에서 부딪히고, 그 충격은 서로의 몸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켜버릴 만큼 컸다.
그 반동으로 둘은 거리를 벌렸고, 소년은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임수 라이온권 임기, 「대호탄」!!"
라이온권의 기술 중 하나로, 임기로 생성한 초중압탄으로 상대를 '짜부라'뜨리는 기술.
본래는 일반적인 타격이 통하지 않는 대 괴(怪)용의 기술로, 보통으로 생각하면 사람에게는 절대 써서는 안되는 기술이지만 상관없다. 원래 임수권에 금기같은 건 없으니까.
세이의 손에서부터 발사된 보라빛의 구체가, 자피라의 양손에 붙잡힌다.
"크으으으윽…!!"
하지만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자피라의 몸이, 천천히 지면에 균열을 만들며 밀려난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
자피라의 몸에서, 보라색의 빛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다.
"크아아아아앗!!"
보라색의 빛이 머문 두 손으로, 중압탄의 방향을 튼다.
지면쪽으로 방향이 틀어진 중압탄은 곧 폭발을 일으키지만, 결과적으로 자피라에게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것을 본 세이는 드물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격기의 사용은 익숙해진 것 같네. 하지만…"
자피라의 강인한 몸에서 흘러나오는 보라색의 빛을 본다.
그것은, 격기라고 하기엔 지극히 '위험한' 힘.
"난 그런 격기 가르쳐준 적 없는데."
"아, 미안하군. '지키는 힘'이라면 마법이 있으니까, 이걸로는 파괴력을 어떻게 올려볼 수 없을까 하고 이리 비틀고 저리 꼬고 하다보니 이렇게 되버리던데… 이것도 과격기나 노임기라는 거냐?"
자피라는 얼마전 적황색의 빛을 내는데 성공한 나노하와 흑자색의 빛을 내는데 성공한 페이트를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세이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건 자격기(紫擊氣). 격기보다는 오히려 임기쪽에 가까운 파괴적인 힘. 잘못하면 임기쪽으로 빠지기 쉬운 힘이기도 하고."
"… 뭔가 잘못한건가?"
우려섞인 자피라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부정해준다.
"신경쓸 필요 없어. '기'가 사람을 결정짓는게 아니라 사람이 그 '기'를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인 거니까. 넌 하야테를 지키기 위해서 그 힘을 쓸 거 잖아? 그럼 아무 문제없어."
"으음, 그런건가?"
"아. 게다가 희소성으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자격기도 어느 의미 과격기나 노임기에 절대 뒤지지 않으니까. 어쨌거나, 내 친구는 그걸로 '천지를 뒤바꿔놓을' 정도의 권사거든."
그러고보니 그 녀석은 ' 울프권'이었지. 늑대 속성 가진 녀석들은 전부 자격기인걸까.
자피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확인하고, 남은 것들을 체크한다.
'엄엄권과 상상권은 됐고, 남은 건 천지전변타 뿐일까. 하지만 그것만은 내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게 아닌데… 무엇보다, 나도 그건 익히지 못했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익히지 않은 것'이다.
「천지전변타」, 천지를 뒤바꾸는 주먹은 수권의 창시자인 마스터 브루사 이가 남긴 전설의 격기술.
자신의 하나뿐인 친우는 길을 잘못 들어섰던 자신을 막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그 기술을 익히고, 자신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친우의 천지전변타를 무참하게 깨부쉈다.
그런 주제에 이제와서 무슨 얼굴로 그 기술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을까.
그 친우를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자신에게 있어서, 천지전변타는 친우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그런 것을 자기 멋대로 쓸 수 있을리 없지.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문제. 자신의 사정따윈 자피라에겐 아무 상관없으니까 '익히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없다.
'그렇다곤 해도 오늘은 여기까지지만.'
이 이상 무리하면 몸에 나쁘다. 아, 자피라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아무리 리오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여기까지 수련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성장기 소년'의 몸. 계속 혹사시키다간 큰일난다. 실제로 린포스 아인과의 싸움에서는 싸우던 도중에 몸이 삐걱거려 디바인 버스터를 무방비 상태로 직격당하는 바람에 전투불능이 됐었으니까.
뭐, 어둠의 서의 방어 프로그램이 폭주했을 때는 시간에 맞춰 정신을 차려 참전할 수 있었지만─
"아, 훈련은 끝난건가."
"그냥 점검이었어. 그렇게 거창한 건 아냐."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보는 쪽이 되면 조마조마한 것이었다."
─그 이래로 성가신 것이 붙었으니 문제.
세이는 느닷없이 가까이 붙은 은발의 여인─ 린포스(큰 쪽)의 목에 걸려있는 장신구를 발견했다.
… 장신구라기엔 그 정체가 더할 나위없이 흉악한 물건이었지만.
"'그거' 상태는 어때?"
"응? 아아, 이거 말인가. 2년 전 이래 조용하다. 그 당시엔 혹시 날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과연 훌륭하더군. 완벽하게 봉인되어있다. 정말이지, 마법으로도 과학으로도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하게 될 거라고는."
"당연하지. 칠권성 전체가 손도 발도 못 뻗어보고 당했던 비전이야. 그 정도로 풀리면 곤란한 건 이쪽이라고."
세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폭주한 방어 프로그램… 야천의 서를 어둠의 서라고 불리게 만든 원인. 그것을 내버려두면, 분명히 세계는 멸망한다.
그러나 방어 프로그램을 파괴한다고 해도, 린포스 자체가 있는 한 방어 프로그램은 다시 재생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파괴하지 않고 '봉쇄'해버리면 된다.
나노하와 페이트, 하야테, 볼켄리터들과 유노, 알프, 크로노의 힘으로 방어프로그램의 몸을 파괴하고, 아르캉시엘로 코어를 완전히 날린다.
그리고 다시 재생하려는 코어를, 세이가 「통곡환」으로 봉인했다.
수권오의 「통곡환」.
대지와 분노의 권마 마크, 하늘과 증오의 권마 카타, 바다와 질투의 권마 라게크. 이 세 권마가 만들어낸 비전으로, 그들은 이 기술로 마스터 샤프를 비롯한 칠권성을 봉인했었고, 칠권성들의 생명을 뽑아내 '결정'으로 만들어, 그것을 마크가 먹고는 자신의 힘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이 비전은 혼자서 쓰는 기술이 아니다. 마크와 카타, 라게크가 각자의 역할과 수인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요컨대 '삼인용'이라는 것.
덕분에 4년 전에 썼던 것은 불완전판이 되버렸고, 그 결과 2년 전에 한번 봉인이 풀리고 말았다.
다행히 그때쯤에는 1인용으로 개량을 해놔서 다행이었지 안그랬으면 세계 하나를 멸망시킬 뻔했다.
"너에게는 지극히 감사하고 있다. 하야테 주인도, 볼켄리터들도, 그리고 나도. 네가 그때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주인의 옆에 있지도 못했을테니까."
"그다지. 감사할 필요없는데."
그때도 이야기했던 거지만, 그녀들을 구해준 것은 그다지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다.
하야테를 도운 것도, 린포스를 계속 하야테와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했던 것도.
─세이의 머리속에, 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황의 권사 란, 청의 권사 레츠… 그리고 적의 권사 쟝.
그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지키기 위해서 싸웠고, 지키기 위해서 강해졌다.
오직 '힘'만을 원하고, 약자들을 밟고 그것을 먹어치워 강해진 자신과는 정반대로.
오로지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그 세사람은, 그가─ 리오가 쓰러트리지 못한 무간룡마저 타도했다.
그들에게 물들었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그것에 감화되어 자신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노하들과 함께 싸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신에게 어째서 '리오'의 기억이 남아있는건가.
그는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했고, 생각했고, 생각해서… 하나의 해답에 도달했다.
─그의 '죄'를 씻어내기에, 고작 1회 목숨을 버리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죽게 돼… 강해지지 않으면… '녀석'에게, 당해버려… '녀석'보다… 강하게…!!'
폭우가 쏟아지는 밤.
대조적으로 불타버린 숲 속.
마찬가지로 불타버린 가족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힘을 원했다.
그러나 가족의 복수같은 것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절대적인 '힘'과, 무한한 '악의'와 무방비로 마주한 소년은, 그 공포에 완전히 집어삼켜져 있었으니까.
가족의 복수보다도, 그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이 몇백배는 강했으니까.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그 현장에 달려온 격수권의 마스터 샤프는, 가까스로 한 소년을 구하는데에 성공했다.
샤프는 그 아이를 제자로 맞아들이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격수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아이… 리오의 갈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말했듯이, 리오는 가족들을 불태운 '금색의 괴물'에게 극도의 공포를 품고 있었다.
그 공포를 이겨내는데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라는 눈에 띄는 증거.
하지만 본래 온건한 축에 속하는 격수권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느 사이엔가 강해져 있었다'라는 식으로 결과가 늦게 나타난다.
초조함에 휩싸인 리오가 그런 격수권으로 만족할 리 없었고, 결국 임수권에 손을 대는 계기가 된다.
임수권으로 돌아선 그는 그때까지 자신을 키워준 스승을 배신했고.
한번이지만 친구를 죽였고.
또한 사형을 그 손으로 살해했다.
임수전을 부활시키고, 삼권마를 되살려 끝났을 터인 격임의 대란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사룡의 뜻대로 조종되었다고는 해도, 「환수왕」이 되어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어리석었기 때문.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약했기 때문.
그 죄를, 겨우 한번 죽는 걸로 갚으려고 했다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물러도 너무나도 물렀다.
아아, 그렇다.
자신은 그녀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으로.
원래라면 부숴버려야할 '악'을 구하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구원받으려 하고 있다.
그것이 정말로 해결책인지는 모른다.
그것이 정말로 올바른 일인가도 알 수 없다.
그것으로 정말로 자신이 변할 수 있는가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없는, '싸움'이외의 가치라곤 조금도 없는, 쓸모없기 그지없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싸우자.
그녀들을 위해서 싸울 힘이 있는 한.
그녀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목숨이 있는 한.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녀석들이 강해지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되지.'
그래서 나노하에게는 격기를, 페이트에게는 임기를 낼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수권은 주지 않았지만.
타인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싸우는 나노하.
그런 나노하에게, '용기'와 '올바른 마음'을 힘의 근원으로 하는 격기는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품고 있는 콤플렉스와, 자신이 지은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 싸우는 페이트.
어느 의미로 세이와 비슷한 그녀에게는 '어두운 감정'을 힘으로 바꾸는 임기는 더할 나위없는 무기가 되었다.
'기'를 내는 법을 가르쳐주고, 4년이 경과한 지금.
수행은 순조로웠고, 나노하는 과격기를 그리고 페이트는 노임기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세이에게 있어서도 예상외의 결과였다.
노임기의 경우, 4천년 전 마크가 딱 한번 성공했고 이후 리오와 메레만이 노임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
과격기는 리오의 사형인 '백호의 남자' 단… 그리고 그 아들인 쟝과 그 동료인 레츠와 란을 포함하여 총 4인만이 성공했다.
4천년의 역사 속에서 기껏해야 7명이 도달했을 뿐인 전설의 경지. 그것이 과격기와 노임기인데, 설마 이렇게 빨리 닿을 줄은.
'뭐, 수행 시작한지 반년도 안되서 과격기를 깨운 쟝 같은 케이스도 있으니 놀랄 것도 없지만.'
자신의 라이벌을 떠올리며, 세이는 소리없이 웃었다.
확실히 신기한 일이다. '그 녀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니까.
"드문 일이군. 네가 혼자 있으면서 웃는 건."
린포스가 뒤에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누구 생각을 하고 있었던거지?"
물론 칸도 쟝에 대한 생각이다.
격수 타이거권의 권사이고, '백호의 남자' 단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자─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통틀어 단 하나뿐인 호적수.
─남에게 그를 이야기하려면 뭐라고 해야할까.
일단, 「친구」는 아니다. 절대로.
애초에 그 동안 계속 적이었고, 같이 싸운 전투라곤 딱 세 번. 명공부인지 뭔지하는 싸구려 권법으로 날뛰던 영감을 박살냈을 때와 라게크의 비전임기로 과거로 튕겨져 날아갔을 때, 그리고 론을 상대로 싸울 때. 그나마 그 중 두번은 말그대로 오월동주의 관계로 싸웠으니.
역시 쟝에 대해 칭하려면 '라이벌' 이외의 단어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린포스가, 뒤에서부터 안겨왔다.
"나를 생각하면서 웃었다면, 기분좋겠는데."
"… 관둬. 안어울려. 당신한테도, 나한테도."
"흐음, 나로서는 진심이지만?"
작게 혀를 차고 그녀의 팔을 풀기 위해 손을 올린다.
………………… 안 풀려?!
손을 대보고 안 건데, 상당히 강한 힘이 실려있다. 물론 임기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보통 어른이 상대라면 10명과 싸운대도 질 리가 없지만, 겨우 그 정도론 린포스에게는 이야기거리도 못된다. 어쨌거나 이 여자, 기본 신체 스펙도 엄청나니까.
"… 이거 좀 풀지?"
"그다지. 좋은데, 이대로도."
"나는 불편해. 그러니까 비켜."
"네가 불편하다고 해도, 내가 좋으니까 그 의견은 각하하도록 하지."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 뭔가 이상했다.
아리시아도 그렇고,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반응이 너무 과하잖아.
마치 예전의 메레같은─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분명 린포스는 의외로 따뜻하니까 지금처럼 안겨있으면 추울 일이 없는데.
딱딱하게 고개를 뒤로 돌린다.
… 그곳에는 과격기를 무한정으로 뿜어내고 있는 나노하와 노임기를 여과없이 표출하고 있는 페이트가 서 있었습니다.
"…… 린포스씨, 지금 뭐하는 걸까?"
"……(말없이 바르디슈를 들어올리고 있다)"
"보다시피. 안고 있는 거지만?"
"그걸 물은 게 아닌데요. 역시 린포스씨하곤 이거저거 이야기할 게 많은 거 같아요."
"이해했다. 요컨대, '해보자' 이거군."
린포스는 세이를 놔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금 이 상황을 이해못하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세이 혼자.
"시그넘, 비타. 도와라."
"… 죄송합니다만, 아인(1). 심정적으론 저희들도 그녀들과 같은 생각이라."
"가능하면 빠지고 싶은데. 조건부로는 끼어들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그녀들치고는)정중하게 했지만, 이미 적의가 뚝뚝 묻어나고 있다.
그녀들이 말하는 조건부란, "린포스도 때릴 수 있는 배틀로얄로 한다"는 이야기.
게다가 저쪽에서 이쪽을 보고 있던 하야테도 어쩐지 기색이 나빠져서는 다가왔다.
"잠깐만, 잠깐만. 그기 무신 소리고. 난 도서실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한눈에 갔는디?"
"죄송합니다만 주인 하야테. 저는 그에게 '존재'를 구원받았습니다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야! 다섯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 지내왔는걸!"
"세이가 이쪽으로 온 건 나 때문이니까,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같은 무인으로서 같은 전장에 설 수 있는 내 쪽이 더 어울린다고─"
"에이, 시끄러워!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는건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 상황을 '난장판' 이외에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 이 상황의 원인인 세이는 리오 시절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생도 현생도 '연애'라던가 '사랑'이라던가 하고는 10만 광년쯤 떨어진 인생들이었다. 격수권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에는 사형인 칸도 단의 뒤를 쫓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
그나마 그 바쁜 수행 중에 만든 친구라곤 동문인 고우와 미키 정도. 그 중 딱 한명의 여성이었던 미키는 이미 상대가 있었는데다 리오나 고우와 하도 서로 험한 꼴 많이 보인 사이다보니 새삼 연애감정 따위가 생길 리 없다.
임수권으로 전향한 이후에는 한층 더 심했다. 그때는 오로지 '강해진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세이로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수권을 연마하는데 급급했으니 이성에 대한 관심따윌 가질 여지도 없었지.
돌이켜보면, 오로지 싸움 뿐인 인생이었다. 그것도 작은 싸움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특대급으로만.
그나마 가장 가까이 접근해온 여성이라면 임수 카멜레온권의 린린시 메레가 있겠지만, 그녀와도 뭔가 있기도 전에 둘 다 죽어버렸으니.
그것을 새삼 떠올린 세이는, 남몰래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그녀 없는 인생 40년이라… 생각해보니 비참하군."
뒤나 좀 돌아보고 이야기해라, 꼬맹아.
~현재. 기동 6과 기숙사~
"… 얜 뭐야?"
초청을 받아 기숙사에 놀러온 세이는 나노하와 페이트가 데리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 비비오. 이 사람이 '세이 파파'야. 인사해."
"…… 안녕."
"아, 안녀… 라고 하기 전에, 나 지금 이야기 못따라가겠는데. 누가 설명 좀 해줘."
간신히 페이트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노하가 그 아이를 맡고, 페이트는 보호자로서 두 사람을 돌본다 라고 하는 것을.
"그건 알겠는데, 왜 내가 '파파'가 되는거지?"
"엄마가 둘이라도 아빠 역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것도 알겠어. 하지만 왜 내가? 난 여기 자주 오지도 않잖아. 다른 녀석들도 얼마든지 있을텐데."
"아, 안되요. 그걸 할만한 다른 사람들도 여기 자주 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까."
"자피라는─"
"논외."
불쌍한 녀석.
세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비비오는 나노하의 뒤에 숨어서 힐끔힐끔 세이를 보고 있을 뿐 다가오진 않고 있었다.
"자, 비비오?"
"……"
"관둬. 애들이 나 싫어하는 건 너희들도 알잖아."
리오 시절에 비해 농도가 옅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임기는 '사악'의 기다. 아이들의 경우, 그 정체는 모른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세이에게 섣불리 다가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함께 놀았던 것도 나노하와 스즈카, 아리사 뿐이었지.
─하지만 비비오는 세이의 예상을 깨버리고, 머뭇거리면서도 다가왔다.
이렇게 되면 당황하는 건 세이 쪽이 된다.
비비오보다도 쭈뼛거리면서, 그녀를 안아올린다.
─나중에 이 일이 린포스와 볼켄리터에게 들통나 정말로 목이 잘릴 뻔했다는 건, 나중의 이야기.
"쟤들이야? 너희가 가르치는 애들이."
"응. 이제 B랭크지만, 소질은 넘치니까."
"… 하나하나 키워서 어느 세월에 써먹으려고."
"그러니까 세이 군을 부른 거잖아? 단시간에 강하게 만드는 거 잘 하니까."
과연, 그런 속셈이었던가. 확실히 저 녀석들, 의욕은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지금 나노하의 말에는 크나큰 오류가 하나 있다.
"하지만 내가 왜 쟤들을 가르쳐야 하는지는 눈꼽만큼도 모르겠는데."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불러올 사람이 가르칠 생각없는데 아무리 배우는 사람의 의욕이 있으면 뭘 하나.
이때, 비타가 찰싹하고 세이의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하나하나 시끄럽네, 너. 모처럼 도와달라고 불렀는데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 쟤들이 강해지면 우리도 편해진다구."
"이런 일로 부른 건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
비타는 세이의 어깨에 목마처럼 올려탄 채로, 볼을 잡아 늘렸다.
비비오가 그것을 보고 엄청나게 웃어댔다는 건 둘째치고, 어쨌거나 비타는 그 상태로 말했다.
"해."
"싫어."
"하라면 해."
"내가 총 맞은 것도 아닌데 그런 짓을 왜."
"우린 사람 두들기는 건 잘해도 누구 가르치는 건 잘 못하거든. 그래서 일단 '닥치고 두들기고' 있는데 마침 네가 생각났지 뭐야. 너, 나노하랑 페이트에 자피라한테도 동물주먹인지 뭔지 가르쳤다면서."
"… 유노랑 크로노한테도 기본 정돈 가르쳤지."
"그럼 쟤들 가르치는 정돈 쉬울 거 아냐. 본격적으로 가르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몸 잘 굴리고 살아남는 법만이라도."
"…… 그건 너희라도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왜─"
결국 비타는 그라프 아이젠까지 꺼내들었고, 어느 사이엔가 소리없이 다가온 시그넘이 뒤에서 레반틴을 들이댔다.
"그냥 해라, 세이. 자꾸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그래, 그래. 우리가 잘못 때리면 쟤들 죽는단 말야. 너 그거 잘하잖아. '흔적 안남게 때리는' 거."
"………………………………………………………………………………………………… 후우."
─세이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기동 6과의 스카웃 제의도 거절했는데 이것마저 거절할 명분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대장진들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조금이라도 자주 세이를 볼 수 있게 하자」작전은 성공으로 끝났다.
~모의전~
세이가 나노하들로부터 부탁(협박)을 받고, 6과의 신인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한 지 3일 째.
처음에는 전혀 내키지 않는 태도였지만, 의외로 신인들이 '원석'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우와아아아앗?!"
"전혀 맞질 않잖아?!"
"빨라…! 빨라도 너무 빨라!"
… 신나게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바루와 에리오의 경우, '근접전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티아나와 캐로의 배는 괴롭혀지고 있었다.
"다리쪽이 비었어."
"으앗?!"
스바루의 주먹을 받아낸 후, 그녀의 다리를 주저않고 임기 열축권으로 걷어차서 날렸다. 물론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고 그 직후에 에리오가 스트라다를 뻗어 빠른 속도로 접근해온다.
지금까지 봐온 세이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죽지는 않을터.
─그러나 스트라다는 세이의 몸을 '관통'해버린다.
"에?!"
에리오가 순간적으로 굳어버려 움직임을 멈춘 사이, 뒤로 돌면서 백 핸드 블로우로 에리오의 관자놀이를 때린다.
피할 틈도 없이 직격으로 얻어맞은 에리오는 날려가서 건물의 벽에 부딪힌다.
"함부로 뛰어오르지 마.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워지니까."
「임수 젤리권」.
바다의 권마 라게크의 힘으로, 몸을 일시적으로 부정형의 것으로 바꿔 상대의 모든 공격을 흘려버리는 기술.
요컨대 지금 에리오가 한 것은 창으로 물을 찌른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세이의 전투 방식 자체가 근접전 위주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까도 말했듯이 가장 많이 괴롭혀지는 건 이 둘이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라고 괴롭혀지지 않는 건 아니다.
"「비상권」!"
세이의 손에서, 짐승의 발톱 모양을 한 단도들이 '만들어'지고 티아나와 캐로를 향해 날아간다. 단도 투척인데 어째서 '권'인지는 따지지 말자.
"까아아악?!"
두 사람의 손에 쥐어진 디바이스가 방어벽을 뚫고 들어온 단도들에 연속으로 두들겨진다.
결국 디바이스를 놓쳐버리고, 두 사람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리고… 세이의 공격은 그 두 사람에게도 용서없이 떨어진다.
"임수 라이온권 임기 「사자포효파」!!"
사자의 머리 모양을 한 기탄(氣彈)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는데엔 성공했지만, 건물의 파편이 그녀들의 몸을 두들겨 결국 데미지를 받고 말았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간단한 견제기에도 발목을 잡히는 거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애초에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이는 다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소질은 있다. 비록 눈을 가리고 폐활량을 줄여 뛰지 못하는 몸으로 만든데다 격기와 임기의 방출량까지 극도로 낮춰, 리미터가 걸린 나노하에게도 이기지 못할만큼 능력을 낮췄다곤 하지만 설마 지금까지 버틸 거라고는.
그럼─
"강도를 좀 높여도 죽진 않겠지."
─당사자들에게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소리를 하며, 세이는 힘을 아주 약간 더 올렸다.
"강했지, 정말로…"
"응. 나노하 씨나 페이트 씨도 강했지만… 세이 씨는 진짜 귀신같은 느낌이야."
티아나의 푸념대로, 아무리 세이가 봐주고 있다고 해도 위압감만은 그대로였다. 세이 자신이 "내 기에 버틸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누가 상대가 되더라도 쉽게 기 죽는 일 없을테니까."라는 이유로 위압감은 거두지 않은 결과.
하지만 이 훈련의 단점은 실력은 안 늘고 쓸데없이 간만 커질 경우에 큰일나기 쉽다는 데에 있다. 상대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니까. 물론 지금 세이가 하는 훈련은 실력도 같이 오르니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역시 나노하 씨의 친구야… 말도 못하게 강해."
"그러고보니 페이트 씨나 하야테 씨, 부대장님들하고도 아는 사이 같던데요."
"실력이 검증된 상태니까 우리들의 훈련을 맡고 있는 거겠지."
"정말이야. 처음에는 외부인이 훈련을 맡는다는 거에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쌓이는 경험치 면에서는 나노하보다 세이 쪽이 훨씬 높다.
나노하가 슬슬 놀면서 상대해주는 식이라면, 세이는 일부러 자기 능력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 한도 내에서 인정사정없이 상대해주니까.
"하여간, 고통은 큰데 데미지는 없는 곳만 골라서 치다니… 정말로 귀신이라니까."
"누가 뭐라고?"
말을 했던 티아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딱 굳어버린다.
불쌍할 정도로 얼어버린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세이가 서 있었다.
이 일을 어찌할까나.
티아나를 제외한 세 사람의 머리속을 스친 생각이다.
세이가 한발짝 가까워질 때마다, 세 사람은 티아나로부터 한발짝씩 멀어졌다.
마침내 세이가 티아나의 앞에 도착했을 무렵엔, 티아나의 얼굴은─── 언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이는………………………………………………………………… 그대로 티아나를 지나쳐서, 입구로 향했다.
"오늘 피로는 확실하게 풀어두는게 좋아. 따뜻한 물에 목까지 담궈서 목욕하면 효과가 있을거고. 급소는 피해서 쳤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제대로 검사받아둬. 성격은 좀 괴팍해도, 샤멀은 믿을 수 있으니까."
"…… 네?"
티아나의 얼빠진 대답에, 세이는 고개만 살짝 뒤로 돌렸다.
─그 얼굴에 있는 감정은, 틀림없이 '의아함'이라는 물건이었다.
"… 묻고 싶은데, 왜 그렇게 겁먹고 있는거야?"
"아, 그─"
"전공이랄까, '그쪽' 계열의 감정에는 민감하거든. 그러니까…"
몸을 돌리고, 티아나에게 가까워진다.
그녀와 눈을 마주하자, 티아나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졌지만 어차피 그런 걸 눈치챌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 확실하네. 이 '공포'는 나를 향하고 있는데. 내가 뭔가 실수라도?"
"아니, 그러니까…"
"훈련 중에는 나도 확실하 과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힘을 마음놓고 발휘해본 건 오랜만이라, 그만 텐션이 올라버렸어. 그것때문이라면, 사과하지. 다음부터 훈련할 땐 주의할테니까."
그런 문제가 아닌데요.
티아나가 뭐라고 말도 못하고 뻐끔거릴 무렵, 스바루가 뒤에서 끼어들었다.
"그런게 아니라… 아까 티아나가 말실수를 조금 해서요."
이 바보가! 못들은 것 같은데 그걸 말해버리면 어떡해?!
티아나가 속으로 절규할 무렵, 그제서야 세이가 그것을 입에 담았다.
"아아. '귀신'이라고 한 거 말이군."
나왔다.
"그… 죄송합니다!"
일단 고개를 숙이며 사과부터 했다. 설마 죽이진 않겠지.
"아니, 신경안쓰니까 상관없는데."
"…… 네?"
"말했잖아. 훈련하다보니 '들떠'버렸다고. 자기가 한 짓 정도는 자각하고 있어. 그게 귀신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는 것도."
이것이, 리오와 시시오 세이의 가장 큰 차이점.
리오보다는 훨씬 솔직해졌다.
"그럼, 난 이만 간다. 내일 보자고."
그 말만을 남기고, 세이는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굳어있던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리오였다.
"… 좋은 사람이네요."
"… 응. 무섭지만."
스바루들이 세이에게 훈련을 받기 시작한지, 약 일주일이 흘렀다.
"저기, 세이 씨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건가요?"
어느 정도 세이를 대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됐을 무렵.
기동 6과 전원이 단체로 식당에서 식사를 할 당시, 스바루가 그렇게 물었다.
"그 수권이라는 거… 마법은 아닌데 엄청 강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훈련하는거죠?"
"그건 우리들도 알고 싶은데. 생각해보면 우리들, 세이가 훈련하는 건 제대로 본 적 없으니까."
신인들은 물론이고 나노하들까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수권의 수행법을 아는 자피라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지만.
… 딱히 비밀인 것도 아니니, 말해도 상관없겠지.
"'생활 속에 수행이 있다'. 이건 내 첫번째 스승인 마스터 샤프의 가르침이지."
"그건 무슨 말이야."
"강함이란 반드시 몸을 혹사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의 작은 깨달음으로도 강함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격수권의 가르침… 이라는 거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보통은 그게 정상이겠지.
"이를테면 배를 타고 노를 저을 때라던가."
"… 그거랑, 강해지는 게 무슨 상관인가요?"
"별 도움이 안될 것 같지?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녀석은, 그 노를 저을 때의 팔 움직임을 이용한 검술을 만들어냈어. 노를 저을 때처럼, 빈틈없이 그리고 사각없이 휘두르면 그것만으로도 공방일체의 검술이 되는 거지."
"과연… 그런 식으로 하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고 설령 접근한다 하더라도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곤란하겠군."
"그런 식이야. 아무것도 아닌듯한 일상생활에서도 '강해지는 법'을 찾아내는 것. 그게 격수권의 기본이지."
다행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납득해준 것 같다.
이때 페이트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기, 그건 첫번째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거라고 했지?"
"응. 그런데?"
"그럼, 두번째 스승님도 있어?"
… 있다.
두번째 스승. 하늘의 권마 카타.
그와의 수행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있어."
"그 분은 어떤 가르침을 남겨주셨나."
… 말해도 되려나.
잠시 동안 고민하던 세이는, 결국 시그넘의 재촉에 입을 열고 말았다.
"'사투 속에야말로 수행이 있다'."
"… 뭐?"
"'스승과 제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를 죽이고, 서로의 힘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그것이 임수권 아크가타의 수행. 나를 죽일 각오로 덤비거라, 제자여. 안그러면 네가 죽게 될테니까.'"
"……"
"그 직후에 내 목을 붙잡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떨어뜨려버리더라. 임기개장 안했으면 추락사 했을거야."
"……"
"그러고보면 '암흑포'도 원래는 그 양반 기술이었지. 상대를 절망의 악몽에 빠트리고 그 공포와 절망을 흡수해 자기 힘으로 바꾸는 기술."
"……"
"나야 그때 겪은 절망을 내가 먹어치우고 내 힘으로 바꿔서 카타한테 반격했고, 강용충타로 내장을 엉망으로 만들어줘서 살았지만."
"……"
"그때부턴 진짜로 카타가 나를 제자로 받아줬고, 제대로 된 수행에 들어갔지. 그것도 참 위험했어."
"……"
"증오의 덩어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힘으로 바꾸는 수련. 받아들일 때까지는 증오에 미쳐서 주변을 부수게 되고, 못받아들이면 정신이 붕괴되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수련이었지. 그 수련한 사람 중 절반이 죽었지, 아마. 그리고─"
"… 미안하다. 쓸데없는 걸 물었군. 더이상 말해주지 않아도 돼."
"에? 어째서?"
아직 라게크의 나봉장악 수련과 마크의 '너 그냥 죽어라' 수련이 남아있는데.
하지만 시그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 안색이 새파랗게 된 걸 보고 거기서 끝냈다.
[인터루드]
"… 그런 짓을 해댔으니 강한 게 당연하잖아."
"뭐랄까… 나 지금 세이 군의 불사신같은 힘의 근원을 본 것 같은 기분이야."
세이가 가장 먼저 식사를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식욕이 뚝 떨어진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늘어졌다.
"하지만… 정말로 신기하네."
"하야테 짱? 뭐가 말야?"
"그런 수련을 하고도 살아남았다면 강한 거야 납득되지만… 용케도 아가 안 삐뚤어졌다이가."
"… 아."
그랬다.
비록 틱틱거리고 비협조적인데다 간혹 혹평을 할 때도 있지만…
그는 분명히 자신들을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도와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다.
세이 자신은 그녀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쪽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렇게나 강한 주제에 의외의 곳에서 순진하고.
싸움에 관한 센스는 엄청나면서 눈치는 없고.
솔직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상냥한.
그런 '어린 사자'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인터루드 아웃]
이곳은, 어느 멸망해버린 세계.
물과 대지와 하늘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땅.
시공관리국 지상 부대의 수색대는, 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딱 한가지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먹보다도 작은 크기의, 용의 각인이 새겨진 금색 구슬.
아니, 정정하겠다. '용의 각인'을 새겨놓은 것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용을 공 모양으로 말아서 압축시켜놓으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할 정도로 입체적인 모양이었으니까.
지상부대는 그 구슬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그것에 마법적인 처치를 가했다.
─그것이, 파국의 시작이 된다는 것도 모르고서.
금색의 구슬이 열리고.
그 안에서, '재앙'이 뛰쳐나왔다.
[이것인가… 내가 그토록 바랬던 광경이.]
'금색의 남자'는 멸망해버린 세계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치, 지금의 이 세계를 환영하듯이.
[조용하고 멋진 공간이잖나. 아아, 그때 그 계획만 성공했더라면 진작에 이렇게 됐을텐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
[… 하긴, 이미 2천만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뭘 하겠느냐만은.]
그의 이름은 카린, 혹은 론이라고 칭해진다.
그러나 그 진짜 정체는, 금색의 「무간룡」.
머나먼, 실로 머나먼 옛날부터 어떨 때는 이끌어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현혹시키기도 하며.
인간들을 조종해, 그들을 희롱해온 존재.
이 세계의 동양에 전해내려오는 용, 혹은 서양에 전해내려오는 드래곤.
그것은 전부, 이 「금색의 괴물」을 달리 부르는 말.
[그러고보니 이 자들,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했겠다.]
산산조각이 난 채, 발치에 나뒹구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이미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사라져버렸다.
더이상 자신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터.
─그는 이제부터, 또다시 불로불사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 지옥같은 '평온함'이 반복될지도 모르는 삶.
그런 상황에서,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았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론은 자신의 손에 죽은 인간들의 기억을 읽고, 그들의 힘을 빌려 다른 세상으로 넘어갔다.
그 세계의 이름은, 미드칠더.
시공관리국이 파악하고 있는 모든 시공을 통틀어.
최고로 위험한 이 드래곤이.
마찬가지로 시공관리국이 지정한 최고로 위험한 범죄자, 제일 스칼리에티와 조우한 것은 그로부터 몇일 뒤의 일이었다.
──────────────────────권무 편 전반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