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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R.K


원작 | ,

2화



조금 전까진 틀림없이 낮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반전하여, 지금은 초승달이 뜬 밤이 되버렸다.
… 그랬다. '어느 순간',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것'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명의 인간.
키가 조금 크고, 눈매가 약간 날카로운 걸 제외하면 아직까지도 어린 티를 그다지 벗지 못한 열 여섯, 열 일곱 쯤 되어보이는 소년.
입고 있는 것은 새카만 옷으로, 그 형태를 본다면 어딘가의 교복같다. 굳이 또다른 특색을 찾자면, 왼손에만 착용되어 있는 가죽 장갑 정도일까.
어딜 어떻게 봐도, 그렇게 특이하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괴물"인지.
무의식 중에 뒷걸음질을 치지만, 도망갈 곳은 없다. 아니, 이미 저 자안(紫眼)에 포착되어버린 이상 도망칠 수도 없다. 도망치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그 영혼마저도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된다.

"판가이어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린 자."

마침내 소년이 입을 열었다.
변성기를 지났음에도, 맑고 청량한 목소리.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좋을, 그런 울림.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왕으로서의 판결을 내린다."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리고, 그 손가락 끝의 장갑을 가볍게 문다.
천천히 손을 잡아당기자, 입술에 붙잡혀있는 장갑에서부터 손이 빠져나왔다.

그 손등에 새겨져 있는 것은 왕의 문장.
여기에 있는 이 소년이야말로.
이 세계 최강의 생명체, 「판가이어」의 정점.
모든 판가이어들의 위에 선 자이자, 모든 판가이어들의 위에 군림하는 자.

─판가이어의 왕. 체크메이트 포의 지배자 ​「​킹​(​K​I​N​G​)​」​.​

"죽어라."

왕의 몸을 은백의 갑주가 둘러싼다.
그리고 그 손에는 가느다란 붉은 검신의 검이 쥐어지고, 그 검은 핏빛의 섬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커다란 공포.
도망쳐도 소용없다, 라고 하는 사실은 더이상 그의 발을 붙잡지 못했다.
몸을 돌려서 도망친다. 태어나서 이렇게 빨리 움직여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그보다 한발 먼저, 왕이 내지른 붉은 검에서 나온 핏빛 섬광이 그의 목을 뒤에서 꿰뚫는다.
이렇게 목을 꿰어졌다고 해도, 곧바로 죽지는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무서운 일이지만.
왕의 "사형"은 이제부터다.

칠흑처럼 어두워진 하늘에, 왕의 문양이 생겨난다.
박쥐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려는 듯한 붉은 빛의 문양.
왕은 높이 뛰어올라, 그 문양을 통과하고는 지면에 내려선다.

검에서부터 뻗어져, 표적의 목을 꿰뚫고 있던 붉은 빛줄기는 문양에 걸쳐져 더욱 늘어난다.
지면에 내려선 왕이, 표적에게서 등을 돌린 채 검을 잡아당긴다. 그 순간 빛줄기에 목이 꿰여져있던 표적의 몸이 들려진다.

─교수대에 매달린 사형수처럼.

아니, 실제로도 사형수다. 이곳은 왕의 처형 집행장이니까.
사형수는 목을 꿰뚫은 붉은 빛줄기를 붙잡고 바둥거린다. 그러나 절대적인 왕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 빛이, 일개 판가이어의 힘으로 풀릴 리가 없다.
왕은 검의 폼멜에 손가락을 겹치고, 그대로 내리긋는다.
그것과 함께 붉은 빛줄기는 도르래처럼 말려올라가며 회수되어, 왕의 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껏 꿰뚫려있던 사형수의 몸은 산산히 터져서 흩어진다.

남은 것은 성당의 글래스와도 같은 파편들 뿐.
판가이어의 육체는 사멸할 때 유리처럼 깨져나가며, 주변에 파편을 흩뿌린다.
그 형형색색의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킹은 그 사이를 걸어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조금 전 동족 하나를 죽인 일조차,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실제로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에게 이 '처형'은 일상이니까.

 


​D&​P​(​디​벨​롭​먼​트&​파​이​오​니​아​)​.​
요 근래에 들어 갑작스럽게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초대형 투자회사의 이름이다.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사업이나 연구, 발명에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며, D&P의 투자를 받는 연구가들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유명한 회사.
놀라운 것은 사장이 이제 겨우 약관이 되었을까 말까한 젊은 청년─ 이라기보다 소년이라는 것으로, TV에도 여러번 나왔고 외국의 높은 장관이나 대통령과도 사진을 찍은 적이 많다.
혹시 단순한 얼굴 마담이고 진짜 사장은 따로 있지 않느냐, 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적어도 그 소년 사장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가볍게 부정했다.
육중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위압감을 내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소년은 진짜다"라고 하는… 말을 거는 것조차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 될 것 같은 "강렬한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그를 직접 대면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것만은 직접 만나보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라고.

그리고 그 소문의 소년 사장 “아리카도 타이가”는 오늘도 변함없이 도장을 찍고 있다.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합격, 불합격, 불합격, 합격, 불합격…"

투자 회사라고는 하지만 아무에게나 다 투자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올라온 프로필과 자료들 중에서 훓어내고, 그들을 직접 만나 이 연구가 과연 정말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 판단한다. 이 일은 타이가가 직접 하는 일로서, D&P가 투자하는 연구들은 전부 타이가가 결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요컨대, "앞으로 성공하게 될 연구인지 아니면 그냥 공상으로 끝나고 말 연구인지" 판단하는 것도 타이가의 몫으로, 그 안목도 대단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사실은 좀 다르지만, 대외적으로 그렇게 알려져있으면 편하기 때문에 내버려두고 있다.

D&P가 자신에게 투자해주길 바라는 연구가는 발길에 채일만큼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로 가망이 있는 것"을 추려내지 않으면 그저 돈먹는 블랙홀이 될 뿐이라 이 작업은 귀찮고 힘들지만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작업이다.

… 라고 하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

D&P의 진짜 "일"은 투자가 결정된 그 다음에 있다.

"비숍."
"예."

지금까지 타이가 혼자였던 방에, 느닷없이 한 남자가 나타났다.
다소 여윈, 안경을 쓴 신부. 그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성경이 아니지만, 적어도 복장과 분위기는 그렇다.
타이가는 비숍이라고 불린 신부에게 지금껏 작성하고 있던 서류를 넘겼다.

"전부 4명. 오늘 안에."
"직접 만나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그런 발상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판가이어에겐 위험이다."

D&P의 사장 겸 대표 이사 아리카도 타이가.
그의 또다른 ​이​름​은​─​─​─​─​─​─​─​─​ 판가이어의 「킹」.

 


판가이어는 인간과 다른 이형의 생물이다.
그들은 전 세계에 퍼져있지만, 그 수는 인간과 비교했을 때 빈말로도 많다고는 할 수 없다. 많아봤자 만 단위일까.
그리고 그 판가이어들을 하나로 묶는 상위 판가이어 네명. 그것을 「체크메이트 포」라고 부른다.

<​루​크><​비​숍><​퀸>​ 그리고 <​킹>​.​

루크의 역할은 "인간을 제외하고 판가이어에 적대하는 모든 종족의 배제". 그렇기 때문에 루크의 자리에는 "킹"을 제외하고서 '최강의 판가이어'만이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판가이어에게 적대하고 있던 울펜, 머맨, 프랑켄을 비롯한 몬스터족들은 루크 하나에게 몰살당했다고 한다. 한두사람 정도는 어떻게 살아서 도망쳤을지 모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들의 종족이 전멸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숍의 역할은 "킹을 보좌함과 동시에 모든 판가이어의 감시". 판가이어들을 감시하면서,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움직이는지,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본다.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날만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최종적으로 비숍은 같은 판가이어들 중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자를 킹이나 퀸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여의치 않을 때에는 직접 손을 쓸 때도 있지만.

퀸의 역할은 "판가이어로서의 본분을 잊고 인간과 사랑에 빠진 판가이어의 제거". 소수 종족이라고 할 수 있는 판가이어지만, 그 중에는 인간을 좋아하게 되는 판가이어도 많진 않지만 없는 건 아니다. 판가이어의 입장에서 "가축"에 지나지 않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비숍은 그것을 찾아내 퀸에게 보고하고, 퀸은 그 판가이어를 숙청하는 일을 한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킹의 역할은 "판가이어에게 위협이 되거나 인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간의 제거". 분명 판가이어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빠르고, 강하며, 지능도 높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판가이어는 소수의 종족이며, 킹은 판가이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발전한다는 것은 곧 판가이어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일족을 지켜야할 왕으로서는 최우선의 제거 대상.
일부러 투자회사따윌 만들고 운영하는 번거로운 짓을 하는 것도, "인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나 발명"을 하고 있는 인간들을 되도록 빨리, 그리고 많이 추려내어 제거하기 위한 것. 지금 골라낸 4명은 내일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 언제나의 일이야."

라고 말은 하지만, 이것은 꽤나 중노동이다. 본사는 물론이고 각 지사(물론 상층부는 전부 판가이어다)에서 올라오는 모든 종류의 보고서를 일일이 읽어보고 결재해야 하니까, 눈도 손도 쉴 틈이 없다. 게다가 반복작업이라 지루하기까지. 아무리 판가이어라곤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점심 시간부터 시작했는데, 바깥은 어느 틈엔가 해가 떨어져 어두워졌다.

"비숍."
"예."
"나갔다 오겠다."
"그러면 호위를─"
"나에게 호위따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거냐."

사실 그럴 필요따윈 없다. 비숍도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판가이어의 왕, 체크메이트 포의 정점 '킹'. 그것은, "판가이어 최강의 남자"를 달리 표현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하면 호위 판가이어의 힘 정도론 막을 수도 없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는 일도 있습니다. 이 어리석은 신하의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어둠의 키바'를 이어받아 진정한 왕이 되실 분.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단지 산책 정도로 호들갑 떨지 마라. 무엇보다 이 근처는 우리들의 영역. 싸움이 일어난다면 여기의 판가이어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잖나."

거기까지 말하고, 타이가는 밖으로 나갔다.
반박할 말도 없고 타이가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에, 비숍은 더이상 아무 말하지 않고 타이가를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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