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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R.K


원작 | ,

4화


 


"그러고보니 킹."
"… 뭐야."
"최근 외출이 잦으십니다만, 무슨 일이라도?"

아아, 왜 그 소리가 안나오는가 했다.
비숍의 말을 들은 타이가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자연히 거칠어졌다.

"누가 킹이냐."
"…… 예?"
"누가 킹이고 누가 주인이냐고 물었다."

단순히 "충성심"에서 물었을 뿐인 비숍은 당황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 세상 모든 판가이어의 주인도, 이 세상 위에 군림할 '킹'도, 당신이십니다."
"그런데 왜 내가 네놈에게 추궁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그,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것이─"
"내가 그런 것까지 네놈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다녀야 한다는 거냐."
"…………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닥치고 있어."

겨우 일주일에 3일 정도이건만, 그걸 가지고 이렇게 시끄럽게 굴다니.
타이가가 생각할 때, 자신이 그 정도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문제될 것따윈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다른 4일 동안은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회사 일에 매달려있고. 그런데도 저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비숍이 곱게 여겨질 리 없다.

하지만, 비숍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얼마든지 있다.

'확실히… 변하셨다.'

여전히 냉혹하고, 여전히 무자비한 "절대의 왕". 그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무언가가 변했다.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불과 1년 전만해도, 타이가는 "폭군"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존재였다. 대적하는 인간은 물론이고 같은 판가이어들조차 무자비하게 학살해가며, 자신의 지배를 확고히 하는 철권 통치를 휘둘렀던. 그의 검을 피해갈 수 있는 건 그와 마찬가지로 판가이어들을 이끌어나가는 입장인 체크메이트 포의 다른 세 사람 뿐이었다(이 중 퀸은 타이가와 면식도 없었지만).
인간의 분수로 판가이어에 대적하고 있는 IX(이크사)와 창공회가 아직까지 살아남아있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타이가가 아직 그들과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 비숍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조만간 타이가는 그 압도적인 힘으로 판가이어의 적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이 세상을 판가이어들의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금기를 깨고 인간과 접촉한 판가이어.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족의 발전에 기여하는 자. 둘 모두, 타이가가 없애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가는 최근, 그런 판가이어도 인간도 죽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1년 정도 전. 그때부터 서서히 판가이어와 인간을 죽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반년 정도 전부터는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제거 대상의 리스트라면 분명 몇번이나 작성해서 올렸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있었던 걸까.
1년 전까지만 해도, 역대 최고일거라 일컬어졌던… 나무랄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다고 여겨졌던 왕이었던 그를, 지금의 "냉정하기만 할 뿐 잔혹하지는 않는" 왕으로 바꾼 것은.
분명 무언가가 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타이가를, 그의 왕을 지금처럼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자신이 타이가를 볼 수 없는 3일 사이에 있다.

'조사하지 않으면 안되겠군.'

그 '무언가'는 왕을 더럽히고, 타락시키고 있다.
타이가는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예전처럼, 어떤 것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면 안된다. 그런 존재여야만이 판가이어의… 그리고 자신의 왕으로서 어울린다.

'미행을 붙여봤자 저 분이라면 금새 따돌린다…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없겠군.'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보나마나.'


타이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괸 채,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는 비숍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설마 자신이 그런 생각 하나 꿰뚫어보지 못할까. 유감스럽게도 타이가는 흉악하지만 또한 현명한 왕. 단순한 지능 대결만으로도 이미 비숍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다. 괜히 '역대 최고의 왕'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비숍에게는 두 가지 성가신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공간을 넘는 능력'과 '무수한 빛의 입자를 띄워 감시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비숍은 판가이어 내부의 배신자를 찾아내고, 감시하여 보고한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이걸 따돌리기란 굉장히 힘들었겠지만─

'안됐구나, 비숍. '마법'이라는 힘을 손에 넣은 지금의 나한테 사각같은 건 없으니까.'

게다가 타이가가 가는 곳은 비숍의 '눈'도 닿지 않는, 다른 세계. 감시를 붙이든 미행을 하든 거리낄 것따윈 아무것도 없다.
만약 타이가가 조금만 더 성질이 나쁜 자였다면 이렇게 비숍의 감시를 피할 궁리를 하느니 차라리 비숍의 목을 쳐버리는 쪽을 택했겠지만, 아무리 타이가라도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제일로, 비숍이 없어지면 판가이어들의 관리가 엄청나게 힘들어지고. 그렇게 되면 킹으로서 해야할 일만 늘어나니까 '저쪽'으로 가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러니까, 살려둔다. 써먹을 수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점점 타이가의 마음 속에서 저울의 기울기가 변해간다.
─어떤 것보다도 무거워야할 "킹으로서의 자신"이라고 하는 저울추.
─그렇지만 지금 그것은 반대쪽에 놓인 "타이가로서의 자신"이라고 하는 저울추보다 가벼워졌다.
─마음 속의 비중이 그렇게 역전되고 있는데도.
─냉정했던 강철의 왕은, 그것마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쟈코더로부터 뿜어져나온 붉은 빛이 사방으로 확산된다.
거미줄처럼 엮어진 붉은 빛들은, 그 자리에 있는 수많은 가제트 드론들을 동시에 꿰뚫는다.
그 다음, 사가는 위로 뛰어올라 하늘에 나타난 '킹 오브 뱀파이어'의 문장을 통과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돌리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쟈코더를 끌어내린다.

가제트 드론들의 몸을 꿰뚫은 쟈코더의 빛은, 그들을 일제히 공중에 띄워올린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에 목이 매달려진 사형수들.

본래라면 여기에서 사가는 쟈코더의 빛을 회수하며, 일제히 사형수들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한 것은 원래의 "스네이킹 데스 브레이크"와 다르다.
여기서 이어진 것은 사가크의 기계 음성.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것은 고대의 언어가 아니라─

『플라즈마 랜서』

사가의 주변에 생겨난 것은 수십개에 달하는 벼락의 창.
금색의 띠로 구속되어있는 창들은 가제트 드론들을 향해 겨누어지고, 점차 스파크를 크게 일으켜간다.

─그 구속들이 일제히 해제되자, 벼락의 창들은 가제트 드론들에게로 날아간다.
─한번 부딪혀 가제트 드론을 폭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관통해가면서 모든 가제트 드론들을 박살낸다.
─그렇게 하고 있는 벼락의 창들이, 수십.
─가제트 드론들이 모조리 꿰뚫려 폭발할 때까지는 2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스네이킹 데스 브레이크,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명칭이 터무니없이 길어졌지만, 이제와서 그런 것에 신경쓰진 않는다.
이것은 기존에 사가가 가지는 필살기에, '마법'의 힘을 더한 것.
단지 그것뿐인데도, 그 파괴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사용하는 마법에 따라서 용도도 효과도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에, 아직까지 개량과 발전의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썬더 폴』

사가가 싸우고 있는 곳 반대편에서는,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벼락줄기들이 가제트 드론들을 격파하고 있다. 주위에 있는 건물이나 도로는 조금도 부수지 않고, 오로지 가제트 드론들만을.
그것을 발견한 사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여전히 컨트롤의 섬세함은 페이트 쪽이 나보다 위인가…]

파괴력에 있어서는 마황력을 사용하는 사가 쪽이 훨씬 위. 그러나 이것만큼은 마법을 끊임없이 사용하고 단련하는 것으로 몸에 배이는 것이니까, 페이트에 비하면 마도사로서의 경력이 짧은 사가가 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타이가와 비교하면 빛이 바랜다고 해도, 페이트 역시 시공관리국 전체를 통틀어도 열명이 나올까말까한 '천재'중 한명이니까.

"역시 타이가 쪽이 먼저 끝냈네요."
[아직 멀었어. 가제트 드론 이외에 필요없는 것들까지 부숴버렸어.]
"그래도 이 숙련도는… 마법을 익히기 시작한지 1년도 안된 사람이라곤 생각이 안되는걸요."
[…… 너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 모두, '마법을 배운지 일주일만에 터무니없는 위력'을 발휘한 어떤 친구를 알고 있으니까. 그것도 유년 시절에. 타이가의 경우 페이트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듣고 몇번 만나본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번부터 느꼈던 거지만, 페이트는 가제트 드론들을 부술 때 한층 '난폭'해진다.
미묘한 차이이긴 해도 사람을 상대로 할 때와는 딴 판. 상대가 기계라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치고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적의가 굉장히 높다.

 


<약하다고? 페이트가?>
<강하게 보여도… 페이트 짱은 억지로 참고 있을 ​뿐​이​니​까​요​.>​
<…… 확실히 무리를 한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오래 전, 그녀를 '만들어준' 어머니 프레시아와 관련된 이야기.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 유감스럽게도 판가이어들 사이에 있어서는 꽤나 흔히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비극을 듣고도 타이가는 "미드칠더의 인간도 한번 죽으면 끝나는걸까. 불편하구나."라고 느꼈을 뿐이다(애초에 인간과는 감성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나, 딱 한가지.
타이가로서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모친에게 사랑받은 적이 없다.

거짓으로 새겨진 기억에 의지해, 모친을 위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싸우고 무수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그에 대한 보답따윈 돌아오지 않았다. 오로지 가학적인 폭력과 매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상대를 공격하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저지를 수 있는 것 중 가장 최악의 범죄 중 하나인 살인까지 저지를 뻔 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보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오히려 최악의 폭언과 매도를 받고 함께 버려졌다.
만약 그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소녀, 타카마치 나노하가 없었다면 완전히 망가져버린 채, 그대로 얼마 살지도 않았던 생을 스스로 끝내 버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때의 기억들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까지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

'…… 동질감, 이라.'

무슨 바보같은 생각을.
자신은 그녀와 다르다. '버림'받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은─

─────
​─​─​─​─​─​─​─​─​─​─​
​─​─​─​─​─​─​─​─​─​─​─​─​─​─​─​
​─​─​─​─​─​─​─​─​─​─​─​─​─​─​─​─​─​─​─​─​과​연​,​ 어디가 그렇게 다른걸까.

그녀는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친구', 그리고 '가족'들에게 의지하여 스스로를 지탱하고.
자신은 오로지 '판가이어의 킹'이라고 하는 지위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다.
그것에 과연 어떤 차이가 얼마나 있는걸까.

<그러니까, ​부​탁​할​게​요​.>​
<우리가 없을 때엔… 페이트 짱, ​지​켜​주​세​요​.>​
<틀림없이 앞으로도 ​무​리​해​버​릴​테​니​까​.>​

 


타이가는 얼마 전, 나노하와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그때했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면…

'… 어째서 나는 계속 이곳에 오는 걸까.'

아니, 정정.
어째서 계속 이 여자를 만나고 있는걸까.
이미 마법이라면 거의 다 해석했고, 남은 것은 혼자서 마스터할 때까지 훈련하는 것 뿐.
까놓고 말해서 미드칠더에 올 이유도, 페이트와 만나고 있을 이유도 이제는 없다.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다.

그런데도, 왜 자신은 이곳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고 있을까.

"타이가 씨?"
"어, 어?"
"… 왜 그래요? 멍하니 서서."

너를 보면서 예전 생각에 잠겨있었어.
─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는 고로,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이 근처는 말소된 거야?"
"예. 놀랄 만큼 빠른 속도네요. 다친 곳은 없나요?"

이런 고철덩어리들을 상대로는 죽여달라고 목을 들이밀지 않는 한 다치는 것도 힘들다.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서 페이트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저도 괜찮아요. 이젠… 익숙하니까."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을.
타이가는 페이트의 상태를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물론 부상이야 거의 없었지만, 체력과 마력의 소모는 이미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
페이트가 '인간'이라는 걸 ​감​안​하​면​─​타​이​가​에​게​는​ 인공마도사라고 해도 인간과 차이가 없다─ 지금 당장 쓰러져버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과거의 트라우마와, 이 가제트 드론들의 제작자인 '제일 스칼리에티'가 관련되어있다는 건 대충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다니. 확실히 나노하의 말대로, 자신이 안왔다면 어떻게 됐을지.

이제 어떡할까나.
여기부터 크라나간까지는 꽤 거리가 멀다. 거기까지 비행 마법을 쓰면서 그녀가 버틸 수 있을까.
………… 하는 수 없나. 꽤 귀찮아지겠지만, 자신은 아직 힘이 남아돌고.

─단지 그 이유다.
─멀쩡한 것은 자신 뿐이고, 이쪽이 더 빠른데다가 나노하에게 부탁까지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감정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 ?! 타이가?!?!"
"시끄러. 부상자는 입다물고 얌전히 봉사받으면 되는거야."
"그런 문제가…! 제 의사는?!"
"없어, 그딴 거. 강제집행이니까."
"아니, 그래도…!!"

그래서, 업었다. 강제로.
한참동안이나 바둥거리면서 저항했지만, 그것도 잠시. 애초에 저항할 힘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페이트로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크라나간을 향해서 걸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하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 타이가."
"응?"
"당신은…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 있나요?"
"……"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지, 어떤 심경의 변화인지는 페이트 자신도 알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이야기인데도, 어째서 지금… 그것도 하필이면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버린걸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

"나한테는 있어요."

"나노하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있을 때도…"

"과연 이게 정말로 현실인걸까."

"깨고 나면 끝나버릴 꿈이 아닐까…"

"있어야할 곳도, 해야할 일도 없는… 그때로 돌아가있는 건 아닐까…"

 


아리카도 타이가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도 오래 전부터… 자신이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있던 이야기.
자신이 있어야할 곳은 왕의 좌(座). 세상의 모든 판가이어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며, 군림하는 존재.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은 왕의 업(業). 왕으로서 판가이어의 미래를 개척하고 그에 방해되는 것들을 배제하는 존재.

그래. 그랬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지극히 반대 방향에 있는 이형의 존재.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왕으로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위협적인 적이어야 할 존재.

─그래야 할 터인데.
─자신은 지금, 이런 곳에서 이 여자와 뭘 하고 있는걸까.

'… 그만둬. 떠오르지 마.'

기껏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나버렸다.
모처럼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는데, 급속도로 기분이 나빠졌───

─무슨 소리를─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니─
─이 여자는 인간인─
─나는 판가이어의 왕─
─이미 이용 가치도 없─
─그런데 어째서 나는─
─왜 이 여자를 아직도─
─어차피 이 여자도 인─


─인간따윈, 판가이어의 먹이인데.


먹어치우는 건 간단하다.
판가이어에게 존재하는 기관인 흡명아(吸命牙)를 불러내고, 그걸 박은 다음 라이프 에너지를 빨아낸다. 그것만으로, 페이트 테스타롯사라고 하는 존재는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애초에 인간과 여기까지 관계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마법'이라고 하는 힘을 얻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를 비롯한 다른 인간들의 "멍청할 정도로 사람좋은 성격"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이용 가치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죽인다고 해도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올 일은 없다.


그것은 말하자면, '판가이어'로서의 본능.
이 여자와 계속 함께 있으면, 자신은 어딘가가 변해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타이가 본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그의 본능은 이성으로 하여금 "그녀를 죽여도 문제가 없다"라는 결론을 끌어내게 하려 하고 있다.


페이트는 타이가에게 업힌 채로 눈을 감고 있었기에 볼 수 없었다.
지금 타이가의 얼굴에는, 판가이어들이 변신하여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에 떠오르는 문신… 성당의 글래스와도 같은 그것들이 나타나있다.
그리고 서서히, 흡명아를 ​꺼​내​고​─​─​─​─​─​─​─​─​─​─​

"그래도…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

"아무리 불안하다고 해도, 아무리 두렵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

"아무리 주위의 이런저런 것들이 무거워서 짓눌려질 것 같아도…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나노하를 만난 것도… 모두와 만나서, '따뜻함'이라고 하는 게 어떤건지 알아버린 것도…"

───────

​"​그​러​니​까​…​…​…​…​…​…​ 타이가도, 힘내요."

……

"…… 뭐… 어?"
"알고 있었어요. 왜인진 몰라도, 타이가가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내색한 적따윈 없었을텐데?
하지만, 다음 순간.

"친구잖아요? 우리들."

그러니까, 그런 건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타이가의 머리속은 하얗게 변해버린다.

페이트는 무엇보다도, 이걸 말하고 싶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자신 이상으로 '무리'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엄청나게 강하고, 정체불명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그런,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타이가도 '친구'이고 '동료'의 한 사람이다.

"저는… 타이가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도 지키고 싶으니까요."

그러니까 잘못되길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끝없이 강하고
─한없이 긍지높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상냥함을 품고 있는 그를─

 


이 날을 경계로.
아리카도 타이가는 완전히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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