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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R.K


원작 | ,

13화



그 날의 그 사건 이후.
비비오가 타이가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나노하와 페이트도 이 일에 대해선 기뻐했고, 타이가와 비비오는 남매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타이가도 자각하고 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날 이때까지 질질 끌어왔던 결착을 내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에, 돌아가는거야?"
"으응. 조금, 처리할 일이 생겨서."

놀란 얼굴의 페이트에게, 타이가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 오래 걸리는 일이야?"
"글쎄. 오래 걸릴수도 있고, 금방 끝날 수도 있어. 난 두번째이길 바라지만."

그건 비숍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렸다.

"… 비비오랑 겨우 친해졌는데 또 떨어지게 됐네."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테니까."

쓴웃음을 띄우면서 음료수 빨대에 입을 가져갔다.
실제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지 않으면 안된다.
더이상 그녀들에게 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그럼, 갔다올게."
"어, 비비오한테 인사 안하고 가는거야?"
"보면 가기 힘들어질 것 같아. 대신 전해줘."

그렇게 말한 후, 타이가는 페이트의 앞에서 사라졌다.
시공관리국을 깜짝놀라게 했던 '단독 차원 도약'. 그것을, 지금 페이트의 앞에서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페이트는 한참동안이나 타이가가 없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결연한 의지로 차있었다.

 


─캐슬드란.
머나먼 옛날부터 판가이어의 킹들이 거주해온 왕성.
킹의 허락없이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설령 체크메이트 4라고 해도 용서받지 못하며,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당한다 해도 뭐라고 반론조차 할 수 없다.

"… 인데, 지금 이 상황이란 말이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울펜족의 가루루는 창밖을 내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한대로, 지금 캐슬드란은 무수하게 많은 판가이어들에게 포위당해버린 상태.
가루루의 옆에서는 돗가가 주먹을 우둑거리며 판가이어들을 노려보고, 밧샤는 안절부절못한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왕의 옥좌에는 판가이어의 왕이자 그들의 주인인 아리카도 타이가가 앉아있다.

평상시의 교복 차림과는 다른, '판가이어 왕'으로서의 예복.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는 '왕의 검' 잔바트 소드가 바닥에 꽂혀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 역시도 평소 페이트들과 대면할 때와는 천지차이. 지금의 그는 말그대로 '왕'이었다.

"…… 너희들은 나가도 좋다고 했을텐데."

타이가는 가루루들을 바라보며 말했고, 가루루들은 반대로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이봐, 농담하는거야? 우리들을 살려주고 있는 건 너라고. 네가 없으면 우리라고 살 수 있을 것 같냐."
"애초에, 우리 종족들은 이미 판가이어한테 멸망했고. 형네 부하가 아니라면 목숨 건사도 못한다구."
"그러니까. 싸운다. 네가 싸우면. 우리들한테도 적. 부순다."

하긴.
타이가는 '종족의 부활'이라는,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댓가로 그들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타이가가 쓰러진다면 어차피 그들도 함께 죽게되는 건 마찬가지. 비숍을 비롯한 판가이어들이 그들을 살려줄 리 없다. 그렇다면, 적은 승산이라도 타이가와 함께 싸우는 쪽이 낫다. 만약 이기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니까.

"그래서… 병력 차이는?"
"스무배쯤 될까. 전 세계에서 '인간과 공존하길 원하는' 판가이어들을 닥닥 긁어모았어도, 역시 절대다수는 저쪽이란 말이지."
"…… 1천 대 2만이라는 거군."

정말로 마음에 안드는 숫자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
잠시 침묵이 감돌고, 느닷없이 회랑의 문이 열린다.
타이가와 다른 셋이 그쪽을 바라보자, 그곳에서는 비숍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 배짱좋군. 내 앞에 나타나다니."
"…………"

비숍은 말없이 걸어들어왔고, 그런 그의 어깨를 가루루와 돗가가 양쪽에서 붙잡아 더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아무리 사가에게는 형편없이 당했다고 해도 과연 전투종족. 비숍의 발걸음도 거기서 멈추게 됐다.
비숍은 타이가를 노려보고, 타이가는 비숍을 바라본다.
두 사람 중, 타이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말해주지. 밖에 있는 쓰레기들을 데리고 꺼져라."
"…… 누가 당신의 명령따윌 따를 거라고 생각합니까."

한참 후에 돌아온 비숍의 대답.
그의 목소리는 예전과 달리 지극히 탁하고, 어두웠다.
타이가는 그런 그에게, 예전에는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잔혹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킹의 명령이다."
"아니, 당신은 더 이상 킹이 아닙니다. 인간따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인간따위를 사랑하게 된 당신은."
"하─"

타이가는 비숍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명백한 '비웃음'인 동시에 '경멸'. 굳이 표현하자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의미.
물론 비숍도 그것을 눈치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다음부터, 그의 입에서는 더이상 경어가 나오지 않았다.

"타락한 왕이여. 조금 후, 진정한 우리들의 왕이 탄생하실 터. 그때가 너의 마지막이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지."

비숍이 방에서 나간 후, 가루루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였던거지?"
"아아. 간단한 이야기야. 놈의 힘으론 나를 죽일 수 없으니까."

더이상, 타이가에게 방심따위는 없다.
그리고 방심하지 않는 타이가로서는 비숍의 생각을 읽는 것따윈 쉬운 일.
아마도 비숍은, 선대의 킹 중 누군가를 부활시켜서 자신과 대결하게 할 셈이겠지. 거기에 비숍 자신이 가세하면 반드시 타이가를 쓰러트릴 수 있다… 그런 계산일 것이다.

─상대가 누가 됐든, 질 생각따윈 눈꼽만큼도 없지만.

"… 하지만 이상한걸."
"뭐가 말이냐."
"아니, 별 건 아니지만 말야."

타이가는 드물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끊고 침묵을 지켰다가 입을 열었다.

"죽은 판가이어를 부활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양의 라이프 에너지가 필요해. 거기에 킹급이라고 하면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판가이어가 여기에 다 모여있으면 그걸 모을 방법이 없어. 내가 저쪽에 가 있던 짧은 시간동안 모았다는 건 말도 안되고."
"단순한 허세일 가능성은?"
"없어. 승산도 없는데 나한테 덤빌만큼 바보가 아니니까."

2만의 판가이어 군세는 확실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 이긴다 해도 상대가 타이가라는 걸 감안하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굳이 싸움을 걸어왔다는 건…

[타이가 님!!]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곰의 모습을 한 그리즐리 판가이어가 들어왔다.

"뭐냐."
[밖의 판가이어들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나가자마자 바로 공격인가. 잠시 안본 사이에 성격이 급해진 것 같다.
타이가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최고의 전우인 동시에 최고의 친구인 존재의 이름을 부른다.

"사가크."

이날 이때까지 타이가를 지켜온 몬스터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타이가의 주위를 멤돈다.
그리고, 타이가의 허리에서 멈추고는 그대로 벨트로 변환되어 그에게 장착된다.

​"​『​H​E​N​S​I​N​』​"​

타이가와 사가크의 음성이 겹쳐지고, 타이가의 몸을 거울빛의 무언가가 뒤덮는다.
───그것이 사라지고, '왕의 갑옷' 사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몸에는, 왕을 수호하기 위해 태어난 백은의 갑옷.
그 손에는, 왕의 적을 치기 위해 태어난 칠흑의 검.
그리고 그 어깨에는,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왕의 의지.

그 모든 것을 한 몸에 짊어지고, 소년은 선언했다.

[결전의 때다. 공격을 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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