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킹의 선언과 함께 캐슬드란이 포효하고, 동시에 전쟁이 시작된다.
1천 대 2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기본적으로 공성전인데다가 이쪽은 '성의 형태를 했을 뿐 드래곤이나 다름없는' 캐슬드란에서 농성. 화력이라면 이쪽이 훨씬 높은데다가 압도적인 전투력의 킹까지도 있다.
『바인드』
사가크의 기계음성이 울리자마자, 바닥에서 솟아난 뇌광들이 수많은 판가이어들을 구속한다.
─일반 판가이어들의 힘으로는 끊는 것도 탈출할 수도 없는 강력한 구속.
하지만 이것도, 다음에 이어질 공격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썬더 블레이드』
하늘에서부터 무수한 번개의 검이 떨어져내린다.
한 자루, 한 자루. 환상마법진을 동반한 검들은 판가이어 한명 당 하나 씩 꽂혔고, 운이 없는 자들은 그 일격만으로 즉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후의 공격.
[『브레이크』]
둘의 음성이 겹치는 순간, 판가이어들의 몸에 꽂힌 번개의 검들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곧이어 검이 꽂혔던 판가이어들이나 그에 인접해있던 판가이어들은 전부 폭발에 휘말려 산산조각났고, 수많은 글래스 조각들을 흩날리면서 소멸했다.
본래 페이트의 전문이었던 이 마법은 여기까지 파괴적이지 않았지만, 타이가가 자기 식대로 뜯어고친데다 페이트와는 달리 비살상 설정따윈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판가이어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마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비숍의 지휘로 인해 산개해있었던 탓에 애초에 눈에 확 드러날 정도의 숫자는 되지 못한 것이다.
[귀찮은 짓을─]
사가는 혀를 차면서도, 휘하의 판가이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캐슬드란은 여전히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고 있고, 판가이어들은 성에 있는 대포들을 발사해 아래쪽을 공격한다.
물론 여전히 판가이어들은 흩어진채 무기들을 날리는 식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의 공격으로 사라지는 판가이어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반면, 저쪽은 오로지 캐슬드란만 공격하면 되니까 오히려 편한 입장에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위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병력의 차이가 그렇게나 압도적인 것에 비하면, 이 상황은 오히려 선전하고 있는 셈이라고 봐야한다.
4시간에 걸친 지금까지의 싸움 끝에 이쪽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쳐 300 정도. 저쪽은 어림짐작으로─거의 확실하겠지만─ 사망자만 5천~6천 쯤일까. 전술이고 뭐고없이 그냥 밀고들어오니 당연히 이쪽도 저쪽도 피해가 클 수밖에.
'답지 않은 짓을 하는데.'
자신에게 싸움을 건 시점에서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맛이 갔을 줄은 몰랐다. 설마 그냥 줄기차게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아니면…
[이렇게 엉망으로 해놓고도 이길 자신이 있다던가.]
하지만 이 공세도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공격은 비숍이 내세울 킹이 부활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 그 공세가 과도한 것은 이쪽에서 딴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약하게 공격했다가는 이쪽의 병력이 적다고 해도 뭔가를 벌일지도 모르니까, 그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
───웃기지도 않는군.
비숍은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길 바랬던 사태를 맞이했다.
[역시 나왔나…!!]
스왈로우테일 판가이어─ 비숍은 이빨을 갈며 캐슬드란을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그 성문을 열고 나온 사가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저 타락한 왕은 강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2만의 병력이 어쨌고 현재의 전세가 유리하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2만의 판가이어.
─그러나 그 중에서, "사가가 이쪽으로 오고자 할 경우" 그걸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2만명 중에서, 단 한명도.
예전이었다면 발목 붙잡기 정돈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마법'이라고 하는 힘을 손에 넣은 사가에게는 발목 붙잡기조차도 할 수 없다.
[아마도 곧장 이곳으로 오겠지.]
사가도, 비숍도.
처음부터 전술이나 전략따윈 필요도 없었다.
─누가 어떤 작전을 쓰고 어떻게 공략하든, 결국 최후의 최후는 단순한 파워 대결.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극히 원시적인 결말. "누가 더 강한가" 뿐.
[사가가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먼저인가, 새로운 킹께서 부활하시는 것이 먼저인가…]
결국 마지막에 승패를 정하는 것은 그토록 심플한 대답일 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2시간 후.
사가는 캐슬드란에서 출발하여, '일직선'으로 포위를 돌파한 후 비숍의 앞에 도착했다.
[잘도 도착했군, 무능한 왕이었던 자여.]
[허세부리는 건 그쯤 해두시지. 내 힘을 모르는 건 아니잖아?]
사가는 비숍이 어깨 너머로 보이는 라이프 에너지가 응집된 기체를 바라보았다.
[… 그건가.]
[아, 그렇다. 지금 부활하고 계신 이 분이야말로─]
『하켄 슬래쉬』
사가는 지금껏 잔바트 소드에 응축시키고 있던 마황력을 단숨에 방출한다. 이토록 마황력이 응축되는 걸 비숍이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비숍의 운이 나빴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는 마법에 관해 생초보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사가크의 음성과 함께 잔바트 소드에서부터 발생한 초대형의 적색 낫은 비숍을 지나쳐, 그 뒤에 있는 에너지 구체에 부딪혀 베어갈라버린다.
[뭣이?!]
[미안하게 됐군, 비숍. 예전에 나였다면 기다려줬을지도 모르지만…]
사가는 한발짝 한발짝.
비숍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포격 마법으로 깔끔하게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다름아닌 비숍이다. 자신이 마황력을 포격으로 바꿔서 쏠 경우를 대비해 '그 힘을 흡수하여 킹을 단숨에 부활시킨다'라는 함정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베는 걸 택했다.
[지금의 나는 싸움의 결과가 세계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싸움에선 '만의 하나'도 용납하지 않아.]
게다가 '만의 하나' 이 싸움에서 져버리게 되면, 두번다시 페이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 공포에 비하면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따윈 깃털만큼의 가치도 없다.
비숍은 망연하게 몸을 반쯤 뒤로 돌려,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사가는 그런 비숍을 향해 잔바트 소드를 겨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네놈 뿐이군. 어떻게 죽여줄───]
[…………………… 대성공이다.]
비숍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사가의 눈은 조금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사물을 인식했다.
하켄 슬래쉬로 캐트려버렸을 터인 에너지의 구체.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바싹 마른 미이라.
─하지만 그 미이라는 지금 자신의 발과 손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몸에는 점점 살이 붙고 혈색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킹의 부활에는 물론 라이프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식대로는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려.]
비숍이 사가를 바라보고 있다.
미이라는 여전히, 그의 등 뒤에서 몸을 일으켜 '부활'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냈다. 라이프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킹의 부활을. "이미 존재하는 육체에 킹의 영혼을 안착시킨다"라는 실로 간다는 방법을!!]
비숍은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한 채 소리쳤다.
마치, 자신이 해낸 일을 자랑하는 것처럼.
[그러나 보통으로 생각하면 킹의 영혼을 안착시킬 수 있을만한 육체를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정안되면 나는 나 자신의 육체를 그 분께 바칠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됐지.]
이미 사가는 비숍의 말따윈 듣지 않고 있다.
아니, 들을 여유가 없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찾아낸거다!! 킹께 어울리는, 최강이자 최흉의 육체────── 수만년 전, 우리 판가이어를 멸망 일보직전까지 몰아넣었다가 돌연 사라져버린 자들… 우리들조차도 '악마'라고밖엔 칭할 도리가 없는 종족 '그론기'의 육체를!!]
이미, 저것은 완전히 부활하고 있다.
본래 판가이어의 킹은 대대로 '배트 판가이어'의 모습과 힘을 갖지만, 저것은 어딜 어떻게 봐도 '박쥐'가 아니다.
굳이 그 모습을 표현하자면………………………………………… 늑대 정도겠지. 산원숭이 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뭐, 가능하면 그 저주받을 '하얀 파괴신' 쪽이 좋았지만 이것도 격은 떨어진다 하나 '운'은 '운'. 킹의 육체로서는 더할나위 없었다.]
그딴 건 듣지 않아도 충분하다.
──타이가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위압감'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판가이어 '킹'의 영혼에, 그론기 '운'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저 전대미문의 괴물에게.
[문제라고 한다면, 킹의 영혼을 담았어도 그론기의 육체는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지. 라이프 에너지는 충분했지만, 한번 완전히 잠든 그론기를 깨우기 위해서는 그 그론기 본인의 전투의욕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 필요했다. 유감스럽게도… 내 역량으로조차 '운'급의 그론기만큼은 깨울 수가 없더군. 그렇기에 네가 필요했던 거다.]
비숍에게 있어서 타이가는 없애지 않으면 안될 존재. 그럼에도, 그 힘이 강대하다는 것만은 인정했다.
그래서 이용했다. 판가이어… 아니, '현대'에 있어 최강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의 힘을, '고대'에 있어 최강이라 불렸던 존재의 잠을 깨우는 데에.
그리고 그것은 멋지게 성공했다.
[이것에만큼은 감사하마, 한때 왕이었던 자여. 그리고… 이제 죽어라. 새로운 왕의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