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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R.K


원작 | ,

16화



손톱과 주먹이 오고간다. 다리와 다리가 부딪힌다.
위험한 공격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피해내고, 곧바로 반격으로 이어진다.
'킹'의 힘은 분명 상상 이상. 하지만 조금 전처럼 불시의 일격이 아닌 정면대결이라면 타이가도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제서야 타이가는 '킹'이 가진 힘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딱히 전투술이라거나 격투술같은 걸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단순히 어마어마한 힘과 스피드, 반사신경, 그리고 본능에 의지하고 있을 뿐인 천연적인 전투타입.
지극히 원시적이고, 지극히 파괴적이며 지극히 단순한 힘.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자신이 일격에 당했던 것도 무리는 아닌데다 자칫 한순간이라도 흐트러졌다간 또 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미 주변의 '전쟁'은 멈추어져있고, 양측은 물러나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이미 군세끼리의 우세와 열세는 무의미. 이 둘 중 이기는 쪽이 마지막 승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확정되어졌다.

'킹'의 주먹이 배트 판가이어가 들어올린 양팔의 가드에 부딪힌다.
가드는 산산히 부서지고, 배트 판가이어는 뒤로 좌악하고 밀려난다.

[쳇…!!]
[이제 이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모르진 않을텐데.]

여유만만한 비숍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이런 걸 보고 호가호위라고 하던가. '킹'이 없었다면 당장에 찢어발겨졌을 놈이.

[말했을 터다. 하등생물인 인간따위에게 애정을 가진 시점에서 이미 네놈은 킹이 아니라고.]
[…… 그 '하등'과 '고등'의 기준은 누가 정한거냐.]
[당연히, 우리들이다. 우리는 인간보다 강하고 뛰어나며 현명하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이 판가이어의 법이지. 너도 익히 알고 있는대로 말이다.]

그리고

[게다가 네놈도 우리들에게 뭐라고 할 처지는 못되지 않나.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무수한 인간을 죽이고 동족을 학살해오며 철권을 휘둘러왔던 네놈이 이제와서 인간과 공존을 꿈꾼다? 그 이상의 희극이 어디에 있나.]

 

[… 그게 어쨌다는거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배트 판가이어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수많은 인간들을 죽이고, 수많은 판가이어들을 학살했다… 그것은 분명 현실이다. 더할 나위없이, 잔혹하지만 피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현실. 내 손은 피로 더럽혀져 있고, 내 영혼은 괴물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발짝.
배트 판가이어는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래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테다.]

[그들과 함께 걷고,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이 죄의 탑을, 이 고통들을 끌어안고.]

[그것이, 끝없는 고통과 절망밖에 없는 길이라고 해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빛이 드는 곳에서 살겠다.]

판가이어들도, 몬스터들도, 비숍도, '킹'도.
아무 말없이, 배트 판가이어를 바라보고 있다.

[어렸던 시절, 너에게 주워졌을 때와는 다르다, 비숍.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의 주위에는, 언제나 찬란함을 발하는 친구들이 있다.]

판가이어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과는 달리 그 감정을 표정으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자들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알지 못한다 해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진정한 판가이어의 왕은.
─그 추악한 모습 아래.
─사랑, 슬픔, 속죄, 고통, 그리고… 희망.
─그 모든 것을 담아서 말하고 있다.

배트 판가이어는 단언했다.

 


[나는… '인간'과 같이 살아간다.]

 


500명도 채 남지 않은, '인간과의 공존을 택한 판가이어'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것은 스무배를 훨씬 넘어가는 '인간과의 전쟁을 택한 판가이어'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것을 느낀 비숍은 이빨을 갈았다.

[이제는 판가이어로서의 긍지마저도 ​잊​어​버​린​건​가​…​!​!​]​

비숍은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크게 외친다. 마지막 공격 명령을.

 


『이제야 좀 볼만하게 됐구나, 꼬마.』

 


한순간에,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판가이어들도 비숍도 타이가도. 심지어는 '킹'조차도.
깨닫고 보면, 배트 판가이어 근처를 작은 물체가 멤돌고 있었다. 마치 사가크처럼.
하지만 사가크는 지금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고, 무엇보다 저것은 사가크와 달리 칠흑색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딱 두 사람.


​[​[​키​배​트​…​!​!​]​]​


오랜 세월동안 역대의 킹을 보좌해온 비숍.
그리고 그런 킹을 상대로 직접 대적까지 해봤던 울펜족의 가루루.
그 둘만은,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

키배트 2세.
비숍보다도 훨씬 오랜 옛날부터 '킹'을 모셔온 몬스터의 귀족.
그 이름 그대로, 작은 박쥐의 형태를 한 자이지만 그 힘은 결코 경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십수년 전, 선대 킹이 죽기 얼마 전부터 행방불명이라고 알려진 존재. 그런데 이제와서─

[너는…]
『유감스럽게도, 이 몸만이 아니다.』


『썬더 블레이드』


하늘에서부터 떨어져내리는 번개의 검들이 판가이어들에게 꽂힌다.
타이가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타이가 이외에 이 마법을 쓰는 사람은, 그가 알기로 단 한명.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처음 본 이후부터 줄곧 매료되어 있던, 번개의 여신이 내려왔다.

[페이…]

무심코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얼마든지 보여도 상관없지만,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통틀어 그녀에게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이… '괴물'의 모습은.
하지만 그녀는 '배트 판가이어'의 모습을 보고도 다가와서 그의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넌 뭐냐, 인간. 방해할거면─]
"다 알고 있어, 타이가 군."

시치미 떼기 실패.
페이트는 한걸음 더 앞으로 다가와서, 배트 판가이어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오른손을 떼어낸다.

"……"
[…… 뭐하는거야.]
"… 타이가 군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변함없다.
배트 판가이어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페이트의 언동이나 어조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

[…… 괴물, 이니까. 나는.]

정신을 차려보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보여버리고,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다.

"응."

긍정되버렸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속여온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페이트에게 부정된다고 해도.
자신의 감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

"그래도…… 괜찮아."

페이트의 손이 배트 판가이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것도 또한, 평소와 같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소와 달랐지만.

 


"'이런' 타이가 군이라도…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타이가 군이니까."

 


─그 한마디를 들어버린 후.
─더이상, 고통도 공포도 절망도 느껴지지 않게 됐다.

 


『좋은 시간 방해해서 미안하다만 슬슬 대책을 좀 세웠으면 하는데.』

그때 키배트 2세가 끼어들어 말을 걸었다.
그제서야 배트 판가이어와 페이트는 몸을 돌려, 상황을 인식한다. 자신들은 여전히 싸우는 중이다.

[네놈…!! 배신할 셈이냐!!]
『그건 다르지. 애초에 킹을 배신한 건 네놈이잖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로서는 이제 막 '사랑'이라는 거에 눈을 뜬 애송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라.』

그리고 키배트는 배트 판가이어에게로 날아가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다.

[… 도와주는 건 좋지만, 넌 뭘할 수 있지?]
『모르는 거냐, 꼬마. 나라면 너를 '어둠의 키바'로 만들어줄 수 있다. 네가 어둠의 키바가 된다면 저런 녀석…』

거기까지 말한 후, 키배트는 '킹'을 바라본다.
…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그조차도 처음보는 괴물을 보고, 키배트의 표정이 경직됐다.
그리고는 실로 딱딱한 움직임으로 타이가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 개미 눈물만큼 승산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 개미 눈물? 게다가 '모르겠군'? 도우러 온 거 맞는거냐]
『지금의 너로는 그 정도의 승산조차 없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 하긴.
키배트와의 대화를 끝낸 후, 배트 판가이어는 페이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성격으로 보건대─

"물러나라고 해도 안들을테니까."
[… 그럴줄 알았어. 비숍을… 부탁할게.]
"응."

페이트는 바르디슈를 고쳐쥐고, 하켄 모드로 변형시킨다.
배트 판가이어는 '타이가'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키배트 2세를 손에 쥔다.
키배트 2세는 타이가의 손을 깨물고, 타이가의 전신에 글래스를 띄운다.

"『변신』."

─어둠이 찾아온다.
지금 이곳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밤'의 어둠이, 남김없이 타이가와 키배트 2세에게로 흡수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최강의 검' 잔바트 소드와 쌍벽을 이루는 '무적의 갑옷'.

판가이어와 호응하여, 그 힘을 무제한으로 끌어올리는 존재.
어느 것에도,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최강'과 '무적'의 상징.
그 몸에 박힌 하늘.물.땅의 마황석이야말로, 힘의 증표.
판가이어의 킹이 가질 수 있는 최대.최강. 그리고 최흉이자 최고의 전투형태.

​─​─​─​─​─​─​─​─​─​─​─​─​「​어​둠​의​ 키바(Dark Kiva)」.

[라스트 배틀이다. 결착을 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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