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의 긍지
"아야야야...!"
"괜찮아 마리사?"
"아아, 괜찮아. 좀 따끔 거려서- 안따끔 거리는건 없어?"
"바깥세계에서 공수한 소독약이라고. 불평하지마"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상처투성이의 마리사에게 빨간 소독약, 바깥세계에서는 포비돈 요오드로 불리는 것을 발라주며 말했다. 지난번 춘설이변 이후로 한판 붙은 야쿠모 란에게 때마다 도전하고 있는 키리사메 마리사를 보며 의아함이 담긴 투로 입을 열었다.
"저기 마리사, 묻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왜 린노스케?"
"어째서 그렇게 야쿠모 란에게 집착하는거야?"
"응? 당연히 짜증나니까! 요괴랍시고 인간을 깔아보는게 마음에 들지 않아!"
"뭐 그것도 확실히 있는것 같긴 하지만... 좀더 근본적인게 있는거 아니야?"
린노스케의 말에 마리사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너는 짜증나는걸 싫어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될 일을 무리하게 하는 단순한 성격도 아니니까 말이지"
"역시 린노스케, 잘 아네-"
"네 아버지랑 교우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니까. 30년쯤 되나?"
"이러니 저러니해도 넌 네 아버지랑 닮았어."
"우... 그건 좀 쇼크 일지도"
"고집부리는 것도 말이지"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수년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키리사메 마리사가 마법을 배우겠다며 집에서 아빠와 싸우고 나온 그날을. 우연히 키리사메 상점에서 생필품을 보충하러 온 린노스케가 말리긴 했지만 마리사는 고집을 꺽지 않고 가출까지 해가며 집을 나왔다.
"도대체 왜 키리사메가를 나온거야? 단순히 마법을 익히는 정도라면 본가에서 아버지의 눈을 피해가면서 익히는 것도 가능하잖아."
"그걸론 부족하니까."
"네 재능을 생각하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객관적으로 말해 마리사의 마법적 재능은 상당했다. 물론 환상향의 양대 마법사인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와 파츄리 노우릿지와 비교하자면 좀 모자랐지만 몰래몰래 마법을 익힌다 쳐도 30대가 되기 전에 어느정도 경지를 이룰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해. 그게 진실이야."
"뭐가 그리 부족한건데?"
"난 말이야... 그녀석의 친구니까, 그녀석 옆에 서고 싶어-"
"그녀석... 이란건 레이무를 말하는거네"
"응"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친구지 않아?"
모리치카 린노스케의 의문에 마리사는 린노스케의 말을 정정했다.
"린노스케, 친구란 말이야. 기본적으로 대등한 상대야. 물론 그런게 없어도 친구는 맺을 수 있지만 그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면 친구라는 이름의 짐이 되어버린다고. 난 그게 싫어-"
"흐음?"
"난 말이야 그녀석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 그녀석은 타고난 천재라서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요괴들과 대등한, 아니 요괴들을 내려다 볼수도 있는 존재야.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으로선 외로워... 그녀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외롭지 않도록 그녀와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은거야!"
마리사는 그렇게 말하며 마리사는 레이무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수년전, 아직 어렸던 키리사메 마리사는 모리치카 린노스케를 따라 하쿠레이 신사를 오른 적이 있었다. 린노스케와 레이무는 그때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리사에게는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린노스케, 여긴 어디야?"
"여긴 하쿠레이 신사라고 이곳 환상향에 생겨나는 이변을 해결하고 마을을 지켜주는 곳이야."
"마을을 지켜준다라... 그런데 이변은 뭐야?"
"가끔씩 마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잖아. 때도아닌데 꽃이 만발한다거나 몇몇 요괴가 난동을 부려 기상이변이 일어난다거나"
"얼음요정이 얼려버리는거라던가?"
"뭐, 그런건 이변으로도 안치지만."
마리사의 물음에 대답한것은 린노스케가 아닌 아직 앳된 어린 목소리였다. 마리사와 비슷한 나이대일까. 10살 정도의 나이에, 나이에 맞췄다고는 하나 아직 큰 무녀복. 그리고 너무나도 올곧고 바른, 뭐랄까.. 눈부신 느낌을 주는 소녀였다.
"오랜만이야 레이무."
"오랜만 린노스케, 오늘은 어쩐일이야?"
새파랗게 어린 꼬마의 반말에도 린노스케는 불쾌한 기색 하나 드러내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현재 신세지고 있는 키리사메씨의 딸에게 하쿠레이 신사를 좀 구경시켜 주려고."
"헤에, 마을의 지주이자 상인인?"
"아... 안녕"
린노스케의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며 인사하는 마리사, 그런 마리사를 보며 레이무는 무료함과 무심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린노스케를 향해 말했다.
"뭐, 적당히 구경시키고 가. 더럽히지는 말고.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뭐 그러지"
레이무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자 무시당한 마리사는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린노스케를 향해 말했다.
"저 아이는 누구야?"
"이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요괴를 퇴치하고 이변을 해결하는 존재. 환상향에서 최고로 공평한 인간"
"저 꼬마가?"
"너랑 같은 나이라고-"
린노스케의 말에 마리사는 조금 불만 스런 표정으로 레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불만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질투- 자신을 나름 어른으로 여기고 있는 마리사지만 어른들에게 있어선 어차피 아가씨. 하지만 저기 가고 있는 레이무는 틀렸다. 자기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객채로서 존중받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안들어"
"뭐, 그럴려나. 레이무는 그렇게 싹싹한 편은 못되니까"
린노스케는 마리사가 레이무에게 불만을 가진 부분을 오인했으나 마리사는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날 마리사는 꽤나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쿠레이 신사에서의 구경을 마쳤다.
며칠 후, 아버지와 린노스케 몰래 마을을 빠져나온 마리사는 다시한번 하쿠레이신사로 향했다.
자신과 그 짜증나는 무녀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지 알고 싶은 탓이었다. 물론 아직 10살 남짓한 꼬마인 마리사가 하쿠레이신사까지 홀로가기에는 길이 험했다.
모리치카 린노스케의 경우 약하다고는 하나 명백히 반요. 게다가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탓에 적어도 마을에서 신사까지의 가도정도는 혼자서도 문제 없었다. 하지만 마리사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소녀, 당연히 마을부터 신사까지 가는 가도도 힘겹기 짝이 없었다.
툭하면 장난을 거는 요정들, 때때로 보이는 얼음요정, 그리고 정말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 물론 환상향의 요괴 대부분은 인간을 잡아먹은 일이 드물다.
대부분 바깥 세계에서 인간과 싸우다 지쳐서 온 요괴도 있었고 그냥 조용히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 위해 온 요괴도 있었으며 또한 환상향의 관리자라 할 수 있는 요괴현자와 하쿠레이의 무녀의 위협에 겁을 먹은 녀석들이 환상향의 주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걔중에서 머리가 좋지 않거나 요괴현자나 하쿠레이 무녀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요괴도 있었다.
가령 지금 마리사의 눈 앞에 있는 요괴처럼
"먹어도 돼?"
"될리가 없잖아!"
"그런건가~?"
루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특유의 자세로 마리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리사는 다가오는 루미아를 보며 겁애 질린 표정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가는 도중에 요괴를 볼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탓이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껏 달리는 마리사, 하지만 루미아의 비행 속도는 마리사의 달리기 속도를 한참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이 마리사가 잡히려는 순간-
딱-
"아얏!"
갑자기 루미아가 나는 것을 멈추고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부여잡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마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날다가 나뭇가지에 부딪힌듯했다.
"저... 저기 괜찮아?"
마리사는 아파하는 루미아를 보고는 다가가 걱정스런 말투로 상태를 물었다. 그순간 마리사가 내민 손을 루미아가 강하게 움켜쥐었다.
"잡았다-"
나뭇가지에 강타당해 얼굴에 새겨진 붉은 선과 심홍의 눈동자는 붙잡힌 마리사를 한층더 공포에 빠뜨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향해지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바람이 마리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빡-
뭔가 강타하는듯한 소리에 마리사가 눈을 뜨자 보인것은 루미아의 머리를 강타하고 있는 불제봉이었다. 루미아의 머리를 강타한 불제봉은 반동으로 마리사의 머리도 강타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난데없이 불제봉에 강타당한 루미아와 마리사는 서로 불제봉이 선사한 고통에 머리를 부둥켜 감싸며 주저앉았다.
"하아, 이게 왠 손님인가 싶더니... 린노스케랑 같이온 꼬마였나."
주저 앉아 있던 마리사의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이것은 며칠전 마리사가 들은 소녀의 목소리였다.
다름 아닌 하쿠레이 레이무-
"루미아, 다른곳이라면 몰라도 가도에서는 사람 덮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게 그저께였을 텐데?"
"무녀... 무녀다! 붉은 무녀다!"
루미아는 레이무의 목소리에 반쯤 패닉에 빠진듯 외쳤다. 레이무는 그런 루미아를 향해 재빨리 접근한 후 루미아의 전신에 덕지덕지 부적을 붙였다.
순식간에 움직임을 봉쇄당한 루미아는 당황해하며 레이무를 향해 외쳤다.
"풀어줘-"
"시간이 지나면 풀릴테지만. 일단은..."
레이무는 부적이 덕지덕지한 루미아를 집어든 후 날아올라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이 어느정도 선에 이르자 레이무는 그대로 손을 놓아 루미아를 숲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레이무가 내려오자 그 광경을 본 마리사는 레이무를 향해 물었다.
"저... 저기 괜찮은거야?"
"뭐가?"
"방금전에 던진 요괴말이야."
"걱정마, 인간이라면 몰라도 보통 요괴들은 저정도로 죽거나 하진 않으니까. 심해봐야 중경상정도 일까나?"
뭔가 냉담하지만 어딘가 믿음이 실린 말에 마리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저나 무슨일로 혼자서 이 가도에 있는거야? 아무리 내가 정기적으로 요괴를 퇴치하고 있다해도 어린애 혼자서 다니기엔 위험하다고"
"그... 그건..."
마리사는 레이무에게 네가 왜 어른들에게 인정받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리사의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에 레이무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이유는 아무래도 좋지만. 우선은 우리 신사로 가자. 어차피 바로 마을로 돌아가기엔 시간도 좋지 않고."
"아..."
마리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숲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요정들과 루미아에게 쫓기는 사이 어느새 저녁이 된 것이었다.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테니까"
레이무는 그렇게 말한 후 마리사의 대답도 듣지않고 그대로 마리사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하쿠레이 신사로 향했다.
신사에 도착하자 보이는 것은 어둠이 깊게 드리운 황량해보이는 하쿠레이 신사의 모습이었다. 지난번의 본 풍경과는 다른 느낌에 마리사는 의아해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신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우니까 조심해."
레이무는 그말과 함께 마리사를 두고 먼저 신사로 들어갔다. 신사로 들어가 불 부터 켠 레이무는 그대로 마리사에게 방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말한 후 부엌으로 들어갔다.
레이무의 말에 따라 방에 들어간 마리사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는 찬기를 느꼈다. 상당히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것일까? 적어도 수시간은 아무도 쓰지 않은듯 했다.
찬기가 가득한 방에서 레이무를 기다리던 마리사는 레이무가 지내고 있는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뭔가 많은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살풍경한 방-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이었다.
"이런곳에서 어떻게..."
"지내냐고 말하고 싶은거지?"
어느새 식사를 차렸는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는 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몇개의 반찬을 가져온 레이무는 그것을 방 한가운데 있는 코타츠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아.. 아니 그게"
"할말은 알고 있어. 뭐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은 다 그러니까"
레이무의 반응에 마리사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레이무에게 물었다.
"저기.. 레이무라고 했지, 궁금한게 있는데? 혹시 이 신사에..."
"혼자살고 있냐는 질문이지?"
"그... 그렇긴 한데"
"뭐 솔직히 말하면 그래. 나는 이 신사에서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혼자 살고 있어. 무녀로서 필요한 것을 익히면서, 그리고 무녀로서 해야할 일을 하면서 말이야"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레이무의 말에 마리사는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레이무를 향해 물었다.
"그럼 혼자서 쭉 살아온거야?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글쎄... 누구의 도움도, 라기에는 무리겠지 환상향의 요괴현자 야쿠모 유카리에게 종종 도움을 받고 있으니. 하지만 적어도 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 부대낀 적은 별로 없네."
"외롭진 않은거야?"
"글쎄, 외로움 같은건 느껴본적 없어. 이것이 나의 삶이고 나의 인생이니까.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레이무의 말에 마리사는 자신의 얕은 생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업을 레이무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황량한 곳에 인간과 마주하지 않으며 홀로 지킨다는 것은 마리사로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레이무가 어째서 자신과 달리 어른으로서 대접받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지만 레이무의 생활의 편린을 마주한 마리사는 레이무의 생활을 보며 자신의 안이한 생각을 반성했다.
동시에 동정.. 아니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을 레이무에게 품었다. 가장 가까운 감정이라하면 경의일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동정받거나 할건 아니니까"
"동정하는게 아니야! 나는..."
마리사는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감정에 목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마리사의 눈가에는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마리사는 결심했다.
나는 레이무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그 뒷이야기는 간단하달까... 레이무와 마주할 힘을 얻기 위해 마리사는 린노스케의 도움을 얻어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그것이 평범한 아가씨로 살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가출해 마법의 숲에 정착. 지금에 이르게 된 이야기였다.
"그럼 상처도 치료했으니 마법 연구에 들어가 볼까나- 야쿠모 란에게 먹힐만한 탄막을 만들어줘야지!"
"무리는 하지 말라고. 스펠카드 싸움이라고해도 아예 다치지 않는건 아니니까 말이야."
린노스케의 말에 마리사는 미소로 대답하며 빗자루에 올랐다. 빗자루에 오른 마리사가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자 린노스케는 가게 안쪽에 숨어있는 소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리사의 말에대해 어떻게 생각해? 레이무-"
"왠지 좀 부끄러운걸-. 그녀석의 생각과는 좀 틀리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쁘네"
향림당에서 몰래 차를 마시고 있던 레이무는 마리사의 말에 약간의 기쁨을 느꼈다. 마리사의 말처럼 그렇게 외로움을 느낀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를 바라지 않는것도 아니었다.
그런의미에서 마리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가끔 귀찮을때도 있긴하지만 자신에게 부탁하거나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는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직접 자신을 마주하고 하쿠레이의 무녀로서가 아닌 레이무 그 자체로서 봐주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마리사가 무리하는건 좀 걱정되네."
"그래도 상대가 상대인 이상 무리할 수밖에 없지 않아?"
지금 마리사가 도전하고 있는 상대는 야쿠모 유카리의 식신 야쿠모 란. 환상향의 요괴현자의 식신인 만큼 홍마관이나 백옥루등 각 지역의 주인급은 아니더라도 보통요괴로선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강함은 일반적인 싸움보다 탄막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밀한 계산아래서 발해지는 그녀의 탄막은 보통방법으론 피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계산과 계산의 교차속에서 발해지는 탄막의 향연-
그 탄막의 향연은 상대를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죽음의 선고라고도 할 수 있었다.
"보통방법으로 그녀의 탄막을 깰 수는 없을거야."
"레이무라면 어떻게 해?"
린노스케의 물음에 레이무는 뭘 묻느냐는듯 린노스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전부 피한후 몽상봉인-"
"정말 간단하게 말하네."
"나한테는 그게 당연한거니까 말이지"
레이무는 특별하다. 타고난 천재... 아니 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란 존재였다. 모든것에 얽메이지 않고 공평하고 순수하게 마주하며 그 너머를 보는 존재. 솔직히 탄막놀이가 아닌 순수한 요괴퇴치라 하면 그녀를 막을 만한 존재가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누군가가 말하길 운명에 사랑받는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린노스케는 그 운명이 레이무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린노스케는 탄막놀이 할 생각 없어? 마리사랑 함께 가르쳐 줄께-"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들 처럼 몸을 움직이는 취미는 없거든"
린노스케는 레이무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수일 후-
"싸우자 야쿠모 란!!"
"정말인지 질리지도 않고 오는구나"
마리사의 외침에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내는 야쿠모 란. 그 모습에 마리사는 모자를 눌러쓰며 야쿠모 란을 향해 외쳤다.
"이번엔 반드시 이길 거라고!!"
"그 말은 일단 내 탄막을 모두 뚫고 말하지 그래"
란은 마리사의 말에 냉랭한 말과 함께 한장스펠카드를 꺼내 선언했다.
"식휘「프린세스 텐코 -Illusion-」!"
앞서깨진 4개의 탄막 대신 바로 5번째 탄막을 선언하는 란, 조금이라도 시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었지만 마리사로서도 쓸데 없는 체력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간다!"
란의 탄막을 피하며 매직 미사일로 틈새를 노리는 마리사. 하지만 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척이나 가볍게 매직 미사일을 피하며 마리사가 이동할만한 방향으로 탄막을 집중시켰다. 예지나 다름없는 예측에 마리사는 살짝 당황했으나 몇번이나 겪은 일이므로 기합으로 탄막의 세례를 벗어났다.
5번째 탄막을 돌파당하자 란은 그대로 여섯번째 탄막 식탄「얼티밋 부디스트」와 식탄「유니래터럴 콘택트」를 순차적으로 발동했다.
여섯번째 탄막은 어째어째 돌파했지만 결국 일곱번째 탄막에서 쏟아지는 탄막의 폭풍을 채 피하지 못한채 마리사는 다시한번 고배의 쓴잔을 들이켜야만 했다.
탄막놀이가 끝나고 야쿠모 란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마리사를 향해 물었다.
"왜 계속 나에게 도전하지? 탄막놀이 상대라면 다른 존재도 있을 터다만?"
"얼마전에 탄막놀이에서 너한테 졌잖아. 레이무는 너한테 이겼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너한테 집중하려고"
"고작 그러한 이유때문에 매번 나를 귀찮게 불러대는 것인가...!"
마리사가 말한 이유에 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분노했다. 안그래도 야쿠모 유카리의 식신으로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건만 그런 하잘것 없는 이유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런고로 한동안 좀더 어울려줘"
"어울릴까 보냐! 도대체 왜 그렇게 무녀에게 신경을 쓰는거냐! 너랑은 다른 삶을 살고 또 살아갈 존재인데!"
"친구니까!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냐고!! 나는 그녀석의 친구란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어. 그녀석의 유일한 '인간친구'란 것에"
"그러고보면 그 무녀는 인간 친구가 적군..."
"적다기 보다 나말곤 아예 없을걸. 다른 사람들은 레이무를 그녀 무녀로 볼 뿐이니까"
마리사의 말에 란은 조금 싸늘한 눈빛으로 마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 무녀를 동정하는건가?"
"아니 난 그저 레이무의 친구로서 있고싶은것 뿐이야. 그 마음에 동정심같은건 전혀 없다고!"
란에게 대꾸하는 마리사의 미소는 그 어느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괜찮아 마리사?"
"아아, 괜찮아. 좀 따끔 거려서- 안따끔 거리는건 없어?"
"바깥세계에서 공수한 소독약이라고. 불평하지마"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상처투성이의 마리사에게 빨간 소독약, 바깥세계에서는 포비돈 요오드로 불리는 것을 발라주며 말했다. 지난번 춘설이변 이후로 한판 붙은 야쿠모 란에게 때마다 도전하고 있는 키리사메 마리사를 보며 의아함이 담긴 투로 입을 열었다.
"저기 마리사, 묻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왜 린노스케?"
"어째서 그렇게 야쿠모 란에게 집착하는거야?"
"응? 당연히 짜증나니까! 요괴랍시고 인간을 깔아보는게 마음에 들지 않아!"
"뭐 그것도 확실히 있는것 같긴 하지만... 좀더 근본적인게 있는거 아니야?"
린노스케의 말에 마리사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너는 짜증나는걸 싫어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될 일을 무리하게 하는 단순한 성격도 아니니까 말이지"
"역시 린노스케, 잘 아네-"
"네 아버지랑 교우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니까. 30년쯤 되나?"
"이러니 저러니해도 넌 네 아버지랑 닮았어."
"우... 그건 좀 쇼크 일지도"
"고집부리는 것도 말이지"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수년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키리사메 마리사가 마법을 배우겠다며 집에서 아빠와 싸우고 나온 그날을. 우연히 키리사메 상점에서 생필품을 보충하러 온 린노스케가 말리긴 했지만 마리사는 고집을 꺽지 않고 가출까지 해가며 집을 나왔다.
"도대체 왜 키리사메가를 나온거야? 단순히 마법을 익히는 정도라면 본가에서 아버지의 눈을 피해가면서 익히는 것도 가능하잖아."
"그걸론 부족하니까."
"네 재능을 생각하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객관적으로 말해 마리사의 마법적 재능은 상당했다. 물론 환상향의 양대 마법사인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와 파츄리 노우릿지와 비교하자면 좀 모자랐지만 몰래몰래 마법을 익힌다 쳐도 30대가 되기 전에 어느정도 경지를 이룰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해. 그게 진실이야."
"뭐가 그리 부족한건데?"
"난 말이야... 그녀석의 친구니까, 그녀석 옆에 서고 싶어-"
"그녀석... 이란건 레이무를 말하는거네"
"응"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친구지 않아?"
모리치카 린노스케의 의문에 마리사는 린노스케의 말을 정정했다.
"린노스케, 친구란 말이야. 기본적으로 대등한 상대야. 물론 그런게 없어도 친구는 맺을 수 있지만 그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면 친구라는 이름의 짐이 되어버린다고. 난 그게 싫어-"
"흐음?"
"난 말이야 그녀석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 그녀석은 타고난 천재라서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요괴들과 대등한, 아니 요괴들을 내려다 볼수도 있는 존재야.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으로선 외로워... 그녀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외롭지 않도록 그녀와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은거야!"
마리사는 그렇게 말하며 마리사는 레이무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수년전, 아직 어렸던 키리사메 마리사는 모리치카 린노스케를 따라 하쿠레이 신사를 오른 적이 있었다. 린노스케와 레이무는 그때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리사에게는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린노스케, 여긴 어디야?"
"여긴 하쿠레이 신사라고 이곳 환상향에 생겨나는 이변을 해결하고 마을을 지켜주는 곳이야."
"마을을 지켜준다라... 그런데 이변은 뭐야?"
"가끔씩 마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잖아. 때도아닌데 꽃이 만발한다거나 몇몇 요괴가 난동을 부려 기상이변이 일어난다거나"
"얼음요정이 얼려버리는거라던가?"
"뭐, 그런건 이변으로도 안치지만."
마리사의 물음에 대답한것은 린노스케가 아닌 아직 앳된 어린 목소리였다. 마리사와 비슷한 나이대일까. 10살 정도의 나이에, 나이에 맞췄다고는 하나 아직 큰 무녀복. 그리고 너무나도 올곧고 바른, 뭐랄까.. 눈부신 느낌을 주는 소녀였다.
"오랜만이야 레이무."
"오랜만 린노스케, 오늘은 어쩐일이야?"
새파랗게 어린 꼬마의 반말에도 린노스케는 불쾌한 기색 하나 드러내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현재 신세지고 있는 키리사메씨의 딸에게 하쿠레이 신사를 좀 구경시켜 주려고."
"헤에, 마을의 지주이자 상인인?"
"아... 안녕"
린노스케의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며 인사하는 마리사, 그런 마리사를 보며 레이무는 무료함과 무심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린노스케를 향해 말했다.
"뭐, 적당히 구경시키고 가. 더럽히지는 말고.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뭐 그러지"
레이무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자 무시당한 마리사는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린노스케를 향해 말했다.
"저 아이는 누구야?"
"이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요괴를 퇴치하고 이변을 해결하는 존재. 환상향에서 최고로 공평한 인간"
"저 꼬마가?"
"너랑 같은 나이라고-"
린노스케의 말에 마리사는 조금 불만 스런 표정으로 레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불만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질투- 자신을 나름 어른으로 여기고 있는 마리사지만 어른들에게 있어선 어차피 아가씨. 하지만 저기 가고 있는 레이무는 틀렸다. 자기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객채로서 존중받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안들어"
"뭐, 그럴려나. 레이무는 그렇게 싹싹한 편은 못되니까"
린노스케는 마리사가 레이무에게 불만을 가진 부분을 오인했으나 마리사는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날 마리사는 꽤나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쿠레이 신사에서의 구경을 마쳤다.
며칠 후, 아버지와 린노스케 몰래 마을을 빠져나온 마리사는 다시한번 하쿠레이신사로 향했다.
자신과 그 짜증나는 무녀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지 알고 싶은 탓이었다. 물론 아직 10살 남짓한 꼬마인 마리사가 하쿠레이신사까지 홀로가기에는 길이 험했다.
모리치카 린노스케의 경우 약하다고는 하나 명백히 반요. 게다가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탓에 적어도 마을에서 신사까지의 가도정도는 혼자서도 문제 없었다. 하지만 마리사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소녀, 당연히 마을부터 신사까지 가는 가도도 힘겹기 짝이 없었다.
툭하면 장난을 거는 요정들, 때때로 보이는 얼음요정, 그리고 정말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 물론 환상향의 요괴 대부분은 인간을 잡아먹은 일이 드물다.
대부분 바깥 세계에서 인간과 싸우다 지쳐서 온 요괴도 있었고 그냥 조용히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 위해 온 요괴도 있었으며 또한 환상향의 관리자라 할 수 있는 요괴현자와 하쿠레이의 무녀의 위협에 겁을 먹은 녀석들이 환상향의 주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걔중에서 머리가 좋지 않거나 요괴현자나 하쿠레이 무녀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요괴도 있었다.
가령 지금 마리사의 눈 앞에 있는 요괴처럼
"먹어도 돼?"
"될리가 없잖아!"
"그런건가~?"
루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특유의 자세로 마리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리사는 다가오는 루미아를 보며 겁애 질린 표정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가는 도중에 요괴를 볼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탓이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껏 달리는 마리사, 하지만 루미아의 비행 속도는 마리사의 달리기 속도를 한참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이 마리사가 잡히려는 순간-
딱-
"아얏!"
갑자기 루미아가 나는 것을 멈추고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부여잡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마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날다가 나뭇가지에 부딪힌듯했다.
"저... 저기 괜찮아?"
마리사는 아파하는 루미아를 보고는 다가가 걱정스런 말투로 상태를 물었다. 그순간 마리사가 내민 손을 루미아가 강하게 움켜쥐었다.
"잡았다-"
나뭇가지에 강타당해 얼굴에 새겨진 붉은 선과 심홍의 눈동자는 붙잡힌 마리사를 한층더 공포에 빠뜨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향해지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바람이 마리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빡-
뭔가 강타하는듯한 소리에 마리사가 눈을 뜨자 보인것은 루미아의 머리를 강타하고 있는 불제봉이었다. 루미아의 머리를 강타한 불제봉은 반동으로 마리사의 머리도 강타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난데없이 불제봉에 강타당한 루미아와 마리사는 서로 불제봉이 선사한 고통에 머리를 부둥켜 감싸며 주저앉았다.
"하아, 이게 왠 손님인가 싶더니... 린노스케랑 같이온 꼬마였나."
주저 앉아 있던 마리사의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이것은 며칠전 마리사가 들은 소녀의 목소리였다.
다름 아닌 하쿠레이 레이무-
"루미아, 다른곳이라면 몰라도 가도에서는 사람 덮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게 그저께였을 텐데?"
"무녀... 무녀다! 붉은 무녀다!"
루미아는 레이무의 목소리에 반쯤 패닉에 빠진듯 외쳤다. 레이무는 그런 루미아를 향해 재빨리 접근한 후 루미아의 전신에 덕지덕지 부적을 붙였다.
순식간에 움직임을 봉쇄당한 루미아는 당황해하며 레이무를 향해 외쳤다.
"풀어줘-"
"시간이 지나면 풀릴테지만. 일단은..."
레이무는 부적이 덕지덕지한 루미아를 집어든 후 날아올라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이 어느정도 선에 이르자 레이무는 그대로 손을 놓아 루미아를 숲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레이무가 내려오자 그 광경을 본 마리사는 레이무를 향해 물었다.
"저... 저기 괜찮은거야?"
"뭐가?"
"방금전에 던진 요괴말이야."
"걱정마, 인간이라면 몰라도 보통 요괴들은 저정도로 죽거나 하진 않으니까. 심해봐야 중경상정도 일까나?"
뭔가 냉담하지만 어딘가 믿음이 실린 말에 마리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저나 무슨일로 혼자서 이 가도에 있는거야? 아무리 내가 정기적으로 요괴를 퇴치하고 있다해도 어린애 혼자서 다니기엔 위험하다고"
"그... 그건..."
마리사는 레이무에게 네가 왜 어른들에게 인정받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리사의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에 레이무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이유는 아무래도 좋지만. 우선은 우리 신사로 가자. 어차피 바로 마을로 돌아가기엔 시간도 좋지 않고."
"아..."
마리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숲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요정들과 루미아에게 쫓기는 사이 어느새 저녁이 된 것이었다.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테니까"
레이무는 그렇게 말한 후 마리사의 대답도 듣지않고 그대로 마리사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하쿠레이 신사로 향했다.
신사에 도착하자 보이는 것은 어둠이 깊게 드리운 황량해보이는 하쿠레이 신사의 모습이었다. 지난번의 본 풍경과는 다른 느낌에 마리사는 의아해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신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우니까 조심해."
레이무는 그말과 함께 마리사를 두고 먼저 신사로 들어갔다. 신사로 들어가 불 부터 켠 레이무는 그대로 마리사에게 방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말한 후 부엌으로 들어갔다.
레이무의 말에 따라 방에 들어간 마리사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는 찬기를 느꼈다. 상당히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것일까? 적어도 수시간은 아무도 쓰지 않은듯 했다.
찬기가 가득한 방에서 레이무를 기다리던 마리사는 레이무가 지내고 있는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뭔가 많은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살풍경한 방-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이었다.
"이런곳에서 어떻게..."
"지내냐고 말하고 싶은거지?"
어느새 식사를 차렸는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는 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몇개의 반찬을 가져온 레이무는 그것을 방 한가운데 있는 코타츠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아.. 아니 그게"
"할말은 알고 있어. 뭐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은 다 그러니까"
레이무의 반응에 마리사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레이무에게 물었다.
"저기.. 레이무라고 했지, 궁금한게 있는데? 혹시 이 신사에..."
"혼자살고 있냐는 질문이지?"
"그... 그렇긴 한데"
"뭐 솔직히 말하면 그래. 나는 이 신사에서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혼자 살고 있어. 무녀로서 필요한 것을 익히면서, 그리고 무녀로서 해야할 일을 하면서 말이야"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레이무의 말에 마리사는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레이무를 향해 물었다.
"그럼 혼자서 쭉 살아온거야?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글쎄... 누구의 도움도, 라기에는 무리겠지 환상향의 요괴현자 야쿠모 유카리에게 종종 도움을 받고 있으니. 하지만 적어도 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 부대낀 적은 별로 없네."
"외롭진 않은거야?"
"글쎄, 외로움 같은건 느껴본적 없어. 이것이 나의 삶이고 나의 인생이니까.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레이무의 말에 마리사는 자신의 얕은 생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업을 레이무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황량한 곳에 인간과 마주하지 않으며 홀로 지킨다는 것은 마리사로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레이무가 어째서 자신과 달리 어른으로서 대접받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지만 레이무의 생활의 편린을 마주한 마리사는 레이무의 생활을 보며 자신의 안이한 생각을 반성했다.
동시에 동정.. 아니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을 레이무에게 품었다. 가장 가까운 감정이라하면 경의일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동정받거나 할건 아니니까"
"동정하는게 아니야! 나는..."
마리사는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감정에 목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마리사의 눈가에는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마리사는 결심했다.
나는 레이무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그 뒷이야기는 간단하달까... 레이무와 마주할 힘을 얻기 위해 마리사는 린노스케의 도움을 얻어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그것이 평범한 아가씨로 살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가출해 마법의 숲에 정착. 지금에 이르게 된 이야기였다.
"그럼 상처도 치료했으니 마법 연구에 들어가 볼까나- 야쿠모 란에게 먹힐만한 탄막을 만들어줘야지!"
"무리는 하지 말라고. 스펠카드 싸움이라고해도 아예 다치지 않는건 아니니까 말이야."
린노스케의 말에 마리사는 미소로 대답하며 빗자루에 올랐다. 빗자루에 오른 마리사가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자 린노스케는 가게 안쪽에 숨어있는 소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리사의 말에대해 어떻게 생각해? 레이무-"
"왠지 좀 부끄러운걸-. 그녀석의 생각과는 좀 틀리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쁘네"
향림당에서 몰래 차를 마시고 있던 레이무는 마리사의 말에 약간의 기쁨을 느꼈다. 마리사의 말처럼 그렇게 외로움을 느낀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를 바라지 않는것도 아니었다.
그런의미에서 마리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가끔 귀찮을때도 있긴하지만 자신에게 부탁하거나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는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직접 자신을 마주하고 하쿠레이의 무녀로서가 아닌 레이무 그 자체로서 봐주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마리사가 무리하는건 좀 걱정되네."
"그래도 상대가 상대인 이상 무리할 수밖에 없지 않아?"
지금 마리사가 도전하고 있는 상대는 야쿠모 유카리의 식신 야쿠모 란. 환상향의 요괴현자의 식신인 만큼 홍마관이나 백옥루등 각 지역의 주인급은 아니더라도 보통요괴로선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강함은 일반적인 싸움보다 탄막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밀한 계산아래서 발해지는 그녀의 탄막은 보통방법으론 피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계산과 계산의 교차속에서 발해지는 탄막의 향연-
그 탄막의 향연은 상대를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죽음의 선고라고도 할 수 있었다.
"보통방법으로 그녀의 탄막을 깰 수는 없을거야."
"레이무라면 어떻게 해?"
린노스케의 물음에 레이무는 뭘 묻느냐는듯 린노스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전부 피한후 몽상봉인-"
"정말 간단하게 말하네."
"나한테는 그게 당연한거니까 말이지"
레이무는 특별하다. 타고난 천재... 아니 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란 존재였다. 모든것에 얽메이지 않고 공평하고 순수하게 마주하며 그 너머를 보는 존재. 솔직히 탄막놀이가 아닌 순수한 요괴퇴치라 하면 그녀를 막을 만한 존재가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누군가가 말하길 운명에 사랑받는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린노스케는 그 운명이 레이무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린노스케는 탄막놀이 할 생각 없어? 마리사랑 함께 가르쳐 줄께-"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들 처럼 몸을 움직이는 취미는 없거든"
린노스케는 레이무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수일 후-
"싸우자 야쿠모 란!!"
"정말인지 질리지도 않고 오는구나"
마리사의 외침에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내는 야쿠모 란. 그 모습에 마리사는 모자를 눌러쓰며 야쿠모 란을 향해 외쳤다.
"이번엔 반드시 이길 거라고!!"
"그 말은 일단 내 탄막을 모두 뚫고 말하지 그래"
란은 마리사의 말에 냉랭한 말과 함께 한장스펠카드를 꺼내 선언했다.
"식휘「프린세스 텐코 -Illusion-」!"
앞서깨진 4개의 탄막 대신 바로 5번째 탄막을 선언하는 란, 조금이라도 시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었지만 마리사로서도 쓸데 없는 체력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간다!"
란의 탄막을 피하며 매직 미사일로 틈새를 노리는 마리사. 하지만 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척이나 가볍게 매직 미사일을 피하며 마리사가 이동할만한 방향으로 탄막을 집중시켰다. 예지나 다름없는 예측에 마리사는 살짝 당황했으나 몇번이나 겪은 일이므로 기합으로 탄막의 세례를 벗어났다.
5번째 탄막을 돌파당하자 란은 그대로 여섯번째 탄막 식탄「얼티밋 부디스트」와 식탄「유니래터럴 콘택트」를 순차적으로 발동했다.
여섯번째 탄막은 어째어째 돌파했지만 결국 일곱번째 탄막에서 쏟아지는 탄막의 폭풍을 채 피하지 못한채 마리사는 다시한번 고배의 쓴잔을 들이켜야만 했다.
탄막놀이가 끝나고 야쿠모 란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마리사를 향해 물었다.
"왜 계속 나에게 도전하지? 탄막놀이 상대라면 다른 존재도 있을 터다만?"
"얼마전에 탄막놀이에서 너한테 졌잖아. 레이무는 너한테 이겼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너한테 집중하려고"
"고작 그러한 이유때문에 매번 나를 귀찮게 불러대는 것인가...!"
마리사가 말한 이유에 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분노했다. 안그래도 야쿠모 유카리의 식신으로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건만 그런 하잘것 없는 이유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런고로 한동안 좀더 어울려줘"
"어울릴까 보냐! 도대체 왜 그렇게 무녀에게 신경을 쓰는거냐! 너랑은 다른 삶을 살고 또 살아갈 존재인데!"
"친구니까!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냐고!! 나는 그녀석의 친구란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어. 그녀석의 유일한 '인간친구'란 것에"
"그러고보면 그 무녀는 인간 친구가 적군..."
"적다기 보다 나말곤 아예 없을걸. 다른 사람들은 레이무를 그녀 무녀로 볼 뿐이니까"
마리사의 말에 란은 조금 싸늘한 눈빛으로 마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 무녀를 동정하는건가?"
"아니 난 그저 레이무의 친구로서 있고싶은것 뿐이야. 그 마음에 동정심같은건 전혀 없다고!"
란에게 대꾸하는 마리사의 미소는 그 어느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