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시리즈"와 가면 라이더 시리즈의 2차 창작입니다.
또한, 2차 창작이기 때문에 오리지널 스토리가 있으며, '가면라이더'나 '리리컬 나노하'의 팬 여러분들은 불쾌하게 여기실만한 설정이나 장면도 다수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OK, 문제없이 볼 수 있어"라고 한다면 부디 봐주시기 바랍니다.
1화 백색과 백색
그 날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져서, 자칫 잘못했다간 동사해버릴 것처럼 추운 밤.
폭풍처럼 몰아치는 눈보라의 비명소리만이 산 속에 울려퍼져────── 야 할 터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끊임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산이 비명을 지를 때.
그 소리에 섞여, 다른 소리가 들렸다.
돌끼리 부딪히는 소리와도 다르고, 금속음과도 다르다.
그 '소리'는 점차 커져갔으며, 들려오는 간격도 짧아졌다.
─있다.
인간은 커녕 한랭지대에 사는 생물의 대부분조차 출입을 거부하는 이 설산 속에.
'무언가'가,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그 두개의 그림자가 교차할 때마다,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기이한 것은 그 두 '그림자'의 주변.
이 눈보라는 설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지만, 그 둘의 주변만은 달랐다.
─그 둘의 주변에 떨어져내리고 흘러내리는 것은 '물'이었으니까.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가운데에서, 그곳만 '물'이 흐르고 있다.
이유는 간단. 두 그림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로 인해, 그곳의 눈만 녹아서 '비'가 되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지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후를 바꿔버리면서.
─칠흑의 수호신과 백은의 파괴신은, 세계의 운명을 걸고 싸웠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쿠우가의 주먹이 눈보라를 '갈라'버리며, 다그바를 향해 날아간다.
다그바는 그 강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주먹을 뒤로 빼낸 후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는 피하지도 않은 채, 쿠우가의 주먹을 머리로 받아낸다.
주먹과 머리가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한순간 눈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져 일시적으로 '눈이 그친' 상태가 된다. 그 정도의 충격파가 주먹과 머리 사이에서 일어났다.
더군다나,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내리찍은 형태였기에 다그바가 딛고 있던 설산의 눈이 모조리 날아가버리며, 그 밑에 있는 대지조차도 밑으로 꺼져 크레이터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정작 다그바는 버텨냈다.
가진 힘이 너무나도 막강하여 그 특징을 살리지도 않고 승리해버리는 경우가 많기에 잊어버리기 쉽지만, 다그바는 "사슴벌레종"의 그론기. 그에게 있어 머리는 약점이 아니라 신체 중 가장 단단한 부분 중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데미지가 아예 없을 수는 없었기에, 금이 간 머리 부분의 갑각과 입에서 선혈이 새어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 러─ 니─ 까─]
웃었다.
초고층 빌딩조차 일격으로 분쇄하고, 산조차 쪼개버릴 수 있는 강격을 머리에 직격으로 받아놓고도.
싸움에 미친 백색의 왕은, 웃고 있었다.
다그바는 뒤로 뻗었던 주먹을 움직였다. 목표는 물론 쿠우가.
바로 조금 전, 다그바의 머리에 꽂혔던 것과 동일한 파괴력을 담은 주먹이, 공중에 뜬 상태였던 쿠우가의 복부에 적중된다.
[카, 악……!!]
쿠우가의 몸이 위로 날아오른다. 휘몰아치는 눈의 폭풍을 둘로 찢어버리며, 엄청난 기세로 날아가 산 한가운데에 쳐박힌다.
설령 다그바의 바로 밑 지위에 해당하던 가돌이라고 해도 받았다가는 끝장나버렸을 일격. 그것을 맞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쿠우가가 다그바와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존재들의 싸움은 언제나 두가지 중 하나다.
한순간에 끝나던가, 엄청나게 길어지던가. 지금의 경우는 엄연히 후자에 속했다.
[그렇게 깔짝깔짝 깎는 공격 아무리 해봤자 나한테 못이긴다니까.]
고 가돌 바를 지워버렸던 "검은 금빛의 힘". 그것을 웃도는 위력의 공격을 받아놓고도 다그바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허세도 아니고, 자만도 아니다. 다그바와 쿠우가의 힘을 감안하면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차피 공격할 거라면─]
조금전까지 아무것도 쥐어져있지 않았던 다그바의 손에, 무기가 쥐어진다.
푸른 드래곤의 형상이 조각되어있는 장창. 쿠우가의 무기 중 하나이기도 한 드래곤 랜스. 쿠우가와 다그바의 힘 중, '물'의 힘을 상징하는 무기.
그것을 본 쿠우가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자신이 사용할 때는 몰랐는데, 다그바의 손에 쥐어진 것을 보니 압도된다. 저게 이 정도까지 무서운 무기였던가.
─라고, 언제까지나 계속 전율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쿠우가의 손에도 무기가 쥐어진다.
마치 거인이 사용할 것처럼 거대한 보라빛의 대검. 그것의 이름은 「타이탄 소드」. 쿠우가의 힘 중 '대지'를 뜻하는 무기다.
대검을 두 손으로 들어올린 쿠우가와, 장창을 수평으로 눕힌 채 쿠우가에게 겨눈 다그바. 하지만 그 침묵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았다.
[이런 것 정도는 하라고!!]
「스플래시 드래곤」
드래곤 랜스를 내지르자, 그 순간 푸른 빛의 수룡이 창에서부터 나타나, 송곳니를 드러냈다.
어지간한 빌딩조차 휘감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수룡은 쿠우가를 발견하고는 대지를 가르며 날아갔다.
물론, 쿠우가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다.
「카라미티 타이탄」
대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보라빛의 거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룡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거인이.
[GYYYYYYYAAAAAAAAAAAAAAAAAAAAAAAH!!]
[AR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
수룡과 거인이 포효하며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수룡의 송곳니가 거인의 몸에 박히고, 거인의 주먹이 수룡의 몸통을 때리는 순간.
설산 전체를 뒤흔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어차피 양쪽 모두 지금의 공격을 '미끼'로 썼을 뿐이니까 상관없지만.
수룡의 뒤에서는 다그바가, 거인의 뒤에서는 쿠우가가 튀어나온다.
그들은 그 공격들을 사용하자마자 그 뒤에 숨어서 거리를 좁힌 것이다.
[하핫! 역시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구나!!]
같은 취급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런 말을 해서 틈을 보이는 순간, 눈앞의 하얀 괴물은 그 틈을 비집고 공격해 순식간에 자신을 육괴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물론 틈이 보이면 자신도 다그바를 육괴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건 마찬가지지만, 자신과는 달리 다그바는 그렇게 쉽게 틈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도 경험의 차이라는걸까.
─확실히 그렇다.
상대는 1만년 이전부터 싸움에 미쳐 살았던 존재.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만의 인간을 학살하고, 단지 "게겔(게임)에 방해되니까"라는 이유로 같은 그론기마저 대부분 죽여버린 존재다(본래 깨어난 그론기는 2백여체였지만, 그 중 150여체가 다그바의 손에 사라졌다).
지금의 쿠우가만이 아니라, 고대의 쿠우가와도 싸웠던 "궁극의 어둠을 불러오는 자". 아마도 '싸움'과 '살해'라고 하는 면에 있어서, 자신은 미래영겁 눈앞의 파괴신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분명 지금 쿠우가의 힘─ '무시무시한 검은 전사'로서의 힘을 각성한 지금의 자신은 다그바와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그바에게는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계를 피바다로 물들이고도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눈앞의 '파괴신'에게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의 미소가, 이런 녀석의 불합리한 폭력때문에 사라지지 않도록.
오직 그것만이, 쿠우가가 공포를 이겨내고 다그바에 맞서고 있는 이유다.
검은 수호신과 하얀 파괴신의 주먹이 맞부딪힌다.
쿠우가의 '검은 빛'과 다그바의 '하얀 빛'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생겨 주변의 눈밭을 깨끗이 날려버리고 지면을 드러나게 한 후, 지진과 산사태마저 일으킨다.
오른주먹끼리의 충돌은 무승부. 이번에는 왼주먹끼리 부딪힌다. 역시, 조금전과 동일한 충격파가 생겨나고, 반쯤 무너졌던 산이 완전히 가라앉아버린다.
그래도 둘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지키기 위해 싸우는' 쿠우가와, '싸우기 위해 싸우는' 다그바. 완전히 상반된 둘의 싸움은 결코 '무승부'로 끝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죽던가, 둘 다 사라지던가. 그렇게 되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쿠우가와 다그바가 발휘하는 힘의 근원은 '아마담'이라고 불리는 영석이다. 이것은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품고 있던 힘을 개방하여 숙주를 강하게 만들어왔으며, 실제로 쿠우가는 전기충격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금색의 힘'이라고 하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쿠우가와 다그바가 서로에게 주고 서로가 받는 충격은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당연히, 아마담이 진화하는 수준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한 빨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궁극"이라고 일컬어진 힘을 가진 두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더욱더 진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쿠우가인가 다그바인가. 누가 지른 포효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 포효가 터져나옴과 동시에, 둘에게서 '빛'이 솟아난다.
쿠우가에게서는 칠흑의 빛이, 다그바에게서는 백은의 빛이.
두 빛은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하늘을 향해 내뻗어진다.
─그 혼돈의 빛기둥은,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는 구름마저 꿰뚫어 쪼개버리고는 그보다 더욱 위로 날아올라간다.
그것으로, 더이상 눈보라는 몰아치지 않게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타격을 입히면 입힐수록 서로를 진화시켜버린다. 싸움에 있어서, 이만큼 골치아픈 사태도 드물다.
그리고 그것을 양쪽다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질이 나빴다.
다그바에게 있어서, 싸워야할 상대가 강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기뻐해야할 일이었다. '싸움'이라는 행위 자체를 탐닉하고, 그것을 인생의 의미로 정한 다그바에게 있어 싸울 상대가 강해져 "싸움이 더욱 길어진다"는 것은 더할나위없는 즐거움이니까.
다그바가 "상대가 강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쿠우가는 "상대가 강해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다. 다그바가 얼마나 강해지든, 자신이 얼마나 강해지든, 이미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될 상대'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
두 사람의 '분노''증오''투쟁심' 그리고 '희열'. 그 모든 것들이 포효속에서 한데 뒤섞여 터져나온다.
두 사람의 몸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과 동시에 낙뢰에 직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움직임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오직, 주먹과 발을 주고 받는다. 그 단순한 행위들 뿐이지만, 그것이 멈추는 일도 느려지는 일도 없다.
─서로의 갑각을 부수고.
─서로의 피를 튀기며.
─서로의 주먹끼리 부딪히고.
─그렇게, 서로를 '파괴'해나간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얀 파괴신은 여전히 웃고 있다.
그 몸을 지키던 갑옷이 깨져나가고, 사방으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는데도.
한없이 희열에 젖어, 웃고 있었다.
무엇을 더 말할수 있을까.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싸움'이다. 싸우지 않는 삶은 그에게 있어서 가치가 없고, 죽이지 않으면 싸움의 의미가 없다.
'싸움을 위한 삶'. 그에게 있어서, 전투라는 행위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욕망을, 투쟁심을, 전투본능을 무한히 충족시켜줄 상대가 눈앞에 있다. 수만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기까지 자신을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는 오직 '쿠우가'─ '전사'라고 불리는 존재 뿐이다.
그 '쿠우가'와, 전신전령을 다해서 싸우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동족들이 어떻게 되든, 린트(인류)가 어떻게 되든, 세계가 어떻게 되든.
설령 몽땅 멸망해 없어져버린다고 해도, 다그바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일들따위는 쿠우가와의 싸움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으니까.
설령 이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고 해도, 쿠우가와 싸울 수 있다면 그는 웃을 수 있다.
다그바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쿠우가'는.
그의 유일무이한 숙적은, 왜 울고 있는걸까.
사실은, 싸움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본래부터 타인과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쿠우가─ 고다이 유스케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상대가 누가 됐든 싸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 녀석들(그론기)가 싫은 건 사실이다. 이 녀석들이 날뛸 수록 사람들이 죽고, 사람들에게서 미소가 사라져 가니까.
사람들의 미소를, 불합리한 폭력으로부터 지키고 싶다. 그 일념만으로 유스케는 이날 이때까지 그론기와 싸워왔다.
하지만, 그런데도.
'설득'이 통하는 상대라면, 싸우지 않고 끝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은 상대이기 때문에 싸울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결코 유스케의 본의가 아니다.
아아,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유스케는, 눈앞에서 웃고 있는 이 하얀 파괴신조차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해주고 싶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러나 유스케의 생각은 생각이고,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다그바는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고 있고, 유스케도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쿠우가가 진화한다.
보다 강하게,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은 것을 지킬 수 있게'.
칠흑의 갑옷 위에, 금색의 전각들이 돋아난다.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탄생한 쿠우가의 '어둠'에, 금색의 '빛'이 더해진다.
─단 한순간.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눈이 칠흑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그대로 잠깐이었고, 칠흑색이었던 눈은 다시 붉은 색으로 돌아갔다.
훗날, 「라이징 얼티메이트」라고 칭해지게 될 '궁극을 넘어선 궁극'.
그런 힘을 손에 넣고도, 고다이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궁극의 파괴신'이 되고도,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주먹도… 이 힘도… 모두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
─아아, 그랬다.
지금 이것은, 단순한 '진화'가 아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고다이 유스케'라는 인간이, '쿠우가'라는 파괴신의 의지를 꺾고 승리한 순간이었다.
[후, 후후…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것을 보고 있던 다그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금빛의 어둠'을 손에 넣어, 자신을 능가해버린 쿠우가를 보고도.
쿠우가가 자신을 능가했다. 그것은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뿐.
─쿠우가가 할 수 있는 진화라면, 자신이 할 수 없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그바가 진화한다.
보다 강하게,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은 것을 부술 수 있게'.
백은의 갑옷 위에, 쿠우가와 같은 금색의 전각이 돋아난다.
하지만 쿠우가보다도 훨씬 날카롭고,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전각이 돋아난 것은 그의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그바가 가지고 있던 칠흑의 눈은, 변함없이 칠흑색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다그바는, 이 거대한 '파괴충동'에도 휩쓸리지 않고, 여전히 '자기 자신의 파괴충동'을 지키고 있었다.
훗날, 「오버 얼티메이트」라고 칭해지게 되는 '궁극을 초월한 궁극'.
라이징 얼티메이트 쿠우가와 완전히 '동등한' 존재인 그것은, 예전과 변함없는 말을 외친다.
[그렇다면 내 주먹과 내 힘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고다이 유스케는 쿠우가의 파괴충동을 뛰어넘었다.
다그바는 그 파괴충동마저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바꿨다.
하지만, 어느 쪽이 우월한가, 어느 쪽이 뛰어난가에 대해서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겠지.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둘이 격돌하기 시작했으니까.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결판은 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한 둘은, 우연히도 동시에 움직였다.
쿠우가는 대지를 박차 산산조각내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다그바는 그것과 동시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힘의 사용법에 관해서는 확실히 다그바 쪽이 한수 위. 그러나 그것이 전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정도였고, 승부를 좌우할 정도의 물건은 되지 못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전력은 동등했으니까.
쿠우가가 만들어낸 열화의 구체와 다그바가 불러낸 번개의 창이 하늘에서 부딪힌다.
두 가지의 힘은 강렬한 스파크를 터트리며 동시에 사라졌지만, 애초에 둘 모두 그걸로 상대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최후의 최후에 결판을 내는 것은 이런 '장난'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먹' 뿐이라는 것을.
'칠흑처럼 어두운 빛'을 품은 쿠우가의 주먹이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백은처럼 밝은 어둠'을 두른 다그바의 주먹이 그것에 맞선다.
[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본질적으론 같지만, 그럼에도 정반대의 두 힘이 부딪혀, 밤 하늘을 대낮처럼 비추어냈다.
'칠흑의 빛'과 '백은의 어둠'은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겨루다가─ 동시에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빛'과 '어둠'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며 하늘을 꿰뚫는다.
그 안에 들어가있는 쿠우가와 다그바도 함께 치솟아오른다.
─하늘을 뚫고.
─대기권을 뚫으며.
─별밖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나아간다.
우주 공간.
살아가는데 공기를 필요로 하는 생물이라면─ 아니, 그 이전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물'이라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곳.
생명을 가진 자가 맨몸으로 나서는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무정의 공간.
그럼에도,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곳에 서 있다.
칠흑의 빛을 두른 쿠우가와, 백은의 어둠을 걸친 다그바가.
다그바가 주먹을 움켜쥔다.
[잔재주는 부리지 않아… 정면에서 깨부순다!!]
쿠우가가 주먹에 힘을 준다.
[피하지 않겠다… 너의 그 파괴를!!]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박차며, 오직 서로를 향해서.
[쿠우가아아아아아아아!!][다그바아아아아아아아아!!]
주먹이 충돌한다.
'빛'과 '어둠'이 동시에 폭발하여, 태풍처럼 주변을 휩쓴다.
유성군이 휩쓸려 날아가고,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다그바는 쿠우가를 파괴하기 위해서.
쿠우가는 다그바로부터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 없다.
[아직… 아직 멀었다…! 내 '충동'은, 이런 걸로는 멈추지 않아!!]
[모두를 지켜낸다… 뭐가 뭐라고 하든, 반드시!!]
둘은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하지만 잠깐 뿐이었고, 다시 서로를 향해 날아가 충돌하고, 떨어지고, 다시 충돌한다.
'흑색'과 '백색'은 그렇게 몇번을 서로에게 부딪히며, 지구의 주변을 돌았다.
극한을 넘어서 진화해버린 둘이 지구를 돌아버릴 때까지, 불과 1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싸움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스플래시 드래곤」
「카라미티 타이탄」
다시 한번, 물빛의 용과 자색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전에 나타났던 것들과는 크기도 외형도 전혀 다른… "초월 궁극"이라는 말에 걸맞는 '괴형'이 되버린 두 가지 힘이.
거인이 주먹을 휘두르면 용은 그것을 물어뜯는다.
용이 거인을 휘감으면 거인은 용의 목을 붙잡고 조른다.
무식한 힘겨루기라고 매도당해도 할 말 없는 광경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 힘겨루기에서 패하는 쪽은 쌍방이 폭발하는 충격을 전부 뒤집어쓰고, 그 주인에게로 역류하게 되니까, 결코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그바의 용도 쿠우가의 거인도,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다가 동시에 소멸되버렸고 그것과 함께 쿠우가와 다그바의 손에 쥐어진 대검과 장창도 박살난다.
그 다음에 이어진 것은─ 물론 그 주인들의 싸움이다.
다그바가 백색의 빛에 휩싸인 채 쿠우가를 향해 킥. 쿠우가는 그것을 피해냈고, 표적을 맞추지 못한 다그바는 그대로 소행성 몇개를 때려부수며 날아가다가 겨우 정지하고는 몸을 뒤로 돌렸다.
그 순간 쿠우가의 숄더 태클이 다그바의 복부에 적중. 쿠우가는 다그바에게 몸을 꽂은 채로 날아가, 다그바를 그 뒤의 소행성에 쳐박았다.
소행성이 그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나는 것과 동시에, 다그바는 두 손을 맞잡고 쿠우가의 등을 향해 투 핸드 스매싱. 쿠우가는 다그바에게서 떨어져, 아래쪽을 향해 날아갔다.
다그바는 그와 반대로 위로 올라갔다가 몸을 반전시켜, 그곳에 있던 소행성을 굉장한 기세로 박차 쿠우가를 향해 쫓아간다. 그 충격으로 디딤대로 쓴 소행성이 박살나고 그 파편이 다른 소행성들에까지 파손을 일으키지만 다그바는 그런 것에 신경쓸만큼 섬세한 성격이 아니다.
쿠우가를 따라잡은 다그바는 그대로 백색의 빛이 감긴 오른주먹을 내뻗지만,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 있던 쿠우가는 몸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자신의 오른 주먹을 내지른다. 물론 그 주먹에도 칠흑색의 빛이 감겨져있다.
쿠우가의 주먹은 다그바의 얼굴에, 다그바의 주먹은 쿠우가의 얼굴에. 크로스 카운터의 형태로 적중되고 둘은 자신들의 공격에 의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엄청난 기세를 일으키며 날려갔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몸이 정지한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아까처럼 소행성이나 단단한 물체를 버팀대로 쓰지 않고도.
천천히 속도가 줄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정지한 것이다.
칠흑색의 빛.
백은색의 어둠.
똑같은 존재이건만 완전히 다른 두가지 힘을 가진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박차고 그 추진력으로.
이미 그 둘에게 이 '우주공간'이라고 하는 장소의 법칙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두 사람의 아마담은, 그런 수준까지 진화해버린 것이다.
이윽고, 두 사람은 모든 힘을 터트린다.
검은 수호신과 하얀 파괴신. 그 둘이 가진, '궁극의 파괴'.
그 두가지 힘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같다. "모든 것을 無로 되돌리는 파멸".
하지만, 그럼에도 달랐다. 쿠우가와 다그바의 '파괴'는.
쿠우가의 파괴는 '흑색'.
다그바의 파괴는 '백색'.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는 그 두가지 힘의 목적이다.
지키기 위해서 파괴하는가.
죽이기 위해서 파괴하는가.
오직, 그 작은 차이 뿐이었지만.
그 작은 차이가, 쿠우가와 다그바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차이점이었다.
두개의 '궁극의 파괴'가 충돌했다.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히도, 이미 두 사람은 '진화의 극'조차 넘어선 상태라 전장을 우주로 바꾼 후였기 때문에 그 여파가 지구까지 미칠 일은 없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두 궁극의 파괴가 부딪히는 순간, 전 세계가 섬광에 휩싸였다.
"하아… 하아…"
"후우… 후우…"
장소는 바뀌어서, 이곳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설산.
마지막으로 확인한 위치로 봐선 히말라야 부근이라고 생각되지만, 자세한 건 알 수 없다. 그런 것에 신경쓸 틈이 없기도 하고.
두 사람이 발한 '궁극의 파괴'는 완전히 동등한 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궁극의 파괴'끼리 결말이 날 일은 없다.
'궁극의 파괴'는 그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궁극의 파괴'끼리 부딪히면 '상쇄'될 수밖에 없다.
그 파괴로부터 주인의 몸을 지켜낸 쿠우가의 갑옷도, 다그바의 갑옷도 가루가 되어 흘러내린다.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고다이 유스케'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대의 인간'.
얼티메이트 킥끼리는 상쇄가 됐다고 해도, 그것이 불러온 여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갑각이 그들을 지켰다고는 해도, 그것들은 지면에 낙하하는 시점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을만큼 가루가 된 상태였다. 그 이후의 충격들은 그들이 '인간의 몸'으로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그 신체는 간신히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을 뿐, 겉도 속도 엉망진창. 두 사람의 몸은 이미 실제적인 의미에서 유리처럼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몸 여기저기가 깨지고, 파편이 떨어져 내리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두 사람을 멈추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움직였다.
무릎까지 파묻힐만큼 높이 쌓인 눈밭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다리로 건너갔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당장이라도 쓰러져버릴 것처럼 위태롭지만 그래도 걸어간다. 오직 눈앞의 적을 향해서.
이미 이곳에 있는 것은 '쿠우가'도 '다그바'도 아니다.
그저, 단지, "인간 고다이 유스케"와 "인간으로 돌아온 그론기"가 한 사람 있을 뿐.
그럼에도 싸워야할 이유는 여전히 남아있다. '힘'이 사라졌든 몸이 엉망이든, 그럼에도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먼저 주먹을 날린 것은 '다그바였던 인간'. 산조차 부술듯했던 그 힘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단순한 '인간의 주먹'. 그것이 유스케의 머리에 꽂혔다.
정수리에 꽂힌 주먹에도, 유스케는 쓰러지지 않고 버텨낸다. 오히려 그것을 머리로 밀어내면서, 오른발을 휘둘러 다그바의 복부를 걷어찬다. 다그바는 복부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다가 물러나지만, 유스케 역시 발밑이 불안정했던 탓에 휘청거린다.
그틈을 놓치지 않고, 다그바는 통증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
그대로 유스케의 목을 부여잡고 힘을 가하며 조른다.
"크, 카아아아…!"
목을 졸라 통증을 준다거나, 질식사시킨다거나. 그런 '작은' 공격이 아니라, 목뼈를 부러뜨려버리기 위한 것.
하지만 그것을 견뎌내며, 유스케는 오른주먹을 크게 쳐올린다. 유스케의 주먹은 다그바의 왼쪽 늑골을 측면에서 강타하며, 뼈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낸다.
"으, 가아악…!!"
왼쪽의 늑골이 부러졌다. 2개인가 3개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그바는 손을 내질렀다.
"이형"이 되기 이전부터 그론기는 사냥으로 부족을 유지하는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 다치는 건 일상. 고통을 참는 것에 있어서는 '현대인'인 유스케보다 훨씬 뛰어났다.
고통을 견디며 내질러진 다그바의 오른주먹은 그대로 유스케의 목을 강타한다.
"……!!"
유스케는 비명조차 지르지못하며, 터져버린 식도에서 피를 토해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그바는 몸을 던져 달려들어 오른주먹을 다시 휘두른다.
하지만 유스케는 타이밍을 맞춰 고개를 틀어서 다그바의 주먹을 피해냈고, 다그바의 주먹은 유스케의 뺨을 찢으며 허공을 갈랐다.
크게 허점이 드러난 다그바에게 유스케가 공격. 다그바가 주먹으로 자신의 목을 쳤던 것처럼, 유스케도 다그바의 목을 후려친다. 단, 주먹이 아니라 손날로.
똑같이 목을 공격당한 다그바 역시 피를 토하며 뒤로 몇발짝이나 물러났고, 이번에는 유스케가 몸을 던졌다.
─다그바는 그 유스케의 몸을 그대로 받아내며, 뒤로 넘기듯이 던져버린다.
"크윽…!"
유스케는 다리를 움직여 몸을 지탱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다리가 눈밭에 빠져버려 결국 뒹굴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넘어진 유스케의 위로, 다그바의 무릎이 떨어진다. 그것에 복부를 직격당한 유스케는 입을 벌리고, 또한번 피를 토한다.
그대로 위에 올라탄 다그바가 유스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유스케의 손이 다그바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 중 약지 손가락이 구부러진 상태였기에, 그것은 그대로 다그바의 눈에 박혀버렸다.
"아, 카, 그가아악…!!"
꿰뚫려버린 눈에서 피를 쏟으며, 다그바는 유스케의 손을 떨쳐내기 위해 팔을 휘저었다. 그 틈을 타서 유스케는 자신의 위에 올라탄 다그바를 걷어차 날려버리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입에서도, 코에서도, 눈에서도, 귀에서도.
전신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두 사람은 일어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다그바는 웃고 있고.
─여전히, 유스케는 울고 있다.
어째서 이 녀석은 울고 있는걸까.
이렇게나 즐거운 싸움인데도, 왜 이 녀석은 울고 있는걸까.
자신의 힘을 극한 이상으로 개방하여, 그것을 몽땅 쏟아붓고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학살'이 아닌 '대등한 상대와의 전투'. 이런 전투는 선대의 '운'을 쳐죽이고 자신이 '운'이 됐을 때조차 겪지 못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녀석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다그바는 즐겁고 행복해서… 이런 만신창이가 되고도 웃을 수 있었다.
전신에 상처를 입고 몸안에 있는 피 중 절반을 쏟아내고도, 웃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은 이렇게 즐거운데, 어째서 '쿠우가'는 울고 있는걸까.
도대체, 무엇때문에?
'궁극'에 도달하고, 그것조차 초월해버린 쿠우가는 분명 자신과 동일한 존재다.
그러니까, 자신이 즐거우면 당연히 쿠우가도 즐거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쿠우가는 울고 있다.
머리가 아파져왔다. 쿠우가에게 맞았을 때보다 훨씬.
쿠우가가 흘리고 있는 눈물의 의미.
그것을 알지 못했기에, 다그바는 끊임없는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이 녀석은 웃을 수 있는걸까.
이렇게 처참한 꼴이 되고, 이렇게 아픈 꼴이 됐는데도.
그런데도, 어떻게 저렇게 순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저토록 불합리한 힘을, 어떠한 제어나 자제심도 없이 충동대로 휘두르면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것은 사람들에게서 미소를 빼앗고, 그 생명마저도 주저없이 앗아가버리는 '괴물'이다.
저것도… 아니, 그론기도 본래는 인간이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째서 저기까지 비틀려버린걸까.
… 아니, 이유는 알고 있다.
자신에게 박혀 있는 영석 아마담. 그것과 같은 힘을 가진 마의 돌. 그것이 그론기들에게 박히면서, 그들은 저렇게 변했다.
─이 돌이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 뼈저리게 다시 한번 체감했다.
유스케 역시 길을 잘못 들었더라면, 눈앞에 있는 다그바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미소를 지킨다.'
몇번을 외치고 몇번을 되새겼는지 모를, 그 신념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싸우고 여기까지 함께 걸어와준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하지만, 수만년 전 다그바의 주변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변모해버린 그론기들 뿐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주해버린 그의 충동을 막고 길을 돌려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운 다그바 제바'야말로.
또 한 사람의 '고다이 유스케'.
어쩌면 유스케가 걸었을지도 모를 '파괴의 길'. 그것에 가장 먼저 물든 남자.
'고다이 유스케'와, 쿠우가의 반면 거울.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오고, 수많은 사람들의 미소를 빼앗고.
씻을 수 없을만큼 크고 많은 죄들을 지어버린 다그바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해주고 싶었어."
유스케와 다그바가 달려든다.
서로에게 남은 힘은 더이상 없고, 오직 그 주먹에 남아있는 모든 힘을 긁어모아서 날린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꽂혔을 때.
─마침내, 길고도 길었던 싸움이 끝을 고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쿠우가가 '구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을 때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그바의 주먹에서는 힘이 빠져나갔다.
어째서인지는 다그바 자신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인지, 아니면 그저 무의식 중에 힘이 빠져버린 건지도.
'하지만… 아무래도 좋을까, 이제는.'
하늘을 바라보며 쓰러진 다그바는, 크나큰 소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느끼고 있었던,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아마담의 존재가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힘을 잃어버린걸까, 완전히 부서져버린걸까.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신은 쓰러졌고, 쿠우가는 여전히 일어서있다.
─그것으로, 이 싸움은 끝을 맞이한 것이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싸우고 싶었지만.'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는 이 몸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 이제는 정말로 '기력'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단계조차 지나버렸다.
… 이대로, 죽는걸까. 그건 그거대로 나쁠 거 없다.
린트도, 그론기도. 상당히 많이 죽여댔지.
생각해보니까 처음에는 나도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이유로 싸웠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더라…?
……
……
… 뭐, 됐어. 이젠 다 끝난 이야기고.
정말로 신기했다.
쿠우가와 싸우기 전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쿠우가의 쓰러지기 전까지 그토록 머리와 몸속을 채우고 있던 '충동'도, 아마담의 기색이 사라지던 순간 함께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만인걸까.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드러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게.
문득 생각이 나서, 고개만을 돌려 쿠우가를 바라본다.
─녀석은 여전히 울고 있다.
… 너, 이상해.
이겼잖아? 그러면 울지 않고 기뻐해도 좋을텐데.
선대도 그렇고, 이번의 쿠우가도 그렇고. 정말로 눈물만 많은 녀석들이군.
그래도 뭐, 괜찮겠지.
선대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진화'를 이룬 녀석과 싸워서, 상당히 날뛸 수 있었으니까.
아아, 즐거웠는데… 여기까지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울고 있다곤 하지만 쿠우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눈물만 조용히 흘렸기에 주변은 조용한 상태였다.
주변이 하얗게 물든 세계. 하얗지 않은 것은 피를 잔뜩 쏟아내 '붉은색' 투성이인 나와 쿠우가 뿐이다.
…… 과연.
조금쯤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아무 소란도 일어나지 않고, 어떠한 종류의 '파괴'도 존재하지 않지만.
이 정도로 조용하다면, 조금쯤은 좋을지도.
그렇게, '운 다그바 제바'라고 불린 존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식 사인은 복부 신경 단열. 복부에 박혀있던 아마담이 파괴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확인 생명체 0호'라고 불리며, 인간들에게는 절망과 공포를.
'궁극의 어둠을 불러오는 자'라고 불리며, 그론기들에게는 외경과 적의를 받던 존재.
그론기의 미친 왕, 운 다그바 제바는 이날 이 자리에서 '사망'했다.
─그랬을, 터였다.
두번 다시 떠질 일이 없어야할 눈이 떠졌다.
그것과 함께, 두번 다시 느낄 일이 없을 거라고 했던 '고통'이라는 감각이 전신에서 일어났다.
"……!!"
태어나서 이날 이때까지, 몇번 느껴본 적 없는 통증.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이 어떨 때 느껴지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전신의 뼈마디마디 사이에 가시─ 아니, 바늘이 꽂혀있는 듯한 통증. 나아가서는 그것을 몇배로 증폭시킨 느낌.
이른바, "근육통"이라고 하는 녀석이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보통의 근육통보다 훨씬 더 심했지만.
─싸움으로 인한 고통이라면 이미 면역이 되버린 다그바조차, 아파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포기하고 드러누웠다.
그리고 그제서야 다그바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이상'에 대해서 눈치챘다.
자신이 눈을 감기 전에는 분명 눈으로 덮힌 산이었는데, 지금 이곳은 전혀 다른 곳이다.
녹색의 풀잎이 나있고, 활엽수들이 잔뜩 심어져있는 곳.
물론 다그바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장소라면 공간을 넘어서 이동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때 설산에서 쓰러진 자신에게는 그런 걸 쓸 힘따윈 남아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은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애초에 누워서 고개도 까딱하기 힘든 상태에서 어디라고 판단할 수도 없지만)
… 어떻게 하지.
다그바는 태어난 이후 몇번 해본 적도 없는 '고민'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아무리 죽을만큼 아픈 상처라도 '죽지 않는 이상'은 몇시간 안에 나아버리겠지만, 지금은 평소와 다르다. 뭐니뭐니해도 힘의 근원인 아마담이 박살났고.
이대로 몸이 움직일 수 있게 될 때까지 누워있는다, 라는 선택지밖엔 없지만 이 근처에 들짐승이라도 있다면 이후의 일이 비참해진다. 딱히 죽는 게 무서운 건 아니지만 다 뜯어먹힐 때까지 아파야 한다는 건 싫고.
그 즈음.
다그바는 '또 하나의 이상'에 대해서 눈치챘다.
… 뭔가가, 짧은데?
위화감이 들었다. 그것도 '엄청난' 위화감이.
팔에서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그 옆의 어깨와 등과 가슴과 허리와 허벅지에 느껴지는 감각.
평소보다, '땅에 닿는 몸의 면적'이 엄청나게 적다.
… 기분 탓일까. 응, 그럴거야. 나 엄청나게 다쳤으니까, 몇군데 감각이 마비됐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분명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거야. 기분 탓… 일라나?
그러나 다그바의 바램과는 달리 기분 탓으로 돌리기엔 몸의 감각이 너무나 선명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감각에는 문제가 없다.
결론. 생각하지 말자.
'일단, 움직일 수 있게 된 다음에.'
그렇게 다그바는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일시적인 도주를 택했다.
하지만 도주를 택했다고 해서 다그바가 처한 상황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아마담이 깨져버린 상태니까 치료가 되고 안되고는 둘째치고, 상처가 워낙 심해 그냥 이대로 죽어버린다고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다그바는 움직이기로 했다.
'최소한… 몸 뒤집고 오른손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하다못해 기어갈 수는 있게 된다.
이빨이 입술을 파고들어, 출혈이 일어날 정도로 힘을 가해 고통을 견딘다.
엄청나게 아파서 미칠 것 같은데, 되려 너무 아파서 정신이 들어버린다. 무엇보다도 이 고통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움직이려고 하는 한 계속 지속되니까, 더더욱 질이 나쁘다.
그런데도 견뎌낸다. 견디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으니까.
간신히 몸을 반회전시키고, 엎드리면서 오른손을 위로 뻗는다. 여기까지만 2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며, 그 동안 느낀 통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해냈다. 어떻게든 해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할 정도로.
<도와…!>
"…… 뭐?"
머리 속에 한순간 울린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도와주세─>
"시끄러. 알 바 아니니까 네가 알아서 해."
내 코가 석자구만 돕긴 뭘 도와.
이쪽은 지금 아파서 손가락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죽겠는데 누굴 도우라는거야.
만약 다그바가 멀쩡했다면 이 일대를 불태워서라도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내 세포 한조각까지 이 세상에서 없애버렸을 것이다(애초에 몸이 멀쩡했다면 이런 장소에 있을 이유도 없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다그바는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우와아앗?! 이 녀석, 덤벼들고 있어?!>
<페릿, 아니 사람 살려~!>
<누가, 누가 좀 도와줘요~!>
<어이, 거기! 근처에 당신! 듣고 있지?!>
<에에엣!! 매정하게 무시하지 말고!!>
<당신 인간이야?! 이렇게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는데에에!>
<와아아앗?! 다리 붙잡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아, 거기! 거기 너! 나 좀 도와─>
……
……
……
"후, 후후…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다그바의 입에서 음울하기 그지없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얼굴에 새겨진 웃음은, 평소의 '천진한' 것과는 천지차이. 해저 밑바닥 타이타닉호의 유령이 내는 듯한 꽁꽁 얼어붙은 웃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분노가 고통을 능가했다.
"시끄럽다 그랬잖아, 이 빌어먹을 자시이이이이이익!!!!"
말의 내용때문에 화난 것은 아니다.
아파죽겠는데 자꾸 정신사납게 말을 걸어온 것 때문이다.
그 '성가심'이 차곡차곡 쌓여, '분노'로 바뀌어 폭발한 것이다.
애초에 '자제심'과는 천만광년정도 떨어진 그론기 일족 중에서도 끓는 점이 특히나 낮은 다그바다. 여기까지 오면 참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일어섰다.
조금 전까진 기는 것도 아파서 힘겨웠던 주제에,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단숨에 일어섰다.
당연히 뼈와 근육과 내장이 갈가리 찢기면서 무시무시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게 뭐 어쨌는데.
지금, 팔이 당장이라도 끊어져버릴 것처럼 아픈 것도.
지금, 다리가 당장이라도 부러져버릴 것처럼 아픈 것도.
지금, 전신이 산 아래에 짓눌린 것처럼 아픈 것도.
자신이 멈춰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일어서고보니 눈높이가 낮아졌다던가 팔다리가 줄었다던가 몸집 자체도 작아졌다던가.
그딴 건 전부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하지만 역시 아픈 건 아픈 것. 고통을 얼버무리기 위해 에X게X온 초X기같은 눈빛과 얼굴을 하고 포효를 내지르며 달렸다.
좋아, 아픈 건 잊었다. 이제 남은 일은 아까부터 시끄럽게 떠드는 '어딘가의 어떤 자식'을 뭉개주는 것 뿐.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무조건 죽인다. 아무튼 죽인다. 뭐가 됐든 죽인다.
털 한올, 뼛조각 하나는 커녕 세포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지워줄테다.
걷는 것은 힘들었기에, 달렸다. 천천히 걸으면 오히려 통증이 뼈저리게 느껴졌지만, 달리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 그나마 고통이 덜 느껴지니까.
이미 아마담을 잃은 것에 더해 쪼그라든(?)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그바의 몸은 그 본인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절반 정도 수화(獸化)한 상태.
다그바는 아마담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극히 일부분이 그의 몸 속에 남아있었고 재생하던 중이었다. 그것이 지금 다그바의 감정과 공명하여 다그바의 몸을 그론기로 바꾸고 있었다… 지만 지금의 다그바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다.
그리고 다그바는 마침내 목표에 도착했다.
─도착한 그 순간, '분홍빛의 거대한 어떤 것'에 휩쓸려 날아가버렸지만.
'어……?'
지금 이건, 뭐인걸까?
그 생각을 끝으로, 참고 있던 고통이 일시에 몰려와 다그바의 의식은 다시 한번 날아갔다.
"우와아아앗?! 어떡해, 어떡해?! 지금 그거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해버렸다아… 비살상 설정이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생각하지만, 이 아니잖아! 가자, 유노 군!"
그리고 지금 그 '분홍빛의 기둥'을 발사한 범인이, 다급하게 뛰어온다.
어깨에는 한 마리의 작은 동물을 얹은 채로.
그리고 이것이, 두 '백색'의 첫 만남.
어이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고, 또한 당황스러운 만남이었지만.
틀림없이, 이것이 모든 이야기의 스타트 라인이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