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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주인공들의 좀비 서바이벌 다이어리


원작 |

1화



 

엘리엇 스펜서(헬레이저)
장군. 퍼즐 상자 발굴 이후 행방불명.


『7월 14일 화요일(사태 발생 2일 차). 맑음』


어떤 멍청한 인간이 과거의 교훈을 잊고 퍼즐 상자로 열어서 세상에 나와 좋다고 기뻐했던 게 바로 어제.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코 기뻐하기만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퍼즐 상자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주제넘게도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인간 몇마리. 당연히 그 자리에서 쇠사슬로 꽂아 산산조각내줬지만, 상황은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곧바로 퍼즐 상자가 있던 집 주인의 PC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알아본 결과(거기, 이상하게 보지 마라. 현대 사회의 교양있는 악마에게 있어서 컴퓨터 다루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까 나한테 덤볐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는 것 같다.
그래서 뉴스가 안나왔던 거였군. 그런 주제에 인터넷은 아직 사용가능하다니, 인간이란 역시 제법이다.


그러고보니 한 400년 정도 전이었던가. 아이티에서 소환됐을 때 저 비슷한 것들을 봤었던 기억이 난다. 저런 걸 좀비라고 했던가. 흐느적 흐느적거리고 우어어 거리는 게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거기의 좀비들과는 달리 뛰어다니는 것정도는 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옛날처럼 타락한 인간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을 하는 게 베스트지만 지금 상황에 와서는 그것도 힘들 것 같다. 아직 몇명이나 인간이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뭘 하든 하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까 산산조각 내놓은 좀비들을 핸드 메이드로 바꿨다. 다행히도 영혼은 몸에서 떠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강제로 뽑아내 악마로 만드는 것은 쉬웠다. 아아, 영혼이 강제로 뽑혀지는 과정에서 그들이 지른 비명을 음으로 삼아 작곡도 하나 끝낸 걸 잊으면 안되지. 이름하야 「한 여름밤의 비명소리」. 진부하다고 말하지 마라. 심플 이즈 베스트니까.


아까 전에 살짝 밖을 내다보니 나처럼 지금 이 상황을 즐길 여유가 있는 유머러스한 남자들이 몇명 더 있는 것 같다.
혼자서 십자가 못박기 놀이하는 것도 슬슬 질리니까, 다음에 만나면 같이 놀자고 해봐야지.

 

 

 


 

질 ​가​르​니​에​(​웨​어​울​프​)​
식인마. 17세기 초 프랑스. 체포되어 재판 후 참수.


『7월 15일 수요일(사태 발생 3일 차). 흐리다가 비』


날씨가 꿀꿀한 게 아침부터 기분이 좋질 않았는데 결국 비가 내린다. 젠장, 털 젖으면 말리는 거 귀찮은데.
오늘 엄청 좋은 걸 알아냈다. 밖에서 우어어 거리며 흐느적 흐느적거리는 것들─ 좀비라 그랬던가. 불에 구우니까 먹을 수 있었다. 어제 먹었는데 아직까지도 멀쩡한 걸 보니까 먹는 걸로 전염되진 않는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날고기가 제일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비를 날로 먹는 건 위생 문제도 있고 해서 불에 구워먹기로 했다. 고기만 먹으면 영향 불균등이 되니까, 내일부터는 집 뒤에 있는 밭에다가 배추라도 심어야겠다.


오후 2시 쯤에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공격하여 뼈와 고기를 분리해 훈제로 만들어서 집에다가 보관해놨다. 그 소리를 듣고 좀비들이 몰려오긴 했지만, 몽땅 머리통을 깨부수고 역시 식량 창고 안에다가 넣어뒀다.


오후 8시. 해가 거의 다 떨어져서 좀비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을 무렵 쇼핑몰에 놀러갔다가 친구를 사귀었다.
이름은 찰스. 키는 내 무릎까지도 오지 않을만큼 작지만 당찬 친구다. 그 쬐끄만 몸으로 나이프를 들고 좀비를 박살내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죽어서 영혼이 인형의 몸에 담겨져있다고 했던가. 어쨌든 인형이라서 먹을 수 없는 녀석이기 때문에 친구하기로 했다.
… 근데, 이 녀석이 지금 들어있는 인형의 상표명이 "굿가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진짜 안어울린다. 어디가 어떻게 굿가이라는건지.

 

 

 


 

찰스 리 레이(사탄의 인형)
살인마. 저항이 심하여 체포 도중 사격으로 사망.


『7월 17일 금요일(사태 발생 5일 차). 구름 약간』


오늘은 질이랑 같이 좀비들 죽이고 돌아다녔다.
인형의 몸뚱아리인지라 그 동안은 행동 반경이 좁았었는데 질이랑 같이 돌아다니니까 평소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장소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었다. 덩치 크고 속도 빠른 웨어울프랑 같은 편먹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던가. 몰랐다.
하지만 좀비들은 아무리 찌르고 가르고 쪼개고 잘라도 반응이 똑같아서 사냥하는 보람이 없다. 처음에는 쉽게 죽지 않으니까 재밌었는데. 아, 어차피 죽은 몸이었던가. 알 바 아니지만. ​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


… 일기에다 웃음소리 적으니까 더 허무해졌다. 이제 하지 말자.
슬슬 좀비 잡기도 매너리즘에 빠졌고 질도 재미없어하기 시작했다. 역시 쉽게 죽긴 해도 살아있는 인간 쪽이 더 재밌는데.
내일은 질한테 이야기해서 좀더 멀리까지 나가보도록 해봐야지.


질은 자동차 운전 못하는 것 같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인형 몸이라고 해도 할 줄 아는 건 할 줄 아는거지.
마침 어제 집 근처에서 람보르기니 한대가 멀쩡한 상태로 방치되어있는 걸 봤다. 그걸 쓰도록 하자.

 

 

 


 

조나스 미트라(스킨워커)
식인마. 1989년 미국 텍사스 주에서 총격받고 사망.


『7월 20일 월요일(사태 발생 8일 차). 아침부터 비』


쓰박, 얼마 전에 만났던 늑대 새끼한테 물린 어깨가 아직 아프다. 웨어울프면 나랑 친척뻘인데 더럽게 사납더라.
거기다가 요상하게 움직이는 기분나쁜 인형까지 합세해서 뒤통수에 칼박는 바람에 "아. 죽을지도"라고 생각했다. 이쪽은 혼자인데 저쪽은 치사하게 2:1인데다가 뒷다마까지 깠다. 덕분에 그 뒤로 이틀 동안은 땅 속에 틀어박혀 꼼짝도 못했다.
그런데 그 두 녀석도 그렇고, 얼굴에 바늘 꽂은 매저키스트도 그렇고. 생각했던 것보다 살아남은 녀석이 많은 것 같다. 내 입장에선 먹을 수도 없는 놈들이 살아있으니까 별로 좋을 거 없지만.


아무튼 그것만 빼면 여느 때와 다를 거없는 하루였다. 돌아다니면서 좀비들 죽이고, 살아있는 사람 있나 찾아보고.
…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좀비들을 하도 먹었더니 식인도 질리려고 그러니까. 이번에 만나면 죽이지말고 진짜로 잘해줘야지. 일주일 째 혼자 있으니까 무지무지 심심하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재미있는 녀석을 만났다. 하이드라고 했던가. 덩치는 나나 그 늑대새끼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게 원숭이처럼 무지 날쌔다. 게다가 힘도 어찌나 센지 움직일 때마다 자동차가 하나 씩 박살나더라. 시간만 준다면 나도 자동차 한둘쯤은 박살낼 수 있지만 그렇게 주먹질 한방에 트레일러를 뒤집을 자신은 없다.


… 재밌는 생각이 났다.
나랑 그 녀석 둘이 편먹으면, 그 늑대 새끼나 인형쯤 가볍게 박살낼 수 있을 것 같다.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고, 내일 바로 가서 다시 만나보기로 하자.

 

 

 


 

하이드(지킬 ​박​사&​하​이​드​)​
살인마. 1931년 영국 런던에서 사살.


『7월 21일 화요일(사태 발생 9일 차). 흐림』


어째서인지 지킬 녀석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하기야 그 녀석은 겉모양만큼은 '보통 인간'이길 자처하고 있으니까 지금 이 사태에 패닉을 일으키는 건 당연하겠지. 덕분에 나는 날뛰고 싶은만큼 날뛰고 부수고 싶은만큼 마음껏 부쉈다. 지난 일주일간은 나한테 있어서 천국이나 다름없었지.


하지만 기분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 근처에서 살아있는 녀석들 중에 얼굴에 바늘꽂은 매저키스트가 하나 있는데, 나를 보자마자 엄청 음흉하게 웃어댔다. 그리고는 뭐랬더라. 아, 내 모자 센스 형편없다고 비웃었었지. 열받아서 옆에 있는 자동차를 들어서 내던졌다.
근데, 분명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틈엔가 내 뒤에 서있었을 때는 꽤 등골이 오싹했다. "힘만 가지곤 나한테 이길 수 없다네, 이중인격 친구"라고 했었다.
… 나는 분명 이런 녀석하고 만난 기억이 없는데, 이 녀석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 기분나쁘게도.


물론 기분나쁜 일이 있는가 하면 기분좋은 일도 있었다. 생존자들 중에는 매저키스트같은 녀석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조나스라는 인디언과 영국인의 혼혈 친구였는데, 10살 때까진 런던에서 살았다고 하니 나한테는 동향인이다. 이 친구가 참 신기한게, 코요테 이빨을 입에 끼우면 코요테 인간으로 변하고 곰가죽을 얼굴에 붙이면 곰인간으로 변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전에 만난 늑대인간보다 훨씬 재밌었다. 그러고보니 스킨워커라는 건 인디언 전설에 나오는 변신괴물이라고 했던가.


이야기해보니까 꽤 재미있는 친구라서, 다음부턴 이 친구랑 같이 생존자들을 찾기로 했다.

 

 

 


 

프레디 크루거(나이트메어 온 엘름 스트리트)
소아성애 살인마. 집에 있던 중 화재로 인해 사망.


『7월 22일 수요일(사태 발생 10일 차). 햇빛 쨍쨍』


눈을 떠보니 엘름 스트리트가 아니라 생전 처음보는 도시. 게다가 내 앞에 나타난 건 흉악하기 짝이 없는 걸어다니는 시체들이었다.
이런 이런, 내가 보고 싶은 건 엘름의 내 아이들이지 너희같은 것들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기는 꿈속 세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니까 내가 어떻게 하긴 힘들었다. 아무리 나라도 저렇게 몇백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이기기 어렵다고.
무엇보다 이 놈들은 '꿈'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내 ​왕​국​(​나​이​트​메​어​)​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제길, 홈그라운드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까지 불리한 거였다니.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사실로,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인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사방이 감정없는 좀비들로 꽉꽉 들어차면 매우 불리해진다.
하지만 역시 악마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거점을 정하고 거리를 돌아다니길 열흘 째. 그 동안 늑대인간한테 물리고 털없는 고릴라한테 채이고 곰한테 맞고 인형한테 얕보이던 설움도 잠시. 간신히 쓸만한 녀석을 찾았다.


하키마스크를 쓰고 칼을 휘둘러 좀비를 한방에 두쪽으로 쪼개고 다니던 덩치. 이 녀석은 강했다. 전에 털없는 고릴라랑 치고받는 걸 봤는데, 세상에 그 큰 고릴라랑 힘싸움 벌여도 안밀리더라.
하지만 상당히 멍청해보였기 때문에, 이용해먹긴 쉬워보였다.
좋아. 오늘은 이만 자기로 하고, 내일 그 녀석을 찾아보자.

 

 

 


 

제이슨 부히스(13일의 금요일)
살인마. 1957년 크리스탈 캠프 호수에서 익사.


『7월 25일 금요일(사태 발생 13일 차). 많이 흐림』

 


덤볐다. 썰었다. 죽였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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