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after war Chronicles


2화


"타핫!!"

서현의 외침과 함께 그의 창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창이 한번 호를 그릴떄 마다 수명의 피가 흩뿌려졌다. 그것은 새빨갛기 그지 없는 인간의 피. 하지만 새삼 '그런것'에 놀랄일은 없다. 12살의 나이때 부터 7~8년간 수없이 많이 보아왔으니까 말이다. 벌써 창으로 넘어뜨린 인원만 기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쪽의 수뇌는 움직일 생각조차 없는듯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일당백, 일기당천인 서현이라 할지라도 이런식으로 체계적인 합공을 받으면 위험한것은 매한가지였다. 더구나 지친 후 자신과 동급, 아니 더 위일지도 모를 실력자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
결국 자신에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자 하면 자신이 무리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육식창무 절초 용격포 구룡아!!"

창이 엄청난 속도로 9번 내질러지기 무섭게 엄청난 굉음이 일어나며 포위망일각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붕괴된 일각을 통해 포위망을 벗어난 서현은 그대로 들고있던 창을 수뇌들을 향해 던졌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허공을 가르는 창-
그 창은 단 한명에 의해서 가로 막혔다. 그 창을 가로막은 것은 무척이나 익숙한 장갑을 끼고있는 가느다란 손.
서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 손의 주인을 보았다. 충격의 여파로 인해 벗겨진 모자, 그리고 그 모자속에 있던 얼굴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이 모든것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사람이었으니까.

"미유!!!!"

불타는 전장속에서 서현의 절규가 한가득 울려퍼졌다. 그 절규는 너무나도 슬프고 무서워서 일순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날 한성시(구 서울시) 주점
평소에도 요란스러운 주점, 하지만 오늘은 한가지 소문으로 인해 분위기가 무척이나 달아오르고 있었다.

"야, 너희들 그 소문 들었냐?"
"무슨 소문?"

한 남자의 말에 거기에 몰려있던 남자들은 순식간에 모여들며 물었다. 그들에게 있어 소문이란 중요하면서도 재미있는 꺼리가 많은 유흥거리인 탓이었다. 흥이 올랐는지 말을 꺼낸 남자는 맥주를 한껏 들이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헌터인 유나 알지?"
"파검(破劍)의 검희?"
"그 혈무(血霧)의 사신이라고도 불리는?"
"그래, 그 아가씨."

남자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뭐... 아가씨라고 하기엔 너무 괄괄하지만..."
"게다가 너무 짜."
"뭐, 뭐 넘어가고..."

남자의 말에 모두는 내뱉던 말을 그만두고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자 남자는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실은 얼마전에 의뢰에 나섰던 유나가 돌아왔어."
"그거야 뭐 아는 사람들 다 아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좀 특별해."
"뭐가? 설마 ​왕​창​깨​졌​다​던​가​.​.​.​?​"​
"설마, 유나는 헌터길드에서 인증한 몇 안되는 S랭크의 헌터라고. 그런 녀석이 어디서 왕창 깨지거나 할 리가 없잖아. 소문으로만 들리는 전설의 용병집단 ​흑​성​전​기​(​黑​星​戰​騎​)​라​면​ 또 모를까?"

​흑​성​전​기​(​黑​星​戰​騎​)​,​ 소문으로만 전해져오는 전설의 용병집단으로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전투력은 각각이 군단 하나, 혹은 요새 하나와 필적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질 못하고 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없기에 단순한 전설 취급받고있는 용병집단이었다.

"그런 전설이 왜 나와? 어쨌건 이 이야기는 그녀가 깨졌다는 이야기 보다 더 흥미롭고 믿기 힘든 이야기지."
"도대체 어떤 이야기 이길래?"
"뭐냐면..."
"뭐냐면?"

남자의 말끌기에 사람들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느낀 남자는 그제서야 말을 시작했다.

"바로 그녀가 남자를 데리고 돌아왔기 때문이지! 그것도 소년으로!"
​"​에​엑​?​!​!​!​!​!​"​

남자의 말에 거기있던 사람들 모두는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에게 있어 유나와 남자의 조합은 세상 천지가 뒤집어져도 있을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던 탓이었다.

"농담이지?!"
"진짜야, 나도 혹시나 싶어서 수소문 해봤는데 병원에서 간호사일을 하는 친구녀석의 여친이 정말 유나가 남자를 데려오는 걸 봤다더군."
"세상에..."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시선을 밖으로 향하며 본인이 듣는다면 곧장 무례하다는 말이 나올 말들을 해댔다.

"그런데 데려온 소년은 정신을 잃고있던 상태라더군."
"그래? 혹시 어디 다친건가?"
"아니면 그 아가씨가 납치... 아니 ​보​쌈​한​건​지​도​.​.​.​"​
"보쌈? 그 몇백년전에 유행했다는 그?"
"그래, 솔직히 그 괄괄한 아가씨에게 갈 남자가 몇명이나 되겠냐? 결국 안되니까 좀 이쁘장한 녀석으로 골라 납치... 아니 보쌈 했겠지"
"그거 말되네. 결국 그 아가씨도 외로웠나 보지?"
"뭐, 그럴지도... 어차피 20대 소녀잖아. 자기랑 같은 또래의 아가씨들은 다 남자 하나씩 꽤차고 있는데 혼자서 솔로니... 역시 ​외​로​웠​는​지​도​.​.​.​"​
"하지만 그 성격에 갈 남자가 누가 있겠냐? 안그래?"
"그건 그래, 아하하하하하-"

쿠당탕!

모두가 웃고있는 사이 사람들이 몰려있던 테이블이 두동강이 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에 기대고 있던 사람들도 덩달에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요란하게 굴러버린 사람들은 모두들 아픈부위를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아야야..."
"도대체 무슨 일..."

불평하던 사람들은 문득 등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무지 살벌한 눈초리로 자신들을 바라보고있는 서슬퍼런 사신을...

"자, 남의 험담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알 고 있겠지?"

어느새 나타난 유나는 자신의 애검인 시시마루를 집어 넣고 있었다. 용서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닌 언제라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벌벌떨면서 유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미안! 잘못했어!"
"용서해줘!!"
​"​문​답​무​용​!​!​!​!​"​

그날 화난 S급 헌터 유나의 난동으로 술집의 장사는 막을 내려야만했다.



몇시간 후 한성시 자경대

"자, 여기 네 검"
"아 고마워 혜경아"

자경대 여대장인 혜경으로부터 검을 받아든 유나는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대답했다. 혜경은 그런 유나를 보면서 한마디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유나 넌 좀 자각을 가져... 넌 몇 안되는 S랭크의 헌터라고. 너는 이미 존재 자체가 전술병기나 다름 없단 말이야! 그런데 칼 같은거 막 휘두르지 말란 말이야! 게다가 칼집은 왜 휘둘렀어! 네 칼집에는 특수폭약이 들어있다며! 그딴걸 왜 휘둘러! 왜!!!!"
"미안! ​미​안​하​다​니​까​!​!​!​"​

혜경의 설교에 유나는 술집에서와는 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며 혜경에게 빌고 또 빌었다. 지은죄가 있다보니 반항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헌터 규칙중에서도 자경대와는 함부로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다. 마찰을 일으키게 되면 그만큼 귀찮아 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유나의 경우 혜경과는 사적으로도 무척이나 친한관계였지만 말이다.

"진짜... 너란 애도 참... 아무리 열받아도 그렇지... 그런 위험천만한 흉기를 휘두르면 어떻하니... 으휴..."
​"​미​안​하​다​니​까​.​.​.​ 진짜..."
"예휴... 정말... 그나저나 그 남자애는 진짜 어떻게 된 일인거야? 정말로 납치한거 아냐?"
"너까지 그러기냐!!!"

혜경의 말에 유나는 다시한번 폭발할듯한 반응을 보이며 외쳤다. 그것을 본 혜경은 기묘한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게 너는 남자랑 인연이 없는 녀석이잖아. 그런 네가 갑자기 미소년을 데려오다니... 당연히 그런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아? 어지간한 무력으로는 너한테 반항도 못하니까 말이야."
"크으..."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전부다 옳은 말인 탓이었다. 남자같은 괄괄한 성격 때문에 일을 제외하고는 남자랑 엮일 일이 없고 무력도 어지간한 남자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에게 누가 다가오겠는가? 그러니 납치 의혹이 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진짜... 이번 의뢰를 행하던 도중 발견한 연구소에서 냉동수면으로 잠들어 있던 것을 구해온 것 뿐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믿어줄께."

말과 표정이 다른 혜경의 행동에 유나는 이마를 치면서 절망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을 괜히 구했다는 후회마저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구해버린 것이기에 이 이상 후회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유나는 혜경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터벅터벅 걸으며 소년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성시 시립중앙병원

"어때? 그 아이의 상태는?"
"글쎄... 좋달까 나쁘달까..."

유나의 물음에 유나의 친구이자 한성 시립중앙병원의 원장인 모리시마 유카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책상위에 널린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한장의 서류를 찾아내 유나에게 건냈다.

"뭐야 그건?"
"그 아이의 진단서."
"내가 봐도 모르잖아."
"아, 그렇지..."

유나의 말에 유카리는 깜빡했다는 듯 손바닥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유나는 그런 유카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약간 맹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유카리는 유나에게 건낸 진단서를 다시 가져온 후 대충요약해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심박이나 이런저런건 모두 정상이야. 다만 몇십년, 아니 몇백년 이상 냉동수면을 한 탓인지 이런저런 세포조직 손상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중요부위는 없는데다가 그정도는 병원에서 금방 고칠 수 있거든. 그런데 문제는..."
"문제...?"
"어, 잘 봐."

유카리는 컴퓨터를 조작해 벽면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영상이 뜨도록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벽면의 디스플레이가 켜지며 뭔가의 영상이 떴다.

"이 영상은 아까 소년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확대 분석한거야. 그리고 이게 그 문제지."

유카리는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몇번의 과정을 거치며 영상이 수십배... 아니 수천배로 확대되었다. 확대된 영상속에서 예전에 본 혈액 사진속에서 볼 수 없었던 사각형이 보였다. 유나는 유카리를 바라보며 저 사각형에 대해 물었다.

"저건 뭐야? 전에 본 혈액사진에선 못봇것 같은데..."
"세균이야. 그것도 극히 희귀하고도 희귀한 세균..."
"세균...?"

유나의 물음에 유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세균. 질병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니 500년 전에 갑자기 유행했던 불치병 메두사의 세균이였어. 천천히 말초신경부터 잠식해 들어가 감각을 마비. 말기에는 세포마저 변이시켜 감염자를 돌로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병이지."
"감염자를... 돌로 만들어버려?"

순간 유나는 수많은 냉동수면 캡슐이 있던 공간에서 냉동캡슐안에 들어있던 사람형태의 돌조각들을 떠올렸다.

"설마...? 그래서였나..."
"왜 그래 유나?"
"아니... 이 소년을 구한 곳에서 이상하게도 냉동캡슐안에 들어있는 사람형태의 돌조각이 많았거든... 그게 메두사 때문이었나..."
"흐음... 어쨌든 이 소년은 지금 그 메두사에 감염되어 있어. 그리고 위험해. 오랬동안 잠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해동된 탓인지 세균활동이 활발해 져 있거든. 과거 진료 자료와 지금 활동 상황으로 볼때..."

유카리는 대답하기 힘든지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고민을 마쳤는지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한 유카리는 유나를 향해 오른쪽 손을 펼쳐보였다.

"5...? 설마 5일이라는건 아니겠지?"
"맞아. 5일... 그 안에 메두사의 치료제를 맞지 않으면 일주일 후 자정에는 돌이 된 소년을 볼 수 있을걸?"
"진짜... 구해도 골치아픈 녀석을 구했군..."

유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한번 구한이상 끝까지 구하지 않으면 찜찜하다. 한번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찜찜하다. 일단 한번 일을 하게 된 이상 어떤 결과가 나오든 끝까지 간다. 그것이 S급 헌터인 유나의 모토였다. 중도 포기란 애초에 그녀의 선택지에서 없었다.

"그래서, 그 치료제는 있어?"

유나의 물음에 유카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메두사는 이미 250년 전에 완전히 멸종된 병이라서 말이야... 아... 치료제가 있는 곳이 있긴 있네."

유카리는 재빨리 키보드를 두들기며 디스플레이에 찾아낸 정보를 띄웠다.

"우선 있는 곳은 두곳. 정부에서 특별관리하는 물품창고랑 삼라 컴퍼니인가..."

유카리에 말에 유나는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둘다 껄끄러운 장소였던 탓이었다. 물론 둘중 어느곳을 가겠냐고 묻는다면 유나는 주저없이 삼라컴퍼니 쪽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삼라 컴퍼니도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일단 국내 제일의... 아니 세계적으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거대기업. 물론 기업인 이상 이익이 있으면 팔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저런 희귀물품이라면 얼마나 높은 가격을 부를지 몰랐기에 이래저래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둘다 귀찮은 곳이군..."
"너라면 정부쪽에 끈이 있지않아?"

유카리에 말에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마. 아무리 친구라지만 한번만 더 그 얘기 꺼내면 패버린다..."
"알았어 알았어..."

유나의 말에 유카리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유카리의 말에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풀었다.

"그나저나 그 소년... 아직 안깨어났어?"
"글쎄... 아직까지 변화는 없네... 아!"
"왜 그래?"

갑작스런 유카리의 탄성에 유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깨어났어."
"누가?"
"그 소년 말이야."

유카리는 재빨리 의자에 걸쳐둔 백의를 입고 재빨리 원장실밖으로 나섰다. 유나도 유카리의 뒤를 따라서 원장실을 나섰다.



"으음..."

눈이 침침하고 심하게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을 뜨기도 전에 눈꺼풀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환한 빛에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살​아​있​는​건​가​.​.​.​?​"​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소년이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투속에는 살아있다는 안도감 보다는 어째서 죽지 않았는가 하는 한탄이 더 많이 느껴지고 있었다. 소년이 깨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나와 유키리. 두사람이 들어왔다. 유카리는 병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소년을 향해 외쳤다.

"Welcome to future!! 500년 후의 세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유카리의 외침에 유나는 심하게 당황했다. 방금 깨어난 사람에게 하필이면 충격을 줄 말부터 꺼내다니... 정말인지 도대체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궁금한 녀석이었다. 이런 섬세함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을까? 그것도 그냥 돌팔이 의사 같은게 아니다. 명의라는 말이 나와도 모자랄 정도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미스테리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5​0​0​년​.​.​.​?​"​
"그래, 500년. 지금이 신세력(新世曆) 278년이니 네가 있었을 서력 2006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500년 후. 야~ 그나저나 정말 놀랬다고. 설마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미싱 ​타​임​(​m​i​s​s​i​n​g​ time)'을 볼 수 있다니 말이야."
"미싱 타임... 이라뇨?"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미싱 타임'이란 단dj에 소년은 질문을 던졌다. 소년의 질문에 유카리는 즐겁게 입을 열었다.

"'미싱 타임'이란 말이지, 말 그대로 시간을 잃어버린 존재를 말하는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본래 있어야 할 시간을 벗어나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게 된 사람들이나 생물을 일컫는 말이야. 물론 기계장치도 있긴 하지만 그경우에는 현재의 기술력으로 복원이 불가능한 일부 기계장치를 말하는거야~"

즐겁게 말하는 유카리를 보던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절 살려냈나요?"
"뭐... 일단은 그럴려나?"

유카리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엄연히 말해서 완전히 살려낸 상태가 아닌 탓이었다. 아직 냉동수면에 의해서 손상된 세포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뿐더러 희귀질병인 메두사가 아직도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탓이었다.

"그냥 내버려두지 그랬어요."
"뭐...?"

소년이 내뱉은 말에 순간 유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말을 계속 이었다.

"어차피 강제로 냉동수면에 들어가게 된 거였는데... 어차피 내게 살아있을 의미따윈..."

쾅!!

소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나의 주먹이 소년의 뒤에있던 벽에 틀어박혔다. 소년 놀란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을 한 유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뭡니까 갑자기."

소년의 무척이나 담담한 반응에 유나는 폭발하는 화를 가까스로 집어삼키며 소년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이봐 너, 함부로 죽는다는 소리 하지마! 네가 죽음에대해 뭘 안다고 죽는다는 거야!!"
"두번째네요. 저에게 죽음에 대해 뭘 안다냐고 말한 사람은..."

유나의 말에 소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요즘 인간들과 함께 하나의 객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안드로이드들도 이만큼 담담하지는 않으리라... 인형과도 같은 반응에 유나는 화가 한층 더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로서 가까스로 화를 참아낸 유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잘들어... 너는 아직 완전히 살아난 게 아니야. 그러니까 죽을 생각은 꿈에라도 꾸지 마... 조금이라도 자살을 시도한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전신을 박살을 ​내​버​리​겠​어​.​.​.​!​"​

유나는 살벌한 말과 함께 소년을 쏘아본 후 병실을 나섰다. 과도할 정도로 죽음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나를 보며 소년은 담담히 중얼거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나름...!"

그때 소년에게서 조금은 묘한기세가 흘러나왔으나 나가버린 유나를 신경쓰고있던 유카리가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카리가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유카리는 친구가 저지른 참상(?)을 보며 투덜거렸다.

"정말인지... 아무리 친구인 내가 원장이라지만 너무한거 아냐?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눈하나 깜짝 안하다니..."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벽을 박살내는 주먹이 스쳐지나갔는데도 눈하나 꿈쩍 안하는것은 꽤나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소년은 유카리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일에는 나름 익숙하니까요."
"그나저나 너 이름이 뭐야? 떠돌이 강아지 같은게 아닌이상 이름이 있을거아냐? 아무리 내쪽이 연상이라지만 계속 '너'라고 하는것도 좀 그렇고 말이야..."

상식과 예절이 있는 어른인 유카리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너'나 '꼬마'같은 단어로 불리는 꽤나 사양하고 싶은 소년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불리는건 조금 그렇네요... 하지만 곧 죽을 사람의 이름을 묻는것도 좀 재미없지 않아요?"
"네가 이름을 대야하는 이유는 세가지야. 첫째. 이 병원의 규칙이고 둘째. 내가 알고싶고 셋째. 묘비에 새겨둘 이름이 필요하니까."
"헤에, 의사가 그런말을 하다니... 살벌하네요."

소년의 말에 유카리는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나 병원원장이긴해도 야매출신인데다가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의사가 된게 아니거든... 단순히 지속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했을 뿐이야"
"흐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죠. 그것보다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듯한데..."
"기분탓이야. 어쨌든 이름이나 말해"

유카리의 재촉에 소년은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대답했다.

"이 서현... 잠들기 전에는 이 이름으로 지내고 있었죠."
"그거면 되겠네"

소년... 아니 서현의 대답에 유카리는 무표정하게 펜을 휘갈겼다.



유카리가 나가기 무섭게 서현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처절한 싸움속에서 적의 동정에 의해 살아남았다. 그것도 그냥 적이었으면 차라리 나을뻔했다... 자신을 속이고 사부를 속인 배신자. '그녀'의 동정에 의해서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남아버린 것이다. 뭐... 그녀로서는 아마 내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만. 만약 고통에 몸부림 치기를 바래서 그런거라면 그녀는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사부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를곳에서 어째야 할지 모르는 채 죽음의 공포를 기다린다...
확실히 보통사람이라면 미치다 못해 자살할 정도의 공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현으로서는 죽음의 공포따윈 없었다. 그저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죽어간다는게 아쉬울 뿐.

"하지만 괴롭다는건 확실하지..."

아무리 덤덤하다고 해도 괴로운건 괴로운 것이다...
분명히...
 

몇시간 후 한성시 자경대

"자, 여기 네 검"
"아 고마워 혜경아"

자경대 여대장인 혜경으로부터 검을 받아든 유나는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대답했다. 혜경은 그런 유나를 보면서 한마디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유나 넌 좀 자각을 가져... 넌 몇 안되는 S랭크의 헌터라고. 너는 이미 존재 자체가 전략병기나 다름 없단 말이야! 그런데 칼 같은거 막 휘두르지 말란 말이야! 게다가 칼집은 왜 휘둘렀어! 네 칼집에는 특수폭약이 들어있다며! 그딴걸 왜 휘둘러! 왜!!!!"
"미안! ​미​안​하​다​니​까​!​!​!​"​

혜경의 설교에 유나는 술집에서와는 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며 혜경에게 빌고 또 빌었다. 지은죄가 있다보니 반항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헌터 규칙중에서도 자경대와는 함부로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다. 마찰을 일으키게 되면 그만큼 귀찮아 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이외에도 유나의 경우 혜경과는 사적으로도 무척이나 친한관계였지만 말이다.

"진짜... 너란 애도 참... 아무리 열받아도 그렇지... 그런 위험천만한 흉기를 휘두르면 어떻하니... 으휴..."
​"​미​안​하​다​니​까​.​.​.​ 진짜..."
"예휴... 정말... 그나저나 그 남자애는 진짜 어떻게 된 일인거야? 정말로 납치한거 아냐?"
"너까지 그러기냐!!!"

혜경의 말에 유나는 다시한번 폭발할듯한 반응을 보이며 외쳤다. 그것을 본 혜경은 기묘한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게 너는 남자랑 인연이 없는 녀석이잖아. 그런 네가 갑자기 미소년을 데려오다니... 당연히 그런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아? 어지간한 무력으로는 너한테 반항도 못하니까 말이야."
"크으..."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전부다 옳은 말인 탓이었다. 남자같은 괄괄한 성격 때문에 일을 제외하고는 남자랑 엮일 일이 없고 무력도 어지간한 남자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에게 누가 다가오겠는가? 그러니 납치 의혹이 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진짜... 이번 의뢰를 행하던 도중 발견한 연구소에서 냉동수면으로 잠들어 있던 것을 구해온 것 뿐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믿어줄께."

말과 표정이 다른 혜경의 행동에 유나는 이마를 치면서 절망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을 괜히 구했다는 후회마저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구해버린 것이기에 이 이상 후회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유나는 혜경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터벅터벅 걸으며 소년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성시 시립중앙병원

"어때? 그 아이의 상태는?"
"글쎄... 좋달까 나쁘달까..."

유나의 물음에 유나의 친구이자 한성 시립중앙병원의 원장인 모리시마 유카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책상위에 널린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한장의 서류를 찾아내 유나에게 건냈다.

"뭐야 그건?"
"그 아이의 진단서."
"내가 봐도 모르잖아."
"아, 그렇지..."

유나의 말에 유카리는 깜빡했다는 듯 손바닥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유나는 그런 유카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약간 맹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유카리는 유나에게 건낸 진단서를 다시 가져온 후 대충요약해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심박이나 이런저런건 모두 정상이야. 다만 몇십년 이상 냉동수면을 한 탓인지 이런저런 세포조직 손상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중요부위는 없는데다가 그정도는 병원에서 금방 고칠 수 있거든. 그런데 문제는..."
"문제...?"
"어, 잘 봐."

유카리는 컴퓨터를 조작해 벽면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영상이 뜨도록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벽면의 디스플레이가 켜지며 뭔가의 영상이 떴다.

"이 영상은 아까 소년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확대 분석한거야. 그리고 이게 그 문제지."

유카리는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몇번의 과정을 거치며 영상이 수십배... 아니 수천배로 확대되었다. 확대된 영상속에서 예전에 본 혈액 사진속에서 볼 수 없었던 사각형이 보였다. 유나는 유카리를 바라보며 저 사각형에 대해 물었다.

"저건 뭐야? 전에 본 혈액사진에선 못봇것 같은데..."
"세균이야. 그것도 극히 희귀하고도 희귀한 세균..."
"세균...?"

유나의 물음에 유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세균. 질병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니 500년 전에 갑자기 유행했던 불치병 메두사의 세균이였어. 천천히 말초신경부터 잠식해 들어가 감각을 마비. 말기에는 세포마저 변이시켜 감염자를 돌로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병이지."
"감염자를... 돌로 만들어버려?"

순간 유나는 수많은 냉동수면 캡슐이 있던 공간에서 냉동캡슐안에 들어있던 사람형태의 돌조각들을 떠올렸다.

"설마...? 그래서였나..."
"왜 그래 유나?"
"아니... 이 소년을 구한 곳에서 이상하게도 냉동캡슐안에 들어있는 사람형태의 돌조각이 많았거든... 그게 메두사 때문이었나..."
"흐음... 어쨌든 이 소년은 지금 그 메두사에 감염되어 있어. 그리고 위험해. 오랬동안 잠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해동된 탓인지 세균활동이 활발해 져 있거든. 과거 진료 자료와 지금 활동 상황으로 볼때..."

유카리는 대답하기 힘든지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고민을 마쳤는지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한 유카리는 유나를 향해 오른쪽 손을 펼쳐보였다.

"5...? 설마 5일이라는건 아니겠지?"
"맞아. 5일... 그 안에 메두사의 치료제를 맞지 않으면 일주일 후 자정에는 돌이 된 소년을 볼 수 있을걸?"
"진짜... 구해도 골치아픈 녀석을 구했군..."

유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한번 구한이상 끝까지 구하지 않으면 찜찜하다. 한번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찜찜하다. 일단 한번 일을 하게 된 이상 어떤 결과가 나오든 끝까지 간다. 그것이 S급 헌터인 유나의 모토였다. 중도 포기란 애초에 그녀의 선택지에서 없었다.

"그래서, 그 치료제는 있어?"

유나의 물음에 유카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메두사는 이미 250년 전에 완전히 멸종된 병이라서 말이야... 아... 치료제가 있는 곳이 있긴 있네."

유카리는 재빨리 키보드를 두들기며 디스플레이에 찾아낸 정보를 띄웠다.

"우선 있는 곳은 두곳. 정부에서 특별관리하는 물품창고랑 삼라 컴퍼니인가..."

유카리에 말에 유나는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둘다 껄끄러운 장소였던 탓이었다. 물론 둘중 어느곳을 가겠냐고 묻는다면 유나는 주저없이 삼라컴퍼니 쪽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삼라 컴퍼니도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일단 국내 제일의... 아니 세계적으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거대기업. 물론 기업인 이상 이익이 있으면 팔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저런 희귀물품이라면 얼마나 높은 가격을 부를지 몰랐기에 이래저래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둘다 귀찮은 곳이군..."
"너라면 정부쪽에 끈이 있지않아?"

유카리에 말에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마. 아무리 친구라지만 한번만 더 그 얘기 꺼내면 패버린다..."
"알았어 알았어..."

유나의 말에 유카리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유카리의 말에 유나는 험악한 표정을 풀었다.

"그나저나 그 소년... 아직 안깨어났어?"
"글쎄... 아직까지 변화는 없네... 아!"
"왜 그래?"

갑작스런 유카리의 탄성에 유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깨어났어."
"누가?"
"그 소년 말이야."

유카리는 재빨리 의자에 걸쳐둔 백의를 입고 재빨리 원장실밖으로 나섰다. 유나도 유카리의 뒤를 따라서 원장실을 나섰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