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5화
갑작스러웠다면 갑작스럽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사건의 진상과 아야세의 난입을 예상했기에 행동은 빨랐다.
등뒤에서 들려오는 아야세의 목소리에 반응도 하지 않고, 바로 나의 직선방향. 즉. 바다쪽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야세의 수영복을 보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 아야세의 얼굴을 본다면 다리가 풀리리라.
왜냐하면 브리짓을 스쳐지나가는 찰나에 표정을 보니, 마치 고양이 앞에서 궁지에 몰린 쥐같은 표정으로 "후에엥.. 어,언니도 다크위치가 되버렸어.." 라고 말하는게 어렴풋이 들려왔다.
"오..오빠!?"
"미안! 다음에 대화하자!"
나의 예상외 행동에 놀란듯한 아야세의 목소리였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왜 도망가는 거에요!!"
당황하는듯한 아야세의 목소리가 들렸기에,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아야세는 놀랍게도 무서운 기세로 나를 추격하고 있었다.
아야세의 수영복은 노출도가 매우 낮은 투피스 수영복. 수영복이라기보단 치어리더 옷같은 느낌의, 상의노출은 커녕 배꼽도 안나오는 반팔의 흰색 수영복이다.
아래쪽 수영복은 파란색 치마로, 다리가 노출되는건 수영복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청초한 이미지의 아야세와는 정말 잘 어울린다. 무슨 순정만화에 나오는 케릭터 같네.
...이 상황에서까지 수영복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건 의외로 특별한 능력인것 같다. 대단하네 나.
"너는 왜 쫓아오는 건데!!"
순간 아야세가 뛰는걸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왔고, 뒤에서 당황한 브리짓이 "저 매, 매니져 비치볼!" 같은 소리를 냈지만, 지금 공이 중요하냐.
"그거야 오빠가 도망가니까 그렇죠!!"
"너는 야생동물이냐!!"
야생동물은, 무언가가 도망가기 시작하면 자신보다 약한 생물이라고 파악하고 본능적으로 먹잇감을 쫓는다고 한다. 야생동물이었으면 분명히 포식자의 위치에 있을게 틀림없는 아야세는 그 본능에 몸을 맡긴듯 했다.
"치잇..!!!"
혀를 차며 쫓아오는 아야세는 여자애 치고는 굉장히 빨랐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의 신체차이. 내가 딱히 달리기를 잘하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키리노 정도로 육상을 잘하는게 아니면, 거리는 벌려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제로 마음에 여유를 가지려고 하고 있는데, 불현듯 브리짓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뇨, 사무소에서 아는 언니가 '다같이 바다나 놀러가지 않을래?' 라고 권유를 해줘서 오게 됬어요.]
... 다같이?
분명 아야세는 브리짓에 대해는 알고 있어도 바다에 올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다. 아야세의 오타쿠 혐오증이 어느정도 약해진건 비교적 최근에 일이니까.
그렇다면 브리짓과 아야세를 이어주는 연결선.. 이라고 하면...
"카나코!!"
순간 뒤에서 아야세의 목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갈색머리의 트윈테일을 한 건방져 보이는 꼬맹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수영복은 빨간색의 투피스 수영복. 쿠로네코와 비슷하게, 위쪽 수영복은 목뒤로 넘겨서 묶는것이 아니라 겨드랑이 아래에서 등쪽으로 끈이 아닌 비교적 넓은 천으로 묶은 그런류다.
아랫쪽은 일반적인 비키니. 꽤나 유아체형인 녀석이 엄청나게 대담한걸 입는다... 브리짓보다 신장이 작아서, 브리짓같은 원피스형이 더 어울릴것 같은데.
음음 하여튼. 그래서 카나코는 따분해 보이는 얼굴로 걸어오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더니
"엉? 로니져? 에.. 아야세?"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는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카나코에게, 아야세가 또다시 외쳤다.
"잡아!!"
"하아?"
카나코는 잠시 짜증난다는 듯 기분이 나빠보이는 표정을 지었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내 필사적인, 바보같아 보이는 얼굴을 보고 뭐가 재밌어졌는지, 평소의 소악마같은 웃음을 히죽 지으며
"카나코한테 맡겨두라구!"
"잡힐까 보냐!!"
2:1이라니 반칙이라고! 하지만 상대는 카나코. 초등학생 체격에, 기본적으로 멍청해 보이는 카나코한테 잡힐리는 없다.
나는 카나코에게 돌진하듯이 뛰어가다가 가까워 지기 직전 오른쪽발을 축으로 땅을 박차 왼쪽으로 지그재그 식으로 몸을 옮겼다.
헹! 좋았어. 이대로 지나가면!
퍽
"고혹!?"
해변을 왼쪽에 두고 달리고, 왼쪽으로 도약하는 순간 몸에 강력한 충격을 느끼며 바다쪽으로 날아가며, 마치 슬로우 모션인것마냥 보이는건, 흰니를 보이며 웃고있는 카나코가 내 몸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쇼..숄더태클!?'
아무리 체중이 별로 안나가는 여자애라고 해도 내가 공중에 도약한 순간에 온몸으로 매달려 버리면, 날아가는 수밖에 없다.
별로 깊지 않은 얕은 물에 빠지면서 약간 놀란듯한 아야세가 다가오는게 보였다.
"오..오빠가 왜 여기있는 거에요!?"
그 후, 아야세에게 붙잡힌 나는 또다시 도주를 결심했었지만 나한테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는 카나코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해변가에 카나코와 같이 정좌. 아야세에게 혼나고 있는 참이다.
"에.. 그.. 보호자 입장으로.."
"설마.. 키리노랑 키리노 친구들한테.."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그것보다, 아야세야 말로 어떻게 온거야?"
아야세는 잠시 당황하더니, 바로 차분해졌다.
"네 우연이에요 우연! 우연히도, 바다에 놀러가고 싶어서 왔더니 어머나, 오빠가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아까 그 건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을 하다가 다시 생각이 났는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던 아야세는, 싸늘한 음색으로 돌아왔다.
"브리짓에게 작업거는것도 모자라서 제 험담이나 하고 있다니..."
"뭐 이놈 로리콘이니까 말야."
카나코는 같이 정좌하고 있는 주제에 건방진 말을 하고 있었다.
"안그랬어! 험담도 안했고!"
아야세는 내 말은 깔끔히 무시하고, 옆에있는 카나코에게 말을 계속했다.
"카나코도, 만일 거기서 오빠가 피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러다 크게 다친단 말이야"
"네네 아야세는 정말 우리엄마보다 더하다니까~ 그리고 이녀석이라면 좋다고 받지 피할일은 없어."
거기서 다시 싸늘하게 나를 노려보는 아야세.
"절대로 안피한게 아니라 못피한겁니다."
"그것보다 아야세가 말이야~ 엄~청 필사적으로 바다에 놀러가자고 부탁을 해서 있지~ 카나코는 남자도 없이 바다따위 오는거 정말 싫지만, 아야세가 남자문제라도 있는지~ 거절을 못하겠더라고~"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나를 보고 재밌는지, 카나코는 더욱 아야세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그러자 아야세는, 내가 여태까지 본 아야세의 형상중에 가장 공포스러운, 마치 뒤에 아수라가 서있는듯한 귀신의 형상을 하더니 말했다.
"카..나..코오오오오오..."
"히이익!"
그 박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카나코는 나란히 정좌하고 있는 상태에서 바보같은 소리를 하더니 내 뒤로 숨어들어가 덜덜 떨고 있었다. 아야세는 깊게 한숨을 한번 쉬더니
"정말, 오빠도 그렇게 사람을 보고 도망가면 상처받는다구요."
"아 응.. 미안.."
어찌되던 목숨은 잃지 않고 흐지부지 하게 끝난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도망간다고 쫓아오는 너 때문에 내가 더 상처 받았다고..
"아야세!"
그리고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또 들려오고, 고개를 돌려보니 브리짓과 키리노가 있었다.
아무래도,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자 투덜거리며 공을 찾으러 왔다가 공을 들고있는 브리짓과 합류. 둘이 나를 찾으러 온것 같다.
"키리노~ 안녕! 우연이네~"
그리고 아야세는 다시한번 우연이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상황증거가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무언가 국회의원이 딸이라, 그쪽 연줄을 사용한걸까.. 하지만 키리노가 제일 친한 친구인 아야세에게 어딜 놀러가는지 말을 안했을리도 없을것 같지만.
그러자 키리노는 반갑게 아야세의 손을 잡아 웃더니, 이내 잠시 미안해하는 표정이 됬다.
"미안해 아야세.. 내 취미쪽 친구들이랑 어쩌다보니 놀러가서, 아야세가 싫어할까봐 말을 못했었어."
아항 그래서 그렇구만. 아야세의 오타쿠 혐오증때문에, 아야세까지 넣어서 놀러 가자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을 거다. 아마 그 빈자리에 내가 들어갔겠지.
"아니야. 나도 키리노의 취미. 이제 괜찮아."
"정말!?"
아야세의 폭탄발언 (전과 비교하면 정말로 대단하다.) 때문에, 키리노는 정말 최상의 미소를 지었다. 순간 넋이 나갈정도로 기분좋은 미소였기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저쪽이랑 같이 놀지 않을래? 면식은 있지? 다시한번 소개시켜줄게!"
"에이~ 카나코는 괜찮.. 힉!"
카나코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야세가 찌릿 하고 쳐다보자 바로 조용해졌다. 그러고보니 카나코도 오타쿠신자를 이용해먹기는 해도, 자신이 오타쿠라고 하기엔 좀 멀지.
뭐 그래도, 아야세가 그렇다면 카나코의 의견은 무시하고 갈게 뻔하다. 그리고 한편은, 정말로 뿌듯해졌다.
내가 그렇게 노력해서 지켜온 키리노의 비밀인 취미가, 내가 어떻게든 이어준 아야세와 키리노의 우정이. 지금은 겉과 속 전부를 서로가 인정하는 내가 생각하기엔 진정한 친구가 됬다고 할까.
나보다는 본인들이 더 노력하고, 힘들어 했겠지만, 이렇게 좋게 됬으니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키리노는 한손에는 브리짓의 손, 한손에는 아야세의 손을 잡고, 아야세는 못마땅해하는 카나코의 손을 잡고 뛰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