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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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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tory - 쿠로네코의 경우 2화


딱 딱 딱 딱

"…에서 전학온 고코우 루리 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칠판에 이름을 쓰고 상투적인 인사를 한뒤 고개를 꾸벅 숙이니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개중엔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 소리까지 내는 원숭이 같은 남자도 있고, 자기들끼리 수근거리는 남자무리와 여자무리도 보였다.

"저쪽 빈자리 들어가서 앉도록 하고, 무언가 불편하거나 궁금한게 있으면 따로 찾아오도록. 홈룸은 이것으로 종료한다."

나의 담임은 노란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포니테일로 길게 묶고 호쾌해 보이는 말투를 사용하는 여자였다.

내가 자리를 찾아서 앉음과 동시에, 담임이 큰 걸음걸이로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나갔다. 담임이 완전히 나간걸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교실은 잠시 조용하더니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 왜 전학왔어? 이사온거야?"

"우와! 머릿결 엄청 좋다! 무슨 샴푸 써?"

"꺄~ 인형같아!"

"에? 맨얼굴이야 이게? 피부 진짜 하얗다"

"눈물점 처음봐!"

내 책상 주위로 몰려와 질문세례가 퍼부어졌다.

"아,아우…"

치,침착해. 이런 상황을 대체 몇번이나 시뮬레이트 했다고 생각하는거야?

"아, 아버지의 전근 때문에 이사 오게 됬어. 샴푸는 딱히 고집하는 메이커는 없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주위에서 꺅꺅 대는 여자애들과 히죽거리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남자애들이 많이 부담스러웠다.

저, 정말 인간들 주제에 타천의 여왕인 나에게… 이렇게 귀찮은 정도면 예전처럼, 그냥 내쪽에서 거리를 벌리도록 ​해​볼​까​… ​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거에요 고코우는. TPO 는 분간하라구요? 당신이 오타쿠인걸 숨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걸 자기가 먼저 광고해서 사람들이랑 멀어질 필요도 없는거에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는거니까요. 네? 딱히 오타쿠인게 부끄러우니까 그렇다기 보다, 오히려 고코우는 인간관계가 능숙하지 못한걸 오타쿠 핑계로 넘기는건 아니에요?'

"……"

그 건방진 여자는 어느틈에 나의 표층심리에 이런 주박을 남겨놓은걸까…

흥, 딱히 그 여자의 말이 맞다는건 아니야. 단지, 나도 할 수 있다는걸 깨달았을 뿐. 그것뿐인 이야기.

"헤에~ 고코우 혹시 남자친구 있어?"

"에,엣?"

무, 무슨… 만난지 5분도 채 안되서 이런 저속한 질문을 할수가 있어…?

나도 모르게 한심한 소리를 내자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아마 내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을게 분명하기에, 그 시선들까지 보고 있자니 "있어" 라는 한마디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나는 말없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 남자친구 있는거야? 읏츠아!"

"고코우가 남자친구가 없더라도 너같은 애랑 사귀겠냐? 킥킥"

"우우, 시끄러워!"

아까 휘파람을 불던 원숭이 같은 남자애가 이상한 효과음까지 넣으면서 말하자, 같이 옆에 서있던 단발머리 여자애가 장난스럽게 딴죽을 걸었다. 소꿉친구일까… 옆에서 보면, 저 여자애가 남자애에게 호감이 있는게 뻔히 보이는 데도 남자들은 왜 저렇게 둔감한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자자, 수업 시작했단다 얘들아"

어느새 들어왔는지, 수수한 안경을 쓴 인상좋은 남자가 교탁위에서 책을 정리하며 ​말​했​다​. ​

아이들은 마치 먹이 하나에 몰려있는 동물들을 놀래킨듯이 순식간에 자기 자리를 찾아 앉으며, 요령좋게 반장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일어섰다.

"차렷. 경례"

…이 학교도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이네.

**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로 미약한 변화. 정말, 아주 약간의 변화인데도 그 느낌은 전혀 달랐다.

'샴푸 어떤거 써?'

'딱히 고집하는 메이커는 없어'

'으응~ 그러면 지금 쓰는거는 뭐야?'

'S사의 Y제품 있지? 그거 쓰고 있어'

'헤에, 그래?'

옛날같았으면, 저런 질문에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

라고 대답하고, 그 이후로 대화는 끊겼겠지만, 그냥 그녀들의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 주는것만으로 인간관계가 이렇게 호전될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하루만에 반 내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아이들과 접점이 생기고, 점심을 같이 먹을 정도의 친구들도 생겼다.

그런 관계가 아직은 어색했지만, 응.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딱히 알릴 사항은 없고…"

수업이 끝나고, 종례를 하고 있는 담임을 두고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눈이 아플 정도로 상쾌하게 푸른 하늘 군데군데 느릿하게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

'…선배는 잘 있을까'

아… 이제 선후배 관계도 아니구나…

"자, 그럼"

드르륵

"차렷. 경례"

"선생님 내일봐요~"

"또 게임센터 가지말고 바로 집에 들어가라"

"네네~"

종례를 마치고, 아주 약간 울적한 기분으로 일어나 가방을 드니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보니, 액정에 표시된 이름은 『쿄우스케』

"…"

서로 떠들면서 몇몇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귀가중인 교실에 서있는 채로. 나는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

「쿠로네코!? 그, 전학간 학교는 어때!? 괴롭히는 애들은 없고!? 친구는 생겼어!? 찝적대는 남자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피커폰으로 착각할 정도의 고음이 들려왔기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멀리했다.

"…일단 좀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냐!」

나름 걱정해준걸까. 나는 입 주위의 근육이 느슨해 지는걸 느꼈다.

"후후, 인기폭발이야. 특히 남자애들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쿄우~?"

「……」

"응? 선배?"

갑자기 선배는 말이 없어졌다.

…호칭 말인데, 아직 그 이,이름으로 부르기엔 부끄러워서… 좀 더 이 호칭을 사용하려고 생각해.

그러자 여태까지 진지함이라고는 정말 가끔 보이던 이 남자가, 마치 자신의 살을 파먹는 듯한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갈테니 기다려」



"어?"

뚜- 뚜- 뚜-

"……"

끄, 끊었어?

나는 당황해 하면서, 이번엔 이쪽이 전화를 걸었다.

"농담이야 선배"

촤아아아아악

「진, 진짜아?」

뭔가 방금 성대하게 뭔가 쓸리는 소리가 난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 학교도 나름 괜찮아. 점심을 같이 먹을 정도의 친구들도 생겼고"

「그, 그래?」

긍정을 하면서도, 선배는 아직 뭔가 꺼림찍한 목소리였다.

"흥… 말했지? 우리의 계약은 그리 쉽게 색이 바라지 않는다고"

「쿠로네코…」

"그, 그러니까 좀 더 자신을 가져"

「……응. 고마워」

"정말… 오히려 그건 이쪽이 더 걱정이야"

「엉? 걱정?」

"당신 여동생이나, 그 스윗트 2호랑 스윗트 3호"

「에… 아야세랑 카나코를 말하는거야?」

"흥… 이름따위 어찌되든…"

「흐흐. 혹시 질투하는거야?」

"…시끄러워"

「뭐, 너가 말했잖냐? 우리의 계약은 그리 쉽게 색이 바라지 않는다고」

"……"

「히히」

"…멍청이"

정말, 조금만 풀어주면 기어오르는 수컷이야.

아,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 지금 끝내는게 좋을것 같네.

"아. 선배"

「응? 아 잠깐만. 다녀왔습니다」

"혹시 요번 주말에, 시간 있어?"

「아아 물론이지」

"괜찮으면 우리집, 한번 오지 않을래? 멀어서 그러면 자고 가도 좋아"

「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자, 잠깐만!」

"…싫으면 말고"

「아니 싫은건 아닌데! 그, 뭐시기냐. 나도 마, 마음의 준비를」

"?"

마음의 준비?

순간, 말의 뜻을 이해하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당신!?"

「무슨 생각이라니… 그, 그렇게 생각하는게 보통 아니야?」

"윽…"

내가 이런 미스를 범하다니…

아버지가 불렀다는 이야기를 숨기기 위해서 그 부분을 빼고 이야기 했더니 내가 새,색녀로 보이잖아…

내가 어떤 변명을 하면 좋을까, 당황해 하며 생각하고 있자 전화 너머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 너 검은거 집에 놀러가는거야? 핸드폰 내놔봐」

「야,얌마 통화하고 있잖냐」

「아무래도 좋으니까 얼른!」

잠시 싸우는 소리가 나더니, 선명해진 음질로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학간 학교는 어때? 또 따돌림 당하고 그러지는 않아?」

전화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히죽거리는 목소리였다.

"흥. 아쉽게도 잘 적응하고 있어"

「헤에, 또 허세부리는건 아니고?」

"이 멍청한 여자가…"

「뭐, 그런것보다 이녀석 놀러갈때 나도 가도 되지?」

"응. 그 이야기도 하려고 했어. 당신도 시간 괜찮으면 놀러와"

「이얏호! 미니 쿠로네코들을 사기안의 마수에서 지켜주러 언니가 ​간​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아무래도 당신 모습은 여동생들 교육에 안좋을것 같아… 그건 그렇고 그 미니 쿠로네코라는건 또 무슨…"

「미니 쿠로네코가 미니 쿠로네코지 뭐야! 분하지만, 네 여동생들이니까 굉~장히 귀여울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츄릅. 흐익. 으히히히히히」

"…………진지하게 고민좀 해봐야겠는걸"

「어, 어이 야!」

뭐라고 외치는 스윗트녀를 무시한채,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꽤 긴 전화통화였지만 정말로 뭐랄까,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진다 해도 저 바보같은 남매와의 관계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것 같다.

"후훗"

나도 모르게 웃음지으며, 이제 아무도 안남은 교실에서 나가려고 하자

"!?"

무언가, 열린 문 옆에 나란히 고개를 빼꼼 내민 여자의 머리 3개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 무슨…"

"헤에~ 고코우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남자친구야?"

"엄청 도도한 이미지였는데 순식간에 새침떼기 이미지가 되네"

히죽히죽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여자애들은, 아까도 비교적 죽이 잘 맞던 ​3​인​조​. ​

아마도 나가는 척 하면서 여태까지 쭉 지켜본것 같다.

"아, 그, 아…"

바, 방금의 통화도 다 들린거야!? 이, 이대로 죽여버리지 않으면…

"머, 먼저 가볼게!"

마음과는 다르게, 최대한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린채로 그렇게 말하고 뛰어가는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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