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2화
뛰쳐나간 아카기를 내버려 두고 나는 '한권쯤 더 사도 괜찮지 않을까' 라며 1층으로 내려왔다.
"으음…"
아까 구매한 에로책은 즐겨보는 안경시리즈의 최신작품으로, 이것을 이미 확보했으니 안경물을 다시 고를 필요는 없다. 전 작품들은 전부 머릿속에 있으니까.
따로 또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당연히 내가 고르는 물건들은 전부 청초한 이미지의 긴 흑발이다. 다른건 그렇다 쳐도 긴 흑발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그렇게 긴 흑발에 초점을 두고 둘러본 결과 그럴듯한 책들이 보였다. 교복이라던가 수영복이라던가 메이드라던가 그런 의상이 다른 물건이 대부분이었지만.
교복시리즈와 수영복시리즈 둘중 하나를 골라야 할것 같기에 살짝 고민하는데
"응?"
내 코앞에 있는 책에 눈이 갔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바로 앞에 있는건 못보고 있었던 건가.
표지에는 긴 흑발의 슬랜더한 여성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책의 이름은 '고스로리타 특집'
"……"
여태까지 에로책을 고르는 기준이라고 하면 뭐든지 간에 옷의 면적이 작은 것들을 골랐다.
수영복이라던가, 비키니라던가 그런거. 뭐, 남자면 보통 당연하지 않냐?
그래서 그런지 옷의 면적이 무지하게 넓어서 맨살이 거의 안보이는 이런 드레스 의상은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거 묘하게 쿠로네코 닮은거 같기도 하고…"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인의 소재로는 쿠로네코가 월등히 뛰어나고, 생김새도 그리 닮지 않아서 비슷한 분위기라고 하면 의상정도 밖에 없었다.
처음 도전하는 미지의 단계지만, 아무래도 쿠로네코와 같이 지내면서 고스로리타에 관심이 생기고 어느정도 익숙해졌기에 나는 기대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책을 들고 계산대에 가 구매를 마쳤다.
훗… 만족스러운 쇼핑이었어. 그대로 뿌듯한 표정을 띄우며 가게에서 나오니 내 예상대로 문앞에서 아카기 녀석이 안절부절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코, 코우사카…"
먼저 나에게 반응한 아카기는 정말로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듯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 무슨 일 있어?"
내가 히죽 웃으며 대답하자, 아카기 녀석은 녀석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이를 꽉 깨무는 듯 했다.
"농담이야. 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왼손에 들고있는 짐을 아카기 녀석에게 던졌다.
"어,어?"
아카기 녀석은 넘어질뻔하면서도 내가 던진 짐을 받더니, 마치 야훼에 의해 절름발이가 나은듯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봤다.
"코우사카…?"
"아무리 급해도 물건을 두고 가서는 쓰냐"
"……"
"난 아무것도 못봤고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꽤나 기분이 좋거든. 훗. 그래도 나름 승자의 여유를 느끼며 눈을 살짝 감고 여운을 느끼고 있으니
"코, 코우사카아아아!!"
아카기 녀석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가왔다.
이 녀석에게는 호모 용의가 걸려 있어서 살짝 무서웠다 솔직히.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내미는 아카기. 나는 그 손을 팡! 하는 시원한 소리가 나도록 잡으면서 말했다.
"우정은!"
"담보를 원하지 않는다!"
아카기 녀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확히 반응해줬다. 뭔가 지나가던 오타쿠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긴 했지만, 뭐 모델일이나 코스프레 경험으로 인해 사람의 시선따위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됬다. 어떻게 보면 훌륭한 오타쿠의 생존스킬이네…
"그런데 말야"
나는 악수하고 있는 손을 고의적으로 손뼈를 비트는 느낌으로 꽈악 잡으며 말했다.
"아,아팟!?"
"자기 친구의 성적 취향을 여동생에게 광고하는 놈은 어디에 사는 누굴까"
"아파!! 부, 부러져! 너도 내 성적 취향 네 동생한테 말해도 괜찮으니까!"
"네놈 취향이 뭔데?"
"세, 세나같은 여자!!"
"…………………그래. 물어본 내가 바보다"
그거보다 너, 자기 여동생을 성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던거냐? 우와 대단하네 진짜..
그대로 손을 놓아 한숨을 쉬자, 아카기 녀석은 잠시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내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뭐 다음부터는 조심할테니까. 응? 무슨 말인지 알지? 하하… 뭐라도 먹으러 갈까? 오늘은 내가 쏠게"
"그럼 고급 초밥집으로"
"…하다못해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로 어떻게 안될까"
"남자 두명이서 무슨 패밀리 레스토랑이냐. 그냥 패스트푸드나 먹으러 가자"
"……뭔가 너 예전보다 엄청 말빨이 세진거 같다"
"엄청난 독설가 두명이랑 친해졌거든"
아카기 정도의 레벨은 이미 나에게 경험치 조차 주지 않는 슬라임과 마찬가지다. 2만 마리 정도 잡아도 레벨업할 기세는 안보인다고.
그렇게 근처에 있는 유명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에 가서 적당히 햄버거를 먹었다. 디저트로 바닐라 아이스크림 까지 먹은후 밖에 나오니
「토모세 류지씨 좋아해요!」
좋아해요! 라는 말에 흠칫 반응하여 우리 둘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이상한 미니 스테이지에서 이상한 이벤트를 하고 있는듯 했다. 그 스테이지 위에서, 어느 여성이 부끄러운듯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하고 있었다.
"뭐 고백 이벤트 같은건가? 상대는 따로 안보이는데"
아카기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 이녀석 솔로였지.
「후지마 미사키 사장님 사랑합니다!」
"뭔가 짝사랑 고백 이벤트 같은건가 본데"
「코시마 누나 결혼해줘!」
한사람 한사람, 무대위에 올라와 마이크에 대고 얼굴을 붉힌채 그런 고백들을 하고 나면, 길거리에 있는 구경꾼들이 '오오!' 같은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쳐줬다.
특히 구경꾼 중에는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 여자들은 그런 고백이 나올때마다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꺅꺅 대며 엄청 좋아했다.
「후지무라 다이스케 오빠 옛날부터 좋아하고 있었어요!」
"근데 이런데서 저렇게 할빠에 그냥 직접 고백하는게 낫지 않냐?"
내가 자연스럽게 느낀 의문을 말하자, 아카기 녀석은 오묘한 표정으로
"그건 너가 애인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엉? 어떤점이?"
"짝사랑의 경우 아에 한쪽은 기억도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 길거리에서 무의식적으로 부딪힌 상대에게 베푼 친절이 짝사랑의 형태가 되거나 말이야. 그 장소가 아키하바라면 더 중요하겠지. 혹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직접 고백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 앞에서 저런식으로 말하기만 해도 어느정도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우와 남자가 로맨티스트니까 재수없어"
"진짜 말이 쓰라려!?"
시스콘에 호모 미수인 주제에 낭만을 즐기는 녀석이었나.
녀석은 앞에서 꺅꺅대는 여자애들처럼 꽤 오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약 너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데 '쿄우스케씨 좋아해요!' 같은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겠냐?"
"평범하게 동명이인이라 생각하고 지나가겠다"
상식적으로, 여자에게 인기도 없는 내가 길거리에서 공개고백을 받을 일은 절대 없거든. 자의식과잉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싫고.
그러자 아카기 녀석은 쳇. 하며 혀를 차더니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 너는 정말 낭만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녀석인데. 왜 그렇게 귀여운 여자친구가 생긴거냐…"
"글쎄다"
적어도 나는 직접 고백했거든. 이런데서 저런거 안하고.
"나는 이만 가볼란다"
"쳇… 애인이 있는 자의 여유냐! 아아, 나도 뭔가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 좋겠는데"
"잘해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카기 녀석을 내버려둔 채, 대충 뒤로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구매한 책들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거든.
"코우사카군?"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려고 하자.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